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마 7:24-29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태복음 16장 16절 이것을 고백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17절, 굉장한 말씀을 하셨다.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그 위에 네 산업과 가정, 그리고 너의 자녀들까지 세워가겠다. 그뿐 아니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모든 저주와 재앙의 시스템 속에서도 내가 너를 지키고 보호할 것이다. 너의 사업장, 너의 생활 전부를 걸고 축복할 것이다. 승리하고 축복의 나날들이 계속 찾아올 것이다.” 베드로가 이 축복을 누렸다. 그래서 갈릴리 촌놈이 로마 복음화까지 할 수 있었고 무능하고 무식한 그가 베드로전․후서를 기록하여 역사의 인물로 성경에 기록되었으며 그의 신앙은 전 세계를 움직였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 13장 8절, 구약에 역사하셨던 그리스도, 신약에 이르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 말세 지말에 그리스도 이름을 담고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다. 구약시대를 살았던 다윗은 양의 피 묻은 가죽옷을 입고 살았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왕권을 부여받았다. 신약에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모든 생명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종말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에게는 그리스도 이름 속에 담긴 하나님의 정체성을 믿고, 그리스도 이름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인격을 사랑한다면, 땅 끝까지 이르러 증거 있는 증인이 되리라 약속해 주셨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팔복의 성품을 가지고 언약의 말을 사용해야 한다
‘언약의 말’로 인생을 살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가 되고, ‘사람의 말’로 인생을 살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따로 부르셔서 팔복의 성품을 영혼 속에 간직하여 그 언어를 사용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빛과 소금이 되고, 인생 여정 속에 모든 사람을 용서하게 된다. 팔복의 성품에서 나온 언약의 말이 삶에서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용서하고 화해하고 나서 하나님께 찬송하고 예배를 드린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동행이 시작되기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인생 여정 속에 외식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율법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과의 은밀한 관계를 골방에서 기도를 통해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팔복의 성품을 가진 자는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즉 하늘에 계신 하나님, 어디든지 계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 아버지는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된다. 그래서 세상의 풍습을 좇지 말고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금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나라가 임하오시며” 그 뜻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래서 남을 비판하지 말고 먼저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빼야 한다. 또한 “주여, 주여”라고 부르면서 귀신이나 내어 쫓고 이상한 권능이나 사용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말라. 가면 쓰고 선지자 노릇 하지 말라. 외식하지 말라. 사람들을 의식해서 체면 세우려고 하지 말라. 긴 옷을 걸치고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백 프로 경계하라. 늘 징징거리는 자들은 권능을 행하여 뭔가 있는 것처럼 자랑거리를 늘어놓으려 한다. 나쁜 열매를 맺는 자들은 늘 ‘주여, 주여’만 찾는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 믿는 척하지 말고, 구원 받으라는 것이다.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권세를 갖고 필요에 따라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이상한 기도하지 않고, 두려움이 사라지기에 귀신이나 쫓아내는 이상한 사람이 안 된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마7:22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가?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죽인 것이다. 종교의 씨는 거짓이다. 늘 징징거리는 것이다. 찌그러진 인상들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펴지길 축복한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8:43~44
지금 우리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살인자 마귀를 뽑아내는 게 구원이다. 이것을 안 하면 도무지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8:45
사람의 육체는 이미 사망에 매여 사탄의 종 노릇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반드시 8복의 성품을 지니고 살도록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이 진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제자를 불러서 팔복의 성품을 갖게 하고 팔복의 두루마기를 걸치게 하신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을 듣고 변화가 없는 사람들은 심각하다. 진리는 자유케 한다. 변화인 것이다. 진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진리의 말씀은 살아있기에 몸에 생명력을 일으킨다.히4:12 교회를 20~30년 다녔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몸에 살아서 역사하지 않는다면 복음이 아닌, 종교의 씨를 심은 것이다. 징징거리는 교회의 언어들이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영혼 치유를 받지 못한 채 늘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이간질하고 미움과 시기 질투와 열등감과 비교의식 속에서 자포자기하고 주저앉는다.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라’ 끊임없이 남의 것만 빼앗으려고 몸부림친다. 여기에서 벗어나자. 육체의 일을 도모하는 자를 예수께서 사탄이라고 하셨다.마16:23 “주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음에도 사람의 일을 생각하자 사단이라고 하신 것이다. 오늘 음부의 권세가 우리를 이기지 못하도록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를 선포하기를 축복한다.
