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던 매력적인 그리스도인
행17:10~11
2016.04.24 1부 말씀
바울이 자신을 핍박한 유대인을 피해 베뢰아 지역으로 갔다. 그 곳에서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을 만나 2박 3일의 집중 훈련 속에 이 전도운동은 계속적으로 확산되었다. 우리가 세상적인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갈 때 응답은 시작된다.
* ‘나’ 라고 하는 자기중심의 근본문제에서 벗어나는 영적싸움을 실천할 때 인생의 문제는 해결된다.
내가 예수를 처음 믿었을 때, 예수님이 세상의 윤리와 도덕적인 부분 때문에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며 성경은 우리에게 윤리와 도덕을 원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했고, 오히려 윤리와 도덕을 지키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이 더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리와 도덕을 지키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은 율법에 갇히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박애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좀 더 높은 차원으로 가려고 신비주의나 각종 성경공부에 빠진다. 그러다가 결국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며 자신의 영적문제는 해결하지 못함을 확인했다. 나 또한 이런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진리를 찾고 찾았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땅에 시작된 영세 전의 문제에 대해 말씀한다.
영세 전부터 시작된 혼돈과 공허, 흑암은 하늘에서 내어 쫓긴 자, 옛 뱀, 온 천하를 꾀는 자, 이간자라고 말씀한다. 그 놈은 전쟁을 일삼는 자이며, 엡2장에 공중권세 잡은 자로 사람 속에 작은 틈만 있으면 여지없이 파고들어가는 자라고 말씀한다. 이 놈이 인간에게 근본문제를 안겨줬다.
인간을 ‘나’ 라는 중심 속에서 살게 만들어 자기중심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한 것, 이것이 인간의 근본문제다. 그래서 자기 기준에게 장악되고 자신에게 완전 묶여버렸다. 그런데 누가 자신을 묶고 지배하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삶 속에 ‘그리스도’ 하나만 거부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자신의 근본문제를 깨뜨리지도 않고, 드러난 자신의 영적문제, 정신과 육신의 문제를 사로잡아 해결하지도 않고 광명의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여 히죽히죽 웃고만 있다. 이런 상태 속에서 사람은 점점 요8:44의 완전 멸망 상태로 장악되어 간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마15:19,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 간음과 음란, 도둑질, 거짓증언, 비방하는 것뿐이라고 말씀했다. 이것이 바로 멸망의 상태로 장악된 것이다. 그 멸망은 곧 사람에게서 나오는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이다. 결국 이런 상태로 살다가 사단으로 부터 당하는 심판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불신자 6가지 상태로 처절한 공격을 당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이 땅에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하나로 인생의 답을 내지 않으면 멸망 상태로 인생을 살게 된다.
바울에게는 자신의 절대적 규례가 있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 하나를 소유하면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로 우리의 생활 습관이 바뀌어 진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는 것이 믿어진다. 그리스도를 체험한 사도바울은 이 비밀이 있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시기와 질투, 끊임없이 빈틈으로 찾아 스며들어오는 저주를 오늘의 말씀과 오늘의 영적전쟁, 오늘 우리 자신에게 전도하여 끊어버려라. 시기와 질투를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영적 상태 속에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된다. 죄는 우리의 생각으로 파고드는 불신앙이다. 생각 속에서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되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악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사단의 도구로 쓰임을 받고 시기의 노예가 되어 육신과 정신이 망가지고 영적 상태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사단의 노예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마음에 똬리 틀고 있는 사단은 그리스도로만 박살나기에 우리 영혼 속에 시기, 질투, 열등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무서운 저주가 바로 ‘나’, 내 안의 ‘자기’ 라는 놈이다. 그래서 자신을 향해 ‘내 안의 나, 자기야 너 좀 나가. 내가 너 안 나가면 끝까지 추적해서 너를 죽여 버릴거야.’ 이 정도의 결단이 있어야 나간다. 목사인 나도 그런 과정들을 거쳐 왔다. 내 안에 세상에서는 굉장히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무너뜨렸다.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의 권세로만 우리 자신, ‘자기’가 박살난다는 것을 깨달을 때 떠나간다.
