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똑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질렀고, 이삭도 아버지와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 오늘 본문은 장소만 달라졌을 뿐, 과거의 일이 그대로 재현된 사건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두 번의 사건을 통해서 끈질긴 죄의 근본을 찾아내게 되었다. 내가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를 많이 했다. 주홍빛보다 더 붉은 이 죄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주셨다는 그 첫사랑의 믿음이 정말 컸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구원 받은 자가 되었다는 그 감격에 모든 세상의 일을 다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일만 위해 헌신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은혜가 사라지고 내 속에 똬리를 틀고 버티는 죄의 근성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까 내 인생이 더러운 현장에 머물러 있게 되었고, 갈등과 사색, 번민만 하고 있는 나를 찾아내었다. 아마 아브라함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원하지 않는 현장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보면서 ‘도대체 이게 무엇일까?’ 질문하다 죄의 근본을 찾아냈다. 창3장 사건을 통해 와 있는 원죄였다. 우리가 날마다 정시기도의 비밀을 갖지 못하면 더러운 현장에 머물러 갈등 속에 하나님을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나의 그리스도를 넘어보지 못하고 언제나 ‘나’라는 것에만 머물러 있다. 나로 인해 교회가 부흥되어야 하고 교회가 살아나야 하는데, 오히려 나로 인해 교회에 분열이 일어나고 헌신과 봉사가 없어지는 더러운 현장 속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브라함은 본문의 사건을 통해, 위기를 기회와 축복, 갱신으로 바꾸는 비밀은 오직 창3:15 속에만 있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나의 그리스도에 머물러 있었을 때 하나님 앞에 늘 질문 하나가 있었다. ‘하나님은 왜 나를 부르셨을까?’ 여기에 답을 찾지 못하면 나의 그리스도에 머물러 그냥 머뭇거리거나 무능력 속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왜 나를 예수사랑교회 장막에 머무르게 하셨는가? 많은 교회와 목회자가 있는데, 왜 특별히 담임 목사님과의 만남을 주셨는가’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한다. 교회에 대한 답을 모르면 교회에서 흐르는 언약적 축복을 상실하게 된다. 교회에 흐르는 축복을 받아야 나를 넘어 세계복음화를 할 수 있다. 교회에 대한 만남의 이유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면 교회에 떨어진 휴지 하나 주울 수가 없다 헌신, 봉사, 이런 것은 사람 눈치 보기 위해 척할 뿐이지 생명을 집어넣지 못한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예수사랑교회에 보내셨는지, 우리에게 왜 장로, 안수집사, 부교역자의 직분을 맡기셨는지 질문과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그러면 고후4:16 비밀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질문이 있어야 날마다 새로워진다. 질문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면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 사랑, 절제 모든 것을 갖게 되고, 하나님이 약속해놓은 모든 것이 우리 삶에 성취된다. 어떤 상황에도 낙심하지 않을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 그러면 문제 앞에서 조급하거나 답답하거나 설치지 않는다.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엡4:22~23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질문 속에 가치를 발견하면 날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진다.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가, 왜 이 시대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님과 만남을 주셨는가? 예수사랑교회 안에서 왜 나에게 이런 직분을 맡겨주셨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면 ‘아, 예수사랑교회가 유일하게 복음화 하는 교회구나’ 깨닫게 된다. 신학적, 교리적, 정치적으로는 종교 개혁이 있었지만 역사에 복음화는 없었다. 아브라함도 어설펐다. 우리처럼 현장을 가거나 세계복음화 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땅 끝에 도전장을 던지고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질문 속에 가치를 발견해야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엄청난 사람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복음의 파워를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세계복음화의 주역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후5:17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끝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정말 믿는가? 그렇다면 침묵해야 한다. 모든 문제 끝이라고 해놓고 육신적인 말을 하면 새로운 피조물로 살지 못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새 것으로 복음화 해야 한다. 예수사랑교회는 한 번도 율법이나 헌신, 봉사, 건축을 강조한 적이 없다. 오직 2024년도에 가장 필요한 것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을 주셨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살아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영적인 눈을 열어주신다. 시21:1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하나님의 자녀 된 엄청난 신분을 가지고 만왕의 왕의 이름을 사용하는 우리를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신다고 말씀했다. 시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뱀의 머리를 깨뜨릴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기 때문에 무서워 할 일이 없다. 새로운 피조물은 이렇게 보는 것이 달라야 한다.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우리는 생명의 빛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었다. 복음화 되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복음화 되면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마실 것을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
요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이 왜 우리를 예수사랑교회에 보내셨는지, 하나님이 왜 나에게 직분을 맡기셨는지 찾아내면 더러운 흑암의 현장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된다.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사랑교회는 종교개혁 하자는 교회가 아니다. 우리는 복음화 운동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 중직자들은 영적인 큰 눈을 뜨고 큰마음을 가지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무슨 일이 있어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갖지 말고 그리스도께 가져가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쉼을 얻게 된다.