인생 여정 속에 흔들리지 아니하려면, 반드시 세 가지를 해야 한다.
→ 예배에 성공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창 1: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먼지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다.창2:7 그래서 영적 존재인 인간은 반드시 예배를 드려야 살 수 있다.
개, 고양이, 돼지, 소는 예배를 안 드려도 상관이 없지만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것이 예배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이 말씀을 예배 때 반드시 들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축복이 찾아온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흑암이 쏘는 불화살을 맞고 치명적인 죽음에 이르는 저주를 맞이한다.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삶이 되어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허망해지고 반드시 무너진다.
하나님이 무너지지 않도록 모든 것을 완성하신 후,요19:30 예배를 드리라고 하신다. 인간의 근본 문제, 즉 하나님 떠난 문제, 그로인해 사람의 몸에 임한 죄의 권세, 사망 권세, 지옥 권세 잡은 사단의 권세를 해결하라고 하신다. 따라서 예수께서 다 이루어놓으셨기에 우리는 예배만 성공하면 된다.
그러면 성령을 받는다.요20:22 죽었던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바뀌는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너는 새로운 재창조의 축복이 시작된 것이다.고후5:17 그리고 예배에 성공하면 모든 것에 성공한다.마 28:18 예배에 성공하지 않았음에도 뭔가에 성공했다면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너진다. 미국을 보길 바란다. 토네이도 강풍만 불어와도 43년 동안 살았던 마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로키산맥 지역 선조 대대로 수백 년 동안 살았던 역사의 마을이 불에 타 사라졌다. 바람만 불어도 불만 나도 사라지는 게 세상의 시스템이다. 뭐가 그렇게 바쁘고, 뭐가 그렇게 힘들고, 뭐가 그렇게 답답한가? 이제는 하나님이 안식하라고 주신 예배를 통해서 축복 받길 바란다.
예배에 성공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된다. 시편42편 1절과 같은 가슴이 생겨서 예배를 드리게 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심령이 갈급해지면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는다. 영적인 힘이 생긴다. 안전지대가 없는 재앙 시스템 속에서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지고 어둠의 그림자가 지나가고 사망 권세 잡은 자에게 시달리지 않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된다. 예배에 성공하는 자는 천국을 소유한다. 누가복음 17장 21절,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한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받기에 보좌의 축복을 갖는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33절,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어 놓았음이니라.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릴 만왕의 왕이 함께 좌정하시는 것이다. 요한일서 3장8절, 마귀의 일을 멸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다.
이 사람은 애통해 할 줄 안다. ‘아, 내가 창세기 3장에 걸려있기에 예배드리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예배를 통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살아야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구나. 영원히 저주 받고, 재생산 될 수 없는 기구한 운명의 저주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풀리기에 하나님의 긍휼을 덧입어야 되는구나. 요한복음 3장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기에 나는 오늘도 예배를 드린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정복하게 된다. 사도행전 1장8절, 너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즉 그리스도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모든 사람을 수용하고 배려하며 이해하고 용서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말씀은 성삼위 하나님의 영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그리스도다.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다. 그래서 땅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그냥 점령했는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신분으로 있었을 때 그들의 힘으로 해방되었는가? 하나님의 큰 권능으로 나온 것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마5:17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된다. 그래서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만 마음에 새겨 일주일 동안 생각할 수 있다면 그대로 성취된다. 말씀은 죄를 정결케 하는 능력이다. 말씀은 불신앙을 씻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과거의 슬픈 나날들은 그렇게 기억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구원 받으라고 주신 말씀은 한 구절도 마음에서 살아 움직이지 못한다면 저주 받은 자식인 것이다. 그는 어느 날 사단의 불화살을 맞고 욕망의 칼춤에 따라 살다가 육체가 무너진다. 그러면 자녀는 어떻게 되겠는가? 근신하고 정신을 차리라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아비로부터 삼사 대까지 이르는 저주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래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라고 하나님은 말씀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몸에 무엇을 심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심고 있다면 마음이 청결케 되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기에 “주여, 주여~”만 외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역사에 근거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귀신 들린 자들이 기독교를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율법주의자들이 기독교를 관념적으로 만들어버렸다. 