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3. 1부 말씀
우리는 지금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것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다면 틀림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그리스도 그 이름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스도 그 이름은 바로 구약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신약에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저희 죄에서 우리를 구원할 자이시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 한 이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엉뚱한 소리에만 집중을 하며 그 이름에는 관심도 없이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인생 속에 살고 있다.
교회사 속에 누가 승리했는가? 바리새 교회는 승리할 수 없었다. 가난하고 헐벗고 학벌도 없고 무식하고 아무것도 없던 사람들, 핍박 받는 초대교회, 갈릴리 사람들이 그 이름 하나에 집중하여 로마까지 정복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는 오직 그 이름 하나로 해결된다.
빌3:8,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라고 말씀했다. 우리가 인격적, 성품적, 모든 것으로 멋있는 사람이 되려면 그리스도를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 없이, 그 이름에 집중하지 않으면 사람은 고상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빌3:12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고백했듯이 오직 그리스도 그 이름에 목표를 가지고 그 이름에 집중해야 최고의 목표를 가진 사람이 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 이름에 집중하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 이름에 집중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그 이름에 집중하여 위에서 부르시는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빌3:14. 그리스도에 집중하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축복이 다르다. 땅에서 오는 축복들은 돈 있고, 교회당 커지고 땅 많이 가져봤자 분열뿐이다. 땅에서 나오는 것은 파괴적, 재앙밖에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하면 위로부터 내려오는 그 상이 우리의 것이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집중하면 하늘의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다. 시민권을 가지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 되라. 하나님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를 통해 우주와 지구를 움직이신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가 되지 않으면 옆 집도, 동네도 못 다닌다. 하늘의 시민권을 소유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시작된다.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하고 그 이름에 인생을 건다면 만물을 복종케 하는 역사가 시작된다. 이렇게 위대한 비밀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하지 않는다. 차라리 자기 눈을 감고 머리를 박는게 낫다고 생각하고 과학의 시대에 무슨 하나님을 찾냐고 한다.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만 고백하고 그 이름에 집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 인도, 역사하신다. 그 성령, 그리스도의 영은 기도를 통해 모든 것을 성취해가시기에 기도로 모든 것을 뚫으면 된다.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로 높은 산들이 낮아지며 구부러졌던 길들이 펴지고 이 산을 명하여 바다로 가라 명령하면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신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살인자, 비 진리 이 모든 것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킬 때 우리 앞에 펼쳐진 흑암권세가 무너지며 주의 사자가 우리에게 수종든다.
이 비밀을 정말 깨달을 때 엄청난 축복은 시작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정복자의 길을 선택하는 비밀은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하는 것이다.
롬16:25~27, 우리 인생의 사는 날 동안 그리스도를 1인칭 할 때,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보게 될 것이며, 영세 전에 감춰놓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며,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세세무궁토록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까지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하는 사람은 자신의 기분대로 살아가지 않는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인생이 안 풀리는 것이다. 나의 기분으로 살지 말고 그 분의 기분으로 살아봐라.
그 분의 기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요19:30, “...다 이루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끝났다는 것이다. 이 기분으로 하룻밤이라도 지내라. 그러면 잠을 자도 꿈이 달라진다. 그렇지 않으면 꿈에서도 늘 신경이 예민하고 시달리고 도망가는 꿈만 꾼다. 나의 기분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기분으로 살아라.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뿐 아니라 그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쁨이기에 나의 기분으로 기분 잡치게 살게 만드는 육체의 우상을 그리스도로 타파하고 옛 종교, 옛 믿음, 옛 신앙, 옛 습관, 옛 사상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로잡아 내어 쫓아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선택하면 달라진다. 그런데 “목사님, 제가 교회 다닌 지 30년 흘렀습니다, 예수사랑교회 7년차입니다.” 이런 사람은 믿지 않으니까 세월만 흐른 것이다. 말씀을 믿으면 우리는 영원히 사는 자이기에 매일이 한 살이다.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하면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재창조의 응답이라고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재창조의 응답이 일어나 날마다 새로워지고 변화되고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세상 풍습을 좇지 않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가지 않는다.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가는 자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하나님이 살리셨음에도 불구하고 옛 세상 풍습과 습관에 젖어 산다면 믿는 자, 구원 받은 자가 아니다.
