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자녀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창/创 20:8-18)
오늘날 전 세계가 교회를 탈출하는 시대에,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세상을 탈출하고 교회로 모였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 영혼에 그리스도의 영 하나가 없으면 모든 사람들은 세상의 넓은 길이 멸망의 길인지도 모르고 그 길을 향해 간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은 넓은 길이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길과 진리, 생명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문으로 출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축복의 길을 상실한 채 멸망의 길을 향해 간다. 인간이 고통을 받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선진국들은 마약과 정신문제로 심각해져있다. 신사의 나라, 미국 같은 강대국에서 나이가 80세가 넘은 노인들이 서로 헐뜯고 싸우는 것을 본다.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고 묻지마 총기난사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미국 뿐 아니라 선진국의 국민들은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창3장 사건 이후 태어난 남자의 씨는 하나같이 행10:38 마귀에게 눌려서 당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지구 상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마귀에게 붙잡혀서 마귀의 영향권 속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부자는 부자대로 고통을 당하고,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대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국가들이 빈부격차로 균형이 깨지면서 서로 대립관계 속에 있다. 그래서 인생 여정의 만남은 모두 원수가 되어버린다. 그 뿐 아니라 요8:44 무시무시한 사탄의 욕망에 따라 심부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살인의 광기로 춤을 추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일심, 전심, 지속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잘했던 아브라함은 사건, 사고가 오히려 축복이 되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의 자녀로 누리면 누리는 만큼 응답을 받는다. 모든 사람은 사탄에 심부름을 하면서 사탄의 영향권 속에서 노예로 살며 돌에 빌고 짐승을 숭배하고 온갖 귀신들린 자의 영향권 속에서 시달리고 사는데,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에게 하나님의 절대 언약 속에 절대 여정을 가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모든 문제 끝, 어떤 문제도 괜찮다.
하나님이 아비멜렉을 얼마나 시달리게 하셨던지, 아비멜렉을 통해 은 천개를 사라에게 주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가 소유하고 있던 양과 소, 모든 가축의 일부까지 아브라함에게 줬다. 실수는 아브라함이 하고, 벌은 아비멜렉이 받았다. 복음을 가진 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착한 척하지 말고 복음을 잡아야 한다. 교회 안에서 착한 척하면서 뒤통수 치고 남의 흉보고 이간하지 말고 복음을 가져야 한다. 복음을 가지면 어떤 문제든지 살아계신 하나님이 싸워주시고 응답하시고 역사하시고 은혜를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에게 초청을 받은 자들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더 이상 사탄에게 당하지 말고 예수그리스도에게 내려놔라. 복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자기가 무거운 짐을 자기가 해결해보려다가 더 이상해진다. 복음을 가진 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길이요, 진리, 생명되신 그분에게 맡겨놓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범죄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복음 속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수의 현장 속에, 사탄에게 얻어맞은 현장 속에, 수치와 부끄러움, 두려움의 현장 속에서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권능과 능력을 주셨다. 우리가 범죄 현장에서 노출되면 노출되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커진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이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서 답을 찾지 못해 세상으로 탈출하는 것이다. 윤리와 도덕으로 마귀의 일을 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귀는 우리를 범죄의 현장에 끌어다가 개죽음 당하게 만들고 수치와 부끄러움,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어 늘 숨게 만든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게 당한 이후 하나님을 떠나 숨어버렸다. 그런데 범죄 현장에 숨은 아담을 하나님이 부르셔서 교회 안에 끌어당기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교회의 도피성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오히려 울타리를 쳐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지 않는 자들이 교회에 너무 많이 들어와 있다.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착한 척 하며 한다. 변화도 없고 거듭남도 없이 윤리와 도덕으로, 예리한 칼날 같은 눈동자로 사람을 찌르면서 쳐다보고, 뒤에서는 수군거리고 온갖 이간의 말을 하고 물어뜯고 당파를 짓는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녀도 끊임없는 갈등 속에 시험이 들어있고 아무런 기쁨도 없이 냉랭한 상태에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에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은 아예 잃어버리고 사랑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은혜가 있는 자만이 사랑할 수 있다.
