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선교여정을 따라가는 인생개혁
행 13:1-3
오늘 이 짧은 본문 속에는, 안디옥 교회를 통해 로마로 복음이 들어가 한국 땅까지 오는 그 하나님의 큰 역사의 시작을 담고 있다. 로마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복음이 넘어가고, 그 이후 복음 운동에 대해 무감각하다가, 대한민국, 이 땅에 복음 운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완벽한 복음,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이것을 깨닫고 자신이 조금만 복음의 전문성을 갖는 것에 집중하면 온몸이 복음의 전문화가 될 것이다. 나는 30년 전에 이것을 느끼고 ‘아, 내가 복음의 전문성을 가져야겠구나’ 결단했는데 하나님이 내게 복음의 전문화가 이뤄지게 하시고, 세계복음화 큰 틀 속에서 비행기를 100만 마일 이상 타게 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세계화, 복음화하신 것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은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우리는 절대로 인문학에, 더러운 말들에 시달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
“바울의 선교 여정을 따라가는 인생 개혁”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놓고,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기를 축복한다. 인생개혁은 ‘인종을 초월하라’ 는 말이다. 그래야 우리 가슴에 디아스포라 미션을 새겨놓고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안디옥교회는 “주의 손이 함께 하셨다” 고 할 만큼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다. 안디옥 교회가 왜 그렇게 많은 축복을 받게 되었는가? 안디옥 교회는 인종을 초월했고, 제1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의 본거지가 된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께 헌금을 드려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를 통해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 같은 제자도 나온 것이다. 또 안디옥 교회를 통해, 자기 목숨 보다 더 중요시하는 생명 공동체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 추수감사절은 세계복음화 한 성도의 배경을 의미한다.
세계복음화의 꿈을 꾸면 추수할 만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게 된다. 우리의 심령에서부터 ‘나는 세계복음화의 꿈을 꾸고 있는가, 나는 세계복음회의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복음화의 이미지를 가지고 세계복음화의 실현 속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자신을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바울은 세계복음화 한 주의 성도들의 배경을 빌3:20에 명확하게 말씀했다. 이 땅에 세계복음화를 하는 주의 성도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에서 지금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천군 천사를 동원하셔서 전 세계를 움직이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를 통해 시작하셨다. 특히 237 나라를 위해 빛의 경제로 세계복음화 하겠다고 가슴에 새겨놓고 정시와 무시로 특별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미 하늘 문을 여셨다고 말씀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로 이 시대 세계복음화 대열 속에 있게 된 것이다. 빌3:21 만물이 복종케 되는 축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모든 피조물, 모든 만물이 세계복음화하는 성도들 앞에 무릎꿇게 하셨을 뿐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주셨다. 그 뿐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된 자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유월절의 축복이 살아서 역사한다. 애굽 땅에서 종노릇하며, 노예 신분으로 억압받고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환경에서도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세계복음화 하신다. 그래서 노예근성, 거지근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왕과 권력자들, 가진 자들 앞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고, 선포하면 하나님은 해방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의 말, 헛소리, 잡소리, 허망한 말에 절대 귀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가야 한다. 사람의 말을 듣고 인생을 살면 신앙생활은 안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점쟁이를 다 죽이라고 했다. 점쟁이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가정을 깨뜨리는 자들이다. 지금 네가 데리고 사는 남편, 네 마누라는 살아봐야 재수 없는 놈이니 버리라고 하는 자들, 네 가문이 좋지 않으니 굿을 하라고 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점쟁이는 말로 사람을 묶어놓고 시달리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점쟁이를 쳐서 죽이고 하나도 남겨놓지 말고 쓸어버리라고 하셨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같이 점쟁이가 되어버렸다. 불신자든 신자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있기 때문에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문설주와 인방에 누구든지 예수 피를 바를 때 모둔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을 받게 된다. 귀신들린 사람의 말은 우리의 몸을 묶고 시달리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자유케 하고 해방 시키고 우리를 축복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순절의 축복까지 주셨다. 인생 광야 길 가는 동안 나를 먹이시는지 아닌지 날마다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날마다 먹여주셨다. 옷 한 벌 가지고 나오지 않았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추위나 더위로 고통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광야 길에서도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셨다. 그 전능자가 바로 나의 아버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으면 행복해지지만, 사람의 말을 들으면 멸망상태로 가는 것이다. 