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승리와 완성의 십자가이다"
(마/ Matthew 27:45-56)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거기 섰던 자 중 어떤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 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태복음 27장 45-56절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린 그 때에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그곳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은 결국 악마가 되어 있다.
먼저 기도 하려고 하지 말고, 창세기 3장 15절,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심령 속에 심어놓자.
신앙생활은 창세기 3장 15절로 시작해야 정상으로 할 수 있다. 그래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무에 달릴 때 거기에서 “오!” 하며 바라볼 수 있다. 예수님이 밝은 빛을 잃어버리고 운명할 때 어둠으로 덮이는 현장을 우리는 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흘 동안 무덤에 있었던 그 예수님을 거기서 보는 것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 분을 보았다면 “오, 놀라워라.”고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고 찬양을 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옛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 창세기 3장 15절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하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다. 창세기 3장 15절로 기도하라는 말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의 마음을 품는다. 그리스도의 심장이 뛰어야지, 원죄의 심장이 뛰면 되겠는가. 사람은 미워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존재다. 이것을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
로마서 1장 16절,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한다. 복음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갖게 한다. 이제는 육신적으로 살지 않고 영적 사실을 알고 영의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혀 그리스도의 심령을 가져야 한다.
구원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 서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왜 서로 사랑할 수 없는가? 고린도후서 11장 4절,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예수, 신비주의 복음, 율법주의 영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고린도후서 11장 14절,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며 살다가 어느 날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다. 자신을 천사로 가장하여 사는 사람들은 빌립보서 3장 18~19절,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다. 그들의 신은 육신이고 육신의 생각이 만든 게 샤머니즘. 미신 등이다. 결국 그들의 영광은 부끄러움이다. 다른 예수를 믿으면 부끄러움을 당한다. 그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인 것이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영적인 사실로 봐야 한다. 영적인 사실로 판단할 때 자신이 바뀐다.
*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뜻을 아는 사람은 인생이 바뀐다
→ 외식하는 자들을 본받지 말라고 했다.마태복음 6장 8절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할 수 있는 진짜 영이 있다, 창세기 3장 15절, 하나님을 아는 영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누가복음 11장 13절, 성령을 주신 것이다. 악령은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지만 성령은 살리는 영이다. 성령을 가지고 모든 것을 뛰어넘고 회복시킬 수 있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요한복음 20장 22절,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죄의 권세에 묶여 있는 자들을 자유케 하고 해방시키고 살린다. 성령을 가진 사람은 23절, 누구의 죄든지 사한다. 그러나 악령을 가지고 자기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은 죄에서 자유케 하지 못한다. 로마서 8장 1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사람을 정죄하지 않는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누구도 정죄할 수 없도록 말씀으로 인 쳐 놓았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자와 삼께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일을 하신다.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을 얼마나 해방시키고 자유케 하는지 되돌아보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한다.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간다.
그런데 예수님 십자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몸만 사랑하는 것은 가짜의 영을 받은 것이다. 몸만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아비가 따로 있다. 요한복음 8장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는다. 결국, 자신의 몸만 사랑하는 것은 원죄로 인해 파고든 마귀의 자식인 것이다. 마귀의 자식 속에는 두려워하는 영이 있다. 로마서 8장 15절, 사람들이 왜 당당하지 못하고 무서워하는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위해 집착하고 몰입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깨뜨리고 창세기 3장 15절, 양자의 영을 받고 뱀의 머리를 깨뜨리자.
→ 예수 그리스도만이 근본문제 해결자시다. 근본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대통령, 장관이 돼도 마귀의 자식일 뿐이다.
