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받았는가"
(행 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사도행전 19장 1-7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과 전도에 올인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정신병이 온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왜 내 몸에 가져야 하는가? 그 복음을 내 몸에 왜 전도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과 답도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 우리 자신에게 정말 질문해야 한다. ‘너는 진짜 하나님의 자녀인가?’ ‘너는 도둑놈이냐, 하나님의 자녀냐?’ ‘너는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맞냐?’ 맞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은가? 도둑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어떤 응답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백성이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정신질환이다. 말이 정신질환이지, 사실은 자신도 모르게 귀신병에 사로잡혀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에게 재앙이 올 수밖에 없다. 이 장로님이 너무 감사하다고 봉투를 내밀길래 담임 목사님과 맛있는 것을 드시라고 다시 돌려드렸다.
*복음과 전도가 내 몸에 있을 때 진정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사람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아, 독생자 하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나를 살리셨구나. 내가 겪어야 할 모든 저주와 재앙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내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구나’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내 몸에서 이것을 계속 시인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영은 자꾸 이상한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를 한다. 이것부터 내 몸에서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를 다녀도 종교 생활을 하다가 사람 상태가 이상해지고 더러워진다.
교회를 다니면 반드시 재앙과 질병, 가난과 무능에서 완전 해방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이 시대 누구인가?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해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신가?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은 나의 보호자, 나를 책임져주시는 분, 우리 앞에 모든 피조물을 복종케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다니면서 찌질하게 하게 사는 나쁜 버르장머리를 빨리 고쳐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몸에 접속된 자들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다. 그래서 그 장로님께 말씀드렸다. “신앙생활 멋있게 하십시요. 그리고 목사님의 보호자가 되십시요. 무한한 축복이 계속 오면 렘넌트를 키우고, 복의 근원적 축복이 계속 흘러 들어오면 한 나라에 RUTC를 건립하는 중직자가 되십시요.” 이 장로님이 복음을 알아들었다. 많은 선교단체를 돌아다니며 헌신하고 봉사해도 헛일이다. 예레미야처럼 하는 박애주의는 헛일이라고 했고, 율법적으로 자기 의를 나타내는 것은 거짓의 아비의 섬기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오직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 창3장 원죄로 시작된 모든 인간의 육신 생각은 사악한 감정뿐이다. 이것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요5:24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사망에 있는 몸을 생명으로 옮기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이 각인되지 않은 불완전한 심령에서 탈출해야 한다.
창3:15에 올인하지 않으면 미완성 교인이 된다. 오늘날 교회는 인본주의만 쓰다가 그런 사람들끼리 만나 싸움질 하고 무너지는 불완전한 교회가 되어버렸다. 아볼로 같은 사람을 만나면 성도 전체가 미완성 교인이 된다. 아볼로 교회는 불완전한 교회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고발한 것이다. 물세례만 알고 성령세계를 모르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구원이 없다. 진정한 성령세례를 통한 방언이 시작되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고백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체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체험을 가지면 모든 문제가 끝이다. 그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자가 되어 “마귀야 가라!” 흑암을 결박하고 내어쫓는 놀라운 하나님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눅10:19,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우리에게 주셨음이라” 이 일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성령충만” 을 받는 것이다. 영적인 눈을 떠야 세계복음화도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려라.” 지금 우리 안에 거하신다. 이것이 성령세례다. 성령세례를 모르고 물세례를 받은 자는 불완전한 교인, 미완성의 교인이다.
고전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것이 교회의 핵심이다. 그런데 고전1: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불완전한 교회에 다니기 때문이다. 미완성 교인이면 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고전1: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세례를 받지 않아도 복음을 가지면 구원을 받는 것이다. 고전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아니고, 사람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이 나가는 것도 아니다. 복음을 1인칭해야 한다. 나는 이 교회 다닌다, 저 교회 다닌다 하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여기에 진짜 생명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올인할 때, 각인 뿌리 체질, 24시 25시 영원할 때, 일심 전심 지속 할 때,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 시작된다.
