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막을 복음으로 재건하는 디아스포라 미션"
(행 15:12-21)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신앙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창3:15 밖에 없다. 창3:15은 영원한 것이고 창3:15이 바로 복음, 기도, 전도다.
*창3:15을 가지고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다. 나를 속이는 ‘부정(不淨)한 것’ 을 깨뜨려야 한다.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하는 흑암은 사람 몸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3:15의 미션을 주셨다. 우리를 부정(不淨)하게 하고 이 땅에서 멋있게 살지 못하도록 심령을 장악한 사단의 세력을 깨뜨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이후 광야 길에서 그들에게 바로 회막을 만들라고 하셨다. 회막에 모여서 창3:15을 듣고 각인하라는 것이다. 창3:15이 각인, 뿌리, 체질되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네피림으로 살아야 한다. 아무리 영적인 메세지를 많이 들어도 육체로 전락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늘 육신의 생각에 머물러있고, 거듭나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요3:5 “거듭나라” 였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회막에 모여 말씀을 계속 듣게 하셨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애굽에서 탈출할 수 없었지만, 문설주와 인방에 유월절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바를 발랐을 때, 출애굽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각인, 뿌리, 체질화 시키셨다. 그런데 이 창3:15을 각인, 뿌리, 체질화시키지 않은 사람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하고 요단을 건너지 못했고, 원망과 불평, 시험, 갈등에 묶여 광야에서 죽었다. 나를 속이는 부정한 것들을 깨뜨리지 못하면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육체에만 머무르게 된다.
그들이 회막에 모일 때마다 무엇을 보았는가? 언약궤를 보았고, 만나 항아리를 보았다.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먹을 것이 계속 공급되어도 그들 속에서는 늘 부정한 것들이 솟아올랐다. 부정한 것을 깨뜨리고 버리면 되는데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음에도, 하나님의 영원을 부정하게 만드는 사단의 세력을 깨뜨리지 못했다. 그러니 기도의 줄이 없었다.
창3:15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힘,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는 기도의 힘이다. 그래야 하나님과 통신장애 없이 즉각 하나님과 임마누엘로 함께 한다. 그래서 생명을 구하는 영적인 힘을 공급받으라고 회막에 모이게 하셨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힘이 없으면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통신 장애만 일으킬 뿐이다. 그러면 나를 속이는 부정한 것을 버리지 못해서 하나님의 미션에서 이탈되는 어리석은 자가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의 후대와 미래는 불행해지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날마다 징징거릴 뿐이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나쁜 것이 업다운이다. 감정조절을 못 하는 사람은 귀신들린 세력으로부터 심령이 빼앗기게 된다.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사람 말에 발작증세를 일으킨다.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의 말을 가지고 사람들은 좌지우지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몸에서 세밀하게 작동되지 않고 들리지 않으면 세상 거짓말에 속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믿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모든 것들이 회복되는데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사는 만큼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운명을 바꿔야 영적인 병에서 해방을 받는다. 부정한 것을 버려야 운명을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놓으셨음에도 우리는 이 권세를 사용하지 않고 산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외쳤던 베드로가 벧전2:9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왕권과 제사장권, 선지자권을 주셨다고 분명히 말씀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삼중직,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지 않으면 나를 속이는 부정한 흑암을 버리지 못해 운명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는 생명 구하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진리 속에서 자유함이 와야 한다. 딤전2: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음이라” 회막에 모여서 믿음과 진리를 배우면 요단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영적 재앙을 보는 눈이 열려 있으면 나를 속이는 부정한 것을 계속 깨뜨리게 된다. 그런데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면 개인은 아무런 힘이 없다. 육체적으로만 발악할 뿐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무슨 말을 들으면 초월하는 힘이 없어서 늘 어둡고 흑암으로 긴장된 삶을 사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으로 답을 낼 수 없는 것이다. 늘 발목이 무엇인가에 묶인 사람처럼 어떤 삶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창3:15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사람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힘을 가진 자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으로 은혜를 받지 못하면 창3:15, 마16:16로 은혜를 받지 못하면, 신앙생활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만 짊어지는 것이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창3:15, 마16:16을 거부하지 않고 예수님께로 오면 쉼을 얻게 된다. 행15: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창3:15이 없어서 나를 속이는 부정한 것을 깨뜨리지 못하면 늘 시험 속에 빠진다. 늘 시험 들고 쟁쟁거리고 부모와 자식에게까지 멍에를 짊어지게 하고 자기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멍에를 짊어지게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라고 칭하는 사람은 모든 시험 거리를 초월한다.
