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상황을 압도하는 창대하고 왕성항 축복"
(창/创 26:12-22)
어려운 상황을 압도하는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창대하고 왕성한 하나님의 축복이 그대로 임한다는 본문 말씀을 꼭 새겨놔야 할 것이다. 이삭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영적 대물림의 문제를 발견한 후, 드디어 절대 불가능의 언약이, 숫양이 번제로 드려지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가능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그냥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내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하나님의 언약이 절대 가능으로 성취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어떤 분이 나에게 카톡으로 전화를 해서는 영상통화를 하자고 요구했다. 귀신에게 시달려 시비를 걸 사람이 없으니까 나에게 시비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나님의 언약을 자기가 성취시키려고 몸부림쳐도 문제는 더 어려워지고, 옛 사람의 체질에서 못 벗어난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래서 당신 어느 교회 출신이냐고 물었더니, 이 교회 저 교회 두루 다니다가 요즘 예수사랑교회 메시지를 듣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절대 불가능의 언약을 당신이 이루려고 하니까 안되는 것이다” 말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굉장히 미련하게 보이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했다. 고전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그리스도 안에서 ‘예’, ‘아멘’만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작품을 남기기 시작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멘’ 될 때, 절대 가능이 시작된다. 고전1:21, 전도의 미련한 것에 하나님의 지혜를 감추셨고, 자기 몸에 ‘예, 아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이 이뤄질 것을 믿습니다’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절대 불가능이 절대 가능으로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 우리의 구원과 기도, 선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작품이 된다. 그것이 우리 삶에 성취되는 언약이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 늘 ‘와~’ 하는 감탄이 나오는 것이다. ‘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언약을 내게 약속으로 주시는구나. 와~’ 이것이 없으면 사람은 끊임없는 의심과 불안, 자기 요구를 관철하려는 몸부림 속에 있다가 사람의 상태가 이상해져 가는 것이다.
내 몸에, 나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누려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이 성취될 때 위드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 원네스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런 사람은 누리는 응답 속에 있는 것이다. 이삭이 그랄 땅에서 이것을 잠시 잃었다. 우리는 천국의 기업을 가진 엄청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환경과 개인의 감정이 공중권세 잡은 자에게 완전히 잡혀 하나님의 언약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내 몸에 있다’ 이것을 우리는 가장 많이 잃어버린다. 그리스도가 내 몸에 없으면 왕권과 제사장권, 선지자권이 없게 된다. 벧전2:9, 왕 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실족하면,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자가 아니라, 비참한 인생의 길을 걷게 되고, 왕권이 없으면 흑암권세에 짓눌리게 된다. 그래서 위드의 하나님, 나와 늘 함께 거니는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미래에 보장도 없이 이렇게 살다가 개판 되는거 아니야?’ 불안한 환경만 조금 찾아와도 두려움이 엄습해 와서 자신도 모르는 인본주의가 나가 순식간에 발작을 일으킨다. 우리는 애굽에 종노릇했던 과거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까지 일용할 양식이 끊어지지 않게 하셨고, 기구한 운명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생명,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왜 힘들고 답답하다고 하는지 자신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흑암 권세를 내어 쫓는 권세를 사용하지 않으면 자신이 순식간에 흑암에 덮여 어둠과 캄캄함으로 고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생각 속에 자꾸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 속에 온유한 자가 되면 르호봇의 경제의 축복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하나를 누리지 못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생의 응답이 온 몸에 퍼져있음에도 응답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주술사, 무속, 점술 이런 수준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신분과 권세는 엄청난 것이다. 이미 땅 끝까지 이르러 응답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엄청난 권능과 지혜로 약속하셨다. 육신의 눈으로는 “땅 끝까지 가라” 이 말씀이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절대 가능한 언약이다. 하나님이 원네스,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느끼지 못하면 판단을 잘못하여 굉장히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게 된다. “은과 금은 내게 없어도 괜찮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준다. 내게 있는 이름은 만물을 복종케 하는 이름이다” 베드로는 이것을 깨닫고, 행4:12, 천하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남겨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이름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가 천하를 재패하게 된다는 것을 선포했다.
