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순례자, 바울을 음해하는 종교적 이기주의의 정체"
(행 23:11-26)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우리가 믿을 때 현장에 어떤 증거가 일어나는지 본문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받고 믿으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별명이 ‘준비하시는 하나님’ 곧 ‘여호와 이레’ 라고 한다. 말씀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일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응답의 문을 열어주신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말씀으로 있기를 축복한다.
* 우리는 내 몸에 강한 자를 이길 수 있는 행1:8 성령충만의 비밀을 가져야 한다.
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힘이 없는가? 자기 몸속에 강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몸속에 있는 강한 자를 이길 수 있는 행1:8이 있어야 한다. 나를 이기는 힘, 성령충만이 없으면 죽는 날까지 어려움 속에 빠지게 된다. 성령충만이 없으면 다른 종교를 이길 수 없다. 모슬렘은 무시무시한 살인의 영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테러분자가 되면 천국에서 잘 살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자들도 폭탄을 몸에 두르고 투신한다. 그러면 진저리 처지는 생에서 해방을 받고 천국에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기가 순교하면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테러를 자행한다. 나 하나도 이기지 못하는 연약함 속에 있다면, 그런 자들을 어떤 힘으로 이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그리스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에 올인하면 감당하지 못할만큼 유일성의 응답을 받게 된다.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에 집중하면 우리 몸에 재창조의 능력이 시작된다. 그래서 운명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그러면 빌1:10의 능력이 나타난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오면서, 우리 영혼이 진실해지고, 그리스도의 날까지 허물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빌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는 언제나 능력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해야 한다.
‘나는 왜 안됩니까? 나는 왜 신앙생활이 이 모양 입니까? 나는 왜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합니까? 나는 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을 따라 교회를 와서 그냥 어설프게 앉아있습니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이기는 힘, 성령충만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충만을 받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되면 하나님의 절대 섭리가 시작된다. 에6:1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어느 날 왕이 아무리 뒤척거려도 잠이 오지 않자 신하를 불러다가 역대일기를 읽게 한다. 여기서 그는 모르드개의 공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죽음의 직전에서 아하수에로 왕을 건져냈던 그 공로를 자신이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도 속에서 답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일 하신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기도 속에 답을 가지고 하나님께 구했더니, 하나님은 아하수에로 왕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어 결국 모르드개의 과거 공로를 알게 하셨다.
만약, 이 세상 피는 모든 꽃들이 입이 있고 소리를 지르는 힘이 있으면 우리의 소리는 다 죽었을 수도 있다. 벌, 나비, 새들이 찾아와서 온갖 꽃을 건드리는데, 꽃이 입이 열렸다면 ‘이 나쁜 놈들아!’ 매일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자기 꽃에 침입해 들어오는 벌을 보고 계속 소리를 지른다면 꽃이 꽃으로 보이겠는가? 입을 열지 않기 때문에 꽃이 아름다운 것이다. 꽃에서 꽃으로 옮겨다니면서 꽃가루를 묻혀야 거기서 또 열매도 나오는 것이다. 꽃이 태어났다면, 왜 태어났는지 왜 대낮에 자기 꽃가루를 가져갔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말을 하고, 함부로 말을 한다. 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 속에 있지 않는다.
불가능을 뛰어넘는 최후의 승리자가 된 초대교회 사람들은 딱 하나, 행1:14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자들이었다. 우리는 기도하는 교회로 바뀌어야 한다. 요일3:8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 그들의 밥이었다. 내가 밥을 먹는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이고, 내가 사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다. 이 일이 우리 영혼 속에 있어야 한다. 그들은 마귀의 일을 이기는 습관이 있었다. 우리에게 이것이 각인, 뿌리, 체질화 되면 멋있는 복음의 신사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창1:27~28 반드시 정복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권리가 주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고 충만히 살 수 있도록 권리를 주셨다. 창2:7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셔서 선악과를 따먹게 하는 사단의 머리를 밟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 권리를 상실하니까 거짓말쟁이 사단에게 속아 인생이 무너졌다. 창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너무 허망하게 무너져버리고, 하나님과 함께해야 할 자가 하나님을 버리고 숨는 존재로 전락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존재로 우리를 부르셨음에도 하나님 곁을 떠나니까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직접 부르시는 시대가 왔다.