고전12:2~3 우리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끄는 그대로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다. 육체의 더러운 우상에 끌려가는 대로 끌려가는 자가 아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예수를 저주할 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를 저주하는 자가 있다. 늘 시험드는 사람, 예수그리스도로 인생에 답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를 저주하는 자들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예수를 주로 칭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를 저주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그리스도로 인생에 답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를 저주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 성령이 아니라 그 사람은 악령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믿고 징징거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 전도 하나 못하고 죽는다. 자기에게 전도가 되어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먼저 알아본다. 너무 멋있다고,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상대방이 먼저 알아보는 것, 그것이 바로 전도다. 바로왕이 애굽에서 요셉을 알아보았다. 창41:38 요셉을 향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 라고 했다. 내 모습을 보고 감동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감동은 커녕 흑암만 만들어내는 생산공장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그들의 후대와 미래는 성령의 능력이 없어 아무 힘도 없이 그냥 무너져 버린다.
고전3:16 예수를 주로 칭하는 사람은 자신의 몸이 구별된 하나님의 성전, 구별된 임마누엘이 되어야 한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신에 감동된 자가 되어야 한다.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면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능력이 있어야 한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 받으라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를 왜 믿지 않는가?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서 어찌 마음에 근심하는가? 믿지 않기 때문에 근심이 오는 것이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 왔다고 오히려 감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무엇이든지 축복이 되어야 한다. 문제, 시험, 갈등, 위기, 모든 것이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이 믿어진다. 그런데 문제만 오면 주저앉고 갈등만 오면 시험 들어있다면, 정말 나를 부정하게 만드는 사단의 머리를 무너뜨려라.
복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씀을 전해주려고 준비만 하지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말씀을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씀의 능력을 사모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으려고만 하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되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성령의 역사가 반드시 우리 몸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늘 충만해진다. 하나님 은혜에 강한 군사가 되면 세상 사람들이 감당치 못할만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누구에게 표시하지 않고 내 몸에서 나와 영적싸움하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육신적 문제로 내 영혼과 심령을 상하게 만들고 내 인생을 더러운 것에 시간 낭비하게 하는 모든 질병의 저주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 지어다!’ 이렇게 영적싸움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구원받은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마누엘로 나와 함께 하신다. 이렇게 성령 내주, 인도가 있는 자는 기도의 줄, 하나님과 동행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이렇게 쉬운 진리가 있는데 자꾸만 ‘나’로 살기 때문에, 성령의 내주를 인정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사람이 배은망덕해지는 것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행1:8 기도의 줄을 늘 잡고 있어야 한다. “너는 오직 성령충만을 받으라. 성령충만이 네 몸에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영적인 병에서 해방을 받고 자신을 속이는 부정한 것을 깨뜨릴 것이고 운명을 바꿀 것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사람은 인도를 받게 되고 행복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으로 인도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생활에 답을 갖는 것이다. 문제는 축복이고, 갈등은 갱신이고, 위기는 기회가 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답이 없고 그리스도에 결론을 내지 못하면 손해만 보는 인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다. 한평생 예배 드렸다고 하면서 손해를 보고 살면 되겠는가? 성령을 근심시키면 결론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성령인도를 받기 소원하고 성령께서 역사하기를 기다리고 설렘 속에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런데 성령 내주, 인도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면 내 인격으로 살아야 한다. 내 인격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불신자 6 가지 상태가 우리 몸에서 그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로 살 뿐이다. 나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고 교회를 속이는 거짓말쟁이로 산다. 또 욕심쟁이로, 욕망의 칼춤 속에 살인의 광기를 가지고 비진리만 추구하는 어설픈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러면 자범죄가 찾아온다. 가문의 흐르는 저주로 인해 자범죄가 일어나는 것이다. 저주의 세력이 내몸에 붙어버리니까 정신의 문제가 오고 삶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삶의 균형이 깨지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생각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있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쓰고, 없는 사람은 얻어먹으려고 돌아다니며 산다. 결국 그 핏 값을 다가올 미래와 후대에 남기고 가는 위험한 재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는 전도의 열매가 없다. 신앙생활을 내 인격대로 하면 절대로 전도의 열매는 나오지 않는다.
