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축복을 누리자, 반드시 응답의 때가 이른다
갈 6:7~9
2015.05.17 주일 1부 말씀
* 예배 가운데 말씀을 듣는 자세를 보면 열매를 알 수 있다
제가 중국 사역을 해 온 지가 4~5년 정도 되었다. 김서권 목사님은 20년 넘게 해 오고 계신다. 저는 중국 사역을 한 번도 수고롭다고 여긴 적이 없고, 자산이 쌓이는 현장이라고 믿는다. 왜냐면 분명한 영적인 사실을 볼 수 있는 현장 중 하나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 전도신학원은 현재 1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올해 다시 1년 째 접어들고 있다. 중국 성도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얼굴이 밝아지고 열매가 나오기 시작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 분들을 잘 모른다. 항상 통역을 통해 대화를 나누기에 깊은 대화를 나누기는 여의치 않다. 하지만 저는 그 분들을 잘 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말씀을 듣는 그 분들의 자세다. 말씀을 들을 때, 그 사람의 눈빛과 자세, 영혼에서 느껴지는 것이 제게 전달된다.
사람의 영혼 상태에 따라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확인한 게 중국에서 진행한 5년간의 사역이었다. 가족, 인간관계로 얽혀있는 현장 속에서는 편협할 수 있고 고정관념을 가질 수 있다. 저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서 예수사랑교회에 나타난 증거를 통해서 제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저 사람에 대한 저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3~4년 지나면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깨지게 됨을 느꼈다. 하나님은 누구든 차별하지 않고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부요케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원색 복음을 전하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
제가 중국에서 확인한 것은 그 사람의 영혼 상태에 따라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영혼 상태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배드릴 때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저기서 수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은 참고만 한다. 그 현장에 없었다면, 목격자가 아니면, 말을 하면 안 된다. 아무리 믿을만한 사람이 말을 했어도 안 믿는다.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의 유익과 따라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다. 제가 예전에 그렇게 했으니까. 그럼 제일 안 좋은 게 무엇인가?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고 복음을 따라가는 자세가 안 좋은 사람은 열매 맺기가 힘들다.
*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면 인생의 열매가 없다
언제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가? 바로 스스로가 자신을 추스를 수 없을 만큼 무너져있을 때다.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세상에서 소망이 없을 때, 갈급한 심령이 된다. 그리고 말씀을 놓치면 미칠 것 같을 때 말씀에 집중하게 된다. 그게 요셉이다. 섰다 하는 자 넘어질까 조심하라! 뭔가 조금 되면 교만해지고 말씀을 안다는 교만한 자세로 앉아있다. 누가 복음을 만홀히(업신) 여기는가? 바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면, 스스로 속는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반드시 복음을 가치 있게 여기고 심는다면, 반드시 인생의 열매를 맺는다. 복음을 가볍게 여기는, 가장 위험한 부류가 바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왜 안다고 생각할까?
→ 말씀은 살아서 힘이 있어 우리의 모든 묶인 것을 푸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전도캠프 중 어떤 교회를 들어가게 되었다. 출입구에는 ‘신천지 출입금지’라고 적혀있었다. 교회가 진실을 알면 아무리 가짜들이 와도 대환영이다. 그 교회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담임 목사님의 메시지다. 그래서 말씀 녹취나 말씀 테이프 있느냐고 물었는데 없다고 했다. 우리 교회보다 두 세배는 커보였다. 그럼 성도들이 한 주간 동안 담임 목사님 메시지를 전혀 들을 수 없느냐고 묻자, 그러니까 교회를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 교회 부목사와 인사를 나누는데 사람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과 현장에는 관심이 없고 공부만 하고 있었다. ‘어떻게 교회가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가 예전에 대형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그렇게 다녔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한 주간 말씀이 마음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신천지 출입금지라고 써 붙여도 말씀이 없는 곳에 이단은 반드시 파고들어 무너뜨린다. 왜 교회가 말씀을 들려주지도 않고 듣지도 않을까?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두 번 이상 들으면 매력이 없어진다.
