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영적싸움만이 반석 같은 믿음을 준다
눅6:45~49
2017.04.23 2부 말씀
하늘나라는 멀리 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 속에 있다.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면 그리스도의 빛이 피부를 통과해서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토요일 밤부터 주일 새벽까지 뉴스에 잠겨 있다가 교회를 왔다면 틀림없이 캄캄하고 어두울 것이다. 텔레비전은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전도해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부터 전도를 받는 사람은 알게 된다. ‘아, 하나님이 나에게 진리를 알게 하셨구나, 그 진리로 나를 자유케 해야 하는구나. 하나님이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지나온 인생, 과거 상처들은 모두 축복의 발판이구나.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에게 왕 같은 제사장의 임무를 맡기셨구나. 하나님 나라의 대사가 되었으니 살아가는 날 동안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구나.’ 이런 절대 소명과 사명 그리고 천명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올바른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그래서 세계를 정복하고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슬로건을 외치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이렇게 외치면 주의 천군 천사가 움직이고 하늘보좌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다.
* 영적 존재인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
영적인 존재인 사람이, 영적인 지식을 모르면 망한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하다가 이상해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사람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의 영으로만 되어진다.
→ 그리스도 예수를 모르고 인생을 살면 모래위에 집을 지은 격이 된다. 한 렘넌트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욥은 어떤 교회를 다녔나요?” 그래서 제가 아마 안식일 교회나, 천주교, 율법주의 바리새 교회를 다녔을 거라고 대답했다. 욥은 사탄의 공격을 막는 길을 몰라서 고통당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무한한 축복은 받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 위기를 막는 힘을 몰라서 비참해진 것이다. 창3:15을 알지 못해 두려움과 무서움이 자기 몸속에 임하였고, 자신 안에 쌓여있다고 고백한 욥.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3:25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었으나 늘 두려움에 시달린 것이다. 그 이유는 십계명, 즉 율법을 붙잡고 교회를 다녔기 때문이다. 복음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것을 넘어 영적인 세계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다. 율법적인 교회를 다녔기에 평온도 없고 불안만 밀려 온 것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하나님의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따라서 반드시 두려움을 내쫓아야 한다. 요한사도는 무엇을 알았기에 두려움을 내쫓는다는 표현을 했을까? 바로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자신을 들여다봐도 안 보인다. 그리고 범죄한 사람을 복음의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살아가는 날 동안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이간만 할 뿐이다. 자기 자신을 못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먼저 인간관계를 승리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알게 되면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용서할 수 있다.
→ 복음으로 사탄의 공격을 막지 못하면 죄를 짓게 되고 예수를 믿는 게 아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하나님은 대우를 받으려고 이 땅에 오신 게 아니라, 전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대속주로 오셨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다. ‘창3:15의 주인공 예수를 보라, 처녀가 성령을 통하여 잉태하여 예수가 태어날 것인데,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가 우리 앞에 분명히 나타나실 것인데, 그 예수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하나님이시다.’ 지금 불안하거나 염려가 있거나 우울하다면 그것은 사탄이 공격해 들어온 것이기에 그 흐름에 타지 마라. 만약 그 속에 빠져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 권세를 지금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 자녀라면 왜 지금 불안해하고 염려하고 우울한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사람들은 흔히 사람, 일 때문에 문제라고 핑계 댄다. 누구 때문에 못살겠다고 말한다.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육신적인 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문제는 먼저 죄사함부터 받아야 되는 문제다. 죄사함을 받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을 막을 수 없고 그로인해 영적 문제, 정신문제, 육신문제로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사탄의 공격을 알게 되면 해방을 받는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이기셨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문제 될 일이 없지 않는가. 그런데 사탄의 공격을 막지 못하기에 자꾸 문제라고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 권세를 분명히 가지고 있고, 우리 몸을 성전 삼으시고 성령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사탄을 결박할 수 있고, 강한 자를 내어 쫓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신분이 되었음에도, 불안하고 함께 살고 있는 남편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다면 이건 심각한 영적인 문제인 것이다.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셨다. 죽으신 후 지옥권세를 타파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려고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로 부활하셨기에 그 분이 함께 하는 우리는 결코 죽지 않는다. 육신을 건드리는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믿자.
죄의 권세와 사탄의 저주를 막지 못하면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당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동방의 어마어마한 자산가가 되었지만 사탄의 공격을 막을 길을 알지 못했기에 욥은 마귀에게 당한 것이다. 두려움과 무서움이 그를 공격한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분의 은혜 속에 있는데 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가?
