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알아야 성령충만이 온다
행19:1~7
2020.05.03 1부 말씀
그리스도를 알아야 성령충만이 온다
행19:1~7 Rev. 김서권
* 그리스도를 알아야 성령충만이 온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면 미완성, 불완전한 교인이 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반드시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벙어리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 있는 증인이 될 것이다. 행1:8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친히 약속하셨다.
갈5:16~18 그 성령의 열매에 대해 자세히 말씀했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니라. 육체의 욕심이 사라져야 땅 끝 까지 이르러 반드시 증인이 된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답을 내지 않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내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로 결단 내리지 못한다. 갈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다 이루었다고 하신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게 되었다.
요일2:27 그리스도에게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그리스도로 거하나니, 요일3:8 마귀에게 눌린 모든 것을 사로잡아 결박하고 내어 쫓아라. 그러면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 가르치며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행10:38 “하나님이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그리스도 그 이름을 내 몸에 심지 않으면 복음의 씨앗이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은 내 몸에 케리그마(kerygma), 곧 자기 몸에 선포를 말한다. 내 몸에 그리스도 그 이름을 심어 그 이름이 나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두 법이 내 몸에서 싸우지 않고 그리스도로 일방적으로 가게 된다. 우리 몸속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심지 않고 선포하지 않기 때문에 육체가 우리 영혼을 막아 영의 지배가 일어나지 못하게 움직인다. 우리가 연약하다면 그리스도의 기름 부으심의 역사가 우리 몸에 임해야 한다. 아무리 연약하고 힘이 없고 배경이 없어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인도를 받으면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다.
체질적으로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은 성령인도를 받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체질적으로 머리를 잘 쓰면 성령의 역사는 없다. 편법을 잘 쓰는 사람은 실제로는 실패한 사람이다. 고장 난 시계가 계속 돌아가면 계속 틀린 시간을 알려준다. 차라리 시계가 안가면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 그런데 틀린 시계를 계속 차고 매일 실패하는 인생을 산다. 그것을 얼빠진 놈, 어리석은 자라고 한다. 전12:1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너는 정신을 차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라” 말씀했다.
오늘 모처럼 일찍 목욕탕을 갔다. 그런데 탕 안에 한 사람이 너무 슬픈 표정을 하고 목욕탕 안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원래 앉아있는 사람이 아니다. 탕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늘 걸어 다녔다. 그래서 늘 그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뭐가 저렇게 잘났냐’ 생각했다. 굵은 십자가 목걸이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 ‘참 못났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사람이 자기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너무 힘겨워보였다. 탕 밖으로 나오는데 자기 발을 양손으로 들어서 겨우 턱을 넘어 나왔다. 목에 걸었던 십자가 목걸이는 안보였다. 이미 하체에 풍을 맞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먼 천장을 바라보면서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가볍게 인사하고 미소만 짓고 왔다. 내가 목욕탕을 안간지 12일 정도 된 것 같은데 그 사이에 그렇게 잘났다고 하는 그 사람이 장애인이 될 정도로 전락해있었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간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성령이 내주하지 않고 성령 인도 받지 못하면 충만이라는 게 세상에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순식간에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이 세상의 무엇인가 가진 것처럼 굉장히 당당하게 보였지만 12주 만에 육체는 무너졌다.
우리가 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가? 인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가 무엇인가? 어느 날 갑자기 정신병이 온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정신병자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이 오고, 공황장애가 찾아오고 자살충동을 느끼고 자살하는 날이 온다.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어둠의 세력이 자기 영혼을 딱 덮어버리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온 몸이 마비가 되는 사람도 있다. 이 세상 귀신들린 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더러운 귀신이 붙었다” 고 이미 말씀했다. 사람 관계 속에서 찾아오는 갈등, 시험, 뒤통수 맞는 것 이런 것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간질 증세가 찾아오고, 어느 날 머리가 아파서 찾아갔는데 백혈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의 한계는 창3장으로 인해 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간질병으로 시달렸던 사도바울은 지구상에 가장 신비로운 지식 중 지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아남도록 주신 창3:15 그리스도밖에 없다. 고전15:8 “만삭되지 못해 태어난 쓰레기 같은 나도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여주셨다.” 고백한다. 자신을 낮추고 낮추면 그리스도 하나가 나온다. 육체의 정욕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을 끊임없이 그리스도 앞에 낮추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고전15:9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을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했다.
