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여정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계획"
(행 27:38-44)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 사도행전 27장 38-44절-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행1:1 “예수는 그리스도”, 행1: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배경을 우리가 이제는 갖게 된 것이다. 행1:8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모든 문제가 이미 끝났다. 육신으로 살면 죽는 날까지 우리의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성령충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힘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운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신앙생활에 갈등을 하는 것이다. 성령충만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이 내 몸에 있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시험만 든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오래했다고 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권능, 성령충만을 상실한 채 점점 쪼그라드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받으면 날로 새로워진다.
아브라함이 갱신하고 생각을 바꿨을 때, 하나님은 그와 동행하셨다. 문제 앞에 우리의 생각을 갱신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그래서 언제나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답을 가지고 요19:30 완전 다 끝내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문제를 끝냈다고 하시는데도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면, 행1:14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시간표를 맞이할 수 없다. ‘아, 이제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응답만 남았구나’ 하고 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 속에 있을 때 모든 것은 풀려간다. 그 때 하나님의 시간표가 오는 것이다. 행2:1 “오순절 날이 이르매...” ‘그 때’, ‘그 날’을 맞이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힘을 가지면 인생에 문제 될 일이 없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직’ 속에 들어갈 때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전도를 주셨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전도로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도다.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이런 전도를 우리에게 주셨다. 나는 어떤 전도를 주고 있는지 빨리 찾아내야 한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내 몸에서 하나님이 주신 전도가 나와야 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쟁쟁거리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해라.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지 말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성령이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문제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주저앉게 하는 불신앙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하면서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하고 문제 앞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고백에 정말 결론을 내려야 한다. 사람들이 이 고백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삶에서 실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심령이 쪼그라들고 알 수 없는 정신적, 육신적 병들이 찾아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나는 이제 다르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를 믿었을 때나, 믿지 않았을 때나 전혀 차이가 없다면 그 사람은 지금 성령을 받아야 할 시간표다.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는가?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마12:28,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더러운 것을 내어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게 된다” 는 말씀을 사실적으로 하지 않고 어설프게 흉내만내면 더 큰 귀신이 들어간다. 마12:43~45 더 큰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된다. 모든 문제 해결자, 예수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다면 불신앙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내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로 믿지 못하게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흐암 덩어리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깨질지어다!’ 우리는 이것을 ‘오직’ 하면 된다. 행1:8은 영적 전쟁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선물이다. 이 선물 속에 모든 것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거있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오직’이 안되면 일평생 전도 캠프 D-day가 없다. 너무 허무하게 살다가 나사로 같은 운명을 맞이하는 것이다. 나사로는 이 땅에서 가장 누리지 못한 예수쟁이로만 살다가 죽었다. ‘오직’을 하지 않으면 나사로처럼 된다. 불신자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어먹는 거지일 뿐이다. 사람들의 눈치나 보면서 구걸하는 인생으로 살면 되겠는가?
“뱀의 머리를 내리쳐라” 창3:15은 구원의 여정을 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다. 그분이 날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그 언약 속에 있을 때 유일성의 응답과 재창조의 능력이 시작된다.
이 비밀을 소유했던 바울은, 그가 움직이는 모든 일이 증인 문서로 기록되었다. 전도와 선교의 경륜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하나님의 절대 목표 속에 절대 시간표가 있으니,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잔머리를 쓰지 않고 개소리를 끊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다툴 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조카와 늘 다투며 갈등하고 시험 들고 종들끼리 싸우고 징징거릴 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생각을 바꾸고 갱신할 때, “아브라함아 너는 동서남북을 바라봐라” 말씀을 주셨다. 세계를 정복하는 생각, 하나님의 생각을 가질 때 인간관계를 뚫을 수 있고 하나님은 그 사람과 동행하신다. 몸이 아프거나 실패 가운데 두려움이 쌓여있다면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창3:15을 믿는 믿음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우리 인생 여정에 전도의 기록은 영원한 축복, 해답, 충격이다. 전도캠프의 D-day속에 있으면 언제나 우리에게 25시 보좌의 능력이 함께 한다. 막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8~19 여러 가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하나님의 절대 경륜 속에서 일어난다. 막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전도캠프의 D-day에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항상 개입하셔서 역사하신다. 늘 육신을 위해서만 살다가 전도캠프에 한 번이라도 결단을 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천년 동안 설교를 들어도 결단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결단이다. 결단이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믿음이다.
