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창대하리라"
(창/创 22:11-24)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인생 여정에 항상 이 힘을 가지고 출발하면 문제 될 일이 없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몸으로 체험했다.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누구도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 수많은 역경을 견디고 아브라함이 몸소 체험한 하나님이 “예수는 그리스도” 였다. ‘아, 예수는 그리스도, 영원한 하나님 이시구나’ 이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것을 체험하지 못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유리방황하고 있다.
본문, 창22:14 “예수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이다” 말씀하셨다. 모리아산, 골고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 산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준비해놓으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 고백으로 회개했을 때, 그의 인생 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를 더 크게 느꼈고, 더 많은 환희와 기쁨을 만끽하며 남은 생애를 멋있게 누리다가 하나님 나라를 갔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극이 희극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고백했다.
*우리가 믿는 영원한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 삶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신다.
아브라함은 반복되는 범죄 속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 고질적인 삶의 어둠에 늘 잡혀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도 그를 향해 ‘나도 싫다’ 이렇게 표현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에게 늘 기대를 가지고 계셨다. 언제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를 향해 기대를 걸고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메시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사건을 통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간섭에 주목하라고 말씀하신다. 여러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내 삶에 간섭하시고 개입하시는지를 몸으로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면, 예수가 바로 나의 영원한 하나님, 나의 구원자, 나의 전능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브라함은 수많은 어려움과 어둠 속에 헤매다가 근본의 문제를 발견했을 때, 진실한 회개가 시작되었다. 창20: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수많은 인생 여정을 흘려보내고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근원을 추적한 메시지다. 자신의 실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근원을 찾아냈다. 요8:44이라는 유리벽에 갇혀 그분과 내가 일인칭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했다. 하나님이 내 삶의 환경에서 여러 가지로 간섭하며 여기까지 이끌어오셨음에도, 나는 원죄라는 유리벽에 두려움에 휩쓸리고 안된다는 부정적인 불신앙에 늘 빠져 두려움과 문제 속에 갇혀있었다는 그 근원을 아브라함이 찾아낸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불러내셨음에도 근원의 두려움으로 인해 불신앙에 빠져있었지만, 자신의 아내 사래를 하나님이 보호하시기 위해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건드리면 나라와 가문을 죽이겠다고 경고까지 하시면서 보호하셨다는 것을 아브라함은 체험했다.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 모리아산 곧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시는 그 하나님이 나의 영원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는 그리스도,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끊임없이 이 예배의 자리에 까지 끌고 와서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다.
창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아브라함을 향해 하나님은 나의 선지자, 나의 벗이라고 하셨다. 범죄를 저지른 아브라함을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대변해주셨다. 또, 상대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도록 강력한 권능을 입혀주셨다. 하나님은 범죄자인 아브라함이 변하기를 끝없이, 끝없이 기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앞에 설렘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죄악으로부터 돌아선 아브라함이 드디어 영적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창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드디어 본격적으로 자기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증거 흑암과 싸웠다는 것을 증명해주셨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흑암세력과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자기 의지력을 가지고 깡으로 매달려도 안 된다. 성경은 이미 창1:1~3에, 사람이 살고 있는 이 땅은 혼돈, 공허, 흑암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빛, 그 능력을 가지고 흑암을 결박시키라고 말씀했다. 그래서 반드시 영적싸움부터 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것을 놓치면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아비멜렉이 드디어 창21:22을 고백했다.