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 복음화” 이 고백대로 우리 삶은 그대로 성취되고 열리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서 영적으로 즐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요19:30, 창조주 하나님 아빠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다 이루어놓으셨다. 그래서 우리의 할 일은 성령충만 밖에 없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진 자가 성령충만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이 땅에서 세상과 사단에게 엄청난 공격을 당하고 죽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 직전에서야 ‘아, 예수가 그리스도구나’ 고백은 하지만, 살아온 날을 후회할 뿐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이 비밀을 소유한 자는, 이 땅에서 골리앗을 꺾어버리는 엄청난 비밀을 소유한 자다. 다윗은 어린 나이에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은 나의 아빠는 내 인생 여정에 나의 목자가 되어주셨다. 거친 들판을 거닌다 할지라도 해를 받지 않게 하시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할지라도 사망이 나를 엄습하지 못하도록 내 몸에 성령이 나를 인치셨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종교에서 부르는 하나님과 다르다.
예수사랑교회에서 믿는 하나님은 with(위드)의 하나님, 현장에서 언제나 그리스도의 영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사망의 법, 지옥권세, 사단의 권세에서 나를 완전히 해방시키신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신다. 그리고 그분의 계획을 낱낱이 알려주시는 oneness(원네스)의 하나님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어설프게 찾지 말고 예수사랑교회에 주신 진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끌어다 쓰는 하나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몸부림치면서 매달리는 하나님, 시대를 분별할 길이 없어서 이적과 표적, 환상을 보게 해달라고 하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
예수사랑교회가 믿는 하나님은 창3:15, 인간의 근본문제로 인해 영원한 사망의 법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어 그 문제를 해결해주시겠다고 이 땅에 여자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하신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 주, 퀴리오스, 창3:15,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주가 그리스도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구원은 있다가 없어지고, 사라졌다고 다시 나타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회복하고 살면 좋은데, 하나님이 주신 신분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고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얻어맞고 다니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살았던 시골 동네는 골목을 지나 끝 집을 가려면 여러 장애물을 통과해야 했다. 못된 형들이 똥물을 붓고 짚 같은 것을 깔아 놓았기 때문에 아차 잘못하면 발목까지 똥물에 빠져야 했다. 거기를 지나면 선배들이 깡패 같은 얼굴로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래서 몇 번 당해서 집에 들어가니까 아버지가 나에 알져주신 방법이 있었다. 집에 올 때 쯤 되면 ‘아버지’ 하고 부르면 아버지가 나와 주신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를 부르면 우리 누나, 형, 삼촌까지 다 따라 나왔고, 그러면 나를 괴롭히는 놈들이 하나같이 도망갔다. 그때부터 그 놈들이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한 사람 씩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날 골목길에 대장이 되었다. 우리 아버지 능력을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능력을 이 땅에서 활용해야 마귀의 일이 꺾인다.
이미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꾸만 이상한 상태로 무엇인가 느끼려고 한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음성듣기를 원합니다. 표적으로 확인하게 하옵소서’ 이럴 필요가 없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성경의 말씀으로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그 아버지가 진짜다. 성경에서 이미 보증하셨다. 약속 어음을 끊어놓은 것을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내 것이 되는 것이 하나님을 진짜 믿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이 내 것으로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신분을 육에서 영적인 세계로 바꿔야 한다. 육신적으로 몸부림치며 열정을 다하고 생명을 다해 살면서 열심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여인이 성경에 나오는데, 바로 우물가 여인이다. 그는 기분에 따라 신앙생활 하지 않았다. 하루 한 번씩은 얻어맞아가면서도, 낮 12시가 되면 여지없이 야곱의 우물가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던 여자였다. 그 여자를 보고 하나님이 너무 안쓰러워 직접 찾아가신 것이다.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직접 말씀해주셨다. “야곱에게 우물을 파게 하셔서 물이 나게 하시고, 이삭에게 샘의 근원을 주셨던 그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창3:15의 하나님은 영이시다. 너도 영적 세계로 너의 삶을 바꿔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너도 영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롬8:7 육신의 생각은 생각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녀도 인생의 문제가 풀리지 않는 사람은 육신에게 갇혀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정신부터 소생시켜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드디어 들리기 시작하고, 그 말씀을 힘입어 뱀의 머리를 깨뜨리게 될 것이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그러면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의 흘러넘치게 된다. 곧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나의 것이 된다. 그 말씀이 생수가 되어 마실 때마다 목마르지 않게 될 것이다.