“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제는 너를 대적할 자가 없다” 하셨고, 갈릴리 가난뱅이들에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만 삼아라.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요14:26~2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힘을 받으면 마음에 근심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세상을 이기는 힘과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
*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으로 움직인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 하나님의 영이 바로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삼위 하나님의 영이 실제로 살아서 역사하는 이름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속에는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의 기름부음이 있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참 왕, 저주와 재앙을 없애는 참 제사장,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참 선지자.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 창3장에서부터 시작된 인간 문제의 근원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해결해주셨다. 우리 몸에 와 있는 죄의 권세, 이것을 매일 해결하지 않으면 그리스도,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저주와 재앙의 시스템 속에서 죽기를 무서워하는 이 사망의 권세가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예수는 그리스도, 이 권세를 부르지 않고 살면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과 낙심, 염려, 슬픔이 찾아온다.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지 않으면 지옥권세 잡은 자가 우리를 끌고간다. 그러나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비밀 속에 있으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를 인도해 가신다.
우리 삶에 실제로 그리스도를 적용해야 한다. 그러면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 속에서 우리 몸에 복음의 씨앗이 자라나게 된다. 그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실제로 봐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야 한다. 사람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않으면 우리 영혼 속에는 감사와 감격, 기쁨도 없다. 성령의 역사는 감격과 감사, 기쁨 이런 것이다. 잠17: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실제로 그 분을 내 몸에서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은 내주 인도 역사하신다. 고전3:16 성령이 내 안에 함께 하신다. 그것을 요1:12 영접이라고 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다윗도 그리스도를 실제로 자기 삶에서 느꼈다. 시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인도가 없이는 실패의 구덩이, 함정에 절대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내주 인도 이것을 잃어버리면 순식간에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가 막 나온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남의 뒤통수를 치는 전문인이 된다. 이간질하고 남을 헐뜯고, 비싼 커피 마셔가면서 사람을 흉보고 죽이고 찢고 빼앗는 사람만 될 뿐이다. 거기에 성령충만이 아니라 악령충만이 되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 우리에게 기름부음을 우리 몸에 주셨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성령의 역사는 없다. 그런데 진짜 그리스도를 알면 날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 몸에 그리스도가 실제로 살아서 움직여야 한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진짜 응답 받아야 하지 않은가? 하나님은 응답하신다고 하면서 왜 응답을 못 받고 매일 개소리만 하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예수쟁이를 보면 토하고 싶었다. 내가 과거에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군대 있을 때도 예수 믿는 사람만 보면 때렸다. 예배하러 간다고 성경을 들고 가다가 내가 부르면 가던 길을 멈추고 왔다. 그래서 배구나 하자고 하면 성경을 놓고 배구했다. 그때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정말 만나고 싶었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실제로 느끼는 사람을 한 사람도 못 만났다. 그래서 불신자 때 ‘아, 하나님은 없구나,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구나’ 하고 젊은 나이에 하나님 믿기를 포기했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자들, 성경 들고 다니는 자들, 십자가 목걸이 하고 다니는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 내면에 성령의 기름 부으신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지 다시 한 번 자신을 점검해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하지 않은가?
하나님 만나는 길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는데, 그 이름이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 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만난 자가 된다. 그것을 성령 내주라고 한다. 그러면 막3:14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위함이요, 둘째는 전도도가 일어난다고 했다.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하나님이 드디어 함께 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스도를 1인칭 하는 자들에게는 영세 전에 감춰 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있는 자리에서 나타나게 된다. 롬16:20, 이런 사람들 앞에 사단을 무릎 꿇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임마누엘로 누리는 사람들 앞에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반드시 해결할 일은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면 응답을 받아야 한다.
* 그리스도를 알고 믿을 때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를 알게 된다.
