"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한 세례요한의 말로"
(막/Mark 6:14-29)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성취시켜 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결과 귀신 들리고 가짜 왕이 탄생하고 가짜 종교인들이 생겨난 것이다.
종교는 교권으로 사람을 속이고 정치는 권력으로 사람들을 윽박지른다.
세례 요한은 현실 문제 앞에서 자기 생각으로 살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는 가장 큰 자라고 했던 그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세상의 가짜들 앞에 쫄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힘을 가지길 바란다.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불가능의 언약을 절대 가능케 하는, 이 시대의 재앙 막는 하나님의 전도자’로 부름을 받았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담대하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가능의 언약으로 바뀌어야 구원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집중하면 영원한 작품이 나온다. 이 사람, 저 사람 판단하다가 착각하여 틀린 결과를 갖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불가능의 언약을 절대 가능으로 바꾸는 이 시대의 주인공임을 믿길 바란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언약이 되게 하자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언약이 되면 하나님이 삶 속에서 임마누엘, 함께 하시고 원네스의 축복과 응답을 누린다. 이것을 갖지 못했던 세례요한은 너무나 슬프고 두려웠고 결국 목 베임을 당했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 교권을 가진 종교인들은 사기꾼, 거짓말쟁이, 가짜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듣고 착각하면 연약해지고 무시당한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였을 때 왕이 4명이나 있었다. 로마에 속국된 노예 주제에 자칭, 왕이며 착각한 것이다. 그런 자들이 저지른 사건이 세례 요한의 목을 벤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알려주셨다.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주관자들, 하늘의 악한 영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 주술과 무속과 점술과 각종 우상숭배 속에 빠뜨려 재앙을 당한다고. 정확히 말하면 하늘의 악한 영의 지배를 받아 귀신 들렸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 12절,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그런데 정치권력과 종교교권이 두려운 나머지 교회들이 환영하고, 그들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고 무릎을 꿇었다. 그들을 유일하게 이기는 방법이 있다. 에베소서 6장 18절, 무시로 성령 안에서 깨어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 16절, 그들은 우리를 공격해 온다. 악한 자의 모든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를 소멸시켜라! 종교의 교권과 교리에 길들여지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가능한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아라! 정치 거짓말쟁이들에게 놀아나지 마라! 거짓말쟁이들에게 속지 않으면 국가는 재앙을 만나지 않는다. 복음이 끊어지면 반드시 재앙 시대를 만난다. 왜 복음이 끊어지는가? 다른 복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복음이 다른 복음이다.
→갈라디아서 1장 6절,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면 저주, 재앙이 임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서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절대 언약이 성취된다. 7절, 다른 복음은 없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교권과 교리로, 개소리로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니라. 8절,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만이 사람 속에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화되어야 한다. 그러면 힐링 하우스를 세울 만큼 증거가 온다. 왜 하나님이 주신 절대 복음을 1인칭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언약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불가능의 언약은 창세기 3장 15절 안에서 이루어진다. 더 이상 벌레들처럼 예민하거나, 짐승 뇌처럼 사람 눈치 보면서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자.
하늘의 악한 영이 사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뱀의 머리를 깨뜨리자.
이것을 모르면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된다. 고린도후서 11장 14절, 자기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정의를 외친다. 지금 자기 개인의 문제가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인해 쌓이고 있는데 확인하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의 기준,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서 정의를 외친다. 몸에 와 있는 죄의 권세, 사망의 종노릇 하는 문제를 해결 하지 않고 정의를 외치려고 한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목 베임을 당한 것이다. 다른 복음을 위해서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이 무엇인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 안에서 증인이 되는 것이다. 증인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의 사람이 되어 이사야 64장 6절, 속인다. 부정한 자가 입은 옷은 더러운 옷이다. 그 사람은 잎사귀처럼 시들고 죄의 권세가 바람같이 그 영혼을 휘몰아 끌고 다닌다.
시편 51편 1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창세기 3장 15절 언약을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죄악이 지워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이 절대 불가능으로 보이기에 거짓말 인생을 산다.
