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흠향하신 정결한 예배의 축복
(창 8:1-22)
구원을 받지 못하면 예배의 축복을 상실하게 되고, 교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죽는 날까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남이 세워놓은 교회에서 어정쩡하게 있는 것보다는, 예수사랑교회에 왔다면 창3:15 위에 교회를 세우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축복한다.
예수사랑교회는 창3:15로 각인전쟁을 하는 교회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그 머리에서 엄청난 피를 흘리셨다. 나를 위해 이렇게 엄청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각인하고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정결한 예배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드리는 예배 속에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주시고 축복하신다.
창3:15이 없으면 원가지도 없애버리시는 것이다. 롬11:21~22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그래서 원가지인 이스라엘이 노예로, 포로로, 속국으로 방황했다. 창3:15 인자하심이 없으면 강한 준엄이 나타난다. 그런데 오늘날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예배하는 사람이 없다. 어설픈 메세지 중독자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준엄에는 하나님의 엄청난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지, 그리스도 바깥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모든 것이 무죄다. 그리스도 바깥에서 자아실현을 위해 옛 사람의 틀을 가지고 사는 것은 마귀의 일밖에 없다. 사람들에게 미혹당해서는 안된다. 어설픈 목사를 따라 다니며 이상한 것을 배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창3:15을 각인시켜야 한다. 창3:15이 메시아, 신약에 창3:15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모든 것을 성취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우리 삶에 오직 각인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머무르게 되고. 막3:14~15이 나의 것이 된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나를 원하셔서 이 시대 제자로 세우셨으니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사랑교회 붙어있으면,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엄청난 영광과 의가 나타나 되어지는 축복을 받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로마서 11장은 바울이 로마교회를 향해 쓴 메세지다. 바울은 하나님이 거하는 삼층천이 있다는 것도 발견한 자였다. 그런 엄청난 체험을 한 바울의 메세지는,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로마교회라도 그리스도가 각인되지 않으면 원가지라도 인자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넘어져서 실족하고 믿음을 떠나는 것이다. 육신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가 없다. 유대인들이 초기에는 마가다락방의 기독교,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로 출발했다. 그런데 어느날 로마교회가 부흥을 하니까, 그리스도로 출발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이방인들만 모이게 되었다. 밥 먹고 사는 문제 해결되면 어느 날 “예수가 그리스도”로 출발했던 사람들이 사라져버린다. 귀신들려 시달리는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로 출발했다가 온전해지면 어느 날 다른 자리에서 교만을 떨고 앉아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가지도 없애버리겠다고 말씀하셨다. 미국에 굉장히 유명한 목사님이 있었다. 설교를 하면 앉은 자리가 없었고, 그 분의 책을 목사들은 한 두 권 반드시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큰 교회를 지어놓았지만 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계속 자살했다. ‘오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예수가 그리스도” 오직을 하지 않으면 성도들은 전부 엡4:27 마귀가 틈타고 들어간다.
‘오직’ 하는 사람은 남은 자, 창세전에 예정된 자, 롬16:25 그리스도를 1인칭 하는 사람이다. ‘나의 복음’이 뭔가? 모든 문제 끝냈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을 우리 몸에 전파하면 굉장한 일이 일어난다. 영세 전에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현장에 나타나게 된다. 롬16: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꿈을 꾸고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볼만큼 선지자의 축복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 영원을 가진 자가 된다. 로마교회가 분명 기독교인으로 출발했는데 유대인이 점점 줄고 이방인들이 로마교회의 주류를 이뤘다. 그래서 원 가지라도 “예수가 그리스도” 하지 않으면 없애버리는 것이다. 롬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을 오직하는 것이다.
