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도 진행되는 복의 근원, 아브라함의 축복
행7:1~10
2019.03.30 1부 말씀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은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힘을 가져야 한다. 예배 때 영적인 힘을 갖지 못하면 미래를 준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에 집중과 몰입을 할 수 없다. 어떤 전문성 하나 없이 빈둥거리고 비아냥거리다가 헛소리만 하고 늙어갈 뿐이다.
* 오늘과 미래 사이에 창3:15의 믿음을 소유하자.
내가 복음을 만난 지 20여년이 되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믿기는 믿었지만 미래를 놓고 준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십 여 년이 지난 이후 충격을 받고 깊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요즘 왜 해외를 자주 가냐고 묻는다. 내 몸에 그리스도로 인해 익어가는 열매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를 믿기는 믿는데 집중과 몰입하지 않은 세월이 너무 후회스러워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서 이 좋은 복음을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무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미래를 놓고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오늘의 무능을 보면서 이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현재의 무능 속에서 나는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다짐한다. 그래서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는데 절대 머뭇거리지 않는다. 십년 후의 것을 보면 정말 뱀의 머리를 밟는 것에 대해 어떤 갈등이나 섭섭함도 없다. 나는 사람들이 뱀의 머리를 밟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이 복음을 만나서 감동은 받았지만 항상 뱀의 머리를 밟는 신앙이 아니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십년 후를 보면 영적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십년이 지난 후에 ‘아, 내가 할 수 있었는데...’ 라고 후회와 탄식만 할 뿐 거의 하지 않는다.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전도현장을 가는 것이다. 내 몸에 와 있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내 몸에서 익어 가는지 그 열매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어떻게 익어가고 있는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누구를 만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에게 땅 한 평을 주시지 않으셨다.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시고 25년 후에 나타나셨다. 하나님이 당장에 응답을 주신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 모든 기능이 끊어지고 함께 잠자리를 하지 않은 결과는 긴 후회로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힘으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응답하신다. 그래서 오늘의 무능 속에서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지 말고 믿음 없는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십년 후의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면 오늘부터 인생의 역사가 그리스도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현재와 미래의 사이가 있다. 오늘의 현재와 미래 속에 창3:15의 믿음이 있을 때, 사람이 멋있어지고 달라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약속을 주셨음에도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막연한 믿음만 있을 뿐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우리를 장악하고 있거나 미래 자체에 대한 생각조차도 없다. 내 눈앞에 보이는 돈이 없으면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 한다. 지금 당장 내 몸에서 약속하신 아들을 주셔야 행복하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으면 완벽하게 무너진다. 우리 영혼에 창3장에 길들여진 사탄의 배경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뜨릴 때 응답은 시작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 정말 믿어지는가? 창3:15 그리스도 하나님은 뱀 대가리를 밟으라는 전쟁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 무능이 인간 근본의 문제로 찾아왔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놓고 불신앙으로 우리 영혼을 사로잡아 가는 사탄의 머리를 그리스도로 박살내라. 우리 삶에서 불신앙하지 못하도록, 현재와 미래 사이에 창3:15을 소유하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밟아 버려라. 그래서 마12:28~32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 있는 불신앙과 사탄의 소리를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어 쫓는 것이다. 오늘 속에 미래를 놓고 진행하지 못하게 하는 자, 육신적 감정에 따라 세상 풍습을 좇게 만드는 강한 자, 사탄을 결박해라. 그러면 보혜사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가 영원히 함께 하신다. 이것을 하지 않는 자가 성령을 훼방하는 자, 성령을 모욕하는 자,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성경은 기록했다.
언제나 영적싸움 속에 집중하고 몰입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행1:8이 성취된다. 성령의 권능이 내 몸속에 임하는 그 내용과 방법이 무엇인가?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우리 몸에 성령,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면 영적싸움은 기본이며, 상식, 절대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머리를 쥐어뜯을 일들이 오면서 육신적으로 싸울 일이 터진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영적싸움밖에 없다. 영적싸움을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다. 말씀은 분명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기에 그 말씀을 따라갔는데 하나님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주지 않으신 이유는 응답을 받았다고 하면서 또 거기에 머물러 불신앙하고 싸움질하고 우상을 만들 것을 하나님은 아셨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가? 하나님은 “엘샤다이(El Shaddai)-전능한 하나님’ 이라고 하셨다. “나는 네 앞에 완전하다”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불신앙이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우리에게 매일 솟아나는 것이 불신앙이다.