범죄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 창3:15 그리스도가 나는 필요합니다” 는 것을 느낀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 불신자 아비멜렉이 얼마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깨끗했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아비멜렉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실수하는 사람, 아브라함과 사라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늘 희망을 가져야 한다. 바리새인처럼 실 수 한 번 안하고 살겠다고 하는 자들의 실제 믿음은 창3:15이 아니라 그냥 막연한 하나님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범죄의 현장에서 창3:15, 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래서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한 구절 속에 우리가 무릎 꿇을 수 있고 여기에 감격이 있고 은혜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부른 사람이다.
세상의 기준, 표준을 가지고 살았던 아비멜렉은 언약의 사람 아브라함의 가족에게 재산을 바쳐야 하고, 오히려 무릎을 꿇고 아브라함이 믿는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시작되었다.
창20:10~11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자신을 깔끔하게 폭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아브라함, 당신이 도대체 뭡니까? 왜 내 나라, 내 백성들이 다 죄를 범하게 만들어 멸망시키려고 합니까? 나를 큰 죄의 구덩이에 빠지게 만들려고 했던 당신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아비멜렉이 이렇게 묻자 아브라함이 “내가 살고자 그랬다” 말했다. 아브라함에게 세상이 두려움으로 느껴진 것이다. 장막에 거하고 기도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기도의 줄을 놓치고 영적 전쟁을 잃어버렸더니 세상이 두려워진 것이다. 그래서 아비멜렉에게 자기 몸 하나 살아보고자 그런 행동을 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현장에서 언제나 솔직하면 남이 쌓은 재산까지도 하나님이 물꼬를 틀어서 열어 주신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도 복음이 들어간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합리화를 한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여기에서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내가 살고자 그랬다’는 자기 신앙고백을 할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 때부터 크게 은혜를 주셨다. 시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자기를 성찰한 아브라함과 다윗은 큰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창3:15 기도 속에서 모든 문이 열린다.
창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자기 하나 살고자 한 신앙이 무너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바꿨다. 아비멜렉과 그의 부인이 병들고, 아비멜렉 종들의 태문이 닫혀버렸다. 그래서 그 지역에 애를 낳지 못해 비명 소리가 들리니까 아비멜렉이 두려움에 떨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고통하는 그 시간에 아브라함 한 사람이 창3:15, 그리스도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전부 치료하시고 출산의 허락하셨다. 고통의 소리가 아이의 울음소리로 바뀐 것이다. 한 사람의 기도가 이렇게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열린다. 출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창3:15 기도의 은혜가 약화 될 때 사탄은 기다린다. 사탄은 우리가 기도의 줄을 놓는지 안 놓는지 이것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 인생 여정이 기도로 가지 못하면 사탄의 전략에 늘 걸려들게 된다. 시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언제나 아침에 정시기도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 나와 함께하신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이 되신다. “빛이 있으라” 하신 그분이 하늘 보좌에도 계시고, 내 몸에도 계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보좌에서 ‘하나님이여, 나의 백성의 소리를 들으소서’ 하시고 응답하신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기도 속에 있는 사람은 늘 부족함이 없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약화 되면 사탄은 여지없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해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연결하지 않으면 세상의 생각이 들어가는 것이다. 세상의 말이 들어가고 세상의 것을 보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을 마귀가 지배하기 때문에 결국 불신앙과 갈등뿐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노력으로 자신도 통제해보려고 나름대로 발버둥을 쳤는데 불가능이 있었다. 기도의 줄을 놓치고 현장에 들어가서 사람을 보니까 모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는 것을 보게 되고, 그래서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자기 부인을 향해 “그 여자 참 아름답소, 누구요?” 하는 말에 “내 누이요” 이 한마디 말만 했는데, 말을 타고 갔던 이 사람이 아비멜렉에게 돈을 좀 받아 볼까하고 아부를 한 것이다. 이것이 세상이다. 지구상에 예쁜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진선미가 되는가? 사람들이 끄집어내서 진선미를 시켜놓고 자기들의 동기와 유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이 세상이다. 정말 더럽고 가증스럽고 욕망과 거짓, 비진리로 진리도 없이 사는 게 세상이다. 이런 멸망의 세상을 왜 따라가고 싶어 하는가? 이런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는 비밀은 “길이죠,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그리스도” 그분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창3:15 전도와 구원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세상적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리는 전도,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구원의 감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삼위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신다. 나에게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그 말씀을 그리스도로, 기도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기도를 통해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면 절대 기도를 놓쳐서는 안된다. 성삼위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정말 알면 기도의 줄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이상한 종교인들이 기도를 할 줄 몰라 목사님들한테 기도나 받으려고 돌아다닌다. 그러니까 사이비 이상한 목사들이 “내가 여러분을 위해 회개합니다” 해서 이상한 말을 방언이라고 하며 귀신들리게 하고 뒤로 넘어지게 하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몰라 이렇게 살았던 과거와 지금 하고는 완전 다르다. 