행19: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오늘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모습이다. 에베소 사람들이 이런 상태였다. 그들은 성령세례를 못 받고 요한의 물세례만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요1:12이 없었다. 내게 심을 수 있는 메세지가 없는 것이다. 내게 복음의 씨앗을 심는 케리그마가 있어야 하는데, 이 선포메세지가 없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상실하고 사는 것이다. 고전3:16 너희는 분명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롬8:9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데 이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너무 무익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있다. 인간은 영원이라는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반드시 가야 한다. 잠시 사는 이 땅에서 육신의 것을 위해 욕심 부리고 정욕을 위해 몸부림치지 마라.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놓고 마음껏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라. 그리스도는 창조의 영, 그리스도는 기적의 영, 그리스도는 치유의 영,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을 새롭게 바꾸는 영,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본문에 바울이 네가 믿을 때 제대로 무엇을 알고 믿었냐고 묻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정말 알고 믿으면 역사가 일어나는데, 그리스도를 모르니까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그냥 물세례 받고 열심과 봉사와 헌신, 헌금만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알고 믿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가? 내 몸에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를 알게 된다. 마12:28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내어 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땅에 세상 임금이라고 하고 우리를 혼미케 하고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강한 자,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는 것이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롬8: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권세, 지옥권세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리고 자유와 해방을 얻는 것이다. 요5:24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 눅10:19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는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가 내 몸에서 실제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성령을 소멸시키는 자, 성령을 근심시키는 자 이기 때문에 오는 세대와 가는 세대에 영원히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 그것이 죄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종교,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윤리와 도덕적 기준으로 성경이 말씀하는 죄로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매일 죄를 고백할 뿐이지 죄의 권세가 우리를 압박하고 우리를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죄는 성령을 거스리거나 성령을 근심케 하거나 성령을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는 자가 되자.
삼상16:13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된 자의 삶은 달랐다. 여호와의 영, 창3:15 사단의 머리를 깨뜨릴 그 영에 다윗은 크게 감동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 받으라고 주신 그리스도, 이 세상에 먼저 와 있는 강한 자를 깨뜨리는 그리스도의 영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가 다윗의 몸에서 일어나자 그에게 나온 고백이 “원수의 목전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게 상을 베풀어주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할지라도 나는 해를 받지 않는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실제 느껴라. 요셉은 창41:38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은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응답 받는 자가 되길 축복한다. 그리스도로 감동되고 충만 되면 모든 것에 형통한 자가 된다. 창12:3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너희를 대적할 자가 없도록 만들어버리겠다고 약속하셨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 하리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그리스도가 몸에 임마누엘로 되어진 자에게 주셨는데, 성질대로 사는 자들, 인생을 더럽게 사는 예수 무당들이 쓰고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치고는 이런 말을 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욕을 먹는 것이다. 성경은 내가 필요하다고해서 갖다 쓰는 게 아니라 성경대로 살면 성경대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신분은 바꾸고 살아야 하는데, 마귀의 자녀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에 따라 갖다 쓰기 때문에 이상해지는 것이다. 예수사랑가족들이 신분을 바꾸면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 되면 미완성, 불완전한 교인이 된다. 불완전한 사람은 학습세례, 물세례를 받은 사람이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는 교역자를 만나서 말씀운동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미완성 제자, 불완전한 자가 된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자를 제대로 만나야 신분이 바뀌고 응답을 받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 교회 팀장들을 보면 열매를 맺는 팀장이 있고, 교회까지 온 사람을 실족시켜서 쫓아내는 사람이 있다. 생명 걸고 예배당까지 왔는데 ‘이 교회 괜히 왔네’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굉장히 힘들어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된다고 하셨다.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한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면 벙어리 교인, 귀머거리 교인이 된다. 왜 벙어리가 되는가? 귀머거리로 먼저 있었기 때문에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알아듣는 소리가 들리면 벙어리가 끝난다. 