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30. 1부 말씀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의 역사 속에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에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를 보고 ‘우리를 보라’ 말할 수 있었다.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그 역사를 알면 그리스도 이름 하나를 우리 몸에 연결시키게 된다. 이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목적으로 걷는다. 내가 걸어야 하는 이유, 내가 오늘도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 이유, 먹어야 하는 이유...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이름의 목적을 두고 하게 된다. 예수그리스도를 목적으로 걷는 자는 “우리를 보라” 할 수 있을 만큼 영적인 힘이 온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살지 않기 때문에 시선을 피하고, 문제를 두려워하고,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환경을 자신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목적으로 걸으면 인생은 달라진다.
*내 인생을 점검해봐라. ‘나는 모든 족속을 살릴 참 전도제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마28:1~20 예수님의 절대 죽음과 절대 부활은 그 누구도 막을 자가 없었고 누구도 방해할 자도 없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골1:13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를 옮기셨다. 옛 사람인 나를 버리고 나의 삶에 주인이 정말 바뀌었는지 자신을 정말 점검해야 한다. 갈2:20 이제 예수와 함께 나를 못 박아 버려라,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롬8:1~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케 하신다.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주인이 바뀌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답을 찾지 못하면, 그리스도 이름으로 걷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지, 아니면 내 중심에 무엇인가 필요한 응답을 받기 위해서 왔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어둠의 세력, 너희 아비로부터 삼, 사대까지 이르러 저주로 끌고 가는 흑암. 이 놈은 우리에게 이미 답을 내놓고 우리를 끌고 가고 있다. ‘네 중심대로 움직여라. 그러면 너는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너는 눈이 밝아 질 것이다. 너는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놈이 준 답으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성이 굉장히 더러워져버렸다. 그리스도로 걷지 않고 사단이 준 답으로 인생을 걸으면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종교 사상에 빠져버린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생명이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절대 하나님의 공동체다. 그래서 사단이 준 답으로 인생을 사는 만큼 자신도 모르게 귀신들린 상태로 가고, 육신적인 사람으로 전락된다.
기독교는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영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셨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영을 받았다면 우리도 영적 존재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시집가고 장가가고 땅 사고 집 짓는 것에 목숨을 거는 인생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래서 네피림, 거짓된 성공 속에 자기 이름 하나를 알리기 위해 많은 이웃을 희생시킬 뿐 아니라 가정을 다 파괴시키고 있다. 나 한 사람의 성공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인간은 세상의 샤머니즘적 미신 사상에 길들여져 마귀의 자식이 되고, 의에 원수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막고 있는 악한 자가 된다. 눈을 뜨고 있으나, 눈으로 보는 것 같으나 이미 영적인 봉사로고 했다. 영적 봉사는 결국 자신의 육신의 이익만을 위해 인생을 살 뿐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내용도 없인 너무나 비참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는 어느 날 안개처럼 사라지는 존재다. 잠시 보이다가 없어지는 존재.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지만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살아있을 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정리해라. 십자가의 원흉으로 장악된 우리 몸을 욕심쟁이가 지배하고 있어서 자꾸 자기중심으로 재산만 쌓아두려고 하지만 그 돈을 보고 히죽히죽 웃다가 떠나는 게 인생이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권력을 가졌던 분을 만났는데 가죽만 남아 아무 힘도 없는 노인에 불과했다. 이런 육체를 위해 무엇을 그렇게 심으려고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핏 값을 지불해야 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인 그 핏 값. 그래서 영영한 불에 들어가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인간에 대해 말씀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우리에게 주셨기에 예사롭게 받으면 안 된다. 사실적으로 믿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에게는 반드시 종말이 찾아오기에 마귀가 끌고 가느냐, 하나님의 성령이 끌고 가느냐는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의 것을 따라가는 삶이 그리스도로 시작되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 이름을 목적으로 두고 걸을 때 달라지는 것이 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가 내 몸에 이간자로 살아서 분노와 혈기, 다양한 육신적 문제를 일으키는 생산 공장으로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을 때 우리의 의지나 생각은 아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복종시켜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공격을 당한다고 했다. 우리의 가정이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고 우리의 자녀들은 상처로 비참함을 갖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의 소금, 빛이라고 했다. 환란 날에 무엇이든 그리스도께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크고 비밀한 일들을 하나님이 알려주실 뿐 아니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나와 함께 살아계신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기도 응답을 받은 자이기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걷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풀리게 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걷지 않으면 사람을 실족시키는 사람이 된다.
