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스토리는 오직 B.C.와 A.D. 이다
행26:1~12
2016.11. 20 1부 말씀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은 어떤 상황과 시험 앞에서도 방황이나 갈등하지 말고, 연약해지지 말고 더욱 강한 자가 되길 바란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혼란한 이유는 영적인 문제에 있다. 대한민국은 죽은 자를 섬기는 제사 문화가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결과가 지금 사회 전체에 퍼져버렸다. 사회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정상이나 리더들이 하나같이 죽은 사람의 귀신에 잡혀 모든 정치와 사회, 경제를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믿기 전(B.C)과 믿은 후(A.D)가 반드시 달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절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이 없다.
우리의 부모님이 죽어서 귀신 된다는 말은 부활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모든 사람은 죽으면 반드시 심판을 받는 것이지 사람이 죽어 귀신이 되어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죽은 부모를 봤다, 6.25때 죽은 삼촌을 만났다고 하는 것은 악령의 세력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날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내어 쫓지 못하고 오히려 빌고 순종한다.
예전에 다른 교회 성도가 부부 싸움을 굉장히 심하게 하고 우리 교회를 온 적이 있었다. 남편은 유명한 대학의 영문학 교수였고, 부인과 자녀들도 굉장한 엘리트였다. 이들은 베뢰아 종교 단체에서 오랫동안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다니는 중에 갈등을 하다가 우리 교회 메세지를 한 번 듣고 새벽예배에 나를 찾아왔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이 부부가 기도를 하는데 "시아버지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떠나갈지어다!" 부인이 이렇게 기도하고 그 옆에 남편 교수는 굉장히 신사적으로 "아버지, 이젠 가시지요, 제가 너무 아프니까 빨리 가시지요" 하고 있었다. 남편이 병에 걸렸는데 그 베뢰아 교회에서 시아버지 귀신이 남편에게 들어가 남편이 아프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부인이 옆에서 기도할 때마다 자기 아버지 욕을 하니까 너무 괴롭고 화가 난 것이다. 남편은 부모님이 갈 데가 없어 자식인 자신한테 들어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귀신을 달래고 있었다. 그래서 "영접하는 자 곧 그리스도 예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누구도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와 네 가정과 가문을 해방케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 모든 염려를 그리스도 앞에 내려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우는 사자가 삼키게 된다, 마귀를 대적해라 그러면 떠나간다." 이것을 알려줬다. 그랬더니 정말 남편이 아무 문제없이 질병에서 해방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엄청난 복음을 우리가 놓쳐버리면 이상한 종교에 빠지고 이상한 사이비에게 현혹되어 끌려 다닌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축복을 놓치면 우리가 이런 조상 귀신들림 같은 것에 시달리게 된다. 사회는 온통 조상귀신을 섬기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조상귀신이 아니다. 하늘의 악한 영이 땅으로 내어 쫓긴 영들의 세계이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다.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우리 인생의 스토리가 이제는 B.C와 A.D로 뚜렷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까지 와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추도 예배 드리고 제사 지내고, 뗏장 입히고, 죽은 지 몇 년 되었다고 묘비를 다시 복원한다. 미신, 악한 영에 잡힌 상태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바울은 사단이 자신을 종교로 완전히 각인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언제나 자기의 뚜렷한 기준을 따로 두는 것이 종교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신의 수준과 표준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사단의 문화와 그 흐름을 전혀 감지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 이라는 말은 박수무당 중 박수무당이라는 말이다. 곧 자신은 과거에 하나님을 틀린 방법으로 섬겼다는 것이다.
열두지파가 그동안 섬겼던 그 하나님이 틀렸다는 것이다. 열두지파중 특별한 사람들만이 체험한 그 예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된다고 본문에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 입양아 사역, 혼혈아 사역, 탈북자, 다민족, 세계복음화 이런 것을 할 필요가 없다. 예수만이 소망이 되지 않는다면 죽은 부모 귀신을 섬기는 인생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으면 추수감사절이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추수감사절이구나' 하고만 있다면 귀신들린 상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으면 추수감사절을 기억하고 잊지 말고 섬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는 죽은 부모의 날, 제삿날을 기억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틀린 종교 사상에 빠진 것이다. 이 결과가 지금 한국의 사회문제까지 온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영혼 속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의 내용을 우리 영혼에 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축복의 내용은 온데간데없고 그리스도가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면 그냥 교회당만 다닌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B.C)과 만난 후(A.D)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진단해야 한다.
