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히 증거할
복음의 스토리를 가져라
행22:11~21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무리 열심을 내도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실천하지 않는 열심 은 얻어맞는 것뿐이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이다. 얻어맞는 인생이 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스토리를 가져야 할 것인가? 나는 성경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 성경의 엄청난 진리를 여러분의 소유로 만들만큼 증거를 갖게 되었다. 성경을 나의 것으로 만들면 그렇게 안 되었던 일들이 되어 질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도 얻게 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치유가 되고 우리 때문에 영적서밋의 축복을 받게 된다.
행22: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이 속에는 4가지의 절대가 들어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알게 하셨다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알게 하셨다. 두 번 째, “의인을 보게 하시고”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오셨다. 의인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놓으신 것을 보라는 것이다. 행3:13~14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그 의인을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였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재앙의 시스템에서 우리 또한 죽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의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셨다. 그리고 3년 반 동안 사역한 그의 음성을, “다 이루었다”, ”저들이 하는 짓을 저들이 알지 못하오니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 입술에서 나오는 그의 음성을 들으라. 그리고 22:14 맨 처음부분에 나오는 “너희 조상 하나님이 너를 택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받아야 할 메세지다. 예수님을 핍박했던 영혼이 이 네 가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한 축복을 놓치게 된다.
*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분노의 저주를 없애라.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내 것으로 믿지 못하면 내면의 분노를 쌓아두고 살게 된다.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려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면 행26:18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지고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되며 죄사함을 얻어 하나님의 기업을 얻게 되고 영적인 눈을 뜨게 된다. 그런데 이 말씀이 나의 것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면 분노만 쌓이게 된다. 분노는 자신에게 멸시와 모욕으로 내 몸에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켜라.
분노의 근원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하늘의 처소를 두지 못한 채 내어 쫓긴 사단, 옛 뱀이라는 놈은 분노를 가지고 내어쫓겼다. 그래서 분노를 가진 그 놈의 영을 받아 인생을 살기 때문에 그 분노 속에 자신도 모르게 이간하고 전쟁을 일삼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살인자” 라고 말씀했다.
창세기16장에 아름답고 멋있는 사라라는 여자가 나온다. 사라는 남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알아듣고 복종하고 순종하는 여자다. 자신을 팔아먹어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분노가 쌓여 하나님 앞에 대항하기까지 했다. 창16: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그렇게 착하던 여자가 너무 이상해졌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분노를 제거하지 않으면 이렇게 다 이상해진다. 아브라함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싸움을 걸었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 여자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까지 팔아서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아브람에게 하갈을 소개한 사람이 사래다. 자신은 애를 낳지 못하니, 자기의 몸종 하갈을 들여서 아들을 낳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갈이 임신을 하면서 사래는 남편은 정상인데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분노가 쌓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배신한 하갈에게 분노가 쌓이고, 말 한마디 없이 하갈을 임신시킨 아브람 때문에 또 분노했다. 모든 것이 분노와 상처로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역사가 만들어 낸 것이 이삭과 이스마엘이고,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기독교와 이슬람으로 이르렀다. 분노를 제거하지 않고 인생을 살면 우리 가정이 쑥대밭이 되고, 분노를 제거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다 파괴된다. 그리스도인은 분노를 제거할 줄 아는 영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 분노를 화해로 바꿀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의 생명이 계속 충만해져야 한다. 분노를 가지고 죄로 치닫게 되면 전쟁과 다툼이 일어나고 인간관계 속에 원수를 맺게 된다. 그래서 결국 분노를 제거하지 못했던 사라는 127세 나이로, 그 당시 나이로는 단명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사라보다 50년을 더 살았다. 우리 몸에 분노를 제거하지 않으면 빨리 죽는다. 사라가 분노를 가지고 인생을 사니까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치겠다고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이삭을 데려가는 가정의 쓸쓸함이 찾아왔다. 분노로 살면 가정에 냉랭함과 쓸쓸함, 고독 속에 대화가 단절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분노를 제거하지 못한 결과,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도 계속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어려운 상황에도 바울은 원망보다는 복음의 절대 능력을 믿고 전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상황에 이런 공격을 당하면 엄청난 분노가 쌓여야 하는데, 자기 영혼 처처에 그리스도의 영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에 어떤 위기에도 전혀 분노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뱀의 머리를 깨뜨리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분노만 쌓여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제거하는 그리스도 영의 사람은 성령에 매여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 속에 있다. 어느 때는 기도에 매이고, 어느 때는 전도에 매이고, 어느 때는 말씀에 매이다 보면 우리 몸에 분노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을 오늘날 교회 성도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시기 질투 거짓말 분노로 인한 모함을 계속 저지르고 있다. 결국 그 분노를 숨겨놓고 시기 질투 속에 군중심리를 가지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바울을 향해 ‘성전을 더럽힌 자, 율법을 훼방하는 자’ 라고 누명을 씌운다.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 분노를 유발시켜 사람을 죽이는 살인의 광기로 가득차 게 만들었다.