창26: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이삭은 자기 몸에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시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사람과 다툼이나 경쟁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나와 항상 함께 계시는 창3:15,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 창조주, 만물을 복종케 하는 하나님이다. 나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 평화의 감정,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힘을 얻어야 할 존재이지, 다툼과 시기, 캄캄함의 자녀로 살고 싶지 않다!” 이 말이다.
창3:15의 하나님이 누구인가? 출20:3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 외에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하는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이름 외에는 내 곁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은 출3:14,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증인으로 세우셨다. 그런데 이것을 어설프게 생각했던 세례요한은 비참한 말로를 갖게 되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나를 세계복음화의 주역으로 부르셨음을 믿는다면 언약부터 잡아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는 언약이다. 렘29:11, 나를 하나님이 왜 부르셨는지, 여호와의 말씀이 들려야 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신다고 말씀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오직’ 하면 유일성의 응답과 재창조의 축복이 시작된다.
렘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로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정시기도를 3개월만 넘기고, 정시기도의 체질만 되면 만물이 필요에 따라 우리 앞에 복종된다. 하나님이 싸인도 주시고 타이밍도 주신다. 내가 먼저 움직일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이 하실 것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면 나 여호와의 때에 반드시 이뤄주신다. 렘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 속에 있으면 진짜 사41:10의 응답이 온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음성이 우리 몸에 작동될 때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말씀이 이렇게 들러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생각이 올 때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지 않으면 결국은 자신의 생각대로 가는 것이다. 그냥 입으로만 ‘예수님은 나의 동반자~’ 하지 말고, 마음에 느끼면서 동반자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면 기적이 시작된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삭은 어려운 상황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비밀을 소유하고 있었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싸인을 주셨다. 그래서 그 이름에 절대를 가지고 계속 부르면서 포기하지 않는 믿음만 가지면 하나님의 타이밍이 시작된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했다. 우리 몸에 응답을 느끼지 않을 때가 은혜다. ‘나는 왜 이렇게 응답이 없지?’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야 우리의 체질이 바뀌고,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복음을 각인시키고 지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설픈 응답을 받고 교만을 떨다가 비참해지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영적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면 모든 문제가 끝난다.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가질 수 있는 사인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직접 주셨다. 마12:28~29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내 마음과 생각 속에 더러운 것을 집어넣는 마귀를 내어 쫓으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된다. 남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이기주의로 사는 것이 주술이다. ‘나는 살고, 너는 죽어야 한다’ 하는 더러운 생각이 주술이다. 정치와 종교, 권력은 점술, 주술, 무속, 귀신들림이다. 이것을 쫓아내는 것이면 강한 자도 결박하며 이 땅에 르호봇 경제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환경으로부터 찾아오는 생각들을 빨리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인을 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왜 말이 많고 인간관계가 끊어지고 하나님 나라에서 추락하는가? 요일2:16을 가졌기 때문이다. 창3장과 관계된 것이 우리를 계속 괴롭힌다. 우리가 어디에 앉아 있어도, 어떤 직장의 현장에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우리 몸에서 끊임없이 솟구친다. 