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유일성으로
가슴이 통하는 동역자의 축복
행9:23~31
2019.07.21 1부 말씀
* 우리의 생명과 빛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매인 사망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는데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참 괜찮은 제자가 한 번의 만남을 통해서 믿음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창3:15을 강조해도 뱀으로만 살던 체질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은 사건을 통해 숨어버리는 인생이 되어 예수사랑교회는 죽어도 못 가겠다고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는데 왜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가? 그것이 바로 옛 사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 뱀, 곧 마귀라고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이간하고 교회와 나 사이를 이간한다.
그래서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다면 마귀의 자식인 나에게 영적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 자신의 몸에서 영적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마귀의 자식으로 인생을 살게 된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는데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아주 강한 자기의 기준, 틀, 올무에 묶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 예수 하고 예수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하고 있지만 내면은 바뀌어 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정적 순간에 자기 인생에 큰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찾아오면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과 약점 때문에 숨어버린다. 이것을 의에 원수라고 한다. 그리스도 하나로 자신을 치유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원수가 된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셨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음에도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라 다닌다고 말씀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 예수해도 의에 원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인생에 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그냥 무너져버린다.
우리가 가야 하는 바른 길은 하나님의 나라를 침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소유가 되었다!’ 이렇게 침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긴다고 하셨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조건도 없이, 오직 믿음으로 침노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자에게 빼앗기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세계 요한 보다 더 큰 자가 된다. 우리 몸을 묶어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고 하는 불신앙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뜨려라.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는데,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면 자꾸 자기 유익만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된다. 그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살인자” 라고 하나님 입에서 저주 받는 언어를 받게 된다.
영적싸움은 살아있는 것이기에, 기도는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다. 엡6:18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자는 살아있는 자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싸우게 된다면 귀신들린 자들이 우리 곁에 들러붙게 된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듣다가 더 비참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약은 창3:15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는 자는 살아있는 자다. 기도하는 자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실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신다. 그래서 문제는 축복이 되는 것이고, 갈등은 기회가 되며, 위기는 하나님의 기적을 낳는 것이다.
예수사랑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교회 생활은 어느 교회나 시험과 갈등, 분쟁과 분노가 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뿐 아니라 교회 안에 들어와서 인간관계를 성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험과 문제 갈등, 답답함도 주신다. 그것이 거듭남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침노하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이 들어있다. 그래서 교회 생활 하는 우리는 어떤 문제가 와도 시험 들지 말고, 낙심하거나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어떤 누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절대 슬퍼하거나 외로워해서는 안 된다. 그 시간에 그리스도 부르다가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리길 축복한다. 절대 교회 안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우리 자신을 도와주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하며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 그래서 창3:15을 믿으면 세상 종교는 완전 무릎을 꿇게 된다.
본문에, 초대교회 사람들이 바울을 간첩이라고 불렀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배신자라고 했다. 그리스도 하나를 잡았는데 왜 간첩이 되고 배신자가 되어야 하는가? 평생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담대히 말하니까 바울을 배신자라고 하면서 죽이려고 하고,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일신, 전심, 지속으로 불렀다고 하면서 오히려 간첩이 아니냐 하며 반문을 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는 그리스도” 를 더욱 담대히 증거 했다고 했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그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 했을 때 나타나는 증거는 뚜렷했다. 행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지금 우리 예수사랑교회 이 말씀 그대로 가고 있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은 왜 바울을 죽이려고 했는가?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갇혀버린다는 것이 참 이상하고 신기할 일이다. 사람들의 몸에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아주 강한 살인의 영이 몸속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것이 창3장이다. 사람들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살인자, 욕심쟁이” 이렇게 자신이 죽어버리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내가 죽여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내면이다 인간은 요8:44에 대한 격한 감정을 가지고 살고 있다. “너는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너는 눈이 밝아질 것이다. 너는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사단이 우리를 완전 함정에 집어넣고 살인자로 길들여놓는 것이 가문의 흐름이다.
유대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율법에서 이탈했다는 것, 바리새 사상에서 이탈 했다는 이유였다. 곧 유대종교를 배신했다고 해서 배신자라고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면 왜 배신자가 되고 이탈자가 되는가? 그들이 이상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배신자, 이탈자다. 그래서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것에 치욕감을 느꼈다. 종교는 우리 몸속에 이렇게 강한 자로 길들여져 있다. 옛 사람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 어려운 것 같지만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지고 뱀의 머리를 박살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말씀한다. 그리스도를 가지고 사람의 옛틀, 창3장의 틀을 깨뜨리지 않으면 살인자로 몸에 남아있게 된다. 우리가 사망에 매여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지금도 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네 속에 더러운 살인자, 강한 자를 결박하면 이 세상과 사람의 문제, 사람의 관계를 성공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하는 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기도가 된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자는 마귀를 대적한다.
