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행 14:11-18
예배 때 설교를 들으면서 그리스도만 받아먹어도 엄청난 변화가 우리 몸에 나타난다. 인간은 절대 스스로 힘으로 변할 수 없다. 오직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만 사람은 변화된다.
*영적권세로 살면 살수록 삶에 승리가 온다.
몸이 아프면 영적권세를 사용하고, 이상한 헛발질을 하고 싶을 때 영적 권세를 사용해라. 변명하고 핑계 대고 싶고, 누가 알아주지 못해서 속상하고 괴로울 때 영적 권세로 살아야 한다. 성경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했다. 이 말씀 한 구절만 각인이 되어있어도 ‘아, 나는 영적 권세로 살아야겠구나’ 결단 속에 무엇이든지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늘 ‘나’ 로 하려고 한다. 그러면 언약이 우리 몸에서 영적 권세로 절대 나오지 않는다. 우리 몸이 창3장이기 때문이다. 늘 ‘나’ 로 살면 창6장, 네피림 세상 속에 ‘우리’ 가 형성된다. 내 의견을 들어주기 원하는 ‘우리’를 자꾸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래서 결국은 창11장, 하나님이 없어도 우리끼리 살 수 있다는 바벨탑 사상을 만들어냈다.
그리스도는 완전하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늘 문제를 당하는지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상한 것이다. 황당한 일을 당할 때 나오는 이상한 반응을 정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을 주신 이유는 그 언약대로 삶을 시작해보라는 것이다. 언약대로 시작하려고 했을 때, 오히려 상대를 이용하기도 하고 황당한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당하는 현실의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찾아 누릴 수 있는 것을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한다. 현실의 어려움이 올 때 빨리 육신의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육신적인 것을 포기하고 영적인 것을 자아야 한다. 그러면 숨 떨어지는 그 날까지 깊은 기도 속에서 승리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 속에 있게 하시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정확한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행복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의 육신적인 생각을 선택한다. 이런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하나님은 왜 연약하고 모자란 우리를 부르셨는가? 복음이 무엇인가를 체험하고, 그 복음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라고 부르셨다. ‘하나님이 이 복음을 왜 나에게 주셨을까? 이렇게 깊고 귀한 이 복음을 주셔서, 어찌 나같이 연약한 죄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까?’ 평생을 질문하라고 주셨다. ‘아, 안전 지대가 없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나에게 큰 은혜를 주시고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며 보좌의 축복을 내 몸에 임하게 하셨구나. 그래서 창3:15, 마16:16 영적권세로 살아야 하는구나’ 이것을 깨달으면 교회 안에서 헌신, 봉사, 전도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 안에서 헌신하는 것에 너무 인색하다. 평생 하나님 앞에서 질문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자라는 나를 하나님이 왜 부르셨는가? 왜 선택하셨는가?’ 질문을 하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멋있어 지는 것이다.
예배의 지속 속에 영적 권세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면 교회 안에 원네스가 되어진다. 우리가 헛된 일을 자꾸 버릴 때 ‘오직’, ‘유일성’, ‘재창조’의 축복을 받게 된다. 그래서 예배에 집중하면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고, 말씀 한 구절, 한 단어가 심령에서 살아 기도로 연결되고 교회로 접목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바울은 유대교에 엄청난 학자였지만 예수님을 핍박한 자였다는 것을 평생 몸에 지니고 살았다. 그래서 롬1:1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노예’ 라고 표현했다. 우리 또한 이것을 가슴에 새기고, 예수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을 만난 자로서 미래에 두려워할 일이 없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 그의 아들, 구원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자로서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만 우리 영혼 속에 있다면 그 하나로 만족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다고 고백했다.
행14: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운명에 묶인 무능의 저주, 가난의 질병, 가문의 저주가 끊어지는 역사가 있었다. 이것이 사단의 소굴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교회는 사단의 소굴이다. 사단의 소굴 속에서 마16:16을 누가 고백하느냐가 중요하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을 할 때, 마16:18~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사단의 소굴에서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있다. 마16:23 사람을 일을 버려야 한다. 사람의 일을 버리는 것이 사단의 일을 꺾어버리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내가 과거에 장애인들을 11년 정도 데리고 사는데 오히려 나에게 정신 문제가 오는 것 같았다. 육신의 생각이 오는 순간 열 번을 잘하고 열 한 번째 모든 것을 확 내버리고 인간관계도 끊어버린다. 이상한 돌출 행위가 튀어나오는 영적 문제로 사로잡혔다.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화가 나고 그래서 하던 일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기도 했다. 이렇게 늘 지속을 할 수 없어서 시스템 하나를 갖출 수가 없었다. 그 때, 내 의를 가지고 나름대로 진리인것처럼 가면을 쓰고 인생을 사는 것이 헛일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우상이었고, 내가 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속에 있는 이런 영적상태를 찾아내서 영적권세로 승리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로 더욱 충만해지는 것이다.
