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에서 구원하시고 건져내시는 일을 계속 하고 계신다. 이렇게 인자와 성실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아브라함이 발견했다. 또, 아브라함을 만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도 끝까지 그에게 따라붙어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이 경영하는 본향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래서 엘리에셀은 이삭을 자기가 낳은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이삭의 신부감을 찾아 길을 떠났다. 이삭을 낳기 전,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생각했었다(창15: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에셀은 시기와 열등감, 비교의식도 없이 아브라함의 종으로 인생을 가장 멋있게 승리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성공시키지 못해 우울증과 죄책감, 자포자기에 빠져있지만, 엘리에셀은 창3:15을 진짜 적용한 멋진 그리스도의 종, 아브라함의 종이었다. 아브라함의 종으로 쓰임을 받지만 하나님 나라의 큰 성을 차지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엘리에셀이다.
엘리에셀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된 영적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구상에 오는 모든 인간의 문제가 무엇인지 영적 세계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이것을 안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찾아오는 모든 문제가 영적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힘을 가질 때 모든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종의 신분으로 처절하게 깨달은 사람이 엘리에셀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삶이,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 육신의 생각으로 사람 관계를 깨뜨리는 사탄의 대가리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리는 것이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장막에 거하여 하나님께 예배할 때마다 언제나 복음을 누리는 예배의 사람이었다.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서 모든 문제 끝낸 상태로 복음을 누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런데 오늘날 전 세계 99.9%는 그리스도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에 답을 내고 예배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산에서 여호와 이레,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복음을 누리는 예배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주셨는가에 대한 증거를 들여다본 사람이 엘리에셀이었다. 인간적으로 아브라함을 봤을 때 존경할만한 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복음을 누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이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주시는구나. 나의 주인을 통해 창3:15로 역사하시는구나’ 이것을 발견했다. 인간적으로 아브라함을 들여다보면 같은 남자로서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엘리에셀은 자기 부인을 팔아먹지는 않았다. 두려움으로 시달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엘리에셀은 언제나 아브라함의 말씀에 순복하고 자신과의 영적싸움을 했다.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시는 증거를 보며 자신이 상속자 그 이상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엘리에셀 가문은 이스라엘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엘리에셀 종과의 자녀들이 다퉜다는 메시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은 엘리에셀이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심중과 골수까지 영적싸움을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엘리에셀 가문도 축복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이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는 자만이 복음을 누리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불신자는 예배를 필요로 하지않는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장막에 거할 때, 기도 속에 있을 때, 언제나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지 않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체질이 되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갈대아 우르로 보냈을 때 갈등 자체가 없었다. 엘리에셀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절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의 가문은 드디어 노예 신분에서 해방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갖게 되었다.
불신자들이 예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다. 의식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그 하나로만 인생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래서 개, 돼지보다 못한 인간성으로 사는 것이다. 짐승은 가죽도 남기고 고기도 남기지만, 구원받지 못한 인간은 죽으면 아무 쓸모도 없는 재만 남기는 보잘 것은 존재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엘리에셀은 복음을 누리는 예배에 집중했다. 예배를 통해서만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왜 예배에 집중해야 하는가? 사탄은 예배하는 인간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탄의 권세, 흑암권세가 죄와 사망의 권세로 나를 공격해온다는 것을 알고 복음을 누리는 예배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은혜와 응답과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사탄의 유일한 목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배를 빼앗는 것이다. 개, 돼지같은 짐승은 예배를 못 드리는 것에 대해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만이 예배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나는 길,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복음을 누리는 이 예배를 결단코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눈이 오나 비바람이 몰아치나 어떤 열악하고 이상환 환경에도 그것을 뚫고 예배를 성공시키는 사람이 된다.
아브라함이 육신적 기준으로는 조금 이상해도, 복음적 예배를 드려 하나님께로부터 무한한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엘리에셀이 확인했다.