결단을 통해 치유와 성장, 변화가 일어난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놈만 있으면 교회는 망하겠다’ 나는 너무 가난하고 무능하고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는 생각으로 중독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내 생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나 같이 가난한 사람만 다니면 교회는 희망이 없고 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인해 교회가 희망이 없고 망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내가 본격적으로 하나님과 연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헌신하지 않으려고 하는 중독된 생각들을 헌신하는 중독자로 바꿨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일에 중독된 것처럼 행동하고 작은 것 하나도 심어보자고 결단했다.
이런 믿음과 생각이 나에게 순간 왔다. 그 때부터 내 신앙은 너무나 달라졌다. 가난, 무능, 더러운 생각에 중독되어 나왔던 습관적 체질이 싹 사라졌다. 나는 이 일에 분명한 증인이다. 강단에서 선포된 말씀을 가지고 늘 결단하는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목사님들이 모인 집회 장소에 가도 “목사님, 구원 받으셨습니까? 성령 받으셨습니까?”당당하게 말한다. 목사들이 정말 결단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 받은 사람에게 결단하는 힘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결단하는 힘이 없다면,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3:15은 신앙생활에서 결단 속에 나를 계속 견인해 가는 하나님의 힘이다. 그래서 창3:15이 처음과 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못한다.
우리는 무슨 결단을 해야 하는가?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결단을 해야한다. 우리 몸에 끊임없이 죄가 왕 노릇 하는 것, 이것이 중독이다. 요일3:8 마귀가 늘 죄를 짓게 한다. 가난으로 사는 것이 죄다. 가난의 저주, 무능의 저주를 빨리 끊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헌신하지 않고 봉사하지 않고 헌금하지 않는 중독과 습관을 정말 끊어야 한다. 가난과 무능, 나쁜 습관의 중독을 끊겠다고 결단할 때 나는 정말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사람이 되었다. 마귀의 일이 무엇인가? 나사로처럼, 거지처럼 사는 것이고, 부자처럼 육신만을 채우며 타락하고 사는 것이다. 내 영혼 속에, 내 삶 속에, 교회 안에서 마귀의 일을 끊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쓸모가 없던 내가 창3:15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지 않는 마귀의 일을 무너뜨려야 한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면 하나님이 나를 책임져 주신다’ 는 그 사실, 그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으면 더 타락하고 이상한 사람이 되고 완악해진다. 생각을 바꾸는 영적 전쟁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이 힘이 온다.
세계복음화를 해야 한다는 절대가 우리 심령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가’ 그 부름에 대한 은혜와 감격에 충만해진다. 행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언제나 전도 D-day 속에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내 것으로 부딪친다. “예수는 그리스도” 해답은 하나밖에 없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끌어다가 어설프게 해석하려고 하면 망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자신의 과거 신앙생활은 망했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행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는 ‘즉시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 자꾸 다른 교양 있는 말을 하려고 하면 광명한 천사, 거지의 영이 떼거지로 붙어버린다. 언제나 우리는 즉시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려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그리스도” 이 말만 나와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오직 그리스도’ 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잃어버린다. 그러면 정신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영적 상태가 병들어버린다. 바울이 그리스도 하나가 없어서 병들었고, “예수가 그리스도” 이 비밀을 갖지 못해 하나님을 오해했다.
행9:21~22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그리스도를 계속하고 오직 했더니 더 힘을 얻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나온다. 다른 방법이 있다고 착각하고 수준 높은 채 하다가는 병들어 이상해 질 뿐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으면 이제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자가 된다. 그러면 바울이 유대인들을 그리스도 앞에 무릎꿇게 했던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시작된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가 그리스도의 능력을 전 세계 심자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무시무시한 어려움과 고통, 죽음 앞에서도 행5:42 하나만 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가르치는 것과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 앞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자 되어야 한다.