교회라는 사단의 소굴에서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그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는 주시는 권세와 응답을 약속하셨다. 계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한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되” 교회 안은 사단의 소굴이기 때문에 날 선 검을 가지신 그리스도가 함께 해야 한다. 세계복음화의 전도 대열에 함께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교회 안에서 ‘나’ 로 살게 만드는 놈이 있다. 그래서 사단의 소굴인 교회의 시스템에서는 반드시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그리스도가 함께 해야 한다. 사람들과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자기 이익에 문제만 오면 순간 다 뒤집어 버리는 것이 바로 사단의 소굴이다. 여기서 영적 권세로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교회에 온전한 뿌리를 내리고 여기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되는 것이다.
계2: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권좌가 있는 데라…”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흑암권세가 지배하는 땅에서 살고 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이 사단의 권좌가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순교 정신이 있어야 한다. ‘나는 영적 권세로 승리할 것이다’ 라는 ‘절대’ 가 오지 않으면 교회에서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버가모 교회에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그리스도가 살아서 함께 하심에도 왜 자꾸 실족하고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문제 앞에 좌절하냐는 것이다. 작은 일만 당해도 현실 속에서 좌지우지하고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교인이 아니다. 우리는 ‘싸워야 한다’는 절대가 있어야 한다. ‘마귀야 가라!’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 결국 전문성 하나를 찾아내지 못한다. 전문성은 과학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인정 할만큼, 필요한 것을 만들어낼 만큼 문화 정복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령충만의 힘을 덧입고 무한한 지혜로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신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매일 육신의 생각에 잡혀서 이상한 동기를 가지고 살면 되겠는가? ‘너는 교회에 그렇게 미쳐서 뭐 할 거니? 돈도 안 벌고 교회 가서 정시기도 한다고 해결되냐?’ 이런 말은 세상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이렇게 비아냥 거린 사람들은 전부 패가망신 당하는 것을 확인했다. 정시기도하고 오직 말씀을 따라갔던 청년들은 좋은 직장, 좋은 전문성을 가진 제자가 되었다. 내가 처음 그들을 봤을 때 정말 세상에서 너무 무능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최고의 회사를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세상의 기준은 틀린 것이다. 사단의 권좌에 놀아나지 말고 성령충만의 힘을 가지고 모든 것을 정복해 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단의 소굴, 사단의 권좌가 무엇인가? 고후11:14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것이다. 찌개 하나를 끓여도 고깃국물을 제대로 우려서 해야 하는데, 사람을 속이며 대충 조미료로 국물을 내려는 것, 이것이 바로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것이다. 사단의 모습을 내 안에 가득 채워놓고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는 더러운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다. “예수는 그리스도” 고백했다면 하나님의 나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사단의 권좌, 사단의 나라로 살려고 한다.