우리 영혼에 창3:15 그리스도가 각인되어야 한다.
창3:15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요8:44가 우리 영혼 속에 그대로 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이것을 원죄, 운명이라고 한다. 창3장을 모르면 집안 전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결국은 가족이 원수 덩어리가 될 뿐이다. 반드시 창3:15 하나님의 능력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머물러 있어야 사단의 머리가 깨진다. 우리 영혼 속에 요8:44가 깨지지 않으면 B.C그대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영혼에 창3:15을 담고 그 이름으로 명령하고 선포하고 정복하기 시작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A.D의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에 머무르지 말고 오늘과 미래를 놓고 부활의 능력을 덧입어야 한다.
행26:7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없으면 나의 기준과 수준 속에서 끊임없이 과거로 끌려들어가 종교 사상에 잡혀 죽은 사람 귀신이나 섬기는 꼴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잘 믿었던 사울왕도 죽은 사무엘로 나타난 악령에 시달려 고통을 받았다. 사람들은 악령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우리가 창3:15을 체험하지 않으면 귀신에게 시달리게 된다.
그리스도는 사단의 일을 멸하러 이 땅에 오신 참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멸망시키는 저주의 세력을 무너뜨리신 참 제사장이시다. 사단은 악한 영으로 우리를 지배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시달리게 한다. 죄책감과 죄의식, 염려, 낙심, 절망과 죽음의 두려움, 질병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으로 찾아온다. 이것이 찾아오면 나쁜 습관으로 부모를 시달리게 했던 것들이 생각이 나면서 죽은 부모가 꿈에 나타난다. 그러면서 이 사업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시 제사를 지내야겠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제사상을 다시 차리는 것이다. 이런 모든 두려움의 재앙과 저주를 꺾으신 분이 참 제사장 그리스도 시다. 모든 저주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반드시 불화살 맞을 수밖에 없다.
국토부장관은 죽은 장군의 영을 받았다고 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죽은 육영수 어머니의 영이 들어갔다고 했다. 두려움 가운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은 이렇게 부모처럼, 죽은 삼촌처럼, 죽은 애기처럼 찾아들어온다. 그래서 무속인들은 동자보살, 꽃보살, 장군보살, 처녀보살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실제는 악령이 사람을 속이는 것이기에 이 저주와 재앙을 내어 쫓아야 한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모든 흑암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우리 가정에서 떠나갈지어다. 너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우리가 이것을 실제로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순식간에 잡힌다.
얼마 전 다른 교회 장로님을 만났는데 술 귀신에 잡혀 시달렸다. 자신은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고 평생 술을 안 마셨는데 아버지 귀신이 들어와 나이 60세가 넘어 술을 먹기 시작했는데 하루에 소주를 14병씩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당신 귀신 섬기죠?" 했더니 우리 아버지가 오셔서 술을 마신다고, 자신 아버지가 늘 소주를 14병씩 마셨다고 했다. 그리스도 없이, 창3:15로 영적싸움이 입에서 나오지 않으면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다.
* 바울의 유일한 변명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전과 만난 후 뿐이었다
바울은 2년 동안 총 5번의 재판을 받았다. 그런데 재판을 받을수록 바울의 죄목을 찾지 못한다. 복음만 말했기 때문에 흠 잡을 일이 없다. 그런데 바울을 잡아들인 사람들은 복음을 들어도 악한 자에게 잡혀 바울을 죽일 사람이라고 결과만을 말한다. 죄목이 없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면 자신의 심령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발견해야 하고 그리스도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된다고 하면 아멘 하면 되는데 죽일 놈이라고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예수는 그리스도" 하면 죽일 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사회 전체가, 교회 전체가 악한 영에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바울을 죽여야 하는 이유도 없이 오직 죽이겠다는 생각이 먼저 와 있다.