모든 말씀으로 답을 내면 삶에 참 평안이 시작된다. 요14:26~2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리스도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구약의 말씀이 사복음서로 연결이 되고, 모든 말씀으로 답을 내는 삶이 된다. 그래서 우리 영혼에 참 평안, “샬롬” 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평안이 없으면 편견과 천박함 속에 살 뿐이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처럼 돈만 좋아하고 세상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민16장). 눅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운명을 바꾸지 않는 사람은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나를 속이는 부정한 것을 깨뜨리지 못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성령의 인도, 내주, 역사를 따라 참 평안으로 나를 다스리지 못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나를 낮추고 오직 그리스도만 받아들이는 자가 되라.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은 은혜 속에 강한 군사가 되기 위해 죄인 중에 자기가 괴수라고 했다. 윤리적, 도덕적,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 자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조금만 무시당하는 말을 들어도 기분 나빠 하는데 바울은 스스로를 그리스도 앞에서 낮췄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예수를 핍박했던 자였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내가 인정합니다. 내 몸에 영원히 함께해주옵소서.’ 이제부터 정말 나를 부정하게 만드는 흑암을 버리고 예수그리스도만 받아들이는 자가 되라. 바울은 죄인의 괴수인 자신은 오직 십자가, 예수그리스도로만 해방받을 수 있다고 고백했다.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렇게까지 낮은 자세로 이 땅에 오셨다. 십자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생명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성령을 모독하는 자다. 막3:28~2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십자가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 삼중직을 모독하는 자, 행복이 없으면서도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는 자, 늘 시험 들어있으면서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기를 해방시키지 않는 자, 육신적으로 쟁쟁거리면서도 요14:6 길과 진리, 생명 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십자가 보혈의 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곧 삼중직을 모독하는 자다. 그리스도가 곧 성령, 성삼위 하나님의 능력, 삼중직이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내 몸에 적용하지 못하면 이 땅에 살아가는 날 동안 신앙생활에 전도 열매 없이 살게 되는 것이다. 전도는 영원한 것인데, 자신에게 삼중직으로 전도하지 못하니까 영원히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창3장으로 무너진 성막을 복음으로 재건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롬5:12~14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죄로 인해 들어온 이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우리에게 성령, 그리스도를 주셨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모든 인간은 사망이 왕 노릇하며 하나님의 영원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싸움이 안되고 육체로만 살아간다. 육체로만 사는 옛 사람을 깨뜨리지 않으면 사망권세 잡은 자가 왕 노릇하여 사는, 비참한 인생이 된다.
행15:24~25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사망이 우리 몸에 왕노릇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의 종들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영원한 전도자의 길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한다.