사람이 나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내어 쫓긴 놈이 사람 속에 원죄를 심어 온몸을 죄의 권세로 덮어버렸기 때문에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죄가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간하는 죄, 비방하는 죄, 비웃는 죄, 헐뜯는 죄, 뒤통수를 내리치는 죄, 거짓말하는 죄... 우리 속에 죄가 얼마나 많으며, 확인 해보지도 않고 개소리 하는 죄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 몸에 이렇게 엄청난 죄의 권세가 온몸에 퍼져있기 때문에 질병의 저주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에도 사람의 말을 듣고 싶다면 자꾸 피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워야 한다. 그러면 오순절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 오순절을 통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쓰고도 남는 수장절의 축복을 주신다. 그것을 추수감사절이라고 한다. ‘내가 이런 배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으니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을 수 있으랴. 어렵고 힘든 삶이었지만 나의 배경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제 가지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 나는 주는 자가 되었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 나라의 배경을 통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배경이 있는 언약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기억 속에 남는 자로 살 것이다.’ 이 땅에 재물을 쌓는 자는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축복을 나누어 주는 자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억하고 계신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에게 절대 매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추수감사절이다. 언약 잡은 자는 어떤 경우에도 승리하고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 말을 듣고 실족하지 말고,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귀를 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했다는 것은 행1:3~4의 배경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예수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느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우리는 이런 설렘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게 되었다. 행19:8~9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예수는 그리스도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알아듣는 자와 못 알아듣는 자가 있는데, 우리가 알아듣는 자로 이 자리에 앉아 있기때문에 하나님이 보좌에서 우리를 움직이시는 것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그 이름, 롬16:25의 말씀이 내 것이 되기를 축복한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라” 는 이 말씀이 나의 복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영세 전부터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지금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그 맛을 보게 된다. 영세 전에 감추어진 이 비밀 속에 있을 때 영원토록 보좌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롬16:27 “세세무궁토록” 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계복음화의 꿈꾸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는 자들은 갈2:20이 되어진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이름으로 사는 게 아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면, 우리가 점쟁이가 되거나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거나 불신자의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기억 속에 없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기억 속에 남는 자가 되어야 한다. 언제나 갈2:20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고후5:17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이전 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된다. 새것이 되었다면, 이제 헌 것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 내면을 살리는 축복을 누리면 어떤 무너진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끊임없이 우리 내면을 살리는 자가 되라. 그러면 포기하는 상태로 살던 사람이 힘을 갖게 된다. ‘그렇지, 나는 하나님의 자녀지. 그뿐 아니라 만물을 복종케 하는 권세도 가지고 있으니 다시 한 번 내가 일어나 걷는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겠다고 결단하면 아무리 속는 환경이 끊임없이 찾아와도 나를 바꾸고 가는 자가 된다. 사람의 말을 들어서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사람의 말을 들으면 성공이 아니라 저주와 재앙이 들이닥치게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속는 환경 속에서 살게 된다.
* 우리가 속는 환경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면 온몸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 창2:7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된다. 그뿐 아니라 요20:21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우리에게 계속 바람을 불어넣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를 가진 자는 고전12:13 성령을 늘 마시는 자가 된다.
우리 인생에 죄의 권세를 날마다 깨뜨리면 우리 몸에 질병이 사라진다. 사람 속에 왜 질병이 존재하는가? 질병은 죄의 권세로 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병은 금방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암도 조금씩 퍼져가는 사람은 낫기 어렵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굉장히 논리적, 합리적, 분석적인 것 속에 불신앙으로 시달리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말은 요일3:8 “마귀의 일을 멸하라” 는 말이다.