내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머릿속은 온통 나쁜 생각으로 가득하고 이간하고 더러운 일 뿐이었지만 아닌척하며 이런 사람들과 섞여서 같이 엉엉 울었다. 지금은 ‘내 안에 더러운 저주의 영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떠나가라!’ 하고 깔끔하게 끝내버린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이렇게 된다. 강권적인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보호와 약속, 사랑과 은혜가 있는 것이다. 우리 몸에 와 있는 원죄의 힘, 사탄에게 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사탄에게 당하지 않도록 마12:28~29 적용하는 만큼 은혜가 임한다. 끊임없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지 못하도록 약화 시키는 것이 사탄이 하는 짓이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더러운 것을 내어쫓는 것, 강한 자를 결박해야 한다. 세상에서 담대하라 세상을 이긴 자가 너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하신 이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요8:44은 딱 하나, 창3:15 진리를 따르지 않게 한다. 요8:44 오직 그리스도, 유일성, 재창조를 못 하게 한다. 그리스도를 각인, 뿌리, 체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탄이 하는 짓이다. 결국,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게 만든다. 진리에 서지 못하고 그리스도가 내 몸에 있지 않으니까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메시지로 나와야 하는데 자꾸 착한 척하는 내 말, 나를 속이는 내 말 뿐이다. “언니도 알다시피 난 착하잖아. 그치? 응?” 그러다가 아주 작은 일 하나만 당하고 조금만 섭섭하게 해도 긴 칼을 들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온다. 너부터 죽고 나 죽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자유함이 없다.
아브라함은 사건을 저지르고 자유함이 왔고, 실수하고 자유함이 왔다. 그것이 은혜다. 우리가 자꾸 실수하고 노출되고 주저앉아 있는 어려운 일들을 당하면서 하나를 깨닫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그러면서 마음이 커지고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고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나를 옮겨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너희 아비 마귀, 살인자, 거짓의 아비, 나를 멸망케 하는 더러운 것을 정말 제거할 수밖에 없는 이 힘이 강력해진다. 내 안에서 말하는 이놈은 거짓말쟁이다. 진리가 아닌 거짓 속에서 늘 살게 한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지금 받게 되었다. 진리가 아닌 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삼중직을 가지고 3저주를 풀어내는 것이다. 언제나 길과 진리, 생명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하나님을 만난 자가 되면 어떤 문제나 사건을 당해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하고 넘어가게된다. 그런데 울면서 “내가 착하게 살려고 했는데 언니한테 실망을 줘서 미안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귀신들린 것이다. 울 필요도 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하고 끝내야 한다. 그런데 교회다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교인들을 향해 ‘가식쟁이’ 라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언제나 하나님이 주신 것을 멋있고 당당하게 누리면 된다. 늘 숨기고 숨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실수를 해도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오직 우리가 붙잡을 것은 복음 뿐이다. 롬3:10, 롬3:23, 롬6: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복음 속에 살아야 사는 것이 은혜가 된다.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안개보다 못한 것이 인생인데, 왜 그렇게 자유함이 없이 사는가? 사탄의 수준은 언제나 뱀을 이용해서 속이는 것뿐이다. 사탄이 자꾸 속이기 때문에 우리가 속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속지 말고 자유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제는 자유하라고 하셨다. 지옥권세까지 모두 담당해주셨는데 자유가 없으면 되겠는가? 교회 성도들이 자꾸 사탄에 속는 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후대들은 굉장한 고통과 괴로움, 좌절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자유함이 오면 자녀들이 어떤 일을 저질러도 ‘괜찮아’ 라고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아, 하나님이 우리 자녀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그래서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를 체험한 아이들은 나중에 굉장히 멋있어진다. 이런 것을 못 느끼고 대통령이 되면 다른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 수준으로, 빈대보다 더 좁은 속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이 되면 굉장히 넓은 마음과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보면 오히려 자기의 위상을 높여줄 기회를 창출시켜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 사람의 말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래전에 어떤 집사님이 “그만해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길래, “나도 죽겠어서 한다!”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데 이런 것 하나를 하지 못하고 전부 속이는 마귀에게 걸려들어 속는 자가 되고 마음이 너무나 작아져 있다. 사탄의 기준은 우리를 악령충만하게 만들어서 사람을 파괴 시킨다. 이것이 네피림이다.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영적인 힘으로 응답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일이든지, 어떤 장소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자꾸 불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적인 역사다. 그때 뱀 머리가 깨지고 출애굽을 하게 되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게 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절대 복이 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고 선을 베푸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징계한 것이 아니라 아비멜렉을 징계하셨다. 실수를 저질러도 “예수는 그리스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 이름을 고백하면 실수의 발걸음에서 하나님이 돌이켜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신다. 그래서 약속의 자녀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사건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창3:15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를 축복하신다.