마태복음 22장 41절,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그리스도를 이상하게 알고 있는 자들에게 질문을 하신 것이다. 지금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질문을 던지신 것이다. 42절,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고 물으시자,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 못 받은 것이다. 운명대로 살다가 개죽음을 당하고 자손들은 저주받아 유리방황하게 된 것이다. 다윗도 자신의 왕국을 세운 왕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주인인 주 그리스도를 믿었다. 근본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고 물으셨을 때 그리스도의 자손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저희는 그리스도 세계 속에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 세계, 그 자손 속에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왜 그런가? ‘당신이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에. 당신이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하나님이 에덴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당신은 내 인생의 그리스도 주가 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알고 있다. 책에 기록된 것을 내용을 지식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근본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근본 문제를 알고 근본 문제 해결자를 주 그리스도로 칭한 것이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할 수 있었느냐?’ 성령은 “예수는 그리스도!”를 계속 시인하게 하신다. 악령은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만 하게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만 하는 이상한 영인이다. 세상에 속한 자는 겪은 대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심판하고 쟁쟁거리고 산다. 그러나 창세기 3장 15절의 성령 그리스도는 영적인 하나님의 것을 가진 분으로서 영적 사실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마22장44절,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영적 싸움하는 것이 성령이고, 영적 싸움하는 자가 주 그리스도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생 살아가는 여정 속에 자신에게 와 있는 창세기 3장 원죄의 문제, 이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 심판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문제는 영원하다. 영원한 인간의 문제를 오직 해결하는 길은 근본 문제 해결자 주 그리스도뿐이다.
마22장45절,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내가 될 수 있겠느냐? 더 이상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근본 문제 해결자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가 되고 주가 되고 전능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그래야 무서워하는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아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표현 할 수 있을 만큼 1인칭 할 수 있다. 우리 아버지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고 이제는 분별력과 판단력과 결단력을 내릴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 로마서 8장 16~17절, 상속자로서 힘을 받게 된 것이다. 성령이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가졌다는 말씀을 증언하신다. 하나님이 우리 몸을 성전 삼으시고 영원히 임마누엘로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함께 하신다. 그래서 어떤 고난도 넘어서고 어떤 환난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에 통과하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승리와 하나님 나라 완성이다.
→ 창세기 3장 15절의 정체성을 가지고 집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 중 방법이다. 하나님의 것을 가진 자는 마귀를 본다. “마귀야! 내 뒤로 물러가라!” 사람 앞이 아닌 마귀에게 군림하자. 눈만 삐뚤어져도 “마귀야! 가라!” 얼굴이 일그러질 때도 “마귀야! 가라!” 사람의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쁠 때에도 “예수는 그리스도!” 방법 중 방법이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다. 마귀의 일을 멸하고 저주와 재앙을 없애버리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혔던 담을 무너뜨리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능력, 예리한 칼로 막혔던 커튼을 잘라버리는 이름이 그리스도다. 부활의 장소에서 있었기에 죽었던 몸도 부활의 몸으로 살려내는 것이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위로하는 설교나 듣고 질질 짜기에 매일 시험 들고 갈등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헌금까지 하니 얼마나 섭섭한가? 돈 조금 내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려고 한다. 교회 안에서 주인공이 되기를 원한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뿐이다. 하나님이 주신 창세기 3장 15절은 모든 것을 회복하는 방법 중 방법이기에 오직 유일성의 응답이 있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에 집중하면 재창조의 응답이 온다. 가족들이 인정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집중을 안 하면 마태복음 10장 36절, 가족이 원수가 된다.