사람의 말을 듣고 죄를 짓지 마라. 사람들은 자꾸 사람의 말을 듣고 죄를 짓는 자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나는 점쟁이’ 라고 써놓고 다니지 않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은 점쟁이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점쟁이 수준이다. 이마에 ‘박수무당’ 이라고 써놓지 않았어도 성경은 이미 박수무당,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라고 기록했다. 내 몸에 죄의 권세가 이미 각인, 뿌리, 체질화 되었기 때문이다.
이 죄의 권세를 멸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요일3:8 마귀의 일만 자꾸 멸할 때 죄의 권세로 온몸에 퍼져 있는 질병이 사라지고 몸이 건강해진다.
죄가 무엇인가? “죄를 짓는 자” 곧 불신앙 속에 빠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말을 듣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했다고 말씀하셨다. 마귀는 처음부터 전쟁을 일삼는 놈이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듣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원수 맺게 하고 갈등하게 하고, 시험들게 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라” 이것을 하면 몸이 건강해진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죄의 권세가 자리 잡고 있고, 죄의 권세가 장악해서 못 일어나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죄 사함을 받으라” 하셨다.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시기 위해 막10:45 대속주로 오셨다. 마1:21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사람 몸속에 죄의 권세가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하나같이 몸에 질병을 지니고 산다. 내 몸에 죄의 권세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질병이다. 그래서 우리가 죄의 권세를 제압하고, 죄의 권세에서 해방 받을 때 몸이 온전해진다. 롬8:2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반드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신앙에 굉장히 열심이었던 분이 있었다. 그런데 코가 계속 썩어가더니 뇌에 까지 질병이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분은 늘 사람의 말을 듣고 시험이 드는 체질이었다. 신앙생활은 굉장히 열심히 하고 하나님께 감사 예물도 드리는데 사람의 말을 듣고 눈치를 보는 이런 부분들에 치료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예수사랑교회에 와서 많은 증거를 가졌다. 여러 번 수술해도 해결되지 않았던 질병의 문제에서 다 치료를 받았다. 그때 그분이 나에게 “목사님, 제 몸에 죄의 권세가 있다는 말이 이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죄의 권세로 장악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말을 듣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생각, 자기 기준, 자기 고집으로 인생을 살다가 어느 날 재앙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문제, 마음의 병, 생각, 모든 것이 이상해져 버렸다. 우리의 생각이 사람의 말인 인문학적 윤리, 도덕 속에 잡혀있으면 교회에 앉아있어 뇌가 계속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삶의 균형이 무너진다. 이것을 성경은 ‘더러운 귀신이 붙었다’ 표현했다. 우리 삶의 모든 병이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치유되길 축복한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야 한다. 고후4: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 세상 신, 사람들로부터 많은 말들을 들으면 혼미케 되지만 그리스도를 가지면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우리 몸에서 나타나게 된다. 사람들이 이 비밀을 알지 못한 채 늘 사람들과 부딪쳐 살기 때문에, 이상한 체질, 이상한 버르장머리가 사람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면 사람과 만나는 일이 더 피곤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영원한 동역자를 붙여주신다. 영원한 그 나라에 들어갈 복음의 나그네, 복음의 시인들을 하나님이 붙여주신다. 지금까지 만남 속에 속상하고 갈등하고 시험 드는 삶이 있었다면, 이제는 기쁨과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향연의 춤을 추고 귀빈이 되는 그 축복의 대열 속에 들어가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자신 자체가 ‘성령 행진’ 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리모델링, 재창조 해놓으셨음에도 우리안에 쓰레기를 모아놓고 있으면 아무 역사가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영혼에 성령의 히스토리, 성령행전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그리스도인, 선지자, 교사라고 했다.