벧전1:9 믿음의 결국은 사람을 구원시키는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걷는다면 사람에게 구원을 주는 자가 되어야지 사람을 실족시키고 어려움을 주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창3:15로 인생을 살지 않으면 내면에 어둠이 자꾸 스며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행복해져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의 날까지 내면이 날마다 새로워지게 된다.
개인의 변화 없이 자기중심으로 밥 먹는 문제만 구하는 것이 세상의 모든 종교다. 하지만 기독교는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이 보장될 뿐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까지 소유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날까지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게 된다.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 강한 자가 우리 몸속에 들어가서 우리를 장악하고 있기에 강한 자를 결박해라. 그러면 세계복음화 할 만큼 하나님의 축복이 온다. 그런데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은 하지 않고 무엇인가 다른 것에 열심을 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욕심쟁이로만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 성령으로 영원히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걸으면 모든 문이 열린다.
바울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던 사람이었지만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을 믿어도 변화 없는 삶을 살았다. 자기 수준, 자기중심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중에 “예수가 그리스도요, 예수가 우리의 주인이시다” 고 외치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자신의 권세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외치는 자들에게는 변화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가다락방의 초대교회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엄청난 변화 속에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강력한 변화의 역사 속에 있었다. 불 태워죽이고 감옥에 끌고 가고 모든 재산을 압류해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잔잔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했고 결국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게 된다. 예수를 만나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부터 변화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목적으로 걸으면 변화의 역사는 시작된다. ‘내 중심으로 가졌던 모든 것이 다 배설물 이었구나...’ 고백 할만큼 바울에게 강력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빌3:1~21 모든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하는 개들을 삼가고 오직 최고의 지식, 최고의 상급, 최고의 목표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영원한 천국을 소유할 뿐 아니라 하늘의 시민권을 갖게 되며, 만물이 우리 앞에 복종케 된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가 적폐대상이 된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향해 “우리를 보라” 했다. 그리스도 이름을 목적으로 걸으면 어떤 누구를 보아도 “우리를 보고 구원을 받으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힘이 없다는 것은 육신의 문제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마른 뼈와 같이 생기 없는 삶이 된다. 예배를 드려도 억지로 드리고 아무 감각도 없고 감정도 없다. 그러나 ‘한 번의 예배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1인칭 하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게서 떠나가라!’ 고 즉각 마귀를 밟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가 시작된다. 그때 현장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현장 속에서 누구를 만나도 당당하게 “우리를 보라” 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베드로와 요한이 “걸으라” 선포했을 때 그 말이 걸을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깨질 지어다!’ 이렇게 하면 능력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자꾸 설교에만 길들여진다. 말 잘하는 사람들의 설교는 아무런 힘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하는 말은 능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이 “홍해를 건너라” 말씀하셨을 때, 건너갈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체험한 자에게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나타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 그 이름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예배 말씀을 통해 개인과 가정, 사회와 소통해라. 그러면 우리를 만나는 자들이 형통케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힘이 그리스도 안에 이미 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의 밥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목적으로 걷지 않으면 아무 증거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예배드리고 헌신하고 봉사해도 상관이 없다.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들의 결과는 행2:47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찬미하며,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자가 되었다. 우리는 가족에게 칭송받는 자가 되었는지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가족에도 칭송을 받지 못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다. 마귀가 끌고 다니는 딴 짓을 하기 때문에 인생에 이상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천사가 우리를 끌고 다니고, 성령이 우리를 이끄시면 우리의 가정과 산업, 직장에 다락방 운동이 일어난다. 직장의 직원들에게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변화가 없으면 월급을 주면서도 칭송받지 못하고 전도도 못한다. 이런 일을 당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해라. 칭송을 받으면 “구원 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리라”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면 결과가 나온다. 자신의 집을 개방시켜 “우리를 보라” 할 때 빛이 날만큼 영적인 힘이 임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자기 집들을 다 개방했다. 마가의 집, 루디아의 집, 브리스길라의 집, 빌레몬의 집에서 시작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장소와 상관없이 집에서부터 역사가 일어난다. 그래서 눔바와 그 집과 그 교회에 큰 축복을 받게 되고 야손과 같은 사람을 통해 교회가 커지면서 전 세계 경제를 장악할 만큼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셨다. 우리 가정 전체의 미래를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져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보호하심과 부요케 하심이 있음을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멸망 받지 말고 구원받으라고 주신 그리스도는 살아계신다.
세상을 변화시킨 초대교회는 한 번의 예배만으로 영적변화가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있다. 예배 한 번 드리고 영적인 힘이 충만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흩어지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늘 고백하며 그리스도를 노래했다.