나의 아빠, 창조주 하나님이 누구신지 꼭 가슴에 새겨놓는다면, 호흡마다 그분을 느끼지 않아도 그 분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분이 나에게 성령이 내 몸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보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다. 그래서 “성령이 당신 몸에 있는지 없는지 느껴보려고 할 필요 없다” 고 대답했다. 내 몸에 계심을 믿으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냐고 또 물었다. 그래서 “당신이 결혼 한 사람으로서 남편이 꼭 당신 곁에 붙어 다녀야 남편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어디를 갔을 때, 남편이 지금 밥을 먹는 시간이겠구나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 그것처럼 하나님이 나와 늘 함께 하시기 때문에, 정시기도 시간이라도 정해놓고 기도하고 오늘도 나에게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충만 주옵소서 기도하고 고백만 해도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 것이다.” 말해주었다. 꼭 큰 소리로 이놈아, 회개하라 하고 하늘 문이 열리고 불빛이 눈에 들어와서 실명을 해야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창3:15 언약 속에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시겠다고 약속한 죽음이 있다. 내 대신 숫양 되신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이다. 내가 사망의 법에 걸려 지옥까지 가야할 기구한 운명의 저주를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내 대신 죽음으로 해결하셨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신 그분이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몸으로 이 땅에 육체를 가지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이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내 몸에 영원히 함께 하시고 나에게 구원을 주시며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을 담게 하셨다.
그래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을 고백하면 우상 숭배할 필요가 없고, 인본주의, 물신주의에 빠질 필요 없다. 인생이 저절로 풀려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변론할 필요도 없다. 변론하고 싶을 때마다 즉각 즉각 사로잡아 밟고 결박하고 내어 쫓으면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이다. 논리적 변론이 올 때마다 엡4:27 마귀로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커피숍에 들어가서 우리 성도님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살까?’ 갈등하면 틀린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하셨으니 내가 대접해드려야겠다’ 내 가슴이 이렇게 뛰어야 한다. 그런데 성도님을 보고 괜히 미워지고 숨는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무엇이 성령의 역사이고, 악령의 역사인지는 이렇게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겸손한 자세 속에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성령의 역사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이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말씀의 성취자가 되기 때문에 빛의 경제 속에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공급해주시고 채워주시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신다.
사람들은 이런 진리도 없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 “서로 사랑하라” 는 계명은 자신과 관계도 없이, 늘 자기의 육체 우상 하나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며 사단이 말해주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사단의 하나님을 믿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 고 말씀해 주신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라. 원수 맺는 하나님을 믿지 말고 원수를 풀어내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라. 시험들게 하는 하나님을 믿지 말고, 시험들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라. 철학적인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된다.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상숭배다.
창3장 때문에 영원한 저주에 걸려있는 나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 몸에 와 있는 3저주를 풀기 위해 내게 주신 그리스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우리 몸에 와 있는 3저주를 풀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열심히 살다가 죽었는데 영원한 지옥으로 간다. 어떤 대형교회 목사님이 코로나에 걸려 자신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잡히자, 이상하게 죽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교역자와 장로들을 불러다가 임종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이 “열심을 다하여 주를 섬기고 주님의 일을 하라” 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평신도는 죽으면서 온 가족을 불러놓고 “예수가 왜 그리스도인지 너희가 아느냐? 그리스도는 내 몸에 와 있는 3저주를 해방시켜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다. 그 분이 예수님이시고, 죽은 자 가운데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다. 그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 그 이상으로, 문제 속에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담으면 살든지 죽든지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가지면 죽는 것처럼 큰 복이 없다. 그래서 너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이렇게 메세지를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목사와 평신도, 누가 구원인가? 예수님은 죽는 것이 복이라고 했다. 그리스도를 가지고 죽는 자는 큰 복이다. 또 살아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축복을 누리다가 가는 것이다. 창3:15을 가진 자는 “천국이 너희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자라고 말씀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것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충만해지고 그리스도 그 이름에 충만해지면 하늘의 상이 크다고 했다.
*헬라 철학의 본산지 아덴에서 복음과 선교 사상이 흔들릴 만큼 사도바울이 헤매는 모습이 본문에 나타난다.
