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확산은 그 누구도 막을 자 없다
행14:1~7
2015.12.20 1부 말씀
1부 예배에는 찬양, 기도 모든 것이 무겁다. 뭔가 무겁다가 점점 가벼워진다. 그만큼 세상의 흑암이 우리를 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예배하지 않는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채 비참한 인생을 살 뿐 아니라 마귀의 심부름 속에 고통 받는지 도 모르고 살아가며 이 세상 성공자로 남고 싶어 발버둥 치는 인생이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이라고 고백은 하는데 사실 우리 안에서는 ‘모든 문제 끝났고 내가 하나님 자녀가 되었는데 왜 문제가 끝나지 않을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마귀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이런 갈등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 영혼 속에 각인되고 체질된 창3장이다. 우리 인생의 응답은 체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에 어떤 갈등이 찾아와도 사람, 환경, 안되는 상황을 보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시며 그가 나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지금 인도하신다.’ 고백하는 것이다. 문제, 사건, 핍박과 고난 앞에서 창3:15그리스도 이름을 적용하여 사탄의 머리를 밟을 때 하나님을 만나는 여정 속에 새로운 인생으로 거듭나게 된다.
* 복음의 확산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고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핍박 앞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왜 이런 일을 주십니까 하며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그 시간, 그런 환경 속에서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서 역사하심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우리 안에 모든 불신앙과 갈등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여 하나님 보좌가 우리와 함께 계심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그 이름을 1인칭, 나의 복음으로 적용할 때 영세 전에 감추어두신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 영광의 광채가 우리 삶에 나타나며 이런 자들에게는 세세무궁토록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미래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다면 영원한 나라는 우리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 우리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지기에 하나님의 영광, 복음, 그리스도를 소유해라. 멍 때리는 인생으로 살지 말고 진짜 그리스도를 가진다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속에 무한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안디옥에서 시작된 복음운동으로 인해 안디옥 교회 지역에 핍박이 일어났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140km 떨어진 이고니온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게 되었다. 그런데 평상시 이방인을 개 취급 하며 관심도 두지 않았던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는 자들을 향해 엄청난 혈기와 분노, 살기가 등등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왜 복음만 들으면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는가? 예수님께서는 옛 사람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음이니라 말씀하셨고, 사도바울도 이전 것 지나가야 새 것이 된다고 말씀했다. 인간은 반드시 재창조의 역사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야 된다는 것이다.
엄청난 위협과 살인의 현장 속에서도 바울과 바나바, 그들을 만나 복음을 받은 자들은 성령이 충만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충만함 속에 설교를 했고 많은 핍박으로 인해 그들을 버릴 때는 예수님의 방법대로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발에 있는 티끌을 털어버리고 나왔다.
조그마한 먼지와 같은 인생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망권세 잡은 사탄에게 장악된 자신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보냈는데 이것에 관심이 없다면 먼지와 같은 인생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울과 바나바가 그대로 성취시킨 것이다.
행13:52, 그리스도를 만난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
곧 그들은 마귀의 심부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먼지에 불과한 그들이 그리스도를 만났기에 기쁨을 빼앗기는 일이 생기면 그 쪽을 가지 않고 기쁨이 충만하게 자신을 바꾸고 체질적으로 원망, 불평하며 쟁쟁거렸던 자신을 바꿨다. 요8:44 욕심쟁이로 살던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고 육신적인 일을 도모했던 자신을 영의 사람으로 바꿨으며 핍박으로 인해 있는 곳을 떠나는 일이 있어도 환경 앞에 비관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았으며 성공이냐 실패냐 의심도 없이 언제든지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기쁨으로 자신을 바꿨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 실패했다, 핍박을 받았다 이런 것을 논하지 않고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다른 마을로 떠났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신을 누가 건져 주셨는가에 대한 분명한 자기 은혜의 말씀을 가진 자였기에 어떠한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개인의 스토리가 뚜렷했고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었는지에 대한 구원의 확신이 뚜렷했기에 사도바울과 바나바, 그의 제자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로 충만한 감격과 눈물, 참된 감사가 흘러 넘쳤으며 가슴 속에 하나님의 감동, 그리스도의 영이 자기 안에 충만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이 흘러넘쳤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 전체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속에 거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는 이런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은 어떤 영이신가? 그리스도. 롬8:9,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충만하여 하나님 만난 것을 믿으면 된다. 