이런 유대인을 향해 바울은 욕설로 대항하지 않았다. 오늘의 기도로 자신의 영혼을 얼마나 쳐서 복종시켰는지 본문을 통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의 뜻을 알게 하셨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나는 보게 되었다.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나는 지금도 오늘의 말씀을 통해 듣고 있다. 그 말씀을 의지하여 오늘의 기도에 매여 있다. 그분의 절대 계획인 세계복음화, 땅 끝까지 증거 있는 증인이 되리라는 그 소리를 언제나 듣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조상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 이것으로 자신의 분노를 조절해가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더러운 말로 대항하지 않고 오히려 행22: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고 말한다. 오늘의 말씀으로 매여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는 훈련을 바울은 늘 하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만 반대되는 의견만 나와도 분노가 있어서 “내 말 부터 들어봐!” 하고 말하는데, 바울은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뱀의 머리를 박살내고,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선택하셨다면 우리는 그의 명령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메시지 였다.
죽음이라는 급박한 상황에도 복음의 빛을 발하는 바울의 모습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던 스데반도 죽음이라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하나님, 저들의 하는 짓을 알지 못하오니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신에게 밀려오는 분노를 화해로 바꿀 줄 알고 평화로 바꿀 줄 아는 넉넉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영혼에도 충만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이렇게 선포를 해도 분노 조절이 안 된다면 정말 기도에 매이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성령충만 달라고 진실하게 한 번 기도해봐라. 그러면 하나님은 권능을 주신다. 진실과 성실함이 없으면 성령을 체험할 수 없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도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무너졌을까’ 하고 하나님 앞에 물어봐라. 그러면 어설프고 무능한 ‘아브람’ 을 ‘아브라함’ 으로 이름을 바꿔주시고 열국의 아비라는 칭호를 주셨던 그 응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롭게 살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나의 언약에 매이는 자 되라. 나의 기도에 매여 있어봐라. 나의 전도에 매여있어라’ 하나님이 부탁하신 이 하나를 붙잡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불신자 수준이 된다. 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이 있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사실을 ‘오직’ 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구석구석마다 은혜를 주시고 응답을 주신다. 대통령보다 더 행복한 은혜를 하나님이 주신다. 열등감 덩어리로 살았던 나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그리스도” 이 하나를 ‘오직’ 했더니, 황제처럼 누리는 목사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수많은 영적인 문제가 나타나지만 그 중에 분노의 근원은 하나님을 떠나서 온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혼돈과 공허, 흑암이 사람 속에 들어와 버린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사단이 있다는 것을 성경에만 공개하고 있다.
반드시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무슨 말인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야 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살았을 때는 자신에게 쌓인 분노 때문에 스데반을 죽이려 하며 스데반을 죽이는 자들을 오히려 칭찬했었다. 그런데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그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온 인류에게 구원을 이루어주신 그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으면서 그 음성에 매여 있고, 나를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기도에 매여 있고, 하나님의 절대 계획, 세계복음화 목표, 전도에 매여 있기 때문에 분노가 쌓여야 하는 이유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롬1:16 이제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람은 살게 된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 분노를 제거하지 않고 인생을 살면 결국 신앙생활 다하고 비참해진다. 그래서 사라는 127세에 죽었고, 그 가정은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쳐야 하는 엄청난 고통을 맞이해야 했다. 자기가 낳은 아들인데도 자신과는 한마디 상의 없이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으로 데려갔다. 쓸쓸함과 고독, 멸시와 모욕이 자기에게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다. 결국 자기 내면에 상처와 분노 하나를 제거하지 못해서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는 아주 냉랭해진 것이다. 우리 영혼에 분노를 제거하고 그리스도의 영을 담아 성령에 충만한 자가 되자.