→ 창세기 3장 15절 언약을 믿는 것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22장2절,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잔치에 청했는데 어떤 사람은 “아우 참 안타깝네요. 나 지난달에 밭을 샀거든요, 밭을. 그래서 밭 갈러 가야 돼요.”라고 이유로 거절하고 어떤 사람은 “할렐루야! 아멘! 그런데 못 가요.” “아니 왜 못 와?” “내가 김 집사한테 돈을 2억 빌려가지고 장사 막 시작했어요. 이거 갚아야 돼요.” 라는 이유는 거절을 한다. 여러 사람을 초청했지만 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결론은 하나님 나라를 본 자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지금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인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아무나 초청을 하여 임금님이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한다고 하니 아들의 옷을 입어라, 즉 십자가 보혈의 옷을 입고 참석하라고 했다. 그런데 자기 스타일로 참석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22장14절,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수많은 교회가 청함은 받았지만 선택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임금의 그 말씀을 명확히 알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24장 49절,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영, 성령을 주셨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경험할 수 있는 성령. 그 성령이 그리스도시다. 어떤 분이 자녀들 때문에 너무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호소하셨다. 그래서 제가 그 분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자녀들에게 세상을 본받고 세상의 지식을 배우라고 그렇게 애걸복걸 하느냐? 그러면 당신의 자녀에게 정신 문제가 올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 세상을 왜 그렇게 사랑하라고 가르치는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경험하면 하나님이 그 아이를 무엇 때문에 창조했는가를 그 아이가 알게 된다. 경제를 회복하는 아이,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아이, 세상을 정복해 갈 수 있는 순례자의 길을 선택하는 아이 등등 하나님은 가자 다른 달란트를 주셨다. 공부가 재미있는 친구들은 계속 공부하면 되고, 공부가 재미없는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그 속에 만남이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다 예비되어 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면 유리방황하지 않는다. 창세기 4장 12절, 저주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공부를 많이 하면 어떻게 되는가? 아무리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효력을 내지 않고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셨다. 무서워하는 영을 가지고 유리방황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다윗처럼 그리스도를 주로 칭하면 지긋지긋한 인간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고 지혜로운 자녀로 키울 수 있다. 그리스도를 아는 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은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에베소서 1장 3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할 수 있다. 성령, 그리스도가 계시면 경험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세상의 복이 아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를 아는 선택된 자에게 주시되…. 그 말이다. 4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절,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음이니라.
이사야 43장 1절, 너는 여호와의 것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는 두려워하는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 아버지로 경험할 수 있도록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하나님의 것이라 하셨다. 이사야 43장 18~20절, 너희는 이런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다.
→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은 1초 전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날마다 하나님 나라의 뉴스가 있기 때문이다. 19절, 어떤 뉴스인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요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망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이라 하셨다. 물 한 방울이라도 목으로 넘길 수 있다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했구나 여기고 박수치길 바란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물 한 방울을 못 넘기고 입가로 흘러내린다. 진짜 사탄의 불화살을 맞으면 뇌가 아파서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해결이 안 된다. 그리스도는 반석이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한다. 그리스도는 천국의 열쇠다. 따라서 어떤 문제가 와도 그리스도를 능가할 수 없기에 “예수는 그리스도!”라 선포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요, 보좌의 축복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누가 찌르면 “왜 찔려!”라고 말하지 말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이라 고백하자. 왜냐면 성령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또 찌르면 “마귀야! 가라!”고 명령하자. 성령은 귀신을 쫓아내고 결박한다. 우리 자신을 성령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나를 넘어 237 디아스포라 미션을 향하여 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승리와 완성의 십자가다
이 비밀을 놓쳤던 바리새인,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이스라엘은 육신적 신앙을 가지고 틀린 종교 사상 속에 귀신 들려 저주를 받았다. 그들이 그렇게 절기를 잘 지키는데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다. 그런데 이런 것은 모르고 형식적으로 어린 양 한 마리 잡아 번제만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3장 15절의 내용을 모르고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리스도!”라고 외치기에 상태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멸망받았고 그의 자녀들은 저주를 받았다. 유월절의 의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알고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가 충만해지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리스도의 내용을 알고 영접하면 성령의 능력이 보좌의 능력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성령의 역사가 내 몸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창조의 말씀을 더 메시지, 선포의 메시지로 갖게 된다.