인간은 요8:44 처음부터 살인자, 원죄의 씨로 태어났기 때문에 늘 생각이 먼저 와 있다. 우리에게 먼저 공격하는 자, 생각을 집어넣는 자가 있다. 그래서 고후10:4~5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로 복종시키라고 했다. 이것이 안 되면 언제나 생각에 따라 움직이다가 이상해진다.
바울은 정의로운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말만 했다. 바울의 유일한 변명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였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변명을 하는가? '나는 옛날에 잘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다' 등등...이제는 오직 창3:15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가 시작되어야 한다.
바울은 많은 변명을 할 수도 있었다. 왜 자신을 2년씩이나 아무 죄도 없는데 가뒀냐, 나를 고소한 자들을 왜 내버려두냐, 저 나쁜 놈들을 무고죄로 고발할 것이다, 죄가 없다면서 왜 나를 석방하지 않냐? 이렇게 변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변명을 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이것이 창3:15의 비밀이다.
예수를 만난 전과 만난 이후는 이렇게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과 만난 이후의 증거는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바울은 하나님 자녀인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우리 안에서 성령으로 내주, 인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고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 하나님, 그리스도는 참 제사장,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 자녀 되게 하고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를 해치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을 사로잡아 결박시키는 권세가 있고, 나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주의 말씀을 이루는 천군천사는 언제나 그리스도 그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자들을 돕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바울은 어떤 두려움도 없었고 언제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침착했으며 절대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 온유했고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가 구원 받았다는 것 때문에 겸손과 인내가 그의 영혼 속에 배어있었다. 그래서 자기를 변명하지 않고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다섯 번의 재판을 받는 중에도 그리스도 이름만 대변한 것이다.
빌3:1~3 "너희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복음 외에 다른 말을 하는 개들을 삼가고, 행학하는 자들을 삼가며 몸을 상하게 하는 자들을 삼가라."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는 자들, 할례 곧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종교 사상으로 우리를 묶어 놓는 자들에게서 벗어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만난 A.D가 시작되어야 한다.
사람에게 창3:15이 없으면 찌질하고 개소리 많이 하고 행악자, 몸을 상하게 하는 자가 된다. 복음을 왜곡시키는 자가 되지 말고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절대적 자녀 된 신분권세로 살아가야 한다.
본문의 사건 앞에 바울이 아닌 세례요한이 섰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봤다. 벨릭스를 처음 대했을 때는 "살인의 광기가 흘러 사람을 쳐죽었던 독사 같은 놈아!" 욕하고 벨릭스에게 단번에 칼에 맞아 죽었을 것 같다. 베스도를 만나서는 "거짓말로 우리를 속였던 쥐새끼 같은 놈!" 이라고 했을 것이다. 또한 남매간의 서로 부부가 된 아그립바 왕을 보고 분노하며 "너는 악령에 사로잡힌 마귀 중 마귀다!" 라고 했을 것이며, 자신이 왕의 부인도 아니면서 왕복을 차려입고 나타난 버니게를 보고도 온갖 욕을 다 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B.C의 사람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A.D의 사람은 세상을 재창조할 수 있는 유일성의 응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창3:15을 알면 얼마나 행복한지 체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사도바울이 사단의 세력을 꺾는 참 왕이 자신 안에 좌정하신다는 이 축복을 알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다.
