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행5:33~42
2019.03.10. 1부 말씀
사도들과 같이 얻어맞으면서도 “예수는 그리스도”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산업현장에서든, 누구를 만나든 그리스도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그리스도를 불러야 한다. 이제, 나로 살지 말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로 사는 자가 되자.
*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는 엄청난 배경과 능력을 가진 자이기에, 어떤 문제 앞에서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우리 성도들 중 몇 분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서로 ‘예수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옆에 있는 분이 듣고 왜 예수가 그리스도냐고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식당에서 우리교회 성도가 복음을 줬다. 알고 보니 그 분은 최고의 학교를 졸업하고 최고의 신학공부를 마치고 언론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목사님이었다. 그 만남 이후 그 목사님은 우리교회 메세지를 계속 듣는다. 그러면서 나에게 지속적인 전도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프리카까지 문이 열리고 많은 언론사에까지 연결이 되고 있다. 대부분 다른 교회 성도들은 모이면 교회 욕하고, 목사 욕하는데, 우리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만 말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골2:3,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 하나님의 비밀이 감춰있다고 말씀했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창3:15을 가진 사람 뒤에는 엄청난 배경이 있다. 엄청난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겁날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말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셔서 부르셨기에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을 때 무한한 하나님의 힘과 능력이 우리의 배경으로 나타나게 된다.
뱀의 머리를 왜 밟아야 하는가?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서 그리스도를 말을 해줘야 하는데 갈등이 와서 말 한마디도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라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창3장 저주를 푸는 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다면 어떤 장소에서, 누구를 만나도 그리스도를 부르게 될 것이다. 창3장에 걸린 문제를 반드시 풀어내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3:15을 주셨다. 나로 살게 만드는 불신앙이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고, 상황 앞에 자꾸 갈등하게 만드는 놈이 있다. 그 놈을 밟는 힘을 가지면 새로운 영적인 힘이 쏟아진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빛의 역사가 있다. 빛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자신에게 붙어있는 흑암, 예배 시간에 순간 혼미케 하는 것을 사로잡아 그리스도로 결박해라. 그리스도의 빛의 능력을 체험한 초대교회를 로마 황제 열 명이 이기지 못했고, 우상숭배로 우리나라를 어렵게 한 일제시대 일본 정치인들이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많은 애국자들을 이기지 못했다. 빛의 권세는 그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기에 세상의 어떤 상황에도 염려, 걱정, 불안을 버려라. 어떤 상황에도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는 자는 노예에서 해방 받는다.
마귀의 일은 세상적, 육신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다. 그 마귀의 일에 잡히면 그리스도를 부르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사단에게 잡히면 자신도 모르게 연약해지고 힘이 없고 한계가 온다. 우리 개인이 사단에게 잡혔다는 것을 알면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이 저절로 나온다. 빛의 권능이 우리 온 몸에 임한다는 것을 생각과 마음에 두면 있는 자리에서, 지금, 자신을 깨울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느끼지 못하고 한 번의 예배에 그냥 앉아있으면 흑암이 온 몸을 짓눌러버린다. 그래서 어깨가 무거워지면 자신도 모르게 졸게 된다. 예배 시간에 졸음이 올 때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면서 마귀를 사정없이 밟아라.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이 고백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노예가 된다. 대기업을 다니던 굉장한 엘리트가 있었는데, 어느 날 사기꾼을 따라다니며 노예가 되더니 직장도 버리고 가정은 다 깨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 가족들이 우리교회를 다니며 모든 것이 회복되었지만, 옮기지 않은 그 사람은 결국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우리의 심령의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무서운 영적세계가 존재하기에, 하나님은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통해 마귀의 일을 멸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마귀를 멸하는 힘을 가지면 이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사43:1~6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너를 조성하신 자가 말씀하신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는 자는 두려워하지 말라, 창3:15을 실천하면 너를 구속하겠고, 너는 내 것이 된다.”
* 하나님의 사람은 영적싸움의 생활이 있어야 한다.