행15:7 우리 입에서 “복음의 말씀” 이 나와야 한다. ‘오직’ 이 되어야 성령인도를 받는다. 어떤 오해를 받을 일을 해도 변명하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해라.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누가 이간하고 욕을 했다고 해도 “예수는 그리스도” 하는 것이다. 운명이 바뀐 자는 하나님이 나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가지고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래야 행1:8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면 오순절의 역사가 일어나고 인생 여정에 세계복음화 하는 만남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행3:6을 부르는 것이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노니 그리스도 능력으로 힘을 얻어라.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노니 쟁쟁거리지 말고 나를 속이는 부정한 모든 흑암 조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깨질지어다!’
*예수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자를 괴롭게 하지 말고, 모든 자들을 구원을 받게 하는 디아스포라 미션을 성취하자.
예루살렘 공회의 결론의 내용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데 왜 신앙적 문제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냐는 것이다. 할레를 받냐 안 받냐, 이방인들하고 먹냐 안먹냐 이런 이상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고발했을 때, 베드로도 “이방인들이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영적인 병들이 치유 받고 운명을 바꾸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인생에 답을 내는 것을 보았다” 고 증언했다. 예루살렘 총회장인 야고보가 이 메세지를 계속 듣고 있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이지만, 씨는 달랐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야고보는 남자의 씨로 태어났다. 그래서 예수님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 이라고 했다. 그런데 카톨릭에서는 야고보를 예수님의 친동생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마리아를 성모(성모)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톨릭은 온갖 질병으로 시달리는 것이다. 아무리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도 삼중직으로 자기 몸을 풀지 못하기 때문에 사망이 왕 노릇해서 질병에 시달리는 것이다. 야고보는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스도로 얼마나 기도했는지 무릎이 낙타처럼 되었다고 했고, 예루살렘 총회장으로서 전 세계 전도운동을 위해 영적싸움하는 자, 강한 기도의 사람이라고 요세푸스에 기록했다. 그래서 야고보는 약4:7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자는 마귀를 대적하는 것” 이라고 말씀했다. 기회만 있으면, 틈타고 들어오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영적싸움을 놓치는 순간 위험하다는 것을 야고보는 알고 있었다.
행15:12~13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베드로의 현장 속에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권능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야고보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의 말을 마쳤을 때 드디어 입을 열고 “내 말을 들으라” 했다. “말을 마치매.. 들으라” 는 짧은 말 속에 야고보의 겸손한 자세를 볼 수 있다. 우리도 야고보와 같은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 당시 야고보는 엄청난 권위를 가진 자였다. 예수님과 33년을 같이 살았고, 예루살렘 초대교회 총회장을 맡은 자였기 때문이다.
행15: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야고보가 스데반의 환란으로 흩어져 각 성에서 복음을 전한자들의 그 현장을 직접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방 사역을 어떻게 움직이고 계신지에 대해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정확하게 설명해주었다. 야고보는 베드로의 메세지도 듣고 또 예수 믿는 유대인들의 고소한 내용도 확인하고 바나바와 바울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여러 이적을 듣고 구약 성경을 인용해서 말씀을 전했다. 암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취되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역사하시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역하신다는 것을 구약의 말씀을 분명하게 찍어서 행15:16에 말씀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마16:16로 오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요19:30 다 이루시고, 마28:18~20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이 사역하신다는 것을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계속 되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설명한 것이다.
구약에 기록된 말씀, 신약에 예수님이 이루신 말씀, 그리고 사도들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선포하는 그 말씀으로 “오늘” 을 보았다. 오늘날 성경의 말씀을 “오늘” 로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강단 말씀을 통해 성경의 말씀을 “오늘”로 보고 듣고, 오늘 속에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것을 믿으면 예배 때 말씀을 듣다가 여러 이적이 일어나게 된다. 야고보는 구약에 주신 말씀이 전도자 바나바와 바울, 베드로를 통해 지금 성취되고 증거되고 있음을 확신하며 메세지를 선포한다. 그들의 역사는 주관적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그 증거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
행 15: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역을 보는 통찰력과 성경의 증거를 들여다본 이후 자기의 의견을 명확하게 말했다. 복음,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데 이제 이상한 말 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을 너희도 보고 믿으라고 한다.