이것이 세상 임금에 길들여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세상 신에 걸려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고,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우리 몸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요8:44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이 요8:44에 주저앉아있으면 안 된다.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난은 기회다. 가진 사람들은 절대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아비멜렉이 그렇게 큰 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넓은 마음을 쓰지 못하니까 자꾸 남이 파놓은 샘을 빼앗는 것이다. 아버지 때도 다 묻어두었던 것을 다시 파니까 빼앗아 간다. 가진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분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절대 불가능이 절대 가능해진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인이다. 하나님이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언약’ 이다. 그래서 반드시 약4:7,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씀에 순복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 불가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을 믿어주기만 하면 하나님이 시작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찾고 두드리고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 약속하셨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만물을 복종케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타이밍이 온다. 이 하나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온갖 종교 사기꾼에 굴려 수많은 돈을 빼앗기고 인생 자체가 마귀에게 종노릇하게 되었다. 주술하는 종교 사기꾼을 따라다니지 말고, 이 시대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불가능의 언약을 절대 가능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이삭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결단과 믿음에 집중했다. 우리 몸은 창3장 사건으로 인해 사망이 왕노릇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사망이 우리 몸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영적인 사망의 몸, 하나님의 절대 언약을 내 것으로 받으려고 하는 것은 더욱 사망을 낳는 일 뿐이다. 롬5:12~13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래서 양심이 있고, 모세 이후로는 율법이 있었고, 지금 이 시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타이밍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여기에 ‘오직’ 하지 않으면 사망이 우리 몸을 왕 노릇하고 율법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인간관계를 전부 깨뜨리는 우리 눈의 들보 밖에 없다. 롬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래서 그리스도가 오셨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가져야 절대 불가능의 언약이 절대 가능의 언약으로 바뀐다. 더 이상 불신앙, 불순종, 죄의 권세가 우리 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내 몸을 천국기업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충만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우리 몸에 영적인 어둠이 사로잡아 혼돈 가운데 빠뜨렸다. 창1:2, 혼돈, 공허, 흑암이 이제는 사람을 장악한 결과, 사람들이 근본을 찾지 못해 죄의 속박과 사망이 왕 노릇 한 것이다. 뱃속에서부터 사람을 지배한 죄의 권세로 사람들은 완전 장악되어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3:15의 언약을 주셨다. “죄의 권세가, 사망이, 네 몸에 왕 노릇하고 있으니 이놈부터 깨뜨려라!”
세상과 세상 임금으로부터 내 몸에 들어온 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의 감정이 없고, 옛 뱀이 가진 그 감정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파충류 수준, 동물 수준으로 사는 것이다. 실컷 개밥 얻어먹다가 잠깐 밥을 안주면 주인을 물어버리는 수준으로 살아간다. 개의 질병을 치료해주려고 주인이 잠시 배고프게 한 것인데, 개 수준에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인을 물어버리는 것이다. 침팬지에게 1억을 주면서 30cm를 그리라고 하면 침팬지는 돈의 가치를 몰라서 그리지 않는다. 그런데 먹을 것을 계속 주면서 하라고 하면 한 달 만에 30cm를 일자로 그린다고 한다. 너무 잘 그려서 60cm를 그리라고 하면 30cm이상은 못 그리는 것이 동물의 뇌다. 우리가 이런 수준으로 멈추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라인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왜 라인을 그려야 하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그리는 것이다. ‘우리가 잠시 배가 고파도 세계복음화 하자’ 이러면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복음화는 관심이 없고 왜 나한테 밥 안주냐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의 구원을 망각하는 것과 같다.