그런데 예수사랑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한 주간 동안 메시지를 계속 들어야 살아!”라고 말하는 곳이다. 왜냐면 들을 때마다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흑암에게 모든 사람이 묶여있는데 그것에서 풀어질 때 계속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한 주간 강단에서 메시지를 통용하지 않고 흘러가도록 하지 않으면 메시지가 아니라, 그저 사람의 말일 뿐이다. 그건 교회가 아니다. 더욱이 현장을 살릴 수도 없고 현장에 말씀이 흘러가지 않기에 그들이 하는 전도는 사기다. 그런 기독교 문화 속에서 모태신앙인으로 제가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저에게 어느 날, 목사님과 사모님의 만남이 주어졌다. 저의 집 부엌에서 십분 정도 사모님은 제게 메시지를 주셨다. “네 인생에 도둑놈 마귀 있다. 거기서 빠져나오고 이길 수 있는 길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 권세 있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인생을 도적질하는 마귀의 권세는 떠나갈지어다. 이거 하면 네 인생에 기적이 일어난다.” 그 말씀을 듣고 기적이라는 말을 쉽게 운운하는 걸 보니 사기성이 짙다고 생각했다. 인생에 기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그런데 제가 예수사랑교회에 와서 상상 그 이상의 응답을 받아 제가 여기에 서 있다. 무엇이 저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이끌었는가? 그 전에 10년 동안을 교회 다녀도 말씀 하나가 마음에 살아 움직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잠시 만나서 들은 메시지가 2주 동안 제 영혼에서 계속 살아 움직인다는 걸 알았다. 문제와 사건 속에서 말씀이 살아 움직였다. 저는 그 당시 이른 나이에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만큼 비참함을 느꼈다. 제 인생의 미래가 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별히 잘난 것도 없고, 바뀔 가능성도 없고, 그런 뻔 한 인생 앞에, 제 인생을 도적질하는 도둑놈 이놈이 진짜 마귀 맞는가? 하나님이 진짜 구원의 길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면, 그분이 소망 없는 인생에 답이 되는가? 그렇게 자꾸 제 영혼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두드린 증거가, 2주가 지나서 그 교회 꼭 가서 확인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께 그 목사님 교회가 어디냐고 묻자, 하시는 말씀이, 당신이 40년 다닌 교회가 아닌 그 목사님 교회로 가라였다. 영적인 분별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으셨던 어머니도 아신 게다. 어머니가 다니신 교회가 사십년 다녀봐야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깊이 불교를 믿었던 어머니를 두었던 자매님이 자기는 불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녀의 어머니가 죽을 때 남긴 유언 때문이었다. “불교 믿지 마라 아무것도 없다” 왜 그 한 마디가 위력이 있는가? 다녀본 증인이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제 어머니도 그와 비슷한 유언을 남기신 것이다. “믿음이 있어 보이는 그 목사님 교회 가거라” 말씀이 제 안에서 살아 움직였기에, 그리고 제 영혼을 두드렸기에, 저는 예수사랑교회로 인도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김서권 목사님을 만난 후 2주 동안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아 내가 이제까지 신앙생활을 속으면서 했구나’였다. 5분 만나고 간 저 전도자의 말씀이 내 영혼을 요동치게 만드는데, 은혜 받고 10년 간 다녔다는 교회의 메시지는 왜 한 편도 기억이 안 날까. 그래서 내린 결론이 ‘내가 속았구나. 사람 울리는 감정에 속았다.’ 제 삶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변화시키지 못하는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 교회에서는 항상 기둥 뒤에 앉았었다. 인생에 답을 안 주니까 깊이 집중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죄책감으로 교회를 간 것 같다. 안 가면 찝찝하고.