아비멜렉은 징계를 당하고 아브라함은 재산을 늘렸다. 세상적인 기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불신자들은 ‘와, 창조주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사기꾼이야?’ 할 수도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셔서 지금도 소리 없이 해와 달을 정확하게 뜨고 지게 하시는 분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엄청난 혜택을 받으면서도 그 하나님을 찬미하지도 않고 그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실수를 하고도 그 이름을 부르는 아브라함이 훨씬 나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3장의 두려움을 제거하라고 그리스도 예수를 생명으로 주셨다.
아브라함은 이미 자기 몸에 와 있는 원죄로 인해 자기 부인의 아름다움이 자꾸 신경이 쓰였고, 자기를 누군가 죽일 것 같은 두려움에 잡혀있었다. 그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면서도 자기 부인에게, 자기가 어려움에 당할 것 같으니 약속하자고 한 것이다. 자기 말로 하기 부끄러우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고 하나님을 앞세웠다. 그랬더니 사라는 아브라함의 자존심을 건들 필요도 없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했으니 그냥 아브라함의 말에 ‘아멘’했다. 그런데 이것이 대역사를 이룬 것이다. 집 떠나 토지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들이 두 번의 실수로 거부가 되었다. 창20: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이 말에 사라가 아멘했다. 사모님은 늘 나에게 아멘을 잘했다. 그래서 생명도 연장되고, 박사학위도 받고, 이제는 전 세계 237 나라에 디아스포라 미라클 오케이 어학당을 통해 1천 망대를 세우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부인들이 남편 말에 ‘아멘’ 만 잘해도 그냥 다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남편들은 부인에게 함부로 하면 안된다. 아내를 교회처럼 사랑하라고 했다.
아브라함에게 지긋지긋하게 따라왔던 두려움과 시달림의 문제를 뒤집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두려움을 해결한 것이 아니다.
엡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이렇게 가야 한다. 엡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지금 교회를 탈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오직’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오직’으로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 사람의 영적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정신의 문제 해결도 불가능하고, 뇌는 하나님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예수사랑교회는 이제 오히려 더 부흥되고 전 세계에서 제자들이 일어나고 있다.
엡4:19~20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고 이 신분 권세를 받아 누리면 우리 마음이 굳어지거나 방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감격이 되어 날마다 새로워진다.
엡4:21~22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언제든지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하고 그리스도로 충만하겠다는 그리스도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갖겠다고 결단하는 것이다.
엡4:23~24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 밖에 없다.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하는 두려움, 영적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제는 자신의 변명 따위, 나약함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이 고백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24시간을 살면 25시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가 있다. 그러면 그리스도 이름 하나로 영원한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과 함께 시작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멋있는 사람이 된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셨기 때문에 세상을 이기게 된다. 아브라함은 실수 속에서 이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간음한 여인은 실수하고 간음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노출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 두려워서 숨지 말고 예수사랑교회 나와야 한다. 예수사랑교회를 와야 살게된다. 오늘날 너무 많은 목사님들이 거룩한 척을 하고 산다. 영적싸움을 하지 않는 목사님들은 지옥목회를 할 뿐이다.