오직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신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에만 집중해보면 갈보리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사인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예수사랑교회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교회다. 십자가 그 하나님의 사랑의 감정을 온 몸에 새겼다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여자여, 누구를 찾느냐” 물으신다. 빈 무덤을 보여주시고 묶인 것을 푸시고 세마포를 걸치시고, 주의 천군천사가 움직이는 것을 여인들에게 보여주신 그 분은 바로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하나님, 예수그리스도시다. 그분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희망을 잃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는 기도 속에 있어야 한다. 이 땅에 어둠과 캄캄함이 덮여 있으나 창3:15, 그 하나님의 비전을 움직이는 자는 영원한 응답을 받는다. 창3:15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다. “뱀 대가리를 깨뜨려라!” 파충류 수준으로 살면 안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었기 때문에 민감하게 살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순간 도망가는 파리를 잡으려고 안간 힘을 쓰는 사람으로 예민하게 살아간다. 사람은 좀 무던해야 한다. 사람 눈이 뱀 눈처럼 돌아다니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뱀눈처럼 빠르게 돌리는 눈, 한 입에서 나오는 두 혀, 이런 것을 밟고 없애야 한다. 세상 신으로부터 길들여진 파충류 뇌가 우리 몸에 와 있다. 그런데 참새는 유일하게 은혜를 받아서 창고 하나 짓지 않아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기르시는 것을 누린다. 참새 깃털 하나 빠지는 것까지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작품이 된 하나님의 자녀를 그냥 두시겠는가? 하나님이 너는 내 아들이라 하셨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음에도, 늘 지저분한 생각과 더러운 감정을 가지고 인생을 살기 때문에 뱀 대가리를 밟으라고 비전을 주시는 것이다. 창4:26,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 대가리를 깨뜨리라는 그 이름을 알고 부르는 자는 하나님이 노아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하시는 그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우리가 부르는 메시아, 그리스도가 우리의 혈통으로 오셨구나’ 이 시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그루터기, 렘넌트다. 절대 불가능의 우리가 절대 가능의 사람이 된 이유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기 때문이다.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런 말씀에 전혀 감동이 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몸이 주술의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주술의 영을 깨뜨려야 한다. 주술의 영을 깨뜨리지 못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자꾸만 하게 된다. 인생에 브레이크를 잡을 힘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 교권, 정치는 주술의 힘을 빌리기 때문에 순발력을 가지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그래서 전 세계를 재앙의 시대로, 위기로 몰아가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수준 낮은 논쟁으로 이 시대를 마지막 재앙의 종말로 치닫게 하는 것을 본다. 이것이 전부 귀신들림, 주술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죽은 자에게까지 넘기려고 하는 것이 주술이다. 굿을 하고 제사를 지내고 살아있는 소의 가죽을 벗겨서 죽은 자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이 주술 행위다.
창3:15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빛으로 함께하겠다고 요1:4에 말씀하셨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사탄의 대가리를 깨뜨리는 사람, 내어 쫓는 사람만이 생명의 빛이 된다. 생명의 빛을 가지고 빛을 비추는 그 비전을 가진 사람들은 재앙의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전 세계가 하나님 땅에 부동산 장사를 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현실에 속지 말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하나님의 일 외에는 땅을 구입하려고 몸부림 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인생이 순례자가 될 때 안전 빵이 된다. 나그네로 살 때 전 세계를 캠프 할 수 있다. 전도캠프 훈련 시스템 속에 있게 되면 전 세계를 정복하고 누리는 응답을 받게 된다.
막3:13~15,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셔서 부르셨고,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함이요,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빛의 비전은, 재앙시대를 보고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는 권능을 부지런히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의 재앙시대를 들여다보면서 정말 공중권세 잡은 사탄이 정치 지도자들을 장악하여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하게 만들고, 올바른 판단력을 내리지 못하도록 착각하게 만드는 사탄의 전략을 알았다면, 이제는 정말 영적싸움을 해줘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절대 언약으로만 가능하다 마10:1,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정말 맛보고 싶다면 귀신을 내어 쫓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삼상16: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우리 자신의 진짜 신분과 권세를 알면 어마어마한 악신이 우리 곁에서 무너지는 것이다. 흑암 이기는 권세를 사용했더니 사울왕에게 붙었던 악신이 도망갔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사람이 지저분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찌질해지고 쫀쫀해지고 쟁쟁거린다. 나이가 먹을수록 익어가야 하는데 늙고 추해진다. 우리교회 정말 멋진 장로님들은 돈을 정말 잘 쓴다. 쫀쫀하지 말고 지갑을 잘 여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자가 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담임목사가 심부름을 시키면 그것을 깔끔하게 끝내는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이다. 목사의 가치를 안다면, 나의 목자의 말씀에 따라 어디에 헌신을 해야 하는지를 알 때 축복에 대한 기대감도 오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사랑하는 담임목사에게 헌신했을 때 그 가문을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시는지를 나는 내 눈으로 보았다. 늘 뒤에서 욕만 하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은 그냥 가만히 내버려둔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103:20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절대 불가능의 언약을 가진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가능을 보면 천군 천사가 움직인다. 시편 104편 교독문에 다윗은 모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위엄, 하나님의 역사를 느꼈다.