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이상하고 못된 자라도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한 것을 발견했다. 아비멜렉의 나라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영향력을 아브라함에게서 받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동맹을 맺자고 한 것이다. 이것이 전도자인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 선지자로 부르셨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흑암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흑암은 혼돈, 공허, 흑암, 공중권세 잡은 자로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영적싸움을 하는 자는 하나님이 바다 모래 같이 창대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대적의 문을 취하라”는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흑암 세력을 결박하지 않는 자들을 영적싸움하는 자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같은 모래인데, 모래 중에서도 흑암을 결박하는 모래는 대적의 문을 취하여 창대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사랑교회 비밀이다. 모든 교회들이 흑암이 어디 있냐고 자꾸 묻는다. 예전에 수도방위사령부 군종 참모가 우리 예수사랑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 우리교회 집사님이 대표기도를 하는데 “관악산에 역사하는 흑암 권세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결박될지어다” 기도했더니 군종 참모가 나와서 메시지를 하는데 “관악산에 무슨 흑암이 있습니까?” 하며 비웃고 비아냥 거렸다. 그런데 그 주간에 군종이 5층에서 떨어져 자살시도를 했다. 헌병단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데, 왜 자살하려고 했냐고 물었더니 군종 참모가 자신을 너무 괴롭혀서 자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군종참모는 그 주에 잘렸다. 흑암이 그 군종참모를 장악하니까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것이 흑암, 공중권세 잡은 자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살인의 비수를 꽂고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흑암이 사람에게 스며들면 사람의 상태가 뱀 비늘처럼 서늘해진다. 우리는 이 시대 흑암을 정말 결박하는 기도하는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
창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무엇을 잘했는가?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것을 잘했다. ‘아, 내 사랑하는 내 아들, 내 독자가 아니라 당신의 독자, 품속에 있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게 되는 것이구나“
창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영원한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이 친히 독생자로 오시는구나.’ 여호와의 준비하신 산에서 조금만 무릎을 꿇어도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특권이 바로 기도다. 내면에 흑암으로 장악된 강퍅함과 무례함이 진짜 무너져야 하나님은 우리를 멋있는 선지자로 사용하신다.
*인생에 찾아오는 시험 앞에 “예수는 그리스도”를 고백하여, 내 삶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를 내 몸에서 체험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 번제로 드려야 하는 숫양을 발견했다. 창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3:15 예수가 바로 영원한 하나님, 우리의 진짜 구원자, 나의 참 아빠, 나를 만드시고 빚으시고 내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그 분이 바로 영원한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발견했다.
창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영원한 것을 준비하신 것을 깨달았다. 이것을 체험한 후부터 아브라함이 “영원한 하나님” 이라고 부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셔서 그 이름을 한 번만 부르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자기 고집으로, 시기, 질투, 열등감, 비교의식과 분노 속에만 살려고 하지,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무능과 무기력 속에 주저앉아있으면서도 부르지 않는 그 완악함이 어디에서 형성되었는지 아브라함은 찾아냈다. 죄가 어디서 오는지 그 근원과 시작, 출발을 찾아냈기 때문에 회개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번제할 어린 양을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셨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이 때부터 아브라함은 침묵의 환희 속에 영원한 하나님을 불렀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는 내가 기쁘게 해드려야겠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가 숨을 거두고 나서도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늙은 나이에 장가도 갔다. 이 땅에서 행복한 누림 속에 영원한 나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눈물 콧물 흘리며 슬퍼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14:1-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제 지나온 여정의 과거를 뒤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산, 모리아 산, 갈보리 십자가의 산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서 한 번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이 준비한 것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린다.