창3: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3장 사건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놓기를 원하지만 새겨지지 않는다. 창3장의 원죄가 우리를 말씀이 전혀 스며들지 못하는 몸뚱이로 만들어버렸다. 교회에서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훈련을 받아도 가슴에 스며들지 않는다. 그래서 말씀이 스며들려면 기도가 필요하다. 말씀을 의지하여 그리스도 이름을 사용하는 기도를 시작할 때 흑암이 무너지고 말씀이 영혼 속에 담기는 것이다. 창3:15을 따르면, 되어지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뱀의 머리만 깨뜨리면 된다. 창3:15을 따르고 뱀의 머리만 깨뜨리면 된다. 그런 자를 하나님은 세상에 어떤 사람인지 유감없이 보여주게 될 것이며, 땅 끝까지 증인되리라 하셨다.
반드시 창3:15을 따르고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비밀을 몰랐던 사람들은 아무리 성경을 번역하고, 성경을 100독을 해도 재앙과 질병으로 비참하게 죽었다. 우리의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복음으로만 해결된다. 그래서 창3:15을 따르지 않고 뱀의 머리를 깨뜨리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변화를 원하지만 변화를 받을 수 없고, 변화 자체를 너무 두려워한다. 창3장에서 창3:15로 옮기고 싶은데 안 된다. 그래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형벌이 따른다고 요일4:18에 말씀했다. 인간은 반드시 변화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형벌을 받지 않는다. “창3:15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느니라” 변화가 있어야 고후5:17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막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예수님이 오셔서 마4:19 “너희는 나를 따라오너라 그리하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
창3:15을 신뢰해야 변화가 온다. 창3:15로 우리 신앙을 결단할 때 사단의 머리는 깨진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다면 실천해야 한다. 실천에 옮기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데 실천에는 옮기지 않고 신앙고백만 하고 있으니까 마16:23 “사단아!”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신앙고백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아 변화가 없는 삶 속에 “사단아 물러가라!”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래서 불신자를 향해 같이 “사단, 마귀” 라고 싸운다.
롬5:6,8,10이 진짜 우리의 것이 되었다면, 위의 것을 받았다면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위의 것을 받았으면 결단하고 결심해야 한다. 복음의 순례자가 되면 얼마나 멋있는가?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위의 것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셨고, 약한 것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강한 자로 만들어주셨다.
바울은 “예수는 그리스도” 그 하나님을 믿는 날부터 모든 삶이 바뀌었다. “예수가 그리스도” 그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사람을 괴롭히고 잡아 죽이는 이상한 살인의 종교 속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예수가 그리스도” 그 하나님을 만난 이후부터는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기도 속에서 오직 답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움직이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믿었다. 우리는 더 이상 종교 체질에서 괴로움을 당하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하나님 만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연약할 때, 죄인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빌2:6로 오셨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라,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예수가 없이는 된 것이 없없느니라”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 속에는 생명이 있고, 요10:30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는 하나이시니라” 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죄인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십자가의 그 사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셨다고 친히 선포해주셨다. 요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제는 운명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행1:8의 능력을 소유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성삼위 하나님이 하나가 되시고, 막10:45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대속주가 되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빨리 ‘나의 것’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그 대속주의 사랑을 받지않으려고 나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나를 버려야 대속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나를 버리지 못하면 끊임없이 요일2:16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것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지 못하고 그냥 늙어 죽는 것이다. 죽어서 천국을 갔는데 내가 살 집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의 큰 면류관과 멋진 집을 갖고 싶다면 이제부터 하나님의 일에 올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망권세 잡은 사단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지금도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데 우리가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를 불러서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 완악함, 용서하지 못하는 시기, 질투, 열등감 이런 것을 다 내어버려야 한다.
* 본문에, 종교적 이기주의의 정체가 명확하게 나타났다.