구원도 못 받은 목사들이 헛소리, 개소리를 늘어놨기에 지금 기독교는 무너지고 말았다. 산에 올라가서 “주여, 주여~”를 외치다가 큰 권능을 받았다며 능력을 행사하는 그런 교회들을 들여다보라. 결국은 무너지고 자녀들은 다 깨져버렸다. 그걸 보면서도 그 교회를 따라가고 있다. 왜 그런가? 종교는 우상숭배다.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창세기 3장 15절 하나님의 힘을 갖고 먼저 뱀의 머리를 깨뜨려야 한다. 그러면 종교의 틀,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배에 성공하면 하나님이 세계 복음화 할 만큼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 빌립보서 4장 19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배라는 그 영광 가운데 있으면 그 풍성한 대로 너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육체, 감정에 조금만 상처가 생겨도 온몸을 비틀고, 어느 때는 자포자기 하고, 견딜 수 없는 분노로 칼춤을 춘다. 창3:15을 가진 자는 절대 조급하지 않다. 낙심하지도 않는다. 천천히, 조용히, 고요하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의 일만 멸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시작된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8절, 하나님의 아들이 그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을 향하여 채찍질하게 만드는 마귀의 일을 꺾어버려라. 이 땅에 우리의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버린 사단의 역사를 꺾어버리자.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게 내 영혼을 장악하고 이상한 칼춤으로 칼질하게 만드는 더러운 저주의 영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밟아라! 다윗은 인생에 찾아온 여러 가지 일들 앞에서 절대 누구를 탓하거나 핑계대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먼저 겸손히 회개했다. 이렇지 못한 사람은 왜 그런가? 반석 위에 집을 짓지 않고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이다. 그 사람은 순간 핑계대고 책임전가하고 온갖 지랄발광 하는 말이 입에서 터져 나온다. 왜 이상한 말을 하는가? 예배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배에 성공하면 정결케 된다. 새로운 피조물로 멋있어진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예배에 성공하여 말씀에 길들여지면 용서 못 할 사람이 없다. 왜냐면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지은 죄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면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 자리까지 우리를 있게 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 몸에 임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날이 되길 축복한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 이름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것이 된다.
→기도에 성공하라
팔복의 성품을 가진 사람은 기도에 성공한다. 요일3:8 마귀의 일을 멸하는 자가 되기에,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자격이 주어진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리스도 이름은 거룩하다. “주님 나라 임하시고” 즉 그리스도 나라 임하시고. 그리스도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리스도의 뜻을 가진 자는 일용할 양식에 매이지 않는다. “일용할 양식 주시고”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큰 죄도 다 용서를 받게 된다. “이제는 또 시험에 들게 마시고 악에서 구원하소서. 대개 주의 나라 주의 권세 주의 영광 영원히 아멘”
이게 우리의 응답이다. 이제는 의식주로 걱정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가지고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마귀의 일을 멸해라. 악한 자의 꾀에 넘어가지 말고, 악한 자가 넘어뜨리려고 할 때 욕심을 버리고 그리스도 앞에 서라! 그러면 모든 죄를 사함 받는다.
→자신부터 점검하는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자
세 번째, 올바른 판단력이다. 기도가 되면 올바른 판단력이 생긴다. 기도에는 정시기도, 무시기도, 집중기도, 특별기도가 있다. 이 말은 상대를 판단하지 말고 자기 자신부터 올바르게 판단하라는 말이다.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하지 말고 먼저 자신부터 올바르게 판단하라.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는 것이다. 남의 잘못만 말하는 자는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못 본다.
모든 사람의 시간표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젊어서 돈을 많이 가지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은 대부분 나이 먹으면 무일푼이 될 가능성이 많다. 돈 때문에 망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아서 돈이 들어오기도 한다. 어떤 분은 암이 걸려 죽음을 앞두었는데 국가가 그의 소유지인 그린벨트 땅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았는데 오백억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현금화해서 교회에 헌금한 것이다. 그의 자녀들도 아버지가 사준 아파트를 교회에 드렸다고 한다.
하나님 중심에 서서 자신을 올바르게 판단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내게 있는데도 그 은혜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산다면, 그것처럼 미련한 사람이 없다.
언약만 붙잡고 하나님의 힘을 얻으면 하나님의 나라의 힘을 갖고 교회에 흐르는 축복을 받는다. 사도행전 1장 8절, 성령 충만의 힘을 달라고 기도하길 바란다. 거울을 보면서 고전3:16, ‘너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항상 함께하신다. 이걸 아는 자가 될지어다.’ 이렇게 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응답이 온다. 이걸 기다리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산다.
