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자녀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
(창/创 21:1-7)
“예수는 그리스도” 이 고백을 할 때, 아무런 역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 고백은 재앙을 막는 능력, 사망권세에 잡히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절대 비밀이다. 세상의 불신자들은 예수가 왜 그리스도인지 몰라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고, 교회 다니는 성도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비밀을 알지 못한 채 교회만 다니다가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이 비밀을 모르면 육신적으로 보고 듣고 떠들다가 신앙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열매도 없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불신앙의 사람들은 사탄의 밥이 되는 것이다. 육신적으로 뭔가를 보고 듣고 말하고 떠들어대는 인생을 살면, 결국 ‘내가 인생을 참 더럽게 살았구나’ 나이 들어 이것을 스스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왜 그리스도인지를 알게 되면 사는 날 동안 전도와 구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멋있는 언어로, 새 방언으로 선포하는 자가 된다.
지금까지 우리 마음과 생각에 자꾸 이상한 것을 쌓아 엉망진창으로 신앙생활을 해왔다면, 이제는 성경에서 주신 해답, 방법 중의 방법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며, 인생 여정에 점점 부요케 되는 축복을 체험하게 된다.
*요셉은 창3:15을 가지고 꿈을 꾸고, 이미지와 비전을 가졌다. 말씀을 믿는 절대 순종 속에 있었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삶에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런데 그에게 찾아오는 운명의 시간표는 인신매매, 형들로부터 왕따, 노예 이런 것뿐이었다. 심지어 갑질하는 주인의 부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해야 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약을 가졌는데 오히려 이런 이들이 계속 찾아온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인생의 슬픈 학대와 알 수 없는 거짓과 모함으로 감옥 생활을 해야만 했다. 감옥을 가서도 부당한 재판을 받아야 했고, 알만한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해야 하는 슬픈 운명으로 가고 있었다. 인간으로서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 창39:2, 모든 고통의 순간을 몸을 당하는 요셉 향해, 성경은 “형통한 자”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이 함께 함에도 요셉은 모든 고통을 당했다. 그런 하나님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요셉은 고통 가운데 던져진 삶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일까, 수많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고통과 배신, 성추행의 사건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오히려 재미있게 바꿔버렸다. 창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불신자들이 요셉을 보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향력을 느꼈다. 육신적으로 보고 듣고 말하지 않고 그는 언제나 침묵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을 통해 재미있는 인생을 살았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친 아빠 되셨고,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가 되어주셨는데 왜 그렇게 재미없게 인생을 사는가. 재미없게 살았던 하갈은 율법주의자가 되고 재미있게 살았던 사라는 복음주의자가 되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척하며 얼굴 찌푸리지 말고, 나의 구원자, 내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웃는 얼굴로, 재미있는 인생으로, 감동이 있는 인생으로 바꿔가길 축복한다.
누가 우리 영혼을 재미없게 장악하는 그놈이 마귀다.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며 재미없는 인생으로 전락시키는 그 놈을 깨뜨리는 자가 되라. 어린 요셉은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가슴에 새겨놓고 어떤 일을 당해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떠들어대지 않았고, 엉망진창으로 살지 않았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어떻게 느끼는가를 현장에서 재미있게 누렸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 모든 문제를 다 가져오라고 말씀하신 분이 요16:33 “너희가 세상에서 여러 가지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나와 함께한다면 반드시 이기는 것이다.” 말씀하셨다. 그래서 부당한 일들이 우리 삶에 찾아왔다 할지라도, 억울해하지 말고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마귀의 일을 멸하신 그리스도가 세상을 이기셨음을 믿어야 한다. 현장에 배후에는 옛 뱀 곧 마귀, 온 천하를 꾀는 자, 세상 신, 세상 임금이 나를 속인다는 것을 알고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는 그리스도의 날을 날마다 맞이해야 한다. 요셉은 복음의 참된 본질을 찾아냈고, 아브라함도 여러 사건을 통해 복음의 본질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요셉은 드디어 하나님의 계획을 보게 되었다. 자신을 앞서 애굽 땅에서 보내셔서 이스라엘 가족들을 애굽의 강대국 속에 인큐베어터처럼 보호하시려고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70명의 가족이 200만명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다. 430년 동안 깨달은 사람에게는 애굽 땅에서 즐기고 출애굽을 했고, 깨닫지 못한 사람은 430년 동안 노예로 전락했다. 광야에서 죽을 만큼 재미없게 살았다. 이스라엘의 200만 명 중에 젊은이가 당시 63만 명이었다. 그런데 결국 광야에서 모두 죽고 2세만 가나안을 들어갔다. 재미있게 살았던 사람만 들어갔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재미있게 즐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가진 엉터리 신앙, 육신적인 것 이런 것을 보고 듣고 수다 떨다가는 다 무너진다. 참된 복음의 본질을 붙잡을 때 형통해지는 축복을 받는다.
