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주의, 외식주의를 경계하라는 예수님의 교훈"
(막/Mark 8:14-21)
어려서부터 찬양의 입을 열면 되어지는 큰 응답 속에 들어간다.
왜 아이들이 입을 벌려 찬양을 하지 않을까? 부모님과 손잡고 찬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다른 게 들어간다. 만역 부모님들이 아이들 손잡고 매일 ‘예수님이 누구신가’와 같은 찬양을 부른다면 가사가 아이들 속에 들어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이들 영혼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과 목이 굳어지고 완악해진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좋아하는 자와 싫어하는 자로 나뉜다.
장로님들이 조금 전 좋은 찬양을 불렀다. 그런 게 그루터기들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른들도 저렇게 찬양을 하니까 멋있구나!’ 장로님들은 365일 중에 매주 첫째 주는 ‘찬양의 이미지’가 되어야 한다. 그런 모습들이 아이들 속에 들어간다.
우리 예수님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시 하신 게 무엇인가? ‘누룩을 주의하라’이다. 그것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부풀려져 사람들이 발작 증세를 일으킨다. 자녀들 속에 무엇을 들어가게 할 것인가? 이것에 주의해야 한다. 자녀들이, 부모가 인상 쓰는 것을 계속 보면 아이들 속에 그런 모습이 들어간다. 그것이 아이 속에서 부풀어져 아이의 상태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반면에 그리스도 안에서 늘 기뻐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이들 속에 들어가면 이 시대 하나님의 영웅이 된다.
* 주일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결단을 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날이 주일이다. 말씀을 받아 가족 중 한 사람에게라도 말씀 포럼을 할 것이라는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내려 주신다. 말씀을 포럼 하기 위해서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붙잡고 기도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도로 연결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나 생애 두고두고 하나님의 응답과 변화의 역사를 맛본다.
→우리 몸에 와 있는 창세기 3장, 원죄 덩어리는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자신도 자기 마음대로 못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힘으로, 지식으로 가정을 바꾸겠다는 것인가? 자신도 못살고 있는데 어떻게 자녀들을 양육하겠다고 벌떡벌떡 일어나는가? 주일만이라도 하나님 말씀을 똑바로 받아 자녀와 포럼 해야겠다는 마음만 가져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히브리서4장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능력이 있어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이다. 지긋지긋하게 맘대로 안 되던 얼룩진 생애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 뜻을 판단하셔서 두고두고 응답해 주신다. 어떤 응답인가? 13절, 모든 것이 나타난다. 결산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 포럼 하지 않고 기도로 연결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쁜 열매로 나타난다. 자녀와 포럼하고 부부가 포럼하고 그 말씀을 생각 속에 담아 기도하면 하나님이 결산해 주실 만큼 응답을 주신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전달하기 위해 기억하는 저에게 오늘도 성령의 충만함을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형식주의자, 의식주의자가 되지 않는다.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서로 괴롭히는 방식을 갖고 있다. 부모 자식 사이라도, 부부 사이라도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 괴롭히는 방식을 찾아낸다. 주로 심리적 방식을 찾아내고 영적, 도덕적 등등 여러 식으로 서로를 괴롭힌다. 이게 사람에게 와 있는 창세기 3장 사건이다. 창세기 3장4절,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노릇을 지금 하고 있다. 그래서 예배도 자기 맘대로 드린다. 그게 착각인 것이다. 예배를 자기 맘대로 드리면 사람을 괴롭힐 방식만 찾는 것이다.
5절, 그리고 영원히 죽지 않는 것처럼 산다. 육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정죄한다. 사람을 괴롭히는 다양한 방식들, 눈빛으로 표현하거나 머리를 약간 돌리면서 상대를 쳐다보는 등 여러 가지 제스처로 표현한다. 욕망, 탐심, 이기심 등이 이런 것들을 하도록 계속 자극한다.
