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 같은 후대를 찾아 세우는 디아스포라미션"
(행 16:1-5)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예수사랑교회는 지금 하나님의 소원인 디아스포라 미션을 사실적으로 이뤄가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이란에서 한국으로 온 전도사님 가정을 통해 디아스포라 미션이 이뤄지는 것을 보며 너무 기뻤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리더, 디모데 같은 리더들이 예수사랑교회로 계속 오게 될 것이다. 지금 미국은 코로나 보다 더 무서운 마약으로 한 해 10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마약이 점점 강해지면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사람이 죽는 것이다. 미국 유학생들 중 78% 정도가 마약을 접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런 끔찍한 현장의 멸망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준비해야 한다. ‘모든 생명이 복음공동체가 되어 세계복음화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우리는 기도 속에 있어야 한다.
바울이 제2차 선교캠프를 진행하면서 첫번째 만난 사람이 디모데다. 디모데는 성경 속에서 우선순위를 찾아낸 사람이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고 몇 년이 지나 다시 그 지역을 갔을 때, 모든 것에 성장된 디모데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절대 복음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이렇게 멋있게 성장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절대 복음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사람은 반드시 아름답고 멋있고 매력적으로 변화된다. 늙으면 절대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절대 복음을 가슴에 새겨놓았던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는 최고의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렇게 불릴 수 있어야 한다.
딤전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권면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 메세지를 알아듣는 오직 하나님의 사람” 이런 사람이 되면 그 누구도 막을 자가 없고 해칠 자가 없게 된다.
내 몸에서 복음을 전하여 내 삶에 헛된 일을 버리는 사람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 이다. 행14: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복음을 전하는 것은 헛된 일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내 몸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우상숭배하지 않고 옛 사람으로 살지 않는다. 그래서 내 몸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너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몸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런 것에 우리 몸이 잡혀 일평생 사단에게 종노릇한다. 그래서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은 옛 사람을 버리는 일을 해야 한다.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여기서 왔기 때문이다. 욕심대로 행하고자 하는 이 살인의 광기가 사단에게서 온 것이다.
렘10:1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이방 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의 삶을 절대로 배우지 말라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 삶에 전도캠프가 일어나지 않으면 세상 여행을 다니다가 신상,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드는 자가 된다. 사44:9~10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여행을 다녀보면 세상은 온통 우상 장사뿐이다. 이상한 인형, 동물형태를 만들어서 판다. 우리가 세상 피조물을 보고 ‘와~좋다!’ 하면 피조물에게 압도당하는 것이다. 그 때 흑암이 들어간다. 우리는 피조물 앞에 압도당하고 굴복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세상을 보고 감탄하지 말고, 그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탄해라. 세상 자연으로부터 압도당하면 자연을 숭배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영혼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여행을 하면서 헛된 일만 하다가 이상해져 간다.
시115:4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여행을 다니면서 사는 것은 이런 것들뿐이다.
시115:5~8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그래서 사람의 입이 닫히고 벙어리가 되고 하나님께 받은 피조물들을 아름답게 느껴보지도 못한 채 병들어 가는 것이다. 헛되고 무익한 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고 시115:9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말씀하셨다. 우리는 헛된 일을 버리고 남은 생애를 전도캠프에 쓰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만 섬기는 삶의 자리에 있지 않으면 세상 피조물 앞에 굴복당하고 압도당하면서 우상숭배하는 자만 될 뿐이다.
예수님은 우상화에서 벗어나는 길을 이미 알려주셨다. 눅9:23,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언제든지 부인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면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인생이 된다. 고독하고 슬픔의 길을 걸으며 쓸쓸함 속에 고통당해야 하는 이 운명적 저주를 그리스도가 내 대신에 담당하시고 나를 자유케 하셨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제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다.
*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 은 영적인 눈을 떠야 한다.