세상을 배신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세상의 시스템을 이탈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갈 수도 없다. 우리가 세상을 배신하고 여기에 지금 앉아 있게 되었다. 세상을 이탈하지 않고는 운명 사주 팔자, 이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운명을 바꾸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라. ‘나는 오늘부터 세상을 배신하고 세상을 이탈할 것이다!’ 하고 우리 인생을 개혁해야 한다. “목사님 그러면 고시준비나 시험도 다 포기하라는 말입니까?” 하겠지만, 그리스도가 각인되면 저절로 된다. 그래야 우리가 마귀의 자식이 되지 않고 의에 원수로 살지 않고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이탈하고 배신해야 삶의 운명이 바뀐다. 우리는 무엇을 입을까, 마실까 걱정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미래는 슬프거나 답답할 일이 없다. 잠드는 순간 예수님의 손 붙잡고 영원한 하나님 낙원에 가는 존재다. 그래서 반드시 이 세상을 배신하고 세상을 이탈해야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다. 세상을 배신하고 이탈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을 수 있고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된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 몸에서 재창조의 능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맛을 봐야 한다. 그리스도의 맛을 보면 지긋지긋한 운명의 저주가 몸서리쳐지고 다시는 과거로 가지 않게 될 것이다.
내가 처음에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할 때 너는 의리를 저버렸다, 배신자, 이상한 사람이다... 별 소리를 다 들었다. 그리고 내 몸에서조차도 ‘너, 정말 미쳐가는구나’ 라고 스스로 말했다. 나는 이런 말이 내 생각인 줄만 알았지 이것이 마귀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너, 지금까지도 잘 지내오고 잘 마시고,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하면서 살았는데 왜 굳이 세상을 등지하려 하냐? 예수 믿는 사람들 봐라 다 주여, 주여 하는데 다 똑같이 살지 않냐? 왜 너만 그렇게 특별하게 살려고 하냐?’ 이런 생각들이 내 몸에 매일 따라다녔다. 결국은 신학대학원에 갔지만, 거기에 내 친구들이 내 뒤에서 앉아있었다. 그런데 꼭 팔짱을 끼고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셨던 술도 끊기 위해서 큰 물통을 가지고 다녔다. 금식하고 신학교를 갔기 때문에 술 마시는 것이 저주이고 재앙인 줄 알았다. 그래서 술은 냄새도 맡지 않으려고 생을 걸었다. 우리가 전부 이렇게 육신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창3:15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아, 내가 바로 그리스도로 살아있구나’ 느끼면서 모든 것이 누림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는데 왜 네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지 않고 정죄와 비판, 판단과 심판, 율법에 갇혀 있느냐?’ 내 자신을 그리스도로 용서하지 못하니까 언제나 상대를 비판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주셨는데 우리는 그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늘 사람을 보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런데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그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다. 양다리를 걸치고 살았던 옛 사람이 끊어진다. 오직 그리스도, 유일성을 가지고 살아있는 기도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저 사람이 있구나...’ 그리스도에 오직 하면 이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문제 될 일이 없고, 사람의 관계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숨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상대를 죽이려고 하는 그 이유가 사라지고, 내 자신을 자살해서 해결해보고자 하는 살인자의 영이 내 몸에서 이탈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 몸에 살인자가 들어있어 나를 자살하게 만드는 놈이 깊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늘 느낀다. 그래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죽이려고 하고 나에게 뒤통수 치고 이간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강한 살인의 영이 굉장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상대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반드시 변화가 시작된다.
바울은 유대 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자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배신을 하고 이탈했기 때문에 유대 종교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말리엘 율법학자,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배신과 이탈을 용서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에게 강한 살인의 영을 볼 수 있다.
* 그리스도로 체험적 신앙을 회복하자.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믿는 것이다.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으면 사람도 믿게 된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더니 이적과 표적, 병 낫는 것과 새로운 방언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유대인들이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이적과 표적이 일어난다는 소리를 들어도 사람을 향해 비웃고 있었다. ‘저 불학무식한 놈들이 떠들어봐야 그게 그거지, 촌놈들이 뭘 알겠어? 저러다 말겠지...’ 하고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종교는 전부 다 추상적인 것이고 지식적이고 관례적, 율법적, 윤리적, 도덕적인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초대교회 사람들과 사도바울이 체험한 내용은 달랐다.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는 바로 체험이었다.