루스드라 지역은 우상숭배의 중심지였다. 그 곳에서 그리스도 이름을 굳게 잡은 바울과 바나바를 하나님이 축복하셨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은 예수님의 제자를 말한다. 사단의 권좌, 사단의 소굴에서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것을 고백해 놓고도 영적 권세를 잊어버리고 육신의 생각으로 머물러 있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이 질병에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오랫동안 틀린 종교에 길들여졌던 것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종교는 끊임없이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영적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 힘의 권세를 체험하는 것이다. 내가 삼중직에 종노릇을 하고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삼중직의 종 노릇을 해야 한다. ‘마귀 일만 멸하는,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죄와 저주, 사망의 권세를 꺾고, 밟고, 내어쫓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사단의 권좌, 사단의 소굴에서 언제나 해방 받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가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이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자가 되는 것이다. ‘아, 하나님께서 왜 이것을 내게 허락하셨는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질문을 하면 하나님은 이 질문에 무한한 답을 주신다. 그래서 이것을 체험한 자들이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다’ 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합숙도 하는 것이다. 2022년도에 역동적인 하나님의 역사 속에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단의 칼춤을 무너뜨리는 영적 권세를 사용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전통 유대인, 가말리엘에서 수학(修學)을 한 천재적인 학자였다. 그런데 자신을 향해, 자신은 종교의 칼을 무시무시하게 휘두르는 자라고 고백했다. 사단의 칼춤을 추고 있다면 영적 권세로 승리하길 축복한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자신이 진리의 칼, 정의의 칼을 휘두른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는 이것이 굉장히 교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정의의 칼춤이 결국은 사람을 죽이는 칼춤이 되었다. 행9:3~4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려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사울’ 은 ‘큰 자’ 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높다고 하는 큰 자. 그런데 이 속에 가문의 저주가 들어있다.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 잘났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사울이 하는 짓은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것, 예수를 죽이고 있다고 말씀했다. ‘종교의 교권으로 예수를 핍박하느냐?’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고, 제 멋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아야 한다. 고전15:9 “…나는 사도 중 가장 작은 자라”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신 그분이 자기에게 나타나신 후에는 자기를 가장 작은 자라고 표현한다. 스펙도, 교권도 필요 없고, 잘났다고 하는 수많은 지식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작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전 세계 목사들은 너무 건방지고 더러워져 버렸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다. 사도라 칭함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사도바울은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분명하게 말했다.
*모자란 우리를 하나님이 왜 부르셔서 이 전도 운동 속에 넣으셨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약한 나를 전도 운동을 하는 예수사랑교회에 왜 부르셨는지 정말 알아야 한다. 고전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며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하나님 앞에 이런 사실적이고 진실한 고백이 우리 영혼에서 나오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바울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수고를 했지만 그 수고 마저도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이름을 지어도 위기가 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 2022년도에 나의 이름을 부르고 계신다. 육신의 생각이 올 때, 나쁜 동기가 찾아올 때, 교회를 사단의 소굴로 만들 것이냐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것이냐 할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진리 앞에서 우리는 반드시 영적 권세로 승리해야 한다.
헛된 일을 버리면 믿음을 굳게 할 수 있다. 계2:13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의 감독으로 첫번째 바울의 전도팀이었던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함께 했던 자로, 복음을 위해 순교했다. 전도팀의 대열 속에 있는 자는 절대 뒤쳐지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도 참 신앙을 보여주고 교회를 성결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헛된 일을 버리면 믿음을 굳게 할 수 있다. 계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세상과 타협한 발람은 결국 무너졌다. 민22장, 이스라엘 민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겠다고 모압 왕이 오자 어떻게 그들을 이길 것인지 고민하다가, 선지자를 돈으로 매수해야겠다는 잔머리를 쓴다. 그 때 선택된 사람이 발람 선지자다. 그래서 발람에게 엄청난 돈을 제시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발람의 입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저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축복이 나와 첫번째 계획에 실패하게 된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와 음행을 하도록 꾀어 하나님께 저주를 받도록 만든다. 결국 발람에게 돈 냄새를 맡게 하고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이끌려 이스라엘 민족 2만 4천 명이 그 자리에서 죽게 만들었다. 오늘날 교회를 우상화해서 2만4천명을 그곳에서 다 죽게 만드는 것과 같다. 그래서 교회에 만명, 이만명이 모인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그곳이 사단의 권좌 아래 음행이 일어나는 사단의 소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계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교회가 지금 우상 숭배를 하고 있다.
