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4 . 1부 말씀
가룟 유다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 잡힌 사단으로부터 공격을 당해 죽음을 선택했다. 스스로 목을 매달았지만 그 줄이 끊어져 곤두박질쳐서 창자가 터져 죽었다. 그는 오늘 이라는 시간 속에 창3:15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을 거부하지 마라.’ 이것을 거부하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 편안하게 죽고 싶다면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남은 생애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전도와 선교에 방향 맞춰 나가는 인생이 되라.
* 문제의 근본을 유일하게 알려준 성경의 말씀을 붙잡을 때, 진정한 행복은 시작된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 하나님은 베드로의 입을 열어 성경의 말씀을 알려주셨다. 성경 속에서 말씀으로 내 자신에 대한 해답이 없으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해답이 없는데 움직이면 죽는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라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120명의 성도들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세상은 성경대로 진행되고 있다. 성경은 예언된 메시지이기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를 주셨다. 우주와 지구를 통틀어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이 큰 축복이 내게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결정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우리가 사는 길이다. 멸망에서 빠져나오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셨다. 그리스도를 우리 영혼에 담고 그 이름을 시인하면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나는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 최고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그들의 말로는 망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성공을 하고, 공부를 많이 하고,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면 아무 의미 없는 삶이다. 가룟유다는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다. 하나님은 가룟유다에게 응답을 주시기 위해 여러 번 메시지를 주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 자기가 가진 그 똑똑함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다. 자신이 어느 곳에 속해있다는 소속감만 가질 뿐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없었다. 사람이 성공을 하면 자신이 가진 성격과 달라지기 시작한다. 돈의 위력이 몸에 찾아오면 교만과 살인의 눈빛, 더 큰 것을 물어보겠다는 용의 눈빛으로 무섭게 변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성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생을 사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면 성공을 해도 이상한 사람들만 따라붙는다.
가룟유다를 통해 하나님은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의 말로를 말씀해주셨다. 가문의 저주가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룟유다에게 찾아온 말로였다.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하는 이 저주가 개인의 삶에서 끊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에 들어오지 않는다. 영적대물림이 영적문제로 나타나 ‘나’로 살려고 몸부림치며, 하나님이 나를 바꾸라고 하시는데도 바꾸지 않는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너를 못 박고 네 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해라’ 하는데도 그 말을 가장 싫어하고 귀를 막아버린다. 영혼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있는 것에서 해방시키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성경은 문제의 근본원인을 말씀했다. 옛 뱀 곧 온 천하를 꾀는 자가 이 땅으로 내어쫓겨 인간계 속에 파고들어왔다. 그로 인해 찾아온 근본문제가 거짓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어도 거짓말로 믿는다. ‘아멘, 할렐루야’ 라고 말은 하지만 자기 유익에 기스나는 일만 생기면 ‘하나님이 없다’ 한다. 육신의 생각, 자기 기준의 틀 속에 마음에 맞지 않으면 원수로 행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는데도 육신의 생각으로 산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근본문제가 인간계 속에 파고들어 와 있다. 이 근본문제가 늘 내 몸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해라.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근본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살인자, 욕심쟁이” 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의 자녀는 욕심 부릴 필요가 없고 거짓말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계속 거짓말로 믿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개인의 멸망이 찾아온다고 말씀했다.
성경은 왜 전쟁을 예언했고, 노예, 포로, 속국을 예언하셨는가? 거짓말로 하나님을 믿으면 이런 멸망상태가 개인과 국가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요5:39 성경을 상고하고 성경을 깊이 들여다봐도 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언해 놓은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했고,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그 이름을 힘입어 영생과 생명을 갖기 위함이라고 말씀했다. 롬5:8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확증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고, 그 이름 속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가지고 죄와 사망에 묶인 것을 풀어내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종교생활에서 찌들었던 옛 사람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나의 주가 되게 하자.
* 가룟유다가 자살한 부분에 오해를 없애기 위해 베드로가 성령의 입을 빌려 말씀을 전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 하나를 용서하지 못하실까?’ 사람들의 이런 오해를 두고 분명하게 말씀을 선포한다. 이것은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말씀 하나를 깨닫지 못하면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에 이미 예언된 말씀이다. 구약의 말씀이든, 신약의 말씀이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응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복음의 흐름을 타야 한다.
가룟유다 자살한 이유는 창3:15의 흐름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근본문제로 인해 당한 것이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흑암이다. 인간의 근본문제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로 우리가 탄생한 것이다. 그 살인자가 인간계 속에 들어와 우리 속에 살인자로 숨어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어느 날 개인에게 찾아오는 멸망의 시간표를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창6:14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한다. 이미 홍수 재앙이 우리 삶에 와 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라. 하나님의 응답 없이 거짓된 성공으로 자신을 포장하려고 하지 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해가지도 않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가짜 성공이다.
예배 하나도 온전하게 성공하지 못하면서 성공했다고 하는 것은 어느 날 순식간에 무너진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영적싸움 없이는 예배에 성공할 수 없다.