“은과 금은 내게 없어도 괜찮다. 내게 있는 것으로 나는 너에게 명하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 불러!” “하나님 아들의 십자가 구속의 피를 보고도 믿지 못하고 발작 증세를 일으켜 서로 사랑할 수 없게 원수 맺게 만드는 더러운 악질적 저주의 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산이 내 몸에서 바서질지어다!” 이렇게 말씀의 내용을 알고 자신에게 선포하는 게 나은가, 아니면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울라고 하십니다.”와 같은 설교를 듣는 게 나은가? 그런데 귀신이 들리면 부끄러움 자체를 못 느낀다. 그게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를 모르니 성령이 계시지 않기에 악령으로 살 수 밖에 없다. 거짓말쟁이 마귀의 자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영원한 축복이 그리스도에 연결되어 있는데 그리스도를 모르기에 몸부림을 치며 발작 증세를 일으킨다. 이스라엘이 지키는 수장절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축복이 사람과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 자체를 모르고 영원한 축복을 연결 되어 있지 않기에 인본주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다.
유월절의 내용을 모르고 살았던 바울이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회상했는가? 로마서 8장 6~7절, 그리스도의 내용을 모르고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은 게 사망이었구나. 내가 믿은 그리스도는 생명과 평안이구나. 7절, 육신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원수되고 사람과도 원수를 맺으며 교회에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을 바울이 안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지 않고 순복할 수도 없는 것이다. 8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한다. 영적 사실을 가지고 판단한다.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10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것이니라. 육이 죽고 성령만 사셔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세계 복음화 하는 오늘 현장 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역사와 응답들이 있을지어다!” 빌립보서 3장 21절, 만물을 복종케 하는 이름을 멋있게 사용한다. 창세기 3장 15절, 이것을 이루려고 앞으로 달려가고 이것 때문에 내가 상급을 바라는 것이라고 바울은 고백했다.
→ 그리스도 속에는 보좌의 능력, 성령의 권능이 들어있기에 마귀의 일을 계속 멸할 수 있는 힘이 온다. “목사님 왜 마귀의 일을 멸하라고 그러세요?”라고 묻기에 요한일서 3장 8절을 잘 봐라. 그럼 죄를 짓고 살래, 마귀의 일을 멸할래? 어떤 게 편할 것 같으냐? 육신의 감정을 통제 못하면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할 말, 안 할 말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육신적인 말을 하는 것은 죄를 짓는 자다. 이 말씀을 듣고도 죄를 짓는 자는 말씀에 순복하지 않기에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와야 재창조의 능력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다. 초과학의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초월하는 힘까지 오는 것이다. 그렇게도 지긋지긋하게 안 풀리던 인간관계 문제가 해결된다.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 오늘날 똑똑한 사람들이 왜 실패하고 고통 받고 자살하고 중독자로 살아가는가? 요한일서 4장 10절, 사랑은 여기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그래서 사랑은 지금 여기에 있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내 영혼을 육신적 감정으로 틀어잡고 똬리를 틀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저주의 영, 악한 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산이 십자가에 못 박힐지어다!”
요한일서 4장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경험하게 되면 두려움을 내어쫓는다. 요일 4장 18절, 그리스도 하나님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은 죄로 이어지기에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마귀를 쫓아내면 온전한 사랑을 1인칭 할 수 있다.
→ 영혼의 텅 빈 공간을 언제나 그리스도로 채워야 한다. 마귀에게 틈을 주어선 안 된다. 하나님 떠난 창세기 3장, 이 텅 빈 공간은 함정이다. 왕국을 세운 다윗은 고백했다. 시편 142편 1절,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다윗은 계속 지속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왕이 되었어도 실패의 자리에 있어도 낙심의 자리에 있어도 그는 여호와께 간구했다. 2절,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하는 비밀이다. 텅 빈 공간을 만들어 놓지 말고 그 담을 헐어버린,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하나 되게 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렇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과 분리되면 당한다. 3절, 우환과 원통함이 있고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사로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그리스도를 하겠다는 고백을 한 것이다. 인간은 창세기 3장 15절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리스도의 내용을 모르면 원죄라는 근본 문제에서 가문의 저주, 자녀들의 저주까지 집안 전체가 쑥대밭이 된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종교, 우상 속에 빠져 영적 문제로 지금 하나같이 텅 빈 공간 속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살인자가 되고 만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들려줬던 말씀들을 다 인용하여 기가 막힌 변명과 희롱을 한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으니 그 십자가에서 한 번 내려와 주세요. 내려와요. 내려와 봐!”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구나. 내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저렇게 운명을 하셔야 되는구나.” 이렇게 해야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인 사람이다. 근데 우리는 모든 문제 끝이라고 해놓고 변명만 늘어놓고 책임 전가하고 핑계대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딴 소리를 지금 하고 있다.
