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종에서 해방 된
의의 종으로
롬6:17 ~23
2017.08. 13. 1부 말씀
우리는 사단의 시험이 내게 있는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한다. 신앙생활은 점검을 잘 해야 한다. 육신적인 사람은 사단의 시험이 이미 와 있는데도 감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살렸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다닌다.
*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문제 앞에는 배후 조종자 사단이 있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앞서 살 길을 열어주셨다.
성도로서 교회 안에서 활동이 없다면 굉장히 육신적인 사람이다.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해서 물질적인 욕심쟁이로 장악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영적축복을 자신도 모르게 상실해버린다. 교회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이 감춰져 있다. 세계복음화를 정복할 만큼의 하나님의 축복이 이곳에 있다. 그런데 육신적이고 물질적이면 이것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속에 들어가 기도하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찬양하고 기도한 사람들은 모두 세계를 정복할만한 하나님의 축복을 허락해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축복을 상실하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교회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는다. 우리가 어디에서 그 은혜를 덧입고 있는지를 감지해야 한다. 그리스도 그 이름을 찬양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성령, 권능이 우리에게 항상 함께 있게 된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우리가 집에서는 잘 안 나오는 ‘예수는 그리스도’ 이 고백이 교회 안에서 힘 있게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이 교회에서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를 때 애굽 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듯이, 사단의 손아귀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양의 피를 바를 때 해방된다. 이것은 영적인 사실을 감지하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를 노래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개인들에게 임하면 하나님의 성령은 역사하신다.
내 인생의 문제를 살펴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문제든 가정, 직장, 산업의 문제든 모든 문제에는 배후 조종자가 따로 있다. 절대 교회도 아니고, 사람, 이웃, 물질도 아니다. 이 문제를 움직여가는 배후 조종자, 사단, 흑암이라는 자가 이 땅에는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늘에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교회를 통해 영적인 축복, 그 영적인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면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사람으로 전락해버린다. 지정의도 무너진 채 늘 감정에 따라 신앙생활하며 감정을 움직이지 않으면 전혀 신앙생활에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이 된다. 예를 들어, 가난해서 다 망한 사람이 죽기 직전에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 스토리, 병에 걸려 숨 떨어지는데 의사가 새로운 약을 투입해서 일어나는 것, 이런 것을 보면 감동을 받는다. 이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별력과 판단력, 냉철함이 있어야 한다. 감동 받기를 원한다면 평상시 그리스도를 불러라. 그런데 사람들은 평상시 하지 않다가 처절하고 진저리처지는 비참함 속에서 ‘하나님~’ 하고 찾는다. 정신병자고 패가망신하고 온 몸이 다 찢긴 상태에서 회복하려는 것이 욥의 신앙이다. 욥의 신앙이 되지 말고 이삭의 신앙이 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살 길을 허락하셨다. 망한 다음 살 길을 내주신 것이 아니라 망하기 전에 사는 길을 허락하셨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놓았다. 롬8:1~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케 하셨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살 길을 먼저 열어 놓으셨고 롬8:12~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양자의 영을 받아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으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처절하게 무너진 후 ‘주여~’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싸움이 시작되어야 한다.
‘옛 사람을 바꾸지 않고 막연히 신앙생활을 하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내 생각, 내 기준을 따라 끊임없이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감동적인 것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모든 흑암권세는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우리의 생각대로 살면 12가지 재앙과 저주가 우리에게 찾아들어온다고 성경은 말씀했다.
①창3장이 나를 공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잡지 못한다. ②그리고 창6장, 육신적으로 공격하고, ③창11장 거짓된 성공을 따라 우리를 속인다. ④우리의 기준으로, 고집으로, 아집으로 종교 미신이 우리를 장악한다(행13장). ⑤우리가 점을 치면서 스스로 ‘잘 될거야’ 하는 긍정의 마인 드 하나를 가지고 인생을 살며(행16장) ⑥내 육체 하나만을 위해 나를 사랑하며 우상숭배에 걸린다(행19장). ⑦내 몸 하나를 사랑함으로 내 몸 전체가 거짓말쟁이, 살인자가 되어버린다. ⑧그래서 알 수 없는 저주가 내 몸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치기도 하고 맞기도 하는 정신문제 속에 공격을 당하게 된다. ⑨어느 때는 고독하고 어느 때는 방황하고 어느 때는 방종 하는 순식간에 늘 바꾸는 공작새로 산다. ⑩그러다가 육신의 삶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고 ⑪미래도 없이 방황하다가 ⑫죽음을 맞이하는 엄청난 죄의 삯이 사망으로 공격해오는 것이다.
