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을 가지고 오랫동안 성실과 진실을 다해 하나님을 섬긴 한 목사님이 어느 날 저주와 고통 속에서 한계에 부딪혀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자신의 신앙을 만회하고자 교회에서 신앙 좋다고 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부인의 신앙이 자신보다 더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영적 분별력과 판단력이 없는 자신의 상태를 더욱 비관하며 큰 좌절감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튼 결혼을 해서 살다보니 3명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성장 후 집을 나가 문제를 일으키고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그 분은 목사로서 살아왔지만 중요한 영적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바로 자신이 사탄의 문화 속에 살고 있다는 것과 자기 몸에 원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것이다. 그러는 중에 예수사랑교회의 메시지를 듣고는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창세기 3장 15절의 길을 몰라서 당한 문제임을 알게 된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 ‘그리스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사탄의 문화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길을 떠난다. 늘 행복에 목말라한다. 하지만 행복해지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불행할 따름이다.
사탄의 문화 속에서 살면 복잡한 것을 많이 가지려고 한다. 그 말은 틀린 것을 가지려고 한다는 말이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다.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탄을 결박시키라는 게 진리이다. 이게 창세기 3장 15절의 길이다. 그 길에 있어야 행복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행복해진다. 그 길에 있어야 복잡한 것을 가지려고 안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잡한 것을 붙잡고 혼미해져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장본인이 된다.
개인의 역사는 다양하다. 과거의 슬픈 역사도 있고, 잘 나갔던 역사도 있고, 친구와 수다 떨던 역사가 있고, 여고 시절의 역사, 군대 시절의 역사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이런 개인의 역사를 내려놓으라고, 깨뜨리라고 말씀하신다.
개인의 역사를 내려놓지 않고는 절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4장 19절, 너희는 나를 따라오너라. 그리하면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낚으려면 먼저 짊어진 무거운 역사를 내려놔야 한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복잡한 자들아, 자신의 역사 속에 갇혀 눌려 있는 자들아, 그리스도에게로 나오라고 하신다. 무거운 짐을 그리스도께 가져오라고 하신다. 그러면 참 쉼이 시작된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음을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하나님을 아무리 잘 믿어도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못 느끼면 멸망 받는다. 종교는 “주여, 주여~”를 외치며 찾고 있다. 그 ‘주여’가 하나님도 됐다가 우상도 됐다가 한다. 결국 저주 받고 만다.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십자가 보혈의 언약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언약의 능력이 살아 역사할 때 인생의 고통은 끝난다. 행복을 찾아다니거나, 행복에 목말라 할 필요도 없다. 기구한 운명의 굴레 속에서 저주와 고통을 당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무저갱으로 들어가야 될 비참한 나에게 하나님이 긍휼을 주셔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그리스도로 믿을 수밖에 없도록 은혜를 주셨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기도의 체질, 전도의 체질로 변한다. 그래야만 몸에서 일어나는 치유의 증거가 시작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팔복을 주셨다. 자신의 과거 역사 속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지 말라. 그건 그리스도 앞에 내려놓고 그리스도에 가난한 심령이 되라고 하신다. “오직 그리스도만 내 인생의 답이요, 오직 그리스도만 내 인생의 행복이요, 오직 그리스도만 내 인생의 긍휼입니다!”
주변의 가짜들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이 보혈의 언약으로 주신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하나님을 영혼에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의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 긍휼을 입은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문제 속에 갇히지 않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다
문제 속에 갇히면 각종 질병으로, 귀신들림으로, 열병으로 시달린다. 수많은 세계 교회들이 문제 속에 갇혀 “주시옵소서, 역사해 주옵소서, 응답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마가복음 1장 24절,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면서도 그리스도의 능력은 사용하지 않고 헛소리만 하고 있다. 자신의 과거 역사를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왜 자신을 괴롭히러 왔느냐고 예수 그리스도께 소리친다. 바로 우리 몸의 원죄덩어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우리 앞에 왔으니 그리스도 앞에 경배하자고 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자신의 문제 속에 갇혀 ‘당신이 누구인 줄 아오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니다’라고 말은 하면서 전혀 경배하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 속에 갇히면 스트레스를 받는 뇌 질병에 걸린다.