우리는 인문학 세계 속에서 살기 때문에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어설프게 말하면 자신도 모르게 철학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바울이 그렇게 믿었던 복음의 능력, 전도와 선교의 사상들이 자신도 모르게 흔들려 버렸다. 그래서 바울이 롬8:6~7을 가슴에서 정말 고백한 것이다. “철학적인 생각은 사망이요, 그리스도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철학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고 늘 변론하며 논리로 따지는 말쟁이가 될 뿐이다. 헛소리 하다가 같이 구덩이에 빠져 종교 사상에 묻혀버린다” 철학적인 방법을 시도했을 때 사도바울은 ‘말쟁이’ 라는 별명을 받게 되었고, 결국 아덴 전도는 완전 실패하게 되었다.
창3:15이 먼저 우리 개인에게 능력으로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3:9 자신이 날마다 그리스도께 발견된다고 했다. 무엇을 해야 발견되는가? 요일3:8을 평상시에 늘 하는 것이다. 개인과 가정, 지역에서 해야 한다. 분쟁을 일어나는 집에 들어가서 한 시간 동안 그 사람과 이야기 하면 그 사람도 뚜껑 열릴 만큼 이상한 상태로 그 집에서 나오게 된다. 집안에 있는 귀신의 역사가 그 사람에게도 붙어버리기 때문이다. 늘 그리스도를 부르는 사람과 그리스도를 부르지 않는 두 사람이 점집에 가면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점집에서 나올 때, 그리스도를 부르지 않는 사람에게 귀신이 붙어서 나온다. 불신자 집에는 더러운 귀신이 있기 때문에 제사도 지내고 우상도 섬기고 매일 철학적 신을 논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자기 집에서 함께 놀고 있는 그 귀신을 ‘신’ 이라고 한다. 그래서 귀신들린 집은 집에 우상을 차려 놓고, 도깨비를 금덩이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입구부터 온갖 우상들을 세워놓은 집들이 있다. 그러면 그 집에 상태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날로부터 시달리거나 병이 들거나 이상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 이 고백을 해야 발견된다. 내 몸에서 구원을 느끼지 못하고 성령을 인정하지 않으면 당하는 인생이 된다. ‘믿는다’ 고 말하는 것은 곧 성령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강한자를 결박하는 것을 잊어버려서 부끄러운 인생으로 전락하고 완전 실패하게 되었다.
행17: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삶 자체에 각종 신들을 섬기고 믿고 있는 현장을 바울이 보았다. 어느 교회 집회를 갔는데 그 교회 장로님이 대표기도에 “오 신이시여”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신이 카미사마 같은 신으로 생각하느냐. 우리는 신이 아니다. 불신자들도 신을 다 믿고, 종교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신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똑바로 해야 한다.” 하면서, 하나님이 그날 나를 통해 엄청나게 많은 메시지를 주셨다. 영어에서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God) 과 세상 귀신들이 떠드는 하나님(god)을 대문자, 소문자 하나로 구분해 놓을정도로 어설프다. 한국이 그나마 하나님, 그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축복을 받은 것 같다. 그런데 하나의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산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정말 붙잡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 몸에서 빠져버리면 사망권세, 지옥권세, 저주와 재앙이 그대로 우리 몸에 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어서 가문의 저주를 다 받게 된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자범죄에 대한 대가를 우리가 지불해야 하고, 그리스도가 없으면 우리 자녀들은 망하게 된다. 그 핏 값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의 하나님을 모르고 살고 있다.
행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그런데 바울은 또 알지 못하는 신에다 이름을 하나 더 붙여주겠다는 것이다. 바울도 이렇게 넘어질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모든 성경구절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 끝내버렸다. 당해봐야 맛을 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당했다고 하면 큰 그릇이라고 말해준다. 그리스도 이름 하나만 부르는 인생으로 바뀌면 축복이 시작된다. 그리스도를 가진 우리에게는 문제 속에 해답이 있고 갈등 속에 갱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임마누엘로 소유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면 순식간에 철학적 인간이 되어버린다. 우리 몸속에 있는 인문학의 뿌리가 어디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인문학의 뿌리가 무엇인가? 원숭이가 사람이 된다는 것, 재주부리고 운이 좋으면 대통한다는 수준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결국 다들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성공은 했다고 하지만 결국 이상하게 죽는다. 바울이 창3:15 계시적 하나님에 대한 개념에 혼란이 일어나서 우상을 보고 격분하고 변론을 늘어놓다가 비참해진 것이다. 오늘날은 현대 과학과 미신 철학과 공존하는 현장이다. 유식하고 권력이 있어도, 대통령이 되어도, 굿을 하고 제사를 지내야 하고 이상한 점술 속에 무속인을 데려다가 그의 말을 듣는다.