이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살 길을 하나님은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게 하셨다. 성경은 오직 나를 공격하는 자가 있기에 사는 길을 열어주시고 사단을 폭로했다. 그래서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그 이름을 신앙고백만 해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셨다. 하늘과 땅의 권세가 그리스도에게 있기에 신앙고백을 하는 자에게 세상 끝나는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이 영적싸움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남을 미워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불법을 행하고 싶어 하고 도둑질을 하고 싶고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온다. 자신도 모르게 하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교회에서 드리는 겁니다.” 해야 하는데 “제가 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나온다. 영적싸움이 체질화 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이 되고, 용서, 배려가 된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미워하고 순간 이간하고 교회를 파괴시키는 사람은 정말 큰 일 난다. ‘기독교 인’ 이라는 말은 사단의 종에서 해방된 의의 종을 말한다. 그래서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사단의 종에서 해방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미워하고 순식간에 시험 들고 갈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인’ 곧 ‘기독교 인’ 은 곧 의의 종을 말한다. 사랑의 종, 진리의 종이다. 기독교인은 자연스럽게 진리, 사랑, 의 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전혀 사단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에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 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성도들은 문제에만 빠져있다. 목사를 공격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은 모두 영적무지에 빠져있는 것이다. 교회가 전부 다 육신적이고 물질적이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불신자 수준보다 더 떨어질 만큼 이상해져 있다.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불신자가 가진 지정의도 없이 무지할 만큼 육신적, 물질적이 된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고 죽는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한 번 해 봐.” 이런 말 한 번도 못하고 두려움과 근심 속에 자포자기, 낙심, 절망하고 도전하기 싫어하고 그래서 의심하고, 둘만 만나면 그렇게 교회를 욕한다.
롬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본래 죄의 종이었던 자가 해방되었기에 감사한다고 말씀했다.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의 종에서 해방 받을 수 있었다고 말씀한다. 약4:7,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 명령에 굴복하는 자는 마귀를 대적하는 자다. 사도바울이 왜 자신이 의에 종이 되었고, 이제 어떻게 해방 받았는가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창3:15교훈의 본을 받아 창3장 원죄가 시작된 그 사건 속에서 살길을 열어놓으셨다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망권세 잡은 사단에게 해방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질병에 잡히지 말고 ‘나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선포해라. ‘내가 아프다’ 하는 생각으로 24시간 잡혀있는 것과 ‘내가 하나님의 자녀다’ 하고 24시간 속에 있는 것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암에 걸려 죽는 사람은 늘 암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암에 걸려도 암에 걸렸다는 것을 잊고 산 사람들은 살아났다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불신앙의 생각이 파고들 때마다 이 놈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켜라. 바울은 여기서 해방 받았다는 것이다.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 받아 영육간에 강건함을 덧입고 세계복음화 하는 그 날까지 아프지도 말고 복음운동 하기를 축복한다.
‘우리가 순종하여 해방 받았다’는 말은 믿음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12년 동안 키웠던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치라고 말씀하신다. 그 때 아브라함은 ‘아멘’ 하고 순종했다. 왜 이삭을 데려갔는가?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은 살릴 수 있다는 믿음, 창3:15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로 드려 칼로 내리치기 직전까지 가야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네 후손이 대적의 문을 취하리라는 축복을 주셨다.
* 창3장 이후 모든 인간은 죄의 종으로서 몸과 운명과 의식까지 매여 자유 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했다.