벧전3:8~12, 좋은 일 보기를 원하는 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응답 받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교회 안에서 마음을 같이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가졌든 못 가졌든 시간표가 다르기에 겸손해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어줘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표가 이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터졌을 때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아야 한다. 입을 지켜야 한다. 축복의 말을 해야 한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라는 것이다. 거짓의 입술이 아닌 복을 빌어주는 입술로 바꾸라. 그럼 악에서 떠나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구하고 말씀을 따라간다. 주의 눈은 예배에 성공하는 자, 기도에 성공하는 자, 자기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자를 향하시고, 그의 귀는 기도하는 자의 기도소리에 기울이시고, 그리스도 만왕의 왕 창조주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은 악행 하는 자들에 대하여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느니라. 그래서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준다면 악행 하는 자의 문제가 더 빨리 해결 된다.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하나님이 깔끔하게 정리하신다. 결국 우리가 판단하거나 심판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동하는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가 되지 말라
석가모니는 사망의 잠을 자고 있었기에 남모르는 고뇌가 컸다. ‘이 사망의 몸에서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결 받을 수 있으랴’ ‘이런 작은 성에 살면 진리를 알 수 없으니 내가 진리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며 왕좌를 버리고 집을 나선 것이다. 결국은 진리를 찾지 못하고 그의 제자들에게 진리를 찾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설사병으로 죽고 만다.
그의 제자인 성철스님은 뭐라고 했는가? 어느 날 그의 친구가 죽었다. 그리고 윤회설을 믿는 불교에 입문하게 된다. 도대체 죽은 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위해 절로 간 것이다. 불교의 교리는 진리가 아니다. 윤회설을 가르치는 불교에 입문하면 죽은 친구를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못 만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혼자 천막을 치고 살았다.
어느 기자가 물었다. “그 친구를 찾았습니까?” “길을 찾았습니까?”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길을 찾았다면 하산할 것이다” 불교에 입문했지만 찾지 못한 것이다. 왜냐면 불교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입문한 불교의 교리, 종교가 사람을 무섭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종교는 무서운 것임을 시사한 유언을 남겼다.
“내가 무간 지옥에 떨어지니 내 한이 만 갈래나 된다. 둥근 수레바퀴에 나의 영혼이 걸려서 저 수미산에 걸쳐있구나.”
사도바울도 종교는 무서운 것임을 고백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낼 것이냐. 날마다 내 육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죄의 권세 밖에 없구나.”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다. 율법은 종교다.고전15:56
정치가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 들여다보라.
로마의 네로왕은 정신병으로 얼마나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가!
로마의 시저는 어떻게 하고 죽었는가. 몽골의 징기스칸 한사람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전 세계에 노동자로 팔려가는 운명을 맞이했다. 나폴레옹 한 사람 때문에 지하자원도 풍부하고 아름다운 땅을 가진 나라가 질병과 전쟁으로 비참해졌다.
히틀러 정치가 한 명으로 인하여 유럽은 떨어야 했고 흑암으로 뒤덮여 수많은 살상이 일어났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우리나라 전두환 같은 사람은 군대를 동원하여 자국민을 죽였다.
왜 사람들은 재앙에 빠져들고 재앙에 갇혀서 재앙을 만들어내는가? 정신병 때문이다. 정신병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지, 모래 위에 집을 짓는지를 분석할 수가 없다.
석학으로서 지검장까지 된 사람이 바바리 맨이 되어 10대 청소년들을 좇아다녔다고 안 하는가. 어느 부장판사는 왜 지하철에서 여자 치마에 핸드폰을 갖다 대는가? 정신 문제 때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고 죄의 삯인 사망이 지금 인간을 지배하고 있기에, 우리 몸은 재앙을 만들어내는 아주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재앙의 무기가 된 인간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참 왕 되신 그리스도가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저주와 재앙을 밀어내는 참 제사장이시며,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참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진리요 생명으로서 우리를 자유케 한다.
모래 위에 집을 지어서 무너지는 것이다. 인생은 기초가 중요하다. 그래서 자녀들이 반드시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그리스도의 내용을 가지고 일어나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세상의 시스템 위에 집을 짓는다면 무너지지만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면, 하나님의 가정과 산업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다.
종교인들은 창세기 3장의 저주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모른다. 종교는 창세기 3장이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혼합종교(에큐메니컬)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창세기 3장으로 인해 인간 몸속에 원죄가 들어와 운명대로 끌고 간다는 것을 알면, 에큐메니컬 운동을 할 수가 없다. 오직 유일성 할 것이다. 예수사랑교회는 오직, 유일성하여 창세기 3장 원죄의 저주가 자범죄, 가문의 저주로 가지 않고 사업장에 파고들지 않도록 꺾어야 한다.