그런데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창1:2 “이 땅에는 혼돈과 공허, 흑암이 존재한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이것을 알려주셨다. 벧전5:7~8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고후4:4 이 세상 신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영을 갖지 못하도록 혼미케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 영적 세계로 넘어가는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인데, 사단은 딱 하나, 그리스도 하나님만 모르게 만든다.
그리스도가 내 몸에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엡6:16 불화살을 맞는다. 그리스도는 불화살을 소멸시키는 이름, 악한 자들의 모든 언어들을 사로잡아 복종시키는 능력이다. 요일4:18 이 땅은 사단의 공격으로 24시간 두려움이 엄습해 들어온다고 했다. 우리를 창조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내 몸에 없으면 두려움만 엄습해 올 뿐이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주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비밀을 모르고 종교의 하나님을 찾고 믿는다.
영적 세계의 움직임을 모르고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고 찾는 것은 종교 사상에 빠진 것이다. 종교 사상과 종교의 결말은 쾌락, 명예, 철학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의 근본문제 해결이 절대 불가능하다. 종교 사상으로는 인간 영혼에 뚫려있는 혼돈 공허, 흑암을 채울 길이 없다. 하나님의 생기가 이미 우리 몸에서 빠져나와있기 때문에 우리 몸은 큰 구멍이 뚫려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독과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독과 외로움을 노래한다. 아무리 노래를 하고 밤새 클럽에서 춤을 춰도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견딜수 없는 공허가 밀려온다. 술을 마셔도, 마셔도 공허하다. 구멍이 완전 뚫린 것 같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드러누우면 등 전체가 뚫린 것처럼 들어간 것이 뿜어져 나온다. 이 큰 구멍을 메꿀 수 있는 비밀이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사는 날 동안 영적 세계를 알고 마귀의 일만 밟아주면 되는 것이다. 롬8:9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인간은 절망과 자살뿐이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다.
바울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쓴 우상을 보게 되었다. 모든 우상에 별의 별 이름을 써놨는데, 하나만 써놓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거기에 그 알지 못하는 신이 바로 ‘주님’ 이라고 한 것이다. 육신의 흥분 상태가 오니까 이상한 말을 하게 된 것이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그 신이 예수라고, 예수라는 말이 한 참 뒤에 나 나온다. 우상을 보고 격분하여 바울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 궤변적이고 철학적 발상을 늘어놓고, 지식적 재주를 부르는 자로 전락해버렸다. 그렇게 말을 해놓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하자 그들이 더 알아듣지 못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다. “모든 우상을 불태워버려라!” 해야 하는데 애매모호한 말을 하는 것이다.
행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예수님은 “회개하라” 로 끝내셨다. 회개하지 않으면 저주와 재앙이 숯불이 올려졌듯이 네 머리 위에 있어, 회개 하지 않으면 속에서 썩어들어가고, 독사의 새끼가 된다. 그런데 바울이 “회개하라고 하셨으니” 라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할 뿐이었다. 창3:15 메시아, 그리스도로 뱀의 대가리를 깨뜨리라는 선포 메세지가 없었다. 모든 생명들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독생자가 낮고 천한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담당하시고, 모든 문제를 끝내주시고 뱀의 머리를 깨뜨리셨다. 인간의 3저주를 해결하시려고 성령이 지금 함께 하시기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저주에서 해방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이 설명을 희미하게 했다.
행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알지 못하는 신에까지 이름을 지어놓는 이상한 사람으로 바울이 전락했다. 바울의 정신상태도 이상하게 되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고, 우상 섬기면 저주와 재앙, 후대까지 망한다” 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종교사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독생자로 오셔서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라” 선포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늘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단지가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그 뚜껑을 열어보니 쌀이 있었고, 그 쌀을 깊이 파보았더니 그 속에 부처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부처상을 꺼내다가 돌 위에 얹어놓고 큰 돌을 들어서 박살냈다. 우리 형하고 아버지에게만 쌀밥을 주고 늘 나에게는 보리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생쌀을 씹으면서 그 불상을 꺼내 박살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늘 쌀이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무리 빌어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가짜라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스스로 만들고 또 그 위에다가 비는 것은 정말 정신문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으로 착각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을 하는 자에게는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며, 내가 너에게 천국의 열쇠를 준다”는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그 이름만 마음껏 부르면 된다.