말씀이 삶을 변화시킨다면 예배의 자세는 달라지게 돼 있다. 그런데 십 년을 교회 다녀도 제 삶을 전혀 바꾸지도 못했고 시달리는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말씀이 살아 움직이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다. 사람들이 왜 메시지를 안 듣는가? 삶을 변화시키는 메시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예수사랑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계속 듣는가? 바로 지금 나를 변화시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주일 저녁부터 계속 틀어놓고 들으면 웃기고 재밌던 이야기는 다 서론이고, 드디어 원색적인 복음이 하나씩 마음에 들어온다. “권세 있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영혼 속에 숨어있는 군대귀신 마귀야 떠나갈지어다.” 이런 말이 들리기 시작하고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왜 사람들이 교회들이 말씀도 안 붙잡고, 성도들한테 말씀을 전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영적인 메시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들을 때마다 실제 상황 속에 움직이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아니란 것이다. 계속 효과를 보는 메시지가 어떤 것인가? 우리 자신을 덮고 있는 어둠의 세력을 밀어내는 권세를 사용해야 말씀은 살아 움직이신다. 영적인 메시지를 적용하면, 말씀을 듣고 따라가는 상태가 점점 좋아진다. 그런데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은 말씀 듣는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 현장에 가서, 복음을 전해보면 안다. 불신자가 아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화를 내며 전도자를 다 내쫓는다. 너무나 많이 듣고, 안다고 생각하는데 왜 화를 낼까? 많이 듣고 알았지만 삶에 효과가 없기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 생명의 그리스도가 뻔 하다고 여겨지면 영혼이 병든 상태다
진짜 무속인을 만나면, 하나님의 자녀안에 어떤 신이 계시는지 안다. 지난주 말씀 중에 군대 귀신 들어간 자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 당신이 구원자로 오셨네요.’ 그리고 즉각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소리친다. 세상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엘리트들의 자세가 어떤가? 마귀가 사람들을 무너뜨리고 괴롭히고 발작을 일으킨다고 하는데도, 그걸 보고 자신하고 상관이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전도하기 어렵다. 하나님을 믿긴 하는데 귀신 들린 거는 나와 상관없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군대 귀신 들렸다. 그리스도를 알긴 아는데 그리스도에 대해서 별로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잡힌 것이다. 이런 상태인 자기 자신을 진단하고 벗어나는 데서부터 응답은 시작된다. 제가 예수사랑교회에 온 지 두 달이 지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은 설교 준비를 안 하시는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면서 복음이 매력 없는 무가치하게 여기는 영이 제게 들어왔다. 그리스도, 마귀, 영적 싸움만 얘기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때부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깨달은 게, 처음 예수사랑교회에 와서 복음을 들을 때 이 메시지가 저의 생명처럼 느껴졌다. 제가 왜 예수사랑교회에 왔느냐면 믿어서가 아니라 유일한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만난 여러 목사님 중 저에게 된다고 말한 목사님은 단 한 분이었다.
생명줄 같은 메시지가 뻔 하게 들릴 때, 제가 병든 것임을 알았다. “예배를 실패하게 만드는 흑암의 권세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이걸 계속 해야 자신을 진단하게 되고, 상태를 바꾸게 된다. 이 말을 듣고도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지 못하고 완악하게 덮여있는 게 군대 귀신 들린 상태다. 말씀 듣고 깨달아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너는 해방 받았다. 이런 말은 백 만 번 들어도 속이 시원해야 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마귀는 계속 공격하기에 계속 마귀를 밟고 쫓아내는 것이 지겹다면 살아있는 영적 지식이 아니다. 교회에서 영적 메시지를 듣지 않고 오래 훈련 받은 사람들은 군대 귀신들려 영적인 무감각한 상태가 되어 있다.
→ 인생은 오감을 통해 귀신이 사람 속에 쌓여가는 과정이다
군대 귀신 얘기를 듣고 이천 번 이상 싸웠지만 아직도 시달린다. 언제 이렇게 제게 들어왔을까를 생각 했다. 인생 살아가는 과정이 계속 귀신이 들어가고 쌓이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어린 아이가 6살만 되도 볼펜 빼앗아 가면 볼펜으로 동생을 찍어버린다. 나중에는 예비군 훈련 가서 총으로 사람을 죽인다. 점점 사람은 독해지고 완악해지고 이상해진다. 그런데 이 악해지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요즘 뜨는 시인이 있다. 초등학생 시인인데, 시 내용 중에는 ‘엄마를 씹어 먹어’란 잔인한 내용이 있다. 말세 시대에 흑암이 강하게 역사하는 시대가 와서 어린 아이 속에 이미 살인의 영이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살다가 무너지는 거다. 기분 나쁘다고 총으로 사람을 쏴죽일 수 있는가? 그런데 쏴 죽인다. 이미 이상해져있다는 말이다. 계속 사람들은 살면서 저주를 받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심지어 세상의 엘리트 매너 좋은 사람들이 이상한 짓을 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귀신이 쌓여오다가 어느 날 한 방에 무너뜨릴 만큼 덮여 그 사람이 귀신을 제어 못하는 거다. 영적 문제가 언제 해결이 되는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할 때 밀어낸다. 그런데 안 될 때가 있다. 그게 강한 귀신이 덮고 있어서 못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밟아주면 제압할 숴 있다.