참된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드리고 싶을 때 드리고, 안 드리고 싶으면 안 드리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진리가 무엇인가? 싸우는 것이다. 참된 예배는 뱀의 머리를 밟는 것이다. 언제나 복음의 흐름을 타라.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하며 예수는 그리스도를 노래해라.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얻는 새로운 은혜가 필요하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영적인 문제가 삶에 걸려있기 때문에 반드시 날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인 문제가 삶에 어떻게 파고드는지를 모르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의 권세에 장악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죄의 삯인 사망에 걸려, 사망권세 잡은 사단이 인간을 완벽하게 장악해버렸다. 그래서 일평생 살아가는 날 동안 사단의 종노릇한다고 말씀했다. 무엇 때문에 종노릇 하는가? 내면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 걸려있는 것이다. 죽을 때 멋있게 죽고 싶다면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 죽음의 두려움이 우리 영혼의 내면의 세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겉을 화려하게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뭔가 화려하게 치장을 하는데 내면의 세계는 깊이 병들어가 가고 있다.
내면의 세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절대 그 무엇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 사도바울의 고백은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영혼 속에 날마다 죄의 권세가 엄습해 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둠과 캄캄함 속에서 살았고, 사단의 권세에 잡혀있었다는 것을 고백했다. 우리 내면에는 끊임없는 열등감으로 자신도 모르는 두려움과 실패감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눈을 뜨면 마음에 근심이 우리를 늘 사로잡는다. 아무리 맛있는 밥을 먹어도 근심으로 씹는다. 마음의 근심은 죄의식이다. 죄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놈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거짓말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인간으로 살기 때문에 어느 날 자신의 인격에 파탄이 일어나고 삐뚤어진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면을 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척하지 말고, 우리 내면에 삐뚤어진 인격을 그리스도로 해결해라.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힘입어 내 속에 더러운 것을 내어 쫓을 때 하나님이 나라가 임하게 된다. 절대 가면 쓰면 안 된다. 믿는 척, 하나님을 아는 척, 기도하는 척 하지 말고, 우리 내면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강한 자를 결박하여 내어 쫓아라. 영적전쟁,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도피적인 삶을 산다. 그러나 창3:15 현실 앞에 도피하지 않고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내 삶에서 떠나가라!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하나님의 아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 주홍같이 붉은 죄가 있다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나를 씻어주셨다!’ 이렇게 선포하고 해결을 받을 때 남을 비판하지 않는다. 영적싸움하지 않고 내면의 세계를 치유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남을 비판한다. 헐뜯고, 상대를 깎아내린다. 별일도 아닌 것에 왜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는가? 내면의 세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세계가 우리 자신이 아닌 그 놈이 우리 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속에 찾아들어온 싸가지의 영을 버려라.
요6:70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가룟유다는 자기가 마귀라고 지적을 받아도 해결을 하지 않는다. ‘내가 마귀구나, 그러면 빨리 해결해야 겠구나’ 해야 하는데 이 말을 듣고 가룟유다 혼자만 시달리고 있었다. 시달릴 것이 없이 그냥 버리면 되는데 끊임없이 시달려서 결국은 요13:2, 예수를 어떻게 팔아 죽일 것인지 생각만 한다. 그 생각이 들어가서 마귀의 힘이 충만해지니까 결전의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증오심을 가지면 그것은 재앙, 저주다. 죽을 때 제대로 못 죽는다. 우리는 죽어도 잠자는 듯 죽어야 주님도 만나는 것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지금 자기 앞에 서서 말씀을 주시는데도 거부한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말은 ‘위로부터 온 자’를 말하는 것이다. 위로부터 임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몸에 다른 인격으로 살게 만드는 놈을 결박하여 내어 쫓는 것이다. 그 놈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주셨다. 죄와 사망의 권세 잡은 사단이 장악하고 있는 내 내면의 세계를 내어 쫓는 힘을 주셨기에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를 받으라고 하셨다.
가룟유다는 문제와 위기, 위험, 환란을 만나자 행동이 달라졌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는데 가룟유다는 제사장에게 붙어버렸다. 예수님이 제일 싫어하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들에게 들러붙어 딴 짓을 했다. 제사장편에 붙어서 자신만의 안위를 챙기기로 작정해버린다.
예수님은 이미 가룟유다를 알고 계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룟유다가 가지고 있는 똑똑함과 냉철함에 끌려가서 돈궤도 맞으라고 하고 똑똑하다며 가룟유다를 치켜세웠다. 제자들은 가룟유다에게 속어 넘어갔지만 예수님은 속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자기를 좋아하는데 예수님만 자기를 지적하고, 마귀라고 하니까 거기에 대한 증오심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증오했다. 혁명가 모임 속에 가입해서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안 되니까 제사장 편에 붙어버렸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비참하게 죽으시는 소리를 듣고 가룟유다는 깜짝 놀란다. 그리고 너무나 큰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것이 사단의 역사다. 우리에게 찾아온 문제를 즉각 밟지 않고 지나간 다음에 후회하면 늦는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주셨는데 자꾸 뒷북치는 사람이 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항상 구하는 것, 먼저 할 것이 있는데 사단의 심부름을 다 한 다음에 후회를 한다.