→ 인간은 원죄로 인하여 이미 두려움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 있다. 두려움을 뽑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기준,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라.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했다면 반드시 옛 사람, 옛 믿음, 옛 종교, 옛 이념 사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쫓아야 한다. 불신자 상태 6가지는 우리 몸속에 있는 것을 함축시켜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밀어내지 못하고, 결박하고 내쫓지 못하면 결국 불신자 상태로 교회를 다니기에 같이 망한다. 요8:44, 사탄의 신분을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완전히 박살내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욕심쟁이라 끊임없이 비 진리를 추구하게 만드는 더러운 저주 영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너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지어다! 이것을 무너트리지 않고 여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성경에 기록된 재앙들을 받는다. 영적인 비밀을 알지 못하면 엄청난 재앙이 개인, 가정, 그리고 사회와 국가에 들이닥친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영적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위기나 문제가 와도 상관없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는 흑암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흑암이 있어도 하나님의 신은 움직인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흑암을 밀어내면 떠난다. 이 사실을 어설프게 알지 말고 각인시키고 뿌리내리고 체질화해야 한다. 이 땅에 흑암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기뻐진다. 그런데 흑암을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도 이름을 자꾸 부르면 그냥 답답해서 소화 시키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 흑암을 꺾지 않으면 창3장은 우리자신과 가정에 찾아온다. 그 흑암은 뱀을 움직여서 우리를 넘어트린다. 지금 집에서 뱀하고 안 놀고 있으니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나 개를 통해서 공격할 것이다. 그러면 어느 날 재앙중심으로 가게 된다. 예수사랑교회가 지금 세계복음화를 하기 위한 훈련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개 때문에, 고양이 때문에 참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신랑은 굶겨도 되는데 강아지는 굶기지 않는다. 신랑은 머리한번 안 감겨 주면서 개는 목욕탕까지 안고 같이 가서 감겨준다. 그게 바로 네피림 시대다. 이제는 개 보호법까지 만들려고 한다. 정신병자들이 된 것이다. 지금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상태다. 어느 날 집안에 살인의 영이 들어와 형제간에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복음을 어설프게 알고 있는 아벨은 종교인 가인에 의해 돌에 맞아 죽는다. 이게 지금 집집마다 일어나고 있는 재앙이다. 그런데 아무리 구원의 방주를 지어야 한다고 외쳐도 관심이 없다. 그저 시집가고 장가가고 돈은 있기에 땅 사고 집짓기에 여념이 없다. 영혼을 구원하는 데는 전혀 무감각한데, 키우는 고양이 껌을 사는 데는 아까워하지 않는다. 심각한 정신의 문제가 찾아 온 것이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돈을 쓸 줄 아는 그릇이 안 되기에, 결국 어느 날 무너지게 된다. 영혼구원을 위하여 돈을 쓰지 못하게 하는 죄의 권세는 무지 강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쌓아둔 돈으로 절간 짓고, 굿을 하고 점쟁이를 찾아다닌다. 남편도 이상하고 아내도 이상하고 자식도 이상하니까 마음 둘 곳이 없어 동물을 한 마리 껴안고 사는 것이다. 마귀가 뱀을 움직였을 때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기 보다는 뱀의 눈빛에 유혹 당했다. 요즘은 뱀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도 있는데, 사탄이 뱀 속에 들어가서 그 영혼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뱀은 그냥 산에다 던지고 강아지는 집 밖에서 키우고 고양이는 쥐를 잡도록 해야 한다. 창세기 3장의 사탄은 뱀을 통해서 움직였다. 지금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존재가 누군지를 가만히 살펴보길 바란다. 그러면 얼마나 섬뜩한 일들이 집안에 와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시스템 속에서 나와라. 떠나라고 말씀하셨다.창12:1~3 돈을 많이 가지고도 고독이 몸부림을 치고 우울증에 걸리고 공황장애가 찾아온다. 어느 날 알코올 없이는 살 수 없게 되고, 사색에 잠기다가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결국 무언가에 중독되고, 사람의 포로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귀가 그 사람들을 움직여서 우리를 묶어서 끌고 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도 잃어버리고 지역을 떠나고 교회를 잃어버린 채 지금 속국 되어 유리방황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기서 빠져나오라고, 해방 받으라고, 참된 자유를 찾으라고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셨다.