왜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불러야 하는가? 창3장 원죄로 인하여 죄의 권세가 언제나 흑암으로 덮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의 의가 나타나야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의 의가 나타나는 유일한 방법이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롬11:3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되고,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오직’을 하는 사람은 알게된다.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 서초동으로 오면서 예배할 장소가 사라져버렸다. 예배 장소를 찾으러 갈테니 다음 주에는 그 장소에서 만나자 하고 헤어진 것이다. 그래서 커피숍을 찾아 들어갔는데 화장실도 이상하고 예배를 드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멀리서 ‘베토벤’ 레스토랑이라는 영문 글씨가 내 눈에 들어왔다. 토요일 낮이라 문이 닫혀있었고, 불고 꺼져있었다. 그래서 내가 주인있냐고 했더니 베토벤처럼 생긴 사람이 나왔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기서 예배드리라고 하셔서 내가 내일부터 여기서 예배드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분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이 교회를 안가니까 교회당이 오는군요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돌충행위와 업다운이 굉장히 심했다. 그래서 주일에 예배를 드리면 주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위험과 핍박, 비아냥과 조롱, 이간...말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았다. 내가 그 분에게 한 가지 부탁한 것이, 예수사랑교회 꼭 붙어있으라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예수사랑교회 붙어있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까지 말했다. 그런데 이 분이 큰 교회에서 노래를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한 무리를 데리러 교회를 떠났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전부 암걸리고 도망 다니고 교도소 가는 신세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에 우리 집을 찾아왔다. 지팡이 하나 짚고 겨우 걸어서 오는데 돈 85만원 때문에 나를 찾아 온 것이다. 그 분이 자신의 가게를 교회로 열어준 것이 지금도 고마워서 나를 욕하고 다니고 무슨 말을 해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돈을 줬더니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은 참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사나 죽으나 나는 그리스도의것이라고 늘 고백하는 산제사를 지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드려지는 제물은 우리가 죽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죽음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가 사는 것이다. 어설픈 종교를 따라다니다가 이상한 사람 되지 말고 오직 영혼 속에 그리스도를 각인시켜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늘 고백하는 산 제사를 지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참 예배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가 드리는 예배다. 창3:15이 없으면서 창3장의 사망의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받으시겠는가. 알파와 오메가 되신 참 생명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때 그것을 참예배라고 하고 참된 번제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내 자신을 절대 번제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대신 숫양이 죽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고, 이삭도 이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언제나 창3:15이 나로 인해 죽는 이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가진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흠향하신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된다면 하나님은 흠향하신다. 원죄덩어리인 상태에서 ‘오, 하나님 나를 받아주옵소서.’ 한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받으실 수있겠는가. 예수의 생명을 안고 ‘받아주시옵소서’ 해야 그것이 예배이고,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신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만이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수준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창8:20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다. 홍수가 멈추고 방주가 땅에 정박할 때 분명히 단을 쌓았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살았구나’ 라는 것을 고백하는 제사였다. 그래서 자신을 구원하신 그 은혜를 마음에 담고 창3:15 그 언약 속에 있는 나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 전 가족이 구원을 받았다는 절대 그 감격 속에 제사, 번제를 드렸다.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사는 노아는 한마디도 변명, 핑계, 책임전가, 헛소리가 없었다. 방주를 지어라 하면 “아멘”, 일주일에 비가 올 것인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 “아멘”, 그만큼 노아는 은혜의 삶을 살았다. 노아는 어떻게 이런 은혜의 삶을 살 수 있었는가? 가인은 자기 동생을 죽여 놓고도 하나님을 향하여 계속 ‘아벨 때문에, 아벨 때문에’ 아니면, ‘내 주위에 있는 죄가 나를 찌른다’는 이상한 소리만 했다. 하나님이 왜 노아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했는가?
그는 순종이라는 자기 영혼의 제사가 있었다. 어떤 제사인가? 마귀의 일을 멸하는 제사다.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사람은 마귀를 대적한다. 우리 육체와 내면에는 사단이 각인시켜 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는 나름대로 순종하지만 육은 절대 순종할 수가 없다. 이 때 영과 혼과 육이 일체되는 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가질 때 흑암권세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요5:24 사망이라고 했다. 심판을 받을 뿐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노예가 되어있다고 기록했다.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없으면 골1:13흑암의 나라에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3:15의 주파수를 우리에게 주셨다. 창3;15의 주파수가 움직이면 우리에게 오는 메세지가 “뱀의 머리를 깨뜨려라” 는 것이다. 우리의 뇌 속에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것이 각인되어 있으면 마귀는 틈을 탈 수 없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절대 순종이 있어야 한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 창3:15의 주파수는 마귀의 일을 멸하는 사인이다. 우리 자신을 진단해보자. 오늘 하루를 사는데 얼마나 많은 마귀의 일들이 내 몸에 틈타고 들어오고 얼마나 많은 것이 내 속에서 일어나는가? 이런것만 잘 들여다봐도 굉장한 성령인도를 받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실제로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마귀의 일을 모르고 산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히 일어난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지 예수님이 직접 설명해주셨다. 요8:43~45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이것이 우리 몸에 끊임없이 일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틈을 타고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많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우리 자신이 한 번 조사해도 굉장한 은혜가 된다. ‘아,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가 필요하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그리스도를 준 이유를 발견하게 되면 그 사람의 표정까지 달라진다.
