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한 언약의 사람들"
(창 5:1-32)
하나님과 동행한 언약의 사람들은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이름, 여호와를 불렀다. 그 이름을 부른 그들의 세계는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하고 멋있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었다. 그러나 가인의 후예들은 모든 것을 만들어 쌓고 살면서도 오히려 재앙의 인생을 맞이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벨 대신 셋을 통해 “비로소 여호와를 불렀다”하는 에노스를 주셨고, 여호와를 부른 그 계보들은 참으로 멋있는 삶을 살다가 죽었다는 것이 창5장 본문의 내용이다. 교회 안에서도 이렇게 나눠진다. 3백 년 동안 ‘여호와’ 그 이름 하나 놓치지 않았는데 하나님과 동행하고, 죽음을 맛보지 않고 데려감을 받는 자가 되었다. ‘여호와’ 그 이름 하나만 불렀는데 하나님이 “너에 네 가문을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받고 120년 동안 방주 만드는 일만 했는데 그들이 굶어죽었다는 말이 없고, 오히려 그들은 구원의 배를 타고 전 세계 바다를 누리는 자가 되었다.
*신앙생활의 상태는 반드시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되어있다. 믿는 자에게는 절대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하심, 계시가 있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혼의 상태가 망가지는 것이 나타나게 된다.
창5:1의 말씀과 마1:1의 말씀은 같은 맥락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른 자들에게는 분명한 세계가 있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름을 불러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도 하시고 우리를 아시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속에 개입하신다.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모르고 예배했던 우물가 여인에게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다. 예배하는 자가 예수그리스도의 영과 진리로 예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 삶에 개입하지 않으신다.” 우물가의 여인에게 그 영과 진리되신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 당신이심을 밝히셨다. 엡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예수그리스도 그 영적 세계로 들어가면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된다. 죄와 사망권세, 지옥권세, 저주가 무너지고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린다.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뤄놓은 의로 인해 우리가 참 자유를 얻은 자가 되었고, 구별된 자가 되었다. 그냥 부르지 말고 그 내용을 알고 이해하고 부르면 큰 은혜와 축복이 우리 삶에 작동된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비밀을 가질 때 하나님의 성령을 갖게 되고, 하나님이 창조한 그 세계 속에 내가 개입을 하게 된다. “다스리고 충만하고 번성하라.”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된 자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비밀을 갖는 자들은 시달리지 않는다. 여유로움을 가지고 산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형상을 히복하는 비밀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 속에 시달리는 자가 되고 어려움과 낙심, 절망하는 자로 돌변하고 문제만 터지면 하나님을 향해 대드는 자가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비밀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 그 의, 십자가 구속의 사랑밖에 없다. 요19:30, 네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으니 창조주의 역사 속에 개입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의와 진리라고 한다. 그 때 우리는 구별된 자가 된다. 그런 사람을 성도라고 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가 바뀐 자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가진 자는 여호와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게 된다. ‘내게 있는 것을 너에게 심는다.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쟁쟁거리지 말고 일어나 걸어라!’ 그리스도를 일심 전심 지속했더니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앉은뱅이와 중풍병자가 일어났다. 얼마 전 한 형제가 안면근육 마비로 얼굴이 약간 틀어져서 왔다. 성형수술을 하면 간단하고 아프지도 않을텐데 일심 전심 지속으로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라는 말만 듣고 실천했다. 그랬더니 지금은 아주 깨끗해져서 감사하다며 매주 뭘 가지고 온다. 그 내용을 알고 믿으면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다. 300년간 어떻게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
