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문화가 낳은 결과 : 이스라엘 민족의 평생 걸림돌"
(창/创 19:23-38)
이번 합숙 훈련이 우리 인생 여정이 우리 인생 여정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조카 롯의 가정은 복음의 훈련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가장 더럽고 추한 짓을 저지르게 되었고, 그의 가문은 저주를 남기는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되었다. 교회의 훈련 속에 영적인 상태가 해결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되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고 예배는 드린다고 하면서도 어설프게 예배당 뜰만 밟을 뿐, 아무 느낌 없이 사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생각이 틀리고 몸의 상태가 이상해져 결국은 저주와 재앙을 만드는 삶으로 전락한다. 하나님은 절대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받지 않으면 우리 삶의 여정에 재앙을 만들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의 상태로 인해 다른 사람들까지도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 사탄의 머리를 깨뜨려라”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첫 번째 복음이다.
사탄이 뱀을 이용하여 첫 사람 아담에게 틀린 생각을 집어넣었고, 그 사탄의 말에 속아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죄의 권세, 사탄의 권세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저주가 된다. 그것이 바로 창3장 사건이다. 창1:2, 이 땅에는 혼돈과 공허, 흑암이 존재한다고 이미 말씀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지으셨고, 사람에게는 언제나 흑암을 밀어내는 생명의 빛이 있다. 창2:7,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Holy Spirit)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뱀 머리를 깨뜨리는 것, 흑암을 밀어내고 어둠을 밀어내는 빛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비참해졌다.
하나님은 인간을 기계적으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인간에 자유의지를 주시고 그 자유의지를 통해 밟느냐, 밟지 않느냐로 인생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었다. 흑암을 알고 빛으로 흑암을 밀어내는 사람,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사람은 점점 좋아지고 하나님이 주신 많은 열매를 얻게 된다. 그 자유의지를 가지고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반드시 그 결과는 나타난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이것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역사에 엄청난 저주의 조상을 남기는 자가 되었다. 자신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녀들까지 무너져버렸다.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지 않으면 인간은 가장 더럽고 추한 짓을 저지르게 된다. “너희가 원래는 세상의 빛이었는데, 흑암을 밀어내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고통 속에 행복도 없이 로마의 속국 된 상태가 되어 자녀들을 노예 신분으로 만들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그리스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사탄의 일을 멸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 이 복음의 능력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지저분하게 살면 안된다. 어떤 분에게 “정시기도 좀 하세요” 라고 했더니, “목사님, 저 정말 기도해요!” 했다. 그런데 내가 보면 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분이 하는 대화에서 알 수 있다. 늘 자기중심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정시기도를 통해서 나의 옛 자아를 깨뜨리면 내 주장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다리게 된다. 교회를 다니면서 시험 들고 갈등하고 문제가 있다고 주저앉아있는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락한 문화를 남길 수 밖에 없도록 내 몸을 장악한 더러운 생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복할지어다!’ 이 하나만 가지고 자신과 영적싸움을 해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느끼면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온통 남 핑계, 책임전가 하면서 자기는 의롭고 남은 전부 악질처럼 여기는 이런 상태로 살면 정신분열자가 된다. 이런 사람은 절대 그리스도를 체험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았기 때문에 몸에서 절대 사랑이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연스럽게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브라함의 기도로 롯이 살았고, 운명으로 묶였던 앉은뱅이를 업고 온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앉은뱅이도 해결 받을 수 있었다. 영혼을 사랑하면 중보기도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조금만 기도해줘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살아나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DNA는 끊임없이 차별을 두고 혐오감을 가진 이상한 상태로 사람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 속에 있는 DNA는 사람을 관망하고 남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뒤에서 흉보고 뒤통수 친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들을 향해 그들의 연약함을 보고 돕고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관망자로 살면서 바이러스를 옮기는 자라고 뒤집어씌워 고립되게 만들어 동성애자들이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갖게 만들어버렸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자도 살릴 수 있다. 우리는 집단주의, 이기주의 틀에서 정말 벗어나야 한다. 집단 이기주의자들은 타락한 종교문화를 만들어 물질을 우상숭배하게 만든다.