행 27:24~25 두려워하지 마라,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다는 약속은 절대 사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말씀은 믿는 자는 일어나게 되고, 빛을 가진 자는 등을 든다는 것이다. 일어날 수 없다면, 창3:15을 우리 영혼에 담는 자 되라. 창3:15 여자의 후손,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 그 음성을 듣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뱀 대가리만 깨면 되기 때문이다.
창3:15의 말씀을 듣는 자, 창3:15의 음성을 듣는 자는 시험들지 않고, 갈등하지 않고, 찌질하거나 쫀쫀하거나 쟁쟁거리지 않는다. 그런데 육신에서 영으로 넘어오지 않으면 아무리 창3:15을 계속 들어도 그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요5:24, 반드시 사망에서 생명의 몸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씀했다. 사망의 몸에 있기 때문에 창3:15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죄와 사망의 법에 눌려서 엉뚱한 곳에 시간을 낭비하고 인생을 허비하면서 영적인 상태는 병들어버린다. 만약 불평하는 사람과 두 시간 정도를 함께 보내면 어느새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사람을 죽이는 사람으로 돌변해있다. 합숙을 하면서까지 창3:15의 메세지를 들어도 들어오지 않는다.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믿는 자가 되면 ‘나는 이제 다르다’ 말할 수 있다.
계3:20 하나님은 문밖에 서서 끊임없이 두드리고 계시는데, 영원한 생명, 새로운 생명을 왜 자꾸 거부하는가? 예수님이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도 사망의 문을 열지 않는다. 왜 그런가? 원죄에 잡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내 기준, 내 생각, 내 사상과 이념 속에 묶여 예수님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세상의 지식을 쌓는데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면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단 한 시간 내는 것도 짜증스럽고 피곤하고 견딜 수 없는 신경질과 알 수 없는 분열들이 올라오면서 온 몸을 쥐어짜고 싶은 것들로 가득하다. 이런 것을 우리 몸에서 반드시 뽑아내야 한다. 다윗이 도망을 다니면서 인본주의를 쓸 때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시간표가 찾아왔을 때 그가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 앞에서 고백했다. “창3:15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다” 이 한마디를 표현했는데 하나님은 시23:2~4의 답을 주셨다. “너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너의 죽은 몸을 새롭게 소생시키고 그리스도 이름을 위하여 언제나 의에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할지라도, 사망이 너를 건들지 못하도록 나는 너를 보호하는 하나님이다.”
인생에 ‘좌절’ 이라는 어둠이 우리 영혼을 파고들 때 어떤 고백을 하는지 내 자신을 점검해봐야 한다. 엘리야에게 큰 좌절의 시간표가 있었다. 국가가 위기를 만났고, 7년의 가뭄 속에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런데 하늘에서 손바닥만한 구름 한 점을 보게 되었다. 그는 그 구름 한 점에 벌써 비를 경험했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실상” 이라고 했다. 병에 걸려 좌절하는 시간표에 있다면, 그 때 창3:15을 영혼에 모시고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인정하고 그리스도 이름을 즉시로 불러라. 그리고 자신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너는 놀라지 말라. 그리스도가 너와 항상 함께 하신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일어나 걸어라. 새 힘을 받으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주신 음성으로 들었다면, 그 음성이 내 몸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하나님 아버지, 저 신경질나서 못 살겠어요, 저 사람 때문에 짜증나서 못살겠어요. 어쩌구 저쩌구...’ 이런 것은 믿음이 아니다. 사단이 내 몸에서 발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부 자기 기준과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를 생각하며 합리화의 옷을 입으려고 할 뿐이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옛 생각들은 산산이 깨질지어다!’
바울과 함께 배에 탄 모든 생명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 음식을 먹었다. 그들이 일단 바울의 말을 듣고 배불리 먹었지만, 내일이 없으니 오늘로 배를 채우고 끝내자는 것이다. 바울은 유일하게 배에 남겨두었던 밀마저도 내버리라고 명령했다.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내버리라고 했다. 그분의 절대주권에 모든 것을 맡기는 시간표가 왔다. 단순히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서 배를 가볍게 하자는 뜻이 아니라 이제 오로지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나님의 힘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마지막 믿음의 고백이었다. 오직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 속에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겠다는 것이다.
행 27:39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그들은 눈물의 음식을 먹고 수많은 생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을 지냈을 것이다.
