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선포다. 철학과 지식으로 변론하지 말라
행17:16~21
2020.03.22 1부 말씀
그리스도가 없으면 교회도 회당도 학교도 우상으로 가득한 곳일 뿐이다. 그리스도를 모르면 지식인들은 결국 우상을 섬기게 된다. 인간 내면의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식을 가지고도 두려움에 빠져있어서, 전 세계는 지금 사망권세 잡은 자에게 시달리고 있다. 그리스도만 어설프게 알고 쓸데없이 무속인처럼 돌아다니지 말고, 답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라. 신사적 믿음을 소유하는 것처럼 멋있는 것이 없다.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자유와 해방이 왔다면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을 송축하는 것이다.
* ‘나’로 살게 하는 사단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창3:15로 전도와 선교에 방향 맞춘 자가 복의 근원이다.
함정에 빠진 세상을 건져내야 한다. 창3장의 함정은 ‘나’ 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나밖에 모르는 함정. 창3장은 나 중심, 내가 기준이 되어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결국 인간관계가 다 무너지고 있다. 이것이 종교, 우상이다. 인생에 답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깨진다. 결국은 핑계 대고 책임 전가하는 것 밖에 없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다가도 자기 이익에 기스만 나면 순식간에 ‘나와 함께 하라고 한 이 여자가 먹게 해서 내가 먹었다’ 고 핑계 댄다. 그래서 핑계대고 책임전가하고 미적거리가 깨진 사람들이 시집가고 장가가고 살다가 또 심판을 받게 된다. 이런 노아의 시대를 ‘네피림’ 이라고 했다. 종교에 길들여진 자들을 말한다. 하나님은 종교를 ‘귀신 들린 자들의 모임’ 이라고 말씀했다. 그래서 결국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창6장, 네피림, 큰 용사라고 했다. 큰 용사들과 그 귀신들, 졸개들이 모여 사는 세상의 틀은 결국 비참할 수밖에 없다. 종교 뿐 아니라 이제는 우상의 시대가 도래 했다. ‘우리가 흩어지는 것을 면하자’ 하며 몸부림치며 살아남은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올무에 잡혀서 돈에 끌려 다닌다. 아파트를 세워놓고 그것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벌게 만든다. 우리는 이 세상에 그냥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이방을 살리기 위해 전도와 선교의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관심이 없고 돈의 올무에 묶여 수십억의 아파트 하나를 사기 위해 생을 걸다가 바이러스에 걸려 죽는다. 이것을 창11장 사건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이 바벨탑 우상에서 빠져나오라고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하면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요, 너의 이름이 창대케 될 것이며 열방이 너의 가문을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할 것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 로 살게 만드는 사단의 틀, 함정, 올무를 박살내는 자,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고 사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그런데 창3:15을 모르고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을 망신시키고 있다. 마24:14 이 천국 복음, 창3:15, 마16:16이 전 세계 닿을 때까지 끝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했다. 반드시 237개 나라에 그리스도가 증거 되어야만 그제야 끝이 온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에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끝까지 붙어있어야 한다. 시험과 갈등, 핍박과 고난이 와도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복음의 색깔이 나오는 것이다. 갈등이 있다고 교회를 그만두겠다고 헛소리하고 서글퍼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축복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자를 축복하신다.