육감만 가지고 살면 영적인 세계에서 점점 멀어져 요한일서 2장16절,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속에 갇히고 만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 눈에 보이지 않게 사람 속에 들어간다. 그래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과 속임수로 일관하는 것이다. 애들이 학교 가면 거짓말과 속임수로 선생님을 속이지만 나중에는 학교 가기 싫어한다. 또한 부모 자식 간은 어떤가? 거짓된 생각으로 믿음을 심는다. “엄마, 날 믿어. 서울대 갈 거야!” “엄마, 나 하버드 갈 거니까 밀어줘.” 그래 놓고는 마약한다. 거짓말로 믿음을 심어준다. 태어난 지 3개월도 안 된 아기가, 엄마 아빠를 똑바로 보면서 ‘나, 천재야.’라는 믿음을 부모에게 심어준다. 그래서 할머니, 엄마 아빠는 자기 손자, 자기자식이 천재인 줄 알고 6살 까지는 아이의 미래가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마귀는 이런 것들을 사람 속에 집어넣고는 진리에서 점점 멀어지게 난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진리에서 벗어나기에 점점 혼탁해지고, 혼미해지고, 미혹되고 혼란을 초래하면서 사람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단절되고 만다. 하나님과 단절되면 두려움, 공허, 절망 등이 사람 속에 계속 들어간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사탄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려 한 영혼을 흔들기 시작한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고 하면서 소주, 맥주를 마시고 이것으로 채워지지 않아 게임, 도박, 음란에 점점 중독되어 간다.
중독되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이 바닥을 치기에 결국 죽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자살을 선택한다. 늘 분열과 갈등 속에서 교회까지 와서 불화와 다툼을 일으킨다. 사랑과 진리와 하나님의 자비로 연합되지 않고 나쁜 쪽으로 연결되어져 간다.
교회 공동체를 허물어뜨리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주일 예배 후 포럼 때 분열을 일으키는 말만 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죄책감과 죄의식이 찾아와 괴로워한다.
결국 회복의 기회, 용서 받을 기회를 다 놓쳐버린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구속에 사랑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슬픈 고독 때문에 몸부림치는 운명을 맞이한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로 인하여 거짓 교리와 이단, 사이비에 빠진 탓에 오리지널 복음의 본질을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 오리지널 복음 창세기 3장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 대가리부터 깨뜨리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다. 영적싸움을 해야 참된 믿음에서 안 벗어난다. 원시복음의 시작과 끝이 있다. 우리의 영혼이 영원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된 믿음에서 벗어나 틀린 복음을 따라가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미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철저하게 사람들을 영적 침체 속으로 빠뜨린다. 무기력하고 무능해져 아무런 기쁨도 없이 예배를 드린다. 라는 찬양을 부를 때도 무표정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영적 침체 상태이다. 앞으로 영적 침체를 깨트리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창세기 3장으로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화된 것들을 연극과 뮤지컬로 만들어 아이들을 직접 출연시켜 그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게 하고 치료해야 한다.
예레미야서 33장1절, 여호와의 말씀이 우리 예수사랑교회 그루터기들에게 임했다. 2절,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들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땅에 남은 자로서 먼저 영혼을 치유 받으라.” 남은 자가 치유될 때 순례자의 길을 가게 된다. 하나님의 여정을 따라가는 임마누엘의 사람에게 전도와 선교로 땅 끝까지 정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을 갖게 된다. 우리 자녀들에게 이것을 임하게 하신 것이다. 3절, 너는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짖으라. 예수는 그리스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여준다. 그 일이 6절이다. “너를 치유하겠다.” 창세기 3장의 누룩이 영혼에 퍼져있기에 이것을 치유해야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것이다. 그래야 성읍을 치료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 그루터기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치료시킬 수 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이 이 시대에 예수사랑교회를 사용하고 계신다. 장로님들이 후대를 위하여 쓰임 받고 있기에 렘넌트들 앞에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의 모델이 되어준다면 아이들 속에 그런 이미지가 들어간다. 더러운 것들이 아이들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금만 주의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 치유를 받지 못하면 살면 사는 만큼 의의 원수가 된다. 사도행전 13장10절,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하나님이 이루어 놓은 것을 믿지 않는 의의 원수요 그리스도의 바른 길을 다음 세대들에게 가지 못하게 어그러진 얼굴로 짜증내는 얼굴로 믿지 않겠다고 버티는 얼굴로 인생 사는 것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와 변화가 없으면 사도행전 16장18절의 대상이 된다. 몇 날 동안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고 괴롭혔던지 바울이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만다. ‘야, 사람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이 더러운 귀신아!’ 정확히 말하면. 귀신의 심부름만 하고 살면 안된다는 것이다. “내 속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쟁쟁거리며 인상 쓰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악하고 더러운 저주의 질병은 그리스도 예수의 영으로 내 몸에서 나가라!” 이렇게 싸워야 전도의 문이 열린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병들고 나쁜 열매만 맺는다.