*위드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 원네스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스템을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응답을 누리는 자에게는 영원한 작품이 시작된다.
어려운 상황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소유하면, 문제 앞에서 오히려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자가 된다. 이삭이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 낙심, 절망이라는 문제 속에 오히려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었고, 요셉은 문제를 통해 신에 감동 된 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재앙을 막아버렸다. 하나님의 언약으로 우리가 유턴할 때 여호와의 신이 우리를 감동케 하신다. 요셉이 어린 나이에 애굽을 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나라는 씨가 다 말라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큰 기근이 들어 정착할 수 없고 다 죽게 되었을 때 총리가 된 요셉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의 눈에는 절대 불가능한 거처럼 보였지만, 창3:15을 가진 요셉을 통해 재앙의 시대를 막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우리는 재앙을 막는 비전을 가진 자들이다. 그냥 밥 세끼 먹기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그냥 있지 말고, 그리스도의 망대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여정 속에 있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이정표가 있음을 믿고 그 나라 면류관을 기대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없어지는 재앙의 시대에, 우리 때문에 예수사랑교회라도 남게 되는 것이다.
이삭은 어릴 때 문제 앞에서 재앙 막는 비전을 보았다. 그래서 그 가슴 속에는 ‘아, 내가 그냥 사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망대로 살아야 하는구나’ 창3:15의 절대 망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자신 안에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야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숫양의 번제를 드릴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도 알았다. 이것이 자신의 이정표, 구원의 방주를 세우는 것이 여정이라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의 망대를 세워야 불신자를 이긴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창22:7 생각이 난 것이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하신다. 그분의 일을 다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창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이삭을 결박하는데 그는 침묵했고, 아브라함이 칼을 잡았을 때도 침묵했다. “너는 여호와가 하실 것을 친히 믿어라” 이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런 이삭의 신앙을 회복하는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창22:11~13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모든 것을 준비해주셨고, 르호봇의 경제까지 준비해주셨다. 지금 우리가 너무 배은망덕 상태로 야금야금 우리 것이 빼앗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를 체질화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를 체질화시키기 위해서 빼앗기도 하시고 털리게도 하시고 손해 보게도 하시지만, 그렇지 않다. 창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3:15을 가진 사람이 뱀 대가를 깨드리지 않으면 용서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당하는 것이다. 사탄에게는 용서가 없다. 사람에게만 용서가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사탄을 절대 용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만 용서를 하시는데, 우리가 창3:15을 적용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오는 세대와 가는 세대에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 창3:15은 성삼위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삼위 하나님, 트리니티,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을 살지 않으면 용서 받지 못할 사람이 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마12:31~32을 직접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직접 내려주신 결론이다. 이것을 오늘날 한국교회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성이 더럽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주술사가 되고 무속인이 되고 점쟁이한테 가서 점을 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잔머리로 사는 것이 주술, 귀신들림이다. 성령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헤매면 안 된다. 요1:12을 영접하면 누구나 성령을 받게 된다. 고전3:16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는데 왜 육신적으로 그렇게 지저분하게 사는가, 왜 어린 아이와 같이 삐지고 쟁쟁거리는 수준으로 사는가? 요14:16~17, 진리의 성령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가지고 그리스도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시며, 보혜사 성령이 함께 하시는데도 왜 기도하지 않는가? 렘29:11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하나님인지 명확하게 알라고 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현실에 주저 앉아버리고 원망 불평하는 인생은 지저분한 불신앙, 불순종, 더러운 귀신이다. 반드시 이것을 내버려야 살게 된다.