‘아, 창3:15이 바로 영원한 하나님이구나’ 이것을 아브라함이 발견했다. 창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이 고백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아들이 죽어도 살아날 것을 확신했다. 죽은 자도 살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독자, 사랑하는 아들도 말씀 앞에 순복하는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영혼에 새겨놓고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길 축복한다. 아브라함은 “예수그리스도, 그 하나님은 영생하시는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자기 몸으로 친히 그 하나님을 배웠다. ‘아,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구나. 아, 창3:15, 예수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이시구나’ 많이 넘어지고 타락도 하고 실수도 많고 잘하고 잘못한 일도 많았고 애매모호한 많은 일들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에 하나님이 간섭하셨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잘못된 삶을 살아보고 일어서보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 알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 삶에서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험은 하나님의 개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는 그리스도” 만 부르면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다. 아브라함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빨리 찾아내야 한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거리를 만나거든 하나님이 나를 개입하고 간섭하시고, 믿음으로 선택하시기를 원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결단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고전10:13,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즉각 “예수는 그리스도” 하라는 것이다. 시험에 빠져들어 가지 말고, 문제를 응답으로 바꾸는 “예수는 그리스도”, 약점을 응답으로 바꾸는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자꾸 부르면 된다.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다.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람이 마음에 믿어야 하는 것이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 다. 이것을 하면 의에 이르고 구원에 이른다. 또한, 롬10:11~12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차별을 두지 않으며, 부요함을 누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름을 정말 불러야 한다. 아파하지 말고,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자 되기를 축복한다. 실패를 여러 번 한 사람은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영원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면 아들을 모리아 산에 번제로 드리는 마지막 시험도 허용할 수 있다. 이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 드론으로 미사일을 쏘면 수 십 층 아파트가 한 방에 무너진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을 보면 그냥 자다가 죽는다.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흑암이 사람에게 스며들면 살인의 광기를 가지고 전쟁으로 세상으로 세상을 다 무너뜨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보았다. ‘아,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구나, 영원한 것이 있구나.’ 이것을 찾아냈다. ‘이렇게 살다가 죽었다면 큰 일 날 뻔했구나.’ 예수가 바로 영원한 하나님, 그 이름을 믿을 때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된다. 이것을 아는 것이 은혜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리스도가 있는지 없는지 그 하나로 결정이 된다. 모든 인간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무저갱으로 들어가고, 그리스도가 있는 자는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 그래서 영원한 자 앞에서 나 자신도 서야겠다는 절대 신앙을 가져야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신다.
창3:15 여자의 후손 예수가 우리를 위해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나를 포기하는 십자가가 있어야 한다. 영원한 하나님, 그 사랑을 잊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많이 부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는 그 시간에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천 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다. 교회들이 얼마나 더러운 세상의 것으로 말초신경을 건드려놨는지, 죽음의 사선을 넘어가는 자들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죽음의 상태에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게 된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만 부르는 것이다. 그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의 나타내심을 체험하게 되고, 우리 삶에 간섭하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모리아 산, 십자가 언약의 증거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 그 마지막 죽음을 당하는 순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창3;15 예수가 영원한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생명으로 우리 영혼에 영접할 때, 사망으로 생명으로 옮긴다고 요5:24 말씀했다. 흑암에 잡혀 일평생 죽기를 무서워하며 종노릇하고 질질 끌려가야 하는 더러운 운명의 길에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옮기셨다. 그래서 갈보리 산 그 옆에 세워진 곳이 예루살렘 성전이다. 갈보리 산 곧 모리아 산은 예루살렘 성전 바로 옆,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던 곳이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 임마누엘 그리스도로 함께 하신다. 그래서 자신에게 전도하면 “전도도”가 나온다. 창3:15 “예수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이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자기 몸에서 명확하게 발견을 했기 때문에 창20:13을 고백했다. 자신이 두려움과 불안, 낙심과 절망, 열등감과 연약함이 자기 몸에 스며들어 움직였다는 것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드디어 창20:17의 기도를 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영적싸움의 기도를 본격적으로 했을 때 “전도도”가 나와서 창21:22 외부 사람에게 드디어 영향력이 나타났다. 그래서 불신자가 인정할 만큼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이것을 계시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불러 창21장까지 계속 끌고 오다가 창22장 클라이맥스, 마지막 시험을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을 골고다, 갈보리 산 그 언덕까지 끌고 올라오게 하셨다. 창3:15, 그 예수가 여자의 후손 예수가, 영원한 하나님이 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 사망권세를 멸하시려고 십자가에 걸려 죽으셨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발견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예수님은 나의 동반자~’ 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했더니 노년에 장가를 또 갈만큼 누림이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야할 누림이다. 아브라함에게 찾아오는 시험은 그의 인격을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래서 우리 아내가, 남편이 악질일 수 있고, 이상할 수 있지만, 흑암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기도하고 흑암을 꺾으면 된다. 여자의 후손, 그 예수님, 영원한 하나님이 이렇게 이뤄 가신다는 것을 하나님이 갈보리 산에서 보여주셨다.