* 하나님은 창세기 3장, 사단에게 잡혀있는 우리에게 구원의 방법을 주셨다
먼저 옛 뱀,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이간자 머리를 박살내라. 구원 받는 방법을 주셨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 방법대로 그냥 자신이 믿으면 구원도 받지 못한 채 비참하게 살다가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법이 바로 ‘원시 복음’, 곧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박살내라!’ 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받으라고 그리스도를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그 이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귀의 일이 보인다. 죄의 권세, 지옥권세, 사망권세가 보인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나님을 만나야겠다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교회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보이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개인에게 시작된다. 그래서 오직 성령충만 만 받으면 된다. 그리스도에 집중하면 성령이 임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지혜라고 말씀하셨기에 그리스도에 집중하면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가 그대로 나타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충만함 속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명령하고 다스리고 축복해라. 그러면 붙었던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고 앉은뱅이와 중풍병자가 일어난다. 나의 기분으로 살던 내가 새로운 하나님의 기쁨으로 변하게 되고 행8:4~8, 행6:7 말씀대로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자가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 이름의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늘 시비나 걸고 질투하고 사람의 것을 훔쳐 먹다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인생을 산다. 요19:30,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다 끝내주셨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이제 현장에 가서 모든 족속으로 그리스도 그 이름에 증인이 되라. 이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는 자 되어야 한다.
7월 첫째주는 맥추절이다. 빈 들, 광야에서 무엇 하나를 심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곡식을 거둬드리고 하나님 앞에 지킨 절기이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가면 저절로 거두게 된다. 그 이름에 집중이 안 되기 때문에 돈을 벌려고 열심을 내는 것이다. 그 이름에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남을 죽이는 욕심쟁이가 되고 비 진리를 따라다니며 미움의 감정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 된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흑암 권세를 꺾는 능력, 권세라는 것을 안다면 어떤 문제나 상황 앞에서도 그 이름 하나로 기도를 통하여 통과 시키는 사람이 된다.
기도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지 죽이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분이 어려운 상황 속에 우리교회에서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교회에서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숨겼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내버려두라고 했다.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면 어거스틴처럼 된다. 그는 대학생활까지 신앙생활을 잘 했지만 늘 그리스도 예수를 부끄러워 하다가 결국은 타락의 늪 속에 오랜 시간을 헤매었다. 칼빈도 그리스도를 부끄러워 하다가 50군데 이상 질병을 앓다가 죽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마라. 조는 인생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거나 그 이름을 부르면 이상해질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찾아온다.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쁨을 충만케 하시기 위해 우리를 택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24시간 그리스도 그 이름에 집중하면 절로 과실을 맺게 된다.
알콜 중독자는 일도 안하는데 어떻게 항상 술을 얻어먹고 마약쟁이는 어디서 그렇게 마약을 잘 구하는가? 24시간 술 생각, 마약생각을 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도둑은 어떻게 남의 집에 가서 30초 만에 물건을 정확하게 가지고 나오는가? 24시간 그것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24시간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시간표가 온다.
우리가 사단에게 사로 잡혀있다는 것을 정말 알고 있다면 전도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가정과 가문, 자녀들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기에 그 이름에 성령의 기름을 부르시고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으로 오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운명, 사주, 팔자, 저주에서 해방 받게 하셨다. 이것을 정말 알면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행20:7, 12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켰던 옛 습관을 버리고 예수님이 부활한 날을 주일, 안식일로 전환한 대단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에 예배를 드리기로 안식일을 바꾸고 바울이 그 날 밤까지 메세지를 계속 했고, 바울은 그 다음 날 다른 지역으로 떠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메시지를 듣던 청년이 3층에서 떨어져 죽어버렸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들에게 엄청난 갈등과 생각이 찾아왔을 것이다. 자신들의 옛 습관대로 안식일에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아 찾아오는 재앙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그들의 옛 종교는 안식일에 일을 해도 안 되고 집이 춥다고 해서 땔감을 구하러 나가도 돌에 맞아 죽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었다. 거기다 짐승을 잡아야 하는데 떡을 떼고 예찬을 하고 성찬을 진행하면서 자기 눈으로 주님을 느끼라고 했다. 그런데 옛 종교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안식일을 맞이하는 상황에 사람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에게 은근히 소요가 일어났던 것이다. 새로운 믿음의 시작에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바울이 왜 밤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는가? 행20:38 다시는 그들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3장에서부터 17장까지 길게 메세지를 하실 때 모든 제자들이 다 졸았다.
