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선교의 열매를 위한
기도와 헌신의 축복
롬15:22~29
2018.4.22 1. 1부 말씀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는 것이 무엇인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 그 자와 영적싸움을 하면 오직 성령이 충만하게 되고,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 이름의 증거를 가진 증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정체감을 가져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영적싸움을 구체적으로 시작하면 성령의 능력의 역사가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음을 바울은 체험하고 고백했고, 그 증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라고 하시고,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나님은 시키신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그 놈과 영적싸움을 하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 일하신다. 나의 인간성으로 살면 광명한 천사로 나를 가장하여 거짓말로 살 뿐이다. 나의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면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다. 나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일 하신다. 그래서 응답을 많이 받아도 ‘하나님이 하셨다’ 하고,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자아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다.
* 창3:15을 이해하고 체험해야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도 느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교제가 시작된다. 땅 끝까지 나를 통해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의 힘, 성령으로 체험하기를 축복한다.
바다 물고기 중 상어와 홍어는 부레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상어는 늘 입을 적당히 벌리고 다닌다. 상어가 입을 벌린 것을 보고 잡아 먹힐까봐 두려워하지만 실제로 상어는 자신도 살아보려고 입을 벌리고 다니는 것이다. 공기주머니가 없기 때문에 잠을 잘 때도 꼬리를 흔들어야 가라앉지 않는다고 한다. 상어는 부족한 점이 많은 물고기 인 것이다. 그 완벽하지 않은 몸으로 강자를 만드는 상어와 같이 우리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의 힘을 갖는 사람이 되면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거 있는 증인이 된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언제나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나와 함께 한다고 결단하고 믿음과 확신으로 성령의 역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하고 옛 뱀 마귀를 밟고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영적싸움은 나를 다윗처럼 강한 군사로 만든다. 그래서 상어가 꼬리를 흔들지 않고 지느러미로 몸을 흔들지 않으면 가라앉는 것처럼 영적싸움의 멈출 수 없는 이유를 알면 멈추지 않는다.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영적싸움을 지속해야 한다. 멈추지 않고 자기 몸을 움직이는 상어는 바다의 강자가 되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지음 받았다. 그런데 인간이 사단으로 인해 근본문제가 찾아왔다. 이 사단이 하는 짓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처럼 자꾸 불신앙을 집어넣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신앙 가운데, 범죄 가운데 빠져들게 했다. 이 근본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시기 위해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옛 뱀 마귀를 밟아버리라고 말씀했다.
이것을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근본 축복을 주신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이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난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언제나 이 고백을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일3:8 영혼 속에 말씀이 각인되어 싸우게 된다. 그리스도가 영혼에 각인되어 있으면 누가 우리를 건드려도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상어가 공기주머니가 없어 지느러미와 꼬리를 흔들고 입을 벌리면서 움직이듯이, 사단의 저주 세력을 이길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주머니를 넣어주셨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하면 움직이는 것이다. 고상한 척하며 뭔가 자기 생각에 빠져서 비 맞은 사람처럼 다니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마음껏 누려라. 응답이 없다면 설렘과 기다림 속에서, 응답이 옴을 확신하고 기뻐해라. 그리고 문제 속에 오히려 도전해라. 이것이 바로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성전 삼으셔서 항상 함께 계신다. 영접하는 자 곧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 묶인 우리를 해방하셨다. 그래서 기구한 운명, 사주, 팔자에 묶여 쟁쟁거리고 쫀쫀하고 찌질 하게 살았던 것들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려라. 우리가 이 원죄 덩어리를 깨뜨리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부정하다가 죽는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이것을 믿을 때 세상 임금이 쫓겨 가고 심판을 받고 사단이 우리 발아래 무릎을 꿇게 된다. 사단이 쫓겨 가지 않고 심판 받지 않고 무릎 꿇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우리 몸속에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요8:44로 인해 늘 응답 받는 척, 기도하는 척, 예배 하는 척, 교회 다니는 척, 서로 얼굴 보면 “네, 그렇죠....” 하면서 영혼 속은 썩어 들어가고, 갉아먹는다.