“당신이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일으키라고 말했으니 한 번 해봐라!” 이런 식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원죄를 모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한 채 하나님을 더 불신하고 오히려 그 말씀을 잊어버린다. 말씀을 잊어먹고 살다가 악이 받쳤을 때에는 뭔가 인생이 안 풀릴 때는 그 말씀을 인용해 가지고 “모든 문제 해결이라고 해놓고 왜 나는 안 됩니까!”라고 소리친다. 자아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면 “모든 문제 끝!”이 되는데.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나와 나의 가문의 저주, 원죄, 자범죄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셨으니 모든 문제 끝이다. 왜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하는가? 원죄를 가진 몸은 죽고 영이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상태가 안 되면 마귀야 가라고 명령해도 소용없다. 인간은 십자가의 비밀, 하나님의 은혜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는 내용들을 가슴에 새겨놓고 그 이름에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양한다. 우리 몸에 있는 죄의 권세, 지옥 권세, 사탄의 권세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땀방울 남기지 않고 다 쏟으셨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해 주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셨다.로마서 3장 23~25절
→ 말씀의 내용을 영혼에 새겨놓았다면 디모데후서 2장 3~4절의 소명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좋은 병사가 돼야 한다. 좋은 군사, 적을 알고 있는 군사. 근데 오늘날 적은 모르고 같은 동료를 총으로 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지금 총 맞은 것처럼 아프다고 하는 것이다. 4절,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니라. 모든 문제 끝내시기를 바란다.
이거 안 하면 베드로전서 5장 8절, 근신하고 깨어 있지 못한다. 좋은 군사는 근신하고 깨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대적을 확실히 알고 우는 사자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쏴버린다. 스가랴 4장 6절, 힘으로 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신 창세기 3장 15절 그리스도로 되느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진짜 아빠로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비밀이다. 요한복음 6장 2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창세기 3장 15절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마태복음 6장 33절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것이 의를 이룬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어야 요한복음 16장 8~10절,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해방 받는다.
창세기 3장, 옛 뱀을 잘 들여다보자. 옛 뱀은 그리스도를 가진 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 더 이상은 해를 가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가진 자에게는 절대 독이 퍼지지 않는다. 발꿈치 정도 무는 존재인데 사람들은 시달린다. 그래서 큰 사건에는 안 속는데 아주 작은 사건에 무너진다. 자신의 공로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가식이다. 위선자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아신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를 정도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 아버지를 진심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권세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흑암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지어다."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승리와 구원의 완성이기에 갈라디아서 6장 1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업그레이드하게 하는 아주 귀중한 존재들이다. 좋은 군사는 함께 고난을 받는다. 그것도 겨우 뒤꿈치 물리는 고난이다. 왜 이런 고난을 받는가? 원죄에서 해방 받고 죄의 권세, 사망 권세에서 해방 받고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죽으셨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는 순간 온 천하가 흑암으로 덮였다. 그리고 땅이 갈라지고 죽은 자들이 우리 예수님 때문에 살아났다. 더 이상 우상 종교에 빠질 필요 없다. 이제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갈라졌다.