이번에 LA에 가서 강의를 하고 왔는데, 거기서 만난 목사님이 강의 때 들은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이 다섯 가지로 어려움을 이겨 내며 개인의 문제를 해결 받고 있다고 전해왔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면 신앙색깔이 달라야 하고 모든 문제가 끝나야 한다. 성령이 역사, 인도, 내주 하신다면 무슨 갈등과 시험이 있을 수 있는가? 그 성령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에 증거 있는 증인이 되게 할 것이다” 말씀하셨기에, 이 답을 가지고 있다면 ‘마귀야 가라! 악령아, 내 몸에서 떠나가라. 더러운 귀신은 떠나가라. 모든 질병의 저주는 무너질 지어다! 하는 것이다. 행1:14 초대교회 사람들은 이것을 실천했다. 오로지 영적싸움에 힘쓰는 자는 행1:8을 늘 사모하게 된다. 우리가 구할 것은 성령충만 밖에 없다. 그래서 LA에 계신 학장님이 이 다섯 가지를 늘 외치면서 잠을 잔다고 고맙다며 연락이 왔다. 진짜 복음을 전하면 전대가 필요 없고 지팡이도 필요 없다. 온 천하에 복음을 증거 하면, 현장에 제자가 가득하다. 하나님의 계획은 구원사역이다. 환란과 핍박, 노예로 전락되었던 요셉은 창45:1~5, “내 인생 살아온 지난날의 모든 과거가 모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 고백했다. “형들이 어린 나를 비아냥거리고, 시기, 질투하며, 나를 죽이려하고 노예로 팔았을 때 굉장한 탄식 속에 있을 수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야곱 아버지에게 받은 언약,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 뱀의 머리,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깨뜨리는 자는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말씀을 나는 잡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날의 모든 과거는 축복의 발판이며, 하나님이 앞서 나를 애굽 땅에 노예로 팔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큰 구원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보내신 것이다. 언약을 가진 자가 노예로 팔려 가면 노예가 아니다. 그것은 땅을 정복할 하나님의 영광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하시며, 우리 앞에 걸려있는 적들을 하나님은 치워주신다. 언약은 사람에게 온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이 언약을 절대적으로 잡아야 한다. 창3:15을 가지고 살면 노예로 끌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큰 구원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노예로 끌려가고 있는 이 시대를 들여다보고 죄와 사망의 법에 묶인 것을 풀어주고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전도와 선교의 색깔을 갖추는 자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찾아와서 인생을 호소한다면, 문제 해답이 없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같이 입을 맞추지 마라. 답도 없고 인생을 탄식만 하고 있는 교역자를 만나면 그것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문제 해결 없는 자는 무속인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다. 지금 자신이 노예로 끌려가고 있다는 표시다. 죄와 사망의 법에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근심하고 탄식하고 걱정, 염려하며 호소하는 것이다. 포로에 잡힌 사람의 결과는 속국이다. 나라의 언어까지 잃어버리는 자가 된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속국이 되었을 때 말할 수 없을 만큼 비참했다. 내 소유, 재산도 없고 전쟁의 광기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수많은 여자들은 잡혀가야 했다. 내 영혼이 이런 상황으로 묶인 것은 아닌지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지금 속국으로, 포로로, 노예로 있다면 빠져나오라고 하나님은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망했을 때도 하나님은 사6:13을 주셨다. 온 세계에 하나님의 전도와 선교를 전달하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셨기 때문에 그 중에 남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것이 황폐해지고, 모든 것이 베임을 당해도 그루터기는 반드시 남아 있는다. 그루터기는 바로 창3:15을 소유한 자로, 하나님의 시간표를 가진 자다. 이런 사람들에게 문제가 일어난다면 가만히 내버려둬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붙어서 도와주려고 하면 오히려 더 이상해진다.
* 분명한 답을 가진 예수사랑교회에만 붙어있으면 창3:15을 믿는 믿음 속에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뤄가게 된다.
예수사랑교회는 스바냐2:7, 유다 족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유다족속, 창3:15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님 여호와가 보살펴주시며, 그들이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유다의 홀에서 메시아가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 앞에 있는 물을 보지 말고, 다리를 건너서 그 뒤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홍해 앞에 서서 쟁쟁거리지 말고 홍해를 건넌 이후 그 뒤를 봐야 한다. 사람을 살리겠다고, 237나라에 세계복음화 하겠다고 세워진 예수사랑교회는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입히시고 역사하시고 돌이켜 세우신다.
그래서 지금, 위기 만난 이 시대에 우리는 딱 하나만 하면 된다. 제자 훈련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캠프를 위해 기도 속에 있으면 하나님은 세계의 재앙도 막아주신다. 세계복음화의 여정 속에 237 나라를 두고 우리는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어떤 핍박을 당해도 그리스도에 집중하고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13:1의 역사가 일어난다. 인간관계를 성공하지 못하면 비참해지지만, 창3:15 세계 살릴 제자로 집중하면 5인1조 팀이 나온다. 안디옥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 “그곳에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까지라” 이런 팀이 나오면 흉년이 들어도 주의 은혜가 함께하고, 주의 손이 함께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어도 전도와 선교를 위하여 선교사가 세워지고, 교사가 제자로 세워지는 교회가 있으면 하나님은 재앙을 꺾으신다. 행16:6, 이런 사람에게는 성령이 움직이신다. 성령이 움직이지 않으면 행13:10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의에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막아버리는 더러운 자” 어둠의 세력이 지배해 버린다.