2절,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창세기 3장 15절, 트리니티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이다. 잉카네이션, 인자.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죄의 권세가 사로잡아 간다. 그리스도 인자 안에서 살아야 되는데 그리스도 없는 정의를 가지고 사는 교회는 노략질하는 거짓말쟁인 것이다.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 바깥에서 살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인의 광기로 살아야 했다.
헤로디아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고 가짜 왕 헤롯에게는 분노와 분열을 일으키게 했으며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는 엄마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전략을 짜게 했다. 이 모두 세례 요한 한 사람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인 것이다. 많은 죄악의 현장이 세례요한 한 사람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이 짓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고 그는 흥해야 되겠고, 나는 쇠해야 하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요, 나는 그의 명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러 온 천하 만민에게 구원의 선물을 안겨주는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망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는가? 아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1절, 너희를 부르고 너희를 창조한 이유는 평안을 주기 위해서다.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다. 미래와 희망을 주기 위함이다. 창세기 3장 15절의 언약으로 성경을 보지 못하면 정의 신학을 외친다. 사회를 더 어지럽게 만들고 그 사람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정의라는 그 이름 때문에. 교실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안 죽고, 그걸 배운 사람들은 흥분해서 나가서 외치다가 죽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다 이루신다. 착각하지 않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정의로 사회와 국가를 이루어 보겠다고 일어선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원 받으라고 해놓고 행위, 봉사를 강조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종교사기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왕으로 세워주지도 않았는데, 자칭, 왕으로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만 골라서 하는 것은 가짜 왕이다. 진짜 왕은 마귀의 일을 멸하자고 외친다. 유일한 왕 중의 왕은 창세기 3장 15절, 그리스도 하나님만이시다. 진짜 왕을 만나면 벙어리가 말을 하고 귀머거리가 듣고, 걷지 못하는 자가 걷고, 죽은 자가 살아난다. 이 내용을 세례 요한에게 전하라고 예수님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은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에서 났다고 진단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세 전에 예비하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들이 진짜 왕이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구별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백성이고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생명의 빛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의 직분을 가진 자들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수많은 영혼들에게 선포한다.
10절, 너희가 전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백성이 아니더니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다.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는 알았는데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긍휼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직 필요성을 느끼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천국을 차지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착각하지 않는다. 착각하는 순간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 착각하지 않는다.
빌립보서 4장 6~7절,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는다. 모든 현장과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만물을 복종시킨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들으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7절,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희를 지키시리라.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나님이 지키신다. 낙심하지 않기를 축복한다.
세례 요한이 위기 상황 속에서 착각했다. 그리스도가 흥해야 하고 자신이 쇠해야 한다면 빨리 그리스도를 따라 붙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면 이 땅에서도 큰 자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도 큰 자인데, 결국 하나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도록 침노하자.’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그분이 모든 문제 해결하셨다.
마태복음 11장 11절, 분명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모세보다도 아브라함보다 더 크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왜냐면 집중,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면 뺏어서라도 자기 것으로 해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가 너무 좋아~”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세계 복음화! 절대 열정, 절대 믿음.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가 없으면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말로는 비참해진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앞서 출생했다. 그는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 메시아임을 알고 태어나,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증거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죄를 지적했고 심판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그리스도를 따라가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그는 물세례만 남겼다. 마태복음 3장 11절,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그리스도를 그도 만나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성삼위 하나님 그리스도의 강력한 능력, 성령의 역사가 자기 몸에 임해야 했는데 자신의 정의를 어설프게 외치다가 칼 맞아 죽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사탄이 개입하여 많은 사람들이 살인의 광기로 가지게 되었다. 이게 오늘날 정치권력, 종교 권력이다. 더 이상 물세례만 남겨 다른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면 안 된다.
사도행전 19장 1~5절, 아블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서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님께 계심도 듣지 못하였나이다, 세례 요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비참해지고 망한다. 하나님 떠난 인간이 무슨 정의를 외칠 수 있는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데….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인간들이 무슨 정의를 외치는가, 노략질하려고 지금 거짓말하는 것이다.
자기의 근본은 해결하지 않고 사탄의 심부름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이간질시키고 오해하게 하고 착각하게 만들어서 비참하게 개죽음 당하게 만드는 게 종교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분명히 성령을 받는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성령의 계심도 듣지 못하였다고 한다.