어떤 노처녀 한 분이 나에게 자기 불신자 친구는 결혼을 세 번씩이나 했는데 자기는 한 번도 못했다며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죄의 종이 결혼하는 것은 자유가 없다. 조금 늦게 가고, 못 가는 한이 있어도 ‘절대’를 한 번 믿어봐라” 고 말했다. 자기 친구가 두 번째까지는 굉장히 고생했는데 세 번째 만난 사람은 연금이 매달 350만원씩 나오고, 자녀들도 다 결혼을 해서 데리고 살 필요도 없는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남자가 기독교인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운명은 우리의 인생을 절대로 멋있게 끌고 가지 않는다. 결혼하는 날 이후부터 3개월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운명, 이 어둠의 세력은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끌고 들어간다. 그래서 행복이 느껴질 것처럼 하지만 그 속으로 끌려가는 순간부터 ‘밥순이’로 전락시킨다. 운명에 묶여 해방 받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하면 더욱 묶이게 된다. 그러면 그 여자는 두 번의 만남보다 세 번째 결혼한 사람에게서는 더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 배후 조종자가 불신자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배후 조종자의 별명은 살인자,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우리의 심령을 죽이고 멸망케 하는 놈이다. 이 배후 조종자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 고 하다가도 순식간에 뒤집어버려 완전 고통 속에 빠뜨리게 하는 사단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보고 시집가고 장가가서 결국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최선을 다하여 열심을 내서 바벨탑을 쌓다가 무너지는 사건이다. 운명은 절대 좋은 것을 주지 않는다. 그 운명의 길에서 해방 받으라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라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생각까지 매이게 만드는 이 사단의 세력을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무너뜨리고 말씀이 육신 되신 그리스도를 내 영혼의 주인으로, 만왕의 왕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
우리가 운명에 묶이면 몸과 마음, 생각 전체가 전혀 불편한지도 모른 채 살다가 망한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음에도 우리가 육신적, 물질적인 사람으로 전락하면 진노가 오는지 모르고 그냥 산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굉장한 위험한 사람이다. 불편해야 정상이다. 그래야 창3:15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좋다 하지만 사실 마음은 불안하고 염려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교회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그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고 교회 속으로 들어가라.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어리석은 자를 깊이 들여다보면 썩어 들어가 있다.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선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보면 무속종교와 문화 속에 빠져있다. 조상들이 전부 굿과 점술, 미신, 불교문화에 심취한 문화였고 중국에서 유교가 들어와 유교문화까지 섞여있다. 이렇게 길들여지다가 식민지 문화 빠지게 된 것이다. 그 식민 문화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서 비판하는 문화를 심어 놓은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여다보면 능력도 있고 훌륭한데 모이기만 하면 서로 죽이고 찢고 비판하는 문화가 된다. 죄의 권세에 매여 아무 생각 없이 비판한다.
고후10:4~5 기독교인의 진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복종시키는 것이다. 모든 이론과 사상,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를 자꾸 사로잡아 복종시켜야 한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고후11:13, 아담과 하와가 배후 조종자 사단에게 미혹되어 무너졌듯이, 지금도 동일하게 배후 조종자 흑암, 사단에게 속아 넘어지게 된다. 사람을 만나면 광명한 천사로 자기를 가장하여 믿는 척, 응답 받는 척, 기도하는 척, 신앙생활 잘하는 척, 척병으로, 거짓말쟁이로 길들여진다. 몸과 생각, 모든 것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광명한 천사로 자기를 가장해 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그 십자가 구속의 사랑에 매여 있는 증인으로 살고 싶다면 여기에서 벗어나라, 깨어버려라, 무너뜨려라, 박살내라, 결박해라, 내어 쫓으라 말씀했다. 십자가 구속,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은 자가 세상 풍속을 좇아 살면 되겠냐는 것이다. 민족의 정신, 민족 문화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우리가 정신과 문화로 살면 그 삯은 결국 사망일뿐이다. 그러나 십자가 예수, 구속의 사랑 속에 들어가서 살면 하나님의 은사,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된다. 우리 안에 복음이 있고 죄를 사했다고 진짜 믿는다면, 십자가 예수의 공로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구원을 믿어라. 자녀 된 신분 권세를 잃어버리지 말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속의 역사가 진짜 있고, 이것을 진짜 믿는다면 우리가 이것을 받는 것이다. 쟁쟁거리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 그 구속의 사랑을 받아라.
율법이 나를 정죄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진리다. 율법이 나를 정죄하려고 하면 그 때마다 십자가 예수의 구속으로 빨리 돌이켜라. “너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았음이라.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을 통해 사망의 문제가 해방되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내가 당해야 될 고난을 그가 친히 받으셨기에 죄가 나를 쏠 수 없다. 우리 영혼 속에 하나님의 울림이 있고 선포가 있으면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떨어져 나간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찾아들어와 ‘너는 죄인이니 벌을 받아야 된다’ 고 속인다. 마귀는 우리 귀에 끊임없이 ‘네 죄 때문에 네가 당했다’ 고 속인다. 이렇게 속일 때마다 ‘나는 이제 그런 것과 아무 상관없다. 예수님이 내 대신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셔서 그 구속의 사랑을 느낄 뿐이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어둠아, 우리 가정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떠나갈지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소유하지 못하면 죄에 대한 형벌과 저주만 따라온다. 요일4:18 하나님의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하셨음에도 저주가 우리를 짓눌러 자꾸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죄를 반복적으로 짓는 사람은 그 소리가 들려 그 놈에게 짓눌리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 짓눌릴 때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밀어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 너를 멸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나와 함께 계신다. 내 입술에서 그리스도 그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선포하지 못하게 나의 영혼을 장악하여 죄 가운데 빠지게 만드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죄는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당당하고 멋진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명령하는 비밀이 없으면 교회 예산이나 관심을 갖고, 목사들은 주일에 교인들 숫자나 세고, 안온사람 심방만 다니다가 인생을 허비한다.