→ 저주를 해결하신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짓자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저주 문제를 해결한 반석 위에다가 집을 지어라는 것이다.
이 땅은 흑암의 땅, 재앙의 땅이기에, 다 무너진다. 그래서 반석 되신 그리스도 위에 가정을 세우고 사업을 세우면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 가는 그 날까지 축복해 주신다. 저주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이시다. 재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그래서 말씀 위에 세운 집이 되라는 것이다. 말씀이 반석이시지 않는가. 창세기 3장 15절을 마음에 새기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 마태복음 16장16~18절의 응답이 온다. 신앙 고백이 바로 반석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석 위에 가정이 세워져야 천국 열쇠를 갖게 된다는 말이다. 천국 열쇠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에게 준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배를 성공하고 기도를 성공하고 자기를 정확하게 보는 판단력을 가지고 축복을 받는다. 반석 위에 집을 세우면 예수가 주,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말이다.
→ 나의 신앙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인지, 반석 위에 집은 지은 것인지 점검하고 시작하자
그리스도 외의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면 조만간 무너진다.
이런 사람은 신비주의 엘리야 사상에 빠지고, 예레미야처럼 박애주의에 빠져서 눈물만 흘릴 뿐이다. 또한 선지자 중의 하나가 되어 선지자 노릇 하다가 이상한 함정에 빠진다. 종교 생활하지 말라. 사회 운동하지 말라. 그리스도 말고 다른 곳에 관심을 두지 말라. 반석 위에 집이 세워져야 다른 사람도 살린다.
전 세계 청소년들이 지금 마약과 게임에 중독되어 극도의 타락에 빠져있다. 세상의 문화는 우리의 자녀들을 정신병 주사를 맞은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의 신앙 고백을 통해서 반석 위에 우리의 가정이 세워지기를 축복한다. 그래야 청소년들, 우리의 자녀들이 일어나 걷는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나는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자녀들을 지금 그렇게 두면 무너진다. 그들을 일으켜 세우려면, 먼저 우리가 반석 위에 집을 세워야 한다. 우리의 신앙 고백을 통하여 자녀들은 오토매틱으로 따라온다.
*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에게 약속하신 근원적 축복, 대표적 축복, 기념비적 축복, 불가항력적 축복 속으로 들어가자
우리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축복한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아브라함의 축복을 갖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근원적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축복한다.
이제는 대표적 축복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우리의 씨로 말미암아 기념비적인 축복이 올 것이라고 하신 그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축복한다. 우리를 능히 당할 자가 없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는 하나님이 보증하신다. 즉 불가항력적 능력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행동하는 믿음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한 주간 그대로 성취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느 9:7~8
반석위에 집을 지으면 하나님이 싸워서 빼앗아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배에 성공하고 기도에 성공하고 나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기념비적인 축복을 받길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이제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가 아니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마태복음 16장 16절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은혜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남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유익 때문에 비판하는 어리석음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복 받기를 원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들은 예배와 기도와 자신을 판단하라고 말씀해 주셨사오니, 그리스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의 구원자로 나와 함께하시기에 언제나 구하게 하옵소서.
언제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을 듣고 구하는 자가 되어 예비해놓은 모든 것들을 받아 누리게 하옵시며, 세계 복음화를 놓고 찾는 자가 되어 현장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시며, 두드려 열려지는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고 말씀하셨사오니, 믿음의 열매를 통하여 말씀의 열매를 통해서 반드시 이 땅에 씨를 남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들의 자녀들이 세상을 다시 한 번 정복하고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최고의 서밋들이 되게 하옵소서. 행동하는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흑암과 재앙의 땅에서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두고, 쟁쟁거리는 언어로 종교의 씨를 심으며, 모래와 같은 세상 시스템 위에 집을 지어 무너지는 인생에서 빠져나오도록, “예수는 그리스도”라 신앙고백하고, 저주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반석 위에 집을 지어 오직 유일성의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예배에 성공하여 8복의 성품을 소유하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의 일을 멸하는 기도에 성공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나를 보는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어, 문제 앞에서 혀를 금하고 내 속의 들보를 뽑아내는 행동하는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에게 하나님이 보증하신 불가항력적 능력과 천국열쇠를 받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축복이 나에게 연결되어 근원적, 대표적, 기념비적 축복을 누리며, 후대를 살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