그리스도는 우리 몸에 체험적 이어야만 한다. 그리스도를 가지고도 추상적이고 지식적이라면 버림받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내용을 가지고 체험적 신앙이 일어나야 한다.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그리스도를 가지고 왕적인 사역을 실천할 때 살아있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적인 것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 우리는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다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배신하고 이탈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스도로 소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왕적, 제사장적, 선지자적인 사역으로 살아서 가는 것이다. 그래서 행26:18 그리스도는 체험적 신앙이라는 것을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말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지금 살아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이것이 안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다고 하는데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일이 온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제사장적, 왕적, 선지자적인 사역을 계속하면 기도는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해서 어둠을 밀어내고 사단의 권세를 꺾어버리고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무한한 기업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 그리스도를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구원을 주시는 능력과 권세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주셨고,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주셨으며,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케 하셨음이라” 이 말을 바울이 하지 못하도록 사단의 권세로 장악된 유대 사상의 사람들에게 격한 감정을 일으켜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로 답을 내지 않으면 격한 감정은 살인자로 바뀐다. 어젯밤에 티비를 잠시 보았는데, 핸드폰을 통해서 중학생들의 뇌가 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는 디지털 시대가 오기 때문에 모든 뇌가 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디지털 시대를 통해 확실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왔다. 그래서 반드시 교회도 그리스도로 체험적 신앙을 줘야 살아남는다. 하나님이 주신 절대 언약이 ‘오직’ 이 되어야 교회도 부흥되고 제자도 일어나고 또 모든 재물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오늘날 아이들은 핸드폰을 통해서 모든 답을 찾아내고 있다. 그런데 자기 엄마는 늘 자신을 향해 소리만 지르니까 검색을 통해서 자신 엄마가 정신분열로 나오는 것이다. 아이는 확실한 답을 찾았기 때문에 우리 자녀를 향해 소리를 지르면 큰일 나는 시대가 왔다. 요즘 청소년들은 언제나 핸드폰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 그런데 그래서 ‘나 오늘 수학문제 풀다가 힘들었어’ 라고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엄마가 “너는 핸드폰만 보고 있냐?!” 하고 핸드폰을 던져서 깨지면 아이의 뇌가 깨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에게 화를 내고 뒤집어 진다. 그 아이는 지금 엄마가 화를 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상대방에게 답을 줘야 하는데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학생 아이들의 뇌가 달라지기 때문에 자기 방에는 핸드폰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컴퓨터도 거실에 두고, 잠을 잘 때는 거실에 핸드폰을 두고 가서 잘 수 있도록 언제나 도와주고 부모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라는 것이 방송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무조건 잔소리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녀를 죽이려고 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울이 세상을 이탈하고 유대종교를 배신하자 유대인들이 돌아버렸듯이, 우리 자녀들이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서 다른 사람과 소통의 수단이 된 핸드폰을 무작정 막으려고 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죽이려고 하는 결과와 같다. 그래서 부모가 너 죽고 나죽자는 길밖에 없다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디지털 시대에 아이들이 체험한 핸드폰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를 체험하면 진짜 목숨을 내놓게 된다. 문제될 일이 없다.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체험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오는 것이다.
본문에, 다메섹에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서 성 밖으로 내려 살리게 된다. 그 이후 3년 이라는 기간이 끊어졌다. 다메섹에서 도망친 바울이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서 구약을 샅샅이 뒤져 모든 것을 그리스도 하나로 정리했다. 광야 3년 동안 홀로 있으면서 창3:15의 흐름을 본 것이다. 각 개인들을 향한 이 언약의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불신자 상태로 비참해지는구나.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한 채, 그 이유를 모르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구나. 한마디로 사단의 심부름을 통해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구나, 그러니 가난과 질병이 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결국은 정신병과 샤머니즘, 미신사상으로 종교에 빠져 들어가고, 영적 질병으로 영적인 재앙을 어느 날 만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정사와 권세, 어둠의 주관자들에게 종노릇 하는 것, 정치인들에게, 재벌가들에게 종노릇 하는 것, 종교지도자들의 거짓 영에 의해 종노릇 하는 것, 종교지도자들이 만든 단체에 전부다 휩쓸려 가는 것이다. 그래서 군중심리와 여론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법과 입법 행정과 경제, 언론을 가지고 국가를 장악하여 그 지도자들이 전부다 사람을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강대국들이 모든 연약한 나라를 다 장악해버렸다. 바울이 이것을 깨달았다. 아프리카는 지하자원도 풍부하고 땅도 많은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을 만큼 너무 가난하다. 유럽의 강대국이 아프리카를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나라는 있는데 유럽의 식민지가 되어버렸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예수사랑교회가 영적전쟁을 하고 세계복음화를 일으키기 위해 지금 우리 눈에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그들은 무시무시한 살인의 광기를 가지고 있다. 강대국들이 미소를 띠우며 우리를 도와주는 것처럼 하지만 종노릇시키기 위해 도와주는 척 할 뿐이다.