딤후2:1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 강한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세상에서 매혹적이고 인기가 있었을지 몰라도 사실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마음의 집시, ‘자기’ 라는 놈을 버리기 전에는 너무 형편없고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창3:15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로 내 속에 ‘자기’, ‘나’ 라고 하는 이 놈과 오늘의 말씀, 오늘의 영적싸움, 오늘의 전도를 가지고 영적전쟁을 시작했다. 하나님이 원하셔서 부른 자들은 성령이 함께 하시고,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택함을 받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전쟁을 시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지키신다고 약속하셨다. 유1:1.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가을에 열매 없는 나무, 물 없이 바람에 밀려다니는 구름 곧 아무 쓸모없는 인생이 된다. 유1:12. 그래서 나는 내 안에 ‘자기’ 라는 이 놈과 영적전쟁을 한 것이다. ‘내 안에 자기, 늘 내 자신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저주의 영아, 너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은혜 속에 강한 군사가 될지어다!’
영적 싸움하는 조건에는 이유가 없어야 한다.
이유는 영적싸움을 하지 않을 때밖에 없다. 정말 영적인 싸움을 하는 군사는 이유가 없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자기’ 는 얼마나 이유가 많은가? ‘너는 그래도 정당하잖아. 바른 말을 하고 살아야지...’ 하면서 찾아오는 내 자신을 오늘의 말씀 앞에 죽여라.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자기’보다 전지전능 하시다.
다윗이 사울 왕 앞에서 “내가 어찌 이유가 없겠습니까?” 했던 말은 이 뜻과 다르다.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블레셋의 저 개 같은 자들의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를 듣고 이유 없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뜻이었지만(삼상17:29), 그는 영적싸움 앞에는 이유가 없었다.
어설프게 싸울 때 이유가 많은 것이다. 히12:3~4, 피흘림 없는 싸움은 징계만 받을 뿐이라고 말씀했다. 피 흘림은 목숨 건 싸움을 말씀한다. 우리 안에 있는 ‘자기’를 죽이는 영적싸움만 시작하면 된다. 내가 그리스도 하나로 내 안에 있는 ‘자기’를 박살냈더니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감사가 넘쳐나게 되었고 귀한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다. 쓰레기와 같은 존재, 지렁이 보다 못한 사람이 그리스도 하나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 영혼 속에는 끊임없는 감사만 나온다. 누가 헛소리를 해도 괜찮다.
나를 부르신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는 ‘이유 없는 영적싸움’ 속에 강한 영적군사가 되어야 한다. 이 사람이 충성된 자이며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다. 영적싸움을 하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 그 사람 또한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안의 시기, 질투, 열등의식을 숨겨놓고 영적싸움도 하지 않으면서 남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래서 형제지간도 원수를 맺는 것이다. 반드시 우리 안에 나도 알 수 없이 자리 잡고 있는 원죄 덩어리, 요8:44, 이 흑암을 완전 몰아내자.
본문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전도의 문이 열리자 유대인들 속에 악마의 심성이 나타나며 악마 노릇을 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40km 떨어진 베뢰아 지역으로 간밤에 옮겨간다. 유대 사람들의 핍박은 그들의 시기와 질투에서 오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런 핍박은 상대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개인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열등의식, 시기, 질투는 악마의 노릇이기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 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모습에는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 있었다.
*‘나’ 를 죽이고 그리스도가 살아날 때 우리 안에 감람산의 언약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는 변화가 일어난다.
바울은 베뢰아로 옮겨 자신의 습관대로 회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회당에 들어가서도 계속 ‘예수는 그리스도’ 만 말했다.
인간은 근본문제, ‘자기’ 라는 놈에게 장악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음에도 그리스도 그 이름을 영접하지 않고,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자기’ 라는 사상을 깨부수지 않기에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오셨고 그 이름으로 마귀를 무너뜨리는 오늘의 말씀, 기도, 전도를 실천하면 내가 살아나고 이웃과 국가가 살아나게 된다는 것을 바울이 설명한 것이다.