하나님은 어둠과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웠다고 이미 말씀하셨고, 사단이 하늘로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도둑이 우리 보다 앞서 이 땅으로 떨어졌고, 이 세상 신이 지금도 우리를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타락과 저주의 세력이 스며들게 만들었다. 우는 사자가 지금도 우리를 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있고, 하늘의 악한 영, 사망권세 잡은 자가 불화살을 쏘려고 화살을 당기고 있다.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세상 임금이 우리에게 경제를 주지 않으려고 하고 돈을 줘도 세계복음화 할 만큼 주지 않고 겨우 먹고 살만큼 준다. 그래서 감사도 없고 전도와 선교, 사명도 없이 교회만 다닐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빠져나와라. 성경은 사단에 대해서, 그리고 여기서 빠져나오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 편집하고 정리했다. 그리스도께 마음이 붙들리지 않고서는 이 사단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개인적인 체험을 하고 싶다면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령해라. ‘얼굴 하나도 펴지 못하고 살게 하는 더러운 저주야 그리스도 이름으로 떠나가고, 지금부터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얼굴은 펴질지어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부인한테 칭송도 받지 못하며 더러운 악행을 저지르는 악한 놈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떠나갈 지어다!’ 개인적 체험을 하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면 된다. 은과 금을 초월하는 부자가 되라. 만물을 복종케 하는 권세와 권능을 하나님이 이미 주셨기에 은과 금 앞에 떨지 말고, 쫄지 말고 그것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자가 되라.
잠자는 사람을 깨우는 것은 굉장히 쉽다. 자는 사람에게 “일어나!” 하면 벌떡 일어난다. 그런데 잠자는 척 하는 사람은 깨우기가 어렵다. 아무리 일어나라고 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것, 가장 나쁜 것이 ‘척병’이다. 사단은 우리에게 ‘믿는 척’ 하게 만든다. 그리스도를 아는 척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령하고 다스리고 정복하지 않는다. 드러누워 자는 척하며 생각만 하고 자신을 절대 갱신하지 않는다. 자기중심으로 계속 버티기만 하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눈은 떠야겠는데 자는 척을 했기 때문에 일어나지는 못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회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애매모호한 어리석은 사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갖고 싶은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면서 계속 뒤척거리며 자는 척만 하고 있다. 자기 혼자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쓸쓸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애증과 애정 속에 늘 잠자는 척 만 하고 있는 것이다. 뚜렷한 대상도 없는 것을 향해 좇아가며 방황만 한다. 벌떡 일어난 사람은 밥이라도 먹지만 자신은 자는 척 하느라 밥도 못 먹는다. 이렇게 불쌍한 인생이 되지 말고 자는 척하는 것을 깨뜨려라. 자신의 틀을 한 방에 깨뜨려라.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아버려라.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사람에게 눈을 맞추고 산다. 그래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누구에게든지 그리스도를 선물로 준다.
잠자는 앉은뱅이를 한 방에 깨버렸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걸으라.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라. 그리스도 안에서 잠에서 깨어나라.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귀신을 내어쫓고 하나님의 말씀을 포럼해라!’ 이렇게 선포해라.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흑암이 떠나간다. 성령충만한 초대교회는 오직 영적싸움의 기도만 했다. 영적싸움 하는 기도가 없으면 흑암이 장악해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자가 되라.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66권에 잘 정리되고 편집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관심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이름 하나로 열정을 가져라. 하나님의 말씀이 표적과 기사, 능력으로 우리 몸에 나타난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이적과 기사가 나타나며 내 것을 내 것 이라고 말하지 않고 서로 통용할 만큼 하나님의 증거가 왔다. 초대교회는 사람에게 찾아온 영적문제를 절대 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영적싸움하며 변화와 승리의 사람, 응답의 주인공이 되었다.
성경이 무엇을 정리했는가? 창3장 사건을 통해 인간에게 영적문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것을 초대교회는 망각하지 않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싸움하며 변화의 역사를 일으켰다. 그래서 사망의 두려움 속에 사로잡혀있는 영적문제를 영적싸움 속에 깨뜨렸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망은 내 몸에서 깨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너는 부활에 참예할지어다!’ 실제로 말씀을 받고 기사와 이적, 표적이 나타난 것이다.