세례를 강요하지 말고 복음을 강요해라. 복음과 전도가 우리 몸에 없으면 성령세례가 없는 것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임마누엘, 그리스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 힘을 빌려 내 개인에게 전도할 때 놀라운 증거가 시작된다. 남에게는 온갖 말을 다하는데 자기 몸에 전도를 심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내 몸에 각인 뿌리 체질화 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행19: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회개, 세례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는 것이 핵심이다. 교회만 어설프게 다니면서 벼슬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큰일 난다. 요한의 회개와 세례는 종교에 지나지 않는 것, 윤리와 도덕적인 것이었다. 의인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윤리와 도덕이 있는가. 귀신병에 걸려있고 네피림에 온몸이 장악된 사람들인데 이 땅에 무슨 정의가 있는가?
우리 개인은 원죄에 장악된 몸이다. 가문에 흐르는 저주가 우리 안에 DNA로 움직이고 있다. 이 DNA는 성향, 성격, 체질에 따라 뒤집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하나같이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영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운명, 사주, 팔자라고 하지만, 유일하게 성경에서만 원죄라고 말씀한다. 죄의 권세가 사람을 장악해버렸고, 사단의 권세가 그 사람을 종노릇 하게 만들었으며, 흑암권세가 그 사람을 덮었다. 사람 자체가 어둠과 캄캄함에 잡혀 혼돈, 공허, 흑암에 묶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도 모르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불화살을 얻어맞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이런 영적사실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은 왜 당하는지 모른 채 ‘주여, 주여’ 만 찾고 있다. 혹시 내가 얻어맞았다면 내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인지 거울을 들여다보고 확인해야 한다. 교회를 다니고 예배도 다니면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적이 있는지, 헌신을 한적이 있는지, 봉사에 관심이 있었는지, 전도와 선교를 하는데 쓰임을 받은 적이 있는지 확인하고 없다면 정말 자신을 갱신해야 한다. 육신적 의식주를 갱신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된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는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다. 하나님의 계획은 문제를 통해 나를 갱신해서 축복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온전한 회개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에게 온전한 회개를 요구하신다. “근본으로 돌아가라. 너는 창조주 하나님의 메세지를 들어라” 뱀의 머리를 깨뜨려버리라는 것이 그분의 메세지다. 그런데 이것을 깨뜨리지 않으면 내가 뱀 노릇을 하고 사는 것이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네피림 시대 속에 귀신병에 걸려버린다. 그래서 기도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온갖 더러운 생각만 할 뿐이다. 과거에 나도 이렇게 살았다. 나는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명상을 하고 살았다. 육신의 정욕과 육신의 안목, 이생의 자랑을 놓고 명상만 했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심령은 다들 도둑놈 심부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아는 이런 현장 속에서도 달랐다. 창6:8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우리는 명상하지 말고 영적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된다. 나는 기도가 명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눈 감고 있으면 늘 ‘어쩌고 저쩌고, 주시옵소서. 하나님, 옆집에 사는 그 집사를 때려잡아 죽이시옵소서. 우리 남편의 머리를 확 뜯어주옵소서’ 이런 것 뿐이다. 그래서 가정을 귀신의 가정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런 가정에서 자녀들이 자라니까 귀신이 충동에 의해 말을 하고, 결국 가정이 이간질과 비아냥으로 원수가 된다. 죄악이 관영하기 전에 이것을 사로잡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결박하고 내어쫓아야 한다. 악한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이 탄식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 있는 악한 생각, 악한 감정은 성령을 탄식하게 하고 근심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로잡아 버리는 만큼 우리는 행복해진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몸을 접속하면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된다. 