믿는다고 하면서 갈등이 온다면 마귀가 붙은 것이다. 그런 갈등이 올 때 이념과 사상,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로 복종시켜라. “믿지 못하도록 나를 혼미케 하는 이 세상 신, 악한 영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삶에서 무너질찌어다!”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창3:15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고 그 비밀 속에 들어가면 어떤 은혜의 말씀을 받았는지에 대해 입에서 나오게 되어있다. 이것은 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맛을 보고 체험했기 때문에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싸움을 한다는 사람들이 판을 펴 놓고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유월절을 펴 놓으면 유월절이 없고 성탄절을 펴 놓으면 성탄절의 증거가 없다. 주일, 안식일에 하나님께 경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경배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 자신이 잘 알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영원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기복주의, 세속주의로 흘러가면서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를 준비시켜주지 않고 있다. 마25장, 사람은 죽음 직전에 반드시 구별된다고 말씀했다. 열 처녀가 등을 밝히고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한 하나님의 사람이 없고, 우리 안에 모두 양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염소밖에 없다고 말씀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자랑하고 표현하지만 고난당하고 주저앉아 슬퍼하는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본적 없는 자들을 향해 나는 도무지 그들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 정말 우리 삶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이 땅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 “너, 구원 받으라.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라” 말씀하셨지, 하나님은 이 땅에 무엇을 세우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를 힘입어 창3:15이 자신의 것이 될 때,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될 뿐 아니라 분명한 증거를 가진 증인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일을 하려거든 한 가지를 해도 진짜 제대로 해야 한다.
조는 것도 아니고 자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사람, 어정쩡한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화끈하고 반듯하게 하는 사람이 되라.
*하나님은 창세기 3장 15절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자에게 역사하시고 응답하신다
행14: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하나님의 사역에는 중단이 없기에 하나님 자녀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 속에 진입하면 된다. 바울과 바나바는 전에 행하던 대로 동일하게 복음을 전파했다. 문제와 핍박, 어떤 사건과 아무 상관없이 “예수는 그리스도” 이 하나의 능력을 가지고 영생주기로 작정된 하나님의 백성을 찾기 위해 회당에 들어가 그리스도만 말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향해 “너희가 그리스도를 아는가?” 이것을 전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중고등부 아이들이 교회를 찾아가서 그 교회 담임목사를 만나 창3:15이 뭐냐고 인터뷰를 하러 다닌 적이 있다. 조사한 결과 복음의 내용에 대해 아무도 몰랐다. 오늘날 교회들이 신천지 앞에 벌벌 떨고, 신천지 교인은 교회 방문을 사절한다고 붙여 놨다. 교회가 이단을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만약 신천지 사람이 우리 예수사랑교회를 온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뀌어 질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리스도가 들어가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역사하신다.
행14:2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자신 안에 요8:44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이들은 악감을 품고 사람들을 이간하고 분리시키며 파괴하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리스도, 창3:15이 없기 때문이다.
창조주 아빠는 창3:15로 시작해야 우리를 사랑하신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인생 전체를 속게 만들고 마귀의 심부름 하게 만드는 저주의 세력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어라. 창3:15을 믿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창3:15을 믿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만든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하지 못하게 막는다.
창3:15이 자기 인생의 목표가 되지 않으면 자신이 가진 기준이 정당하고 주장하며 남의 말을 하고 원망, 불평, 쟁쟁거리는 사람이 될 뿐이다. 자기만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장 큰 마귀의 심부름, 영적 문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 벌어오라고 하지 않았다. 복음의 경제는 따로 있다. 세속 경제, 기복신앙, 무속신앙, 교권주의와 여론에 휩싸이지 말고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목표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왜 계속적으로 회당에 들어가 메시지를 했는가?
사람들에게 창3:15, 마16:16 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망권세 잡은 자에게 길들여진 모든 흑암을 꺾으라는 것이다. 이것을 모른다면 목사가 아니라 무당일 뿐이다.
바울은 핍박을 받고 매를 맞고 굶주리며 헐벗고 고생해도 괜찮았다. 세상신이 사람들을 혼미케 한다는 것을 알았고 악한 하늘의 영들이 정사와 권세, 어둠의 주관자들을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으며 사상과 이념, 육신적 생각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사탄을 알았고 사람들의 육체의 정욕을 통해 마귀가 끌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겁날 것이 없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박살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면 정말 행복한 인생이 된다. 죽어도 괜찮고 살아도 괜찮다. 매를 맞아도 괜찮고 병이 들어도, 나아도 다 괜찮다.