우리가 반드시 실천할 말씀, 해야 할 일이 빌2:5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을 얻는 축복을 우리가 받았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예수의 마음을 품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나쁜 결과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는 우리와 관계된 사람들을 두고 중보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왜 예수사랑교회는 창3:15, 마16:16에 집중하고 훈련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에 집중하지 않으면 누구도 예외없이 흔들리는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집중의 고백 속에 하나님은 “너는 이제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너는 이제 반석이다. 너는 베드로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집중훈련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 요일3:8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자요, 마귀에 속한 자”라고까지 메시지를 주셨다.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지 못하면 마음에 솟구치는 것은 범죄함밖에 없다. 그래서 온 신경을 그리스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많은 증거가 나타난다. ‘아, 나의 삶이 나와 상관없이 부요케 되고 있구나’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만큼 부요함이 온다. 그런 사람은 천하를 얻게 되고, 이 땅에서도 정복자가 될 뿐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도 정복자가 된다고 했다.
*사람이 왜 범죄하고 타락하는가? 하나님의 형상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창1:27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인간은 원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는 순간 범죄와 타락으로 가게된다. 사람 속에만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짐승보다 못한 쓰레기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아주 악한 짓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비밀을 누리지 못하면 사람 상태와 육신의 모든 생각은 음행뿐이다. 이 세상에 육신의 생각은 의로운 것이 없다. 윤리적, 도덕적인 기준은 만들어놨지만, 실제로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없다. 롯이 굴속에 들어갔을 때 윤리와 도덕도 사라져버렸다. 소알 땅을 스스로 선택해서 하나님이 그의 요구대로 보내줬더니 소알 땅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것 같아 두려워서 굴로 들어갔다. 흑암 속에 들어가면 사람이 이렇게 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타락이라고 하고, 하나님을 떠난 죄라고 한다.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인생 전체가 빗나가게 된다. 그래서 안전지대도 없을 뿐 아니라 예측불허의 시대 속에 재앙을 당하게 된다. 의롭고 착하고 정의롭게 살아보려고 하는 생각마저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맺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창3:15에 집중이 안되면, 다른 것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떤 남자는 여자를 죽일만큼 집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돈에 집착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떠나면 이런 무시무시한 집착에서 못 벗어난다. 집착이 점점 커지면 분열 상태가 온다. 살인의 분열, 자살의 분열, 정신질환의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분을 내 인생의 길, 진리, 생명으로 믿지 않으면 끊임없이 빗나가는 인생을 살게 된다. 분열을 막기 위해, 분열을 조절하기 위해 사람에게 결국 중독이 시작된다. 그래서 알콜중독, 도박중독, 게임중독, 각종 중독으로 간다. 자기 몸을 분열시키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결국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보고 싶어서 마약에까지 손을 댄다. 이런 숨은 문제 속에 괴로워하는 자들을 마약쟁이들이 기가 막히게 찾아와서 사람을 알아본다. 그렇게 마약을 시작하면 어디에 숨겨놨는지 다 찾아낸다. 그만큼 우리 몸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집착이 와 있다. 그래서 무엇인가 자신이 해야 한다는 생각,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다. 기도만 하면 된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인가 해내려고 하는 그 생각이 계속 자기를 끌고간다. 그러니 흑암에 완전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범죄해서 감옥을 가거나 사기를 당하는 인생이 된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늘 밥숟가락 드는 것도 그분이 함께해야만 가능하다. 구원의 확신 속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나의 것으로 믿어야 한다. 그러면 영적인 상태가 점점 바뀌고 재창조의 역사가 온 몸의 조직과 신경마다 살아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세포들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자가 된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인가 해보겠다는 생각에 잡히면 그 세포는 흑암으로 죽어가는 것이다.
2024년은 정말 정시기도를 회복해야 한다. 정시기도 때 합숙에 받은 메시지를 읽기만 해도 되고, 예수사랑교회 통역 제거 메시지를 집중해서 들으면 엄청난 치유가 일어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말씀부터 틀어놔야 한다. 그러면 화장을 해도 다르다. 근심, 두려움, 불안 이런 것이 사라지면서 피부에 탄력도 있어진다. 불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몸에 불신앙이 들어오면 립스틱 하나도 제대로 못바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소리를 듣지 않아도 이미 무의식과 잠결에서 알 수 없는 흑암이 똬리를 틀고 거울 앞에 나타나서 거울을 보는 순간 견딜 수 없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화장을 하든, 화장실을 가든 메시지를 틀어놓고 들어가면 영혼, 육신, 정신에 치료를 받는다.