복음을 전하고도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전도를 마치고 교회 안에서 헌신, 봉사 다 하고도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렵다고 바울은 고전9:27 말씀했다. 그래서 고전15:51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살아나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켜라. 그러면 변화의 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된다. 이 땅에 거듭남의 증거는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킬 때, 분노를 제거할 때 하나님은 나를 축복하신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는 이제 다르다” 행26:18 “나는 이제 영적인 눈을 떠서 너희들과 다르다. 나는 이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 하나님 만나는 길을 알기 때문에 나는 너희와 다르다. 나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너희들과는 다르다. 이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절대 목표 속에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르다. 나는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구별함을 받아 거룩한 무리가 되었기에 나는 다르다. 이제 세계복음화 하는 그 날까지 무한한 하나님의 기업을 가지고 세계복음화를 이뤄 갈 것이다. 그 후에 면류관이 나를 기다린다.” 이렇게 바울과 같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가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인은 “나는 이제 다르다” 고백할 수 있는 변화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만난 삶이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는지를 바울은 고백했다. 행9: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내게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 자신은 예수님의 핍박자였기 때문에 날마다 갈2:20 속에 들어간다고 고백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롬5:6 연약할 때도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고, 롬5:8 아직 죄인 되었을 때도 하나님께서 나를 돌봐주셨고, 롬5:10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를 화목케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보라 이제 나는 다르다고 바울은 고후5:17고백했다.
기독교인,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이 땅에서 달라야 한다. 오늘 아침 일찍 우리 교회 성도님이 교회를 향해 우산을 쓰고 오시는데 등허리에 손을 얹고 오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 몸도 성하지 않음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예배하러 가는 저 심령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축복하시고 동행하여 주사 저 허리에 손을 얹어주셔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다가 허리가 펴지는 역사가 있게 하시고, 말씀을 듣다가 온 몸에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배에 앉아있는 여러분은 어떤 정치인보다 위대한 사람이다. 살아있는 여러분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골1:17~18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옛 사람을 바꾸고, 옛 틀을 깨뜨려라. 롬8:6~7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우리가 개죽음을 당하게 된다. 롬8:13 “육신대로 살면 바드시 죽을 것이로되 그리스도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반드시 살게 된다” 육신대로 살면 개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된다. 길을 가다가 골목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리어카에 박스를 주워 올리는데 할머니가 “이제 그만하셔” 했더니 할아버지가 사정없이 할머니를 때리면서 “잔 말 말고 해!” 하고 소리쳤다.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한테 “아니, 어떻게 할머니를 그렇게 때리세요?!” 했더니 나에게 “당신 뭐요!” 하길래, 할머니를 때리니까 제가 좀 도와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박스를 올려드리면서 이 박스로 뭐하려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돈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옆에서 “저 인간 돈 많아요” 하니까 할머니를 보고 “입닥쳐!” 하고 박스를 실고 어디로 가려고 했다. 할머니가 앞에 건물을 가리키면서 저 건물이 자기 건물이라고 했다.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돈 몇 천원을 챙기기 위해 자기 건물 앞에 주워놓은 박수를 깔아 놨다. 써보지도 못하고 돈만 긁어모으는 것은 개만도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한 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어떤 노인이 껌, 초콜렛을 팔러 왔다. 그래서 얼마냐고 했더니 2천원이라고 해서 하나 사드리려고 했더니 식당 주인이 “사지 마세요, 저 사람 부자에요” 했다. 이 동네 사람은 저 사람이 부자인 것을 다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주인에게 그건 귀신들린 것이고 영적인 문제라고 말해줬다. 20,30 년 동안 자신만을 위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무시무시한 영적인 문제가 찾아온다. 목사들도 30,40년 설교만 하면 엄청난 영적인 문제가 온다. 그래서 식당주인이 검사, 판사, 목사는 밥을 먹으면 돈을 낼 줄 모른다고 했다.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는 육신대로 살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라고 말씀하셨다. “볼지어다 세상 끝 날 까지 내가 너희와 그리스도의 영으로 항상 함께 있으리라” 내 자신에게 찾아온 여러 가지 영적인 문제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우리에게 위기의 순간이 찾아와도 그리스도를 외쳐라.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없으면 모든 사람에게는 영적인 문제가 온다. 자기 일만을 위하여 살면 안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위하여 우리 인간을 만드셨는데,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돈만 쌓아놓는 관심에만 묶여 있기 때문에 나이 먹어 할머니를 두들겨 패고, 건물을 가지고 있어도 건물 주변을 온통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 집안은 어떻겠는가. 자식들이 와서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원수가 되어 자식들은 부모가 죽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
