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곧은 자는 들으라, 예수그리스도만이 율법의 완성자이시다
행7:44~53
2015.6.07 주일 1부 말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다녀도 나는 왜 응답을 받지 못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오직 일심으로 딱 하나만 하면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계속 고백하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조금 힘이 생기면 "하나님 살아계시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적 생각에 사로잡혀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주저앉게 만드는 저주의 질병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영혼 속에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무능과 가난과 질병의 저주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너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가진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 충만을 받을지어다." 그 이름을 부르면 부르는 만큼 믿음은 쌓인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통해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기에 저절로 되어지는 인생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고, 내 속에 있는 불신앙, 원망, 불평, 지저분한 것들을 내어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게 된다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성령을 덧입고 나는 세계를 정복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은 자이기에 내 앞에 걸림돌들을 자꾸 제거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내게 문을 열어주신다.
행1:14 광야 교회와 솔로몬 성전을 거쳐 초대교회가 탄생되었다. 그 초대교회에 모인 마가 다락방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개인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때, 바람과 같고 불과 같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오순절을 통해 그들은 환상을 보고 꿈을 꾸고 예언을 했으며, 말씀이 그대로 그들의 삶에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은 모든 것들을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꿈꾸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응답은 이미 와 있기에 "나는 절대적 하나님의 양자의 영 그리스도를 소유했기 때문에 절대로 무너질 수 없다. 진리의 영 그리스도로 일어나 걸을지어다! " 명령하고 선포하면 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이름, 그리스도를 내 삶에서 얼마나 누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열매는 나타나는 것이기에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전전긍긍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로 하나님을 누리면 된다.
* 목이 곧은 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당당히 선포한 스데반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들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기에 쓸데없이 하나님을 우상화, 형상화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었고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향해 땅을 진동시켜서 땅 속으로 꺼지게 만든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도록 이미 계획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을 축복해주시기로 작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인본주의와 불신앙으로 세월을 허비하며 진저리치는 40년의 광야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스데반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분명히 목격한 자였다. 그는 일곱 집사 중에 믿음과 지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고 영적싸움의 실천 속에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 이었다. 그래서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에 빌립과 스데반은 메시지까지 하게 되었고 그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도에 수많은 사람들이 복종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했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지고, 제자의 수가 많아질 뿐 아니라,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들이 그리스도 그 이름의 도에 복종하게 되었다. 행6:7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우리는 양자의 영 그리스도를 받음으로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후사가 된 것이다.’ 라는 분명한 확신과 왕권을 스데반과 빌립은 사용한 것이다.
어제 다른 교회 목사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강남에 메르스가 다 퍼져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했다. 그래서 “강남땅은 내 땅이야.” 하며 불신앙을 왕권으로 꺾어버렸다. 이게 바로 성령의 사람이요, 지혜가 충만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이 왕권을 사용할 때 하나님의 성령은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을 교회당에서 볼 수 있다고 착각하며 교회당을 우상화 하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저주와 재앙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 장막에 거한 자들을 건드리지 않으셨고 다윗의 기도 속에 세워진 성전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을 망하지 않게 하셨듯이 교회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지는 자들은 세상을 정복한다고 말씀하셨기에 교회당을 다니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몸에 익히는 축복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벧전2:9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요, 그의 들어갈 나라를 선포하는 이 시대 왕권을 가진 대사로 하나님이 부르셨다. 마10:1 교회를 통해 훈련된 자들은 가는 지역 마다 모든 약한 것들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고 약속하셨고 눅10:19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기에 누구도 우리를 헤칠 수 없다. 눅9:1-2 귀신을 제어하며 그리스도 이름으로 병을 고쳐주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앓는 자들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완전 해방시키는 권세가 있다. 스데반 집사는 이 메세지를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직접 들었다. 하나님 여호와 창세기3:15의 메시아 그리스도는 이 일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 그리스도를 몸 전체에 담고 누린 스데반의 증거
스데반 이름은 ‘왕관’ 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영광스러운 순교의 면류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위험 앞에서도 생명을 걸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했다.
예수님을 심문하고 죽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제사장을 세워놓고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연약한 자들을 앉혀놓고 다락방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복음이 없는 대형교회, 절간에 들어가서 ‘주 예수를 믿으라, 예수그리스도는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이십니다’ 하고 선포한 것과 같다. 요8:44의 출신들이 가득한 곳, 거짓이 난무하고 살인적인 광기가 충만한 자들이 모여 있는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은 예수그리스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몸 전체에 느끼고 가슴에 담고 있었으며 대단한 열정이 있었다. 그러한 복음의 열정에 하나님의 계시의 지혜 말씀이 쏟아진 것이다.