행17:25~28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바울이 실수한 부분을 말씀한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설명이 굉장히 불충분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해놓고는 막연한 메세지를 던졌다. 요1:12~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된다. 이 비밀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분명한 메세지를 하지 않았다. 이미 오신 분을 더듬어 찾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메시아,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다.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마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도록 해방시키기 위해 오신 것이다. 모든 저주와 재앙, 지옥권세,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다. 더듬어 찾는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모든 문제는 끝난다. 마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죄의 권세, 사망권세, 사단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믿고 요1:12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마1:23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게 된다.
행17:28 바울이 이제는 구원도 못 받은 시인의 말을 인용한다. 종교사상은 이렇게 우리에게 잔인하고 무섭게 뿌리박혀있다. 바울이 이 말을 해놓고 눈물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모든 철학자들은 범신론을 믿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을 한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신의 아들들이라” 시인이 한 마디 써놓은 이 말을 인용하고 있다.
행17:30~31 그리고 아주 애매모호한 말로 메세지를 마친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이런 메세지를 들으면 ‘그럼 알지 못하는 이 신이 하나님이야? 알지 못하는 신을 주님이라고 부르면 되요? 알지 못하는 우상을 예수라고 불러?’ 이렇게 질문을 해야 하는데 질문도 없고 답도 없다.
그나마 아덴의 몇 사람들은 부활을 더 알고 싶어서 바울에게 붙는다. 행17:33~34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그런데 이 사람들은 로마서 16장까지 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사라져버린다. 종교 사상의 메세지를 들으면 답도 없고 사람만 잠시 따라다니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의 것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종교 사상에서 벗어나, 반드시 복음의 절대성을 가져야 한다.
복음의 절대성을 붙잡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완벽하게 실패한다.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 더러운 것을 내어쫓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지 않으면 세상 이길 하나님의 영적인 힘을 갖지 못해서 이런 사람으로 전락한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렇게 결론 내지 않으면 약해지고 심히 떠는 두려움이 찾아오고 자기 몸속에 성령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종교 사상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알아듣게 하셨다. 고전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철학을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사랑하는 디모데 아들에게 바울이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딤전6:20 “사랑하는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바울과 같이 나도 우리 교역자들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을 더듬어 찾는 종교사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원한다. 그래야 주의 종들 때문에 주의 백성들이 응답과 축복을 받고 후대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훌륭한 인격, 많은 지식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다. ‘진짜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 비밀을 아는 목회자가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우리 예수사랑교회 모든 가족과 이웃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되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철학적 범신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절대성 이 복음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은혜를 우리들에게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창세기 3장 문제 때문에 온 저주 재앙 지옥 권세 사단의 권세를 풀어낼 수 있는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 몸에 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가진 자는 천국이 우리의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으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그 능력을 가지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을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주셨사오니 이제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사용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저들에게 임함으로 말미암아 위로부터 주시는 그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누리고 증거 있는 증인들이 되어 땅 끝까지 이르러 세계 복음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을 부르고 찾고 구하는 자가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졌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회복시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겠다고 결단하는 주의 백성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하나님이 친히 약속한 성령의 충만을 주의 백성들에게 부어주사 세계 복음화 디아스포라 미션을 이루는 증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옵시고 그 후대를 축복해주시며 그 가문을 그 지역을 축복해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나, 지옥과 멸망, 재앙을 해결하신 그리스도,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가문의 저주 속에 내가 받아야 하는 죄의 대가를 완전히 다 해결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몰라서 범신론적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고 마귀에게 불화살을 맞아 두려움 속에 공허를 채우지 못해 철학과 쾌락으로 빠져드는 이 시대, 예수사랑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믿어, 문제 속에 답이 있고 갈등 속에 갱신할 수 있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능력으로 함께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성경 말씀을 내 것으로 믿어, 죄의 권세, 지옥권세, 사탄의 권세, 이 3저주를 날마다 꺾어 열심히 몸부림치는 육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복음의 절대성을 가지고 답 없는 종교사상의 메시지를 끊어 창세기 3장 15절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선포 메시지 속에 어떤 상황에도 기죽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누려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JESUS’ LOVE CHURCH
Une Église Dynamique acceptant la Vision de Dieu comme réponse (Matthieu 28 :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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