“예수 믿는 척 흉내 내게 만드는 더러운 귀신, 거짓말쟁이 귀신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몸에서 떠나가고 세계 복음화 주역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나아갈지어다!”
하나님은 웃음을 주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해 주신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강한 자를 결박하면 인생 여정 속에서 많은 열매를 맺는다. 문제 속에 갇히지 않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한다. 신앙생활은 복잡하지 않다. 개인의 역사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임을 인정하는 기도를 시작하면 말씀은 살아있기에 우리 영혼 속에서 살아 역사하신다. 그러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이 권세를 가졌더니 성령이 내주 인도 역사하시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생의 운명을 바꾸었더니 사탄을 결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내일의 문제 때문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 내일 다가올 문제 때문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 내일의 응답을 누리는 자로서 오늘을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생각이 치유되는 것이다. 생각 치유가 안 되면 늘 생각으로 귀신이 들어간다.
사탄의 문화를 통해 귀신들이 생각을 통해 들어가면 위로부터 내려오는 5력(영력, 지력, 경제력, 체력, 만남)을 받을 수 없다. 이 힘으로 성경을 읽어야 모든 게 길이 되고, 답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문제에 갇혀, 승리의 확신, 사죄의 확신, 인도의 확신 없이 기쁨 없이 산다. 복잡하기만 하다.
‘영적인 백수’로 살아선 안 된다. 가인이 영적 백수로 살다가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다. 가룟 유다가 영적인 백수로 살다가 문제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내려고 했다. 그는 아무리 예수님이 메시지를 해도 말씀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힘이 없었다. ‘빵 그릇에 나와 함께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자다’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못 알아듣는다. 이게 영적 백수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사탄을 결박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탄을 결박해야 사탄의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살아남는다. 사탄의 문화는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도적이 마귀가 장악한 것이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우는 사자가 두루 다니며 남자답지 못한 남자들을 전부 삼킨다고 했다. 즉 영적 전쟁하지 않는 영적 백수는 반드시 잡아먹힌다. 부인에게 원망 불평하고 부인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나는 죽어도 아주 일찍 죽었을 운명이었다. 한번은 전주에서 무주로 넘어가는 진안군에 있는 마이산에서 조그마한 미니버스가 굴러 50m 아래로 떨어져 27명이 죽었는데 어렸던 나는 살아남았다.
또 의정부 축석고개를 넘어가는데 15톤 덤프트럭이 내 차를 덮쳤다. 봉고차가 다 짓눌렸는데 나는 살아남았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예전부터 해방 받는 길, 진리의 신, 정의의 신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었다. 왜냐면 세상에는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돈 많은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행복하지 않았다. 예전에 나는 귀신들린 상태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 원인을 찾아내려고 몸부림치면서 사람을 원망하고 사회와 국가 탓을 하면서 이상한 상태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는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 우리 대신, 십자가 보혈의 언약으로 우리를 살리시려고 이 땅에 오신 BC와 AD의 전환점, 구원자, 예수는 그리스도이신 그분을 알게 된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문으로 출입을 해야 인생이 안전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심령을 빼앗기고 멸망당하며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땅은 사탄의 문화에 갇혀 있기에, 사람들은 악령, 귀신 문화에 갇혀서 행복하지 않고, 노예의 체질로 길들여져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어도 노예인 것이다. 국가의 노예가 돼 있고,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 얽히고설켜서 살아가는 것이다. 노예 신분에서 탈출하는 길은 문설주와 인방에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는 것이다. 바로 모든 저주와 재앙이 넘어가고 출애굽하게 된다.
로마서 8장 9절, 그리스도의 영이 사람 속에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절대 아니다. 사탄의 노예, 심부름꾼이고 사탄의 자식인 것이다. 사도행전 2장 36절,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베드로가 정녕이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고 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를 하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함께 하면 그리스도의 일을 해야 한다. 자신과 세상과 사탄의 문화를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 고린도전서 9장 27절, 자신의 역사를 깨뜨려야 한다. 문제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자신과의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버림받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왜 우리의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 이제는 우리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셨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제는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시니,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것이다. 그래야 사탄의 문화에서 흑암 권세,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 받을 수 있다.