실패하고 영적 침체에 빠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에게 우리 예수님은 사랑의 메시지를 던져주신다. 예수님의 그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았다. 고독의 몸부림을 치는 그의 심령을 건들지 않았다. “네가 목마르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분이 한 분 계신다. 그분은 영이시다. 그래서 영적인 침체 속에서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뜬다면 그분은 네 손을 잡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채워주신다. 그분은 영이시기에 진리와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나다.”
*형식주의, 외식주의를 경계하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자
교회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틀리게 하고 있다. 형식과 외식이 사람 속에 들어가 이상해진 상태로 교회를 다니고 있다.
교회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 믿는다고 한다. 기도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도하는 눈이 아니라 원망하는 눈, 핑계 대고 책임전가 하고 헛소리하는 눈이다. 또한 교리나 성경내용은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개인을 한번 점검해 보길 바란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혼란스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그리스도가 각인 안 되어 있다. 매일 틀린 말, 개소리만 하다가 “오, 하나님. 십자가의 사랑이 이제는 필요합니다. 저에게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고 하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사고치고 울며 기도하는 게 신앙생활이라고 여기는데 착각이다. 십자가 사건은 다 끝냈다는 것이다. 다 끝내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세상 것만 듣고 있다. 유대인의 누룩, 헤롯의 누룩을 주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오병이어, 칠병이어 기적만 있는 게 아니라. 10바구니, 7바구니가 남았다. 요한복음 6장35절,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으로 오신 분이다. 먹고 살기 위하여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누룩으로 살지 말고 본질을 가져야 한다. 본문의 짧은 문맥을 통해 예수께서는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다. 형식주의, 외식주의, 개소리하는 저들의 소리가 사람 속에 들어가는데 이런 누룩이 굉장히 무서운 것임을 말씀하신다. 헤롯이 왕복을 입고 금관을 쓰고 대단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들을 때 사기꾼 말이 사람 속에 들어가고 권력과 정치와 경제가 사람 속에 들어가 이상해진다.
→마가복음 8장15절, 주의할 게 있다. 정치, 사회, 경제, 과학, 지식 등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누룩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큰일나고 헤롯의 정치권력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비참해진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창세기 3장, 사탄의 사건을 모르는 자들의 누룩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창세기 3장15절을 모르고 사람 속에 율법이 들어가고, 창세기 3장15절로 뱀 대가리 깨뜨려야 한다는 복음이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않고, 제도, 법도, 규례가 사람
속에 들어간다면 심각한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형식주의자, 외식주의자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요한복음 8장44절이라고 못 박아 놓으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처로 받아들여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무지한 저주 속에 빠진다. 마태복음 27장25절, 그의 후손들이 어마어마하게 저주를 받는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그 저주, 재앙을 나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리라는 그 저주가 사람들에게 지금 사무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자들을 경계하고 주의하라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3장5절, 경건의 모양만 있는 전통주의자들, 규례를 가지고 나름대로 심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형식과 외식을 가진 자들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뱀 대가리 깨트리는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서는 돌아서라. 영적 싸움의 비밀을 모르는 자들은 형식주의요 외식주의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에 담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을 갖추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지만 자비도 없고 사랑도 없고 연합도 없고 원네스도 없다. 창세기 3장15절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진정한 복음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결국은 형식주의, 정치적이고 권력의 비리와 자신의 이익 속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위선적이고 외식적이고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종교적인 가면을 쓰고 사람들의 영혼을 노략하는 사탄의 종이 된다.
→눈에 안보이게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신앙생활 하는 방법, 중요한 답을 우리 예수님이 제시해주셨다.
눈에 안 보이게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게 굉장히 많은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른다. 아이들 속에 들어간 사탄의 것을 지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눈에 안 보이게 들어가는 것을 과학으로 의학으로 고쳐보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상태가 더 나빠질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있다. 영혼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다. 우리의 영혼을 우리는 책임 못 진다. 살리지 못한다. 이상한 게 들어가면 정신질환이 일어나고 분열이 일어난다. 눈에 보이지 않게 사람 속에 들어가는 흑암 세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색의 자랑이 눈에 보이지 않게 들어간다.
백화점 쇼윈도 앞을 지나가다가도 어떤 생각이 들어간다. 들어간 것이 생각난다. 그 생각에 잡혀 ‘지금까지 모아놓은 것으로 사버릴까? 아니지, 어떻게 모은 건데…’ 그 때 귀가한 남편이 “여보, 나 왔어요.”라고 하는데 못 알아듣는다. 그러다 남편을 보고는 순간 놀란다. 남편은 내심 생각한다. ‘저 여자, 왜 그러지. 내가 잘못했네. 실수했나.’ 그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다가 남편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농담 삼아 먹던 된장국을 ‘똥국이네.’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내는 상처를 받고 소리친다. “그래 똥국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들어가는 것이 살인의 무기가 되어 미움으로 더러운 감정의 흔적들, 상처들로 얼룩진 옛사람이 폭발한다.