예수님은 실존 인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사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 예수님이 실존 인물로 오셔서 요19:30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다 이루었다” 인간의 근본문제를 다 해결해주셔서,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길이 열렸고, 사망에 이르고 지옥에 갇혀야 될 기구한 운명의 저주가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을 갖게 되었고, 이제 진리를 가진 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요20:22을 말씀하셨다.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살아나신 그분이 직접 하신 말씀이다. 성령을 받으면 마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생명들을 제자로 삼아...” 인종을 초월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예수사랑교회는 사람의 문제를 초월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연약한 자나, 부족한 자나, 실수를 많이 한 자나 어떤 삶을 살았든 거기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며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된다. 어떤 약점을 가진 자가 있어도, 그 약점을 들어보려고 몸부림 칠 필요가 없다. 상대가 말하기 전에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 남의 인생 스토리를 알아서 좋을게 없다. 우리 영혼, 우리의 삶의 문제부터 먼저 치유를 받아야 한다. 이것을 초월하지 않으면 제자가 생기지 않고 우리 자신이 제자가 될 수 없다. 제자를 찾고 세워가는 자를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다. 그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더러운 것, 완악함을 내어쫓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소명을 주신 예수그리스도, 그 실존 인물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분을 날마다 의식해야 한다. 인생 80년 동안 답이 없던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네가 왜 지금까지 시달리며, 갈등과 번민, 사색 속에 인생이 무너졌느냐?”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굽 왕궁에서 배운 인문학, 실용주의 철학들이 모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3:14의 말씀을 주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스스로 있는 여호와를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자기 고집, 자기 기준으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분을 의식하면 우리의 체질이 무너진다.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로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면, 이제는 내 삶이 주는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삶에서 나타나는 영향력이 무엇인가? 염려, 낙심, 절망 밖에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긍정의 힘을 가지고 그 영향력을 자꾸 발휘해보려고 하지만 결국 그것은 아무 효과가 없는 점쟁이 수준일 뿐이다.
우리는 요3:16 속에 그분을 의식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렇게만 읽어도 기적이 일어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해서 극단적 이기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으니 모든 인종을 초월하고 수용하고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제자를 따로 세우라는 것이 성령의 역사다.
세상에 있는 나를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그 구원의 은혜 속에 감격과 감동이 있는 자들을 따로 세우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그런데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 성에 가지 않자,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결국 니느웨 성에 보내셨다. 그런데도 요나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고 발악을 했다. 니느웨 있는 사람들은 질이 나쁘고 악랄하고 더러운 쓰레기 같은 자들이라고 요나가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 하면서 불만을 토했을 때,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을 “그들도 내 백성이다” 라고 말씀하셨다(욘4:11).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사람에게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참 잔인한 것, 사단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어려움을 묻지 말고 침묵 속에 사람을 도와주고 제자를 따로 세우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게 구원의 계획을 알려줄 뿐, 사람에 대해서 심판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따로 세운 자들의 모습이 행2:42절 다. 그들은 언제나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포럼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는 자들이었다. 이것을 위해 교회 안에 훈련의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행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또 이런 사람들을 성령께서는 따로 세우라고 하신다. 성령이 개입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하나님 보좌에서 역사하는 축복을 받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 성령께서 왜 이런 사람들을 따로 세우라고 하시는가? 행6:7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놓고 그 말씀의 흐름을 타고 기도 속에 있으면, 하나님이 말씀 가진 자를 통해 성취시켜 가신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사람들을 따로 세우라는 것이다. 말만 하는 자들을 따로 세우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개입해서 성령이 따로 세우시는 자들은 분명 달랐다. 창3:15로 언제나 자신과 영적싸움을 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하시고, 하나님은 그를 따로 세우라고 축복하신다. 그리스도의 제자를 따로 세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신앙생활의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매주 예배 때마다 하나님 앞에 받은 말씀을 포럼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 속에서 있으면서, 제자를 삼겠다는 전도에 관심이 있는 자들이다. 예배 때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 는 그 의식 속에 살면, 안수받을 필요도 없이 질병은 저절로 치유된다.