이게 기도고 전도다.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신다. 이제는 자신을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영적 예배를 드리자. 자신을 부인하는 예배, 영적 예배를 드리면 저절로 되어진다. 로마서 12장 1절,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면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문제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지 않고 자기 몸에서 찾아내는 사람이 영적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다.
‘아, 그리스도가 나의 주가 되지 않는구나.’ “끊임없이 혈과 육신의 생각으로 살게 만들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원수 맺게 만들고, 사망 권세에 묶여 질질 끌려가게 만들어 문제 속에 갇히게 만드는 더러운 저주의 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산산이 내 몸에서 무너지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셨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복음을 누리는 기도가 시작되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가 임재하셔야 기도와 전도가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껴야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신다. 마가복음 3장 14절~15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로 세우신 후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게 하셨다. ‘아,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여자의 배를 빌려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나를 부르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함께하신다.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원인을 찾아내려고 하는 이상한 기준들을 내어 쫓아야만 한다는 것을 느껴야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 더러운 것을 사로잡아 결박시키고 내어쫓는 전도를 할 때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전도도를 할 수 있다. 그러면 15절,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소유하게 된다. 에베소서 4장 27절,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고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
그렇지 못한 가인은 창세기 4장 7절, 사탄 죄의 권세에게 걸려들었다. 그리스도 안에는 기도와 전도가 들어있다.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상대방에게서 끊임없이 문제를 찾아내려고 했던 가인은 미움을 가지고 살인자로 돌변했다. 살인은 순간 오는 게 아니라, 미움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예배는 안 받으시고 아벨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에 대한 문제 원인을 자신이 아닌 아벨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아, 내가 하나님을 떠난 원죄로 말미암아 사탄 문화, 귀신에게 길들여졌구나.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힘이 없구나.’
이렇게 자기 몸에서 문제 원인을 찾고 ‘나는 뱀의 머리를 깨뜨린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가 필요하구나!’를 느껴야 한다. “아, 나는 세 끼 밥을 아내로부터 대접을 받고 있음에도 늘 아내 앞에 얼굴을 찡그리고 사는구나. 감사도 감격도 없이 지랄병으로 내 뇌를 쑤석거리는 더러운 귀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몸에서 추방당할찌어다!”
“짜증과 원망과 불평과 귀신 들린 말만 지껄이는 저주의 영, 너는 누구냐?”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묻는다. 누구냐?” 이렇게 하면 그리스도가 필요한 얼굴임을 느낀다. 필요를 느끼지 않으면 아무리 내쫓아도 귀신은 나가지 않는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필요한가를 못 느끼면 필연성, 절대성, 당연성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이런 건 안 느끼고 전무후무한 응답을 구한다.
제자 사역 속에 있기를 축복한다. 자신을 놓고 기도와 전도가 되어지는 사람은 요한복음 8장 31절, 예수님의 말씀이 몸에 임한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불신앙 수준으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길 바란다.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어도 제자의 길을 가자. 그게 응답 중 응답이다. 제자의 길을 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밥 세 끼 먹다가 말년에 이상한 상태로 죽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의 길을 걷게 되면 영원히 죽지 아는 영원한 응답이 기다린다. 한 번도 237 나라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제자의 길을 가기 때문에 237 나라를 보는 환상과 꿈을 꾸고 예언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가 우리 몸에 임재 할 때 하늘 배경과 보좌의 능력으로 복음화가 시작된다
복음화가 된 사람은 기도와 전도가 되어진다. 기도와 전도를 누리는 사람이다. 기도는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말씀으로 누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일을 먼저 듣고 말씀을 빼앗기지 않고 말씀에 동참하기 위하여 기도 속에 들어갔다. 지금 응답받기를 원한다면 사탄을 결박하자. 그러면 전도의 문, 응답의 문이 열린다. 요한복음 8장 44절, 마귀의 자녀 체질로는 절대 응답 못 받는다. 마귀는 욕심대로 살라고 하기에 욕심대로 구하면 하나님은 절대 응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동참해야 되겠다,’ 이 생각을 하는 게 기도다. ‘하나님의 일에 동행하고 함께 경영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전도다.