창3:15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우리 몸에 접속시키라는 것이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을 우리 몸에 접속하면 말씀되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역사하신다. 말씀이 접속되면 이 땅에서 살면서 전혀 부족함이 없게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복의 근원으로 흘러가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의 산 떡으로, 생명의 빛으로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인생의 문으로 통과하게 하셨다. 우리는 이렇게 부족함이 없는 존재, 복의 근원이 흘러가도록 해놓으셨음에도 믿지 않는다. 왜 다투고 싸우는가? 내가 부족함이 많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은 다툴 필요가 없다. 복의 근원이 되고, 내가 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사신 자가 되면 다투지 않는다. 눅18:17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하셨다. 어린아이는 엄마 아빠가 다 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부모가 부자라는 것을 눈치채는 순간 아이의 폼이 달라진다. 구슬치기를 해도 같이 놀아주는 것에 만족하지 구슬을 따려고 애쓰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맞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맞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받아야 한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우리 몸에서 작동하게 된다. 그러면 이 땅에서 자꾸 갱신하는 것이다. 의식주 문제부터 갱신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 받는다면 우리 삶에 참 안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받은 말씀이 접속되고 그 받은 말씀이 살아 움직여서 우리 삶에 성취된다. 복의 근원인 우리를 통해 흘러나가게 하신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믿으면 창15:1 “나는 너의 방패, 너의 상급이 된다” 하셨고, 창17: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게 하라” 우리 자녀들을 어린 나이부터 언약으로 잡아주지 않으면 고등학교, 대학생 때는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인생의 재앙을 만나야 돌아오는 것이다. 그 전에 언약을 받아야 멋있어진다. 만약 내가 어린 나이에 복음을 가졌다면 대한민국의 혼란의 시대에 엄청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인, 과학자, 지식인, 언론인을 비롯해 세상에 올바른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없다. 전부 자기 생각에 빠져 이념 운동만 하면서 사람들을 나눠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를 심어야 한다. 창18:17~1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언약을 사수하고 오직 복음 운동, 전도 운동 속에 있는 예수사랑교회에 이 복의 근원적 축복이 시작되었다.
가끔씩, 인생에 어려움이 왔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러면 나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라고 한다. 예수사랑교회에서 응답을 받지 못하면 그 사람은 버리운 자와 같다. 하나님의 백성이 맞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받아야 한다. 예수사랑교회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마지막 강단이기 때문에, 예수사랑교회 강단 말씀을 받지 않으면 어디서도 해결 받지 못한다. 목사인 나 자신도 주일이 지나가기 전에 메세지를 다시 한 번 더 듣고 주중에도 늘 팟빵으로 메세지를 듣는다. ‘하나님 나에게 어떻게 이런 메세지를 주셨습니까. 이 메세지 대로 살아가길 원하오니 성령충만을 주옵소서’ 메세지를 들으면 내게서 나올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에 눈물이 난다. 질병의 시대, 예측불허의 시대 속에, 우리는 언제 어느 때 우리 몸에 불화살을 맞을지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말씀을 귀에 늘 꽂고 살아야 한다. 나는 언제나 내 메세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메세지로 듣는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심부름을 한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목사들은 설교를 하러 가는데는 비행기를 타고 가서도 하는데 전도하러 가는데는 5리도 안간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속이 썩는 것이다. 내 몸에 하나님의 메세지는 전도하라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우리의 영이 살고 개인의 종말에서 해방을 받게 된다. 창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그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내 몸에 전도하면 이 말씀이 내 삶에 성취된다.