우리 안에 요8:44가 있으면 자신을 진단할 수 없고 점검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영혼에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요8:44 종교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늘 ‘오, 하나님, 나에게 메시지를 주시옵소서, 주여 내게 말씀을 주시옵소서.’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음에도, 성경만 가지고 다닐 뿐, 성경에 있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망권세 잡은 사단에 의해 일평생 종노릇하는 근본문제로 저주와 재앙에서, 사망의 불화살을 맞고 날마다 종노릇 한다. 이 함정과 틀, 여기에 묶여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보내주셨다. 이것이 부딪쳐야 말씀이 온 것이다. 그 때부터 근본의 축복이 시작된다. 하나님이 다 주셨음에도 늘 ‘주여, 주시옵소서.’ 하며 방황하는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주신 갈보리 십자가 언약이 베드로에게 준 것이라고 생각하지 나에게 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요8:31~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씀이 예수님 당시 제자들이 아닌 지금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씀 하나를 듣지 못해 달콤한 말에만 길들여지고 떨어진 부스러기만 주워 먹다가 사단에게 완벽하게 걸려드는 인생을 산다. 우리는 진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서야 한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서지 않으면 BC만 있을 뿐 AD가 없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 갈 수도 없다. ‘거듭나라’는 말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면 저주를 받으리라 말씀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까지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복음이 나의 것이 되지 않고, 나에게 1인칭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십자가의 원수’, ‘양심에 화인 맞은 자’ 라고 하는 것이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며, 고전1:2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라고 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오직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평안을 주시고 영원한 구원을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인간은 온전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를 의인이라고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동행하신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그리스도 그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춰 있느니라” 예수그리스도는 만왕의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을 것이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인생사는 날 동안 부요케 될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를 1인칭으로 끝내지 않으면 전도는 죽는 날 까지 하지 못하고 그러면 증인 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 성도들이 전도하려면 이 말, 저 말, 온갖 말들을 다 따다가 주며 쓸데없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리스도 이름 하나가 체험되지 않으면 집중이 오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서 자꾸 딴소리를 한다.
천하 인간에게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음을 인정하고 진리에 목숨을 걸어라. 그 이름 속에 진리와 자유가 있음을 체험할 때 전도자로서 생명을 거는 자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 이름을 사람에게 들어가야 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재앙을 막을 수 있고, 저주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기에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만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 그 이름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성령으로 인치셨다. 그래서 지구상에 믿음의 대상은 부모 자식이 아니고, 그리스도만 믿어야 구원을 얻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화평케 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전도자의 삶이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움직여져야 한다.
*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가 무엇인가? 예배 때 나를 죽이러 오는 것, 나를 번제로 태워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일에 교회를 와서는 시험 들고 갈등한다. 그리스도가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가? 우리 인생에 작은 어둠의 공격에도 “예수는 그리스도” 하고 거룩한 산 제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려라. 그러면 참된 복이 우리에게 온다. 그리스도 하나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천국이 온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애통함이 오면 응답을 받게 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리스도 그 이름에 길들여지는 자는 땅을 정복하게 된다. 이 참된 복음, 참된 축복을 왜 어설픈 인간들에게 빼앗기는가? 우리 예수사랑 가족이 찾아내자.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사는 자가 되자. 그리스도에 길들여지면 어둠이 물러가고 썩었던 몸이 새롭게 재창조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마5:13~16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 그리스도를 통해 빛이 되었고 소금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사탄이 나를 결박하고 환란이 나를 움켜잡으려고 해도 빛 되신 그리스도가 계심으로 흑암은 떠나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면 그 놈은 이제 완전 무저갱으로 간다.
