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선교마인드와
하나님의 선교마인드
행10:9~16
2015.09.06 주일 1부 말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다 거룩한 것이요 깨끗한 것이다.
우리 안에 가진 선입견, 이상한 고집들을 무너뜨리고 세계를 살리는 사람이 되길 축복한다. 가난하고 응답이 없으면서도 자기 문화에 집착하고 자기 기준에 묶여 일어나지 못한다면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으로 인하여 내가 구원을 받고 그 사랑으로만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기에 이제는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 인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능력이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적 마인드를 우리 영혼에 담고 시작하는 것이다.
*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구원을 얻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새로운 축복을 받을 수 있는가
성경 구절 하나만 제대로 깨닫고, 담고, 그 말씀대로 살면 역사가 일어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생명의 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 메시아, 예수그리스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대로만 알아도 충분한 응답을 받는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심이라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생명,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은 우리가 가진 집착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성경공부를 많이 해서 응답이 오고 신학을 공부해서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은 우리의 생각보다 너무 강하게 우리를 장악하고 꺾어버렸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있는 자처럼 보이나 사실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되어 변화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도 아닌 우상 숭배 속에 갇혀있게 되었다.
-오직 돈, 돈 하는 이것이 우상숭배다. 하나님도 모르고 돈 버는 것은 가장 큰 비극이다. 이것을 저주와 재앙이라고 한다. 영원한 생명을 놓치기 때문이다. 돈 벌고 싶다면 정말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부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사실도 모르고 부자가 되면 타락할 뿐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이 우상숭배가 저주다. 오늘 내 영혼이 떠나면 내 돈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인생을 허비한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니까 우상숭배로 인해 육체로 전락해버린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감지하지도 못한 채 먹고 사는 문제에 열중하는 것이다. 인간은 먹고 사는 문제에 열중하는 존재가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열중했는데 왜 하나같이 고통 속에서 마약과 자살, 정신병자가 급증하는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사회가 더 아름다워져야 하는데 왜 불행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자녀들은 통제 불능이 되는가? 아들이 오토바이를 사달라고 해서 사줬더니 그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다 3일째 연락이 와서는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인간에게 찾아오는 재앙이다. 인간은 운명, 사주, 팔자에서 어떠한 힘으로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지금 느끼기 시작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 요3:16, 마16:16을 고백하기 시작할 때, 성령의 충만함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능력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적용하여 반드시 개인의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자를 청하여 그리스도를 배우라’ 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베드로의 마인드가 너무나 좁았다. 하나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헛된 기준을 갖지 말라’ 고 경고하시고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할 베드로에게 하나님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명령하신다.
갈보리 십자가, 언약의 피 흘림의 사건을 보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에 대한 것을 바로 알았다면, 감람산에서 부활하셔서 주신 그 언약을 그대로 실천하고 성취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놓았고 이제 그 누구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인생 문제 하나 해결할 길이 없어 방황했던 옛 사람을 벗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 비밀을 발견하여 하나님의 소원을 알도록 모든 문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소원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마인드를 갖는 자에게는 성령 충만을 주실 뿐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약속하셨다. 그 뿐 아니라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셔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다. 전도자가 된 자를 통해 하나님의 시간표는 시작된다고 말씀하셨다. 마24: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어야 그제야 끝이 온다고 하셨기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시간표, 곧 끝을 맡겨 놓으셨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곧 복음이며 전도, 기도 다. 그래서 이 복음을 알고 누리면 시작과 끝을 알게 되고 전도가 무엇인지를 알면 시대 속에서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진다.
한 시대에 시작과 끝을 가진 담임목사를 만났다면 이제는 우리가 갱신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이 없다면 우리는 만날 수 없었다. 하나님은 기도 응답을 받도록 길을 열어놓으시고 담임 목사를 만나게 하신 것이다. 나는 어느 날 그냥 목사가 된 것이 아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신앙생활이 무엇인가에 대해 몸부림을 쳤고 방황도 많이 하고 타락도 했다. 신학이 무엇인지도 알아봤고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찾아보고 종교가 무엇인지도 확인하며 다방면으로 인생을 살아봤다. 그러던 중 내 인생에 유일하게 답이 되었던 것이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모든 문제 끝났다. 이제 우리에게 반드시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허락해주신 만왕의 왕, 창조주 하나님의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
-기도를 알면 굉장한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게 된다.