세상은 인생을 운명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인간에게 계속 귀신이 쌓여서 어느 날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 되며, 그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일은 계속 귀신이 빠져나가는 과정을 밟아야 어느 날 응답이 온다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운명이라고 하는 말은, 전혀 세상을 영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여전도회와 함께 구인사를 다녀왔다. 50년 동안 도를 닦는 노승을 만났다. 그 분과 대화를 나누는데 마치 초등학생과 말하는 것 같았다. 근본에 대해 전혀 몰랐다.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만 말했다. 교회에서는 주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둘 다 인생을 모른다는 뜻이다. 제가 듣기 싫었던 말이 주님의 뜻이었다. 사랑하는 부모가 죽어가는 데도 주님의 뜻이라니, 싸대기 맞을 일이다. ‘운명’과 ‘주님의 뜻’ 다른 말인데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받아들이고 살라는 거다. 운명이니까 받아들여, 주님의 뜻이니까 따지지 말고 받아들여, 둘 다 재앙이 오고 문제가 와도 그냥 받아들이고 살라는 말이다. 교회는 주님의 뜻, 세상은 운명이만 본질은 같다. 이것이 종교다.
종교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그리스도인 증거를 한 번 보여줘 봐’라고 말했다. 그 때 예수님은 마술쇼하지 않으셨다. 마태복음16장, 너희가 하늘만 봐도 천기를 구분하는데, 네 인생에 뭐가 다가오는지도 모르는 그게 어리석은 놈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증거, 너희들에게 다가올 재앙을 알고 해결하고 모면하고 해방시키는 게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신적 증거를 따른다. 암 나으면 뭐하나, 동맥경화로 쓰러질텐데…. 기적 이전에 불행과 저주가 떠나가야 한다. 기독교는 어떻게 응답을 받는가? 계속 귀신이 우리 속에서 나가야 한다. 마귀가 언제 우리 안에 들어오는가? 살아가면서 오감으로 보고 듣고 느꼈던 것으로 들어온다. 창3장에 근본 문제가 시작됐다. 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으면 죽지 않는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 선악을 알고 지혜로워질 것이다. 그래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은 먹으면 정녕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 마귀의 말을 들었다. “안 죽는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 그리고 계속 봤다, 육신의 눈을 가지고. 그 보고 들을 때 흑암 권세가 들어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축복을 누리고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고 하셨다.
우리에게 언제 악한 영이 들어오는가?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데 기분이 나쁘다고 느낄 때 미움의 영이 들어온다.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말을 계속 들었다. 빨리 끊고,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먹지 말라고 했지?”이런 말을 계속 들었기에 생각의 근본이 바뀌어 버렸다. ‘먹지 말아야할 것’을 먹어버린 거다. 마귀의 말이 아닌, 마귀의 영이 들어온 거다. 사람들이 말을 들으면 영이 사람속에 들어온다. 무언가를 보면 들어오는 거다. 드라마를 보면 의심의 영이 들어오기도 하듯이. 우리 남편도 저리 바람피우고 돌아다니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그 사람을 끌고 간다.
→ 귀신이 쌓이는 운명에서 벗어나 오늘의 축복을 누리는 유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내어 쫓는 것이다
예배드리는 상태가 왜 중요한가? 예배를 드려보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를 거부하기 위한 다양한 반응들이 나온다. 그게 군대 귀신들이 들어가 있는 상태다. 그리스도의 복음만 비추지 못하도록 따라가지 못하도록 세상 신이 사람 속에 들어가 있다. 어떤 사람은 메시지를 들을 때 삐진다. 어떤 사람은 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오해한다. “왜 자꾸 나한테 마귀라고 하세요?”라고. 그러면 제가 “너처럼 소중한 아이를 괴롭히는 마귀가 있다.” 그래도 자기에게 마귀라고 했다며 대든다. 어떤 사람은 웃으면서 넘어가려고 한다. 절대 안 듣는다. 이런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다양한 반응이 우리 안에서 나온다. 그걸 군대라고 한다.