그리스도를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못 알아들으면 성령의 지배가 없고, 성령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신도 모르게 벙어리로 전락하는 것이다. 착하고 진실한 자세를 가져도 복음을 듣지 못하면 얼빠진 자가 된다. 아볼로가 에베소에 있었기 때문에 그 곳에 교인들은 전부다 성령, 그리스도를 모르는 미완성 교인이 되었다. 아볼로가 다녀간 교회는 미완성 교회가 되고 불완전한 사람들로 전락되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바울을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에베소 교회에 들어가서 드디어 성령의 역사를 알려주었다. 세례요한은 회개와 협박적 메세지를 한 사람이다.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있으니 회개하라는 협박적 메세지가 세례요한의 정신이었다. 회개하지 않으면 찍어버리겠다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해있다고 외친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협박하는 메세지를 주지 않으셨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람이 먼저 자기 자신에게 뱀의 머리를 깨뜨리면 살게 된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회개하라는 것은 창3:15을 적용하지 않는 너희는 회개해라.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창3:15로 친히 왔다 말씀하셨다. 세례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부르짖었다. 그래서 옷 두 벌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에게 줘라, 바르게 살아라, 욕심 부리지 마라 이런 단어를 쓰며 도덕적, 윤리적 메세지를 던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그 말씀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이 땅에 왔다, 이제는 실제로 하나님을 누리는 자가 되라. 모든 문제를 다 끝냈다. 내가 네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을 것이니 네가 이 사실을 1인칭 하면, 너의 자아를 부인하고 너의 십자가 지고 나를 따라와 사람을 낚는 자로, 구원 받게 하는 전도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이미 와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하셨다. 복음을 증거 하신 것이다. 사람을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으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절로 과실을 맺는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갈 자가 없다” “나는 이 땅에 모든 인류의 저주를 끊어주려고 대속주로 왔다” 요11:24~25 누구든지 살아서 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메세지를 우리 몸에 심으라고 케리그마를 한 것이다. 그 구원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다. “나를 믿는 자는 살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죄의 삯은 사망이 되었음에도,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다 해결하셨다.
이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신다. 모든 인간은 죄의 권세로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 났다고 개폼을 잡아도 헛일이다. 혹시 폼을 잡는다면 겸손해져라.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구나. 만삭되어 태어나지도 못한, 지극히 작은 나, 재생산이 안 되는 나 같은 쓰레기에게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구나. 내가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최고의 지식, 가장 위대한 것이구나’ 저주 아래, 진노 아래 있는 자들인데 맞는 말, 틀리는 말, 따지는 말,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 자신의 의를 완전히 포기하는 자가 되라.
창3:15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를 깨뜨리는 것이다. 내 의를 깨뜨리고 마16:16을 고백해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이것으로 서로 통하기 시작하면 다 끝난다. 이 말이 삶 속에 실제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몸에서 더럽고 이상한 것들이 솟구쳐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만 살피고 째려보고 죽이는 눈빛으로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을 받아 들여야 성령 내주 인도 역사의 기름 부으심이 우리 몸에 임하게 된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우리에게 은혜를 덧입혀 주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주셨다. 창3:15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 같은 쓰레기도 용납해주신 것이다. 창3:15 그 원시복음이 성경에서 지워졌다면 나 같은 쓰레기는 용납하지 않으셨다. 이미 영세 전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있었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용납해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은혜라고 한다. 하나님이 먼저 복음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었고, 저주와 진노 아래 그냥 불 태어 죽어 마땅할 자들이었다.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것이 우리 몸에서 솟아나는가? 착한 척하면서 이간하고, 이간하지 않은 것처럼 사람을 속이는, 너무 무서운 것이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올라오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남게 되었다.
그래서 창3:15이 요19:30 “다 이루었다” 하셨다. 창3:15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 대신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셨다. 그래서 내가 살아남게 되고, 하나님이 나를 용납하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은혜를 받은 자가 되었다. 이 깨달음이 있어야 히1:3이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죄를 사하는 축복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본체의 형상, 그리스도는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시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셔서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보장해주신다. 그래서 히10:16~20 “그리스도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그리스도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산 길이라, 휘장은 위로부터 아래로부터 찢어진 그 휘장은 그리스도의 육체니라” 이것이 나에게 실제로 느껴지면 성령의 역사가 시작된다.