*창3:15의 하나님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를 웃게 하신다.
믿음의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을 들여다만 보고 재미있게 살면 하나님은 응답해주신다. 창3:15 복음의 참된 본질,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 기다리는 것이다. 왜 기다리는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의 아들을 통해 다 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호들갑 떨게 만들고 엉터리 신앙으로 끊임없이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하는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집중을 가져야 한다.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는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 이름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기도가 생긴다. 그 기도를 통해 영육간에 강건함의 축복이 시작된다.
하나님을 떠나 죄의 권세로 장악되어 사탄에게 늘 공격을 당하며 살아야 할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되었다. 전3: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돼지보다 못한 운명이다. 그래서 자신이 짐승과 다름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매 순간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똑똑하고 잘나고 멋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은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 앞에 교만한 사람은 ‘패망의 선봉자’라고 했다. 창3장 사건을 통해 이제 우리가 진짜 짐승보다 못한 자, 돼지, 메뚜기보다 못한 자로 전락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원수를 맺고 전쟁의 난폭함, 살인과 거짓으로 잔인한 자가 되었다. 짐승은 그렇게 잔인하지 않다. 사자들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먹을 것을 쌓아놓고도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빼앗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창3장 사건 이후,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애완동물을 사랑하는가? 사람들이 싫어서다. 차라리 개하고 뽀뽀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사람하고 뽀뽀해봐야 찾아오는 것은 배신, 성추행, 인신매매, 이런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우잡이로 팔고, 집에 팔고, 노예로 팔고, 아니면 사람을 죽이며 장기매매까지 하고... 얼마나 인간이 잔인한가.
그리스도를 우리 몸에 집어넣을 때, 우리는 웃는 존재, 재미있는 존재로 멋있게 살 수 있다. 내 몸에 요8:44를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몸에 요8:44가 존재하고 있는 인상 모든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다. 그러나 우리 몸에 요1:12 그리스도가 영접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면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이 주신 형통함속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을 누리는 역사가 시작된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창45:5 요셉이 인신매매, 배신, 성추행범으로 오해를 받는 억울한 재판, 왕따를 당하는 일, 그렇게 수많은 일을 당했지만, 자신의 모든 과거를 축복의 발판 삼아 이렇게 고백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전 지구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모든 생명들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나 역시도 과거에 골목골목마다 더럽고 추한 죄를 범했던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영혼을 사랑하는 것에는 누구보다도 강한 심령을 가지고 있다. 육신적으로 분명히 밉지만 누가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사탄의 머리를 밟고 끝낸다. 그래서 나는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기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이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받을 상속자가 되었는데 왜 기쁘지 않는가? 내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하갈, 이스마엘이 된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이었다.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구원의 선물을 영혼에 채워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어떤 상황에도 그것을 형통함으로 믿고 기도 속에 있으면 우리는 정말 감사할 수 있다. 육신적으로 보고 듣고 수다 떨지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한다. 절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는다면, 범사에 잘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에도 여러 일을 당한 요셉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형통함’이라고 표현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웃는다면, 재미있게 산다면, 사탄은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다. 우리가 재미없이 사는 것은 사탄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재창조가 되었는데 왜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 않고 마귀에게 잡힌 영을 가지고 사는가? 지저분한 것을 빨리 내버려야 한다.