사단의 권세를 박살내고 세상 신 임금을 결박시켜라. 내 몸에 종노릇 하게 만드는 옛 체질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어버려라. 사단을 결박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사단의 권세를 결박하면 내 몸에 저주가 풀린다. 강대국들로부터 종노릇하게 만드는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게 된다.
하나님의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다. 하나님의 방법은 오직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길 밖에 없다. 하나님의 방법은 갈보리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인해 모든 인류의 문제를 십자가 사랑을 통해 저주의 세력을 꺾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사단의 대가리를 깨뜨렸다. 그래서 우리 예수사랑 가족들은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약한 것들과 병든 것과 모든 것을 살려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자.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으면 어떤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를 절대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가진 대한민국을 통해 세계를 정복하게 하신다. 그래서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오는 것이다. 고전1:24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 고전2:12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 그리스도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기 때문에 강대국 일본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바나바는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에 살인자 바울도 사랑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품을 수 없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누구도 용서할 수 있고 어떤 국가도 품을 수 있다. 왜 그런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용서한 나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고 했다.
*그리스도로 옛 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가슴이 통하는 동역자의 축복을 누리자.
3년 후 예루살렘에 바울이 다시 나타났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가다락방의 사람들과 사귀려고 해도 도무지 사귀어지지 않았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렇게 말을 하는데도 사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있는 저주를 풀라고 알려주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있었던 제사장권, 선지자권, 왕권을 모든 예루살렘에 있는 믿는 자들에게 선포하기 시작했다. 복음, 그리스도를 제대로 정리해서 체계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옛 틀,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로 복종시켜라. 하나님께서 용서한 사람을 꺼림직 하게 만드는 본능적 사고를 사로잡아 그리스도로 밟아버려라.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격한 감정이 솟아 날 때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밟아버려라. 이것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드디어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만나주지 않자 이것을 깨뜨린 것이다. 왜 교회까지 와서 원수를 맺냐는 것이다. 교회에 왔으면 영원한 가족,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모든 문제 끝내라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까지 꺼림직 하고 본능적으로 사는 것, 옛 틀로 사는 것은 가장 나쁜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옛 사람의 체질을 지나가게 만들어야 새것이 온다고 해서 “새로운 피조물” 이라고 고백했다. 이제부터 영적세계의 누림이 시작되길 축복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말은 늘 이렇게 하면서 사람들에게 영적 세계의 누림이 없다. 만왕의 왕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기에 문제 속에 축복이 있고 갈등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숨겨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1인칭이 되라. 하나님을 만났다면, 예배시간에 내가 졸고 있어서 옆 사람이 탁 쳐도 시험 들지 않는 것이다. 우리 안에 본능적인 것, 꺼림직 한 것들을 다 무너뜨려라.
우리는 세상 지식으로 길들여져 늘 무엇인가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변증학적인 인생을 살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남침 북침을 따지지 말고 통일을 이룩해야 하고, 일본에 대한 식민지의 상처를 가지고 반일 감정을 가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녀로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은 자로서 모든 자들을 다 용서하고 구원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큰 문을 열어주는 생명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 예수사랑교회는 하나님의 절대 계획, 세계복음화를 진행하는 교회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 내가 있고, 상대방이 있기에 사람을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 살아있는 기도가 시작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에 대해 많은 말은 하고 살았지만, 뱀의 체질로 살인자의 영에 온 몸이 장악되어 사망에 매인 것으로, 하나님이 용서하신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까지 죽이려고 하며 의에 원수가 되어 바른 길을 갈 수 없던 인생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나의 것으로 침노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용서받은 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리스도를 실천하는 기도와 영적전쟁 속에, 내 안에 격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왔던 분노와 정죄, 비판, 시험과 낙심을 버리고 추상적이고 지식적인 종교성을 무너뜨려 체험적인 신앙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이제,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자로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한 생명도 소중히 여기며 배려하고 사랑하는 그리스도 인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