내 영혼이 치유를 받아야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몸에 담겨지기 시작한다. 나는 눈을 감기 전에, 잠을 자기 전에 깊은 호흡을 많이 한다. 평상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몸에 담고 싶어 그 말씀을 끌어당겨 내 몸 깊은 곳에 안착시켜놓는 것이다. 그리고 호흡하면서 이 말씀이 내 삶과 내 몸, 내 현장에 성취되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내뱉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합숙을 할 때는 다리에 신경 자체가 가지 않았다. 병원에서 척추 사진을 찍으면 서 있는게 기적이라고 했다. 디스크가 깨져서 양쪽으로 물려서 신경을 다 누르고 있다. 일어서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호흡으로 끌어들여 척추 뒤편까지 붙여놓는다. 우리 장로님이 첫 번째 쓰러졌을 때 내가 신신당부했다. 어떤 것에도 스트레스 받지 말고 열심도 내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자기의 환경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일에 신경을 쓰시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 부인 권사님께 뇌를 빨리 회복시켜주라고 부탁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아날 수 있다. 창3:15 여자의 후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은 자도 살리고 중풍병자도 살리고, 모든 병자를 다 살리셨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그리스도, 그 말씀이 우리 영혼 속에 들어가고 우리 세포 속에 들어가면 모든 기능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이 말씀이 정말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어느 날 성령의 힘이 권능으로 나타난다. 행1:8을 가지고 마가다락방, 주의 제자들이 10일 동안 집중으로 자기 몸에 각인시켜놓고 집중했더니 오순절 날이 임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내가 40대에 친구들과 안경점을 간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어울리지도 않고 해서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 지금 내 친구들은 모두 안경을 쓴다. 나는 그 때부터 기도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제자들과 잠시 서점을 갔는데, 갑자기 눈이 잘 안보였다. 불신앙의 생각이 들었는데, 또 마침 안경점이 보였다. 그래서 안경점에서 검사를 하는데 0.8정도라고 해서 안경을 하나 맞춰왔다. 그래놓고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내 눈알에 성령,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넣었다. 그랬더니 맞춘 안경이 나와 맞지 않고 어지러워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 내 시력이 다시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성경 66권의 수많은 말씀을 주셨는가? 말씀이 들어가면 우리가 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것의 증거다. 요20:31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네 온몸에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신앙생활이 뭔지도 모르고 어설프게 살다가 죽은 사람에게는 잘 죽었다고 말한다. 육체는 사탄에게 내어주고 깔끔하게 구원 받고 죽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아프지도 말고 병 들지도 말고, 혹시 병이 들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거있는 증인이 되라” 사람을 살리라고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기 때문에 이 계획을 붙잡은 우리는 어디든지 가서 사람을 살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당겨 반드시 내 몸에 안착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말씀이 내 온몸에 들어가면 반드시 치유의 증거가 나타난다. 히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내 몸에 안착시켜놨던 사람들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셔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결산을 받으신다. 이 땅에 살아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는가에 대한 그 결산을 받으신다. 그리스도로 내 몸을 살려낸 것과 살려내지 않은 것, 정시기도를 한 것과 하지 않은 것, 사탄의 머리를 깨뜨린 것과 깨뜨리지 않은 것, 그리스도로 흑암을 밀어낸 것과 밀어내지 않은 것, 반드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 얼굴에 있는 더러운 찌꺼기를 쫓아내지 않으면 얼굴 자체가 찌질해지고 쫀쫀하고 징징거린다. 반드시 얼굴에서도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런데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기면 빌3:20,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 보좌의 축복을 가진 자라고 했다.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 능력의 망대를 가진 자라고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여정을 가는 자라고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 새로운 이정표를 가지고 세계복음화가 성취되는 그 길을 가게 된다. 이 사람들에게는 시공간 초월의 능력이 있고, 말씀을 이뤄가는 천군천사가 동원되고,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응답과 미래를 갖추게 된다.
행1:8로 내 몸을 바꾸는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살아난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 핏값을 지불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사시고, 우리에게 행1:8을 맡기셨는데, 우리의 몸이 행1:8로 바뀌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 정신을 차리라고 계속 말씀하시는 것이다.