나의 연약함을 알고, 내가 흙덩어리라는 것을 진짜 알면 생명의 근원되신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내 몸이 흙덩어리라는 것, 생기가 없으면 끝이라는 것을 알면 그 생기를 마시려고 매일 호흡하면서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은혜를 못 받은 건방진 자들, 라멕과 같은 자들, 가인의 후예들은 흑암의 문화를 만들고 최초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향해 대드는 자가 되었다. 흙덩어리인 우리, 창조주 하나님을 우러러 봐야 할 우리가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 되겠는가. 창3:15을 나의 것으로 붙잡은 자는 나의 옛 사람을 늘 부인한다. ‘너는 쟁쟁거리지 말라. 찌질하지 말라. 쫀쫀하지 말라. 하늘을 우러러 보라.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여호와는 나의 힘, 나의 반석, 나의 산성, 나의 전능자되신다.’ 늘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뜻을 알고자 늘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하나님 앞에 찬송하면서 ‘주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고백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역사 속에 내가 개입을 하면 세상의 일들이 사라진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분의 역사 속에 내가 개입되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리스도가 나의 것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일, 세상 일, 세상 환경 속에 빠져서 매일 얻어맞는 인생이 되는가? 그리스도를 나의 것으로 하면 자신과 세상 환경, 사탄에게서 능히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에서 이기지 못하면 신앙상태가 굉장히 나빠진다. 하나님이 주신 신분과 권세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우리의 것이지만, 그 권세를 사용하지 않으면 상태가 굉장히 나빠진다. 자신이 알 수 없을 만큼, 이상할 정도로 아주 사악한 사람이 된다.
노아의 계보 중에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하는 에노스가 나왔고, 에녹, 노아가 나왔다. 이들이 모두 하나님의 역사 속에 개입된 자들이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예수사랑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세계복음화하는 그 역사 속에 개입하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에노스, 에녹, 노아는 딱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에게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으면 신앙상태가 굉장히 좋아진다. 그런데 내 몸에 심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여호와, 그 이름을 부를 이유가 없고, 헌신, 봉사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헌금이 왜 필요하고, 주일에 예배를 드릴 필요를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점점 짐승화 되는 것이다. 짐승은 아무리 잘해줘도 ‘나 예배 드리러 가야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만 예배를 드리러 간다. 왜냐하면 반드시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면서 교회를 만들어주셨다. 모이는 곳, 그리스도를 담는 곳이 예배다. 그래서 예배를 정말 생명처럼 드려야 한다.
노아, 아브라함... 모두 죽었지만 에녹은 ‘하나님이 데려가셨다’ 고 표현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하나님의 심판을 아는 자였다. 그래서 이 땅에 무엇을 쌓아놓고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유1:14~15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그리스도는 뭇 사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에녹은 알았다.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은 이 대가를 믿지 않으면 철저하게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에녹은 이 심판의 일을 계속 알린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지만, 다가올 심판을 알고 자신은 그리스도를 반드시 불러야 한다는 절대적 신앙을 가지고 여호와 이름을 외쳤던 사람이 바로 에녹이었다. 그래서 에녹 목사는 이 땅에 무엇을 쌓고 살지 않았다. 그것이 교회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심판이 있다고 겁은 주면서 자기들은 이 땅에 계속 쌓아두려고 한다. 여호와 그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절대 가짜들에게 속지 않는다. 예수사랑 모든 주의 백성들이 ‘심판이 있다’ 는 것을 증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증거로 삼으신다.