교회 다니기 싫은 것, 교회 안에서 시험 드는 것은 귀신에게 잡힌 것이다. 교회 다니면서 시험을 드는 이유, 교회 안에서 삥 뜯는 이유는 마귀를 닮았기 때문이다. 백만 가지 문제가 있어도 우리의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하나님이 부르지 않고 교회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창3:15을 적용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율법으로 흠 없는 자도 구원 받을 수 없다. 종교 생활을 아무리 해도 거듭나지 못하면 구원 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부르지 않은 사람도 구원을 못 받는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는가?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 받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과거의 죄의 진노로부터 자유해라. ‘내 영혼을 장악한 더러운 마귀야 나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내 몸에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너는 이제 내게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떠나가라. 오늘부터 나를 공격할 때마다 내가 세 배 이상 너를 꾸짖을테니 너는 내게서 떠나가라!’ 하고 사단이 공격할 때 세 배를 더 공격해라. 그러면 사단이 ‘이제 저 새끼는 끝났다. 가자, 보따리 싸자.’ 하는 날이 온다. 그런데 사단의 공격에 ‘무서워~주여~’ 하고만 있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다.
* 예수그리스도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가 되었다면 죄의 종에서 해방된 의에 종으로 돌이켜 날마다 재창조의 역사를 맛봐라
우리는 그 어떤 누구도 정죄할 자유가 없다.
우리가 정죄를 하지 않을 자유만 가지고 있어도 엄청난 몸의 변화가 오고 뇌가 살아난다. 그동안은 사단의 권세에 잡혀 사람을 정죄할 자유가 있었지만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으면 사람을 정죄할 자유가 없어진다. 또한 우리에게는 심판할 자유도 없다. 우리에게는 어떤 권리도 없다.
이제는 그 어떤 누구든지, 아무리 이상한 사람이든지 사랑하던지 불쌍히 여기든지 이 두 가지 자유뿐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이상한 사람을 사랑하든지, 불쌍히 여기든지 이 두 가지만이 나의 자유다.’ 한 주간 이것을 담고 있으면 영적싸움을 할 것이 너무 많아진다. 그러면 그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진짜 나온다.
롬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불법과 부정을 이제 그만하라는 것이다. 죄를 열심히 짓던 너희가 방향을 완전 바꾸라는 것이다. 방향을 돌려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되라. 진리를 행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영생을 얻어라.
롬6: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방향을 전환했더니 사단의 권세에 따라 살았던 삶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방향 전환을 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 이상한 짓을 저지른다. 목숨을 걸고 영적싸움을 하면 영생을 얻게 되며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사단권세에 열심히 끌려 다니면 사망뿐이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영적싸움은 삯이 아니라 은사다. 은사는 하나님의 성령을 말씀한다. 하나님의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면 항상 자율적이라는 것이다. 자율적으로 그리스도 그 능력, 매력에 이끌리어 변함없이 사랑하는 그 사랑의 힘에 항상 현재적, 창조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초마다 분마다 항상 새롭게 되는 재창조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구제불능이었던 내가 영적싸움을 하게 되면 이렇게 바뀐다. 무자격인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게 된다. 이 축복을 예수사랑교회 가족들이 받아 의에 종으로 한 주간 행복하길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육신적인 사람으로 사탄의 시험 속에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영적 축복을 상실해 버릴 만큼 죄의 종 되었던 나에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주셔서 죄의 종에서 해방된 의에 종이 되게 하시고 교회를 통해 영적 흐름을 감지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 속에 세계복음화 할 만큼의 축복을 주시고 살길을 열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죄의 권세에 길들여졌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자율적으로 죄의 권세와 싸우는 자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오늘의 삶에 현재적, 창조적 능력을 느끼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