*롯은 엄청난 재벌가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인생으로 전락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롯의 목적과 꿈은 오직 세상적 욕망이었다. 창13:5~16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이렇게 롯은 재벌이 되어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돔 땅으로 떠난 이유는 더 큰 재벌이 되고 싶어서였다. 소돔과 고모라에 엄청나게 기름진 땅을 본 것이다. 그의 목적은 오직 성공과 재산의 확장 뿐이었다. 엄청난 돈을 가지고 평안한 노후를 지내면서 많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낳은 두 딸을 권력 가진 집안에 결혼까지 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창13: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보면 그릇이 빈대같이 작은데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 늘 빈대같이 뛰는 인생 밖에 안된다. 그래서 남의 몸에 붙어서 긁고 또 다른 데로 뛴다. 그러다가 결국 약에 쏘이는 죽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런 수준으로 살고 있다. 자기의 찬란한 목표와 꿈을 이루며 살려고 했던 땅에서 해가 뜨기 전, 한 밤중에 도망가야 하는 운명을 만난다. 늘 문제가 따라다니기 때문에 도망을 다니든지, 탈출을 해야 하는 서글픈 인생을 사는 것이다.
사탄의 전략은 우리를 안일함 속에 빠져들게 만들어 깨어있지 못하게 만들고 그리스도께 고정을 시키지 못하게 한다. 창19: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롯은 심판의 경고를 천사의 경고로만 받았다. 그리스도께 집중을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삼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리스도에 집중하고 정시기도 하면 하나님이 움직여가신다. 모세가 ‘희생 제사를 지내야 되겠다’ 고 결단하는 정시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은 바로 왕과 애굽 사람 전체를 움직이셨다. 그런 하나님을 왜 거부하는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까지 너희를 사랑하고 너희를 위해 부활의 몸, 그리스도의 영으로 함께 할 것이라고 하신 그 하나님을 왜 모시지 않는가? 그리스도가 함께 하기를 거부한 롯의 운명의 굴레는 도망, 탈출 이었다.
창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하늘에서 염화 유황이 막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 한 발 짝만 더 앞으로 가면 맞지 않을텐데, 가는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것이다. 한 발씩만 걸어가도 맞을 일이 없었다. 멈추는 순간 쏟아지고 있는 염화 유황에 덮여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결국 아버지와 두 딸 사이에서 나온 후손들이 오늘날 요르단이다. 머뭇거리고 멈추면 무너진다. 절대 정시기도를 머뭇거리거나 멈추면 안된다.
아브라함은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이 기도와 중보기도를 아브라함은 멈추지 않았다. 창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기서 “여호와”는 창3:15 사단의 머리를 밟는 예수그리스도를 밟았다는 것이다. ‘내 몸속에 불신앙을 집어넣어 애굽 땅에 들어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불안과 염려, 좌절과 낙심, 절망으로 빠져 거짓말을 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하는 더럽고 악한 어둠의 세력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단을 쌓았다는 말은 바로 이렇게 영적싸움 했다는 것이다.
창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제단을 쌓아놓고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을 시작했다. 이렇게 인생에 멈춤이 없어야 한다.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18: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을 묵상하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신앙이었다. 행동을 했더니 성삼위 하나님을 보기도 하고, 원네스 하나님을 보기도 하고 묵상 속에 하나님의 계획도 알게되었다.
창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을 부르셨는가?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도, 창3;15 그리스도의 의와 공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적전쟁을 하지 않는 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관심도 없으면 롯과 같이 버려지게 된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분명 롯과는 다른 신앙이었다. 창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이것이 바로 창3:15,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이 공도다.
창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중보기도에는 이런 축복이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시고 롯을 살려주셨다.