그들은 능력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약의 흐름을 타는 응답의 비밀 속에 증인이 되었다는 비밀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매력이 넘치고 가슴 안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었다.
* 어떤 문제 앞에서도 그리스도를 보는 자는 자기 은혜의 말씀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된다
행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
그리스도 그 이름에 충만했더니 그 이름 속에서 담력과 용기가 나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핍박하는 자들 앞에서 그들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향해 따진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하나님을 보았다. 자신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광채,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본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보는가? ‘너는 왜 그렇게 혼자니? 외롭고, 슬프겠다. 너는 왜 그렇게 찌질하니? 부잣집에서 태어나야 했는데 개 팔자 보다 못해서 이렇게 사는구나.’ 두 사도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 무능한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힘입고 일어나 걷는 자가 되는 것이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도 “저들이 하는 짓을 저들이 알지 못하오니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늘을 우러러 보며 천사와 얼굴과 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영광의 광채를 보았기 때문이다.
창3:15이 목표가 되면 이런 충만이 흘러넘친다.
어떤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사건 자체에 몰두해 들어가지 마라.
우리 자신이 문제와 사건 앞에 몰두하는 것이 마귀의 심부름이다. 마귀가 깔아놓는 시스템 속에 왜 들어가려고 하는가? 우리가 문제와 사건에 몰두해서 ‘왜 그럴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문제를 주셨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해답은 없고 깊은 수렁에 빠져 우울증만 올 뿐이다. 바울은 핍박 앞에 또 다른 마을로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문제와 사건 앞에 자신을 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한나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 산산이 무너질찌어다” 이렇게 기도했으며 요14:14,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으며, 골3: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성령으로 성전 삼으시고 영원히 함께 계시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의 것을 생각하라 말씀하시고 마28:18~20, 그리스도 그 이름을 주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삶이 다 무너진 사람일수록 믿는 것인지 안 믿는것인지 표시 없이 늘 머물러 있다. 자신이 머물러 있다면 자신을 향해 창3:15을 선포해야 하는데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반드시 액션이 나와야 한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 응답은 시작되었다.
막16:15 온 천하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다니면서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아라’ 말씀하셨다. 우리 자신이 흑암만 꺾어도 엄청난 변화는 시작된다. 하나님은 보좌에서 함께 역사하신다. 말씀이 성취되는 시간은 바로 액션을 취하는 시간이다. 핍박을 받았을 때, 억울하게 당하는 문제 앞에서 주를 바라보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영적인 싸움을 하고 주를 바라보았을 때 나타나는 보너스가 무엇이었는가?
주께서 표적과 기사, 능력을 허락해주셨다. 죽든지 살든지 상관없이 내가 무엇으로 사느냐가 열쇠다. 우리는 오늘을 무엇으로 살 것인가?
행14:3,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고 어떤 은혜의 말씀이 있으며 그리스도를 어떻게 적용했는지에 대해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게 하셨다.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영적싸움을 할 때 은혜의 말씀이 성취된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씀했다.
어떻게 영적싸움을 통과해서 은혜의 말씀이 왔는지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자기 자랑, 잔소리만 하면서 기독교를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는 개독교로 오해시키는 사람이 될 뿐이다.
자기 은혜의 말씀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다.
“창세기 3장 15절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령한다. 사탄의 심부름을 자행하게 만드는 저주의 질병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찌어다. 복음의 확산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하나님이 내게 명령하셨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핍박의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노라!” 이런 영적싸움으로 자신을 일으키는 사람이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다.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주신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전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어떤 문제 앞에서도 그리스도를 대하고 있고 자신을 날마다 쳐서 복종시키는 영적싸움의 비밀을 가지면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나는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없어 숨은 문제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창3:15 이 비밀을 깨닫고 적용했을 때 믿어지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너는 살게 되는 것이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길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기복주의와 세속주의, 무속주의에 빠져 혼미함속에 어정쩡한 믿음으로 살아갈 인생 속에 창세기 3장 15절이 목표가 되어 영원함을 준비하는 올바른 미래를 열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담대히 선포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 속에 진입했듯이, 문제와 사건에 몰두하지 않고 흑암을 꺾고 오직 주를 바라보는 자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적용하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여 나에게 주신 은혜의 감격과 기쁨의 충만함을 보고 나를 좇는 자들이 지역에서도 일어나는 복음의 확산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