모세 광야 교회, 다윗이 간구했던 기도가 어떻게 성전으로 응답되어졌는지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말씀했으며 그 말씀 속에는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내용도 분명히 선포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인 완악한 원수들, 살기가 등등한 그들 앞에서 천사와 같이 평안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현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부부간이나 교회 안에서의 작은 문제만 생겨도 서로 용납이 안 되고 용서도 안 되고 이해가 안되고 작은 유혹에도 끊임없이 사달리고 순식간에 원수를 맺고 있지 않은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얼마나 가차 없이 행동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전달하지 않으면서 원망과 불평, 불신앙은 얼마나 빨리 전달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빨리 전달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인간은 요8:44로 인해 집착의 영이 들어가면 비참해진다. 인간의 사랑은 1,2년이지 절대로 오래 갈 수 없다. 그래서 영적싸움 하지 않으면 서로 원수 맺고 배신당하고 다 들통 나게 되어있다. 사실은 악령에 충만해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하다면 스데반과 같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인 살인의 영을 가진 자들 앞에서도 천사와 같은 얼굴로 평안함 속에 그리스도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내면에 요8:44과 교묘히 하나 된 완악한 저주의 신, 악한 어둠의 세력, 거짓말쟁이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어 쫓고 결박해라.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어떤 누구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생명을 살리는 멋진 구원의 사역이 시작 된다.
스데반은 구약에 말씀하신 창3:15이 메시아, 그리스도 되심을 분명히 확인하고 알고 믿고 느꼈다. 그리스도를 몸에 느끼면서 그 이름 하나로 만족함으로 어떤 사람 앞에서도 괜찮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돌로 자기를 치는 상황에도 '저들이 알지 못하오니 저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중보기도까지 한다. 이 힘의 능력이 우리의 몸에 충만할 때까지, 스데반과 같이 오직 영적싸움 하는 것이다.
스데반은 대제사장 앞에서 너희 민족을 위해 모세를 쓰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그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을 뿐 아니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신 그 하나님이 너희가 십자가에 달아 죽인 예수라고 설교한다. 결국은 하나님을 우상화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누리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내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얼마나 말씀으로 누리느냐에 따라 신앙생활은 달라진다.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하여 광야에서 40년을 경험시키신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 가나안까지 갈 수 있는 길잡이들을 완전히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믿을 수 있도록 모세를 통하여 수많은 메시지를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불신앙에 빠져 원망 불평을 자행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냥 부르지 않으셨다.
왕궁 40년, 광야 40년의 시간을 거쳐 호렙산에서 '네 신을 벗으라' 고 한 말씀까지, 모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과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 ‘스스로 계신 하나님, 내가 너와 능력으로 함께할 것이다’ 는 말씀을 수없이 주셨지만 모세는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나는 말이 부족한 사람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했고 그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였음에도 하나님은 그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으시고 '네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연약한 약점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사랑하셨다. 하나님이 모세를 사랑하신 것처럼, 창3:15의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무엇을 묻거나 따지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백성을 살려내라고 말씀하신다.
“바로 왕에게 가라고 하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드디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여자의 배를 빌려서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33년 동안 그가 메시아임을 만민 앞에 보여주시고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고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 하나님을 확인하게 되었다” 스데반이 죽음의 현장 앞에 담대히 선포 했듯이 그 하나님이 지금 나의 아빠가 되어주셨다면 스데반처럼 그 아빠를 느끼고 체질화 하라.
* 스데반이 선포한 성막 중심의 삶
스데반은 죽음 앞에서도 그 당시 교회를 비판했다.
-창세기3:15로 영적인 싸움을 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를 거스리고 성령을 거스리니, 말씀을 거스리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 계시의 역사를 거스려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을 뿐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이려고 악령에 충만해 있지 않는가.