우리가 자꾸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엉터리 신앙이다. 이런 신앙에서 답을 내고 정리하는 방법은 “예수는 그리스도” 이 하나 밖에 없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이 답이 없으면 우리 몸에 있는 3저주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 이렇게 삼중직을 주셨다. 참 선지자,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참 제사장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은 어떤 일을 당해도 저주와 재앙을 꺾어버리는 하나님의 힘을 가진 자가 된 것이다. 어떤 어둠이 우리를 덮어도 우리 영혼 속에 빛이 있으면 끝난다. 마귀의 일이 강해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지만 우리에게 뱀 머리를 깨뜨리는 왕권만 있으면 문제 될 일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떠들어대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부르고 기다리고 그 이름에 집중하고 도전하면 된다. 그러면 반드시 열린다. 전3:20~22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안개보다 짧은 인생이다. 딤후3:5 하나님은 율법주의 자들을 향해 “경건의 모양은 잘 갖추고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 재미없게 사는 자들에게서는 돌아서라” 하셨다. 짧은 인생, 기뻐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이 사는 사람들과 붙어있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육신적으로 알아듣고 “목사님, 그럼 저를 괴롭히는 남편을 버리고 도망갈까요?” 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 속에 정말 재미를 먼저 느끼는 사람이 되면 남편도 괴롭히지 않는다. 부인이 재미없게 살기 때문에 남편도 재미없는 것이다. 재미있게 살면 되는데 ‘주여, 아버지~~~’ 하니까 남편이 징그럽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 앞에서 하지 말고 임마누엘로, 정말 믿는 자가 되면 재미있는 인생을 산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늘 역전 인생을 살았더니 이삭을 볼 때마다 두 사람은 웃음을 잊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이삭 이름의 뜻이 ‘웃음’ 이다. 이삭을 볼 때마다 웃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다. 인생의 역전이 바로 웃음이다. 짐승보다 못한 우리에게 재창조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 속에 집어 넣어주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인생을 살면 사는 만큼 견고한 믿음만 갖게 되었다. 그들에게 찾아온 수많은 사건은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것이 은혜로 풀어지면, 그리스도로 풀어지면 정말 재미있게 살 수 있고 모든 것이 메시지가 된다. 모든 것을 복음으로 풀고 복음으로 뇌를 살리면 영육간에 모든 것이 회복된다.
히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우리가 당해야 하는 모든 시험과 고난을 다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시험과 고난, 환란을 당해도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만 부르면 능히 우리를 도우실 수 있다. 그래서 수다 떨지 말고, 이 말 저 말 엉터리 신앙으로 가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고백해서 우리 영혼부터 정리해야 한다. 마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어떤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지구에 어떤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도 엉터리 신앙을 가지고 살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바르게 정리해야 한다. 사26:11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오나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들을 사르리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축복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사26:12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창3:15에 뿌리 내리는 믿음을 가지면 엄청난 은혜가 우리에게 시작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아브라함과 사라는 받을 수 있었다. 믿음의 뿌리가 신비주의, 율법주의, 박애주의가 아니라 창3:15이었다. 창18: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아, 하나님이 창3:15로 끝마치셨구나. 그렇다면 나는 그분이 하실 일을 고요히, 잠잠히 기다리면서 “예수는 그리스도”로 정리하면 되는구나’ 이것이 기도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서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을 받고 있었을 때, 무너질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그의 조카와 가족들을 보호하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엉터리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 제발 제발 소돔이 멸망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 조카 살려주옵소서~’ 오두방정을 떨면서 방언을 하고 매력 없이 도망 다닌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켜버리고 불살라 버렸다. 아브라함에게는 그것이 응답이었다. ‘나는 창3:15로 끝내면 된다’ 이것 하나 가졌더니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아브라함은 요19:30을 믿었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놓으셨다. 그래서 요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재미있게 인생을 살았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모두 시달리고, 답은 하나인데 질문이 너무 많다. 질문이 아무리 많아도 답은 하나밖에 없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창19:29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모든 문제를 말씀으로 끝마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가만히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속에 사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거기서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싸가지도 없고, 배은망덕하고 뻔뻔한 자, 완악하고 무식한 자, 짐승보다 못한 자를 하나님이 끌어내셨다.
창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하나님은 사기를 친 아브라함을 변화해주고 오히려 나의 대변자, 나의 선지자로 하셨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두고 어떻게 재미없게 살 수 있는가? 구원의 하나님이 우리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고 하는데도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똥파리 보다 못한 존재다. “그가 너를 위해 기도하면 네가 살고 네가 만일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모두 반드시 죽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너를 속인 것이 아니다. 지금 나의 계획 속에서 진행하는 일들이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는 정말 사랑해야 한다.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끝없는 사랑이 우리 영혼에서 춤을 춰야 한다. 창3:15이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창3:15의 하나님, 여자의 후손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이렇게 기도해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과 감사, 감동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기도에 빚진 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기도하라고 부탁하셨다. 기도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빚 갚는 사람이다.