창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남은 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할 만큼 아브라함이 달라졌다. ‘영원한 하나님이 이 갈보리 산에 계시는데 내가 어디로 가오리이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면, 대적의 문을 취하리라는 하나님의 맹세를 받을 뿐 아니라 미래 응답을 보는 응답의 주인공이 된다.
하나님이 이제는 아브라함에게 맹세를 하신다. 창22:15~16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맹세를 하셨다. 창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엄청난 축복을 주시면서, 너의 씨가 남은 자가 될 것이라는 맹세를 하나님이 직접 하셨다. ‘예수님은 나의 동반자, 내 생애 최고의 선물, 예수님의 만남이었어’ 이것을 인정하면 하나님이 맹세하신다. “너는 대적의 문을 취하리라” 이런 맹세를 받은 자를 누가 당할 수 있으며,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부르시고, 자신의 언약을 위해 선포하시고, 맹세까지 하셨다.
마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이 왜 기도하셨는가? 도망가고 배신하는 저들을 위해 하나님에게 맹세를 요구하셨다. 그들을 멸절시키지 않겠다는 것을 맹세해달라고 하셨다. 이 맹세가 4천년 후에 다시 나타나 하나님의 맹세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마26:37-39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아버지의 원, 맹세가 무엇인가? “네 씨들이 대적의 문을 취하리라” 그래서 하나님이 잔을 옮기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이런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마26:45~47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창3:15,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독자로 오셔서 이 모리아 산에 숫양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구나’ 아브라함이 이것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맹세를 받았기 때문에 나를 팔아도 괜찮다고까지 하신 예수님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먹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부르는 자가 되라. 이 세상은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마음에 새겨놓고 기도하는 사람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만이라도 하나님의 맹세, 하나님 자신이 선포하신 그 메시지를 응답으로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창22:16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브라함의 말씀이 되었다. ‘내 아들, 내 사랑하는 내 독자 이삭 대신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내 독자 이삭을 위해 죽으시는구나. 내가 죽어야 될 이 기구한 운명의 저주와 굴레에서 하나님이 날 위해 죽으셨으니 내가 그 몸에 있어야 되겠구나.’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말씀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못하는 것은 완악한 흑암덩어리, 하나님 앞에 정말 무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일에도 겸손하고 낮아진 자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 몸에 받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자기 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되었다. 그 때 하나님이 맹세하시고 아브라함과 하나가 되어 언약을 성취시켜가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 영혼 속에 왜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야 하는가? 예수가 나의 영원한 하나님, 내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 내 인생의 참된 구원자, 나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이제 유리벽 사랑을 깨뜨리고 그리스도와 일체화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구하고 분석하고 의심하고 갈등하는 분이 아니다. 의심하게 만드는 것을 그리스도의 망치로 깨버리고 더 이상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 아침마다 신선한 우유는 마시면 된다. 그것을 테이블에 부어서 현미경으로 분석한다고 영양분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먹으면 내 몸에서 체험이 되지만, 먹지 않으면 체험할 수 없다.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자기 언약 안에서 아들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
모리아 산에 숫양이 되어주셔서 내어주신 그 사랑을 현장에서 몸으로 체험하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그러면 “너는 대적의 문을 취하리라” 말씀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면 대적의 문을 취하게 된다. 그래서 전도자의 상급이 큰 것이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가지고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면 영원토록 빛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설계도 해주고 편집, 디자인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삶을 자꾸 빛나게 해주신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하기 때문에 대적의 문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사업이나 육신의 일들은 알바 하는 식으로 하면 된다. 진짜 우리의 본업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런 자를 ‘남은 자’ 라고 한다. 사10: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신33:19 “그들이 백성들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이제 모래가 진주가 되는 엄청난 비밀을 담은 자가 되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더니 대적의 성문을 취하는 자,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존재들의 리더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맹세를 받았다. 오직 언약의 후손, 여자의 후손 예수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 받는 맹세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을 베드로가 고백했을 때, “바요나 사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 하늘 문을 열어놓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 속에 그 입으로 그리스도를 시인하게 했으니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하게 되었다.” 