시험들고, 갈등 와서 집을 나가면 노숙자가 되고 정신문제가 찾아온다. 어렸을 때 바지에 오줌을 싸면 키를 쓰고 바가지를 들고 소금을 받아오라고 어머니가 시켰다. 그러면 집집마다 다니면서 소금을 받아와야 한다. 망신을 당하고 학대를 받아도 집은 들어왔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면 문제 될 일이 없다. 교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교회는 성령이 운행하시고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곳이다. 교회를 무시하고 교회를 우습게 아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가 너무 안타깝다. 행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더라” 창3:15이 무슨 일인지 아는 사람, 하나님을 만난 자, 창3:15신앙생활에 영적싸움으로 도전하는 자,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절대를 알고 있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움직여 가신다.
우리가 하는 구원 사역은 24시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에 의를 두고 우리는 24시를 살고 있는 것이다. 24시와 영원을 놓고 사는 그 사이에 수많은 일들은 오게 되어있다. 바이러스도 침투하고 독감도 찾아오고 알 수 없는 연약함으로 무너지기도 하고 가정의 문제, 여러 인간관계의 문제도 찾아온다. 전도와 영원한 나라를 놓고 가는 여정 속에 엄청난 재앙도 일어난다. 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사들을 놓고 창3장이냐, 창3:15이냐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창3:15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밖에 없다는 절대가 있다. 이 사이에 일어나는 그 역사가 흑암이냐 빛이냐, 썩어지는 문제냐 소금이냐, 이것을 뚜렷하게 알아야 한다. 이런 것을 모르고 헌금도 하지 않는 사람이 박애주의만 가지고 있으면 전도와 선교의 문이 막히게 된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것이다. 24시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놓고 이 사이에 충동하는 그 역사 속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된다. 하나님은 가짜들도 광야에서 40년간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덮어 재우셨다. 하지만 가짜들은 요단을 건너지 못했고 여리고 성을 빼앗고 돈 몇 푼 챙기다가 비참하게 죽었다.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을 챙기려고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챙기는 것이 아니라 그날로 먹고 끝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일 전 날에는 주일에 먹을 것 까지 두 배로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맞다면 무엇을 자꾸 내놓으라고 하는가?
창3장으로 양심에 화인 맞지 말라고 창3:15을 주셨다. 모든 인간이 창3장, 원죄로 화인을 맞았으니 오직 창3:15 성령, 그리스도 하나님으로만 그 화인 맞은 곳에 치료가 가능하다. 마12:28~32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 양심에 화인 맞은 것을 끄집어내라.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임하게 된다. 마12:29, 강한 자 사단의 소리를 듣지 않고 오히려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고 237 나라를 살리는 전도제자가 되라. 하나님의 영, 진리에 대해 알아듣지 못하면 인생을 실패한다. 창3:15의 진리가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지 않으면 내 마음대로 행동한다. 내 마음대로 행동하면 실컷 노예로 살다가 결국 비참해진다. 그러나 노예로 있으면서도 끝까지 붙어있으면 어느 날 상속자가 된다. 노예도 끝까지 붙어있어야지, 도망가면 문제가 온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어 이제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다. 우리 행동이 마비되는 자가 되지 말고, 행동이 그리스도로 움직여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생명의 근원되신 창3:15, 이 영성을 거부하지 마라. 양심에 화인을 맞으면 치료도 되지 않는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알 수 없는 분노로 이기적인 마음이 생긴다.
우리 몸에 와 있는 3저주를 꺾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제쳐놓고 창3장으로 살게 만드는 흑암 저주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몸에서 산산이 무너질 지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셔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으라고 우리에게 주신 성령, 그리스도를 내 몸에 영접하지 않고 주인으로 섬기지 못해서 불신앙 가운데 두려움으로 공포에 떨게 만드는 질병의 저주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질지어다!’
롬5:6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모든 저주를 끝내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놓으셨고 롬5:8, 10절,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에도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시켜놓으셨다. 고전3:16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 우리가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 영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전락된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를 잃어버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 하나님이 내 몸에 성전 삼으시고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시면, 내 몸에 하나님의 목표를 이뤄 가신다. 그래서 고전3:16이 없으면 하나님의 영을 받지 않고 세상의 영을 가진 자다. 고전2:12 “세상의 영을 우리는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날 사람들은 상상외로 불안하게 산다. 두려움과 염려로 살기 때문에 인본주의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본주의를 계속 쓰면 불신자 상태로 전락해버린다. 그러면 알 수 없는 미움이 찾아온다. 그래서 상처, 원망, 불평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이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을 망각해버린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려고 우리를 부르셨고,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고 237개 나라를 살리는 사람을 복의 근원으로 이미 축복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축복하시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을 인정해야 믿음이 온다.