이미 사람 몸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들어가서 지금 지옥이 영혼 속에서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성령님도 사람속에 들어가고 구원도 들어간다
엉망진창인 야곱의 가정에 눈에 보이지 않게 하나님의 역사가 들어갔다. 성령이 들어가느냐, 하나님의 역사가 들어가느냐, 구원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진다.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형식주의자들의 말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죽는다. 유대인들의 말이 들어가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노예가 된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택한 민족이라고 여기는데 착각이다. 아니다. 하나님은 지구의 중심에 있는 나라를 선택하여 열방에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시기 위해 유대인들을 택하신 것이다. 그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유대인들은 돈과 기술, 믿음을 가지고 짐승과 같은 이방인들을 죽이고 다른 모든 나라들이 황폐하게 될 때 여자의 후손 메시아가 오신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만의 전통과 율법, 규례와 제도 속에 갇혀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지금은 부흥하는 것처럼 보이고 승리하고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이루신 부활의 주가 오시는 그 때가 세상의 종말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정치, 경제,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것 같으면 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 하는가? 사람의 문제, 국가의 문제 등은 정치나 경제,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36절, 우리가 정녕이 알아야 할 사건이 있다. 전 인류를 구원하려고 오신 창세기 3장15절, 여자의 후손을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세계 모든 생명들의 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이것을 1인칭으로 가슴에 새겼던 사람들, 그 당시 열악한 갈릴리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계를 정복하셨다. 돈 없고 배경 없는 사람들이 “오직 내게 있는 것으로 나는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있어나 걸어라!”고 외쳤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들어갔던 누룩, 유대 사상을 그리스로 뽑아냈다.
사도행전 4장12절, 구원받을 수 있는 이름이 내 속에 들어가야 성령이 내주하고 역사하신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이름을 1인칭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게 역사하신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이름을 가져야 왕은 아니지만 영적세계 속에서 왕 노릇을 한다.
베드로전서 2장9절, 우리의 신분이 이렇게 돼야 정상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나쁜 누룩이 몸에 퍼져 있다. 무엇 때문에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가를 진짜 알면 그리스도 외에는 절대 다른 것 안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이다.
→유대인의 누룩,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
아브라함이 조상이라고 해서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위대하게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 전 세계를 살린 요셉이 조상이라고 해서 위대한 민족이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는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했을 뿐이다.
율법에 잡히지 말고 선민사상 속에 잡히지 말고 율법의 제도 속에서 갇혀서 허우적대지 말고 사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라! 유대인 히브리인들을 위해 히브리서를 기록했다. 히브리서 2장14~15절,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네 몸에 죽음의 세력. 마귀를 멸하시며. 사람들은 두려움에 갇혀서 안부 메시지를 보낸다.
나에게도 아침에 눈을 뜨면 메시지가 와 있다. “형님 목사님, 이거 꼭 들어보시고 조심 하세요. 그리고 꼭 이거 듣고 건강 챙기세요. 할렐루야!” ‘평소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암이다.’와 같은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날마다 보내온다.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을 치유하시고 사람을 재창조 하시는 분은 살아계신 그리스도 하나님뿐이다! 그런데 이런 누룩의 메시지들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보면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아니 왜 얼굴 색깔이 그래요. 검진 좀 받아보세요.” 내가 목사가 아니라 의사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영상들을 듣다 보니 내 몸이 이상한 것이다. 예수사랑 단체 카톡방에서 나가는 사람들은 회개해야 한다. 특히 개인의 메시지는 단체 카톡방에 올려선 안 된다.
구원 사역을 모르면 전통, 선민사상, 율법, 제도 등 무너지는 헛되고 헛된 것만 좇아가다가 삶을 다 허비한다. 십자가라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다 이루신 하나님의 능력, 부활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흑암 세력은 꺾인다. 창세기 3장15절, 출애굽기 3장18절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름으로 모든 저주와 재앙과 노예에서 출애굽 했다. 그 흐름 속에서 포로가 되고, 속국이 되고 갇혔다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임마누엘, 함께하신다. 그분의 이름 그리스도만 부르고 있어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속에 있으면 하나님이 의롭게 하시고 물 가운데 지난다 할지라도 물이 침몰치 못 할 것이며 불 가운데 지난다 할지라도 불이 사르지 못한다.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누룩이 들어간다
누룩이 들어가서 온 몸에 퍼지면 병들기도 하고 자포자기하고 영적 침체에 빠져 무기력 무능력해진다.