“목사님 제가 무저갱으로 보낸 마귀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전 인류의 인간들보다 더 많다. 그 놈은 살아서 군대와 큰 조직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저갱을 만드신 것이다. 그 놈들을 집어넣을 수 있는 지옥의 나라가 있다. 많이 쫓아냈다고 하지 말고 계속 영적싸움해라. 그러면 얼굴도 바뀌고 진짜 삶의 변화가 온다. 내 세대에 오지 않으면 자식에게라도 가게 되어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영적싸움하면 반드시 된다. 지구상에 가장 응답을 빨리 받는 곳이 예수사랑교회다. 목사인 나에게는 그런 증거가 너무 많다. 그런데 이 영적 싸움을 인정하지 않아서 어떤 목사님들은 자녀가 두 명이나 자살하고, 교회가 망하고, 사모가 집을 나가고, 자녀들에게 정신질환이 찾아오는 일들이 일어난다. 영적싸움을 하면 정말 쉽고 가볍게 행복해질 수 있다. 어떤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아깝게 생각하지 말고 한 판 승부해라. 병들어도 절대 쪼그라들지 마라. ‘죽고 사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 손에 있다.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살아나시고 그리스도 이름의 그 성령의 능력으로 내게 역사하기를 원하니 너는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제 내 몸은 병들고 무너졌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질병의 저주는 떠나갈지어다!’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사명이다.
신앙생활이 잘 안된다면 질문을 던져봐라. 마16:13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내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져봐라. ‘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하는가?’ 아직도 엘리야처럼 ‘주여, 미치겠나이다, 죽여주옵소서.’ 문제만 터지면 이렇게 시달리는가? 엘리야도 창3:15절이 없어 많은 고생을 했다. 예수님은 신비주의의 엘리야나 박애주의로 늘 우는 예레미야가 아니다. 철장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이시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해서 눈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왜 얻어맞고 예레미야처럼 교회가 울어야 하는가? 교회는 씻음 굿하며 쟁쟁거리는 곳이 아니다. 예레미야도 창3:15없어 고생했다. 세례요한처럼 인본주의 쓰면 불신자들에게 목 잘림을 당한다. 진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신비주의, 박애주의, 인본주의, 종교주의, 우상주의라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다시 물으신 것이다. 우리 예수사랑 가족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할 것인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정말 살아계신 분을 믿는가? 주, 퀴리오스, 창3: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을 때 그리스도, 성령의 능력의 역사가 지금도 이어짐을 믿는가?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로 바꿔라.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것들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들을 버려라.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율법과 종교에 우리는 엄청나게 집착한다.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뭔가 권세가 있고 권위가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이런 것으로 사람을 속이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백하라고 한 고백을 해라. 베드로가 올바른 신앙고백을 했을 때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며,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라” 말씀했다. 신앙생활을 진심으로 점검하면 그리스도만 필요하게 된다. 그래야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다.
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잘 확인해봐라. 악마 같은 마누라에게 있는지, 무능한 남편에게 온 마음과 생각이 빼앗겨 있는지, 어디에 나의 관심이 있는지 나를 잘 들여다봐라. 하나님의 소원에 관심이 있는가에 따라 기도가 달라지고 헌신이 달라진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의 관심이 전부 어디 있었는가? 먹는 것, 병 고치는 것뿐이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사람들의 주제는 전부 ‘나’였다. 이 하나를 바꾸시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저주에서 건지셨죠~”,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받아요~” 예수가 그리스도, 나를 구원하신 분 다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늘 주제가 ‘나’에 있다.
바울은 생각이 달랐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택한 그릇이다.’ 주제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변화의 훈련 속에 들어갔다. 안디옥 교회에 가서 훈련을 받았다. 얼마나 모범적으로 훈련을 했는지,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을 받을 만큼 겸손과 진실, 순종함과 영적싸움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인간관계에 승리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 전체가 힘을 합쳐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할 만큼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훈련을 받지 않고 내가 뭘 해보려고 하고 내가 어디를 가려고 한다. 바울은 문이 열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었다. 하나님의 절대 살아계심, 하나님의 방향과 소원, 하나님의 꿈이 어디 있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5인1조 팀으로 첫 번째 들어간 동네를 분석해버린다. ‘아, 이곳은 무당동네구나’(행13장), ‘아, 이 동네는 깡패집단들, 기득권세력이 장악해서 그리스도를 전달하니까 발악하는구나. 이곳은 완전 점술 동네구나’(행16장), ‘아, 이곳은 교회당 우상들이 집중 기득권, 교권으로 장악해있어서 제사장들이 귀신들려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마술사로 전락해있구나’(행19장). 그래서 닫힌 곳으로 가지 않고 회당으로 들어가고, 기도처가 있는가 하다가 제자를 찾아낸다. 그리스도를 알아듣는 자를 통해 지역에 시스템을 만들고 영적싸움을 구체적으로 진행했다. 그 전도제자를 통해 지교회가 탄생되는 축복을 바울은 알게 된 것이다.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관심은 오직 선교였다.