예배를 회복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몸으로 전달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음이라” 광야 시대를 이길 수 있는 비밀이 예배다. 그래서 예배를 회복하면 모든 것을 얻게 된다. 엘리에셀이 광야 생활을 시작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부인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얼마나 애절하고 막막했겠는가? 그가 걸었던, 메소포타미아 가나안 땅에서 2천리 길은 꼬박 30일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30일의 여정 속에 그는 똑같은 기도를 반복적으로 했다. 675555 똑같은 기도를 지속하면 557의 현장이 열린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상한 지식을 많이 담아 머리가 복잡해지고 기도 제목이 명확하지 않다. 엘리에셀의 기도제목은 단 한 가지였다. 하나님이 주신 이삭 부인을 찾는 것이었다. 아브라함과 자신과 맹세를 지켜야 한다는 절대가 있었다. 자신이 사랑한 아브라함,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 그의 아들의 부인이 될 사람을 어떻게 하면 광야에서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눈빛밖에 없었다. 우리가 675555를 가지고 계속 세계복음화를 놓고 기도할 때 다섯 현장은 그대로 열리고 다섯 응답과 일곱 현장은 전 세계를 향해 펼쳐져 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광야 인생이다. 이런 인생의 길을 이기는 길은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신앙을 끊임없이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며 걸어가는 광야의 삶을 살면 하나님의 증거를 보는 증인이 된다. 그래서 예배의 날을 거룩하게 구별시켜 놓은 것을 성경에 말씀했다. ‘하나님은 창3:15 그리스도로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는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가시는구나.’ 광야 생활에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한 생명 한 생명에게 증인으로 살겠다고 세계복음화의 꿈을 꾸는 자들에게 성삼위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성령은 강권적으로 역사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 속에 부정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쁜 것을 보아도 없애버려야 한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나쁜 행실을 보고 여러 가지 말로 이간하지 않았다. 부부 생활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어떤 일이라도, 어떤 말이 들려도 속상하고 기운 빠지는 소리를 들어도 다시 되받아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부부가 행복해질 수 있다. 엘리에셀은 사라에게 아브라함의 약점을 고발하지 않았다. 언제나 아브라함의 명령에 충성할 뿐이었다. 아브라함이 자기 부인을 동생이라고 할 때, 엘리에셀이 나타나 “아닙니다. 부인입니다” 이런 말을 해서 아브라함이 그를 혼냈다는 말이 없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지 들여다보는 깊은 관찰력과 분별력, 결단력이 있었다.
우리에게 성막, 예배처는 굉장히 중요한 곳이다. 예수사랑 교회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있다고 하는 곳, 강남 한복판에 있다는 것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성막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런 예배처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자긍심이 되어야 한다. 외국에 어떤 분이 우리 교회가 강남, 서초동에 있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유명한 목사라고 한 적이 있다. 예배처가 강남 한복판에 있다는 것은 세계를 복음화할 경제를 움직일 예배처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엘리에셀은 가나안 땅에 자신의 예배처가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갈대아 우르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아브라함의 장막에 있었다. 엘리에셀은 언제나 성막과 장막에 가슴을 담고 살았다. 우리가 사는 집에 창문이 있는 이유는 예배처를 향해 바라보라는 것이다. 예배처를 향하고 있으라고 해서 모든 집에 창문이 있는 것이다. 절대 예배를 잊지 말라는 것이 창조원리다. 예배처에 24시 불이 꺼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을 향해 오지 않고 있다면 회개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한다.
우리는 언제나 24시 예배처 속에 늘 모이기를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회막이라고 한다. 흩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이는 것에 힘써야 한다. 그래서 아트홀을 교회보다 더 멋있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포럼이 있어야 하고, 연극, 뮤지컬, 다양한 문화를 정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놓았다. 그래서 아트홀은 회막이다. 하나님이 구별되고 거룩한 곳으로 만들어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마음껏 발표하고 차도 마시고 떡도 먹고 교제도 나누라고 하나님이 이곳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모든 교역자는 엘리에셀과 같은 맹세와 언약, 아름다운 종의 모습이 있기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디지털 시대에 예수사랑교회에 수많은 증인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모이는 회막이 될 것이다. 엘리에셀은 언제나 이 세 가지의 비밀(장막, 성막, 회막)을 가슴에 새겨놓고 하나님 나라를 즐겼다. 직접적인 상속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영적인 상속자였다. 혈통의 상속자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갖는 상속자,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아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는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이 찍으라고 하는 여자를 찍었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응답한 것을 발견한 사람이 엘리에셀이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주일 하루만이라도 예배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예배 말씀을 놓고 포럼을 하면 0.1%의 사람이 된다. 예배 한 번 드리고 어디로 돌아다니다가 사고당하지 말고 주일 하루만이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놓고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창3:15을 부르는, 다른 씨로 잉태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예수사랑교회다. 서울 한복판에 이 교회를 세워주시고 이제는 어린이 세상을 만들어주셔서 어린이 뜰에서 그리스도를 힘있게 부르는 다른 씨를 자라게 하셨다. 그래서 다가올 미래에 어떤 재앙이 올 것을 알고 어린이 선교국 대회를 세계대회로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숲속 좋은 주택가 사이에 5층 정도의 건물에 24시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만들어 아이들이 그곳에서 생활하도록 할 것이다. 예수사랑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모델적인 교회가 되기를 축복한다. 우리는 큰 교회를 만들 것이 아니라 진짜 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 실천하는, 행동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사랑교회는 이 일에 모델이라는 것에 나는 확신한다.