창3:15 안에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엄청난 구원의 능력이 있다. 모든 교회가 복음을 부끄러워해도 복음화 하는 예수사랑교회 모든 백성들은 복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 복음화 하지 말라고 국가권력이 막고 우리를 어렵게 해도 ‘죽으면 죽으리라’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곧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러면 진짜 기도가 나온다. 우리에게 문제가 없다고 하면 기도가 나오는가? 밥 세끼만 먹어도 늘 여행하는 생각만 한다. 말을 타볼까, 기차를 타볼까, 배를 타볼까, 비행기를 타볼까, 땅굴을 들어가 볼까 한다. 피조물을 정복해야 할 사람들이 왜 답이 없는 피조물에 그렇게 끌려 다니는가. 예수사랑 가족들만이라고 롬1:16~17 속에 정말 감격해야 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정말 멋있게 그리스도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준다. 당신이 나로 인해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라’
대한민국에 복음화 운동이 그냥 된 것이 아니다. 많은 선배 목사님들이 일본의 압제와 공산주의 사상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목베임을 당했다. 공산주의가 장악해서 수많은 교회를 불태우고 사람을 교회 안에 집어넣고 불살랐을 때도 교회에서 뛰쳐나오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대한민국에 세계복음화라는 원대한 하나님의 영광의 비밀을 밝혀주셨다. 믿음의 선배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복음화의 언약이 대한민국 땅에서 시작된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모든 사이비들은 이 말을 너무 싫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생명들에게 구원을 얻게 하신다. 갈4:4~6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예수는 그리스도” 이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창3:15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 역사에 개입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성취해나가시는데,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그래서 세상에서 말하는 헛소리 잡소리를 다 제거하고, 이런 것에 관심도 갖지 말고 롬10:9~13을 나의 것으로 잡아야 한다. 그러면 틀림없이 구원과 능력, 사랑, 헌신, 절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영향력을 보게 된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아브라함이 두 번째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야 자신의 죄의 근본을 깨달았다.
창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장소만 달랐을 뿐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하나님을 향해 묵상하고 기도하고 깨달았더니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여 출산하게 하셨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기 전, 24년 전에 아브라함이 불신앙의 언어를 사용했다. 창20: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인본주의, 불신앙의 언어를 사용하는 목사의 말을 듣고 교회를 다니면 이렇게 나중에 문제만 터진다. 신학으로, 교권으로는 개혁하는 것 같지만 인본주의 불신앙은 결국 저주와 재앙을 남길 뿐이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아브라함의 여동생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갈대아 우르에 우상숭배 하는 정신문제에 잡힌 자들이 사라를 향해 자꾸 예쁘다고 하니까 아브라함도 갈대아 우르를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아마, 사라가 그렇게 예쁘지 않았어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라에게 거짓말을 심어버렸다. “결정적 순간이 오면 예수는 그리스도 해라” 말해줘야 하는데, 결정적 순간에 너는 내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라고 시켰다. 24년 동안 가진 죄의 근본이 자신을 찌르고 있었다.
고후10:4~5 모든 이론과 사상, 세상의 모든 불신앙적인 언어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라고 말씀했다. 사라가 아브라함의 이런 말을 듣고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에게 속아서 헛소리를 내 심령에 심는 더러운 불신앙의 저주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영적 전쟁하는 복음화가 있었다면 이런 애꿎은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라는 사라대로 남자의 침실을 두 번이나 들어가야 하는 피말리는 일이었다. 아브라함 자신이 심어놓은 거짓말, 불신앙 때문에 사라를 보면 늘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자신의 거짓말, 불신앙이 죄의 근본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찾아냈다. 그래서 약속의 자녀를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라는 것이다. 죄의 근원을 찾지 않으면 약속의 자녀가 아니다. 그 사람은 절대 스스로 거듭날 수 없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변화되지 않는다. 창3장의 인격장애를 가진 아브라함이 끝까지 보호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였다.