→ 그리스도로 우리가 성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젠 지성소가 우리 영혼 속에 들어가기를 원하신다. 드디어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거하셔서 성전이 된 것이다.고린도전서 3장 16절 요한복음 14장 16~17절, 진리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인생의 여정 속에 참된 자유가 시작되었다. 십자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힘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한 조롱과 적대감이 우리 몸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가라진 성전에서 우상숭배 할 필요가 없다.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졌다. 그리스도가 화목 제물이 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한 몸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었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품에 있던 아들보다 창조의 말씀으로 지으신 인간을 더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분리시켜 십자가에 달아 죽게 하셨다. 이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를 하나님의 아들보다 더 사랑하신다. 그래서 말씀을 잊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 어설픈 설교 들으러 돌아다니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선포할 때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말씀으로 자신에게 선포할 때 한 몸이 된다. 그 때 초과학의 현상이 일어나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얼마나,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런 고백을 하셨을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분리시키고 나를 버리고 저들을 저렇게 사랑하십니까?” ‘저들 속에 창세기 3장 15절을 가진 자가 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버리고 창세기 3장 15절을 가진 자를 선택한 것이다.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자들이 있지 않느냐.’ 창세기 3장 15절을 절대 잊지 않고 갈릴리에서부터 불러 선택한 자들이 지금 너의 죽음 앞에까지 와 있지 않느냐. 막달라 마리아, 세베대의 어머니 마리아, 또 요셉의 아내 마리아. 마태복음27장56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다 지금 증인들이 네 앞에 서 있지 않느냐. 그래서 나는 저들을 선택하고 너를 분리시켜 놓은 거다. 저들을 살리려고. 이게 십자가 사건이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승리와 완성의 십자가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준 것이다. 이사야 53장 5절 6절, 그리스도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리스도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너는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양해라.
이사야 53장 10절,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십자가의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시리라. 우리는 여기의 증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그 씨를 보게 된다고 하신다. 그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 분만이 영광의 보좌에 앉으사, 창세기 3장 15절, 방법 중의 방법인 그리스도를 오직, 유일성, 재창조하는 자들을 보고 기뻐하고 그들의 날수를 영원으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사야 53장 11절,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예수님이 우리를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는 걸 보고 너무 너무나 만족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를 들여다보고 만족하실 만큼 감격과 감사와 찬양이 있기를 축복한다.
이사야 53장 12절,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살 소망이 있다.
사도행전 2장 26절, 다윗은 그리스도를 주로 칭하고 언제나 내 마음이 그리스도로 기쁘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혀가 즐겁고 그리스도가 내 몸에 살기 때문에 희망에 거한다고 고백했다.
이제 하나만 알면 된다. 사도행전 2장 36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세상이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인생의 구원자, 그리스도 되게 하셨음이니라. 정녕히, 그 내용을 알고 다시는 핑계 대지 말고 믿는 자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젠 우리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에 집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 중 방법이라고 말씀해 주셨사오니 오직 유일성 재창조 속에 우리가 거할 수 있도록 성령 충만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승리와 완성의 십자가라는 이 엄청난 사실을 우리 가슴 속에 새겨놓고 어떤 자리에 있든지 죄인의 자리에 있어 실패의 자리에 있어서 그리스도로 새로 시작하는 생명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 사랑을 우리들이 본받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경험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헌신하는 생명들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상을 본받으라고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그 능력을 가르쳐 그들이 이 세상을 정복해 갈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새 계명을 가지고 세계복음화 주역으로 쓰임 받는 증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귀의 일을 멸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마귀의 일을 멸하고 마귀를 대적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이름 속에 하나님의 인격이 들어 있는 것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는 내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시작이 되게 하시고 도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내용을 모른 채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고 무서워하는 종의 영, 악령을 받아 내 몸 하나만 사랑하여 사람과 원수 맺고 분쟁을 일으키는 삶에서 빠져나오도록, 예배를 통해 텅 빈 내 심령에 승리와 완성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새기고 창3:15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예수님의 좋은 군사로서 근신하고 깨어 무엇이든지 영적사실로 판단하고, 작은 문제 앞에서도 적을 분별하고 영적싸움으로 마귀를 대적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경험하고, 성령충만한 성령의 사람으로 재창조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제는 세상을 본받지 않고 나를 넘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따라 237 디아스포라 미션을 위해 헌신하며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