영적싸움의 생활이 없으면 세상적, 육신적인 생각과 마음에 잡혀 그냥 주저앉는다. 창3장에 묶여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교만이 똬리를 틀고 허영심에 꽉 차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욕심과 탐욕으로만 길들여져 먹는 문제 앞에서는 눈을 잘 뜨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는 욕심이 생기지도 않는다. 먹고 사는 데는 자신도 모르는 엄청난 탐욕과 정욕이 따라다닌다. 이런 것이 늘 따라다니는데 어떻게 영적생활이 없이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이 마4:19 “너희는 나를 따라오너라” 원어에는 “나를 좇으라, 내게 매달려 있으라, 내게 붙어있으라” 는 뜻이다.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에 붙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해라. 고백하지 않으면 더러운 귀신들이 붙는다. 딤후2:1~7 그리스도로 선한 싸움을 시작해라. 그리스도로 악의 세력을 진짜 밟아라. 그런 믿음의 그릇을 가지고 있으면 물 가운데로 지난다 할지라도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게 할 것이며,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항상 함께 할 것이며, 물이 너를 침몰치 않게 할 것이며, 불 가운데 지난다 할지라도 불이 너를 사르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했다.
그래서 언제나 묶여있는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 창3장 사건을 통해 온 인류는 하나님을 떠난 문제로 모든 저주의 세력에 덮여버렸다.
문제를 풀어가려면 그리스도를 좇으라고 했다. 살전5:16~18 선을 좇아라, 그리스도를 항상 좇으라. 그리스도에 매달려 있으면 항상 기뻐하게 될 것이다. 기쁨 속에서 예수는 그리스도 하고 있으면 사단의 머리를 밟는 기도가 시작될 것이다. 쉬지 않고 영적싸움을 하는 사람에게는 범사에 감사가 시작된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된다.
창3장 사건은 갈등이라는 원죄적 속성이 우리 몸에 DNA로 와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이 우리 몸을 이미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한다. 끊임없는 불신앙이 인본주의와 논리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장악해서 그리스도를 부르지 못하게 만든다. 원죄의 속성이 우리 몸속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갈등 속에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면 엄청난 배경이 움직인다. 능욕과 핍박, 곤고함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수는 그리스도, 협박하고 때려도 예수는 그리스도를 부르며 갈등의 문제를 먼저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라. 갈등을 극복하는 힘을 갖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 갈등을 극복하는 힘을 갖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
‘죽으면 죽으리라’ 는 마음을 가져봐라. 내가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죽을병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감사합니다” 했더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나이가 먹으니까 죽을 날이 오는구나...’ 생각을 하니 굉장히 기뻤다. 죽으려면 병도 오고 여러 가지가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죽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아프지 않고 병 없이 깔끔하게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나님께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병원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다. 내가 몸이 아프면 하나님 나라가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감사하며 죽을 때까지 살면 되는 것이다. 감사를 많이 하면 온몸에 암 덩어리도 녹는다고 과학이 증명했다. 정신병의 주특기는 감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어떤 능욕과 핍박, 환란의 상황에도 “예수는 그리스도” 고백해라. 그리스도인은 원칙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로 내 영혼을 깨우는 것이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눈을 뜰 지어다! 내 영혼아 너는 어찌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는데 무능과 무의식, 무감각 속에서 헛소리만 하는냐?! 너는 그리스도 이름을 소리 높이 외칠지어다!’ 우리가 세상적, 육신적인 언어를 할 때는 소리를 높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귀의 일을 멸하라고 하는 데는 왜 힘이 없는가? 하나님이 주신 원칙을 가지고 시작해라.