안디옥 교회, 바울의 전도와 선교의 역사를 통해 그 복음이 우리에게 까지 지금 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예수사랑교회는 복음의 빚은 진 자들이기 때문에 복음이 끊어진 237개 나라에 제자들을 파송하자. 이것을 기도제목으로 놓고 경제를 건설해 가자.
오늘날 까지 대한민국 정치의 역사는 너희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살인자들로 인해 끊임없이 국민과 북한을 이용해서 전쟁이 난다고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국민들을 속이며 거짓으로 얼룩된 것이었다. 이제는 정치인들에게 속지 말자.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듣게 해주는 시간표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통일이 되고 38선에 자동차 길이 열리면 북한, 러시아, 중국, 유럽으로 복음을 들고 가는 것이다. 그러면 사도바울처럼 연보를 받아 다시 예루살렘, 예수사랑교회로 오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이런 선교의 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고 기쁜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것을 복음을 위해 쓰는 것이다.
바울은 땅 끝, 서바나 까지 들여다봤다. 로마를 복음화하고 다시 스페인까지 들여다보는 영적인 눈을 떴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이제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모든 생명들에게 그리스도를 불어넣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자.
바울의 전도와 선교의 배후에는 창3:15, 복음의 절대성이 있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곧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명령하면서 다녀라. 그리스도는 절대적 진리이기 때문에 결단코 타협하지 마라.
오늘날 한국교회들이 종교와 타협하면서 교회들은 다 깨지고 있다. 한국 교회가 완전 흑암에 덮여 일반인보다 더 심하게 싸운다. 그리스도, 이 전도를 집어넣지 않고 성도들이 교회에 앉아있으면 그것이 흑암이다. 그리스도 없이 앉아있으면 그 사람이 마귀다. 교회에 마귀 짓하러 들어 온 것이다. 돈 몇 푼 내면 장로 받는다고 생각하고 교회 들어온 것이다.
그리스도는 긴급성이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다. 사단이 모든 생명들에게 불화살을 쏘고 있기 때문에,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어둠의 세력이 우리를 향해 오기 때문에 긴급성을 가지고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모이든지, 흩어지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확실성을 가져라. 그리스도로 구원 받고, 죄사함을 받고, 인도 받고, 그리스도로 승리하고 그리스도로 응답 받는다. 이것으로 충만하게 한 주간을 살아라.
복음에는 모호함이 들어가 있으면 안된다. 그것은 절대 용납 될 수 없다고 사도바울은 말한다. 깨끗하고 순수하게 그리스도만 줘야 한다. 그래서 내 안에 그리스도가 들어가야 “은과 금이 없어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살게 된다”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가져라.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반드시 집어넣어야 한다는 절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내 몸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 시골에 계신 우리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말만하지 말고 전화라도 해서 영접시켜야 한다. 이런 가슴이 우리에게 정말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말씀과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우리에게 계승되어 현존하고 계신다. 성령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마귀의 함정과 틀, 올무에 묶여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느낄 수도 없던 나를 예수그리스도로 살리시고, 이제는 하나님의 힘으로 내가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과 화목케 된 절대 의를 가지고 날마다 영적싸움 속에 나를 거룩한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예배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신앙생활을 진심으로 점검할 때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필요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택한 그릇이라고 고백한 바울과 같이 나의 관심이 오직 ‘나’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전도자의 삶이 되어, 전도와 선교에 눈을 뜨고 복음이 끊어진 나라에 그리스도를 전달하기 위해 경제의 문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