바울이 종교 이기주의자들로 인해 체포되고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죄명도 없고 죄목도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가 예수사랑교회 안에서 이렇게 음모를 꾸미는 자가 되면 되겠는가? 바울은 무엇 때문에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지 유대인들에게 어떤 말을 듣지도 못하고 감옥에 갇힌 것이다. 이유가 있다면 단 하나, “예수는 그리스도, 그 분이 하나님이시다” 는 것을 주장한 것뿐이다.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려줬는데도 감옥에 집어넣고, 핍박하고 찢어 죽이려고 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을 바꾸지 않았다. 이렇게 무서운 창3장이 똬리를 틀고 우리 몸에 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은 무작정 바울을 그냥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냥 밉고, 그냥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집안에 예수사랑교회 메세지를 계속 틀어놓으면 자녀들이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나 갈수록 목사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메세지를 틀어놓지 않으면 목사님 얼굴을 못보고 휙 돌려버린다. 어둠이라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메세지를 틀어놓으면 놀면서도 말씀을 들으면서 논다. 그 아이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 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창3장의 저주의 영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 힘이 없고, 사람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새로운 사람만 오면 숨고 울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강단 말씀을 집안에 계속 틀어놔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피부가 뱀 껍데기 벗겨지듯 된다. 아이들에게 버짐 피는 것들도 싹 사라진다. 유대종교인들은 “예수는 그리스도” 라고 외치는 하나님의 사람을 무작정, 조건도 없고 이유도 없이 죽이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아무리 죽이겠다고 외치고, 살기가 등등한 눈빛을 보냈어도, 하나님은 이방인들까지 움직여서 백부장, 천부장들, 심지어 아무 쓸모도 없이 버려진 바울의 생질까지 사용해서 바울을 보호하셨다.
바울은 동족들에게 수난을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제사장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로부터 무시무시한 살인의 광기로 고통을 당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사람을 박해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완악해지면 그 누구도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모인 총회를 가보면 세상 법정하고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무섭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져있기 때문이다.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이 얼마나 동족을 위해 간청하고 기도했는가.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내 동족이 구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열정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저 사람들의 저렇게 되었을까 하는 깊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창3장의 원죄는 무서운 것이구나.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구나. 그래서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려야 하는구나. 창6장 하늘에서 떨어진 네피림이 사람을 짐승처럼 살게하고 농락하는구나. 창11장 바벨탑의 욕망은 무능하게 무너지게 하는 어둠이구나.’ 이렇게 깊이 복음을 생각했다. 그런 가운데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메세지를 주신 것이다. “네가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나님을 증거 했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수많은 자들이 너를 이유 없이 박해하는 모든 것은 원죄로 인해 온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받아 로마서를 기록한 것이다. ‘롬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구나. 율법의 의는 사단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강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무서운 것이구나.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도 못하면서 종교주의자들이 쌩쇼를 하는 것이구나. 롬6:23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구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창3:15이 없기 때문에 사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구나. 롬3:24 죄의 권세를 깨뜨리시려고 그리스도 하나님이 우리를 속량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구나.’ 그래서 창3:15을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떨지마라. 그들이 너를 죽이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너는 담대해라. 네가 로마에 갈 것이다. 로마에서도 나를 증거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음해하고 괴롭히는 자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답을 내는 자가 되라. 이렇게 답을 냈더니 누가 발작을 일으켰는가? 바울이 사랑하는 동족들이었다. 답을 내고 기도 속에 있을 때 우리 주위에 어떤 사람이 사단 짓을 하는지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빌1:10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단의 일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진실하고 허물이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성령충만한 인생으로 가는 것이다. ‘왜 죽이려는 것일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왜 고난을 당하는가?’ 이런 질문이 아니라 이제는 행23:11로 답을 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자가 된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문제 끝났다” 로마로 가는 길에 더 큰 핍박과 죽음의 문제 뿐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보았다.