세례 요한이 죽은 지 50년이 지나서 이 말이 나온 것이다.
3절,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세례 요한의 세례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 외에는 세례를 안 주고 멈춰야 했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에게만 세례를 줘야 했다. 그런데 광야에서 6개월 동안 계속 세례만 주었던 것이다. 딴 짓하면 안 된다.
4절,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절에,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드디어 받게 되었다.
6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함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라. 새로운 언어를 말하게 되었다. “권세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재앙의 시대를 막는 왕 같은 제사장의 축복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여망이 끊어지고 어떤 무시무시한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사도행전 27장 28절,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메시지를 던지게 되었다. 예언했다. “바울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처럼 너는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사도행전 27장 24절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복음 전도자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으켜 세우신다. 죽이는 분이 아니라 세우시는 분이다. 그래서 복음의 메시지가 없는 자의 말로는 목 베어 죽는 것이고, 복음의 메시지를 가진 자는 황제 앞에 서게 된다. 이제는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거나 떨지 말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 쳐 주셨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을 잊지 말자.
“당신 구원받았습니까? 언제 받았습니까? 어떤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말하면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지 말라. 나는 요한복음 1장 12절이 내 몸에 있다.”라고 선포해야 한다. 그래야 이단에 빠지지 않는다. 종교 사기꾼들한테 걸려들지 않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음이니라. 다른 복음으로 나를 노략질하려고 하는 더러운 저주 영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흑암을 꺾는, 종교사기꾼들을 꺾는 어마어마한 권세를 사용하면, 누가 복음 1장 19절, 해칠 자가 없다. 그래서 참 자유를 갖는다. 왜 우리는 자유를 갖고 행복하게 누려야 하는가? 고린도전서 3장 16절, 하나님이 우리 몸을 성전 삼으시고 성령으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 그리스도가 내 몸에 항상 함께 성령으로 계신다.
성령은 우리 몸에서 무엇을 하시는가? 요한복음 14장 14절, 내 이름으로 너는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길을 갈 때도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세계 복음화!
→그리스도 안에서 있어야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다. 사도행전 2장 36절, 너는 정령히 알아라, 똑바로 정신 차리고 확신해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를 하나님이 네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 주인으로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음이니라.
38절, 그리스도가 우리 몸에 오시면 회개가 일어난다. 옛 뱀의 대가리를 깨뜨리는 회개.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이루어 놓았음에도 상황 속에서 착각하게 만들고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슬금슬금 내 영혼을 장악해 좀 먹는 기생충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계속 영적싸움하면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그러면 확신한다. “금이 있어도 괜찮고, 금이 없어도 괜찮고, 내게 있는 것으로 나는 너에게 전달하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내 몸에 있는 질병의 저주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끊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라!”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하나님의 나라를 침노한다. 이 맛을 못 보고 칼 맞아 죽은 사람이 세례요한이다.
누가 복음 7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정의를 외치다가 감옥에 갇혔다. 그것도 가짜 왕한테. 헤롯은 가짜 왕이기에 하지 말아야 할 것만 골라서 했다. 국민을 진짜 진짜 사랑하는 대통령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고 해야 할 일만 한다.
하나님은 사탄이 하는 짓은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도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 우리 몸에서 사탄의 일이 작동될 때마다 이걸 깨뜨리고 이것을 사로잡아 내어버리고, 결박시키는 사람은 계속 모든 것을 침노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 사탄이 하는 짓을 용납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노하는 자는 엄청난 축복을 받는다. 성령을 모독하면 사하심 얻지 못한다. 32절,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못 받는다. 오는 세상 가는 세상, 아무 축복도 받지 못한다. 딴 짓을 하면 이렇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침노할 것인가? 사탄의 일을 용납하려고 하는 것을 자꾸 사로잡아 내어 쫓고 결박시키는 것이다.
마귀는 살금살금 영혼에 찾아 들어와 헷갈리게 한다. 세상 임금, 공중 권세 잡은 자, 마귀를 따라다니면 진노가 오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30절, 마귀는 어떻게 세례요한을 헷갈리게 했는가?