행27: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이들은 모든 것들을 상실하고, 인간이 의지를 할 말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돈과 권력, IQ, 젊음, 모든 것을 가졌던 자들, 육신적 소욕을 위해 몸부림을 치며 열심을 내고 열정을 가졌던 자들에게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드디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더러운 성질과 센 고집을 꺾지 않아 이런 상황까지 맞이한다면 회개할 일이다. 배가 깨지는 순간 백부장, 선주, 선장, 배에 짐을 싣고 함께 탔던 상인과 군인들, 이 사람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널판지에 걸려 흩어지는 것뿐이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뤄지기에 날마다 내 자신의 생각을 갱신해야 한다.
배에 탄 사람들이 그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 속에 갱신한 사람이 백부장이다. 상식과 기본을 갖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바울의 모습을 본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선포하는 바울,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한 바울을 섬기고, 또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바뀐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살리는 자가 되자. 전도자를 살리자’ ‘교회가 무너져가고 있는 이 시대, 재앙이 들이닥치는 이 시대, 내가 교회를 살리는 자가 될 것이다’ 이 생각 하나에 구원의 길이 열린다. 상식과 올바른 생각만해도, 구원 길이 열린다. 우리가 교회를 살리는 자가 되지 않으면 지구는 희망이 없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곳이 바로 교회다. 이런 축복을 알고 백부장이 드디어 결단했다. 행27: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만 깨질 뿐이라”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말씀이 성취된 것을 보고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듣고 바울과 죄인들을 놓아준다. 결정적 순간에 생명을 존중할 줄 알고 자기 목숨을 내놓는 백부장의 멋있는 군인정신이 나타난다. 자신이 로마로 돌아가서 사형을 당할지언정 죄수들을 저 상태로 죽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마지막 자유를 주겠다는 것이다. 불신자도 생각을 올바르게 가질 때 구원의 길이 열린다. 전도자의 말을 듣지 않은 결과를 생각한 백부장은 마지막 기회에 바울의 말을 들었다.
백부장과 선장, 선주는 바울의 말에 ‘왜’ 라는 질문이 사라졌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 ‘왜’ 라는 질문이 사라져야 한다. ‘왜 교회에서 나만 헌신해야 하는데? 왜 교회에서 나만 청송해야 하는데? 왜 나만 교회에서 교사를 해야 하는데?’ 이런 모습이 사라지고 오직 순종과 겸손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 바울의 말을 따랐던 백부장과 선장, 선주, 상인들은 먹으라고 하면 먹었고, 선원을 살려주라고 하면 살려줬고 밀을 버리라고 하면 버리고 모든 것을 순종했다. 순종을 통해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이 바로 구원의 길이었다. 순종을 가능케 한 것에는 고난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었다. 계속 자기 고집을 부리며 사는 자에게는 내일이 없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이제부터 순종하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바울의 말을 순종함으로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구원 얻는 길을 얻게 되었다. 구원의 여망이 끊어진 삶에서 전도자 한 사람 때문에 275명이 구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는 반드시 지난날을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가장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열등감과 비교의식 속에 시기와 질투로 개소리했던 내가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할 수 있는 생명있는 증인이 되었다.
미항에서 뵈닉스로 가면 큰 일난다고, 절대 가면 안된다고 했던 바울의 말을 생각하며 자신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바울은 창3:15,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언약을 알고 즉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십니다” 하나님의 전도를 체험했다.
미항을 떠날 때 백부장과 선장, 군인들은 흥분 상태였기 때문에 바울의 말을 묵살했지만, 죽을만큼 고생한 이후 바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죽을만큼 고생이 오기 전에 예수사랑교회 강단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내일부터 듣겠다고 미루지 말고 말씀을 들었다면 지금, 당장, 듣고 행하는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듯이, 나는 창3:15을 왜 내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바울이 “지금부터 내 말을 들으라”했을 때 거역하는 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창3:14,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해야 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장본인이 있다고 하나님이 지적하셨다. “네가 이렇게 했다!”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장본인이 사단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사단의 영이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사는 만큼 저주와 재앙에 갇힌다. 여기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창3:15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바울은 어느 시간, 어느 일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을 알았다. 바울은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 6개월 동안 갇혀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흐름과 어떤 여정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창3:15의 언약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기 때문에 절대 초조하거나 긴장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에 때가 있다. 지금 나이에 돈 많이 주면 육신적으로 빠질까봐 안 주실 수 도 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음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묘한 하나님의 선교적 경륜 속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초조하지 말고 반드시 잠잠히 하나님의 섭리 속에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것이다. 전도자 바울 한 사람 때문에 265명의 생명이 무사했고, 육지에 안전하게 다다르게 되었다. 그들은 구원 얻는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가 증인이 되었고, 로마 교회 부흥의 역사를 이루었던 증인들이었다.