*성령세례와 방언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회개와 물세례에 잡혀 도덕적 변화와 휴머니즘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정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수준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성령, 그리스도는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사단에게 묶인 것을 풀어내는 이름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내 몸에 계시면 자꾸 묶인 것을 풀어낸다. 행10:38, 마귀에게 눌린 모든 것을 고치는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이다. 그러면 고전14:14에서 해방을 받는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는 힘이 온다.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열광적인 종교 중심의 사람들에게 충고하는 메세지다. 그러면 고전1:17~18의 응답이 온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을 이해하고 전도를 알면 절대 풀리지 않는 정신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복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해 전혀 모른다. 교회만 다닐 뿐이다. 그래서 교회가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예수가 그리스도” 이 하나가 빠지면 교회가 아니고 성령이 역사하는 곳도 아니다. 열광적인 종교심을 가지고 발악하는 수준일 뿐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는 것을 아는 곳이 되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 성령이 임해서 시작된 곳이 초대교회였다. 그런데 유대교인들은 성전 건물만 우상화 해놓고 성령이 임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에 올인하지 않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미완성의 교인, 불완전한 교인만 만들어 낼 뿐이다. 불완전한 교인이 하는 행동은 ‘주여 주여’ 하고, 방언을 한다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고, 개폼을 잡고 명상을 하거나, 성령의 춤을 춘다고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닌다. 그런 것은 복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인간이 받아야 하는 모든 저주를 감당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성삼위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는 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이제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을 내 몸에 전도로 적용시키면 모든 병을 치유받을 수 있다. 그래서 금요철야 예배 때,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 개인의 기도를 통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고, 아침 예배 때는, 우리에게 불화살을 쏘는 사단 마귀 악령, 흑암과 어둠이 존재하기 때문에 말씀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에 집중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혀야 우리가 살아남는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안에 왜 성령이 계셔야 하는가? 예수님이 왜 십자가 대속물이 되어주셨는가? 막10:45 우리는 죄의 권세로 장악되어 저주와 재앙을 받는 몸이 되었다. 그리스도를 내 몸에 모셔놓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죄의 권세, 저주와 재앙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그대로 쌓이게 되고 어느날 불화살을 맞는 날이 온다. 창3장 사건이 터지자마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병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경고하셨다. 죄의 권세는 두려움이다. 인간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인데, 창3장 사건에 의해 사람이 숨는 존재가 된 것이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찾으셨을 때, “내가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했다. “누가 너에게 두려움을 주었느냐?” 하는데 당해놓고도 사단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것이 인간에게 찾아온 창3장의 원죄다. 이 세력이 사람 몸에 움직여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대속물로 오셨다. 이 은혜가 우리 속에 있어야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의인이 되고, 완전한 자가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지금 우리 몸에 대속물로 와 계신다. 요14:6 하나님의 아들이 내 인생 길, 진리, 생명으로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지금 나와 함께 하시면서 요일3:8 “마귀의 일을 멸하라” 고 하시는 그 말씀이 들려야 한다. 그러면 순종과 충성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으면 담임목사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다. 너무 완악하고 싸가지없는 사람이 되어 제멋대로 산다. 삼중직이 내 몸에 없으면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다. 삼중직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때 우리에게 신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래야 나 자신과 세상과 사단을 정복할 수 있다.
행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내가 하나님의 자녀구나’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새로운 방언이다. 우리에게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닌 근본의 치유가 일어나는 진짜 방언 “예수는 그리스도” 이 고백이 나와야 한다. 요즘은 TV에서 귀신드라마가 판을 치고 있다. 과거에는 이간질, 잔머리 쓰는 형태로 귀신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면 요즘은 진짜 귀신이 나오는 드라마를 하고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다가도 귀신이 들어가서 귀신병에 걸린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방언을 해야 사람이 살아난다. 성령충만을 통해서 나오는 방언은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이 고백이다.
바울이 안수하고 흑암을 꺾고 묶인 것을 풀었더니 그들에게 새로운 방언이 나왔는데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 였다. 구원도 못 받은 신학자들이 이상하게 해석해놓은 주석을 보고 ‘방언’ 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말고, 성령충만 했다면 어떤 방언이 나왔을까 찾아내야 한다.
바울이 어떤 안수를 받았는가? 다메섹 도상에서 아나니아를 만나 삼중직의 안수를 받았다. 그래서 바울에게 있던 비늘이 벗겨졌다. 곧 영적인 눈을 뜬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행26:18 자신이 안수를 받자마자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이다. 오직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계셔 3중직으로 3저주를 풀어내었다.
