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전도개척자
마 28:18~20
2019.06.09. 예수사랑교회 주일 2부
우리는 가장 어려울 때 예수사랑교회를 만났다. 만약 방황하지 않고 인생의 질문이 없었다면 우리 교회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가장 어려울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그래서 뱀의 머리를 밟으면 반드시 승리 하고, 불신앙을 버리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면 하나님이 영육의 축복을 주신다.
우리를 묶고 있는 3 저주, 즉 마귀의 권세, 지옥 권세, 흑암의 권세를 결박할 때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3 저주를 결박하면 자신 안에 있는 들보를 본다고 했다. 그 들보를 보면 비로소 영적싸움을 시작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은 마귀의 일을 멸할 뿐 아니라, 저주, 재앙, 흑암, 질병도 떠나가게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 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누려야 한다. 과거의 나는 끝나고 현재와 미래만 있을 뿐이다. 나의 과거는 복음 앞에 설 때 모든 게 감사로 변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버릴 게 없다. 그런 사람만이 전도의 개척자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못 가는 길,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면 전도 개척자가 된다.
*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대열에 서면 당연히 축복은 온다
→ 창3:15에 집중한다면 하나님은 언약의 축복을 주시고 언약의 한을 가질 때 일어나 걷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대열에 서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따라가는 대열에 서 있다. 그 대열에만 잘 서면 당연히 축복은 온다. 방주에는 노가 없다. 그냥 나무로 만든 상자다. 하나님은 그 속에 노아의 가족들과 동물들을 넣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길 바란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의 오른손을 붙들 것이다.’
창3:15에 집중한다면 하나님은 언약의 축복을 주신다. 그 언약의 한을 가진 사람만이 일어나 걷는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벧전2:9,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선전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그런 전도자의 대열에 있는 줄 확신한다.
‘왜 지금까지 교회를 다녔음에도 인생이 안 되었는가?’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그 이유는 복음이 없는 종교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종교지도자는 거짓과 위선과 세상 것을 따라간다. 그 사람 속에 욕심쟁이가 있기에 육체의 정욕대로 산다. 얼핏 보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이 무너진다. 복음이 없기에 분열되고 이간되고 주위의 생명들은 죽어간다. 그런 현장이 바로 사도행전 3장이다. 그런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베드로가 고백했다.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행3:6 예루살렘 교회 앞에서 앉은뱅이는 구걸을 했다. 사람들은 교회에 구걸하러 온다. 그리스도가 아닌 먹을 것을 구걸한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그런 사람을 주목하여 바라보았다. 복음을 가진 전도자가 우리를 보게 된다. 육신의 것을 얻으러 왔는데 복음을 듣다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려고 교회를 왔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문제는 근본문제임을 알게 된다.
우리가 영적인 앉은뱅이로서 구걸하러 왔다. 행3장의 영적인 앉은뱅이, 육신의 앉은뱅이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찬미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자랑했다. 전도의 대열에 선 것이다. 앉은뱅이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이 핍박을 받았다.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가 무식한 놈이 어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느냐며 핍박했다. 그 때 베드로가 말했다.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면 계속 기쁘게 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면 겨자씨를 심으면 된다. 자신 안에 누룩을 심는다. 즉 작은 일에 충성하고, 비교하지 않고, 누구를 탐하지 않는다. 핑계대지 않는다. 깨끗한 전도제자의 길을 간다.
‘주목하여 바라보거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기에 현장을 주목하여 바라볼 때 앉은뱅이가 보인다. 그래야 나와 세상의 흐름이 바뀐다. 생명의 현장이 보일 때 운명이 바뀐 것이다. 아직까지 자신의 문제에 묶여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아직 시간표가 안 된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길수록 갱신이 빠르다. 왜냐면 과거의 삶이 너무 너무 지긋지긋하게 느껴져 칼로 도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도 좋고 지금도 좋다면 결단하기 힘들다.
→ 구약과 신약은 그리스도로 관통한다
성경은 BC와 AD 로 나눠져 있다. 그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시점이다. BC(Before Christ)는 예수가 오시기 전을 의미하고 AD(Anno Domini)는 라틴어로 예수님이 오신 이후를 말한다. 각각 기원전, 기원후를 의미한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계속 대망하는 내용이다. 가죽옷은 피를 상징한다. 그것이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는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들었다. 그 놋뱀이 바로 그리스도다. 노아가 방주를 지었는데 그 방주가 그리스도시다. 이렇게 하나님은 구약에서 여러 선지자의 입을 빌어 계속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하셨다.
창3:15,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이야기한 게 구약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셔서 택하시고 제시하시고 약속하시고 이루어 나가신 게 구약이다.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단순한 예수님이 아니라 만세전부터 이미 예언되었다가 말씀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 오늘 처음 교회에 오신 분이 있으면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자.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부터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습니다. 오늘 부터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고 고백합니다. 아멘’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100% 믿지 않는 상태에서 고백해도 괜찮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을 받은 것이다.