남을 속여 재산을 빼앗아가는 아브라함을 향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대변해주셨다. “그는 나의 선지자라” “앞으로 아브라함이 하는 말을 통해 길이요 진리, 생명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셨다. 아브라함이 믿는 창3:15의 하나님은 길, 진리, 생명되시고, 아브라함이 믿는 의에 하나님이 바로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다. 그래서 창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수치심이 많고 부끄러움을 당해 굴속에 숨어야 할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선지지라” 하셨다. “내가 실수하게 했다. 내가 그렇게 인도한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너를 오늘 밤에 데려가겠다” 이 말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실수를 해도 엄청 당당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지자로 부르셨다. 우리가 당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높여주신다. 우리의 약점 때문에 부끄러워 해서는 안된다. 용서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나를 용서하셨다는 그 확신 앞에 당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바로 십자가다. 이 세상에서 수치와 부끄러움 때문에 숨지 말라고 우리 예수님이 뺨을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옷까지 벗겨지셨다. 심지어 하나님의 옷을 벗겨 심지를 뽑아 자기들끼리 제비 뽑기로 나눠가졌고 하체까지 벗음을 당했다. 이런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시면서까지 나에게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담대해라. 당당해라” 하신 것이다. “그는 나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너를 위해 기도할 때 모든 저주를 끊어줄 것이다”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가족과 가문, 자녀, 국가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이렇게 엄청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 앞에서도 겸손함은 당연한 것이지만, 절대 기죽으면 안 된다. 아브라함 때문에 아비멜렉이 응답을 받았다. 그의 아내도 응답을 받고 그의 종들까지도 응답을 받았다. 부름받은 믿음의 조상, 믿음의 모델로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하는데 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자꾸 연약해져 가는가? 그리스도인들이 나약함과 두려움 속에 기어들고 세상으로 숨어 들어가는가? 탈 교회 시대 속에 당당해가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하고 “내가 당신을 위해 기도할 때 모든 저주가 끊어진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했다면 절대 기죽지 마라. 싸우지 않으면 반복적인 죄를 짓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불신앙과 싸워야 한다. ‘기도하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장악하여 끊임없이 세상 풍습을 좇게 만드는 더럽고 추악한 모든 흑암 권세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성령충만을 받을지어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모든 저주와 재앙은 끊어질지어다!’ 이것을 계속해야 반복적인 실패와 실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탄은 계획적으로 우리에게 불신앙을 심지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발견해야 한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그리스도 속에, 기도 속에 있으면 문제 될 일이 없다. 롬8:16~17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 이 땅에서도 상속자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비행기 값 아깝다고 하지 말고 대출을 받아서라도 전도캠프를 가야 한다. 예배를 마치고 교보 문고 가서 커피도 마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 빌딩을 지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하면 죽을때까지도 하지 못한다. 우리는 상속자로 사는 것이다.
우리교회 성도님이 이번에 ‘복음 파워’ 책을 사서 다른 사람도 주라는 말씀을 실천하려고 책을 사서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는데, 직원이 너무 친절하고 상냥하고 예뻐서 자기가 산 책을 한 권 줬더니 자기 근무한 역사에 이런 고객을 처음 만나봤다고 너무 감동 받는 모습을 보고 자기가 더 감동 받았다는 얘기를 했다. ‘복음 파워’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복음 파워가 사람 속에 들어가야 인간의 근본문제, 저주와 재앙, 멸망의 길, 운명 사주 팔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교회 장로님은 그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자신이 책 한 권을 계산해서 그 청년에게 줬는데 너무 시달리는 얼굴이었다고, 그 책을 읽고 교회를 올 것만 같다고 감격했다. 이제, 그만 나로 살고 나를 넘어 교회를 넘어 세계복음화 237 디아스포라, 5천 미종족을 향해 멋있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전도와 구원을 아는 자가 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우리는 이미 하늘의 상속자, 땅에도 상속자, 영원한 상속자이기 때문에 롬8:28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진행해도 하나님이 합력하여 언제나 선을 이뤄주신다. 우리를 괴롭힌 사람을 징계하시고, 재산을 가질 수 있도록 선을 베풀어주신다. 우물가 여인이 노출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다. “지금 네 남편을 데려와라” 했지만, 지금 있는 남편도 자기 남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물가 여인은 영원한 신랑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숨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은 우리에게 자꾸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준다. 그래서 여자들은 자기 배만 좀 나와도 온갖 상품을 먹는다. 