그리스도는 흥해야 하겠고 자신은 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겸손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사람들은 이렇게들 말한다. 요한이 예수님의 신발 끈매기에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고백했다면 그 절대자를 따라야 될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섭섭해 하며 목 잘려 죽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내 가정의 구원을 얻으리라.’고 스테반처럼 고백하고 못 죽고 섭섭하게 죽은 것이다. 신앙생활을 착각하면 말로가 이상해진다.
계시록 17장 14절,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세례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면 그도 이렇게 가야 했다. 어린 양이 만왕의 왕이심으로 가짜 헤롯을 이기실 터이요,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이기실 것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자들을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우리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요한계시록 21장 27절, 우리들을 기억하고 계신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게 지워진다. 거짓말도 지워지고 기억이 안 난다. 사람 속에 그리스도가 살아서 그리스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인하여 쌓인 더러운 것들만 보인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다 지워진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하지 말고 그리스도만 따라가자
마가복음 6장 17절 18절, 다른 복음을 전하면 이렇게 저주를 받는다. 6개월 동안 세례요한이 다른 복음을 전한 것이다. 세상 죄 지고 가는 그리스도만 보라고 전했다면 자신도 따라가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너희들도 지금 나한테 붙어 있지 말고 나와 함께 그리스도를 따라가자,”고 해야 했다.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18절,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니라.’ 헤롯도 자신이 한 일이 잘못된 것인 줄은 알고 있었다.
모세의 율법에 비추어 보면 자신이 사이코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짜 왕이라 자기 멋대로 살았다. 이런 사람들에게 다른 복음 말 하면 안 된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왕의 왕, 하나님의 아들, 창세기 3장 15절, 뱀대가리를 깨뜨리는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전해야 한다. 제사장은 오실 메시아가 번제로 비참하게 죽는다는 사실을 전해야 하고, 왕은, ‘지금 내가 왕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나는 가짜다. 진짜 왕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참 왕이시다!’를 말해줘야 한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죄를 범하였다고 책망만 한다. 죄의 싹은 사망이다. 로마서 6장 16절,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은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그래서 그리스도를 전달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전달되지 않으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 이런 축복을 주지 못한 세례 요한은 비참한 인생의 말로를 맞이했다.
로마서 4장 15절,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사람을 지적하는 것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자꾸 지적질 해선 안 된다. 자신만이라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길 바란다. 오직 그리스도 믿으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사망이라는 것은 육체적 죽음만의 의미가 아니라 영적 사망과 지옥과 고통을 말한다. 천국은 침노하는 것인데, 세례요한은 이것을 빼앗긴 것이다.
→본문 14절, 예수님의 이름이 드디어 높여지기 시작한다. ‘이에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만약 세례요한이 안 죽었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교회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 예수의 이름만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흑암 권세가 꺾인다. 예수는 그리스도만이 드러나타나야 한다. 이를 위해 몸에 반드시 그리스도를 영접하자.
요한 1서 5장 13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의 이름이 내 몸에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요한복음 14장 14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신분을 가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얻고 어마어마한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서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
빌립보서 4장 6~7절, 이런 생각을 가질 때, 빌립보서 4장 19절의 응답이 몰려온다. 나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1인칭 한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영광 가운데, 이미 내 몸은 이미 영광 가운데, 그 어마어마한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양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고 수용하면, 르호봇 경제가 우리의 것이 된다는 말이다.
→말씀으로 답을 얻지 못하면, 자신의 환경 속에서 정의의 메시지를 선포하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는 게 성경에 기록된 메시지다.
헤롯은 가짜 왕이다. 그 당시 종교인들에게 아첨해서 얻은 정치권력으로 왕이 된 것이다. 그런 가짜 왕에게 무슨 정의가 먹히겠는가? 또한 동생의 여자 헤로디아와 결혼하는 것은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왕은 헤로디아가 춤추는 모습을 보고 반했고 헤로디아가 낳은 딸 살로메 역시 엄마를 닮아 춤을 잘 추었다.
어느 날 마귀의 시간표가 왔다. 왕이 잔치를 배설하고 살로메가 춤을 추는데 그 모습에 반한 왕은, 살로메에게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맹세했고, 평소에 세례요한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던 헤로디아는 딸 살로메에게 요한의 목을 왕에게 요청하도록 시켰다.