‘내가 죽을 죄인이다’ 고 하는 것은 율법이다.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산다’ 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 는 고백은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킬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지식으로만 믿는 자들은 2천 년 전 의 사건 일 뿐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영접하고 알면 무엇이 시작되는가? 내 몸에서 영적싸움이 시작된다. 이것이 본문의 핵심이다. 십자가와 나와의 생명적 관계가 시작된다. 오직 믿음, 긍휼로 내 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바울의 세례는 옛 사람을 완전히 죽여 버리고 은혜로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다시 세례를 줬다. 옛 사람의 틀을 완전히 깨뜨려버리고 그리스도로만 살면 되는 것이다.
“마귀에게 눌린 것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풀어버려라. 사망권세로 내 몸을 장악하여 두려움으로 세상을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어둠의 세력이 나를 공격한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맞짱 뜨고 싸울 수 있는 그리스도의 강력한 능력이 내 몸에 와 있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용납하셨다.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살려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도 담대해라. 가난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난으로 지금 고통 받고 있다면 그 가난을 넘어 미래에 세계복음화 할만큼 무한한 축복을 받는 증인이 되었다. 질병이 너를 지금 사로잡고 있다 할지라도 그 질병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 만민 앞에 증인되는 것이다. 학벌이 없는 고통 때문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살지 마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다. 최고의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고의 학문을 가지고 몸부림치는 자들을 살리는 증인이 되라!” 구원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표 속에 있기 때문이다. “세세무궁토록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과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바울의 메세지를 알아듣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말하면 그리스도가 예언이 될 만큼 응답으로 온다.
사도행전적 방언은 알아듣는 방언이었다. 그런데 고린도에서는 못 알아듣는 것을 방언이라고 오해했다. 사도행전적 방언은 행5:4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못 알아듣던 사람들이 알아듣게 되는 것을 방언이라고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말을 알아들으면 이것이 하나님의 방언, 미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못 알아듣던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 이 방언을 알아들으니까 불과 같고 바람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하며, 말씀이 성취되고 만남의 축복이 오고 그들에게 날마다 하나님의 증거가 시작되었다. 이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언이라고 한다. 고전14:14 그런데 고린도 성도들은 자꾸 못 알아듣는 말을 하는 것을 방언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에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무당들이 지금 설치고 돌아다니고 귀신들려 한국에 70만 명의 무속인이 일어나게 되었다. 못 알아듣는 방언을 하면 나중에 귀신들려 버린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그만하고 자꾸 못 알아듣는 말을 하니까 그 자녀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본 자녀들이 부모를 이상하게 보는 것이다.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창3:15, 마16:16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용되는 방언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골2:2~3이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와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속에 감추어져 있느나라” 그리스도 이름을 알고, 또 알고 알면 날마다 내 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자신의 영혼에 부딪히면서 복음과 전도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증인적 역사가 곧 성령의 역사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과 세계교회의 증인적 역사가 무엇인가? ‘주여~’ 만 부르고 비는 것,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말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라고 속이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미국교회는 문을 닫고 부동산에 팔아버렸고, 한국교회는 수많은 목사님들이 길을 잃고 막노동과 택시운전 온갖 이상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유럽교회는 아예 우상화 시켜서 촛불이나 켜놓고 구경거리로 전락시켜버렸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초대교회와 같은 사도행전적 교회로 다시 한 번 탄생되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를 알아야,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그리스도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성령의 역사는 내 몸에서 시작된다. 습득한 것, 배워서 사용하는 목사들을 경계하고 내 몸에 그리스도를 적용하여 세계복음화에 증인된 목사들의 메세지를 따라가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날 전 세계 교회는 세례요한의 세례만 알아 죄의 권세에 눌리고, 찾아오는 문제 앞에 순식간에 무너지는 미완성과 불완전함 속에 있지만, 이 시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 속에 예수사랑교회 강단과 전도자를 만나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성령충만의 비밀, 창세기3장 15절을 받은 자 되었기에, 내 자신도 모르게 밀려오는 슬픔과 낙심, 지옥권세 앞에 내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비밀, 그리스도의 권세를 날마다 내 삶에 실제로 적용하고 선포하는 복음의 씨를 심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 속에 감사와 감격, 기쁨이 있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이 생명적 관계가 되어 옛 사람의 틀을 깨뜨리고 성령의 지배를 받아 바른 신앙생활 속에 언제나 겸손하며 세계복음화 하는 증인의 역사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