행15:20~21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그러면서 신앙문제와 식사문제는 살짝 구분해놓았다. 먹는 것은 신앙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바나바와 바울을 고발한 유대인들도 실족시키면 안되니까 식사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한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모든 생명이 구원 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나 율법주의자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이렇게 메세지를 했다. 음행, 우상숭배, 목매어 죽인 짐승 이런 것은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화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도 모세오경을 읽기 때문에 이런 것은 더럽고 가증하고 추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들이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 많은 사람이 부적 쓰는 사람들한테 가서 돈도 주고 쌀도 주면서 부적을 하나씩 가지고 다녔다. 그 부적을 가지고 있으면 힘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부적을 사기 위해서 돈을 달라고 했을 때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있었다. 도깨비들은 부적이 뭔지도 모르고, 귀신들은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부적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 그 말씀이 내 인생에 답이 되었다.
우리 인생에 “예수는 그리스도” 그 외에는 가질 것도 없고 중요한 것도 없다. 아무 필요 없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야고보는 말씀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나를 속이는 부정한 것을 깨뜨리고 버리는 자, 운명을 바꾸는 생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탕자 비유로 우리에게 이미 말씀을 주셨다. 집 나간 탕자가 모든 것을 다 탕진하고 도저히 살 수가 없을 때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 집에 가면 먹을 것이 풍성하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 집에 가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머슴 취급을 당해도 아버지 집으로 가리라고 결단하고 집을 갔을 때, 과거를 물을 필요도 없었다. 아버지는 죽었던 내 아들이 살아났으니 잔치를 배설하고 소를 잡고 반지를 끼워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새 옷을 입혀주었다. 아버지의 마음은 탕진하고 왔어도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내 아들’ 인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아빠로만 불러주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 주신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나를 구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로만 불러주라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 인생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셨음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아버지 품에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 그래서 지난날 약점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 안에서 하나님의 힘을 얻는 생명이 되라.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는다. 1초 전도 지나간 과거다. 과거 때문에 무엇을 따지려고 하고 시험 들고 상처로 인해 용서하지 못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 안에는 절대 장애물이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없으면 사는 것이 장애다. 통신 장애만 오고 자꾸 단절되어 짜증 나는 일들만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셨다. 사람이 아무리 이상해도 교회 와서 복음을 들으면 하나님은 어느날 축복해주신다. 인간의 문제는 그리스도로만 해결되기 때문에 그 사람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가면 반드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은 교회 오지 말라고 한다. 이상한 사람일수록 교회와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면 어떤 사람이든지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그래서 쓸데없는 간섭으로 피곤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 디아스포라 미션이 회복된다. 세계복음화는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가서 살려야 하는데 가지 않기 때문에 한국까지 사람을 오게 하셨다. 예수사랑교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디아스포라 미션을 진행하는 일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된다. 우리가 장애물이 되어서도 안되고 교회 문턱을 높여서도 안된다. 이방 뜰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춤을 출 수 있도록,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르면 하나님의 자녀다. 생활적인 부분은 차차 고쳐지게 되어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고 있으면 우리의 생할은 반드시 변화가 오게 된다.
왜 인간이 행복하지 않는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듭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거듭나라는 말은 저주에서 해방받으라는 말씀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저주에서 해방받을 수가 없다. 롬8: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케 하였음이니라.” 저주가 바로 원죄, 자범죄, 조상죄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원죄 덩어리, 가문의 저주 덩어리, 자범죄 속에 빠져 멸망의 길로 사망이 왕 노릇 하게 만드는 이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라고 하신다. 그래야 지옥권세에서 벗어나 참 행복이 시작된다.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가 없다는 뜻이다.
요1:12 자녀된 권세를 왜 주셨는가? 지옥권세, 사단의 권세, 저주의 세력을 꺾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무후무한 사람으로 축복하셨다. 마10:1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우리에게 주셨다.