하나님의 언약, 창1:28의 축복을 이삭이 철저하게 누렸더니 아브라함과 엘리에셀과 하나님이 총동원되어 신부감을 찾아냈다. 이삭이 신부감을 찾지 못해 여러 정신문제와 영적인 문제로 시달렸다는 말이 없다. 언약을 누린 이삭은 성삼위 하나님이 애가 탈만큼 역사하셨다. 어린이 세상 아이들이 앞으로 언약을 누리는 써밋이 되면 굉장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창3:15의 하나님은 마16:16을 고백하는 자들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켜 가신다.
창3:15을 가진 자는 다른 씨를 받은 자들이다. “아벨 대신 다른 씨” 이것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가지면 전도자로 부름을 받은 자가 되고 하나님은 이 사람을 통해 인류재앙을 막아주신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고 자라나는 곳이 ‘써밋스쿨 어린이세상’ 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사랑 가족들은 빨리 운명을 바꿔야 한다. 그리스도로만 인간의 운명은 바뀔 수 있다. 인생 개혁을 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지 못한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언약을 가지고 인생을 개혁해야 한다고 결단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성령충만을 주신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수많은 잔재를 긁어버려야 한다. 우리 몸에 남아있는 수많은 더러운 흔적들을 깨끗이 씻어내라고 그리스도 십자가 보혈의 피를 하나님의 은혜로 주셨다.
더러운 흔적들, 더러운 잔재를 없애버리면 딱 두 가지만 남는다. 예배와 헌금. 그 속에 하나님의 개입이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도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더러운 육신의 생각으로 인해 의식주 하나에 묶여서 ‘왜 예배 때마다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을 가져와야 합니까?’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빨리 포기하라고 예물을 가져오라고 하신 것이다. 작은 것 하나라도 심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다. 성공하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앉아있어야 한다. 나도 과거에는 헌금에 대해 갈등한 적이 있었다. 복음 운동을 하는 초창기에, 집회 때 목사님들이 헌금할 때가 되면 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생각을 바꿨다. ‘저런 사람만 있으면 거짓말쟁이가 되겠구나. 마지막까지 남아서 헌금을 해야 세계복음화가 이뤄지겠구나. 나만이라도 남아서 헌금을 해야겠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고 실천했더니, 교회도 없는 나에게 하나님이 강남 한복판에 예배처를 허락해주셨다. 최고의 vvip들이 머무르는 성막, 처소를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세계복음화하는 수많은 총회에 회막을 준 교회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소유한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소유한 나를 통해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뤄가신다. 그런데 99.9%의 사람들이 이것을 누리지 못한다.
0.1%인 예수사랑교회 성도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리스도를 가진 나를 통해 구원사역을 이뤄가신다는 것을 믿고 반드시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이 다른 씨를 주어 유일하게 이 땅에 재앙을 막고 흑암권세를 꺾는 그리스도의 망대로 우리를 인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망대는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 그것을 기도라고 한다. 망대가 죽으면 적이 침범하는 것이다. 포르투갈은 한때 남미까지 정복한 강대국이었지만 차지한 땅들을 스페인에게 빼앗겼다. 스페인이 포르투갈보다 대포를 빨리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도 포르투갈에는 별자리 망대라는 성이 지역 지역마다 있다고 한다. 그 당시만해도 대포가 없었기 때문에 성을 짓고 망대를 세워 적을 잘 관찰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망대를 많이 세웠던 포르투갈은 대포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강대국이었다.