행11:26, “바울을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복음을 받은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은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하지 못한 일을 했다. 행12: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성령은 이런 사람들을 따로 세우라고 하신다.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나온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갔다왔다. 전 세계가 큰 흉년이 들었지만, 안디옥 교회 사람들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고, 주의 손이 함께하며, 재앙의 시대 속에서도 재물 얻을 능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냥 돌아오지 않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와서 마가를 수행원으로 세웠다. 제자와 팀사역의 시스템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 미션홈 하는 제자 훈련을 알았다. 교역자들은 이 훈련을 해야 한다. 나는 우리 사모와 둘이 살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방 두칸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살았고, 공동체 목회를 오래전부터 해왔었다. 여기서 제자들은 형성된다. 그래서 나와 함께 살았던 제자들은 전 세계로 흩어졌지만 여전히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 우리는 언제나 제자를 세우는 힘이 있어야 한다. 제자를 따로 세우라는 것이 성령의 역사다.
내 몸에 와 있는 죄의 권세와 영적싸움을 하는 제자를 따로 세우라고 한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께 헌금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죄의 권세와 싸우는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을 거지로 의식해서 헌금도 이상하게 낸다. 하나님은 돈이 없어서 추수감사절 같은 것을 만들어 헌금을 강요하는 분이 아니다. 우리 몸속에 있는 죄의 권세와 싸우라는 것이다. 그래야 요삼1:2 그 축복이 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축복 속에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어려운 아시아 국가에 바르게 헌신하게 되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종을 초월하는 디아스포라 미션이다. 예수사랑교회는 승리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진행하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싸움을 하면 할수록 무한한 축복 속에 응답의 사람으로 바뀐다. 영적싸움이 없으면, 영적으로 무감각 상태에서 안일함 속에 있다가 자꾸만 분쟁을 일으키고 시비거는 자가 되고 거짓 교인이 일어나면서 문제거리가 된다. 그래서 교회 안에 거짓말하는 거짓 교사를 경계하라고 바울이 말씀했다.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나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성령을 주셨다는 진리 속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누리는 생명이 되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바로 전하는 사람들, 바로 안디옥교회 다섯 명이 세워졌다.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자 마자 그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이 되었다. 사람의 말이 사라질 때, 성령이 사람을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사람 몸속에 사람의 말이 사라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사람을 따로 세우라는 것이다. 롬1:16 사람의 말이 사라지고 우리 몸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실존 인물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던 그 성령의 의, 그리스도가 나타나 믿음으로 믿음에 나를 이르게 하신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의인 되게 하신다. 예수사랑교회에 이런 맛을 보는 제자들이 많이 일어나길 축복한다.
사람 말에 시달리고 갈등을 가져서 사람 때문에 미치겠다고 하며 교회를 떠나겠다는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가짜다. 자신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반드시 자신을 벗어나라고 위에서 내려온 창3:15을 우리 몸에 주신 것이다. 그래서 창3:15을 영접하면 신분이 달라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1:12의 권세까지 주셨고, 눅10:19 모든 원수를 제어하는 능력을 주셨다. 그럼에도 사람 때문에 갈등하고, 사람 때문에 원수를 맺는다면 자신이 먼저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 때문에 미치겠다, 누구 때문에 시험 들어 교회를 못 가겠다고 하는 수준이라면 그런 사람은 성령이 싫어하는 사람이다.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는 곳이다. 성령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실존 인물로 이 땅에 오셔서 마12:28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 더럽고 가증한 것을 내어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고 하셨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절대 능력이 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그 말씀을 내 몸에 넣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래서 죄의 권세, 사망권세, 지옥권세, 사단의 권세가 산산이 무너지고 인생 개혁을 하는 날을 맞이해야 한다.