니골라는 안디옥 교회 출신의 사람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교 사람이었다. 행6:5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그런데 그가 잘 믿다가 영적싸움이 지속되지 않아 당을 만든 것이다. 교회가 영적권세로 영적싸움을 지속하지 않으면 음행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 세상과 타협하는 음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도록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려라”’ 사단아 뒤로 물러가라!’ 고, 사람의 일을 도모하게 하는 사단의 일을 멸할 수 있어야 한다.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모든 것을 회복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절대 무기는 입의 검이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음이니라” 예수님의 입의 검이 우리 몸에 있어야 한다.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입의 검을 가지고 회개하라. 좌의 날선 검을 가지고 세상과 타협하라고 하는 것을 꺾어버리고 잘라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속시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했다. 우리 입의 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것이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다. 구원 받은 백성의 수가 찰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싸움을 지속해야 한다.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영적싸움을 지속하니까 자기들을 신으로 세우려고 하는데도 그것을 거절했다. 이적과 표적, 능력이 자기들의 몸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이름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약4:7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는 입의 검을 가져라. 레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택하시고 부르셨는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으면 거룩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모자라는 나를, 연약한 나를 복음 운동을 위해 택하시고 부르셨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여 사단의 권좌 아래, 내 몸을 사단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면 빨리 이것을 꺾어버려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어하는가? 하지만 이런 것은 헛된 일이다. 하나님의 힘이 아니고서는 절대 할 수 없다. 세상의 힘을 가지고서는 절대 할 수 없다. 오뎅 하나를 먹어도 자기가 먹은 꼬치를 다른 사람 테이블로 밀어낼 정도로 뻔뻔한 것이 세상이다. 돈 있는 사람들, 기득권 세력을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세상 기득권은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법까지 만들어 놨는데 그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연약하고 모자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셨다. 현장에는 복음이 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놓은 여론에 생각없이 끌려 다니고,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 권세를 잡은 자를 따라 불순종 가운데 세상과 타협하며 죽게 만드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생각, 사두개인, 서기관들의 생각에 아무 생각도 없이 끌려가면 몰살당하는 일 밖에 없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야 한다. 빗나간 우상 숭배자들이 한국 정치를 어렵게 만들고, 사단의 권좌 아래 무속신앙으로 사람들을 끌고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경제가 점술로 바뀌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기독교가 세상과 타협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음행이라고 하고, 니골라당 이라고 한다. 변질된 사람들은 우상숭배를 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어서 사람의 말을 따라다니고 사람을 의지한다. 그래서 행14:12 바나바는 제우스, 바울은 헤르메세라고 하며, 바울과 바나바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그들을 신으로 추대하려고 했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없으면 엄청난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어서 사람의 말을 따라다니고 사람의 말을 의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요일4:18 그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르고, 계22:8 두려움에는 둘째 사망이 기다린다. 이 근본의 두려움을 치유하지 않으면 절대 그리스도가 믿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 두려움을 꺾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주시고, 십자가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는 것이라고 말씀했다. 두려움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합리적인 생각을 저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요8:44에 완전 장악되어 버린다. 두려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욕심쟁이로만 사는 것이다. 욕심만 부리며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이것저것 건드려 보다가 결국은 지속을 못하게 된다. 그래서 나무에게 빌고 돌에도 빌면서 사람이 이상해져 간다. 자기 죄를 정당화 하기 위해 결국은 향락주의로 빠진다.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우상숭배가 더욱 강해진다. 그래야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욥31:26~28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달을 보고 빌고, 아침에 햇살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내가 살아있네 할렐루야’ 하는 것도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결국 우상숭배 속에 하나님을 속이는 자가 된다. 내가 과거에 장애인 공동체를 할 때, 12월 31일이면 장애인들 수십명을 데리고 동해기도원을 갔다. 차를 대절 할 수도 없어서 기업에 있는 분들의 대형버스를 내가 직접 몰고 간 것이다. 고속도로가 없어 꽉 막힌 도로에 차는 서 있고, 히터도 나오지 않는 차에 앞 유리가 얼어서 보이지도 않으니까 맨 앞에 앉은 우리 어머니에게 입김으로 유리를 닦아 달라고 했다. 우리 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보고는 한계가 와서 버스에서 내리더니 내 아들이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었냐며 소리를 지르면서 버스 앞으로 가서 자기를 밟고 지나가라고 한 적도 있었다. 동해 기도원 가는 길이 없어서 아이들을 업고 철길을 넘어서 도착하면 밤새 집회를 했다. 너무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1월 1일, 새벽에 솟아 오르는 해를 보고 그냥 모두 다 죽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 자신도 모르게 자연 자체를 경배하는 것이었다. 사단의 권좌가 있는 세상에서 창3:15 영적권세를 모르고 살았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사단의 권좌, 사단의 소굴에 잡히지 말고 창3:15로 꺾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 이름 속에 들어있는 신비가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된다.