히브리서 11장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사탄 권세를 결박하는 영적 전쟁, 즉 기도를 하면 틈타고 들어오는 공중 권세 잡은 자를 차단하고 이기는 능력을 갖게 된다.
에베소서 4장 27절, 야고보서 4장 7절, 마귀를 대적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의 임재 속에서 응답을 누릴 수 있다.
위에서 내려오는 오력이 임하면 언약을 따라간다. 그리고 언약에 집중한다. 언약의 여정이 집중과 누림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라는 이정표가 있다. 그것을 위해 도전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어려운 게 아니다. 단지 한 번도 해보지 않는 일을 처음 하려고 하기에 껄끄러운 게 있는 것이다. 아직 개인의 역사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제자라고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임하기에 강한 자 사탄의 문화를 내어버리는 것이다.
→기도와 전도의 비밀을 모르면 마치 아이와 엄마의 탯줄이 끊어지는 거와 같은 상태가 된다. 그리스도의 영은 기도와 전도에 전무한다. 그런데 기도와 전도가 끊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기도와 전도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연결되어 항상 있으면, 항상 함께 계시면,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역사 드라마 속에 우리가 참여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를 마음에 담아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노예로 살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순간 사탄의 밥으로 휩쓸려 간다. 어떤 분이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처음에 뵐 때는 굉장히 신비롭게 보였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목사님이 별 볼 일 없게 느껴져요.”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귀신 들어가서 그렇다”
성도라면 목사가 점점 좋아져야 정상이다. 그 분은 암으로 고생 많이 했다. 미국에 있는 빈민층을 위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청년부 정시기도 때 그분을 위하여 매일 밤마다 청년들이 기도했다. 아주 새카맣게 말라서 해골같은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그분을 다시 영접시키고 그 분 댁으로 데려가서 자녀들과 함께 메시지를 전했다. 그때부터 예수사랑교회에서 보내주는 메시지를 매일 들기 시작했고 살아났다. 예수 사랑, 모든 가족들은 어떤 일을 당해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는 속아서는 안 된다. 어떤 문제, 어려움을 당해도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지 말고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잘못된 동기가 발동되어 사람의 말을 듣고 속는 것이다. 사람의 말을 듣고 움직일 때 응답이 오는 게 아니라, 기도와 전도를 통해서 응답이 주어진다. 기도, 전도가 되면 하나님은 문제 속에서 응답을 주시고, 갈등 속에서 기회를 주시고, 위기 속에서 기적을 행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들, 후대들은 자신과 세상과 사탄의 환경 속에서 능히 이길 수 있도록 멋진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사탄을 능히 이기는 믿음이 바로 기도와 전도다. 그래서 기도와 전도로 무장되면 어떤 한계도 다 넘어설 수 있다. 절대 불가능을 절대 가능으로 바꾸는 능력이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발견해야 한다. 누가복음 23장 28절, 기도와 전도가 안 되면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야 하는 운명의 시간표가 찾아온다. 자녀들 일로 상담을 요청해 오는 분들에게 말씀드린다. 일부러라도 좋으니 무릎 꿇고 기도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성경책만 가지고 교회만 다니니깐 귀신 들린 자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귀신 들린 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기도하는 무릎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지 하고 무릎을 꿇으면 귀신은 발악을 하고 머리를 흔들며 도망간다. 자신을 전도하길 바란다. 그러면 자녀들이 먼저 부모들이 변한 것을 안다. 영적 백수로 살아선 안된다. 영적 백수는 문제를 만들어내는 생산 공장이다.
“뱀의 자손으로 저주받는 인생으로 살게 만드는 이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산산이 내 몸에서 떠나갈지어다!”