미래의 전도, 선교를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꼭 먹어야 한다. 먹고 힘을 내야 한다. 입 맛 없다고 하지 말고, 앞으로 닥쳐올 일들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먹어야 한다. 언제든지 전도와 선교의 D-day 속에 있으면 입맛도 돌아올 것이다. 둘째, 버려야 할 것이 있다. 육신의 소유욕을 버려야 한다. “밀을 바다에 내버려라” 우리의 가장 큰 짐 중의 짐이 육신의 소유욕이다. 이것을 버리는 힘이 있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의 소유욕, 이 고집은 엄청나다. 이런 소유욕을 가진 자들에게 밀을 내버리게 하셨다. 지금, 오늘이 중요한 것이지, 내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육신의 소유욕은 끊임없이 내일과 모레를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생명은 오늘, 이 밤에, 이 시간에 불화살을 맞으면 죽는 것이다. 사망 권세 잡은 자가 쏘면 끝난다. 음부의 권세가 공격하면 무너진다. 그래서 소유욕을 버리고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외치라는 것이다. 행27: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생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남은 밀도 다 버린 것이다. 재산과 같은 피조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개인 한 생명, 한 생명이 중요하다.
행27: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이 일을 사공들이 하지 않았다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기술을 가진 사공을 살려두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이 사공을 반드시 살리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바울에게는 놀라운 지혜와 계시가 있었다. 사공들의 기술로 인해 모든 것을 다 끊어버리고 배의 구실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사공들로 인해 배를 더 안전하게 한 것이 아니라 배의 구실을 할 수 없도록 바울은 역발상을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행27: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 사람들로 인해 배의 구실을 할 수 없도록 모든 것을 다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움직이는 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지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드디어 수영 잘하는 자들을 내려놓고 수영 못하는 자들은 배가 부서진 판자 같은데 올라가서 몸을 일단 추스르고 있으라고 했다. 사공들은 물을 잘 아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데도 힘차게 전진해갔다. 그래서 그들은 섬에 안착하게 된 것이다. 그곳이 오늘날 이태리 끝에 있는 몰타 공화국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반드시 문제의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예배 말씀을 통해 결단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그래서 말씀을 가지고 순리적 기적을 체험하는 생명이 되기를 축복한다. 절대 도망가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사랑 배를 탔기 때문에 절대 죽지 않는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복음의 여정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볼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합니다. 오늘 예수사랑교회호가 구원 얻는 길을 선택한 자들이오니, 저들에게 무한한 성령 충만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언제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성령 충만을 구하는 모든 생명들에게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전도 선교적 경륜 속에 잠잠하는 자가 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결단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 원죄로 인해 내 기준과 생각에 묶여 사망의 몸이 되어 창세기 3장 15절은 들리지 않고 엉뚱한 곳에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야 하는 인생에서 빠져나와 언제든지 하나님의 권능, 예수그리스도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전도와 선교의 경륜 속에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모든 문제 해결자, 예수그리스도가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는 불신앙과 잔머리, 인본주의를 버리고, 창세기 3장 15절로 마귀의 일을 멸하는 영적전쟁 속에 가난과 무능, 도무지 헌신하지 않으려 하는 육신의 중독된 체질로 살아왔던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 생각을 바꾸고 결단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반드시 이루어지기에, 좌절해야 하는 인생의 큰 문제 앞에서도 전도자의 계시가 있는 강단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때를 믿으며 초조와 긴장을 버리고, 전도캠프의 날을 위해 잘 먹어 육신의 강건함을 얻고 육신의 소욕을 버려, 이제는 복음의 여정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체험하는 한 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