우리 몸속에는 창3장으로 인한 갈등도 있지만 적대감 또한 있다. 끊임없는 적대감으로 인해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기 보다는 핑계를 대고 책임전가하며 자꾸만 상대편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려고 한다. 상대방을 끊임없이 넘어뜨려야 하기 때문에 원망 불평 시기 질투가 끊임없이 파고드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경쟁심 속에 자꾸만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으로 마음과 생각이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 적대감 때문에 오는 실망이나 좌절감으로부터 굉장한 상처가 우리에게 쌓인다. 처음에 만날 때는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해놓고, 그렇게 문자 메세지도 자주 보내고, 상대방이 좋아한다고 하면 선물도 사놓고 하다가 점점 실망감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 때 흑암이 스며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몸 전체가 상처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몸무게가 40kg인 사람에게 1.2톤의 상처가 쌓여 그 힘을 발휘 한다고 생각해봐라. 그 상처로 인생을 살기 때문에 그릇이 깨지고 컴퓨터 키보드가 녹아버리는 것이다. 상처의 눈으로 집안에 TV를 보니까 TV가 녹아버리는 것이다. 집집마다 기계만 갖다 놓으면 자꾸 고장 내고 깨뜨리고 부서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1년도 못 쓰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것이 전부 영적인 것이다. 상처가 쌓여 자신도 모르게 손에서 모든 것이 흘러 나가기 때문이다. 인간 속에 이런 적대감이 영혼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의 일을 멸해라. 이것을 하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불평, 불만을 달고 다니게 된다. 그래서 매사에 부정적이게 되어, 감사를 완벽하게 잃어버린다. 이제부터 숨 쉬면 감사해라. 입맛 떨어졌으면 감사하고 걸을 수 있으면 감사해라. 사업할 수 있는 능력에 감사해라. 감사할 것이 엄청나게 많은데 감사를 못한다. 우리 삶 전부를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맥박이 뛰면 감사해라. 매사에 부정적이고 상처를 가진 상태에서는 맥박 뛰는 것도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너의 마음을 그리스도로 지켜라. 마음을 다스리고 지키는 자는 큰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 말씀하셨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 그 “이름” 이다.
그런데 이 시대가 그리스도 이름을 잃어 버렸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귀한 보물 중 보물, 상급 중 상급, 권세 중 권세는 그리스도 권세밖에 없다.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며,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를 고백하면 음부의 권세가 우리를 사로잡지 못한다. 음부의 권세는 사망 권세 잡은 자가 영원한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이것을 운명, 사주, 팔자라고 한다. 흑암의 권세가 우리를 낚아채면 죽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 그리스도를 주셨다.
본문에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 산헤드린 공회는 베드로가 덜덜 떨었던 곳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십자가 재판을 통해 명령한 곳이 산헤드린 공회다. 한마디로 원흉의 본거지였다. 무시무시한 살인의 광기를 가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정상이라고 착각하며 그들을 따랐다. 지금 이곳이 산헤드린 공회일 수 있다. 악마가 자라고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함께 자라고 있는데, 이것을 못 보면 자신을 점검할 수 없고 우리가 해결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해결하지 않는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두려움에 떨며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갔던 베드로가 이 장소를 다시 왔다. 그런데 과거처럼 떨지 않았다. 자기 개인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지 않으면 사회생활에서, 세상 어디를 가든지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창3장에 묶인 문제가 그리스도로 풀어질 때 산헤드린 공회에서도 리더가 된다. 원흉, 살인자인 그들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가 임한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베드로는 과거의 약점으로 인해 수많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 각 사람에게 함께 하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이 역사하신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너희는 알아라!” 재판장 안에서 당당하게 부활의 증거를 말하는 이 모습을 들여다봐라. 행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베드로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 세상적, 육신적인 삶에서 하나님 앞으로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렸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언제나 마귀의 일을 멸하는, 순복하는 순종이 있었다. 원죄의 속성인 갈등과 적대감, 핑계에서 벗어나는 생활이 있어야 세상을 리더해 갈 수 있다. 언제나 내 운명, 내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믿어라. 창3:15 우리에게 주신 창조주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언약으로 함께 하신다. 말씀의 약속대로 오신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그리스도가 되어주셔서 우리 인생의 모든 저주를 다 해결하셨고, 그 그리스도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살아계신다. 나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로 3 저주를 풀어낼 때 성령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신다. 우리가 그 비밀을 알면 절제와 지혜가 오고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멋있는 사람이 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마음속에 감동이 되어야 한다. 부활의 생명,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한다는 진리 가운데 영적싸움의 생활을 시작하자.