태도 자체가 조는 태도였다.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해도 이것이 무슨 말씀인지를 못 알아듣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만큼 심각한 상황에도 제자들은 쿨쿨 잠만 자고 있었다. 사도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 되고 심각하게 강론했다. “정신 차려라, 깨어있으라,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마귀로 틈을 주지 마라.” 이런 메시지를 선포한 것이다.
* 조는 인생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에 집중하여 깨어있는 자가 되라
그런데 아무리 소리를 질러 선포를 해도 조는 인생은 못 말린다. 등불을 늦은 밤까지 환하게 켜놓고 설교를 하는데도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떨어져 죽었다. 그는 왜 졸고 왜 떨어져 죽었는가? 창3장 사건을 심각성으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는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 창3장 사건의 심각성을 모른다.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영혼 속에 파고들어 진노 가운데로 끌고 가는 창3장이 존재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창3:15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 창세기 3장 저주를 어설프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여기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않는다. 창3장의 원죄가 그리스도로 깨져야 조상죄, 가문의 저주가 무너지고 자범죄가 끊어지며 이후에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서 만나게 된다고 하는데도 못 알아듣는다. 예수사랑교회 강단 메시지도 길게 하는 이유가 있다. 서론 끝내고 본론 들어가려는데 어떤 사람은 서론 끝나서 들어오고 어떤 사람은 다 안다고 착각하고 서론만 듣고 가고 어떤 사람은 축도 전에 들어온다.
졸음병은 영적문제 이기에 인간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하지 않으면 인생은 창세기3장 원죄로 인하여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살인자, 비 진리로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게 살 수밖에 없다. 피곤은 문제 중 문제다. 성경은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원치 않는 곳으로 데리고 다니신다고 하셨다. 예수 믿고 그리스도 이름을 변화되어진 핵심은 바로 성령인도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인도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늘 피곤한 것이다. 이 피곤은 졸음병으로 찾아온다. 대학생들이 책을 읽는데 졸음병을 가지고 책을 읽으면 레포트를 못 써내고 늘 남의 것을 베끼다가 F맞는 인생이 된다. 글을 못 쓰는 사람은 틀림없는 졸음병 때문이다. 집중력이 없기 때문에 평생이 피곤해서 졸음병에 걸린 것이다.
졸다가 죽은 유두고는 졸아도 아주 깊이 졸았다. 이미 깊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인해 결국은 졸음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이 착한 청년은 나름대로 자신이 졸음을 이기기 위해 인본주의도 썼을 것이다. 꼬집어도 보고 때려보고 눈도 뒤집어보고 그래도 안되서 창가에 걸터앉아 바람이라도 쐬볼까 했다. 그래서 졸음병은 영적문제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안된다.
그리스도의 집중 속에 조는 인생에서 벗어나라
졸고 있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예배시간에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창3장을 진단 받는게 아니라 교회 앉아있어도 집 생각이 나고 직장생각으로 간다. 생각이 자꾸 흩어지게 되어있다. 그러다가 생각이 너무 산만해져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중은 훈련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 눈 모든 것이 집중으로 가야 한다. 집중을 해야만 살게 되어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메시지를 하는데도 제자들은 집중하지 못했다. 그들도 하나님의 방법을 안 이후부터 집중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놈을 알고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령한다. 내 속에 졸음병으로 찾아들어와 피곤케 하며 생각을 혼미케 하는 혼미한 귀신, 더러운 귀신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내게서 떠나갈지어다!’ 졸았던 제자들이 드디어 이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세상 신이 우리를 혼미케 한다고 고후4:4에 분명히 말씀했다.