‘창3:15 메시아, 여자의 후손 예수그리스도의 영으로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는 것은 지성인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은총이 임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유명한 언어학자이자 사람들로부터 굉장히 존경받는 분이 얼마 전 운명하셨다. 그런데 그 분이 죽기 전에 자신이 죽음에 관한 책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고 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이 찾아오는데 죽음 이후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자기가 글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와 있는 십자가의 길이 없다면 모든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은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나, 권력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죽음을 맞닥뜨려야 한다.
그 죽음 앞에서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이 분명하게 나눠지는데,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 “예수는 그리스도” 다. 곧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길 수 있는 권세를 가져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 롬8:9 그리스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주셨기에 감사와 감격을 회복하여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소유해야 한다.
오래전, 내가 신학교를 다닐 때 지식인 동아리를 만들어보려고 무던히 애를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이들이 유일하게 거부하는 메세지가 있었다. 마21:45~46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당시 굉장한 지식인 동아리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잡고자했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여자의 후손 메시아’ 이 말을 너무 싫어한 것이다. 그 때 나는 ‘아, 하나님이 천국 비유의 말씀은 지식인이라고 해서, 무능하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 하나님의 특별 은총이구나’ 이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네 속에 더러운 것을 내어 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케 하였음이니라” 세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구절이다. 죄와 사망의 법에 맞물려서 사람들은 사단에게 종노릇하며 산다. 그래서 세상적인 지식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기 생각대로 되어졌다는 것 때문에 죄와 사망의 법에 대해서 결국은 부인하다가 막판에 이상해진다.
디모데는 5년 전 사도바울에게 메세지를 들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영적인 눈을 떠라” 사도바울은 행26:18 사람만 만나면 이 간증을 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자신이 영적인 눈을 뜨기 전에는 율법으로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십계명의 의를 이루었다고 생각했고 율법에 흠이 없는 자라고 여겼기 때문에, 어둠과 빛을 분간할 수도 없었고 육안으로만 생각을 했고 사단의 권세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었고, 이 말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람이 사단의 권세에 묶여있다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 기업을 얻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가 자기 몸에 임한 것을 목격하고 체험하고 맛을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3년 안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면 가짜다. 종교에 속아서, 잘못된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축복을 못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복음이 들어가면 반드시 그 증거가 사람에게 나타난다.
‘왜 인간에게 재앙이 들이닥치는가, 사람들이 왜 미신, 우상 종교를 섬기면 멸망을 받고 정신병이 찾아오는가, 종교에서 열심히 빌고 왜 각종 질병의 저주가 몸에 찾아오는가’ 바울이 5년 전에 디모데를 만나서 여기에 대한 메세지를 해주었다. 디모데가 이 메세지를 5년 동안 확인하면서 유대인들이 실수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냈다. 자신의 어머니가 유대인으로서 왜 헬라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 그리스도를 못 알아봤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실수라는 것을 디모데가 발견했다. 마리아도 예수님이 자기 배에서 나왔고, 자기 집에서 함께 30년을 생활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한 것이다.
원죄 곧 근본의 문제에 묶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뜨리라는 것이 창3:15이다. 그래서 나를 깨뜨리지 않으면 영안이 어두워진다. 그러면 지식을 보는 눈도 없고 육안도 없다. 본다고 하지만 맹인인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종교의 열심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얼이 빠진 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봤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인간성이 나빠서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다. 창3:15 원시 복음을 놓쳤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이 언약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언약의 흐름 속에 있지 못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창3:15을 모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단에게 종노릇을 하게 된다. 하루만 자신과 영적싸움하지 않아도 인생에 먹구름이 확 밀려온다. 그 먹구름 상태에서 심방도 다닌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까지 흑암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3장을 흑암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언약에서 이탈되면 혼돈과 공허 속에 알 수 없는 정신 문제를 앓게 된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구원을 주시려고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다.