귀신이 쌓이는 인생을 살지 말고, 그리스도(말씀)가 쌓이는 과정으로 살아야 성령 충만이 임한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땅 끝까지 증인될 만큼 문이 열린다. 오늘의 축복이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다양한 반응이 나올 때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로잡아 내어 쫓고 차단시켜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게 응답이다. 미칠 것 같은 감정이 몰려오고 사방에 어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예수는 그리스도 하나님 만나는 길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죄를 사했네 예수는 그리스도 흑암 권세 꺾였네 예수는 그리스도 왕의 왕이 되신 주 그리스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부르면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요하게 하신다. 만약 누가 나를 오해했다?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가 응답 받고 그것을 깨뜨려야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목사인 저도 고정 관념이 깨지면서 여기까지 왔다. 저렇게 이상한 사람도 과분할 만큼 제자가 되어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신앙 고백으로, 들어오는 악한 영을 차단하라. 고백하는 게 응답이다. 왜 이말 저 말에 반응하고 환경에 반응하는가? 상대방과 똑같은 놈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욕심쟁이의 영, 혼미한 영, 두려움의 영, 음란한 영, 이런 게 있다.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마귀야 그리스도 이름으로 떠나갈지어다.”
이것을 발견하고 뽑아내야 오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이걸 하면, 반드시 심으면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다. 세상에서는 심은 대로 못 거둔다. 심어놓고 죽는다. 심어놓고 한 방에 간다. 살만 하자 무너진다. 그런데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둘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운명에서 벗어난 존재요,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에 저주와 사망에서 벗어났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부르면 동일하게 하나님은 응답해 주신다.
* 하나님은 심은 대로 반드시 거두게 하신다. 말씀을 영혼에 담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심는 영적싸움을 지속할 때 반드시 응답의 시간표가 온다
진짜 귀신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 한다는 사실을 무속현장에서 알게 되었다. 진짜 귀신들린 무당은 우리가 가면 자기 집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 왜 그런가? 우리 안에서 왕권이 나가기 때문이다. 군대귀신은 예수님을 보고 도망가지 않고 예수님에게 달려와 인사를 했다. 군대귀신은 능력은 그다지 없지만 수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지속해서 싸워야 한다. 제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게 무능과 무기력이었다. 무기력이 오면 오는 걸 알면서도 좋다. 이불 뒤집어쓰고 등짝 붙이고 누워있으면 그것처럼 행복한 게 없었다. 쫓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기력의 저주는 떠나갈찌어다라고 기도하고서도 잤다. 그런데 계속하다보니 제 영혼에 주님을 위해 살아가고 싶은 열정이 움직이게 시작했다. 열심이 아니다. 살아 움직이게 만든 게 복음의 열정이었다. 오랫동안 지속하자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게 군대 귀신의 정체다. 예수님의 권능으로 군대귀신도 몰살됐다. 하나의 체질이 떠나갔다면 군대 귀신이 떠나간 거다. 5년 10년 동안 해도 계속 응답을 받기에 지겹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오늘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하다면, 반드시 인생의 열매를 맺는다. 부족하다 하지 말고, 반드시 소망을 가져라.
심으면 반드시 거두고 피곤치 않고 낙심하지 않으면 거두게 될 것이라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열등감, 비교 의식에 사로잡히지도 말고, 과거로 인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오늘 하나님 앞에서 심으면 하나님은 우리 개인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신다. 그런 사람이 제자다. 오늘의 축복을 누리고 있으면, 내일은 응답이요 먼 훗날에는 상상도 못할 자리에 있을 것이다.
*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신앙생활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는 착각 속에 개인의 변화와 인생의 답도 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 속에 원색적인 복음이 선포되는 예수사랑교회와의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로 부요케 되는 인생을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안에 육신적 오감과 세상의 말로 오랫동안 쌓여왔던 영적문제로 인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능력되신 그리스도를 가볍게 여기며 생명줄 같은 말씀을 놓치게 만들어 예배를 실패케하는 흑암세력을 무너뜨리고 그리스도를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선포하여 예배와 복음 앞에 올바른 자세 속에서 오늘의 축복을 누려 열매 맺는 인생이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