눅10:19 전무후무한 자로, 불가항력적 능력을 갖춘 자로 부르셨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다르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가진 자들이다. 그래서 우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다고 하셨다. 우리의 신분은 이렇게 다르다.
하나님의 소원과 시대적 필요를 본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미리 누렸다. 바나바와 바울, 베드로의 간증 메세지를 듣고 아모스 선지자가 한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고 이뤄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야고보처럼 나 역시도, 2천년 전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감람산에서 40일 동안 말씀을 주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그 예수님이 들려주신 행1:8의 말씀이 지금 예수사랑교회에 성취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래서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아라” 는 디아스포라 미션을 붙잡은 것이다. 무너진 생명을 살리는 디아스포라 미션을 붙잡았다. 그 복음의 능력이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에게 그대로 임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무너진 장벽을 복음으로 재건하는 디아스포라 미션을 우리 예수사랑교회에 말씀으로 답을 내며, 말씀으로 성령의 능력을 찾아 회복시킬 수 있는 미션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이제는 복음의 말씀 속에서 내가 어디쯤에 가고 있는가를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이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에게 개인과 가정과 직장과 자녀들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이 얼마만큼 말씀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 속에서 세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의 것을 찾는 자가 되어 땅 끝까지 이르러 디아스포라 미션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도록 저들을 축복해 주옵소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었어도 행복이 없는 자라면 오늘 거듭나는 역사가 시작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그래서 나를 속이는 부정한 것들을 꺾어버리고 버리는 하나님의 미션이 시작되게 하옵소서. 운명을 바꾸고 영적인 병에서 해방을 받아 하나님이 나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라는 절대적 믿음 속에 나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직장을 살리고 자녀들을 살리고 산업을 살리는 세상에 증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부활 이후의 메시지가 이제는 예수사랑교회 모든 주의 백성들을 통하여 디아스포라 미션이 사실적으로 성취되어지는 그 축복을 맛보게 하옵소서. 지금 아시아 미얀마 땅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유럽 지역에 우크라이나 땅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하나님 흑암권세를 꺾어주시고 전쟁을 일으키는 사단의 권세들이 무너지게 하옵시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하나님의 참된 역사로 평안을 이룰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 대한민국 복음의 나라, 영웅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지금 일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땅에 성령의 충만함의 군사들이 일어나서 세계 복음화 사실적으로 이루어 갈 수 있도록 국가를 축복해 주옵소서. 전 세계 흩어진 예수사랑교회 모든 전도 제자들에게 복음으로 재건하는 디아스포라 미션이 저들이 있는 자리에서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사망이 왕 노릇하여 문제 앞에 늘 징징거리며 감정에 따라 살면서 귀신들린 세력에 심령이 장악되어 시험과 갈등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인생에서 빠져나와, 신앙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복음 곧 창세기 3장 15절임을 깨닫게 하시고, 이제 문제가 축복이 되고, 갈등이 갱신이 되며, 위기는 기회가 되는 참 평안을 소유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창세기 3장 15절의 미션이 내 몸에 절대 각인, 체질, 뿌리되게 하셔서 나를 속이는 부정한 것들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리게 하시고, 육신생각에서만 머물러 하나님과 함께 하는 비밀을 누리지 못하고 미래와 후대를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삶을 무너뜨려 오직 사도행전 1장 8절을 기도의 줄로 붙잡아 성령의 능력을 받고 영적인 병에서 해방을 받는 거듭남의 역사가 날마다 있게 하옵소서. 성경의 말씀을 “오늘”로 보는 눈을 열어 날마다 말씀이 내게 살아있게 하셔서 하나님의 소원과 시대적 필요를 알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도록 오직 복음의 말씀, 예수그리스도만 주는 자가 되게 하시고, 무너진 성막을 복음으로 재건하는 디아스포라 미션을 성취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