위대한 전도자 바울이 설교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졸다가 떨어져 죽었다. 그런데 예수사랑교회에서 졸지 않는 것이 기적이다. 예수사랑교회는 창3:15 하나님이 주신 방법으로 영적대결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래 조는 인생, 혼미한 인생이었는데 여기서 벗어난 것이 기적이다. 조는 것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싸워야 한다. 그래서 강한 자를 결박하고 내어 쫓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된다.
그리스도의 집중력 속에 하나님의 경륜을 아는 자는 어떤 문제 앞에서도 침착할 수 있다.
유두고는 분명 죽었다. 의사인 누가가 들여다보고 바울에게 죽었다고 사인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그를 데려다가 기도했다. 기도하고 나서는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난다고 말했다.
바울은 죽지 않았다고 말하고 죽은 자를 그대로 두고 계속 메시지를 했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 하나에 집중한 사람은 이렇게 침착성이 찾아온다.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음이니라” 요16:33.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에 문제 앞에서도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하면 영적인 힘이 온다. 죽었으면 죽은 것이고 살았으면 산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겁날 것이 없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하던 설교를 계속 했던 것이다. 그 설교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의 능력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창3장으로 인하여 지옥권세에 묶여있던 모든 사람들이 해방 받아야 하는 것이다. ‘죄의 권세, 저주의 권세, 졸게 만드는 더러운 귀신들림이 창3:15 그리스도로 박살날 지어다. 조는 인생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인 눈을 뜰지어다. 졸고 있는 믿음들은 그리스도로 산산이 깨어질지어다. 조는 신앙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타파할지어다!’ 조는 인생, 조는 신앙, 조는 교인들은 이렇게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바울은 시체를 앞에 두고 경고의 메시지를 했다.
혼미해지면 사단의 심부름 하는 자들에게 먹히고 그들에게 영혼이 가로채는 일을 당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12:43~45, 비고 소제되고 수리된 곳에 악한 귀신 일곱이 파고들었다. 우리가 배부르다, 괜찮다 하며 깨어있지 않으면 악한 귀신 일곱이 파고든다. 벧전5:8,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 졸고 있는 자를 찾는다고 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무리에서 항상 뒤쳐서 풀 먹고 조는 놈을 사자가 여지없이 공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에 집중해라. 깨어 있어 기도하고 영적싸움해라. 집중이 안 되면 싸워라.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가 옛 사람 옛 습관대로 어부로 돌아갔는가? 졸았기 때문이다. 졸면 여지없이 옛날로 돌아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싸우라는 말이다. 이제 깨어 기도하는 자 되길 바란다. 깨어 기도하는 자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에 문제가 있다면 조는 것이다. 조는 인생은 생각부터 졸고, 태도부터 졸고 있다. 앉아있는 태도가 졸고 있는 태도다. 그래서 오래된 교회 중직자들은 앞자리에 앉아서 팔짱끼고 고개 숙이고 있다. 그러다가 깨우면 시험 든다. 졸면 시험 든다. 누가 죽던지 살던지 우리가 상관할 것이 아니다. 말씀에 집중하여 모든 것을 살려내는 재창조의 응답이 시작되길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옛 종교와 습관 속에 내 기준과 내 기분대로 육체의 우상에 잡혀 구원도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던 인생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에 집중하여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는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창세기 3장 사건의 심각성을 몰라 거짓말쟁이, 비진리로 몸부림치며 피곤한 상태로 늘 혼미하여 사탄의 심부름을 하는 자로 살게 하는 영적문제가 무너지게 하시고 늘 조는 태도로 떨어지는 인생을 살았다면 그리스도 이름에 집중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고 만물을 복종케 하는 권세가 있기에 어떤 문제 앞에서도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최고의 목표를 가진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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