본문에 성난 군중 앞에 죽음을 직면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고 있다. 부드럽고 성실하게, 진지하고 진솔하게 메세지를 던진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언약의 말씀이 바로 나의 것이 되었다.” 행22:14의 말씀이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부르시고 예정하시고 택하셨는가? 우리로 택하여 하나님의 뜻 곧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나의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내 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사라는 분노 조절이 안 되고 말년에 고독하고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자신의 신앙고백, 사실적인 증거가 몸에서 일어나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선포 속에 체중이 실려야 한다. 복싱선수가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날리지 않고 체중을 실어 상대를 향해 정확하게 팔을 뻗듯이, 체중을 실어 내 자신을 향해 “예수는 그리스도” 선포해야 한다. 이간하고 싶을 때, 개소리 하고 싶을 때 그리스도를 선포하면서 체중을 실어라.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하면서 우리의 인격을 실어라. 그리고 거기에 우리의 운명을 실고, 또 신앙을 실어봐라. 그러면 영적인 문제가 사라지면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그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온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 친히 달려 죽으셨다.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반드시 듣고 그 말씀에 매이고 기도에 매이고 전도에 매여 있어야 산다.
*“하나님이 너를 택하셨다” 바울은 이 한 구절로 답을 냈다.
그래서 평생에 생각했던 진리가 자기 몸에 드디어 왔을 때, 자기를 넘는 자유,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자유,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 그리스도 자유 속에 매여 있기 때문에 ‘나는 자유가 없다’ 고백했다. 그리스도의 자유가 내 몸에 있기 때 내 자유는 없는 것이다. 바울과 같이 우리에게도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신앙고백이 담겨있어야 한다. 어떤 분이 나에게 “목사님, 나 어디 좀 가려고 합니다” 하길래,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면 가라” 했다.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사람들이 돈이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 다 벌어놓고 뛰어내려 죽는 것이고, 50년 동안 생을 걸고 돈 벌어 놓고 늙어서는 온 몸이 틀어져 먹지도 못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어떤 할아버지는 자기 방에 금괴 60개를 묻어놓고 치매가 와서 기억도 못하고 죽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속에 오늘의 작품을 만들어내신다. ‘나를 택했다’ 는 것은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셨는데도 주 예수 보다 다른 것을 귀하게 여기고 좇아가면 하나님은 바울처럼 강권적으로 눈을 멀게 만들어서라도 부르신다. 우리 인생에 고난과 위기, 환란 병든 것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셔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시기에, 내게 찾아 온 문제를 통해 하나님이 내 가는 길을 막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바울의 눈까지 멀게 해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셨다. 앞을 가로막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해놓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내가 믿고 싶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잠히 말씀에 매이고 기도에 매이고 전도에 매여 세계복음화의 절대 목표 속에 들어가자. 자신의 선택과 지혜로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절로 과실을 맺는 유일한 비밀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예정과 선택, 섭리, 경륜을 절대로 믿는 것이다. 그래서 내 것을 포기하고 내 성질과 분노를 제거하면 “항상 열매가 잊게 하려 함이라” 요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전도에 매여 있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했다는 것을 믿으면 자신의 것을 포기할 수 있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버림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고 예정하셨다는 믿음 속에, 은혜의 복음 속에 감격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게는 이제 자유가 없다” 우리는 자신의 자유가 정말 없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는데 왜 내 자유가 필요한가? 내 맘대로 하려는 것, 내 생각대로 살려고 하는 것을 제거해야 한다. 사래가 자기 맘대로 생각해서 사건을 저질러놓고 엉뚱한 곳에 하소연 하고 난리를 쳤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방황하지 말고 그리스도에 순복하고 순종하는 자가 되라.