요셉이 영적인 눈을 떴을 때, 창45:5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습니다” 했고, 다윗은 얼마나 영안이 열렸는지, 골리앗 앞에 가서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에 말씀했다. 영안이 열려야 만군의 여호와, 그리스도 이름을 부를 수 있다. 그리스도 하나를 알게 되면 선택도 판단도 다 달라지는 축복을 받는다. 다윗이 어려움을 당할 때, 사울의 친족 중 한 사람인 시므이라는 자가 다윗을 향해 계속 저주의 말을 퍼부어도 다윗의 반응은 달랐다. 다윗의 신하가 칼을 빼고 그의 머리를 베겠다고 했을 때 다윗은 가만히 두라고 했다. 살아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소유한 다윗은 행동이 달랐고, 선택하는 것이 달랐다. 삼하16:11~12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하나님이 해결하실 일이라는 것을 믿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 이름에 흠을 내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고 꺾어주신다. 그러면 우리는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 이 되는 것이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비하인드(behind)맨’ 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앞에 계시고 나는 뒤에 서있기만 하면 된다. 언제나 예수님 뒤편에 서서 성령이 앞서 가실 수 있으면 최고가 된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 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고 뒤에 있는 자를 뜻한다. 그래서 내 자아와 영적싸움을 하고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는 사람은 사람의 일을 도모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언제나 먼저 생각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 바울이 5년 후 루스드라와 더베에 갔을 때, 디모데가 예수님의 제자로 확고히 세워져 있었다.
행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엄청난 핍박을 받고 매를 맞고 환란을 당하면서 교회를 세운 그 곳에서 제자가 자란 것이다. 디모데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진 것이다.
마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너는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우리 마음에 쉼을 얻는 것이 비밀 중 비밀이다. “내 멍에를 메라” 는 것은 절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문제 될 일이 없다. 언제나 예수님이 앞서가시고 우리는 그 뒤에 서면된다. 그런데 ‘내게 영적인 권능이 있으니 내가 가서 싸우겠다!’ 이렇게 예수님 흉내를 내기 때문에 문제 앞에 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만 하면 된다. 그런데 ‘권세 있는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아 나갈지어다!’ 기도를 해 놓고 ‘왜 안 나가지?’ 한다. 내가 하려고 하지 말고 제자의 위치에서 선포해라. 제자는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이 겸손할 수 있다. 목사님들이 교만해지는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 뒤에 있지 않고 앞장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만 들어가야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준 멍에를 짊어지라는 것은 ‘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 는 것이다. 그래서 디모데는 미래의 문을 막고 있는 흑암의 권세와 싸우는 제자로 탄생되었고, 참 믿음의 아들이 되어 바울에게 “내 아들 디모데” 라는 소리를 듣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디모데를 통해 나타나는 축복이 시작되었다.
딤후1: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바울은 그를 자기의 수행원으로, 유대인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미래를 내다보고 생각하고 할례까지도 꼭 받게 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만 할례를 받도록 했다. 디도는 헬라사람에게 참된 자유의 복음을 선포하라고 할례를 주지 않았다. 갈2:3~5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1차 전도 여행 후 예루살렘 총회에서 할례를 폐지한 사람이 바울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준 것이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고 아버지는 헬라인으로, 유대의 법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녀가 유대인이 된다. 자녀들에게 바른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유대 문화와 전통이다. 그래서 유대인으로서 디모데가 유대인들에게 거리낌이 없게 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 전략 때문에 할례를 받게 했다. “나도 할례를 받은 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너희와 내가 살게 된다” 이것을 당당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바울의 신앙은 복음 운동할 계승자를 만들어 전 세계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제대로 증거 하는 증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미 그는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영적 전쟁, 영적대결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너는 나를 본 받으라. 나는 너에게 본을 보였다”는 메세지를 디모데에게 많이 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의 일을 중단 없이 이어갈 진짜 제자가 되라고 부탁했다. 바울이 디모데를 어떻게 보았는지 명확하게 말씀했다. 딤후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는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으로, 그의 가슴에는 늘 바울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딤전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 의지력이 약하면 절대 안 된다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것이다.