행13장, 바 예수라 하는 유대인이 그리스도만 거부하는 의에 원수가 되어 모든 사람들을 장악하여 다른 말로 비방하고 거짓말만 하고 있었다. 그 때 사도바울이 바 예수라는 거짓 박수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었다. 우리 입에서 헛소리가 나온다면 멸망상태, 멸망의 시스템 속에 자신이 갇혀있다는 것이다. ‘은혜 속에 강한 영적인 군사는 이유가 없다!’ 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라. 우리 자신과의 영적싸움 앞에서는 이유가 없어야 한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성전 삼으시고 그리스도 권세를 주셨고 그 권세만 사용하면 되기에 어떤 이유도 사라져야 한다. 이것이 복음이고 우리는 이것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 안에 더러운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 안에서 거짓말 하는 놈, 음란한 도둑놈, 비방과 헛소리 잡소리, 우리 영혼을 장악한 악한 생각... 우리 안에 있는 이 ‘자기’ 를 죽이시려고 예수가 갈보리 산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래서 십자가 구속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싶다면 우리 자아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를 영접해라. 이것이 복음인데 지금까지의 한국교회는 예수 믿으면 병 고치는 것, 잘 사는 것 이런 착각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돈 떨어지면 다른 교회로 가고 병 고침 받으면 좀 더 세련된 교회를 찾아 가 앉아 있다가 병 걸리면 다시 오는, 이런 식이다.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반드시 기억해라. 근본문제는 바로 더러운 ‘자기’ 이다. 우리 안에 ‘너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고 하는 더러운 자기가 있다. 그래서 자꾸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자아로 인생을 살려고 한다. 우리의 자아를 그리스도로 사로잡아 복종시키고 그리스도를 우리 안의 만왕의 왕, 주인으로 섬겨야 한다.
우리 자신은 죽고 우리 안의 그리스도가 살아날 때, 감람산 하나님의 언약을 받는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이제는 우리 자신으로 살지 않고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우리 마음 속에 끊임없이 솟구치는 옛사람의 체질들, 세상적 습관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어 쫓아라. 그러면 하나님의 감람산 부활 이후 메시지가 자신의 것이 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8~19. 이런 사람을 ‘매력적인 사람’ 이라고 한다. 우리는 대형교회를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하나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제자가 바로 교회 이다. 감람산 부활 이후 메시지를 가진 자는 누가 죽여도 괜찮고 핍박을 해도 괜찮고 이유가 없다. 이 시대 근본문제와 근본문화 속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끊임없이 요8:44로 멸망케 하는 저주의 세력에서 건져낼 예수사랑교회가 탄생했다. 예수사랑교회는 성령의 역사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행하는 초대교회, 마가다락방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 세계복음화 속에 바람과 같고 불과 같은 하나님의 성령이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로 예수사랑 성도 각 개인에게 역사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놓고 꿈을 꾸고 환상을 보며 예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 영혼 속에 영력과 지력, 체력, 경제력, 만남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을 회복한 교회가 바로 마가 다락방 교회였고 초대교회였다.
*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진단하자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사람은 천성적으로 심성이 좋은, 예수 믿기에 아주 좋은 체질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정말 형편없는 사람, 입만 열면 비방, 거짓말, 시기, 질투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피 흘릴만큼, 목숨 건 영적싸움을 해야 한다.
베뢰아 사람들은 늘 성경을 상고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별로 열등의식, 근심이나 의심의 노예상태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근심의 노예, 의심의 노예, 불안과 낙심의 노예가 되어있다. 이들이 이런 것에 노예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성경을 상고했기 때문이다. 곧 그들은 언제나 오늘 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했고 오늘의 삶 속에 기도가 있었으며 자기 자신에게 늘 전도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여 어설픈 노예 상태는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또한 베뢰아 사람들은 편견이 없었다.
나의 경험, 지식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진리에 대하여 마음 문이 활짝 열려 ‘아멘’ 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게 뭐 새로운 진리라고... ’ 이런 식 편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편견이 있으면 마음 문을 열지 않는다. 상처를 많이 받은 자 일수록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으로 영혼이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대우와 인정을 받다가 어느 순간 그 인정과 인기가 떨어질 것 같으면 미리 겁을 먹고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만든다. 마음이 활짝 열려 옥토와 같은 생명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심령이 돌작밭, 가시밭 같다면 빨리 뽑아 버려라. 그래야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 예수님은 매력적인 사람을 향해서는 “내가 문 밖에 서서 기다리노니” 말씀하셨다. 이제는 우리의 옛 자기를 벗고 그리스도를 모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베뢰아 사람들에게는 강한 욕망(동기) 이 없었다.
불순한 동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내면에 불순한 동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 병 낫는다, 교회가면 장가간다, 시집간다, 등등...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늘 거지 근성이 있어서 자꾸 다른 사람이 자신을 챙겨주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그래서 늘 ‘누가 나를 안 도와주나? 왜 저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지?’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베뢰아 사람들은 감정에 매이지 않았다.