구약과 신약은 그리스도로 관통한다. 오실 메시아, 오신 그리스도가 구원받은 우리와 지금 함께 하신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다 이루셨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굉장히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그 분이 대속물로 오신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기 위함이다. 과거, 현재, 미래, 1초 전의 죄를 그리스도께 드리자. 아무도 모르는 나만이 알고 있는 20-30년 전 문제, 남편과 아내를 만나기 전의 문제.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끝났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고 죽으셨다. 죽으시면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이다. 십자가가 땅에 박히면서 뱀의 머리가 밟힌 것이다. 땅의 권세를 움직이는 뱀, 즉 마귀의 대가리를 밟은 것이다.
부활은 죽어야 할 수 있다. 죽고자 하면 살겠고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 담임 목사님께서도 ‘우리가 너무 살려고 하니까 문제다. 죽고자 하면 아무 생각이 없는데’라고 말씀하셨다. 유언만 잘 하면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다. 전도의 개척자가 되라. 내가 교회를 물려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옥에 내려 가셔서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영혼에, 육체에, 미래에 사망권세가 왔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는 순간 부활의 능력이 임한다. 걸음을 걸을 때도 사망권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세로 걷길 바란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아멘!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모든 문제 끝 모든 문제 끝! 마귀새끼야 가라 마귀새끼야 가라 마귀새끼야 가라 아멘! 이것을 할 때 내 몸에서 3저주가 떠나간다.
* 창세기 3장사건 이후로 인간에게는 전적 부패, 전적 타락, 전적 무능이 찾아왔다
→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할 인간이 사탄에 의해서 하나님과 분리된 사건이 창세기 3장 사건이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을 마귀에게 빼앗기고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탄에게 종노릇 하는 게 창세기 3장이다. 사탄의 종노릇은 율법의 종노릇 하는 것이다. 우리가 율법의 종노릇 하고 있다. 그래서 인생이 불신자 상태로 살아간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우상을 섬기고 점을 보고 굿을 한다. 말씀은 그렇게 안 들리는데 점쟁이 말은 45년 동안 기억한다.
제가 6살 때 절에 갔는데 큰 중이 나에게 이런 얘길 했다. ‘이 아이는 발가벗겨 내쫓아도 나중에 자가용 끌고 올 놈이다.’ 그 말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은 보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에는 난치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 일종의 정신병인 것이다. 희귀병이라고 하는데, 이름 모를 병을 나는 개인적으로 신병이라고 한다. 귀신이 들려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에 시달린다. ‘이랬을까 저랬을까’ ‘분명히 이런 말을 했을 거야.’ ‘저 사람은 못 믿겠어.’ 그러고 나서 거울 보면 10년은 늙어 보인다. 거울보고 선포안하면 사람이 늙는다. 결국 인간은 죽어서 지옥 간다.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교회도 섬기고 절도 섬기고 천주교도 섬기고 원불교도 섬기면서 다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남대문에 있는 어느 횟집은 목사, 중, 신부는 무조건 공짜라고 한다. “목사님이나 스님이나 신부님이나 다 똑같아, 똑같아 영적인 일은 아무나 못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주인은 광어회도 척 내놓는다. 그런데 한쪽에는 제사상처럼 상을 차려 놓고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가나 저렇게 가나 산꼭대기에 가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히말라야 등반에도 길이 있다. 잘못된 길을 가면 인생이 소리 없이 사라진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요14:6
→ 그리스도를 만나면 율법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진짜 이해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음이라”롬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찬성한 바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 후 그는 눈을 뜨고 시내산이 있는 아라비아로 간다. 거기서 자신이 가지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율법, 인생의 최고라고 여긴 율법이 똥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기준과 율법 사상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와 부활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바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율법의 진리가 배설물이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율법은 몽학선생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아이를 학교인 회당에 보내기 전에 집에서 아이를 가르친 가정교사의 역할을 한 게 율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사 잘해라 헌금 잘해라 기도 잘 해라’ 등등을 가르치는 가정교사, 그것이 율법이다. 그래서 율법이 필요한 범위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까지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몽학선생은 필요 없게 된다.
바울은 자기의 율법을 다 버렸다. 딤전1:15, 내가 죄인중의 괴수였다고 고백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우리는 바울처럼 자신의 모든 율법 사상과 자신의 기준과 자신의 경험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나와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가 될 수 있다. 그것을 안 바꾸고 있으면 하나님이 손대신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때리는 분이 아니라 평안과 소망을 주시는 분이다.