이삭은 아비멜렉의 책망을 온유함으로 승리했다. 아비멜렉의 가문은 변화와 거듭남이 없었다. 창21: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의 아버지와 그 나라의 장군이 엄청난 메시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녀와 가문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그러면 바꿔야 하지 않은가? 창3:15 성삼위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 절대 불가능이 절대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복음으로 자신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다툼과 경쟁으로 사는 것이다.
창26: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시비 거는 대적자로 산다. 아비멜렉 가문은 시비나 걸고 대적하는 민족이었다. 자기 성질대로 살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사람으로 산다. 시비 걸고 다투고 내 마음대로 하는 삶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르호봇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경제가 따로 있다. 시비 걸고 대적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지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 불가능의 언약이 내 몸에 성취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구나. 하나님이 땅 끝까지 우리에게 장소를 넓히라고 하셨으니, 양보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큰 땅을 주신다’ 그래서 오늘 우리부터 무엇이든 양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10원을 훔치면 그냥 양보하고, 그러다가 200원 건졌는데 그것도 시비 걸고 빼앗아가면 내버려 둬야 한다. 그러면 어느 날 큰돈이 들어온다. 잔돈푼 챙기려다가 사람이 이상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마5:5을 기억해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언약, 그리스도 안에서 길들여지는 자는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시37: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하나님의 응답을 맛보면 이렇게 된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에게 무엇이든 맡기고 무엇이든 주신다. 우리 몸에 시비와 방해가 사라지기를 축복한다.
우리는 르호봇의 경제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실 응답이 따로 있기 때문에 원수를 갚을 필요도 없고 같이 싸울 필요도 없다. 롬12:18~21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면 된다. 시비 걸고 다투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라는 것을 알아도 먹이고 마시게 해라. 그러면 그 머리에 숯불을 쌓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하면, 곧 하나님의 시간표가 온다. 정신 차리고 창대하고 왕성한 축복을 갖는 자가 되길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속이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르호봇 경제가 약속되어있음을 실감하고 이제부터 감사하며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마시우고 먹일 수 있는 은혜를 넉넉히 전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어려운 상황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미래, 절대 불가능의 언약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그 비전을 품었을 때 절대 가능의 언약으로 바뀌는 축복을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주셨사오니, 언약 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여주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인을 보는 영안을 우리들에게 열어주셨사오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오늘 현재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지혜를 보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가는 인생 여정 속에 갈보리 산의 언약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시며, 하나님의 아들의 번제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재앙의 시대 속에 재앙을 막는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를 불러 주셨사오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빛의 경제가 창대하고 왕성한 축복으로 바뀌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237 나라, 5천 미종족 살리는 샘의 근원이 이 시대에 우리들을 위하여 성취시켜 주셨사오니, 이제는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반드시 옛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방주를 만들어 구원의 축복을 이루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사오니,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경제, 르호봇의 축복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임마누엘의 응답을 누리는 믿음의 전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옛 사람의 체질에 묶인 채 내 힘으로 언약을 성취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사람이었던 내가, 구원과 기도, 선교의 작품을 남길 수 있도록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어려운 상황을 압도하는 비밀을 가지고 승리했던 이삭과 같이, 내게 온 문제는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라는 하나님의 사인인 것을 깨닫고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 기도를 지속하여, 하나님의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질 것을 믿는 믿음 속에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제는 영적전쟁에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 하나에 집중하여 다툼과 시비를 버리고 어떤 상황에도 평화와 사랑의 감정, 온유함으로 승리하게 하시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 이생의 자랑으로 찾아오는 더러운 점술과 귀신을 내어 쫓고 뱀 머리를 깨뜨려, 재앙의 시대 속에 빛의 비전을 품고 나를 위해 준비된 르호봇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