창3:15 하나님의 절대 언약을 종일종야 해봐라. 마귀가 틈타고 올 때마다 한 번씩 밟아라. 생각으로 들어오고 눈으로, 콧구멍으로, 이거 들어가는 구멍만 차단을 시켜봐라. 먹다가 냄새 맡다가 시험들고 갈등하는 일 앞에 종일종야 하는 것이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 있을 때 엄청난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공급받게 된다. 우리의 목표는 만민을 위해 기를 드는 파수꾼으로 사는 것이다.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파수꾼이 되어야 하고 ‘마귀있다’ 하면서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고 외쳐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파수꾼의 역할은 ‘적이 온다’ 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의 늪으로 끌고가는 흑암이 있으니 그리스도 이름으로 빛을 발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것에 증인이 아닌, 땅 끝까지 “예수는 그리스도” 이 이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엉뚱한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보고 들으려고 하지 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 보여주셨고, 그 하나님이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미 모든 것을 주셨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살리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그 권세를 가지고 살리는 자가 되었는데 왜 살리는 자가 되지 않고 주저 앉아있는가? 이것은 무서운 불신앙이다. 살리는 메세지를 우리 영혼에 각인시키면 반드시 증거있는 증인이 될 뿐 아니라 기도의 뜰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수사랑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재앙 지대, 사각지대를 향해 움직여가는 것이다. 그래서 237 디아스포라 미션을 가슴에 새겨놓고 5천 미종족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이번에 아프리카 선교에 공허와 흑암의 땅에 그리스도, 한 줄기 빛이 들어갔더니 아프리카에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볼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수사랑교회는 흑암 경제에 장악되어 경제로 시달리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미라클오케이 어학당이 있다. 김포 지역에는 청소년 센터와 MOU를 맺고, 이번에 우리 장로님이 역사의식을 가진 제자를 찾기 위해 김포시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비행기 표를 받아가면서 싱가폴로 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방의 뜰이다. 그리고 세상의 가장 빈곳이 되어버린 유아, 유치를 위해 유아유치 선교국을 열었고 어린이 세상을 통해서 어린이 뜰을 만들었다. 복음이 들어가지 않으면 정신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오기 때문에 반드시 복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도와줘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무엇인가를 쌓아두려고 하지 말고,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심판을 놓고 나의 헌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237나라가 모이는 현장 속에, 찾아가는 어학당을 통해 사업의 문이 열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말씀에 응답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어린이 세상 학교에 많은 아이들을 보내주실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를 놓고 전도캠프 속에 있기 때문에 완전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출발했다. 또, 우리는 확실한 전환점도 알고 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면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현장이 보이게 된다.
창3장 사건 이후 인간은 심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은혜가 누구에게든지 임하지 않으면 흙덩어리 저주 속에 갇히게 된다. 이 사실을 아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가 전도제자로 훈련에 쓰임을 받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신다. 확실한 전환점이 우리 삶에 있어야 힘이 생긴다.
하나님 일에 개입하면 여유로움을 가질 뿐 아니라 남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예수사랑교회 망대는 창3:15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알파와 오메가가 된 것이다. 이 망대가 세워졌다면 반드시 교회와 언약과 연결되어야 하나님의 역사를 맛볼 수 있다. 교회와 연결되어야 제자도 세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망대, 망대 말은 하는데 교회와 연결이 안되고 언약과도 연결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망대라고는 하는데 귀신의 망대, 사탄의 망대가 되어있다. 우리는 빛의 망대가 되어야 한다.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고 빛을 발하라고 선포하는 망대가 되어야 멋있는 것이다. 빛을 발하라고 망대를 세웠지, 라면만 끓여먹는 곳이면 되겠는가? 빛을 발하는 망대가 될 때 현장과 연결된다. 예수사랑교회가 빛의 망대가 되니까 많으니 기업들이 예수사랑교회를 너무 좋아한다. 빛의 제자들이 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능력으로 사람을 살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우리 삶을 누릴 수 있어야한다. 복음을 받은 자에게 행복한 삶이 없다면 그것은 무효다. 복음을 받은 자에게 행복한 삶이 없고 기쁨의 삶이 없다면 무효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 사람에게는 복음이 들어가야 행복해진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기쁨의 삶을 살면 내가 왜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은혜를 입었는가를 알기 때문에 그분의 나라와 의를 놓고 기도 속에 있는 것이다.