→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영적인 눈을 뜨고 봐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문제 앞에서 핑계를 댄다. “누가 먹었느냐?” “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가 먹게 했습니다.” 자신은 아무 문제없고 상대방의 유도심문에 걸렸기에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게 남자의 창세기 3장 체질이다. 그럼 여자에게 “너는 왜 그랬냐?” “뱀이 나를 속여 먹었나이다.” 뱀 속에 있는 사탄을 못 보기에 뱀으로 보인 것이다.
문제는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표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어떻게 이방 땅 사마리아까지 흩어졌는가? 바로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서 오는 핍박과 환란과 박해를 피해 도망간 것이다. 사람은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기에 실은 살려고 도망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도망간 그 땅을 선교지로 역사하신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따라서 우리가 있는 곳이 선교지다. 진짜 현장은 나의 현장이다. 진짜 현장은 우리 가정이다. 진짜 다락방해줄 사람은 자녀이다. 진짜 볼 곳은 살고 있는 지역이다. 진짜 힘줘야 할 사람은 남편, 아내다. 그 현장에서 맛을 봐야 한다. 그런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전도하는가? 본인이 잘 안다. 성령님은 속지 않는다. 그리고 마귀도 속지 않는다. 전도하러 가는 걸음이 빈 가슴이다. 그래서 영적 싸움을 하는 것이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육신적인 것을 구해선 안 된다. 남편의 역할, 아내의 역할을 요구해선 안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만 하게 해야 한다. 안하면 먼지 털고 나가면 된다. 그런데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하면 힘주길 바란다. 그리고 전도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쓰신다. 약점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는 우리였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도 버릴 게 없다. 약점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지 못했던 내가 약점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는 전도개척자가 되었다. 나의 약점이 메시지가 된다. 나의 약점이 생명을 살리는 무기가 된다. 이제는 나의 약점을 자랑하고 싶어졌다. “내가 이랬지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세우셨습니다.”
문제와 환란을 만나면 어떻게 하는가?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이 볼 때는 재앙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들을 것이요/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1-13
*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누리며 나와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전도개척자로 살도록 영적싸움으로 더욱 강해지자
문제, 환란 앞에서 겁먹지 마라.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사망권세, 지옥권세, 마귀의 권세는 떠나갔다. 가문의 질병, 저주, 흑암 권세는 떠나갔다. “나를 갈등하게 하고 나를 의심하게 만드는 저주 영아 너는 내게서 떠나갈지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속국과 포로로 인생을 거짓으로 살게 만드는 저주 영아, 너는 내게서 떠나갈지어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자꾸만 돈 앞에 타협하게 만드는 저주 영아, 너는 내게서 떠나갈지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도개척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자신이 볼 때 이것은 재앙인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고 소망이라고 하신다. 말씀 잡길 바란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는 해를 받지 않는다. 우리의 영적상태와 관계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셨다. 만약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잘 보이려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있으면 마음이 어떤가? ‘아, 이 얘가 돈을 요구하고 있구나.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야’ 하나님 자녀가 되었는데 소망, 안식, 누림, 화합이 없으면 하나님이 다른 생각이 있다고 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창3:15로 다 끝내셨기 때문이다.
혹시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가?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 3:1
언약을 가진, 영적싸움을 하는 제자들은 문제, 환란, 핍박을 통해 점점 강해져 간다. 거울보고 영적싸움을 하자. 그리고 건드리는 사람은 축복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나와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전도개척자가 된 줄 믿는다.
갈4:5,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했다고 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셨다. 따라서 우리 안에 있는 율법의 씨를 꺾어 버리자. 하나님께서 아들의 명분을 우리에게 주셨다.
오늘부터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누리길 바란다. 신분은 구원의 확신, 권세는 귀신, 흑암, 마귀 권세를 결박하는 능력이다. 그것을 사용한다면 현장이 보인다. 문제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다. ‘저 인간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죄인 중의 괴수였구나!’ 아직 멀었지만 오늘 부터 하면 될 줄 확신한다.
우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을 수 있는 전도개척자가 되었다. 아프리카 잠비아와 콩고에 전도개척자들이 갔다. 따라서 그 현장에 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성전에 남은 우리는 기도로 스커트 미사일을 아프리카에 날려야 한다. 그런 중요한 미션이 우리에게 있다.
*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인생의 많은 방황과 질문 속에 예수사랑교회를 만나게 하시고, 뱀의 머리를 밟으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절대 언약 속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를 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누리며,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길, 할 수 없는 전도대열 속에 나와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전도개척자로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집중하면 하나님은 언약의 한을 주시고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하셨기에 내 삶의 문제에만 묶인 운명의 체질을 벗고, 내게 있는 약점과 문제를 참 평안으로 바꾸는 영적싸움 속에, 이제는 그리스도로 현장을 주목하여 영적인 앉은뱅이를 바라보는 눈이 열리게 하시고, 내 안에 겨자씨와 같은 믿음을 심어 작은 일에 충성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깨끗한 전도자의 길을 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