행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하나님께 순복하는 자는 마귀를 대적한다고 약4:7말씀했다. 우리 몸에는 원죄의 속성이 있기에 순종이 안 된다. 그래서 창3:15을 주셨고, 영적싸움의 생활을 가진 자는 순종할 수 있다.
행5:33,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쌔” 영적싸움을 하니까 불신자들에게서 이상한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를 듣고 크게 노하였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되셨다. 그 그리스도는 우리의 엄청난 영적 배경, 하늘 문이 열리는 배경, 닫힌 문을 여시는 하나님이 되신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자랑했더니 공회에 있는 자들이 돌아버린 것이다. 골리앗이 어떻게 돌아버렸는가? “나는 살아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로 간다!” 했더니 그 한마디를 듣고 돌아버려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느냐” 하며 스스로 자신을 개라고 했다. 그래서 개가 가장 무서워하는 돌 하나 집어다가 던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이름 부를 때 천사가 움직이고 빛의 능력이 임한다. 그런데 이런 것을 모르면 돌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흥분할 이유가 없다. 직장 상사에게 왕따를 당한다면 일만 잘하면 된다. 그리스도 이름 불러가면서 일을 잘 하면 된다. 일을 못해서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일을 잘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왕따를 당하고 나를 괴롭힌다면 흑암을 꺾어라. 그리고 직장 상사 이상의 리더십을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그럼 그 상사가 돌아버리고 회사를 나가면 내가 그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사람들은 고민하고 답답해하고 슬퍼한다.
지구상에 모든 불신자들은 예수님을 죽인 원흉이기 때문에 이미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소리만 들어도 돌아버린다. 예수를 죽인 원흉의 피가 몸속에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 피는 자신들이 예수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 하면서 우리가 즐거워하고 있으면, 자신들이 예수를 죽였기에 예수님을 죽인 핏 값이 자기들에게 돌아올 것을 알고 두려움에 잡힌다. 그 피가 호소한다. ‘네가 예수를 죽인 원흉이기 때문에 그 핏 값이 너에게로 온다’ 이렇게 몸속에서 자기 저주가 흥분을 한다. 사람들의 몸에 이것이 움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름을 싫어하는 것이다. 우리 또한 예수를 죽였기 때문에 그 이름 부르기를 싫어하지만 그리스도를 믿고 부르는 자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된다. 그리스도 이름을 불렀더니 채찍질을 하고 3 저주를 풀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내보내도 그냥 보내지 않고 때려서 내보냈다. 유대인들의 매는 39대를 맞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이런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 우리가 이런 매를 맞으면서도 그리스도를 부를 수 있겠는가? 육신적인 문제만 와도 그리스도를 부르지 않고 이상한 것이 나오지 않는가? 핍박을 받고 얻어맞아가면서 그리스도를 정말 부를 수 있겠는가? 자신을 점검해봐라. 어떤 상황에도,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는 그리스도” 불러라. 그 이름은 저주를 푸는 이름, 운명을 바꾸는 이름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다녀도 그리스도를 부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하고 교회를 다닌다. 그 이름은 부끄러운 이름이 아니다. 사람의 몸 전체를 원흉의 저주가 덮고 있어 너무 무감각하게 있다. 그래서 성경공부 50년을 해도 원흉으로 있다. 산헤드린 공회가 이런 원흉이었다. 가말리엘 이라는 사람은 바울의 선생, 율법사들의 선생이었다. 바울이 회심한 후 가말리엘이도 회심해서 기독교인이 되었다. 성경을 연구하면 율법주의자가 되지만, 그리스도 이름을 몸에서 부르면 원흉의 저주가 풀어진다. 육신적 아버지의 이름만 잘 불러도 유산을 받는데,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면 돌아올 재산도 없어진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왜 우리가 인색한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몸에 확신으로 믿으면 매를 맞아도 기뻐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 모든 것을 재창조 할 수 있는 이름, 만물을 복종케 하는 능력이다.