나를 정말 살려야 한다. 우리는 심각하게 병이 든 상태다. 그래서 행복한 삶이 없고 기쁨의 삶도 없는, 무효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몸을 살려내면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고백할 수 있다. 문제에 빠져드는 인생이 되지 마라. 마13:25 ‘문제’ 는 우리가 잠 잘 때 마귀가 뿌려놓은 가라지라고 말씀했다. 사람들이 잠을 잘 때, 기도하지 않을 때, 무시로 성령 안에서 성령충만 하지 않을 때 원수가 와서 자꾸 가라지를 덧뿌리니까 행복과 기쁨, 열매가 있는 삶에서 갑자기 이상한 것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 안에 정말 그 사랑의 리듬을 타고 ‘당신이 너무 좋아~’ 하고 그 분을 노래해야 하지 않은가? 이것이 평상시에 되면, 임마누엘 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늘 현장을 살리겠다는 절대를 마음을 품는 것이다. ‘눅19:10 전도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당신을 따라가는 그 증거로 사람을 살리는 자가 되길 원하오니, 현장을 허락해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주사 형장 속에 영생주기로 작정된 자를 구원시킬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나와 항상 임마누엘로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선포할 때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그리스도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의 영혼이 춤추게 하시고 그리스도 이름을 선포할 때마다 모든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옵소서. 하나님과 제가 원수되었던 몸이 예수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원네스 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으로 미운 사람이든 원수덩어리든 어떤 사람도 살릴 수 있도록 성령충만을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과 내가 1인칭되고, 원네스가 된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보좌의 능력으로 시대 살리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고, 누릴 수 있도록 우리를 축복해주셨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 모든 것을 살려낼 수 있다. 창3:15의 시너지는 엄청난 것이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협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시너지, 상승효과라고 한다. 기도만 되어지면 상승효과가 나나타나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기도가 되면 버릴 것이 보이고, 틀린 것이 보여서 나를 빨리 바꾸는 것이다. 이것만 실천한다면 가정을 살리는 주인공이 된다. 창3:15의 시너지, 협력작용과 상승효과로 구원의 확신이 오기 시작한다. 요일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생명이 있기를 원해서 “예수는 그리스도” 하는 것이다. 에노스, 에녹, 노아, 언약의 계통은 이것을 잘했다. 에노스는 300년동안 그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우리는 몇 년하고 지쳤다고 하지는 않은가? 교회 처음 왔을 때 영적싸움하고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겠다고 소리쳤던 사람들이 어느 날 다 사라져버렸다. 부르면 부를수록 구원의 확신이 온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25시 응답을 갖게 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보좌의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그래서 ‘가난아 무능아 중독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너는 일어나 빛을 발할지어다!’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이 임마누엘, 원네스다. 이 비밀을 누리는 자는 홀로 가는 길에도 하나님이 능력으로 영원히 함께 하시고 모든 것에 넉넉하게 채워주신다.
그런데 이 비밀이 없는 가인의 후손들은 흑암과 혼돈, 공허의 문화를 만들고 자기 틀에 갇혀 결국은 멸망을 받게 되었고, 자녀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서글픈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래서 가인의 후손들은 전부 자녀들의 문제가 심각했다. 우리 예수님도 가인의 후예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할 때, 눅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셨다. 창4:24 가인의 후손들, 가인의 계보들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시를 쓴 것이 최초의 문학이다. 패역한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을 조롱하는 시를 썼다. 그래서 오늘날 문학은 전부 인간을 찬양하고 자랑하는 문학이다.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 제일 멋있다고 하는 것이 문학이다. 그래서 내 맘대로 사는 삶을 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강단 말씀을 찬양하면 그 찬양의 힘으로 모든 영혼을 깨우는 자가 된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시를 쓰면 상태가 전부 이상해진다. 인간을 찬양하고 자신을 자랑하는 문학은 우리의 얼을 썩게하고 몸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가인의 후예들은 전8: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를 짓고도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죽지 아니함으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데 마음이 담대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나님이 “정녕 죽으리라” 하셨지만, 사랑의 하나님이라 바로 죽이시지 않는 것을 보고 가인의 후예들은 이것을 악용해서 죄를 짓는데 마음이 더욱 담대해졌다. 그리고 심판이 없다고 발악하며 하나님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나 에노스나 에녹, 노아는 심판이 있다는 걸 알고 외치면서 그들의 삶에 여호와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오늘날 자기 자랑 속에 빠져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귀신에 홀려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하며 죄를 짓는 일에 마음을 담대히 하는 것이다. 전8:12~13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결국은 심판을 받는다. 정신을 차리고 자기를 진단하면, ‘아, 내가 큰 범죄자로 살 뻔 했구나’ 하고 옳게 깨닫게 된다.