광야교회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인정한다면 성막중심, 교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 생활 속에 성막을 세워주셨고 그 성막 중심으로 마음과 몸, 모든 삶이 향해 있는 자들은 수많은 맹수와 뱀들이 우글거리고 바람만 불어도 모든 것이 사라지는 거친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적 보호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성막을 바라보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애굽 사상에 길들여졌던 옛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의 새사람으로 내살라는 것이다. 너희의 조상이었던 모세가 신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섰던 것처럼 너희들 또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너희들은 아직도 옛사람의 옷을 입은 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형상화했던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금 도둑놈이 되어져있고 강도가 되어져있고 절도가 되어져있다. 고전10:1-2 너희 조상들이 하나님의 큰 물 세례를 받고 홍해를 통과했듯이 옛사람을 버리게 되면, 광야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요단도 건너갈 수 있는 것이다. 스데반은 대제사장 앞에서 이 비밀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광야, 예수사랑교회에 있는 이유는, 옛사람대로 살지 말고 새사람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럼 어느 날 내가 죽는 날이 온다. 요단을 건너야 할 시간표에 뚝방에 물이 넘치는 그 순간 속에서도 ‘죽으면 죽으리라’ 는 신앙으로 들어가야 물이 갈라지는 것이다. 여리고성과 같은 엄청난 세상의 신이 장악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누리는 그 힘의 능력을 갖게 된다면 그 여리고를 돌 수 있다. 그래야 가나안을 우리의 것으로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광야 교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시험 들고 원망하고 불평했다. 그러나 시험을 통과한 갈렙과 여호수아, 그의 2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수 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자들이 죽어야만 했고, 심지어 하나님이 메시아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시면서까지 엄청난 구원의 축복을 허락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원의 축복은 누려보지도 못하고, 의식주 문제에 시달린다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 불신앙, 사망 권세 잡은 자, 먹으면 먹는 만큼 사망으로 삼키려고 대드는 사단의 세력을 박살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사랑교회를 주셨다면, 구원의 사역 속에 은혜와 능력을 받고 세계복음화의 주역인 예수사랑교회 성도들은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반드시 예수사랑교회에 흐르는 강단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특히 예수사랑교회 교역자, 사역자님들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 교회를 맡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씀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 말씀을 하는데도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자꾸 버리는 사람이 있다. 광야교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함에도 ‘왜 하필이면 우리가 살인자 모세를 따라가야 되냐’ 고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전달한 구원의 계획을 바로 왕과 장로들에게 전하라고 하셨음에도 이것을 못 알아들었다. 자기 안에 자신이 ‘살인자’ 라는 불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왜 하필이면 모세보다 나은 아론이 있는데 하나님은 왜 문제투성인 모세를 데려가느냐? 그가 미디안 광야 이드로 장로 사위로서 살 때의 삶을 다 알고 있고 수많은 영적문제로 시달려 처자식을 버리고 광야에서 혼자 돌아다닌 사람이 아니냐?’ 하며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받지 않고 육신적인 것에 전부 매여 있었다.
‘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뭐 예수사랑교회만 말씀이 있느냐?’ 한다면 천만에 말씀이다. 우리 전 세계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 예수사랑가족은 반드시 예수사랑교회에 흐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고전10:5-10, 광야 사람들은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아 원망과 불신앙으로 전부 광야에서 엎드려 죽었다. 우리는 영적싸움 속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나 세계 복음화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질을 미리 훈련시키는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교회, 이 장소를 통하여 지금 말씀을 주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싸움 하는 것을 우리 몸에 익히라는 것이다.
모세도 쓸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쓸 수 있는데, 하나님은 왜 굳이 모세의 말씀만 들으라고 하셨는가? 맹수가 기다리고 바람이 불어닥치는 예측불허의 광야 생활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를 통해 광야 교회에서 선포되는 모세의 메시지가 가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내 몸에 익혀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를 통하여 생활화해야 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를 체질화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장막을 짓게 하셨다. 임마누엘의 신앙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성전을 짓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체질화, 생활화하고, 몸에 익히게 하기 위해 증거의 장막을 짓게 하시고 말씀을 주신다.
그 증거의 장막을 여호수아가 가나안까지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고 마침내 솔로몬 성전에 법궤를 가져다 놓았듯이 이제 예수사랑교회 장막을 넓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하고 기초를 쌓는 것이다.
장막을 지어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나와 함께 있다는 그 상징으로 장막을 넓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다. 원수가 쳐들어와도 교회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 흉년이 들어도 우리에게는 임마누엘 신앙이 함께하기 때문에 괜찮다. 흉년이 들어도 임마누엘 신앙이 함께 하기 때문에 괜찮다. 질병이 찾아와도 교회를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실 수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의 세례를 받으라고, 우리에게는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처럼 우상화 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우상화 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 하셨다. 여기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그리스도다.
광야 교회 성막과 다윗이 기도해서 얻은 솔로몬의 성전이 바로 오늘날 우리 예수사랑교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성전을 지어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 는 상징이 되길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율법의 완성자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권능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은 세계복음화의 주역으로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인생에 어떤 문제 앞에서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걸림돌을 제거할 때 하나님이 모든 문을 열어주심을 믿고 그 이름을 일심으로 선포하여 영적싸움이 생활화, 체질화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 받도록 최고의 성전을 우리에게 주셨사오니 강단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따라가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내 몸에 익히고 체질화 하는 기초를 쌓아 한 시대 가나안을 정복하는 그리스도의 증인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