창19:30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소알을 선택했으면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또 나와서 자기 마음대로 한다. 정시기도를 했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해주시는가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두 딸은 두고 나와도 되는데, 데리고 나왔다.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 나를 축복하셔서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롯이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 하나가 없다. 이렇게 배은망덕하고 싸가지 얺는 영들이 많다. 예배를 무시하는 것처럼 나쁜 것이 없다. 자신에게 찾아온 상황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버리는 롯의 신앙은 가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3:15 그리스도의 의, 공도, 영적전쟁하는 그 싸움의 비밀이 없으면 죄만 장성해진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가 점점 자라 왕노릇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영적싸움의 비밀을 모르면 저주가 되고 인류에 재앙을 갖다준다. 롯의 두 딸과 동침하여 낳은 자손이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라고 했다. 삼상11:1~11 이스라엘 백성들이 훗날 이 모압과 암몬 족속에 사로잡혀 조공을 바치게 된다. 이스라엘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다 빼앗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공을 바치기가 너무 힘이 드니 우리가 평화조약을 맺자 했더니, 그들이 오른쪽 눈을 다 뽑고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이스라엘이 선지자 사무엘의 말을 따르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모압과 암몬을 점령하게 되었다. 사무엘 당시 이스라엘에 엄청난 어려움과 위기, 환란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하나에 집중했고, 그 이후로 전쟁없이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민25장, 이스라엘의 선지자 발람을 통해 교묘하게 음행하는 일을 만들었던 자들, 이스라엘 병사 25000명이 죽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는 곳이 바로 요르단이다. 그리스도의 ‘오직’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모든 것에 잡히게된다. 이스라엘에게 오직 그리스도에 집중하라고 주셨는데 오늘날 이스라엘은 그 그리스도를 버리고 이상한 하나님을 믿고 있다. 종교지도자들이 종교의 하나님을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불기둥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신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결국 모압과 암몬 족속은 이렇게 버림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하나님이 선택한 한 사람이 있었다. 모압 땅의 룻이었고, 기생라합이었다. 아무리 버림을 받아도 그리스도만 붙잡으면 이렇게 하나님의 족보 속에 들어가게 하신다. 그래서 어떤 버림을 받은 사람이라도 희망과 소망이 있다. 하나님의 축복을 나의 것으로 붙잡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 하지 않았던 롯은 결국 두려움으로 인해 흑암 속으로 들어가 자기 딸들과 동침하는 비참한 인생이 되었다. 예배자로 살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기 위해 다른 계략을 짜고 있었다. 아버지와 동침한 이유가, 세상 방식대로 살고 싶었던 것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산을 모으고, 술과 섹스로 인생을 채우는 이상한 행동이 나타났다.
인간적인 모든 방법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죽고 우리의 세력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세력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버지와 동침해서 자식을 낳아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마냥 죽을 이유는 없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이것이 롯의 두 딸의 생각이었다. 마귀의 영향을 타면 인본주의가 사탄의 전략으로 가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새해부터는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해야 한다. 우리 인생 여정에 평생 걸림돌을 제거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예배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배를 무시하고 영적 싸움에 관심 없는 롯의 결과를 다시 한 번 우리들이 볼 수 있도록 영안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올바른 창세기 3장 15절 복음의 근원을 따라 구원의 확신 속에 우리의 영적 상태가 바뀔 수 있도록 재창조의 역사의 응답을 맛보기를 원하오니, 우리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복음 안에서 영원한 미래의 것을 준비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새로운 성령 충만으로 우리 몸에 각인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정시기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힘의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사오니, 그 능력을 우리들에게 허락해주셔서 세계 복음화의 꿈꾸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옵시고, 긍휼히 여겨 주시옵시고, 날마다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잊지 않고,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가지고 우리 몸에 이미 와있는 3저주를 풀어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19차 합숙 훈련을 통해서 주의 모든 백성들에게 무한한 응답을 더하여 주옵시고, 하늘에서 떨어진 세상 신 사탄 마귀 악령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그들의 머리를 깨뜨리는 증거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하도록 지음을 받았음에도 하나님을 떠나 범죄함 가운데 집착과 중독, 분열로 빗나간 인생으로 살다가 저주를 받아야 하는 삶에서 빠져나오도록 흑암을 밀어내는 생명의 빛, 예수그리스도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복음의 능력을 주셨기에,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타락한 문화를 남길 수밖에 없는 나 중심의 더러운 육신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지를 발견하여,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 속에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을 선택하고 인생에 분명한 열매를 맺는 자 되게 하옵소서. 상황만 보고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망각하고 예배를 무시하여 인간적 방법을 쓰는 가짜 신앙이 무너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몸과 영혼에 들어가면 반드시 모든 것이 회복되기에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정시기도와 중보기도를 절대 멈추지 않고 그리스도의 집중과 복음의 훈련 속에 있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