굉장히 침착하고 온유하고 겸손과 인내 속에서 기다렸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의 저주와 재앙을 십자가상에서 죽음으로 끝내고 부활하신 참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와 영원히 항상 함께 계신다. 이 사실을 소유했기에 바울은 전도자의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이 그리스도 예수의 축복을 자신의 것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뱀의 머리가 박살나면 반드시 내가 살고,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면 모든 저주와 재앙이 넘어가며, 그리스도를 우리 영혼에 담고 자녀된 신분권세를 누리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우리 삶에서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제사를 지내러 가지도 않고 단절했다. 그런데 5년 후 저희 아버님이 제사 안 지내겠다고 내게 사과하러 오셨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면서 자신이 절만 안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 가족도 바뀌었기 때문에 절도 할 것 없다. 우리가 결단하고 세상을 정복해가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시면 모든 제사를 버리고 가족들이 우리를 좇아오게 되어있기에 불신자에게 비비지 말고 당당해야 한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믿음의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우리는 가문의 저주와 재앙을 막아주는 자, 현장의 저주와 재앙을 막아주고 치유해주는 멋있는 현장제자가 되어야 한다. 벧전2:9 하나님은 재앙의 시스템 속에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대사,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후대를, 청소년들을 살리는 가장 멋있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상대방의 자격을 묻지 않았고 상대방을 비방하는 분위기도 만들지 않았다. 내 본분만 다하면 된다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전도할 기회만 주어졌다면 어떤 감정이나 유감도 표시하지 않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언제나 복음을 증거 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하나님 앞에서 본분을 다하라" 말했다.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은 하나님 앞에서 전도자의 본분을 받은 자들이다.
옛날에는 김유순 사모와 함께 현장을 자주 갔었다. 그런데 아무데서나 복음을 말하면 어떻게 하냐고 나에게 핀잔을 준적도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는 사모가 더 말을 많이 했다. 이것이 변화된 모습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던지 안 듣던지 하나님 앞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 이것이 복음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눈치를 보는 것은 하나님이 있다고 믿다가 또 없다고 하며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계신다.
행26: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모든 송사하는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나이다" 전도는 언제나 부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해야 한다.
바울은 아그립바를 왕으로 인정해주며 그 앞에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당신이 우리의 사정을 잘 알고, 우리의 동족이기 때문에 내 말을 잘 들어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행26:26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바울과 아그립바 왕이 한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기회로 잡고 변명한다. 당신과 내가 약속한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 약속한, 소망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행26:4~5 바울 자신은 아그립바 왕도 알다시피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 극렬한 사람이었다. 창3:15을 대망하고 앙망했는지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고 메시아에 대해 타오르는 정열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그 이름에 대해 광신적인 박해자였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을 뿐 아니라 옥에 쳐 넣고 매질과 고문을 시키며 헛소리까지 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아그립바 왕, 같은 유대 동족에게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난 이후부터 자신은 달라졌다고 말한다. 내가 아는 대로 당신도 알 수 있고 내가 믿는 대로 당신도 믿고 내가 체험한 대로 당신도 체험할 수 있으며 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께서도 당신에게 역사하시면 당신도 나와 똑같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행26: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는 것이다.
행26:29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자신이 포승줄에 묶인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나처럼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그 믿음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할 뿐이라고 말한다. 유대인의 소망에 대해 아그립바 왕 당신이 너무 잘 알지 않은가? 메시아가 앞으로 올 것이라는 것이 소망 아니었는가? 이 예수의 나심과 사역과 십자가와 부활을 바울 자신은 다메섹에서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창3:15로 우리 인생에 시작된다면 이제부터 거듭남의 축복은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눈을 뜨는 사람만이 사단이 보이고 죄의 권세가 보이고 사망권세가 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박살 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우뚝 세워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 예수사랑교회 모든 성도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놓고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적용한 인생의 스토리가 시작되길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인하여 죽은 자를 가장하여 사람들의 심령을 파고든 악령을 섬기며 타락한 종교에 각인되어 살아가는 이 시대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그리스도로 성취되어 성령이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는 복음의 축복을 나에게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바울이 어떤 문제 앞에서도 온유하고 침착하며 구원 받은자의 겸손과 인내 속에 복음을 전하는 본분을 다했듯이 창세기3장15절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의 페이스를 놓치지 않게 하시고 가문과 현장의 저주와 재앙을 막아주는 멋있는 전도제자가 되어 오직 소망되신 예수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인생의 스토리를 남기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