그래서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지 말고 자기 몸에서 찾아야 기도와 전도가 시작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문화에 갇혀 율법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특히 예수사랑교회를 다니면 계속 율법에 찔릴 것이다. ‘다른 교회로 가자’는 생각이 들 것이다. 다른 교회는 봉사, 헌신, 교재가 있고 코이노니아가 있는데 예수사랑교회에 가면 영적인 문제가 폭로 되기에 머리를 흔들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6절, 율법은 사탄이 개입한 것이다. 사망 권세 잡은 자가 우리에게 쏘아댄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죄의식 때문에 헌신하고 봉사하고 구제하고 섬기는 일에 열심인 것이다. 죄의 권능으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 64장 6절, 의의 사람인 것처럼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여 믿는 척, 느끼는 척, 아는 척,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 자기 몸에 와 있는 부정한 것, 자신의 의를 나타내고자 하는 더러운 것이 있는데도 그리스도의 필요를 못 느낀다. 그래서 쟁쟁거리며 치졸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면 배은망덕하고 숨은 동기, 열등감을 숨기고 있다. 귀신들린 자들은 이런 것들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한다. 이놈이 빠져나가야 영원한 응답 속에 들어간다. 그래야 자유하고 해방되고 행복하다.
요한복음 8장 31절,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몸에 거해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고 전도로 연결되면 32절, 자유케 되리라 하셨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널 위하여 십자가의 보혈을 흘려준 것처럼, 너희도 상대를 위하여 자녀들을 위하여 남편을 위하여, 가족을 사랑하라. 그러면 35절,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제자는 요한복음 15장 8절, 많은 열매를 맺는다. 열매를 많이 맺어야 내 제자가 되리라.
종교 속에서 시달려봐야 복음의 진가를 안다. 나는 과거 진리를 얻기 위하여 종교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나의 젊음을 종교에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좋은 과거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다 끝내셨다. 그리고 앞으로 되어질 일들까지 성취시켜 가실 것이다. 그래서 문제될 일이 없다.
* 기도체질과 전도체질을 통해 영적치유의 증거를 가지자
→자신을 기도의 체질로 바꾸자. 무엇을 해야 자녀 문제, 돈 문제, 행복의 문제 따위가 해결되는가? 마가복음 1장 35절, 기도하시더니…. 기도하길 바란다. 기도하지 않고는 배울 수 없는 게 기도다. 그래서 거짓이라도 우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릎을 꿇어보자. 그럼 기도가 시작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시 기도부터 시작해 보자.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기도의 모델이 되어 주셨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많은 열매를 맺는 제자가 된다. 기도는 외상이 없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받는다. 나는 그 일에 증인이다. 조지 뮬러가 5만 번 응답받았다지만, 나는 헤아릴 수 없이 응답 받았다. 세포 세포가 다 재창조됐을 정도다. 조지 뮬러는 영국에서 고아원 보살피다가 인생 마감했지만, 나는 237 세계복음화 미션을 가졌고, 5천 미종족 복음화, 영원한 보좌의 축복까지 받았다.
→ 나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일을 시작했다. 마태복음 6장 33절,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다.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그 말씀을 기도할 때 나도 똑같이 한다. 문제 속에 갇혀선 안 된다. “문제 속에 갇혀서 쟁쟁거리게 만들고 쫀쫀하게 만들며 징징거리게 만드는 모든 흑암 문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산산이 무너지고 내게서 떠나갈지어다!”
다 이루시고 내게 말씀하시는 일을 내가 들은 것이다.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감람산에 나타나셔서 40일 동안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8장 19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이것 때문에 나는 문제에 안 갇힌다. 문제에 갇히면 자녀들을 위하여 울 일이 생긴다. 문제에 갇히지 않고 자유와 해방과 재창조의 피조물로 살면 자녀들을 위해서 울 일이 생기지 않는다.
왜 자녀가 잘 안 되고 자녀들이 부모를 어렵게 만드는가?
그건 하나님이 부모를 부르는 음성인 것이다.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부르시는 음성이다. 왜,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야 하는가? 기도하면, 전도 속에 있으면 끝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 충만을 받으라. 하나님의 모습, 영원히 사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이제부터 안 되어지는 자녀들을 위하여도 기도하고 전도하면 새롭게 시작한다.