그리스도인의 뜻을 잘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증언적 역사가 있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성령적 체험을 가질 때 내가 가진 지식이 유익이 되고 축복의 발판이 된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증거할 힘이 오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올바른 신앙고백 속에 성령의 체험이 있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바른 그리스도인은 그가 하는 봉사, 수고, 헌신, 헌금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된다. 불완전한 교인, 미완성인 교인이라면 행1:1 “예수는 그리스도” 이 하나로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행2:36에 올인해야 한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 되게 하셨느니라” 내 인생의 구주, 해답자, 내 인생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빠가 되어주셨다. 그래서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 내가 믿어야 할 대상, 내가 고백하고 찬미해야 할 대상은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뿐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삼중직의 권세를 사용할 때 불완전한 교회, 미완성의 교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 보니 불완전한 제자, 불완전한 교인, 불완전한 봉사, 불완전한 기도, 불완전한 찬송, 불완전한 성결로 사람들이 전부 이상해 진 것을 보게 되었다. 성령세례를 모르는 아볼로가 가르친 결과였다. 그래서 미완성 교인을 만들고 열심과 지식, 열광적 종교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게 한 것이다. 행19:2 바울이 그들에게 성령을 받았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그런 것을 들은 적도 없고 느낀적도 없다고 했다. 참 복음, 전도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오늘날 교회의 상태다. 그들의 잘못이 아닌 복음 없는 교역자를 만난 것이다. 나도 과거에는 예수님에 대해서만 체험을 했지 성령이 무엇인지 몰랐다. 신학교에서 삼위일체론을 배웠지만 내 몸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그래서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목사 안수를 몇 년 동안 받지 않았다. 인생이 너무 안 풀린다고 했더니, 자칭 예언자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목사 안수를 받으라고 해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목사 안수를 받으면 개척자금을 준다고 약속까지 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예언이 빗나갔다며 다른 데 주라고 예언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예언자들의 말만 믿고 건물을 얻어놨는데 큰일 난 것이다. 그때 우리 작은 누이가 배 아픈 문제가 해결이 안돼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집 사려고 모아둔 돈 주면 기도해주겠다고 하고 기도했는데 정말 감쪽같이 고통이 사라졌다. 그래서 누나에게 받은 돈으로 교회를 시작한 것이다. 교인들이 이런 것에 속아 목사에게 안수를 받으려고 줄을 서지만 사실 이런 것은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
참 복음, 참 전도를 듣지 못하면 사람들이 어수선하고 복잡하다. 복음 없는 교역자를 만나서 이상해진 것이다. 교회를 하면서도 늘 갈등, 불만, 알 수 없는 공허와 고독에 잡혀있으니까 교회에도 그런 사람만 왔다. 그러다가 그리스도로 충만할 때 김석진 목사를 만났다. 나도 어떻게 설명할 수 없어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만 하라고 했더니 지금까지 따라온 것이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시고 전도자로 키워주신다. 복음 없는 교역자를 만나면 신앙의 벙어리가 되고, 신앙은 있으나 귀머거리가 되고 어느 날 무당이 된다. 요즘은 또 복음 없는 교역자들이 교회를 춤추는 곳으로 바꾸고 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 있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모르는 미완성 교인, 불완전 교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영적 세계, 영적전쟁을 모르면 미완성, 불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끄러운 교회, 넘어지는 교회, 이상한 헛소리 하는 기도들을 하는 교회가 될 뿐이다. 아볼로에게 배운 사람들이 자기 기준의 한계에 봉착했을 때, 바울이 물은 것이다. 행19:2 “성령을 받았느냐?” 우리도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이 사람들은 사실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심을 듣지 못했노라” 이렇게 진실해야 성령도 받는다.