나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문제 속에 빠져 사탄의 병에 들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탄의 병을 고치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기에 그리스도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갖게 되면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것이다. 몸에 그리스도 없이 사는 자는 사탄에게 잡혀 사는 것이다. 사탄에 잡힌 자는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 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저주가 우리를 덮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없이 살면 두려움 속에 오직 돈에 집착한다. 자기 몸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갖 짓을 다 하고 사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돈을 사랑하는 자다. 왜 돈을 사랑하는가? 죽음의 공포 때문이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일평생 사탄에게 매여 종노릇 한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빌3:18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우리 몸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 그리스도로 영혼을 살리지 못하면 어느 날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나는 장애인 공동체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봤다. 죽음 직전에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가 찾아온다. 그러면 돈, 부인, 자식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죽음에 공포는 눈알이 터져 나오고, 온 몸이 굳어 버릴만큼 엄청난 두려움으로 찾아온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지옥까지 가셔서 지옥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풍습 속에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살려내는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시민권 뿐 아니라 만물을 복종케 하는 하나님의 권세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셨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갖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삶의 여정 속에 끊임없이 방황하고 고생하고 저주와 재앙 속에 있게 된다. 세상 것에만 자꾸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화 되면 자신도 모르게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에게 사로잡히게 된다. 인간의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 뱀의 머리를 밟는 자만이 되어진다. 그래서 호4:6,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모르면 제사장의 축복을 상실해 버리고 그 사람과 자녀들까지도 다 망하면서 목사라 할지라도 버림을 받는다고 했다.
내가 사람들을 만나면 예배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를 들여다본다. 강단에 흐르는 예배의 말씀이 우리 몸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은 예배에서 이탈된 사람이다. 이것을 변태적 신앙이라고 지난 주일에 말씀했다.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여 가면을 쓰고 있을 뿐 삶이 안 되는 것이다.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포럼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서로가 사는 방법이다. 예배 때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온데간데없고 계속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입을 멈추게 하고 강단 말씀을 말해줘야 한다. 그런데 세상적인 방법으로 위로하려다가 서로 이탈자가 된다. 사람들은 마귀적인 것으로 길들여졌기 때문에 늘 책임전가, 핑계뿐이다. 주일예배에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 보다는 자꾸 변명만 늘어놓는다. 이것이 변태적 신앙이다.
창12:1~3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읽을 때, 이 말씀을 나에게 주신 것으로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허망해지고 허무해지고 사탄이 틈타고 들어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감각이 없으면 응답도 없다. TV에서 죽음에 대한 다큐를 잠시 보았다. 어느 장소에서 죽든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있었다. 그런 다큐를 보면서 이런 공포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에 행복하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탄식이 나왔다. 우리 교역자들과 중직자들이 그런 호스피스 병동에 가서 영접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리스도가 무슨 말인지도 모를 때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인가는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찾기 위해 방황했던 나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주셨을 때 그리스도가 절대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감각을 갖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감각을 두었을 때 저절로 응답이 오는 것을 맛보게 되었다.
*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배경과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신다는 것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연결되어져 있다. 내 몸에 그리스도가 들어와 계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연결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가 나를 보내심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8:31,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는 나의 참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었는지 스데반이 본문에 명확히 설명했다. 무조건 믿으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믿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믿으면 선지자 노릇을 하며 악랄한 율법주의가 되고 변태적 신앙을 가진 원흉의 본부가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무조건 믿어버린 것이 문제다. 하지만 무조건 믿는 것보다 어떻게 믿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에 대한 결과가 성경은 분명히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한 결과로 이스마엘을 낳게 되었고 그를 통해 모슬렘이 일어나게 되었다. 복음과 종교, 복음과 율법은 분명 다른 것이다. 복음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냐고 했을 때 예레미야, 엘리야 선지자 중 하나라고 했다. 말씀, 복음 속에 들어있는 내용과 방법이 중요하다. 우리는 복음에 들어있는 말씀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들어있는 말씀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생명, 능력이며, 씨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들어있는 말씀을 믿지 않으면 생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게 만드는 일을 하셨다.