행2장에 맛을 본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를 봐도 “우리를 봐라” 당당하게 외쳤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에 목적을 두고 걸었을 때 누구를 만나도 “우리를 봐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영적인 문제를 망각해버리고 물질 문제 속에 빠져있다. 영적문제를 망각하면 물질문제 속에 잡혀 허우적거린다. 물질의 문제에 걸리면 평등의 문제에 걸리고 그러면 그것이 사회 문제로 전락된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 풍습에 끌려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돈을 벌어야겠다’ 는 생각에 잡힌다. 성경은 돈을 벌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면 열방의 재물이 내게로 오며,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만물이 내 앞에 복종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양자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면 모든 피조물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 영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해야 한다. 목회자가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목회를 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고, 교회 성도들이 영적인 병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육신의 문제가 찾아온다. 세상에서 정말 성공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방언기도만 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엘리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또 방언기도만 했다. 그러다가 많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간질을 일으켰다. 그리고 찾아오는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서 결국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것이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렇게 가르쳐주는 곳을 교회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예수사랑교회 메세지를 듣고 얼마만큼 감동이 있고 살아났는가?’ 자신을 향해 질문하고 확인해라. 그리고 2019년도에는 다락방을 위해 자신의 집을 개방해라.
인간을 돕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영적인 문제를 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이름으로 해결해라.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질이시다. 하나님의 본질, 그리스도를 가진 자는 반드시 뱀의 머리를 박살내야 한다. 그리스도를 사랑의 마음으로 두어야 영적싸움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믿는다면 영적싸움은 저절로 나온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면, 뱀 대가리를 밟는게 왜 어려운가? 뱀 대가리를 밟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장 안되는 것이 영적싸움이다. 왜 그런가? 영적문제를 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죄 가운데 빠지게 만들어 사망권세로 종노릇하게 만드는 사단의 머리를 밟아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복음의 생명, 능력, 응답임을 잊지 마라.
밀레의 ‘만종’ 이라는 미술 작품에는 두 부부가 서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온다. 밀레는 종이 울릴 때마다 하루에 세 번 기도하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기억하고 이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 하나가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기도를 통해 모든 응답을 다 받게 되어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구시 기도 시간에’ 라고 했다. 마18:18~20, 두 세 사람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그들과 함께 있으리라.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구걸하는 거지. 행4장, 40년 동안 이 사람은 얻어먹는 체질로 굳어진 사람이었다. 그리스도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얻어먹는 체질로 바뀐다. 우리 몸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느 날 주저앉게 된다. 운명론자가 되어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살게 된다. 조상 탓, 부모 탓하며 온갖 이상한 생각만 하고 있다. 앉은뱅이는 예배와 상관없이 살고 있었다. 성전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얻어먹고만 살고 있었다. 자신을 한 번 두드려보지도 않고 무감각해져 버려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기 때문에 그 성전을 드나들지만 앉은뱅이는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얻어먹고만 살면 된다는 것에 장악되어있었다. 주저앉아서 손을 내밀어서 돈을 주면 받고 안주면 말아라 는 식으로 앉아 있었다. 자기 손에 주어진 동전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예수사랑교회에서 주일마다 천장에서 돈이 떨어진다면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들어찰 것이다. 앉은뱅이는 40년의 시간 속에 오직 물질만 생각하는 자로 전락해버렸다. 하나님의 은혜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고 있었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관심도 없었다.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면 옛 사람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하는데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예수님의 마음이 작동되었다.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면, 그리스도 이름을 목적으로 걸으면 예수님이 마음이 작동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령의 사람이 맞고, 예수를 믿는 자가 맞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마음이 작동되어야 한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일어나 걸으라. 날씨 탓하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벌떡 일어나 교회를 향하여 걸어가라!’ 우리가 시작해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이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무시하지 않았던 그 모습을 직접 봤던 자들이다. 예수님 앞에 문둥병이 있으면 그 문둥병을 붙잡고 “너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어가라!” 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정말 이렇게 해야 한다. 나와 식사를 해보면 알게 된다. 나는 누구를 만나도 반드시 그리스도를 하고 나온다.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그리스도 이름을 찬미하는 자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자가 될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날마다 구원의 문을 여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 몸에서 작동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마귀가 만든 운명 속에 내 중심으로 살았던 종교사상에 길들여진 인생에서, 그리스도가 주가 되어 그 이름 안에서 모든 답이 있다는 분명한 성경의 정리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역사 속에 “우리를 보라” 했듯이, 날마다 그리스도를 목적으로 두고 걷는 자 되어 그릿도로 명령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그리스도로 일어난 증거를 날마다 갖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마음이 날마다 내게서 작동되어 어떤 만남 앞에서도 그리스도를 말하는 자 되어 모든 생명의 운명의 틀을 깨뜨려주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JESUS’ LOV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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