창3:15을 옳게 들여다보면, 뱀 대가리를 깨뜨리지 않는 것,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나쁜 죄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사울이었을 때, 심판받는 것을 모른 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연구만 하고 교리와 교권에 갇혀 롬7:23에 장악된 무시무시한 자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고 살았더니 내 지체 속에서 다른 한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날마다 보았다.” 종교는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든다.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으면 사람의 상태는 늘 뭔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염려와 근심, 낙심과 절망 모든 것이 밀려온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런 탄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울을 불러 바울로 만들어주셨다.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가장 큰 자가 되라’고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사울의 이름을 없애고 ‘가장 작은 자로 살라’는 바울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흙덩어리가 어떻게 큰 자가 되고 강한 자가 될 수 있는가. 창3:15이 없으면 심판의 대상이 되는데 왜 까불고 교만한가. 하나님의 비밀을 알면 낮은 자세로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 이 땅에 무엇인가 쌓아봐야 더 힘들고 피곤한 사람이 된다.
창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라멕이 자기 아버지도 동생을 돌로쳐죽였지만 죽지 않았고, 아담도 정녕 죽으리라 했지만 900년을 넘게 사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절대 괜찮다는 생각에 장악된 것이다. 죽지 않지만 죽은 이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담의 계보,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것은 회개의 시간표를 위해 지정된 자들이었다.
우리가 이 시간표를 갖게 되었다. 회개할 수 있는 시간표를 받고 태어난 자들이다. 그래서 ‘셋’ 이라는 이름은 ‘안정된 자’라는 뜻이다. 회개함으로 인해 안정된 자가 되었다. 회개의 시간표를 가진 자로 태어나 창3:15을 의지하기에, 연약한 자, 원죄로 태어난 자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되어 선택된 자이기 때문에 평안함을 가졌다. 그래서 셋도 에노스, 에녹, 노아도 이 땅에 성을 쌓지 않았다. 그런데 가인의 후예들은 늘 불안하니까 성을 쌓은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성을 쌓아놓을 필요가 없다. 셋의 계통의 사람들은 기계를 만들어 다칠 필요가 없었다. 가인의후예들이 만든 것을 편집해서 창조만 하면 되었다. 예수사랑교회는 여호와의 이름만 불렀는데 모방의 창조자가 되었다. 돈을 많이 모아놓지도 않았는데 노아는 방주를 지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는 이름을 부른 것이다. 임마누엘 되신 그 이름, 원네스 되신 그 이름을 부른 것 밖에 없는데 그들은 형통한 인생이 되었다. 창6:8~9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과 함께 하니까 그 이름을 불렀고, 그분과 함께 하니까 완전한 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분의 세계 속에 들어가려면 창3:15로 의인이 되어야 한다. 창조 세계 속에 아담의 계보, 셋가 에녹, 노아의 계보는 창조 세계 속에 개입되어 피조물을 복종시키는 일, 정복하고 충만하고 다스리는 일만했다. 죄의 결과는 무서운 저주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가인과 라멕은 저주가 임한 것을 보고 두려움에 성을 쌓고 돈을 모으고 기계와 음악을 만들었다. 그러나 창4:25~26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다른 씨를 주셨다. 믿어지는 씨로 잉태되어 예수사랑교회로 부르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100년을 그 이름만 불러도 지겹지가 않다. 영적싸움이 지겹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싶어 한다면 그 사람은 가인의 씨다.