과거에 나의 기도는 굉장히 외식적 이었고 세속적, 물질적이었다. 하지만 창3:15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떠난 근본문제, 사단에 의해 일평생 체질화된 옛사람, 자신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거짓말쟁이 이런 것과 싸웠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며 교회 안에 숨어들어와 교회를 통해 이득이나 보려는 것, 목사가 되어서도 밥 먹고 살려고 하는 것, 교역자가 되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외식주의, 사람을 만나면 부정적이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만드는 악랄한 이간자, 할 수만 있으면 성도들에게 하나님 만나는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부정과 원망과 불평의 사람으로 만드는 욕심쟁이, 영원한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사람을 짓밟아버리는 완악한 살인의 영, 이런 것이 내면에 숨어있고 귓때기에 붙어서 명령하는 것을 나 자신을 통해 보았다. 이런 것들과 그리스도 이름으로 싸우기 시작할 때, 한 번 싸우고 두 번 싸우고 세 번 싸우고... 되어질 때까지 싸우다보니 그 살인의 영이 내 영혼에서 떠나고 광명한 천사로 일평생 살았던 거짓말쟁이, 저주의 영이 그리스도로 산산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었다.
-우리 삶에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름이 고백되지 않고 노래가 되지 않는다면 죽는 날까지 거짓말 인생으로 살다가 바리새인, 헤롯처럼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된다. 헤롯은 일평생 하나님을 섬겼고 40년 동안 주의 성전을 지었지만 성전이 완성되는 날 황충이 먹어 죽었다. 왜 그를 죽였을까? 개인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하나님을 속이려 한다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성경은 기록했다. 나 한 사람 죽는 것이 차라리 낫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외식주의 욕망주의 세속주의를 심어서 방종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저주와 재앙이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하나님이 거룩하게 만드신 교회다. 이 교회 속에 혹시 장난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그리스도 이름으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 자기 기준과 문화적 편견을 버리는 영적싸움의 헌신을 시작하라
-본문에 나타난 베드로는 무엇에 집착하고 있었는가?
자기 사상, 자기 문화, 자기 기준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어도 무의식 속에 창3장 옛사람의 감옥에 갇혀있었고 창6장 자기 맘대로 살고자 하는 집착에 갇혀있었고, 창11장 몸부림치며 인기를 얻고자 바벨탑을 쌓는 감옥에 갇힌 것이다. 그래서 결정적 순간에 불신자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네게 명하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천하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는 유일성을 고백하면서도 옛사람에 묶여있었다. 그래서 결정적 문제 앞에서 자기 기준에 틀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이 거룩하게 해놓은 것도 거부한다. 이렇게 무서운 저주와 재앙이 지금 우리 내면에 깔려있다. 그래서 벧전5:7~8 베드로는 아주 중요한 고백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복하고 예배를 통해 선포된 강단 메시지를 먹지 않으면 내 자신도 우는 사자에 삼켜져 결정적 순간에 내 기준, 내 집착에 갇혀 두려움과 염려, 집착, 알 수 없는 사단의 조종을 받아 마귀 노릇을 저지르게 되기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 무의식 속에 각인되고 뿌리내려진 체질을 성령의 충만으로 태워버려라.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오직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 예수의 영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그래서 옛 집착으로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었던 사단의 머리를 발 앞에 무릎 꿇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과 지적인 요소, 행동까지도 그리스도로 충만해지고 가슴으로 날마다 예수를 나의 주인으로 맞이하는 충만이 있어야 하며 언제든지 죄사함을 받은 그 감격으로 충만해지고 주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러면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꾸 내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주의 은혜와 구원, 십자가의 사랑에 충만해지면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내 것을 남에게 나눠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함이 시작된다. 요8:44의 저주가 끊어지고 땅 끝까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 우리 영혼에 절대적 헌신이 시작되어야 한다.
절대적 헌신은 영적싸움을 말한다.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가진 우리 안에 있고 이제는 우리가 생명 걸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하기 때문에 우리 앞에 걸림돌 되고 삶에 고통을 안겨주는 옛사람의 체질이 있다면 벗어버려라. 우리 안에 욕심을 가지고 행동하면 끊임없이 고통이 따라온다. 서로를 노예 삼는 일 속에 고통이 시작된다. 청년들이 전문성도 없으면서 결혼을 하려고 한다면 주제파악부터 해야 한다. 전문성도 없이 사람을 꼬셔서 노예로 전락하고 일평생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거짓말 속에 살인의 영을 가지고 자존심과 고집만 센 사람으로 살게 된다. 서로 삶의 규모를 잘 갖추고 하나님의 마인드를 잘 준비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최고의 사람을 보내주신다.
인간이 가진 창세기3장의 마인드는 사람을 죽이는 마인드일 뿐이다. 하나님이 다 깨끗하다고 하는데 자꾸 거부한다. 그래서 행19장 사건부터는 베드로의 역사가 사라진다. 하나님은 냉철하시다. 우리 자신의 변화가 없다면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신다.