기도하지 않는 인간은 동물보다 못한 존재다. 눅9:23, 언제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을 예수님이 제일 좋아하신다. 당신의 기도로 우리를 끌고 가시는 비밀이다. “네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너의 자아를 부인하고 너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라오라” 그러면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불신자의 날로 데려가고 싶어도 못 데려가신다고 싸인해 놓으셨다. 내 자아, 내 맘대로 사는 것이 하갈과 이스마엘이고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웃으면서 기쁘게 사는 사람을 사라, 아브라함이라고 한다. 기쁘고 재미있게 사는 아브라함은 과거를 들춰내지 않고 멋있게 인생 여정을 갔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네가 옛날에 그렇게 해서 그래!” 과거를 들춰낸다. 기억력이 좋지도 않으면서 늘 더러운 감정을 가지고 과거를 끄집어낸다. 이런 것은 전부 사탄이 원수 맺게 하려고 참소하는 것뿐이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감격과 감탄이 있어야 한다. 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면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된다. ‘좋아!’ 이렇게 늘 외치면 질병도 나가고 찌질한 것도 사라진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좋아!’ 하고 어린아이처럼 소리치고 자아를 부인하면 된다.
롬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우리는 이미 죄와 사망의 법에서 모두 해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노래하면 된다.
우리가 왜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가?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지 않으면 감격도 없고 기쁨도 없고 재미없이 살아야 한다. 우리가 왜 재미있게 살아야 하는가?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근본 하나님의 본체되신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어디에서 찾겠는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언제든지 총알맞은 것 같은 충격과 감탄, 감격이 있어야 한다. 근본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낮고 천한 종의 형체를 가져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기구한 운명의 굴레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지옥의 법에서 우리를 완전 해방 시키셨다.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어떤 일을 당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래서 이제 우리는 빌3:10을 향해 가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가장 낮고 낮은 자였던 내가 그리스도를 갖게 되었다는 감격 속에 있으면 모든 것을 통과할 수 있다.
벧전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모든 문제 해결자를 느껴보라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것처럼 3일만 잠잠하게 있어 보라는 것이다. 그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을 체험하듯이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게 된다. 살다 보면 지긋지긋한 인간들,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안되면 그냥 내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 된다. ‘내가 죽자’ 그러면 문제 될 일이 없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런데 ‘내가’ 본다고 하는 것 때문에 살인의 레이저를 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는 생명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재밌게 살아라. “모든 문제 끝, 나는 하나님의 자녀!” 늘 재밌게, 감격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습관적 실패를 그치게 하셨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따라왔던 불신앙, 이상한 체질로 살았던 모든 삶의 방법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 하나님은 약속대로 진짜 웃게 하시는구나.’ 100세에 이삭을 낳고 이것을 알게 하셨다. 사라가 괜히 슬픈 척하고 ‘나는 왜 이렇게 애가 없는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저주를 내리셨나봐요’ 이렇게 하지 말고 그냥 웃으라는 것이다. 괜히 자기가 보고 듣고 말하고 엉터리 신앙을 가져서 하갈을 데려다가 애를 낳은 자신이 참 어리석었다고 깨닫고 자신을 바라보고 자기가 또 웃었다. 이런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 것이다. 25년의 우여곡절 속에 창3:15 믿음의 뿌리를 내렸더니 웃게 하셨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깨달으면 된다. 창21: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90세 할머니가 젖을 먹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은혜다.
*하나님은 복음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창3:15 뱀 머리만 깨뜨리면 웃게되고 기뻐하게 된다. 복음으로 이루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혼내시지 않았다. 복음적으로 응답을 주셨다. 사람의 힘이 아니고 사람의 노력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복음으로 믿음의 뿌리를 내리면 웃는 자가 된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뤄보려고 하갈을 데려다가 동침을 시켜 애를 낳은 것, 이런 것이 율법주의다. 그런데 오늘날 신앙생활이 전부 이런 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이루시고 성취시키신다. 그래서 우리는 웃고만 있으면 된다. 세상 유행가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했다. 그런데 우리는 눈물이 날 때도 웃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 스스로가 복음을 성취시키고 해결했는가? 아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이뤄가시는 것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 하갈은 율법주의고, 사라와 이삭은 복음주의라고 말씀했다.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할 때 얻은 아들을 하나님이 복음적으로 주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과 환경, 사탄과 영적싸움을 하면서 기다리고 도전하고 집중했더니 하나님이 아들을 주셨다. 그리고 이제 주신 아들을 ‘웃음’ 으로 키우라고 하셨다. 자녀들을 인상 쓰면서 키우지 말고 웃음으로 키워야 한다. 이것이 복음주의다. 내가 대통령으로 키워보겠다고 해서 자녀한테 늘 “공부해 공부해!” 해서는 안된다.
약속대로 얻은 아들을, 생명으 포기하고 웃으면서 키우라고 하신다. 그래서 8일 만에 할례를 주었다. 백 세에 얻은 아들인데, 핏덩어리에게 할례를 주었다.