행13: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성령께서는 사람을 따로 세우라고 하시고, 또 누구를 보내라고 하신다. 이것이 바로 교회 안의 역사다. 요14:16~17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보혜사 진리의 성령, 그리스도의 영은, 세상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 점쟁이, 우상숭배하는 자들, 불신자를 통해 마귀의 자식으로 길들여진 자들이 절대 받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 성령을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마음과 생각, 영으로도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들을 버리고 창3:15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 성령을 받아들인다. 곧 깨닫고 맛을 보고 체험한다. 그리고 그가 내 속에 거하심을 알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롬8:15~17의 응답이 오는 것이다. 롬8:15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늘 기도 속에 있으면서,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계속 증언하고 의식할 수 있도록 만든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래서 침묵하는 고난도 축복이다. 우리는 성령에 이끌림을 받으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해 예언된 바를 설명하는 교사를 따로 세우라고 하셨다. “성경을 따라 가르치는 교사를 따로 세워라.” 성령을 받은 사람이 있고 성령을 받지 않고 늘 성경에 있는 가르침만 받아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서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에 각인시키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안디옥 교회 일군 중에는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이 있었다. 니게르라는 말은 ‘검다’ 는 말이다. 얼마나 인격적으로 그를 대했던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시므온’ 이라고 하지 않고, ‘피부가 검은 시므온’ 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지었던 사람이다. 노예 신분으로 예루살렘에서 노예 일을 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 지는 광경을 본 것이다. 그때 예수님이 힘에 부쳐 십자가를 여러 번 넘어뜨리니까 그 노예를 끌어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도록 만들어준 사람이다. 시므온과 예수님이 다시 마지막 십자가를 교대할 때, 예수님이 시므온이라는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고 ‘나는 생명의 빛이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살 것이다.’ 이것을 눈으로도 넣어주셨다. 자원하지 않았고, 억지로 짊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그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은 롬16:21 까지 행진하는 자가 되었다. 행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이 바울의 어머니니라” ‘나의 어머니 루포’는 곧 아프리카에서 온 시므온의 부인을 말한다. 바울은 루포를 ‘나의 어머니’ 라고 칭했다. 또 그의 아들이 있는데, 그가 알렉산더였다. 이런 엄청난 역사 속에 그의 가문이 들어가게 되었다. 실존인물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것을 자기가 짊어지게 되었다는 상황을 시므온은 자기 부인과 바울에게 자세하게 전했을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그 예수님의 마지막을 생생하게 들려준 사람이 안디옥의 시므온이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에 생명을 걸었을 때, 시므온의 부인이 바울의 어머니가 되어 줄 만큼 모든 것을 후원했다. 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온 가족이 성경에 기록될 만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복음을 위해 하나님이 이 가정을 쓰신 것이다.
또한, 행13:1 루기오는 구레네 사람으로, 시므온이 자기 고향 사람까지 전도했다. 그냥 살지 않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복음을 선전한 것이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사람으로 상당한 권력층의 사람이었다. 그도 시므온이 전도하면서 권력의 사람들까지 움직여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여기에 바나바는 행4: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복음을 위해 재물을 아낌없이 내놓는 사람이었다.
또한 행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그를 바나바라...” 위협과 환란,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레위 사람, 요셉이라 하는 바나바 그는 언제나 “살아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무엇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고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었다. 행4: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 발 앞에 두니라”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를 책임져 주신다는 절대 은혜를 가지고 확신했다. 이렇게 복음을 받은 자로서 그는 증인이 되었다.