- 문화적 편견을 버려라.
우리는 무엇인가의 고정관념, 편견을 가지고 집착하는 것이 있다. 말씀을 들었다면 자신을 갱신할 때 축복은 시작된다. 우리가 가진 문화는 상대적인 것일 뿐, 오직 복음만이 생명이며 절대적이다.
사도행전은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뤄가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면 땅 끝까지 이르러 되어지고 롬1:16~7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그리스도로만 되어지는 자는 살게 된다고 말씀했다.
그런데 초대교회 사람들이 복음 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예루살렘에 집착하며 안주 했다. 앉은뱅이이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그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베드로의 인기는 대단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에 충만해서 그 이름으로 되어지는 현장 속에서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문화에만 집착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이 문화적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 핍박이라는 선물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흩어버리기 시작하셨다.
예루살렘에 있다가는 다 죽을 것 같아서 살려고 도망간 것이다. 순수하게 선교를 위해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피난의 길이 선교의 길이 된 것이 바로 사도행전이다. 아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성경이 룻기와 요나라고 한다. 이방여인이 선교한 룻기, 니느웨 이방 사람들에게 선교를 했던 요나. 그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집이 세고 집착이 강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민족의 편견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방 땅에서 숨어 지내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그 복음을 듣고 영접하고 성령이 임하고 세례를 받아 자꾸 충만해지는 역사들이 일어났다. 이것을 누가 했는가? 베드로가 아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우리의 아빠가, 구속의 사랑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사랑교회로 보내셨다면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시기에 이제 올바른 생각으로 기도 속에만 들어가면 된다. 지저분한 것을 버리라고 하시는데도 자꾸 우리는 ‘아버지, 죄를 또 저질렀습니다.’ 하고 고통으로 따라간다. 그러면 교회 문 여는 순간 또 달라붙는다. 하나님은 분명 창3:15로 끊으라고 말씀하셨기에 끊어질 때까지 시작하면 된다. 이방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복음을 알아듣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문화적 편견, 집착을 벗으라고 경고하신다.
* 우리에게 쌍방의 계시는 강단 메시지다
이방사람 고넬료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로마 사람, 귀족, 부자,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하나님은 쌍방에 함께 계시하신다. 강단의 메시지를 통한 쌍방의 계시가 없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 응답을 못 받고 정말 안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강단의 계시 없이 제 마음대로 한다. 나한테 상담을 하러 왔다고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결단하고 생각한다. 한 형제에게 이번 주 강단의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 속에 교회 붙어있으라 했으니 가만히 있어라 했더니 자신이 기도해본 결과 교회를 떠나라는 감동이 있어 가겠다는 것이다. 결국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방 사람 고넬료가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되었는가? 베드로와 고넬료가 쌍방의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안식일에 불러서 가장 먼저 쌍방의 계약을 체결하셨다.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 이 메시지를 먹지 않았더니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까지 침투한 마귀에게 결국 당했다. 오늘날 아무리 교회를 오랫동안 다녀도 쌍방의 계시가 없는 사람은 마귀의 영에 지배를 받는 사람일 뿐이다. 강단 메시지와 반대로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나니아와 바울도 쌍방의 계시 속에 있었다. 아무리 높은 학자라도 아나니아를 만나면 살았듯이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강단을 주셨기에 그 강단의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부자가 되고 싶고 정말 찌질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강단 말씀의 계시를 받아라. 지저분한 것이 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무슨 동역자, 친척이 되겠는가? 거룩한 교회에서 계시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혼자 있을 때 강단 메세지를 한 번 더 듣는다면 쌍방의 계시 속에 영감을 얻게 될 것이다.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언제나 믿음으로 하면 거룩해지는 것이다. 쌍방의 계시 속에 믿음으로 기다리면 된다. 하나님이 거룩하다는 것을 편견을 가지고 속되다 하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축복덩어리이기에 어떤 문제가 와도 괜찮다. 세계복음화를 향해 전진하자.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인하여 복음과 전도를 바르게 알아 시작과 끝을 맡기시고 시대 속에 사람을 보는 눈을 열어 날마다 새로운 도전이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율법의 마인드로 잡혀 자기 사상과 문화에 집착했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모든 삶이 그리스도로만 충만케 하옵소서. 영적싸움의 절대적 헌신 속에 우리 안에 숨겨진 문화적 편견을 버리고 생명의 복음만을 절대화하여 모든 사람이 복음을 바르게 배울 수 있도록 도우며 방황하는 모든 생명들까지도 돌이켜 한 마음 한 뜻으로 세계복음화를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