→ 아성과 아집이 무너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착하고 중독자가 된다. 창세기 3장, 자녀가 선악과로 보인다. 먹음직도 하고 두드려 패기도 하고, 찔러보기도 하고, 돈도 줘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은 불신앙하게 만든다. 따먹지만 않으면 되는데, 건들지만 않으면 되는데 결국은 자신이 해보겠다고 따 버린다.
더 이상 각종 병에 시달리지 말고 귀신 병에 시달리지 말고 스트레스 받아서 자기 사위가 예수님 따라갔다고 스트레스 받아 열병 생기지 말고 그냥 깔끔하게 예수는 그리스도를 고백하자.
예레미야서 33장 3절, 너는 환난 날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큰 응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1940년에 세계 2차 대전 때 영국 전 수상 처칠이 전 영국 국민들에게 방송으로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독일과 영국이 한창 전쟁 중이였는데 영국군 30만이 독일군에게 완전 포위당하고 말았다. 앞에는 막대한 독일 탱크부대가 진격해 오고, 뒤에는 바다였는데 어마어마한 어뢰전과 대형 전투 함대가 몰려오고, 하늘에는 독일의 전투기가 곧 날아올 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었다. 그때 처칠이 방송을 통하여, ‘전 국민은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그날 밤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모든 게 끝나는 그 날에 장대같은 비가 독일 탱크 전차 앞에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탱크가 진흙에 엉켜 움직일 수 없고 되었다. 그리고 바다에는 엄청난 폭풍이 일어나고, 하늘은 너무 어두워지고 강한 바람이 불어서 비행기가 뜰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영국군 30만이 있는 그 자리만 고요했다. 그래서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온 영국군은 독일군을 칠 수 있었다.
기도는 죽은 자도 살린다. 기도는 언제나 기적을 일으킨다. 기도와 전도는 유일하게 우리를 살리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전도의 체질로 나를 바꾸자 마가복음 1장 38~39절, 기도의 비밀을 맛본 사람은 전도도가 시작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만한 일들이 시작된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간다. 누가복음 19장 10절, 그리스도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다. 전도와 선교를 잃어버리는 것은 교회의 근본을 상실하는 것이다. 교회와 성도의 사명은 오직 전도다.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 기도를 통해서 전도가 나오면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한 번만 입을 열어 전도해 보길 바란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함께하신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오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길 바란다.
기도 체질, 전도 체질이 되면 영적 치유의 증거를 갖게 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이 기도 체질과 전도 체질이 되어 영적 치유의 증거를 가지고 만인 앞에 그리스도인으로 설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변화를 맛보려고 몸부림치며 시달리고 있는 이 시대에 “다윗의 자손 주 예수 그리스도시요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나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한 거짓 소경 바디매오처럼 영적 치유의 증거가 갖게 하옵소서.
다시는 주변의 가짜들을 통하여 영적 백수가 되지 않기를 원하오니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해 주옵소서.
기도 체질과 전도 체질을 내버리고 늘 피곤하다는 생각이 잡혀 있고 끊임없이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우리 머릿속에 채워져 있고,
끊임없이 실수를 반복함으로 말미암아 무기력에 빠지는 모든 질병의 저주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전도가 저들 몸에서 시작되게 하옵소서.
우리 자녀들의 문제, 가정의 문제, 어떤 문제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속에 있으면 흑암이 결박되고 사탄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깨뜨려지고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흑암 권세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산이 깨어지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끊임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영적인 문제로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사탄의 문화 속에서 행복을 찾아다니지만 문제 속에 갇힌 채 각종 질병과 귀신들림으로 시달리며 노예상태로 사는 인생에서 빠져나오도록, 예배를 통해 내 몸의 원죄와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달아 나를 부인하는 영적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무슨 일을 당하든지 나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고 자신과 세상과 사탄과의 영적싸움 속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며 기도와 전도를 누리는 기도체질, 전도체질로 변화되고, 무거운 나의 역사를 내려놓고 자유하며 항상 기뻐하는 영적치유의 증거가 내 몸에 일어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기도의 비밀을 맛본 자로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따라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영향을 끼치고 전도도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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