행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예배 때마다 우리가 이렇게 큰 은혜를 받기만 해도 변화와 감화가 오게 된다. 큰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올바른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도전을 선포하고 결단했다. 내가 새롭게 사는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이웃의 생명도 살리는 새 날들이 시작된 것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창3:15 그 언약 속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 속에 내 몸에 와 있는 3 저주를 푸는 자는 성령이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신다. 사단을 무너뜨리는 이 시작이 있을 때 히2:14~15의 응답이 온다. 14절,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며” 오늘날 교회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종 질병으로, 저주와 재앙으로, 점쟁이 수준으로 인생을 살면서 복잡해 있는 것이다. 히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 종노릇에서 해방을 받으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셨다.
이 일을 잘했던 나그네들,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의 주인이 되었다. 안디옥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이 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이 안디옥 교회 주인이 되었다. 영적싸움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된 것이다. 그들이 지도자가 되고 교사가 되고 성령께서 인정하는 자가 되었다. 이들은 행13:2 주 곧 그리스도를 섬긴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인도를 받고 싶어서 금식까지 진행했다.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비밀이기 때문이다. 금식을 하면서 모든 오락과 사람의 말을 금하고, 내 몸에 있는 죄의 권세를 한 번 꺾어보면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사58:6~9 굉장한 역사가 일어난다.
예배는 언제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 그분을 의식하고 치유를 받는 곳이다. 그리스도 앞에 나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는 허망한 말을 금할지어다’ 이렇게 내 몸에 선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허망한 말들이 쌓이면 질병으로 찾아 들어간다.
그래서 예배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절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령께서 개입하신다. 세속적 육체의 욕망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주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 행13:2 성령이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성령께서 지금 나를 부르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가?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는 것이 내 몸에 들리는가? 그렇다면 성령이 나를 불러 시키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시키는 일을 위해 따로 세우라고 하셨다. 성령께서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답을 낸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것이다. 나를 보내시는 성령은 언제나 나에게 개입하시고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가는 곳마다 이런 제자가 세워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바나바와 바울이 성령이 시키는대로 가지 않았다면 로마 복음화도 없었고, 독일과 영국의 복음화도 없었고, 그러면 미국까지 이 복음이 건너갈 수도 없었을 것이며, 한국에까지 이 복음이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적인 영적싸움을 시작하면 성령이 우리를 부르신다. 성령이 우리에게 시키는 일을 할 때 우리에게 복이 있게 된다. 추수감사절,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무엇인가? 성령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이다. 이제 성령이 우리에게 시키는 일을 시작하시겠다는 것이다. 오늘 성령께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내 몸에서 듣는 자가 되길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바울의 선교 여정을 따라가는 인생 개혁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시작될 수 있도록 은혜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에 성령께서 우리를 불러 시키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이제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우리를 세워주심에 감사합니다. 세계 복음화하는 우리들에게 어마어마한 그 배경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놓고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의 축복 속에 날마다 인생 개혁이 시작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허상을 붙잡지 않고 실상을 붙잡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누리는 열매 잊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사건과 모든 일들이 하나님 나라의 배경이 임하는 비젼을 붙잡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성령 충만으로 우리의 생각들이 사라지게 하옵소서.그래서 모든 생각들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고,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 나라 이루어지는 일에 쓰임을 받는다라는 절대적 확신의 고백이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모든 사건과 모든 일들 속에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씨앗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인종을 초월한 인생개혁으로 선교의 본거지가 되었던 안디옥교회의 축복이 예수사랑교회에 그대로 전달되어, 하나님의 배경을 가진 자로서 이제는 가지려 하지 않고 나눠주며, 세계복음화의 꿈을 꾸고, 하나님의 기억 속에 남는 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 나는 승리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계획을 가졌기에, 어떤 상황에도 사람의 말을 듣고 질병으로 시달리는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허망한 말을 금하고, 육체의 욕망을 제거하여, 염려와 낙심으로 오는 삶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를 날마다 의식하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의 모델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사람에게 있기에 어떤 누구도 심판할 자격이 없음을 알고 오직 성령의 소리를 듣는 자 되어, 성령이 나를 불러 시키는 그 일을 시작하여 디아스포라 미션을 성취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