→ 창3:15이 없으면 하나님의 긍휼, 사랑을 입을 수 없다. 지금 하나님의 사랑, 긍휼, 절대 축복을 잃어버린 채 인생을 살고 있기에, 사람이 미움의 대상이 되고, 원수가 되고, 사람을 오해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눅6:27-38, 사람으로부터 대접 받기보다는 대접하길 원해야 하며 비판해선 안 되는데 사람을 자꾸 비판하고, 가지고 있으면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나누어 주지도 못하고, 미움, 오해, 원수의 관계로 묶여 있다. 창3:15 그리스도, 참된 복음을 모르기에 소경이 되어서 전 가족을 웅덩이에 빠트리게 한다. 그러니 남편 눈 속에 있는 티만 보이고 자기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눈치만 본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들보를 빼 버려라. 자기 눈의 들보를 빼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을 막지 못하면 열매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 죽은 다음에 하나님이 사랑해 주실 줄 착각하고 산 것이다. 사탄의 공격을 오늘부터 막아야 한다. 아담과 하와는 분명히 뱀의 말을 듣고 무너졌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파멸될 것이라고 했다. 매일 상대방 잘못을 헐뜯고 다 끄집어내서 죽이려고 하는 우리의 심령을 깨 부셔라! 복음도 없는 소경이 겨우 집 한 채 지어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복음도 주지 못하면서 그 집을 무너트리는 사람이 되면 되겠는가? 자기를 모르면 영적인 사실을 모르기에 부부간에도 서로 핑계대고 책임전가만 한다. 영적인 눈을 뜨고 몸부림치며 겨우 살아가는 사람을 무너트리지 말고 세워줘라! 이게 전도요, 선교다. 맹인을 안 도와주는 나쁜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 소경이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횡단보도가 어딘지 감지하지 못하고 있으면 손을 붙잡아주고 건너게 도와주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그 소경에게 차가 씽씽 달리는 대로를 건너라고 한다. 사탄의 공격을 받으면 그런 나쁜 사람이 된다. 한번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탕자 비유에서 큰 아들이 있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자기 인생을 한번 살아보겠다고 앞으로 남겨줄 유산을 미리 받아서 타국에 가서 흥청망청 다 낭비해 버린 것이다. 아버지께 너무 면목이 없어서 타국에서 나라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던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도 많고, 다 있는데 집 나와서 고생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느 날 그 나라에 기근이 들어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어 아버지가 있는 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아버지는 언제나 집 나간 탕자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둘째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맨 발로 달려 나가 아들을 끌어안고 맞이하여 씻겨주고 새 옷을 입혀서 잔치까지 배설했다. 그런데 큰 아들은 기분 나빠했다. 바로 사탄의 공격을 막지 못한 사람,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가장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이다.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힘이요,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다. 간음한 여인이 잡혀왔었을 때 예수님도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고, 남편을 다섯 명이나 갈아 치우고 지금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우물가 여인을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으셨다. 많은 사람들은 상종치 않고 삿대질하며 부끄럽게 만들었지만 나는 너에게 목마름을 채워줄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셨다. 영혼 속에 그리스도가 흘러넘치길 축복한다.
* 실천적 영적싸움만이 반석 같은 믿음을 준다
→ 언제나 창3:15로 출발하고, 마16:16로 고백하고, 마28:18의 천명을 감당할 있도록 오직 성령 충만을 구하자 창3:15을 깨닫지 못한 채 쌓아 올린 신앙생활은 헛것이고 무너진다. 반석위에 집을 지어라. 언제나 창3:15로 출발하고, 마16:16로 고백하고, 마28:18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 명령하신 천명을 받고, 그 일을 진행하기 위하여 성령 충만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청하길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사람을 살리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모래위에 집을 짓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반석위에 집을 세우자. 그래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행하면 반석위에 집을 세운 것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덧입은 언약의 백성이다. 우리가 받아야 될 모든 저주와 재앙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다 해결하셨다. 게다가 우리가 당해야 할 수치심과 부끄러움, 뺨 맞을 일까지도 그분이 대신 담당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침 뱉음을 당해야 하고 옷을 빼앗겨야 될 상황인데 그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다. 그런데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상대방에게 침을 뱉고 남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면 되는가? 그것은 사탄의 공격을 막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사람은 사탄의 공격에 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성령이 권능으로 영원히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 하나님이 계심으로 우리는 말씀을 따라 행하게 된다. 요셉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도 언약을 굳게 붙잡았다. 형들로 부터 다양한 핍박을 받고 위기를 만났지만 언약을 붙잡고 누렸다. 그랬더니 해와 달과 볏단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을 꾸게 된다. 그러면 더 잘 되어야 하는데 그 언약을 붙잡은 요셉은 노예로 끌려간다. 노예로 끌려가도 사탄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언약을 가지면 형통케 된다. 그 언약을 가진 요셉과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영적싸움 하는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과 그 밭 까지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모함을 당해 감옥소에 가도 항소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다.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제자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다윗은 하나님께로 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이후부터 왕이 되기 위해 준비했지 문제 앞에 시달리지 않았다. 사울 왕이 다윗을 향하여 창을 던지고 죽이려고 자객을 보내도 문제될 게 없었다. 사울의 신하들의 고발로 사울은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다윗이 도망가다가 숨을 곳이 없어서 성막, 그것도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 숨었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떡을 먹었던 것이다. 그것을 한 신하가 알게 되었고 사울에게 고자질을 한 것이다. 그로인해 다윗을 숨겼다는 이유로 제사장들 85명을 다 쳐 죽인 것이다. 그래도 다윗에게는 문제될 게 없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는 성령의 기름을 받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다" 그래서 아들이 반역을 일으켜도 사람들이 저주해도 다윗은 흔들리지 않았다.