육신 생각의 사고방식은 교만의 소산이다. 육신 생각의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제를 드려야 한다. 고전9:27 사도바울도 내 몸을 쳐서 복종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게 하고 구원의 소식을 알리는데 자기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이 혹시 버림을 당할까 두렵다고 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육신의 생각 때문에 날마다 죽어야 한다. 롬8:6~7, 육신의 생각은 분명히 사망,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번제로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꾸 번제를 드리면 드리는만큼 그리스도는 살아 움직인다. 다윗은 순종의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다. 삼하24:18~19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선지자의 메세지를 듣고 그대로 순종했다. 다윗은 자신의 육신을 늘 복종시키는 힘이 있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면 “네가 뭔데 나한테 그런 말을 해?” 하고 바로 행동이 나왔을 것이다. 삼하24:20~21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지라” 왕의 신분으로 그냥 빼앗지 않았다. 번제를 하는데 있어서 절대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거나 남의 것을 탐욕으로 빼앗아 번제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번제하기 위하여 자기 돈으로 사서 하나님 앞에 헌신의 번제를 드렸다. 삼하24:24~25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헌신의 번제, 믿음의 번제, 순종의 번제를 드릴 줄 알아야 한다.
창3:15의 하나님, 바로 빌2:16의 하나님을 내 가슴에 새겨놓고, 각인시키고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려야 한다. 어떤 값을 지불해서라도 이 분을 내가 사야 한다. ‘내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이분을 가질 때 영원한 생명을 갖는다’ 는 절대가 있어야 한다. 헌신 한 번 하는데 찌질하고 쫀쫀하고, 쟁쟁거리는 것, 뭘 하는 것처럼 개폼 잡는 것을 버려야 한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 말씀을 내 몸으로 사야 한다. 내 몸을 주고 그분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신다. 나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사기 위해 내 몸을 드립니다.’ 하면 그분이 나와 더불어 영원히 먹고 마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그분을 사야한다. 이분을 사기 위해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한다. 빌2:9~10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그리스도를 무릎꿇어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번제를 드릴 때 하나님은 흠향하신다. 눅23:24 “눅 23: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나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침뱉음을 당하시고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당하신 이 분을 살 줄 알아야 한다.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분으로 인해 내가 이제 죽음을 맛보지 않는 낙원을 갖게 되었다. 낙원에 없으면 예수님을 재림주로 알아 볼 수가 없다. 구원 받는 사람에게는 우리의 안식처가 낙원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재림주를 맞이할 때 낙원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다. 그곳이 천국이다. 하나님 나라 가는 길에는 이렇게 질서가 있다. 당신의 생명을 던지고 우리에게 낙원을 안착시킬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다. 그런데 우리 몸에서 이분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분을 사는데 굉장히 껄끄러워한다. 헌금은 이분을 사는 것이다. 이분을 사서 나를 번제로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헌금의 의미를 잘 모른다.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는 절대 하나님의 주권 속에 1인칭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래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은혜가 있고 승리가 있는 우리는 실패와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한다.
창8:1~5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회복시키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침묵만 잘해도 모든 것이 회복된다. 방주에서 창문 열고 뛰어내리면 이상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설치지 않는 것이 성령인도다. 마귀의 씨이기 때문에 설치는 것이다. 창3:15 씨를 받은 자는 절대로 설치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누림 속에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이뤄진다. 사49:14~15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예수사랑교회에 붙어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않으시기 때문에 침묵하고 있으면 응답이 온다. 설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하신다. 사49:16-17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하나님이 나를 손바닥에 새겨놓고 때를 따라 역사할 것이라고 나에게 계속 주파수를 보내고 있는데도 자꾸 설치게 만들고 찌질하게 살게 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일이다. 마귀는 틈타고 들어와서 찌질한 영을 집어넣는다. 하나님은 찌질한 분이 아니다. 왜 사람관계가 끊어지고 무너지는가? 찌질하기 때문이다. 사람 관계속에서 찌질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다.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 안에 넣어놓고 하나님의 영으로 살라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찌질하지 않아야 세계복음화 한다. 나한테 안 알렸다고 찌질하고, 말하지 않고 행동했다고 찌지해지고, 삐진다. 나도 굉장히 잘 삐지는 체질이었다. 삐지면 밥도 안 먹는다. 그런데 지금은 삐져도 밥 먹는다.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다. 그러면 고전10:13 굉장한 승리의 길을 가게 된다. 하나님의 영을 가진 자는 어떤 시험, 어떤 찌질한 문제가 와도 감당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창8:6~12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창문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
창문을 낸 이유가 뭔가? 그 물이 어떻게 줄어드는지, 어떤 바람이 느껴지는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관찰해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노아가 창문을 열어놓고 관찰했다. 사람이 살만한지, 물이 어떻게 되었는지, 까마귀가 날아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비둘기는 나갔다가 어떻게 돌아왔는지... 결국 감람잎사귀를 물고 오는 그 현장들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랑과 은혜, 감격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그래서 번제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6일 동안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르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움직이고 역사하는가를 관찰해봐라. 마음의 창문을 열고, 관찰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은혜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헌신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하나님이 움직이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창8:13~19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게 되는 내용이다. 노아가 관찰을 하고 얼마나 방주에서 내려가고 싶었겠는가. 관찰하고 나서 ‘끝났네’ 하고 문 열고 나간 것이 아니라 또 기다렸다. 하나님이 내려가라 하실 때까지 기다렸다. 창3:15이 완전 각인되어서 자기 육이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마귀를 밟았다. 만일 땅이 보인다고 해서 마르지도 않은 땅에 발을 내딛었다면 다 빠져 죽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땅이 마른 이후에 내려오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멋진 분이다.