육신의 망대는 아무것도 아니다. 엡6:12 흑암을 꺾는 망대가 진짜 망대다. 그것을 그리스도의 망대라고 한다. 그 사람만이 전도자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우리는 분명 하늘에 악한 영들과 영적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성공의 자리로 이미 우리를 앉혀주셨기 때문에 의식주 문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종교개혁을 향해, 오로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내 남은 인생을 걸었다. 교역자들은 다민족 제자들을 데리고 순교 현장을 자꾸 찾아가야 한다. 과거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버리지 않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쓰신다는 것을 보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개혁 해야 햔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보좌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는 전도와 선교 외에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전도와 선교 때문에, 전 세계 일천망대를 세우기 위해 미라클 오케이 어학당을 세워주셨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못하실 일이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중매쟁이가 되어주셨다. 언약을 누린 이삭의 결혼을 위해 하나님이 사람을 찍어놓으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삭의 결혼에도 개입하시는데, 우리가 전도와 선교, 종교개혁을 위해 움직이는 교회가 되었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어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개혁을 해야 한다. 모이는 회막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훈련 시스템을 세우는 것이다. 주의 종은 새벽마다 기도하고 아침에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다. 모이는 회막 중심으로 정말 복음 운동을 해야 한다. 여러 환경 탓을 하지 말고, 인본주의적 생각을 버리고 전도와 선교의 길을 가야 한다. 나는 이 일에 정말 결단했다. 그래서 나는 소리도 없이 지금부터 다시 제자들을 데리고 직접 현장으로 갈 것이다. 열매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게 될 것이다. 엘리에셀에게도 응답을 주셨는데, 진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왜 응답을 주시지 않겠는가. 예수사랑 가족들, 특히 교역자님들은 정말 원네스 해야 한다. 부교역자들이 좁은 생각을 가지면 내가 섬기는 교회를 영원한 나의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복음화, 원대한 하나님의 꿈과 비전과 이미지를 가지면 엘리에셀처럼 ‘내가 평생 이곳에 나의 시체를 묻으리라. 성막과 장막, 회막, 여기서 나는 세계복음화 할 것이다.’ 뿌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전 세계 여러 나라의 부교역자들을 만나보았고, 지금도 가끔 부교역자 세미나를 하면서 그들에게 늘 부탁하는 메시지가 있다. “마음을 넓혀라. 한 나라만이라도 가슴 품고 기도 속에서 이 땅에서 그 나라의 사람을 찾아 세워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 그 나라 살릴 사람 하나도 못 찾아내면서 무슨 세계 복음화를 하겠다고 욕심을 부리고 사람을 꼬셔서 작은 교회 하나 개척하려고 하는 잔머리부터 청소해야 한다. 부교역자는 여기서 증거가 일어나야 한다. 어떤 곳에 머물러 있어도 이곳에서 출발이 되어야 근원의 시작이 일어난다. 진짜 증거 있는 교역자가 되어야 한다. 장막이 있고, 회막이 있고, 성막이 있다면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문화개혁, 원네스, RUTC다.
복음 안에서 규모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 복음 안에서 규모를 회복하면 영적 문제가 사라진다. 가난, 무능, 찌들은 이상한 생각들이 싹 사라진다. 특히 가족문제, 바뀌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던 것을 내가 바꿔야겠다는 복음의 규모를 갖게 된다. 성경에만 기록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바로 사탄 출현이다. 창1:2, 혼돈과 공허, 흑암이 하나같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놈은 늘 뱀을 이용해서 접근한다. 원죄를 가진 우리에게 뿌리 채 동행하고 동거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탄 소리에 감염되어 육신의 생각에 늘 사로잡혀 있다. 사탄에게 감염되면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사람들이 전부 거짓말에 감염되어 있다. 그래서 99.9%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0.1%인 우리는 창3:15 다른 씨를 가진 자, 구원 받기로 작정 된,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천국을 아는 자가 되었다. 사람들이 교회를 다녀도 천국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날 온 교회가 뉴에이지 사상 속에 빠져서 꼴불견이 되어버렸다. 어떤 목사가 안수를 많이 해서 인기가 높아졌다고 하길래, 그분의 직업을 목사가 아닌 안수하는 자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자꾸 사람들을 일으켜서 정치를 한다. 목사는 정말 다른 말을 하면 안된다.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성령’ 이 세 가지만 말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천국을 소유하게 되고, 세상 문화에 빠지지 않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사탄의 도움을 받아 멸망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 사탄의 강력한 힘에 의해 국가로부터 노략질을 당하고 자신들의 신분이 노예 출신인지도 알지 못한 채 히죽거리며 먹거리 하나에 인생을 걸고 산다. 사탄의 세계적인 전략이 있다. 사탄에게 도움을 받으면, 행13:10 박수가 되어버린다. 사람을 끄는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인이 이렇게 전락해서 장사꾼이 되어 절대 그리스도에 올인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가 아닌 악령의 역사로 모든 사람이 탐욕과 우상숭배, 정신문제를 앓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는 이런 모든 것을 다 초월하고 넘어설 수 있는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권세다. 점술가에게 영혼을 빼앗겨서 되겠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무속인들의 말을 듣고 굿을 하고 점쟁이와 인생을 의논하면 되겠는가? 점쟁이를 찾아가 결혼 날짜를 받고 신붓감 신랑감을 찾으면 되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퇴마사를 찾아가 귀신을 쫓아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나님은 창3:15의 은혜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해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지 말라고 롬5:6, 8, 10절,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이제는 영원히 항상 함께 계신다.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해주시는데 왜 쓸데없이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다니며 진노의 자녀로 살아가려고 하는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기 때문에 더이상 변명하지 말고 그리스도로 답을 내야 한다.