눅3: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인간은 이렇게 진노를 안고 사는 존재다. 누구나 진노 덩어리로 살기 때문에, 그 진노가 언제 자기 몸에 찾아올지 예측불허 속에 사는 것이다. 눅3:8~9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세례요한은 메세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분명 경고했다. 그런데 눅3: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 질문 앞에 인간적 방법, 인문학적 방법으로 답을 해버렸다. 눅3: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례요한에게 윤리와 도덕적인 메세지가 나간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다. 눅3:12~14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이런 말은 모든 종교가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 영적 세계로 들어가지 않으면 전부 다 윤리, 도덕으로 마치게 된다. “내 뒤에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 그 분이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왔다” 였다. 회개하라는 말은 창3:15이 오셨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영을 영접하고 창3:15의 하나님을 정말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 속에는 삼중직 권세가 있다. 저주와 재앙을 없애는 권세, 마귀의 일을 멸하는 권세,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권세, 이 권세가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을 가진 우리에게 있다. 이것이 없으면 복음이 없고, 복음을 이해할 수 없고 복음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전도를 모른다. 이 삼중직이 우리 몸에 있어야 복음을 알아듣는 것이다. 사람이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면 성장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실패 가운데 재앙이 찾아온다. 요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에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진짜 믿느냐” 마리아나 마르다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몸속에 성령, 그리스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도 안 믿어졌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각 개인에게 설명해주시고 마가다락방에 모여 “예수는 그리스도” 를 일심 전심 지속, 오로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것에 힘썼을 때 믿어지기 시작했다.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열심히 회개만 했고 율법으로만 열심을 내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몸에 있는 저주를 안수하면서 풀어줬더니 그들에게 삼중직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 이 방언을 알아듣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내 몸에 있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충만을 구할 때 하나님은 성령충만을 주시고, 그런 사람은 마귀의 일을 멸하게 된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너는 내게서 산산이 무너지고 세포세포 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될지어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이, 말씀의 능력이 내 영혼에 부딪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된다. 이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고 지금 은혜를 주신다. 당신이 이 질병의 시대, 재난의 시대, 종말의 시대 속에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면 그 증거를 가지고 성령께서 예수를 주로 시인하게 하신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알려주는 자가 되었다. 이런 사람은 입과 마음과 생각에서 ‘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죽어야 내가 사는구나. 이 은혜를 창조주 아빠 하나님께로 부터 받았으니 모든 영광을 하나님 받아주옵소서. 생명 다하는 날까지, 땅끝까지 이 소식을 전하는 중직자가 되게 하시고, 이 소식을 전달하는 교역자의 동역자가 되게 하옵시며, 이 복음을 알아듣는 렘넌트를 키우고, 렘넌트를 살리는 중직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 속에 성령에 충만한 중직자가 되어 세계복음화의 주역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받았는가 오늘 우리가 깊이 사실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날을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너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만큼 오늘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제는 예수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영혼에 부딪히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증거가 있는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누구든지 그리스도 에수를 믿기만 하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다는 이 은혜 속에 동참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 예수를 주로 시인할 수 있을 만큼 성령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야 내가 살게 됐다는 그 간증을 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영광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 충만을 받는 한 주가 되게 하옵소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주의 모든 백성들에게 임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삼중직 권세를 가지고 삼저주를 한주간 밀어내다가 하나님의 기이한 말씀의 성취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날 복음의 내용 없이 요한의 회개만 강조하며 윤리와 도덕, 정의를 외치지만 원죄와 가문의 영적문제에 장악되어 있는 것도 모른 채 미완성의 교인으로 전락시키는 불완전한 교회가 가득한 이 시대에,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며 사실적인 복음의 치유가 있는 마지막 강단, 예수사랑교회에 있게 하셔서 부족함이 없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내 인생에 문제가 찾아왔다면, 정신질환, 귀신병에 잡혀 헌신에는 무관심하고 말씀을 무시했던 자신을 인정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근본으로 돌아가는 온전한 회개 속에 들어가 문제가 축복의 발판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받았는지 진실 된 질문 앞에 날마다 그리스도의 영을 영접하고, 내가 당해야 하는 모든 저주를 십자가에서 당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성삼위 하나님의 영, 임마누엘 그리스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복음의 내용을 내 몸에 각인 뿌리 체질화 하는 전도 속에 그리스도의 삼중직이 내 몸에 있어 오직 복음만 알아듣는 자가 되게 하시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증거를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