창8: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피조물들이 순종하게 된다. 롬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비행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으로 탄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순복하게 하신다. 그래서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을 죽이는 번제를 드렸다. ‘나는 죽고 창3:15 그리스도가 사셨다. 창3:15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관찰하면서 체험할 때 멋있는 예배가 된다. ‘하나님은 창3장의 우리를 하나님의 긍휼로, 은혜로 대하시는구나. 마귀의 자녀인 나에게, 창3:15 하나를 받아들인 나에게 은혜를 주시는구나.’ 시103:10~14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는 가장 쉽게 무너지는 진토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인자를 주셨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우리 영혼에 담아라. 그러면 마귀의 일을 멸할 때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관찰하게 되고, 죄와 저주의 몸으로 휩싸여 운명, 사주, 팔자 속에, 재앙 시스템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를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하고 실패투성 일지라도 하나님 만나는 길이 그리스도로 열리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해결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 모든 것이 무죄다. 그리스도 바깥에 사니까 걸려들고 망신당하고 재수 없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생명의 빛을 받아들였다면 어둠에 다니지 않고 빛으로 다니면서 행복했을텐데, 흑암에 잡혀 흑암으로부터 망신을 당한 것이다.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너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서 인자로 온 나까지 너에게 주셨다. 나를 네 몸에 생명의 빛으로 받아들일 때 너도 자유함이 오는 것이다.” 창3:15 오직 그리스도를 진짜 섬기고 의지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복의 근원으로 축복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삼상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 창3:15에 순종하고 뱀의 머리를 깨뜨려야 한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방주를 만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만드는 뱀의 머리를 깨뜨리면 방주를 만들 수 있고 구원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받을 때 우리 몸에 능력이 생겨 언제든지 영적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배경이 시작되고 주의 천군천사가 움직인다. 하나님 앞에 순종을 잊지 안아야 한다. 순종은 반드시 믿음 곧 영적싸움이 따른다. 그렇지 않으면 순종이 안된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는 영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나의 지긋지긋한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말씀했다. 하루 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와 내 속에서 역사하는지 내 속을 관찰하면 깜짝 놀랄 것이다.
마귀가 내 몸에 와 있으니 감사할 줄 모른다.
하나님이 왜 미국을 1등 국가로 만들어주셨는가? 그들은 늘 삶이 “Thankyou”였기 때문이다. 기분이 나빠도, 누가 자신을 다치게 해도 늘 땡큐라고 한다. 우리는 감사보다는 늘 이상한 행동이 나온다. 귀신에 충동에 따라 살며 미신을 믿기 때문에 나를 지키는 힘이 없는 것이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권세를 소유하고 있다면 기뻐해야 한다. 정결한 예배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결한 예배의 축복이 무엇인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나라.”
하나님 앞에 올바른 고백을 하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마9:28 “마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이들은 믿음의 헌신이 있었다. 고백하는 헌신이 없다면 늘 불평만 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은 오늘밤에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음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진정한 믿음을 확인해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믿음의 고백, 헌신의 고백, 정결한 예배의 축복이라고 한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정결한 예배의 축복을 가진 자가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가 나를 사랑하셨기에 때문에 상대방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하나님이 흠향하신 정결한 예배의 축복이 참으로 우리 영혼 속에 사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창세기 3장 15절 속에 들어있는 그 말씀을 이젠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시고, 믿는 자가 되게 하시고, 고백하는 헌신이 우리 영혼 속에서 이제는 항상 충만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한주간 마귀로 틈을 주지 않고 마귀가 어떻게 내 영혼을 틈타고 들어오고 내 몸에서 어떤 마귀들이 발작 증세를 일으키는가를 알고 마귀의 일을 한주간 멸하는 그 관찰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6일간 정결한 예배의 축복 속에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기도문
원죄로 사탄이 각인시킨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내 몸에 일어나는 마귀의 일을 몰라 육으로는 순종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어설픈 종교로 망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빠져나와, 예수사랑교회가 나의 교회가 되고 그리스도를 각인하는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담고 구원받은 몸으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이기에, 육신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교만을 버리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죄인인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는 고백과 마귀의 일을 멸하는 순종 속에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정결한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창세기 3장 15절을 소유하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하나님은 절대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여 어떤 시험에도 침묵하며 찌질함을 버리고, 하나님이 내 문제를 지금이라도 해결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헌신 속에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관찰하여 감사가 넘치는 한 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