목사가 되면, 많은 목사님들이 자꾸 자신을 하나님 잘 믿는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다. 잘 믿는 척을 해야 자기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따라다니면서 배우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한계를 느끼게 되고 그러다가 교회를 떠나 이단 사이비 종교로 성도들을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교회를 떠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이단, 사이비에 걸려들게 되어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나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도 롬5:6을 생각해야 한다. ‘모자라는 나를 하나님이 부르셨다. 경건하지 않은 나를 위해 그리스도가 죽으셨다.’ 롬5:8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을 때에도 그리스도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며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의 사랑을 내게 확증하셨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롬5:10 실수하고 넘어지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할지라도 그 아들을 통해 일방적으로 모든 문제를 다 끝내 주셨다. 그래서 나는 병원에 심방을 가면, 항상 ‘나도 병들어 죽어야 될 수 많은 날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게 되었구나. 이단, 사이비, 거짓 종교단체에 빠져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의 사람이, 이 늪에서 해방을 받았구나’ 너무 감사함을 느낀다.
행14:15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행14:9 바울이 말한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낫게 된 것이지, 자기들이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목사님들은 이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를 따라오지 말고, 오직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사용해라” 해야 한다. “당신이 나은 것은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연약하고 모자란 당신을 선택하셔서 전도 운동의 대열에 증인으로 세워 주시기 위한 것이다.”
“나는 허물과 죄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세상에 큰 자로 살고 싶어서 가문의 저주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셔서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는 길을 갖게 하셨다.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의 종으로 심부름을 할 뿐이다.” 바울은 사람들을 향해 분명하게 메세지를 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말하지 못하는 교회 목사들이 우상숭배와 음행 속에 니골라당을 만들어놓고 세상과 타협 속에 깊은 수렁에 빠져 성도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현장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우리가 여기에 주인공이 되었다면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이 너를 낫게 하셨다.” 입의 검을 분명하게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입의 검을 무기로 역사 하셨듯이, 우리에게 그 입의 검을 사용하라고 그리스도를 주셨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입의 검으로 그리스도 이름을 사용할 때, 행14:17 필요를 따라 대자연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되고 그 하나님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입술의 검을 사용하는 자들을 통해 모든 피조물들이 복종하게 된다. 전도자에게는 이런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과 역사가 함께하신다.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음의 결국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도 지구와 우주를 움직이고 계신다.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 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렇게 삼중직을 소유한 그리스도인 속에는 이런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쓸데없는 우상 단지를 만들지 않는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속에 있는 엄청난 하나님의 이적을 오늘 속에서 누리는 자들이다. 신비한 능력도 있고 권세도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나의 나 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전15:9~10이 나의 것이 되기를 축복한다. “그러나 내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하나님이 모자란 나를 전도자로 부르셨구나. 모자란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셔서 내가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사랑을 베풀어 주셨구나. 무능과 가난의 저주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움직이셔서 오늘도 내게 필요한 것을 먹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니, 이 은혜 속에서 감사함으로,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작품을 남길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자신의 우상화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자신의 우상화의 그 본능에서 극복할 수 있도록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주셨사오니 이제는 나의 나 된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날마다 고백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특별 계시를 받은 자가 맞고 이적 속에 있는 자가 맞고 신비 속에 있는 자도 맞지만, 나의 나 됨을 잊지 않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어찌하든지 전도자의 자세를 갖추고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영혼 구원의 가슴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사단 권좌에 속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오직 순교정신을 가지고 믿음을 지킨 주의 백성들을 마음껏 축복해 주셔서, 저들의 업 속에 성령 충만의 역사가 있게 하옵시고 저들의 가정 속에 하나님 보좌의 축복이 임하게 하옵시며 저들의 자녀들 위에 성령 충만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복음이 없어 세상 풍습, 공중권세 잡은 자로 인해 세상과 타협하며,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아 두려움 속에 사람을 우상 숭배하는 이 시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언약으로 세상을 바꾸도록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안전지대가 없는 시대 속에 하나님이 연약하고 모자란 나에게 깊고 귀한 이 복음을 왜 주셨는지를 날마다 깊이 생각한다면, 현실의 문제 앞에 육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헛된 일을 버리고 영적권세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절대 무기, 입의 검을 내게 주셨기에, 하나님을 만난 자로서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언제나 가슴에 새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삼중직에 종노릇하여 사탄의 소굴과 사탄의 권좌에 속지 않고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 속에 믿음을 지키는 순교정신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