고전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디모데에게 불편한 일을 주지 말라고 한다. 그는 굉장히 감성적이고 의지력이 약하기 때문에 뒤로 넘어질 수도 있다. 고린도교회는 깡패를 비롯한 별의 별 사람들이 모였고 음란이 강한 도시였다. 이런 현장으로 디모데를 보내기 때문에 바울이 많은 신경이 쓰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디모데는 바울의 어떤 메세지도 그대로 실천을 했다.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언제나 예수님의 뒤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나의 멍에를 지고 나를 따라오면 쉼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이렇게 약속하셨다. 우리는 진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딤전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병이 생겼으니 자주 나는 이 위장병을 위해서라도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감정적이고 의지력이 약해 스트레스를 잘 받기 때문에 늘 위장병이 있었던 디모데를 하나님이 치료시켜주지 않으셨다. 디모데는 ‘권세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위장병은 나갈지어다’ 하고 마음대로 먹고 제 멋대로 사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그분이 하실 수 있으면 하실 것이라는 믿음 속에 절대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임마누엘로 누릴 뿐이었다.
딤후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나는 확신하노라” 딤후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바울이 편지를 통해 디모데를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알려주는 이유가 있었다. 디모데는 복음의 후계자로 지목될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복음의 후계자로 자격이 있다고 것이다.
행16: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롬8:2을 사실적으로 체험한 자로, 어떤 문제 앞에서도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해방을 아는 자였다. 인간관계 속에서 나를 해방시키지 못하면 절대 사람에게 칭찬받을 수 없다. 반드시 자신과 영적싸움을 하고,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야 사람들로부터 인간관계 속에 칭찬을 받는다. 약4:7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자는 마귀를 대적한다. 마귀를 진짜 대적하면 인간관계는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영적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간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원수로 전락하는 것이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 언제나 인간관계를 넘어설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람을 섬기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칭찬을 받게 된다. 우리교회 어떤 청년이 직장을 다니기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직장은 전부 욕심쟁이 거짓말쟁이, 이간하는 자, 사람을 괴롭히는 자, 한 푼이라도 더 가져가겠다고 하는 불신자들로 가득한데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불신자를 능히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네 몸에 머물러있다면 얼마든지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라. 그러면 나중에 자기들끼리 싸운다. 왜 쟤만 자꾸 시키냐, 네가 뭔데 상관하냐 이러다가 서로 주먹질하고 이상해진다. 그러면 네가 빛이 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이 말을 듣고 현장에서 계속 도전했더니 지금은 연봉이 엄청 올라간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통해 모든 것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사람 관계에 실패하는 것은 전도문을 막는 것이고 미래에 하나님 나라를 굉장히 어둡게 만드는 사람이다.
디모데는 바울이 하는 말에 언제나 “아멘” 이었다. 어떤 이유와 반문이 없었다. 예수님의 제자였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투명한 충성의 사람이 되었다. 고전4: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으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언약의 여정을 따라가면 반드시 민9:22~23 응답을 받는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를 통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주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다는 뜻이다. 복음을 나의 것으로 가지면 교회가 왜 필요한가를 알게 된다. 그래서 디모데는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 이라는 엄청난 말을 듣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든지 그리스도를 아는 자와 인생의 여정을 간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
이런 디모데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과 1인칭 시켰다. 빌2:19~22“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내가 보는 것이 디모데가 보는 것이고, 디모데가 보는 것이 내가 보는 것이라고 전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1인칭이라는 엄청난 말을 했다. 예수사랑교회가 복음 공동체로서 생명 공동체 의식을 가지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서로의 생각이 바울과 디모데처럼 같아야 한다. “그가 말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언약을 붙잡으면 모든 문이 열리게 된다.
복음 전파를 하는데 있어서 디모데는 아주 좋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생산적 기능을 감당할 자로서 하나님이 그에게 믿음을 주신 것이다. 딤후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사람, 디모데는 사랑을 받은 것이다.