뱃살을 빼는 방법은 간단하다. 복음을 들고 산을 넘으면 된다. 집에서만 있지 말고 교보문고 서점도 가고, 전국 서점을 다니면 된다. 그래서 내가 산 책을 지역마다 하나씩 주면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고 입맛도 돌아온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끊임없이 수치심을 만들어 조롱하고 정신문제에 시달리게 만들고 자살하게 한다. 아브라함의 거짓말은 세속을 뚫고 나가는 영적전쟁이었다. 하나님 앞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축복을 아브라함이 받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습관적 실패 앞에 깨닫게 하셨다. 정시기도 없는 삶은 실패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정시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와 있는 응답을 진짜 알게 된다. 하나님은 드러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타협점을 찾으려고 하는 불신앙을 꺾어야 한다.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어떤 일을 당해도 놀라지 마라, 나는 네가 믿는 창3:15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반드시 굳세게 세워줄 것이고, 너를 도와줄 것이다.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서 불신앙 하는 자들의 것을 빼앗아다가 너에게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멸망에서 벗어나는 길, 전도와 구원을 정말 알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 무한한 축복을 받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창20: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생각을 기도로 연결했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었을텐데 기도를 놓쳐버렸다. 두려운 순간에도 “예수는 그리스도” 해야 한다. ‘내 심장에 두려움을 심어 나를 떨게 만들고 나를 끊임없이 타협하게 만드는 모든 불신앙의 저주는 권세있는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이것을 아브라함이 놓치고, 여기는 악한 자들만 있다고 헛소리 하는 바람에 사탄에게 당했다. 피해의식으로 살면 안된다. 우리는 언제나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는 현장마다 동역자, 식주인, 사랑받은 자, 친척과 같은 자, 제자를 세워놓으셨다. 이렇게 멋진 아비멜렉 같은 사람을 진짜 제자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아브라함이 기도를 놓쳐서 아비멜렉은 평생 상처와 섭섭함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아마 평생 병든 부인 앞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소유한 한 사람이 이렇게 불신앙하면 모든 사람에게까지 나쁜 영향이 간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세상적 방법으로 살게하는 사탄의 권세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으면 살게 된다. 위험이 찾아오고,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이 찾아오고, 사람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사랑을 받고 싶어할 때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고 꺾어야 한다. 그래서 롬5:20의 응답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두려움이 엄습하고 성공이 엄습해오고 수많은 사랑을 받길 원하고 끊임없이 집착하고 싶을 때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힘차게 불러라. 그러면 약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이런 축복 속에 승리하는 삶이 시작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제는 알았사오니, 영적 전쟁 속에서 습관적 실패를 그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사오니, 기도 속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 속에서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살려내는 축복이 있게 하여 주옵시고, 기도 속에서 사탄의 심부름을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영적인 역사로 이제는 응답받기를 원하는 주의 백성들이 오늘 예배를 드리오니 묶인 것들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풀어지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시고, 막힌 문들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뚫리는 역사가 시작되게 하옵시고, 멈췄던 일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작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약속의 자녀들을 끝까지 보호하시는 그 하나님의 선을 이제는 알았사오니,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 속에 하나님 영광 영광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모든 사람이 마귀에 눌려 귀신들린 자의 영향권 속에 살면서 믿는 척, 착한 척하며 자신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수치와 두려움으로 온갖 우상을 섬기는 이 시대,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절대 언약의 여정을 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약속의 자녀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아, 세상의 생각을 그리스도로 깨뜨리는 전도와 구원의 감격을 날마다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이 부르신 이 시대의 선지자로, 상속자로서 오직 복음만을 붙잡아, 계획적으로 불신앙을 불어 넣는 마귀의 전략에 속지 않고, 문제와 실수 앞에서도 참 자유를 누리며 당당하게 하옵소서. 한 주간, 강한 자를 결박하고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는 정시기도에 집중하고 지속하여, 실수를 은혜로 바꾸시는 성삼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고 반복적 실패에서 빠져나와, 나와 교회를 넘어 세계복음화에 쓰임 받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