내가 창3:15 그리스도의 것이 될 때, 말씀을 믿고 승리할 수 있다. 요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내 것” 이라고 직접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버리고 “예수는 그리스도”, 불신앙을 심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하는 것이다. 요17:7~8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그들, 곧 내 것으로 삼은 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줄을 알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것도 믿는다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고, 왜 교회에 앉게 하셔서 이런 직분을 주셨는지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을 하나님은 ‘내 것’ 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목회자들이 ‘나의 그리스도’는 잘하는데, 교회의 그리스도가 없고, 자신에 대한 직분의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고 현장의 비밀을 모른다. 요17: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기도를 하신다고 약속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이렇게 위대해진다. 요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맡긴 직분과 사명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로 모든 인생의 답을 내는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요17: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그런데 멸망의 자식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멸망일 뿐이다. 내 몸에서 죄의 근본을 찾아내지 못하면 늘 반복적으로 불신앙만 하다가 멸망의 자식으로 전락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면, 왜 내가 그리스도를 가져야 하고, 그리스도에 오직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면, 복음 그 자체를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다.
렘33:2~3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나에게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들을 반드시 보여주신다.
자신과 세상, 사탄과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기다리지 못하고 늘 설쳐대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교회에 붙어있으라고 하는데도 설치고 돌아다니면서 자꾸 사고를 낸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다림을 스승으로 두라고까지 말씀했다. 피조물을 의지하면 안된다. 돈을 좇는 것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빠른 말을 타고 달리면 말에서 떨어지는 날이 온다.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기다림 속에 무한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자가 되길 축복한다.
영적전쟁을 놓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못한 순간 아브라함은 계속 무너져갔다.
창3장에 장악된 이 세상에는 절대 안전지대가 없다. 예측할 수 없는 흑암의 공간 속에 있기 때문에 혼돈과 공허의 전쟁뿐이다. 그래서 요10:7, 10~11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는 양의 목자라” 하시면서,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먼저 온 놈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선한 목자 되신 그리스도의 문으로만 출입해야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 가 모든 문제 해결자라고 인정하는 믿음이 시작되어야 한다. 고전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사도바울은 항상 자신의 삶에 무엇을 적용했는지 알려주었다.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우리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갈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예수님의 현장을 내 몸에 품는다면 어떤 문제 앞에서도 기다릴 수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마지막 하신 말씀이 요19:30 “다 이루었다” 이기 때문에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짐승들의 이름을 자기가 지어주고, 집에 키우면서 시달리고, 자기 영혼이 빼앗기고, 장례도 치러주고, 또 요즘은 죽은 날짜를 기록해서 제사까지 지낸다. 짐승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고양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야옹 하는 것 뿐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가 너무 좋아~ 그리스도 사랑밖에 난 몰라~’ 이런 감성적 언어를 많이 쓰면 절대 그럴 일이 엇ㅂ다. 그런데 야옹~ 이런 소리가 가슴에 들어오니까 야옹이가 신이 되어버렸다.
창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가정에서 감성적 언어만 사용해도 많은 변화가 시작된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감성적 언어가 사라졌더니 ‘너는 나의 누이라고 시키는대로 해라’ 이런 거짓말의 언어 속에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늘 거짓말과 불신앙의 언어를 사용했더니 그 아들, 이삭도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심지어 아버지가 저지른 실수를 아버지와 똑같은 현장, 그랄 땅에서 저질렀다. 오늘날 각 가정마다 동물을 키우고 그 동물에 이름을 지어주고 영혼을 빼앗겨 가정마다 거짓말, 불신앙의 가정으로 전락되어버렸다.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시고 예수사랑교회에 부르시고, 직분을 주었는지 그리스도 안에서 알면 교회 안에 동반자, 식주인, 사랑받는 자, 수고하고 친척과 같은 자가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에 오직, 유일성하지 않으면 습관성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는 습관적 범죄가 늘 따라다녔다. 오직, 오로지 그리스도를 하지 않으면 엡6:16이 찾아온다. 불 붙은 미사일이 내 몸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소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직 그리스도’ 하지 않으니까 집착으로 가고, 집착이 중독으로 가니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롬5:20의 응답을 받아야 한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습관적 범죄가 있을 때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자꾸 고백해야 한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저들을 보존하신다” 는 말씀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마귀는 자꾸 환경에 핑계를 대고 거짓말로 합리화하게 만든다. 그래서 다양한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거짓말을 자꾸 합리화 하면 범죄가 싹트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못한 결과, 똑같은 사건을 저질렀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창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성삼위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응답, 언약을 받았던 아브라함이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또 자기 부인을 팔아버린다. 내년 이 맘때에 아들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계속 얻어맞는 상황이 오고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했다. 창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으면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했다. 그만큼 복음화가 안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만이라도 이 시대 정말 복음화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흑암의 세상, 거짓말의 환경을 뚫고 나가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진할 때만 가능하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도 하나님은 간섭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못하고 살면 후안무치(厚顔無恥) 세상 속에 굉장히 뻔뻔한 사람이 된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사람이 되어 종이 주인을 때리는 일을 일으킨다.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이런 시대가 되지 않도록 투표도 잘해야 한다.