정말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하면서도 믿지 않고 딴짓하고, 귀신 들린 사람의 말을 듣고 또 시달리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된다. 작은 말을 하면 더러운 감정이 솟구쳐서 되받아치는 마귀의 일을 버려야 한다. 사탄에게 속는 것에 사지가 떨려야 한다. 이제 더이상 사탄에게 속지 말고, 당하지 말라고 그리스도를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 맺는 짓을 해서는 안된다.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고,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자가 더러운 감정을 가지고 되받아치면 되겠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다른 것이 없다. “뱀 대가리를 깨뜨려라(창315). 영혼 속에 구원의 방주가 시작되었다(창6:14). 문설주와 인방에 그리스도의 피를 바라는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출3:18). 주는 그리스도 실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우리에게 영원한 해답을 주셨다. 이 사실을 누려야 참 행복을 갖는 것이다. 이것을 가장 잘했던 사람이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다. 그래서 그는 참 응답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깨닫게 되고,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내 몸에 와 있는 원죄를 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구나. 그래서 인간관계를 깨뜨리고 종의 신분에서 교만하고 오만한 자리에 앉게 하는 사탄의 대가리를 깨뜨리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구나. 내가 일평생 아브라함의 종으로 가는 것에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으니 신분은 종이라도 가문의 저주는 끊어야겠다’ 엘리에셀은 이런 절대적 믿음 속에 아브라함과 함께 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삭은 삶의 여정에 엘리에셀 가문에게 한 번도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 않았다. 리브가를 볼수록 엘리에셀 종의 가정을 더 칭송하게 되고 그들을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멋있는 이삭이 되었다. 인간관계를 이렇게 멋있게 성공하는 엘리에셀은 주의 역사를 보았다. 자범죄가 솟구칠 때마다 뱀 머리를 깨뜨리는 엘리에셀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엘리에셀에게도 보여주었다. 그래서 매일 복음을 이해한 엘리에셀에게 기적의 대열 속에 이정표를 따라가게 했다. 종의 신분이라도 복음의 체질이 되면 엘리에셀에게도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아브라함의 종이라 할지라도 복음의 체질이 되면 성공의 자리에 앉게 되고 응답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것이다. 복음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았던 엘리에셀의 가문은 성공의 자리, 정복의 자리를 걷게 되었다.
*본문을 통해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이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알려주고 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엘리에셀의 하나님도 되었다. 창24:26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아브라함이 경배하듯이 엘리에셀도 항상 창3:15 여호와께 경배했다. 언제나 코람데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다. 종의 신분에게도 이런 은혜가 임했다는 것이다.
창24: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의 그 성실함,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경륜을 보았다. 아브라함의 따뜻한 준비성을 엘리에셀에게 위임하여 엘리에셀의 가문 또한 이삭의 가문 대열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응답을 받게 해주셨다.
엘리에셀이 성공의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기도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창24:12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하나님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창3:15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기술을 통해 역사하시고 응답해주시고 승리의 자리에 앉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다. 내 몸에서 언제나 영적싸움 할 때마다 체험하게 하시는 여호와, 지금까지 역사하셨던 그 여호와,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께 다시 부탁하고 기도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이런 기도가 나올 수 없다. 엘리에셀이 금덩어리와 약대 열 마리를 가지고 갈대아 우르를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자신과 영적싸움을 했기 때문에 그는 이삭의 부인 될 사람을 놓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었다.