하나님의 말씀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올 수 없다. 창3장으로 사는 사람에게 믿음이 오면 되겠는가? 창3장으로 살고 있는 중에게 믿음이 오면 교회는 없어지고 절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그리스도를 주셨다는 것을 말씀으로 믿을 때 믿음이 온다. 예배 때 주시는 말씀을 믿을 때 믿음이 온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힘이 없으면 죽는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면 “영생의 말씀이 계시오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는 것처럼, ‘말씀을 떠나서는 갈 수 없습니다, 안갑니다, 가서는 안됩니다!’ 해야 한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고도 합리화하고 거짓말하고, 핑계가 찾아왔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아닌가? 기도는 응답이다.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인본주의를 다 써놓고 응답 받았다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은 응답이 아니라 재앙이다.
기도 응답 중 응답은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다. 이상한 행동으로 나가는 나를 지키는 것,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인본주의 하고자 하는 행동을 말씀으로, 믿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표를 이룰 자, 복음을 색깔을 가지고 언약의 여정 속에 있는 너 하나님의 사람아, 너는 잠잠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볼지어다!’ 이렇게 하는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지켰다. 그래서 쓰레기 같은 제사장을 보고도 ‘나는 당신의 계집종이오니, 말씀하시옵소서’ 생각과 마음이 바뀌면 이렇게 달라진다. 믿음이 생기면 어떻게 기도응답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는 ‘집중’ 과 반대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자기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촐랑대고, 분열을 일으키고, 밀물 썰물처럼 정신과 마음과 몸이 요동을 친다. 그러니 리듬이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갑자기 폭풍이 일어나기도 하고 집착할 수밖에 없고, 중독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각에 잡혀 한 밤중에라도 차를 몰고 어디론가 간다. 문제가 생기면 차라리 전화를 꺼놔라. 그것이 사는 방법이다. 우리가 3일만 죽어 있어도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주신다. 롬8: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에 묶여있는 나를 해방시켜라. 사단과 나와의 관계를 뿌리 뽑아야 한다. 이것을 뽑으라고 우리에게 문제도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뽑을 것을 안 뽑고 있으면 이기적으로 사단이 주는 심부름만 하고 산다. 그러니 창3,6,11장에 그대로 갇혀 사는 것이다.
우리 현장에 뿌리내려진 사단이 무엇인가? 인생에 답도 없이 무속인으로 사는 것이다. 무속인들은 답도 없으면서 서로 위로한답시고 울어준다. 설악산 깊은 곳에 가보면 무속인들이 신을 받으려고 기도를 한다. 서로 시기와 질투를 가지고 기도를 받겠다고 각자 떨어져서 기도한다. 그러다가 신을 못 받으면 산 밑에 빌려 놓은 집에 모여서 노래방 기계를 크게 틀어놓고 소주를 마시면서 서로를 헐뜯는다. 그러다가 또 서로 부둥켜 앉고 목 놓아 운다. 그러다가 또 서로 마이크 가지고 싸운다. 답도 없이 인생을 사는 것은 이런 무속인보다 수준이 더 떨어지는 것이다. 서로간의 굉장한 사고와 이해를 가지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분쟁만 일어나고 원수 맺는 시스템이 형성되는 것이다.