롬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믿음을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 속에 사람들이 전부 둔갑해있다.
본문에 아브라함은, 죄의 근성으로 인한 불신앙과 거짓말 속에서도 창3:15을 새겨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은 결과, 불신자한테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 상황으로 전락했다. 창20:8~9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우리도 양심의 법을 따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범죄를 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어떻게 너는 내 나라를 통째로 저주받게 하냐? 나에게 왜 이렇게 했느냐?!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것이 있냐? 정신 차려라 아브라함아!” 강단의 메시지를 못 알아듣고, 말씀을 따라가지 않고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불신자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아야 하는 부끄러운 일이 일어난다.
렘13:23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사람이 바뀐다면 선한 행동도 할 수 있고 선하게 살 수 있겠지만 절대 사람은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사람들이 한다고 하는 선행은 사실은 전부 자기 동기에서 나오는 것뿐이다. 진짜 바뀌는 방법이 있다.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시인하는 것만이 방법이다.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런데 사람들이 혼미해져 하나님의 형상되신 그리스도, 영광의 광채를 보지 못한다. 고후4:5~7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이 엄청난 보배를 연약하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빠지고 부패된 내 속에 지금 넣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고후4:8~10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내가 잠시 죽어야, 기다림 속에 있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피조물을 만들어 그것을 의지하려고 하는 나를 무너뜨리고 절제시키는 방법은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부르는 길 밖에 없다.
창3:15이 없으면 사람은 자꾸 추한 모습이 된다. 결국 비극적인 인간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창26:6~7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아버지가 한 행동과 똑같은 행동, 똑같은 거짓말을 그 아들 이삭이 한다. 그리스도가 없고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면 추한 모습 속에 비극적 인간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런 운명적 저주를 끊고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정말 불러야 한다.
아브라함의 죄, 거짓말, 불신앙은 굉장히 계획적이었다는 것을 고발 한 것이 창20:13이다.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이 사탄의 준 거짓말의 게획을 실행한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기 안에 있는 죄의 근원을 찾게 되었다. ‘내 몸에 이 상처가 죄의 근본으로 타고 들어와 늘 돈 앞에 쟁쟁거리고 불신앙하는 자가 되었구나.’ 우리 안에 이런 것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 자녀가 축복을 받는다. 어떤 일에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인 자신을 발견하고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 해야 한다.
아브라함 자신의 죄악의 결과, 불신앙의 결과, 거짓말의 결과로, 불신자에게 설교를 들어야 하는 신세가 되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창12장에서 이 사건을 저질렀을 때도 죄의 근원을 몰랐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그리스도로 나타나,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시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약속의 자녀들을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를 참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야 그리스도 하나님을 믿을 때 남다른 애착심을 가지고 우리를 내 것이라고 인쳐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죄가 공존하는 이 시대 속에 하나님의 절대 은혜를 잊지 않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을 마음껏 부르고 마음껏 적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도록 날마다 하나님의 응답을 보게 하옵소서. 다시는 인간적 계획적 불신앙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이제는 언제나 창세기 3장 15절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죄의 근본을 알지 못해 구원의 은혜와 감격도 없이 갈등과 번민 속에 무능으로 머뭇거리며 살아야 할 나에게, 복음화 하는 예수사랑교회를 만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창3:15의 능력을 깨닫게 하시고, 나의 교회에 흐르는 언약적 축복을 내 것으로 받아 세계복음화의 여정을 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예수사랑교회에 부르시고, 나의 목자를 만나게 하셨으며, 교회의 직분을 맡겨주셨는지 올바른 질문 속에, 나를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인쳐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문제 속에서 기다릴 수 있는 정시기도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한 주간,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죄의 근본으로 인해 끊임없이 불신앙의 언어를 하며 환경 앞에 핑계대고 거짓말로 합리화하는 인간적 계획과 습관적 범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위기가 축복과 갱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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