숨은 동기나 육신적 감정이 아닌, 자원하는 자세를 가진 여자를 드디어 엘리에셀이 찾게 되었다. 창24:13~14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보수를 요구하거나 금덩어리나 약대를 바라보고 행동하지 않는, 자원하는 여자를 찾아낸 것이다. 이런 신부를 데려가야 가문도 살리고, 미래 역사를 이뤄가고 후대를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창24:15~16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중동의 우물은 굉장히 가파른 길에 한참을 가야 하는 길에 있고, 약대 한 마리가 먹는 물의 양은 70리터 정도 된다. 그 낭떠러지 같은 가파른 길을 열 두 번을 오르락 내리락 한 것이다. 그 정도로 리브가는 자원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사람을 알아서 다 찾아주신다. 만약 결혼을 하지 않은 자녀가 있다면 그것 때문에 애가 타지 않기를 축복한다. 머리를 쓰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면 된다. 자녀들의 문제를 위해서 진짜 결혼 문제까지도 기도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멋있는 남자, 여자를 찾아주신다.
본문 말씀을 통해, 엘리에셀은 언제나 신앙 제일주의 속에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언제나 기도를 먼저 선택했다. 하나님을 의존하고 의지하는 방법이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기도 응답으로 받았다.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리브가,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여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리브가, 그래서 믿음의 후손을 남기게 되었다. 엘리에셀은 언제나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은 자였다. 아브라함이 어설퍼도 하나님의 말을 한 번도 우습게 여기지 않고 그 말을 새겨놓고 언제나 기도 속에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가정이 다음 후대까지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가게 하는, 가장 멋진 만남,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다.
창24:21“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깨닫고 그의 기도가 찬양이 되었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서 기록에 남겼다.
창24:22~23 “낙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 무게의 금 코걸이 한 개와 열 세겔 무게의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이르되 네가 누구의 딸이냐 청하건대 내게 말하라 네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유숙할 곳이 있느냐” 리브가는 헌신과 봉사, 사랑, 구제를 다 가진 여자였고, 하나님의 역사도 알고 있었다.
창24:24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까지 다 알았다. 이렇게 가문을 빛내겠다는 절대를 가진 여자가 리브가였다.
창24:25 “또 이르되 우리에게 짚과 약대들에게 먹일 사료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손님 대접하기를 은연중에 천사 대접함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겨놓고 사람을 대할 줄 아는 여자, 공동체, 원네스를 이루는 미래의 여자였다. 이런 여자를 하나님이 중매해주셔서 만난 것이다.
내 자녀의 배우자를 하나님이 예정하셨다고 믿었던 아브라함은 자기 자녀와 엘리에셀의 자녀들과 끈끈한 만남이 지속되고 원네스를 이루기 위해 이렇게 엘리에셀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만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우습게 여겼다면 엘리에셀은 수많은 여정 속에 많은 점쟁이를 찾아가보고 사람을 만나면서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다가 이상한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기도한대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을 분명히 체험했다.
내 자신에게 명확한 기도제목이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 기도제목을 물었더니 “목사님은 바쁘시면서 내 기도제목까지 뭘 알려고 하세요?” 하는 말을 듣고, 기도제목이 없구나 생각했다. 순조로운 만남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순조로운 만남은 영적전쟁에서 시작된다. 다음 세대를 위해 흑암을 결박하면 순조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여호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사람을 드디어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묵묵히 주목해보기를 축복한다. 명확한 기도제목대로 응답이 온다. 승리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인자와 성실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엘리에셀이 그것을 성취해나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엘리에셀의 하나님이 되고, 엘리에셀의 하나님이 오늘 우리들의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이제는 분명한 뚜렷한 기도제목을 붙잡고 묵묵히 하나님의 역사하신 그 인도하시는 경륜을 볼 수 있을 만큼 영안을 열어주시옵소서. 복음 안에서 규모를 회복하여 모든 영적인 문제가 치유되게 하옵시고, 복음 안에서 예배를 누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의식주를 위해 몸부림치며 더러운 흔적을 남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빠져나오도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막을 주셔서 예배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아는 자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배만 빼앗는 것이 사탄의 목표임을 알고 언제나 예배에 집중하여 불신앙과 부정적인 언어를 끊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광야인생에서 복음을 누리는 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소유한 나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증거를 보는 여정을 가게 하옵소서. 창3:15을 알고 선포하는 나를 이 땅의 다른 씨, 그리스도의 망대로 부르셨기에, 흑암을 꺾고 분명한 기도를 시작하여 다음 세대를 향한 순조로운 만남을 누리게 하시고, 세계복음화의 원대한 꿈을 꾸며 종교개혁을 이루는 예수사랑교회 성막에 영원히 거하며 24시 예배처에 모이기를 힘써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예배에 언제든지 자원하고,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 앞에 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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