절대 믿음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신다. ‘예, 알겠습니다’ 하고 바로 할례를 행했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순종하면, 신분권세를 가지고 현장에서 말씀대로만 살면 산업에 기적이 일어난다. 그런데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것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웃으라고 해놓고 또 포기하라고 하셨다. 현장에 생명을 던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인생을 사는 것처럼 억울한 일이 없다. 하나님을 믿고 살 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라는 죽는 날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았다. 재미있고 감격과 감탄, 감사, 희열 속에서 살다보니까 “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쳐라!” 해도 ‘좋아!’ 라는 말을 진짜 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우리는 언제든지 “좋아요, 아멘!” 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 농담하십니까? 12년동안 키워놓고 또 모리아 산에 내놓으라니 무슨 말이십니까?!’ 하지 않았다.
종들을 불러놓고 하나님 앞에 잘못한 자가 누구인지 찾으면서 금식하고 회개하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이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 것이다. 회개는 환번으로 끝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오면 끝이다. 그리고 우리는 웃으면 된다. 회개는 늘 반복적으로 하라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니까 또 재영접설이라고 시비를 거는 자들이 한국 기독교 교단이었다. 그리스도를 날마다 영접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정말 구원을 받지 않고 늘 시비만 거는 자들이 많다.
습관적 실패를 그치게 하는 비밀은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에 절대 순종하는 것이다. 히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영적싸움에 집중하고 기다림 속에 도전하는 사라를 하나님이 돌보시고 권고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믿지 못했던 사라를 하나님이 돌봐주셨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면서 하나님께 집중하고 기다리며 도전하는 때 하나님이 돌봐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믿지 못한 사라에게 하나님은 이 고백만 했더니 힘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사라의 부정하는 말을 부정하지 못하게 재확인까지 시켜주셨다. “네가 웃었느니라. 장막 뒤에서 네가 웃었느니라” 그랬더니 사라가 놀라서 순간 “아니옵니다” 했지만, 권고를 받아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미쁘신 줄을 믿었다. 속으로는 믿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절대 사랑을 받으면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과 환경, 사탄과 영적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이 일을 했던 사라를 하나님이 권고하시고 힘을 주셨다. 사라에게 이삭을 태어나게 할 힘을 주신 것이다. 심령을 파산시키지 않고 말씀 따라 아기를 탄생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다.
말씀을 믿고 기도로 연결만 하면 하나님은 모든 은혜를 주신다. 창21: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말씀하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창17:21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그래서 사라는 유모를 둘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젖을 먹이면서 그동안 하나님의 히스토리, 말씀을 이삭에게 넣어주었다. “지난날 모든 과거, 너의 아빠가 실수를 두 번씩이나 하고 숨이 끊어지는 일들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나를 권고하셨다. 그래서 네가 이삭이 된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이삭에게 계속 한 것이다. “공부해!” 이런 수다를 떨지 않고 “너는 재미있게 살아라. 너는 웃으면서 살아라.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기뻐해라!” 이것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돌봐주신다. 웃게 하시고 이삭을 이삭으로 부르게 하셨다. 자신의 노력, 자신의 힘은 율법주의다. 복음적으로 순산케 하시고 젖을 먹이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키우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약속을 순종으로 화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약속의 자녀들을 웃게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우리들에게 보고 듣고 느끼며 이제는 좋아요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날들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한주간 어떤 인생의 역경의 문제들이 찾아올 때마다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절대 언약을 가지고, 좋아요 하면서 뱀의 머리만 깨뜨리는 가장 매력적인 그리스도인들로 축복해 주옵소서. 그래서 부활의 몸에 참여되어지게 하옵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 도성을 볼 수 있는 눈까지 열어주옵소서. 한 주간 주의 모든 백성들을 웃게 하여 주옵소서. 재미있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몰라 육신적으로 보고 듣고 떠들다가 교회를 다녀도 열매가 없고, 불신자는 사탄의 밥이 되어 엉망진창이 되는 짐승보다 못한 인생에서 빠져나와, 완전한 해답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을 얻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부요해지는 축복의 사람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어떤 문제든지 그리스도로 풀어내고 웃으면 사탄이 나를 건드리지 못하는 것을 알고, 육신적으로 호들갑떠는 엉터리 신앙을 깨뜨리는 일에 집중하고 창3:15에 뿌리를 내려, 그리스도 이름으로 도전하는 기도 속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누리게 하옵소서.
나를 괴롭히는 모든 시험에도 능히 나를 도우실 예수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고 복음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것을 믿어, 어떤 문제에도 “좋아요.”하며 그리스도로 풀어내는 말씀의 순종 속에 즐겁게 재밌게 사는 한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