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일을 예배를 통해 지금도 하고 계시며 세계복음화라는 중요한 시스템을 계속 깨닫게 하신다. “목사님, 저처럼 가난하고 무능한 사람이 어떻게 세계복음화를 할 수 있다고 하세요?”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능하지 않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10년 후, 세계복음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다 만들어 놓으셨기에 그것이 보이면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먼저 알아야 되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무엇을 보게 하시는가에 대한 시스템만 보면 오늘부터 영적싸움을 할 수 있다. 그 시스템이 무엇인가? 나를 원하셔서 부르신 하나님이 무엇을 보게 하시는가?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뱀의 머리를 밟는 비밀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시스템을 보여주셨다. 성령 충만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약속하셨다. 이것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의 문제 때문에 속아서는 안 된다. 우리 뒤에는 엄청난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오늘의 문제 속에 갇혀 허우적대고 개소리 하고 이간하며 상대방을 씹기 때문에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이다. 오늘의 문제 때문에 절대 속지 마라. ‘평생’ 이라는 시간표를 놓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가라. 평생의 시간표를 놓고 인생을 살면 이런 저런 일들을 다 겪어야 한다. 마귀가 있기 때문에 ‘아, 내가 이렇게 사탄에게도 걸려들어 봤구나, 저렇게도 걸려들어 봤고, 이렇게도 넘어져 봤구나... 오늘은 이렇게 넘어졌네’ 그러면서 하나님의 시스템을 빨리 봐야 한다. 그래서 오늘이라는 핍박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고 어떤 실패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보지 못하면 우리에게 복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오늘의 현실 속에서 여러 가지로 넘어지면서 ‘그리스도를 내 몸에 지니고 살지 않으면 넘어지고 자빠지고 깨지고 싸우고 쟁쟁거리고 조카하고 싸우는 인생이 되는구나...’ 이것을 깨달았다. ‘내가 왜 이렇게 싸우는 인생이 되고 왜 그렇게 쟁쟁거리고 쫀쫀하고 마누라까지 팔아먹는 인생이 되었는가? 왜 사람만 보면 두려움이 오고 피하고 싶고 숨고 싶은 인생이 되었을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나오긴 했는데, 자식을 주신다고 약속하시고도 10년이 넘게 응답이 없고, 늙기 전에 하갈이라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여러 생각들이 아브라함에게 들었을 것이다. 우리의 온 몸에는 이렇게 인본주의와 불신앙이 꽉 차있다. 창3장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나 밖에 모르는 시스템이 바로 불신앙이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불신앙이다. 그래서 언제나 복음을 가지고 핑계만 댈 뿐 나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사람하고 싸우는 것은 복음을 가지고 핑계대는 사람이다. 나 밖에 모르고 살게 만드는 사탄의 머리를 깨부숴야 하는데 자꾸 사람과 싸우려고만 한다.
내 주인이 바뀌면 사탄이 주인이 된다. 창3:15이 사라져버리면 사탄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살인자, 욕심쟁이” 라고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거짓말한 불신앙이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 하게 만든 무서운 결과로 나타난다. 또 그 불신앙의 씨가 이스마엘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기독교를 괴롭히는 모슬렘이 나오게 되었다. 우리 몸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 뱀의 머리를 밟는 영적싸움으로 가지 않으면 복음을 가지고 핑계만 대는 사람일 뿐이다. 변명하는 나, 핑계 대는 나, 책임전가 하는 나. 위로 받고 싶어 하는 나. 이런 신앙이 변태적 신앙이다. 요일4:18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른다고 했기에, 우리 몸을 사망권세 잡은 자가 끌고 가면 돈에 대한 집착과 애증이 엄청나다. 두려움의 공포가 우리를 사로잡아 버린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항상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비밀은 알지 못한 채 두려움에 시달리기 때문에 우는 사자가 나를 확 물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로 늘 틈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 밖에 모르는 삶으로 끌고 가는 마귀가 주인이 되면 사울 왕처럼 된다. 자기가 오랫동안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주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겸손함이 없이 인생을 살면 괴물이 된다. 목사가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두려움과 겸손함의 마음으로 살지 않으면 강단에서 괴물이 되어버린다. 이제부터 사탄이 주인이 되었던 삶을 바꾸자. 다윗이 잘 되면 자신이 피곤해질 것 같다는 사울 왕과 같은 생각은 이상한 것이다. 내 주변에 사람이 무엇을 한 것이 무슨 상관인가? 주변 사람이 장사가 좀 잘 된다고 하면 기쁜 일 아닌가? 교회에 와 있는 성도들을 무너지게 한다면 정말 나쁜 짓이다. 전도 한명도 못하면서, 인간관계 하나도 아름답게 이뤄가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 영혼 하나도 소생시키지 못하고 하나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살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죽이는 것은 큰 죄다.
본문은 사탄에 장악된 동기로 충만한 이스라엘을 말씀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과 현실을 착각하고 살기 때문에 악령의 역사를 이길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많은 사람을 살리게 할 것이며 열방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을 주셨다면 응답 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하는데, 원흉의 본거지로 살면서 같은 민족끼리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지 않은가? 아브라함이 너희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면서 아브라함과 같은 그릇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런데 왜 악령의 역사를 따라 발악을 하냐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25년 후에 아들을 얻은 것처럼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좀 가만히 지켜보고 기다려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땅을 준다고 하셨지만 오랜 시간 나그네로 살았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왔음에도 이스라엘은 로마에 빼앗기지 않았냐? 시비를 걸고 싸우려고만 하지 말고 응답받을 그릇을 만들어라. 이것이 스데반의 순교 메세지다. 예전에 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늘 가난해서 헌금할 돈이 없다는 생각만 했다. ‘하나님의 약속은 헌금을 하라는 건데, 나는 지금 없지 않은가? 하나님이 주시면 하겠지만,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늘 이런 그릇이었다. 하나님은 없는 자는 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분명히 “가라” “주리라” 하셨다. 이 시스템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깊이 생각하는 날이 되기를 축복한다. 미래적인 것을 현재의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절대가 있어야 한다.