행23:11의 엄청난 메세지를 받았다면 로마로 가는 길이 멋있게 열려야 하는데 오히려 40명의 자객이 나타나 바울이 죽기 전까지는 먹지 않겠다는 자객 40명이 나타났다. 바울이 죽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며 목숨을 걸고 맹세한 자들이다. 그래도 바울은 행23:11을 믿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떨지 말라. 이상할 것 없다. 담대해라. 네가 로마에 갈 것이다. 로마에 가서도 증언하게 될 것이다.” 이것만 믿고 있었다. 이 한 구절만이라도 믿는 자가 되라. 그는 죄의 몸이 되었지만 위를 바라보았다. 내 곁에서 말씀하신 그분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참된 열심과 잘못된 열심은 굉장히 나쁜 것이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믿는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무서운 사람으로 전락했다. 롬10:2~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창3:15을 모르는 열심은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열심 하나로 자기 의를 내세우는 자가 많다. 말씀에 대한 무지 속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창3:15을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삿대질을 하며 하나님을 위해 십일조도 드리고 금식도 하고 교회를 섬겼는데 이게 뭐냐고 하는 자들이 많다. 우리 안에 열심 내는 그 체질을 바꿔야 한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고 하는데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은가? 예배드리고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웃어주기만 해도 된다.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 하셨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 딤전1:12~13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창3:15을 따르지 않고 뱀의 머리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을 모르면 박해자, 비방자, 폭행자, 독사새끼처럼 살게 된다. 자기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는데도 끊임없이 광명한 천사로 자기를 가장하며 사는 것이 재앙이다. 자유와 해방, 평안과 안식이 없어 삶 자체가 시달림이다. 이것이 우리 온몸을 덮어 병이 되면 흑암덩어리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해방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을 잘못 알면 이상한 열심만 오는 것이다. 나도 과거에는 그 열심으로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금식도 어설프게 하지 않았다. 장기 금식을 여러 번 하고, 다른 사람들은 집에서 잘 때 나는 산기도 하느라 산에서 잠을 잤다. 따뜻한 침대위에서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가 되었다. 어느 날 내 영혼에서 ‘하나님이 없다’ 하는 무섭고 섬짓한 사람이 된 것이다. 늘 내 영혼은 분노로 끓어올랐고 돌출행위와 업다운이 심했다. 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열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열심히 믿으라고 하신 적이 없다. 오로지 나 자신을 이기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감성, 지성, 의지력을 이길 수 있는 복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잘 적용하면 사람이 멋있어진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은 마귀의 일이다.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창3:15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창3:15을 따르면 뱀의 머리를 밟으면 된다는 엄청난 지혜가 나타난다. 그래서 빌3:8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는 걸로 만족하는 것이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다. 암 걸린 후에 눈물 흘리지 말고, 암이 올 수 없도록 방어해라.
바울을 압살하려는 잘못된 열심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맹세를 할 만큼 무시무시한 자들이었다. 율법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바울이 죽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맹세는 해놓고 굶어죽었다는 내용이 없다. 맹세만 했지 먹을 것은 다 먹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제사장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야 한다고 맹세했다. 사람들의 맹세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맹세다.
진정한 맹세는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을 바꾸겠다는 것이 맹세 중 맹세다. 자신을 포기 하지 않는 맹세는 요8:44로 장악되어 마귀가 좋아할 일이다. 자신을 포기하고 창3:15로 결단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자기를 포기했다. 하나님을 죽이려고 하는데도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지 않고 “너희가 나를 죽여야 영원한 생명을 얻고 회개할 수 있으니 나를 죽여라” 하셨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참 제사장, 그분의 역사는 히7:20~21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자신을 희생 제물로 보내겠다는 맹세로 오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맹세를 하지만 예수님의 맹세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맹세였다. 이런 사랑을 가진 자가 되었다면 원망, 불평, 시비, 갈등이 사라져야 한다. 하나님께 자신을 포기하고 “저들을 위해 대속주가 되어주실 것을 이루어주십시오 아버지여” 이렇게 맹세하고 오신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자포자기하는 맹세를 해놓고 오셨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멋있는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음모를 꾸미지 말고 이렇게 찬양해라. 나를 포기하는 맹세가 있으면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고 답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맹세는 자신을 포기 하지 않는 맹세일 뿐이다. 그래서 살인의 광기, 욕망과 욕심이 사람을 휘감아 버린다. 마26:71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예수님을 부인하는데 자기가 맹세를 한다.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면 베드로도 사단의 밥이 된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나는 예수를 모른다!”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만 할 것이 아니라 나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힘, 나를 포기하는 힘이 없으면 사단의 밥이 될 뿐이다. 베드로가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했다.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 으로 말했다. 자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나의 구원자를 사람으로,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마27:74 “그가 저주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해놓고 저주를 한다.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느 날 회개할 날이 온다. 답을 찾으라는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를 포기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된다. 그래서 자기를 지키는 맹세는 하면 안 된다. 나를 포기하는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
* 기도 속에 답을 가진 자가 되면 음모를 꾸미는 현장 앞에서도 하나님의 미스터리한 역사를 맛보게 된다.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한 40명의 암살단은 절대 자기들이 한 그 맹세를 지키지 못했다. 분명히 죽이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예수를 믿는 수만 명의 유대인이 있었고 야고보도 있었지만 그들이 바울을 도왔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도 산헤드린 공회에 찾아갔다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바울의 생질을 하나님이 움직이셨다. 이것이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섭리다. 바울을 죽이겠다고 음모를 꾸미는 그 장소에서 바울의 조카가 그 말을 들었다. 암살단이 있는 그 속에 바울의 조카가 있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세계복음화의 주역이 되었다. 아무리 음모를 꾸미는 자리에 있어도 하나님이 쓰시는 멋있는 일에 참여하는 인생이 되길 축복한다. 그래서 이 조카는 천부장의 철저한 보호를 받는 까지 되었고 바울은 그를 통해 살게 되었다. 천부장은 적을 알았기 때문에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전략을 짜는 지혜까지 갖게 되었다. 이 천부장이 진급이 되어 친위 대장으로서 바울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정말 미스터리하다. 기도 속에 답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미스터리한 역사가 시작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제사장, 바나바, 서기관, 헤롯당의 음모로 만들어진 걸작품 속에 악의 승리한 것처럼 보이고 악의 극치가 불의의 승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역사처럼, 바울을 죽이겠다고 하는 자들이 망하게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신비로운 역사가 현장에 있었다.