나의 자아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고 가는 사람은 믿음의 씨를 받는 것이다. 셋이 에노스를 불러놓고 “너는 연약한자야, 너는 지구상에 가장 약한 자야. 원죄로 태어났기 때문에 만물 앞에 순간마다 두려움이 올 때마다 믿음의 씨를 네 영혼에 심어라. 네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라” 가르쳤다. 그래서 셋이 에노스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외치게 만든 것이다. “그 이름을 부르면 그분이 개입하시고, 이름을 부르면 너를 부요케하시고, 이름을 부르면 일어나게 하시고,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의 영광이 네 위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때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아프리카 킨샤사에 가서 메세지를 하지 않았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계속 부르라고만 하면서 그들의 마음과 생각이 열리도록 했다. 얼마나 흑암이 장악되었는지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만 불렀는데도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나타났다. 그분들이 세미나를 안 해 본 분들이 아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만 부르면 하나님이 하신다. 그런데 그 이름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명강의만 하려다가 나중에 자기 영혼이 썩어들어가는 모르고 산다.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이라는 뜻이 ‘흙’ 이다. 흙에 생명이 없으면 먼지 보다 못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에 재앙이 오는 이유는 지옥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게 원자폭탄이다. 원자폭탄을 만들어서 미국 사막 지역에 높은 철탑을 올리고 그 위에 원자폭탄을 놓고 수백 키로미터에서 스위치를 올려서 터뜨렸는데 그 때부터 무서운 재앙이 온 것이다. 그 지역은 사막이 되고 풀 한 포기도 안난다고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면 이렇게 지옥을 만드는 자가 되고 평상을 후회하고 고통을 당한다. 창3:15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죄악을 노래하는 자리에 앉게된다.
우리는 남은 자로 살아야 한다. 남은 자는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지 정말 알고 나를 부르신 그분의 일이 시작되어야 한다. 남은 자를 일으켜 세우는 일, 생산성 있는 일을 이제 진행해야 한다. 연약한 에노스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부르며 살도록 하는 역할을 감당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에노스의 사는 날을 형통케 하셨다,
하나님과 동행한 언약의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자들이었다. 창3장으로 인해 인간은 굉장히 연약해진 상태다. 하나님의 힘을 얻을 때 일어날 수 있고 구부러졌던 것들이 펴질 수 있다. 믿음의 직계만이 언약의 사람들로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성경은 믿음의 직계를 통해 은혜를 주시지 혈통으로 움직이지 않으신다. 혈통으로 이뤄졌다면 마1장, 네 명의 여자들은 그 계보 속에 들어갈 수 없었다. 창3:15을 믿는 직계를 통해 하나님은 은혜를 주신다.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말고, 잔머리 쓰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의 직계 속에 계보를 가지고 승리하는 한 시대 리더가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찬송하고 언제나 우리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생기를 얻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의지하고 부르며 그 이름을 날마다 시인하면서 언제나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지속할 수 있는 성령 충만을 우리들에게 더하여 주옵시며, 반짝 신앙은 사라지게 하시고 돌작밭 같은 신앙들은 무너지게 하시고, 하나님 일에 개입하는 자가 되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 속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기대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출입을 그리스도의 문으로만 출입할 수 있도록 날마다 새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한 피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심판에서 빠져나오도록, 영과 진리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선포되는 예배 속에 있어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하시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 그 구속의 사랑으로 만물을 복종시키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생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흙덩어리이기에,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예배에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용을 알고 부르는 자 되어, 문제 속에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삶에서 빠져나와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주시는 25시 응답과 보좌의 능력을 누리며 신앙생활에 여유로움을 가지고 나를 먼저 살리는 기쁨과 행복의 삶 속에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창세기 3장 15절을 믿는 자를 통해 역사하시기에, 언제든지 사단이 있음을 폭로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파수꾼과 망대가 되어 하나님의 일에 개입하여 복음의 능력으로 낮은 자세 속에 현장을 살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