* 아브라함과 같이 창3:15의 믿음을 응답으로 소유할 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나에게 성취된다.
스데반의 유언 설교가 바울에게 까지 이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이 아브라함의 방법과 그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롬5:6,8,10을 고백한 것이고, 롬4:9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실 뿐 아니라 친구로 여기셨다. 갈3:6을 보면 스데반의 유언 설교를 바울이 들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데반이 죽기 전에 바울은 그 메세지를 들었고 훗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아브라함에 대한 내용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죽인 원수들 앞에서 담대하게 설교를 한다. 자신의 신앙고백을 했다. 성경에 대한 뚜렷한 이해 속에 구약을 정확히 풀어갔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천사와 같은 얼굴을 할 만큼 성령충만 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열정과 몰입이 대단했다. 마귀의 일을 멸하신 그리스도, 저주와 재앙을, 죽음도 없애버리신 그리스도, 내 인생의 길과 진리 되신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절대적인 부활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공회, 제사장 뜰에서 분노나 증오심 하나 없이 순수하고 밝은 얼굴로 그리스도 하나만 설명했다.
스데반은 이 현장에서 구약에 아브라함의 신앙이 바로 메시아, 그리스도 신앙이었다는 것을 설교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창3:15의 말씀을 영혼에 담고 뱀의 머리를 밟으면서 진행했다는 것을 밝힌다. 아브라함의 응답이 곧 창3:15의 믿음이었다. 기독교적 모델을 아브라함을 통해 제시해 놓았다. 나 밖에 모르는 사탄의 시스템에서 그리스도로 빠져나와 하나님의 명령 속에 들어가는 순종적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그 약속에는 뱀의 머리를 밟으라는 명령이 들어있다. 그에 따르는 믿음, 순종, 그 믿음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봐라. 하나님은 현찰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약속어음을 주신다. 우리에게 현찰을 주시면 예배도 안 나오고 세계복음화 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 돈을 더 뻥튀기 하려는 생각만 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돈이 있으면 뻥튀기를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자.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은 외상이 없다. 현찰을 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투자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사기꾼에게 털리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도 약속어음을 주셨다.
나를 그리스도로 바꾸면 응답이 빨리 온다. 나는 오늘의 무능 속에 십년 후의 것을 보면서 나를 계속 개혁시켰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수밖에 없는 그릇을 만들고, 생각의 폭, 삶의 폭을 넓히는 작업을 했다.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 대해 절대 원망, 불평 하지 않고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반드시 그들을 일으키는 자가 되겠다고 결단했다. 그래서 내게 온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죄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을 조금씩 실천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자식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현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약속을 믿었지만 자신이 무엇에 걸려들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기근이 들어도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 오늘의 핍박, 여러 가지 문제 속에서도 예배 때 들은 말씀만 부여잡고 버티고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자신이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을 지켰다고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불신앙을 쓰며 돌아다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불신앙과 싸우자. 불신앙과 싸우는 자는 복의 근원이 된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에 붙어서 약속만 믿고 가는 자가 되라. 고향, 친척을 떠나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고 우리는 세계복음화를 꿈꾸고 있기에, 이제 이 세상 보다 더 나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놓고 그리스도로 걸아가자. 아브라함의 세계관을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바꾸는 그 날부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하나님의 약속이 현재와 미래 사이에 반드시 불신앙과 싸우는 창3:15의 믿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 주간 복의 근원이 되어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 자신의 것이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죽기를 두려워하여 마귀의 심부름으로 지나가는 세월에 후회만 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예수사랑교회를 만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불신앙과 싸우며 메시아, 그리스도를 따라갔듯이, 영적싸움에 집중하고 몰입하여 육신의 감정에 따라 무능 속에 세상 풍습을 좇는 불신앙을 내어 쫓고 오늘의 문제 앞에 예배 때 들은 말씀에서 이탈되지 않고 사탄의 공격을 밟아 하나님의 말씀에 감각을 갖는 자 되게 하옵소서. 미래적인 것을 현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절대를 회복하여, 오늘의 현실 속에 오직 그리스도로 세계복음화를 꿈꾸며 하나님의 약속, 창세기 3장 15절의 믿음이 응답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