내 몸에 와 있는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나를 포기하지 않는 맹세만 하는 자로 전락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주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울을 보고 나를 향해 ‘성령을 받으라’ 할 수 있어야 한다. 성령을 받았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다. 요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것을 하지 않는다. 내 몸에 와 있는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나를 포기하지 않는 맹세뿐이다. 행23: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종교의 음모, 이기주의의 음모는 이렇게 무서운 저주의 영들로 우리 몸에 있다. 이들의 열심은 죽이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사람들도 ‘내가 응답 받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40일 금식 기도를 마치고 금식 끝났다고 좋아하면서 기도원에서 준 찰떡을 먹다가 목에 걸려 죽었다. 작은 떡 덩어리 하나에 목숨을 걸면 되겠는가? 식당에 가면 음식이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먹지 말고 조금만 묵상하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음식을 먹어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사람들의 말과 음모에 휘둘리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받고 믿는 자가 되자. 음모와 계략을 자들을 만나면 결국 이상한 사람에게 끌려 이상해진다. 사람의 말은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가룟유다에게 제사장의 소리가 들어갔다. “너의 선생이 있는 곳을 알려주면 내가 돈을 줄게” 이 소리 하나 들었는데, 요13:2 그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이 들어갔다.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들으니까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생각이 들어갔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이들이 있어도 너는 로마까지 무사히 갈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두려워말라. 담대해라. 너는 로마를 갈 것이요. 로마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될 것이다.” 이 약속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래서 천부장이 470명의 군사와 전쟁을 위해 훈련시킨 짐승을 앞세워 준비를 시켜놨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한 자들이 다 도망을 갔다. 이렇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잡으면 끝난다.
행23:11을 받은 우리는 세계복음화 하는 그 날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그래서 이기주의자들의 음모에 휘말리지 말고, 종교적 신앙, 열심을 가진 자들에게 휩쓸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로서 그 말씀을 믿고 약속을 기다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복음의 순례자로 우리들에게 행23:11의 말씀을 허락해 주셔서 두려워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 주시는 자에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사오니, 이제는 어떤 현장에서도 떨지 않고 음모에 내가 휘말리지 않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교적 이기주의자들 앞에 언제나 담대한 자가 되게 하옵시고, 너는 237 디아스포라를 이루어 갈 것이며 너는 오천 미종족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것이라는 그 확신 속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답을 내며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이 시대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미스터리로 이제는 있사오니 언제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는 자 되게 하옵소서. 인내하는 자가 되게 하옵시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그 말씀을 생각하고 기다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창세기3장 원죄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신앙고백도 하지만 자신을 바꾸지 않고, 무작정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종교 이기주의자들과 같은 모습이 내 안에도 있음을 강단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나를 이기는 성령충만의 비밀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는 창3장의 저주를 무너뜨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몸에 스며들게 하시고, 기도에 힘쓰는 자가 되어 불가능을 뛰어넘는 최후의 승리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내 의를 세우기 위해 자기를 지키려는 잘못된 열심과 맹세, 음모에 휘둘리지 않도록 언제든지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일에 멋있게 참여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