행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맞고 나왔음에도 사도들은 원망하지 않았다. 위협을 알면서도 “예수는 그리스도” 하면서 나왔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르치고 증거하고 전도하기를 힘쓸 만큼 체질화가 되었다. 운명에서 벗어나는 이름 그리스도, 팔자에서 벗어나는 이름 그리스도, 원죄적 원흉에서 벗어나는 길이 그리스도, 구원 받는 길이 그리스도, 그 이름을 언제나 선포한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쉬지 않고 노래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사단이 있고 흑암이 있기 때문에 쉬지 않아야 한다. 우리를 공격해오는 사단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그래서 매를 맞고 핍박을 당하고 환란을 당해도 기뻐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내가 맞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가 맞는 것이기에 나를 때린 사람의 손과 나를 욕한 사람의 입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스도 이름을 얼마나 확신 있게 부르냐에 따라 상대방의 흑암이 꺾인다. 위협과 매 맞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어도, 그리스도 이름만 부르고 있으면 살아계신 성령 하나님이 나를 공격하는 놈들을 무릎 꿇게 하신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중의 복이 있는 자, 천국을 보장받은 자다.
그래서 사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영광이 있는 것을 기뻐했다. 그리스도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리스도를 자꾸 부르면 아빠가 나를 알고 인정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제자는 신세타령 하지 않는다. 신세타령하는 자들은 아직도 운명, 사주, 팔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다. 세상 모든 노래는 신세타령, 상처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고, 이 놈의 팔자가 왜 이렇게 기구한지...’ 이렇게 말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불러라. 우리 영혼 속에 진리의 성령, 보혜사가 영원히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특권으로 여겨야 한다. 그 때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의 어려움과 힘든 여러 가지 일들은 하나님의 기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다 해버리고 한계가 왔다고 드러눕고 병들어 있다. 우리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이기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만 불러라. 사도바울은 다섯 번의 매를 맞고 “나는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고백했다. 그리스도를 부르는 것이 자신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아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불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 성경공부만 많이 했지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롬1:1~17의 고백을 한 것이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되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에, 죄인 된 상태에서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면 한 번 사주면 다른 사람에게 일 년 내내 내가 저 사람 라면 사줬다고 자랑하고, 목사님한테 넥타이라도 하나 사드리면 잊어버리지도 않고 목사님이 내가 사드린 것을 하셨는지 관찰한다. 이런 것은 잊어버리고 그리스도만 많이 불러라.
인생의 가장 위대한 약 중에 약은 그리스도 이름을 많이 부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경지에 도달하면 부를 것이 하나밖에 없다. 그리스도. 그리스도만 부르고 있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해서 응답이 온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매 맞고 능욕을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매 맞고 능욕을 받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 이름 부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 기쁨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초대교회는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것이 체질화 되어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하며, 가르치는 것과 증거 하는 것, 전도하는 것을 쉬지 않았다. 우리 예수사랑교회 모든 가족들이 참으로 멋진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부르는 최고의 전사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흑암의 영적세계가 언제나 움직이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연약함과 한계 속에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내 삶에, 마귀의 일을 멸하는 빛의 권능, 예수 그리스도로 승리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내 온몸에 퍼진 원죄적 속성으로 교만과 허영심, 욕심과 탐심으로 먹는 문제 앞에만 끌려 다니는 체질, 갈등과 적대감 속에 핑계 대며 원망, 불평하며 신세타령하는 모든 삶에서 이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에 매달려 항상 기뻐하며, 사단의 머리를 밟는 영적싸움을 생활하여 범사에 감사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내게 오는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임을 알고 그리스도를 쉬지 않고 불러 그 이름을 높이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