바울과 디모데는 절대 소문이 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바울 시대 사람들이 바울을 전혀 알지 못하다가 훗날 바울의 서신서와 그 증거들을 보면서 믿음이 정리되는 축복을 갖게 된 이후부터 바울 신학도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디모데는 오직 바울에게 충성을 다했다. 디모데 때문에 바울 신학이 탄생될 수 있었다. “너 하나님의 사람” 이라는 엄청난 그 믿음을 가지고 복음에 대한 해석을 명확하게 하는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바울이 왜 그렇게 디모데를 사랑했는가? 그는 아주 훌륭하고 충성된 심부름꾼이었다. 바울에게 배운 대로 가르치는 자였다. 그래서 결국 그는 바울의 수행원, 후계자가 된다. 바울을 위해 언제나 희생자가 되었다. 비하인드 맨으로 언제나 뒤에 서서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는 바울을 도왔다. 우리는 복음을 위한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무엇을 정말 잘해야 하는가? 사람을 낚는 진짜 어부가 되어야 한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 시대 우리는 전도 제자로 탄생 되어야 한다. 우리가 반드시 걸어야 할 길에 대해서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눅9:20에도 똑같이 기록되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나님의 그리스도 시니이다” 이렇게 분명히 고백했는데 고백한 사람은 눅9:23에 설 수도 있고, 마16:23에 설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사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꾸짖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가지고 조급해하며 예수님께 대들면 안 된다. 언제나 예수님의 뒤에 서서 고백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봐야 한다. 마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눅9:23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 진짜 예수님을 따라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에게 삼중직을 사용하는 것이다. 자꾸 조급해하고, 하나님의 계획으로 생각하지 않고 육안으로만 보고 육신의 생각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이런 것을 멸하지 않고 인생을 살면 보는 것이 보는 게 아니고 맹인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어둠에 빠져버리게 된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 이 되려면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한다. 내 몸에 와 있는 죄의 권세를 깨뜨리면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 자연 앞에 압도당하고 ‘우와, 바다야, 너무 좋다!’ 이렇게 하지 말고 나를 굉장히 힘들게 하는 사람을 보고 ‘아우 좋아라!’ 하면 바다가 주는 평안이 아닌 진짜 위로부터 오는 평안을 누리게 된다.
한주간, 디모데 같은 후대를 찾아 세우는 디아스포라 미션의 사역을 감당하는 제자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들에게 하나님 말씀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직 너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이제는 실천이 가능해지는 능력을 소유했사오니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그 축복 속에서 사람 관계를 승리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옵소서. 그래서 디모데 같은 후대를 만날 수 있는 축복을 저들에게 허락해 주옵시고, 디모데 같은 후대를 찾는 생명들이 되게 하옵시며, 다음 세대를 위하여 그들을 세우고 디아스포라 미션을 남기는 생명들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에게 우상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허락해 주셨사오니, 복음을 가진 자로서 헛된 일을 버리는 생명들이 되게 하옵소서. 헛되고 무익한 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는 생명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원죄로 인해 종교적 열심만 있을 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영안이 어두워지고 사탄 에게 종노릇 하며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야 할 나에게, 창세기 3장 15절로 영안을 열고 만군의 여호와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축복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만 섬기며 살아야 하는 내가 세상을 보고 감탄하며 피조물에 압도당하여 우상숭배 하는 헛된 일을 버리고, 내 몸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 영혼에 관심을 두고 내 삶에 전도캠프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문제 앞에 조급하며 사람을 정죄하고 인간관계를 원수 맺는 옛 사람의 체질을 무너뜨리고, 내 안에 죄의 권세를 깨뜨리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며 하나님을 앞에 두고 나는 언제나 그의 뒤에 서서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만 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바울의 말에 어떠한 반문도 없는 절대 충성으로 복음 운동할 계승자가 된 디모데와 같이, 나 역시 강단 말씀과 담임 목사님의 말씀과 명령을 따라가며 절대 복음 속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불릴 수 있는 멋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미래를 생각하고 복음의 후계자를 세우는 자,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