가장 무서운 것이 감정에 매이는 것이다. 감정이 앞서는 사람들은 비신사적이다. 감정이 앞서는 사람은 자신이 밥 사주고 얻어맞고 비방 받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감정에 매여 있는 사람이라면 ‘너 죽고 나 살자’ 하지 말고 ‘너도 죽고 나도 죽자’ 해야 한다. 죽은 사람은 이유가 없는데 즉흥적인 사람은 마지막에 이판사판이 된다. 국가가 망하고 개인이 망하는데도 화만 내는 사람이 있다. 우리 영혼 속에 나타나는 분노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뜨려라. 잠18: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말씀했다. 즉흥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세 번씩 생각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답을 얻는 자 되라.
베뢰아 사람들은 수동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여러 날 동안 성경을 상고하고 많이 생각하고 받아들여 믿게 되었다. 아무 사람의 말이나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것이 정말 맞는지 말씀을 놓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성경을 직접 보고 그 성경의 말씀으로 오늘의 기도 속에 들어가 생각하고 결정했다. 그래서 그들을 매력적인 그리스도 인, 신사적인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체험하면 이렇게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된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이 던진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고 집중적으로, 마음을 다하여 말씀을 좇았다.
변화가 가장 어려운 사람이 교회를 오래 돌아다닌 사람들이다. 쥐약을 많이 먹고 돌아다닌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이 설교를 많이 하는 이유는 사단의 노리개 감으로 당한, 너무 불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쥐약을 먹고 돌아다니면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붙는다. 그런데 욥은 자신의 부인과 수많은 친구들이 찾아와 회개해라, 하나님을 원망해라 말해도 자신에게 복을 주신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귀가 있다는 것 하나를 깨닫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쥐약을 먹으면 안 된다. 자녀들이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데도 부모는 왜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늘 공부하라는 쥐약을 주고 있다. 한 번 했으면 되는데 자신이 한 말을 잃어버리고 몇 년 동안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한다. 이런 것이 영적으로 맛이 간 상태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했는데도 안 끝났다고 하는 것은 늘 이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쥐약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켜라.
쥐약을 많이 먹은 사람일수록 날마다 그리스도로 성경을 집중하고 상고해라. 상고했다는 말은 반복적으로 그리스도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알고, 성경을 그 때부터 믿게 되고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가 성령인 것을 알게 되면서 그리스도를 자신의 현실에 적용시켜 성경과 자신이 처한 현실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 것 까지 확인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 삼중직을 가지고 기도 속에 들어갔다. 왕 되신 그리스도로 자신에게 전도하고 참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로 자신의 모든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끝내고 참 선지자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렸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오늘 속에 그리스도로 해답을 내렸다는 것이다. 근본문제로 사로잡혀 평생 마귀의 심부름을 하고 마귀 노예 되지 말고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는지를 깨닫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를 개인에게 적용시켜 자기를 내어버려라.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문제를 끝내셨기에 형편없던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이 축복으로 새롭게 시작해라.
데살로니가에서 핍박하던 자들이 베뢰아까지 따라와서 핍박을 할 때, 바울은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게 된다.
다메섹까지 따라가서 예수 믿는 수많은 자들을 죽였던 옛 사람 자기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은혜 속에 잠기는 자는 과거의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추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고 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끝내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렸다면 사단에게 다시 노예가 되는 그 추한 꼴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베뢰아까지 쫓아온 유대인들과 싸우지 않고 아덴을 향해 떠난다. 그들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잘못 믿고 있기에 자신이 영적싸움하고 흑암을 꺾어주면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하게 될 것 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자가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함께 계시기에 오늘의 말씀 그리스도, 오늘의 기도 그리스도, 오늘의 전도 그리스도를 가지고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길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공허와 혼돈, 흑암으로 시작된 영세전의 문제, 빈틈으로 찾아 들어오는 공중권세 잡은 자, 마귀의 노예로 자기중심으로만 살았던 근본문제에서 그리스도로 빠져나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바울과 같이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를 갖는 습관을 가지고 내 안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오는 ‘나’ 라고 하는 자기 자신, 옛 사람을 버리고 영적싸움 앞에 어떠한 이유도 없는 충성된 자, 은혜 속에 강한 군사가 되게 하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베뢰아 사람과 같이 그리스도를 체험한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