→ 자신과 세상, 그리고 마귀와 싸워야만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아 지금 누려야 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해야 될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사랑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미움의 대상이 되는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망권세 잡은 사탄에 의하여 장악된 원죄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몸은 요8:44, 마귀의 체질화가 되어 있다. 그래서 이 몸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면 내가 산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 그럼 십자가에 못 박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끊임없이 마귀 일이 솟아 날 때 마다 이놈을 사로잡아 내쫓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녀된 신분 권세가 있음에도, 이것을 믿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게 하는 더러운 저주 영아,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산산이 무너지고 내게서 떠나갈 지어다!” 강한 자 마귀를 결박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성령을 훼방하지 않고 성령과 함께 역사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 엘리야도 사라지고 모세도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보이고, 예수님을 보면서 언제나 우리는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듯 마가다락방에서 자신과의 영적인 싸움을 시작하면 세상의 환경으로부터, 말들로부터, 뉴스로부터 밀려오는 염려와 두려움과 근심을 사로잡아 밀어내고, 죄의 권세로 우리 속에 파고 들어와 두려움으로 숨게 하는 사탄의 세력을 깨부수게 된다.
그러면 행2:1-47, 오순절 날이 임하고 전도의 문이 열리면서 만남의 축복 속에 사람을 살리고 집이 하나님의 집이 된다. 그래서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흩어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성령을 우리는 받고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 끝.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의 권세 성령을 가지고 마귀의 일을 멸할 수 있기에 마귀는 가라고 명령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있어서 위대한 무기요 힘이다.
* 어떤 상황에도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내 속에 파고든 마귀의 일을 멸하는 실천적 영적싸움을 하면 올바른 신앙고백 위에 반석 같은 믿음이 생긴다
예수사랑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이기에 날이 갈수록 경제의 기적과 교회의 참된 부흥이 시작될 것이다. 이것을 실제로 깨달으면 많은 응답을 받게 되고 예수사랑교회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개인에게 적용하면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신다.
→ 복음을 알지 못하면 율법에 빠져 교만해지고 착각에 빠져 마귀가 주는 육신의 생각에 잡힌다. 복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율법만 내세우게 된다. 그러면 ‘내가’를 강조하는 교만이 나온다. 그러나 복음을 깨달으면 ‘내가, 내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이것이 없으면 신앙생활 속에서 몸부림치며 뭔가 잡으려 한다.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면 따라간다. 그래서 결국 마음만 들뜨게 해서 착각을 일으킨다. 착각하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에 잡힌다. 그게 사탄의 공격이다. 교만과 착각에 잡히면 자기중심이 되기에 잔 머리가 돌아간다. 머리에 입력해 둔 것들을 검색한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검색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로만 해결된다. 이것부터 해결해야 해방된다. 이것이 안 되기에 무기력, 무감각에 빠져 무능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해보고 싶어도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 영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인생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다. 그래서 자꾸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흔들면 즉각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급스러운 지식을 가진 무속인들이 접근한다. 한 방에 된다는 거짓말을 한다. 이 무속인은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 종교로 자기 자신을 위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포장할 수 있는 곳이 종교다. 그래서 종교는 거짓말쟁이다. 먼저 영적인 문제를 해결받자. 사탄의 공격을 막을 수 없는 인생은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탄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다. 그래서 반석 위에 언약으로 집을 지어야 한다. 말씀을 기도로 엮어서 콘크리트를 치자. 그리고 바닥을 깊이 파고 뿌려라. 그럼 점점 올라온다. 드디어 튼튼한 집이 올라온다. 어떻게? 전도하면 자원이 온다.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모여들 것이다. 방주 안에 들어가면 산다. 도피성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끝내신다. 십자가 보혈의 언약을 붙잡은 사람은 지성소 안에도 들어갈 수 있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로 승리하기를 축복한다. 무슨 문제가 오고 위험에 처해도 그리스도를 선택하라. 그리고 먼저 마귀 일부터 꺾자. 불안하거나 염려하거나 우울하면 사탄의 공격을 받은 상태다. 그런데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명령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떠나가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볼지어다.”
*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지식, 예수 그리스도의 내용을 몰라 사탄의 공격을 막지 못하여 모래위에 집을 지어 파멸되는 인생에서 빠져나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도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받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반석위에 집을 짓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내 속에 불안, 두려움, 염려, 우울함으로 찾아들어와 있는 사탄의 공격을 실천적 영적싸움으로 막아내므로 나에게 주신 인간관계를 그리스도로 승리하는 반석 같은 믿음으로 기쁨과 평안, 이 땅의 평화가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