* 바울은 아덴 전도의 실패로 큰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본문에 바울이 도착한 도시 아덴은 철학과 히브리 종교가 난무한 곳이었다. 히브리 종교를 연구했던 바울이 가장 흠모했던 것이 헬라철학이었다. 헬라철학이 히브리 종교 신학으로 들어온다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던 바울은 디모데도 놔두고 자기가 먼저 아덴으로 가겠다고 했다. 바울은 아덴이라는 도시가 굉장히 신사적인 사람들만 모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행17:16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엄청나게 격분하게 된다. 마음이 분하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복음을 상실해버렸다. 아주 심한 자극을 받아서 분노 속에 변론을 시작하고 쟁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 몸에서 늘 똬리를 틀고 가슴을 장악하고 있는 놈이 있다. 바울도 철학과 신학적 사상에 뭔가 굉장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변론하고 쟁론했다. 분이 나서 변론한 결과, 바울이 말쟁이로 소문이 나버렸다. 행17:18 “말쟁이” 라는 뜻은 헬라원어에 “스페르몰 로고스”, 참새가 곡식을 쪼아 먹는 것 같은 경망스러움을 뜻하는 뜻과 함께 쓰레기를 주어 모으는 사람, 자신도 알지 못하면서 남의 사상을 도용하는 사람으로, 즉 변변치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바울이 순식간에 이런 취급을 받았다. 바울도 창3:15을 떠나면 복의 근원이 안 된다. 오히려 말쟁이, 참새보다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우리 안에 분을 제하고 촐랑대는 것을 제거하고 성령에 따라 입을 열고 닫는 자가 되라. 복음과 전도가 빠진 삶이 되자 바울도 결국은 변론과 쟁론만 일삼게 되고 결국 아덴 전도는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다. 정확히 말하면, 분이 나서 실패한 것이다. '헬라 철학을 가졌으면 좀 멋있어야지 어떻게 이런 우상숭배를 하냐?!’ 바울이 이렇게 분노했다.
창3장을 가지고 철학 속에 있으면 우상 숭배, 정신질환밖에 없다. 철학의 본산지 사람들에게 나타난 현장이다. 아무리 깊은 학문을 가지고 있어도 창3장의 원죄를 가진 인간은 우상숭배와 정신질환으로 삶의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이치와 논리적 생각을 할 수 있는 사고력을 가져도 결국은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영적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인생 전체를 우상숭배로 사기 당한다. 그래서 복음이 없는 변론은 실패뿐이다.
바울이 아덴에서의 실패를 통해 디모데와 디도에게 철저하게 부탁한 것이 있다. 딤전6:20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딛3: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창3장에 잡혀있는 인간과 변론하는 것은 무익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고전2:2 드디어 아덴에서 쫓겨나 고린도 교회에서 메세지를 던졌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신앙적 거듭남이 없으면 인간은 변론과 쟁론 속에 빠져있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언제나 나를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거듭남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날마다 나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내 몸에 그리스도가 살아나기를 원한다.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기를 원한다” 고백했다.
행16: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은 쾌락주의 곧 현실주의를 뜻한다. 미래와 내세는 전혀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현재와 오늘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다. 그래서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죽음’ 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는 말을 너무 싫어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진다.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들을 보면 건강한가 보다 하면 되는데, ‘저 사람이 마스크를 안 써서 병이 나한테 옮기면 어떻게 하지...?!’ 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오직 현실주의 속에 빠져있는 자들, 그래서 물질, 육체를 찾아 결국은 향락주의로 빠져 들어간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신은 멀리 있다고 생각만 할 뿐, 창조주 하나님과 전혀 관계를 두지 않는 자들이다. 창조주가 인간에 대해서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착각이다. 그래서 이 현실주의, 쾌락주의는 무서운 재앙이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에게 십자가 부활 사건이 믿어질 리가 없었다. 바울이 아덴에서 십자가 부활을 전하니 운명론자들은 비아냥거릴 뿐이었다. 이들은 바울과 말싸움을 벌이고 즐거워할 뿐이었다.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이렇게 싸움을 걸어오면 그냥 피하는 것이 좋다. 바울이 분노 속에 변론을 하니까 결국은 전도와 선교가 빠져버렸다.
바울이 할 말은 “회개하라. 창3:15 주예수를 너는 믿어라. 다시는 그런 죄를 범하지 마라” 이것만 전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냥 짐 챙겨서 떠나면 성령께서 움직였을텐데, 성령을 순간 놓쳐버리고 자기의 그 무한한 지식을 전달하다가 비참한 꼴이 되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실패한 바울이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면서, 27절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답을 냈다. 그리고 고전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결론을 내렸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고 다른 것을 할 일이 없다. 날마다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여러분이 되길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나 중심, 나밖에 모르는 창세기3장의 함정에 빠져 내 마음대로 살다가 이 세상에서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창세기 3장 15절 언약의 여정을 가는 자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영이 아닌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로 나를 부르셨기에, 창세기 3장으로 장악된 죄의 권세, 지옥배경,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알 수 없는 분노와 이기적인 마음을 꺾고, 기도 속에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하옵소서. 내 몸에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가 성전 삼으셨기에, 철학과 지식으로 변론하는 것을 끊고 하나님이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말씀만을 받고 말하는 자,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나가는 창세기 3장 15절을 소유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