가룟유다를 시41:9 ‘발꿈치를 들어 올린 자’ 라고 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고, 발꿈치를 들어 올리는 자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베드로가 다윗이 기록해놓은 하나님의 말씀을 응용해서 본문에 말씀하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는 자로 살지 않으면 배은망덕한 자가 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이 ‘발꿈치를 드는 것’, 곧 영적싸움을 하지 않는 자를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라고 하는 것이다. 영적싸움 하지 않는 자, 회개했다고 거짓말하는 자는 배은망덕한 자라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잔머리를 쓰는 자. 그래서 육신의 생각이 무서운 것이다.
본문은 초대교회 첫 번째 이슈가 된 자살에 대해 베드로가 설명한 것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자가 살게 된다는 이 사실을 모르면 예수님을 3년 씩 따라다녀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가 된다. 배은망덕한 자, 육신의 생각, 잔머리를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며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이것이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였다. 자살은 예외나 우연의 사건이 아니라 성경말씀의 성취라는 것이다. 멸망 받지 말고 구원 받으라고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을 주셨고, 요8:44에서 벗어나라고 하셨으며, 마12:28~32에 네 안에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으라고 말씀을 주셨는데도 결국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결과로 처절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어설프게 믿으면 마귀에게 종노릇 한다는 것을 히2:14~15을 통해 히브리인들, 유대인들에게 분명히 말씀해주셨다. 인간이 당하는 문제를 그리스도 안에서 풀어내지 않으면 결국 묶인 상태에서 사단의 공격을 이길 수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래서 참 왕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가 되어야 한다.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신 참 왕, 그리스도.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사망권세 잡은 사단의 권세를 그리스도로 무너뜨려라. 그리스도는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셨다. 골1:13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것이다. 요14:6 그리스도는 인생의 길, 진리, 생명이 되셔야 한다. 그래서 성령, 그리스도의 역사가 우리 삶에 일어나야 흑암으로 닫혔던 문들이 열려지는 것이다. 이것이 풀려지지 않으면 사악한 마음 때문에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사악한 짓을 한다. 사람을 향하여 배려심이 없고,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굉장히 사악한 자다. 죽을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사악한 마음을 사단이 영혼에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도 팔아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을 갱신하지 않으면 누구나 가룟유다처럼 이런 짓을 하는 것이다.
현대신학자들은 가룟유다를 공로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가룟유다 한 사람을 선택해서 저주 받게 만든 것은 절대 하나님이 아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갱신하지 않으면 가룟유다와 같이 사탄에게 선택을 받는 자가 된다. 가룟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갱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탄에게 선택을 받은 것이다. 창3장의 원죄는 사악한 영이다. 그래서 그가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한다. 마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왜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는가? 요8:44로 자기 몸에 찾아들어온 원죄를 몰랐기 때문이다. 왜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몰라서 죽었다. 그래서 가룟유다는 망했다. 그리스도로 자신을 바꾸지 않으면 가룟유다와 같은 인생을 누구나 살 수 있다.
행26:18 사도바울은 영적인 눈을 떠야만 사단의 권세를 안다고 했다. 자신이 영적인 눈을 떴을 때 사단의 권세와 어둠, 흑암, 캄캄함을 보았고, 죄의 권세가 자기 영혼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시기 위해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새 은혜로 입어야 한다.
주일 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을 새롭게, 날마다 가져야 한다. 이것이 영적싸움이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예배의 매너리즘에 빠져 예배가 뭔지도 모르고 성전에 돈은 던져 놓지만 자기 영혼은 바뀌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 아무 의미 없는 인생으로 마감하게 되고 쪼그라들면서 멸망을 받게 된다. 원죄를 가진 자는 편안하게 죽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리스도로 내면의 세계를 치유해라. 가룟유다의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잊어라. 왜 죽였냐고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도 하지 말고 잊어버려라.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왜 저렇게 비참하게 죽었대?’, “누구 아들이 자살했데~”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하고 다니지 말고 자신을 갱신하고 고치고 정신차려라.
초대교회가 120명이 모였는데 가룟유다가 죽었다고 웅성웅성 한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자신을 바꾸지 않으면 가룟유다처럼 될 수 있다, 자신을 치유하고 그 문제를 잊어버려라” 말씀한 것이다.
행1: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자신과 싸우지 않고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찾아온 문제였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룟유다는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들어버렸다. 밟아야 하는데 그 발을 밟지 못하도록 들었다. 발꿈치를 들었기 때문에 그 말씀이 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땅에서 배가 터져 죽어 지옥의 심판으로 가게 된 것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과 세상, 사단과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은혜도 받고 응답도 받고 여러가지 밥 먹는 문제도 해결했다고 하지만 결국 배은망덕한 자가 된다. 결국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 옛 사람 그대로 살지 말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자.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원죄를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여 사탄을 내어 쫓지 않아 사악한 사탄에게 선택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가룟유다의 죽음에 대해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이제 나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 속에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춘 인생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기에 예배를 습관처럼 드리며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체질을 무너뜨리고 창세기 3장 15절이 내 삶의 원칙이 되어 영적싸움의 참된 진리로 내 자신을 바꾸며 날마다 그리스도의 새 은혜를 입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