바리새인들에게 들어갔던 누룩 ‘창세기 3장’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들어가고 또 그것이 중세 교회에 들어가 교회들이 다 무너지게 되었다. 누룩이 몸에 들어가 버리면 이미 늦은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 들어간 것을 끊임없이 뽑아내는 훈련 속에, 기도 속에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마태복음 12장28-29절, 나는 여기에 증인이다. 언제나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있는 더러운 누룩, 귀신들을 내쫓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된다. 그 시작이 29절, 강한 자를 결박하는 것이다. 흑암 세력 사탄의 세력, 더러운 누룩들의 목을 따고 숨통을 끊어버린다. 이것을 안 하면 형식주의, 외식주의에 빠진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성령의 역사, 복음을 가지고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서 복음에는 점점 관심이 없고 뭔가 따지고 들면서 정죄하는데만 밝아져 틀린 질문을 가지고 틀린 신앙생활을 한다.
예를 들어서 섬기는 교회가 약해지거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찾아오면 ‘기도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예수사랑교회가 왜 이렇게 점점 약해지지?’라고 생각 하면서 불만, 불평, 이간하는 말들을 한다면 그게 바로 형식주의, 외식하는 자인 것이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서밋학교, 그루터기 운동, 세계 복음화를 하기에 빚이 있다고 하는데 아, 내가 헌신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해야 정상이다.
이런 사람이 복음 가진 자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다. 실컷 전도해서 새가족반을 마치고 각 부서 팀에 보내면 팀장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험담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오셨어요?” “어디 사세요.” “나이는 몇 살이고?” “결혼하셨어요?” “두 번째예요?” “집은 강남이세요. 경기도 성남이세요?”라고 질문하는 형식주의, 위선자를 팀장 시키면 교회는 박살난다.
아무리 연약해도 복음 믿는 사람이 제자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똑똑하면 뭐 하는가. 복음의 생각이 없으면 그 사람은 이미 형식적이다.
형식주의자들, 외식(위선)주의자들은 사람을 만나면 절대 답을 주지 못하고 버린다. 우리 예수사랑 가족들은 사람을 버리지 말고 사람을 도와주고 치유시키는 전도 제자가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10바구니, 7바구니가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축복의 대열에서 축복받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마침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형식주의와 외식주의를 경계하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허락해 주셔서 이제는 신앙생활을 똑바로 할 수 있는 깨달음을 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제는 주일날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 몸에 성령 충만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음을 실감하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 말씀으로 한 사람에게라도 말씀 포럼 해서 그 사람을 치유시키고 살려 내겠다라는 절대가 우리 영혼 속에 성령 충만으로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 때 받은 말씀을 포럼하기 위하여 생각 속에 두어뒀던 그 말씀까지 이제는 기도로 연결 되어져 내 생애에 변화의 역사, 거듭남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 속에 놀라운 무한한 응답을 체험하도록 성령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내 몸의 형식주의와 외식주의로 부풀어져 있는 이 누룩을 이제는 제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비밀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우리가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 주셨사오니 왕권과 제사장권과 선지자권이 날마다 우리 몸속에 역사할 수 있도록 성령 충만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래서 나를 내 마음대로 못 하게 하는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는 영적인 군사가 되게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영혼에 생각에 각인시킴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의 일 속에서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영적침체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채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기쁨을 잃어버려, 늘 사람을 괴롭히고 교회 안에 다툼만을 일으키는 이상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도록, 예배를 통해 내 속에 퍼진 나쁜 누룩, 형식주의와 외식주의를 보는 영적인 눈을 뜨고, 뱀의 머리를 깨트리는 창3:15 복음의 본질을 소유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내 속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경계하고, 말씀포럼을 하기 위해 주일에 받은 말씀을 기억하여 기도로 연결하고 될 때까지 그리스도를 불러,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역사 속에 영혼이 치유되고 하나님의 여정을 가는 순례자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참된 믿음에서 이탈하지 않고 두고두고 하나님의 응답과 은혜를 받아 누리며, 나를 통해 후대 속에 찬양의 이미지가 들어가 시대의 영웅이 되는 증인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