정치와 종교의 권력은 이런 것이다. 외치는 사람만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응답부터 누리자.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내 안에 성령 계신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받는다. 강한 자 결박하면 이 땅을 우리가 정복할 수 있다.’
사람의 영혼을 춤 하나로 뒤집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살로메의 충격적 요구를 들으면 보통 정상적인 사람은 큰 충격을 받고 ‘아, 내가 정신을 차려야 되겠다.’고 느낀다.
오늘날 왜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가?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스스로의 사람이 되어 회개는 못하고 사탄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창세기 3장 사건에 연관되지 말고 빠져나오기를 축복한다.
창세기 3장 사건에 연루되면 자신도 모르게 순리를 역리로 바꾸는 시대 속에 살게 된다. 비판과 부정으로만 가득한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고 어렵게 만들고 사람을 산 채로 죽여서 다른 계획을 꾸민다. 그래서 비판과 부정으로 사람들을 계속 들여다보면 이상한 사람으로 돌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정상이 이단이 되고 이단이 정상이 돼버린다. 너무나 기본도 안 된 것들이 정상의 자리에 앉아 있다. 모든 것들이 틀렸음에도 정상의 자리에 앉아 있다. 거기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받는다. 우리 후대들이 재앙을 당하는 시대를 만났다.
불신자든 신자든 실력 있는 사람이 죽임을 당한다. 거짓말이 승리하는 시대로 돌변했다. 복음이 끊어져 종교 시대가 오면 이렇게 된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짜 왕 헤롯, 헤롯디아, 살로메, 그 주위의 종교 지도자들은 세례요한이 목 베임을 당할 때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 이름이 드러나타나자 자신이 한 짓을 회상하게 된다. 옛날에 저지른 일들이 회상되어지는 사건이 본문 메시지다. 왕이 회상을 하면서 엄청나게 겁을 먹고 있다. 죽은 자가 살아나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두려움에 휩쓸리게 된 것이다.
→세례요한의 죽음은 실패가 아닌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리스도에게 순복하지 못한 인생의 말로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혜가 없으면 억울하게 비참하게 말로를 맞이할 수도 있다. 세례 요한이 죽은 이후 30년 만에 이스라엘의 교권이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전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졌다. 가짜 왕 헤롯의 가문은 완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1400년간 23 나라의 이스라엘은 흩어져서 유리, 방황하며 고통을 받았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잠시 희생당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웃지만, 그들의 후손은 망했다. 예수 사랑 가족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따라 걸어가길 바란다.
*마침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우리 영혼 속에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문제 해결자 그리스도는 나의 참 왕이시요 참 선지자이시요 참 제사장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신다고 말씀하셨사오니, 우리의 생각이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이 내 몸에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 세례요한의 활동과 죽음을 보면서 우리가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 아는 지혜로 충만케 하여 주옵시고,
아무리 내 신세가 연약해도 망한다라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주옵소서.
세상은 원래 순리가 아닌 역리로 간다고 말씀해 주셨으나 세상의 임금, 세상 신의 지배를 받는 자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우리 몸에 소유할 수 있도록 내 안에 성전 삼으시고 성령 보혜사 하나님이 영원히 항상 함께 계심을 믿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에 유익을 주는 그리스도인으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정치권력, 종교교권, 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모든 문제를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따라가는 겸손의 자세가 우리 영혼 속에 솟아나게 하옵소서.
현실 앞에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신세타령하지 않게 하시며 틀린 선택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지켜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사람이 만든 다른 복음을 붙잡아 죄의 문제 해결 없이 이상한 정의를 외치다 비참한 말로를 맞는 인생을 살지 않도록, 예배를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한 세례요한의 말로를 보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달아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세상 정치 종교의 거짓말로 내 속에 들어와 착각하고 틀린 선택을 하게 하는 사탄의 일을 용납하지 않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싸움하여 생각과 마음을 지키고 천국을 침노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절대불가능의 언약을 절대 가능으로 바꾸는 언약의 주인공으로서, 모든 현장에서 하나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누리며, 딴짓하지 않고 진짜 복음만을 전하여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전도제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