행22:14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개인적으로 선택했다. 갈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 어머니가 떠올랐다. 서양귀신 믿는다며 그렇게 핍박하던 어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잘 믿는 전도자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 배에 손을 갖다대고 “어찌 어머니의 배가 이렇게 복이 있습니까? 당신 배에서 전도자를 잉태했으니 하나님 나라에 가장 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했더니 우리 어머니가 “전도자인 자네를 내가 그렇게 많이 핍박하고 어렵게 만들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실까?” 말씀하셨다. 저를 낳은 것 하나만으로도 큰 상급이 하나님 나라에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우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야 하니 예수그리스도를 잃어버리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꿈에 어머니를 만났는데 어머니에게 어떻게 구원을 받으셨냐고 물었더니 어머니의 육성 그대로 “예수는 그리스도”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이 나의 과거나 자격, 학벌, 가난, 못난 것들을 묻지 않으시고 어머니 태로부터 택정하여 불렀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가난이 문제될 것도 없고 학벌도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넘어 사명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쓰신다는 절대적 천명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예정은 구원이지만 선택은 절대 하나님의 사명이다.
하나님이 왜 바울을 예정하시고 택하셔서 사명을 주신 것은 바울에게 ‘충성’ 이 있었기 때문이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교역자님들에게는 이것이 살아서 움직여야 한다. 우리 내면에서 충성이 움직이면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능력과 은사, 모든 것을 허락하신다. 충성도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경제와 만남의 축복을 주실 이유가 없다. 충성이 있을 때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 하나님은 자격이 있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그 뒤에 자격과 능력을 주신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그 훈련의 시스템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무한한 은혜를 주신다. 교회 안에 가장 중요한 교육이 훈련이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하도록 내 삶을 장악하여 내 삶을 도둑질하며 무기력 속에 무너지게 하는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너는 일어나 빛을 발해라. 사람 앞에서 거짓말하며 아첨하며 이간하고 마귀의 영으로 인생을 파괴시키는 저주의 세력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질지어다! 예수사랑교회가 237나라 세계복음화의 원대한 하나님의 목표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음에도 욕심쟁이로 내 영혼을 장악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못하도록 주저앉게 하는 모든 질병의 저주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 지어다!’ 이 충성이 있을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맡기신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히 증거 할 복음의 스토리를 갖는 자가 되자. 행22:21 바울은 자신이 왜 이런 고난과 핍박, 죽음의 절정에 이르는 사건에 휘말렸는지 자신의 스토리를 말하고 있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서 나와 함께 동행 하시면서 언제나 나에게 이르시되 “빨리 예루살렘을 떠나가라. 유대인들에게도 말하지 말라. 너는 오직 이방인들과 임금들 앞에 서야 할 존재다. 예루살렘을 떠나 내가 너를 멀리 이방에게 보내리라 하였는데 왜 굳이 또 예루살렘에 와서 그렇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냐 말씀하셨는데 나는 이렇게 포승줄에 묶이고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먹게 되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면 문제가 터졌다. 나도 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도박중독, 알콜중독 이런 중독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나를 잘 따라온다. 그런데 굉장히 경건하고 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 맞게 쓰시는 것이 있는데 굳이 점잖은 사람에게 핍박 받아가면서 전도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은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구원을 이루셨기에 누구나 전도자로 쓰시려고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는 것이다. 이방인에게 전하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려다가 이렇게 자신이 당했다는 스토리도 기록했다. 하나님의 인도를 못 받으면 결국 어려움에 처한다. 하나님은 분명 행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하셨는데, 바울이 이 말씀을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렇게 고집불통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의 가족은 하나님 손에 맡기도 하나님이 나를 선택했다는 절대적 진리 속에 행1:8을 성취시키는 증인이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공허와 혼돈, 흑암으로 내 인생을 끌고 가는 사탄에 의해 하나님을 떠나 생긴 분노의 근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도 막을 수 없는 영적문제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하나님의 뜻인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구원을 주셨음을 보고 듣는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할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을 향해 분노로 대항하지 않고 당당히 복음의 스토리를 증거 한 바울과 같이, 날마다 말씀과 기도, 전도에 매여 감정을 조절하는 훈련 속에 내 성질대로 살았던 체질을 무너뜨리고 분노를 제거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거듭남으로 세계복음화의 목표에 들어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 속에 나를 선택하셔서 믿어지게 하셨기에, 오직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고백으로, 나를 선택하신 그 명령에 충성하며 하나님의 작품을 만드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