약속하셨다. “나의 말을 준행 할 자가 대적의 문을 취하리라” 그래서 올바른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는 어떤 인생의 걸림돌에도 아무 상관이 없었고, 말씀의 성취대로 대적의 문을 취하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학벌이 가장 낮은 어부 출신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들고 서 있는 것이 로마 바티칸에 증거로 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고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듯이, 예수사랑 전 가족이 전도 훈련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 그것도 복음의 말씀, 살리는 말씀이 되었다. 이런 사람을 이 시대 ‘증인’ 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인생 여정에는 반드시 엄청난 이정표가 따라오게 되어있다. 바울에게 그 찬란한 마게도냐 문화가 “와서 우리를 도우라” 요청했다. 그 높은 철학과, 문화의 수준이 바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사랑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자 훈련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바로 이 시대 대적의 문을 취하는 주인공이 되는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선물하기 위해 지경을 넓혀주셨다. 창22:18~19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75km 떨어진 브엘세바로 옮겼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오늘날 애굽 가까운 곳까지 장악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삭의 미래까지 어떻게 움직여갈 것인지 알려주셨다. 창22:20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을 그냥 흘려듣지 않았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말을 듣게 하셨을까?’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냈다. 그래서 창22:23 리브가를 찾아내고, 훗날 하나님은 이삭에게 리브가를 붙여주셨다. 그러면서 여자의 계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브라함이 ‘리브가를 낳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여덟 형제 중 여자 하나를 낳았는데, 그가 리브가 였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먼 미래를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힘까지 얻게 되었다.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을 창22장을 통해 보게 되었다.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이 찾아낸 믿음이 무엇이었는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고 사랑하며 헌신하면 하나님은 대적의 문을 취하도록 맹세를 걸고 축복하신다. 이것을 히11:17~19 바울이 명확하게 기록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창3:15 여자의 후손, 예수는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몸소 그 하나님을 체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 이름을 많이 부르면 부를수록, 부르는 만큼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동행하시고 함께하시며 전도도 하고 귀신을 내쫓는 권세도 주신다.
[기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영적인 왕의 권세를 허락해주셔서 이제는 사탄의 권세, 귀신의 세력, 이 원수들을 제압할 수 있는 그 권세까지 사용할 수 있는 기도의 힘을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제는 제사장의 사명까지 허락해주셔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참으로 지역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는 주인공으로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만나는 길을 허락해주셨사오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이는 나의 선지자'라고 인쳐주셨사오니 우리들에게도 이렇게 동일한 삼중직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일을 살아가는 동안 마음껏 누리며 사용할 수 있고 선포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를 누리면 누리는 만큼 흑암이 꺾인다라는 이 엄청난 비밀을 우리들이 이제는 발견했사오니, 그리스도를 24 누림으로 운명이 바뀌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드리는 이 예배는 대적의 문을 취하는 축복이 담겨있음을 확인했사오니, 이미 우리를 대적의 문을취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우리를 인쳐주셨사오니,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의 후대들이 살아나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의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 목적을 발견했사오니, 이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순종하는 끝없는 사랑을 가슴에 새겨놓고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반복되는 문제 앞에서 의심하며 어둠에 끌려 사는 인생에서 빠져나오도록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수가 그리스도” 이 고백을 부르기까지 이끌어주신 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창세기 3장15절의 하나님을 내 몸에서 체험하여, 어떤 문제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흑암을 발견하여 하나님 앞에 본격적으로 기도하는 결단 속에 지금도 내 삶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며 믿음으로 선택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계획과 사랑을 느끼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참된 구원자, 나의 주인이 되셨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 몸에 받지 않고 마음에 새기지 않는 무례함과 강퍅함을 무너뜨리고, 이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달하는 자로 나를 부르셨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여, 대적의 문을 취하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를 누리는 한 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