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에게 드린 아브라함의 전리품"
(창/创 14:17-24)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것이 우리 삶에 성취되면 하나님 나라의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인간 관계를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막1:38~39이 없기 때문이다. 막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나는 어떤 자리에서도 전도하리니, 이것을 위해 오셨다고 했다. 사람들이 시험이 드는 이유는 육신의 일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영적 사실을 가지고 있어야 절대 사람 관계 속에 시험 들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막1: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예수님은 영적 사실로 사람을 보셨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했다. 우리가 예배하는 자가 맞다면 영적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육신적인 것을 뛰어넘지 못하면 롬8:15 무서워하는 영이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가지고 육신적으로 사는 것이다. 영적인 사실을 알고 영적 예배를 드리면, 양자의 영을 받은 자가 되어 신나고 재미있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희망과 소망이 넘치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지식을 말하고 듣기 때문에 사람 관계에 여러 가지 시험을 넘어설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늘 싸우고 나눠지고 갈라지다가 자신도 모르게 외로워서 못 살겠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독의 칼부림 속에서 스스로 자결하는 날을 맞이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경을 믿고, 한 믿음 창3:15을 믿는다면 영적인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몸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 자기 몸을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행10장에, 고넬료가 인간적으로는 멋진 사람이었지만 영적인 병으로 인해 굉장히 갈급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로 부터 의롭다고 칭찬을 받았지만 자신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깊은 영적인 문제에 빠져있었다. 행10:38 이미 마귀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이것을 먼저 풀어내라고 창3:15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인간의 몸을 누르고 있던 마귀의 저주를 풀어주시고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맛보게 되면 내 몸을 사랑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것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지겹지 않다. 내 몸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리 사랑해도 끊임없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 밖에 없다. 내 몸 하나를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가? 죽는 날까지 원망, 불평, 핑계대며 사는 것이다. 내 몸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행2:26 다윗이 엄청난 왕국을 세운 자가 되었어도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고백했다. 자기 몸뚱어리를 사랑하면 우리의 마음이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밖에 없다. 창3:15을 주, 그리스도로 칭하고 믿었더니 마음이 기쁘고, 하나님 나라의 뉴스를 선포하는데 내 혀가 너무 즐겁다고 고백했다. 썩어 문드러지고 무저갱으로 끌려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굴레에서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 하나를 사랑하라고 내 몸에서 원죄로 속였던 옛사람의 틀을 깨뜨리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내 몸에 임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몸에 묶인 시험과 낙심, 절망, 미칠 것 같은 모든 문제들... 이런 더러운 저주의 영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쫓을 수 있다. 입술에 립스틱만 바르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에 입맞추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새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살아계신 그리스도 하나님을 나의 주로 칭하면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런 제자에게는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멋있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인생 마감하는 날까지 우리의 손을 잡고 동행하는 축복이 시작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언제나 지켜보시고 그 고통 속에서 무한한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다. 고통 속에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사람에게 고통이 찾아오는 이유는 인간관계 때문이다. 고통의 노예가 되면 안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는 반드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고통을 통과할 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끝없이 받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고통을 통과할 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끝없이 받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없다면 그리스도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낸다. 수많은 고통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사탄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사람이 만들지만 하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내 문제를 통해서, 만남의 고통을 통해서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가신다. 사람에게 고통이 없다면 거듭남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통은 거듭남의 축복, 갱신의 기회다. 더이상 쟁쟁거리지 말고,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려야 한다. 아브라함은 창3:15, 하나님의 근본, 본체를 가지고 내 인생을 더럽게 빼앗길 것인지, 아니면 구출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할 것인지 결정하는 선택을 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쟁을 시작할 때 함께하신다. 서로 사랑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전쟁을 시작해봐라. 그러면 거짓말의 영, 무속의 더러운 영들이 다 사라진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 살리는 일에 전쟁을 실천하는 사람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가 함께한다고 성경에 말씀했다. 그래서 육체의 우상으로 살 것인지, 창3:15 영적전쟁을 시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이것을 알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창15:6 하나님이 그를 의로 여기셨다. ‘나는 육체의 우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창3:15로 자신의 종교성과 육체 우상을 타파하고 그리스도로 영적 전쟁을 하며 사람을 살리는 일에 동참을 하겠다, 신앙 하나로 후대를 살려야겠다’ 는 결단이 그에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후대를 위해 자신을 준비했을 때 하나님이 이삭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순례자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기를 축복한다. 자신과 영적 전쟁을 하면 순례자, 나그네로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따로 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성을 쌓으려고 하는 것은 아직도 육신적 사고를 가지고 샤머니즘적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 삶에 변화가 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남은 자들로서 우리가 해야 할 기도는 이 땅의 것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놓고 영적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후대를 살리는 영적 전쟁을 시작하면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살인의 영”이 우리 몸에서 사라진다. 그래야 우리가 얻은 것, 소유하고 있던 것이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주시는 힘으로 내가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분깃을 나눠주고 십의 일을 드릴 수 있는 힘도 온다. 아브라함은 창3:15의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았다.
*창3:15의 하나님은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더니, 그분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자신을 환영해주는 것을 체험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축복해주시라고 기도하신 중보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라 그러면 창조주 하나님이 행하시리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해 영적전쟁을 하면 하나님이 행하신다. 서로 사랑하는 일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동맹을 맺고 동참한다면 요15:16 계속 열매가 있게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사람 살리는 일이 없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뉴스가 없기 때문에 기쁨이 없는 것이다. 사람 살리는 일이 있어야 전리품도 취할 수 있다. 사람 살리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전리품도 필요없다. 빌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예배를 통해 우리의 이런 근본을 바꿔야 한다.
창3:15 근본 하나님의 본체는 “나를 위하여 싸워주시는 여호와” 다. 나를 위해서 싸워주셨기 때문에 그 대가로 동맹을 맺은 자들과 분깃을 나누고 함께 가병318명 에게도 분깃을 나눠주고 십의 일을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드리는 것이다. 나를 위해 싸워주시는 그리스도는 참 왕, 욕심을 내는 마귀의 일을 멸하는 참 왕이시다.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에게 길들여지지 않게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이 싸우고, 나를 위해 싸워주시는 참 왕에게 드리겠다는 것이다. ‘내 인생 여정에 저주와 재앙, 사망권세, 지옥권세로부터 완전히 자유와 해방을 받을 수 있도록 날마다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허락해 주신 참 제사장에게 십의 일을 드립니다’ 이 말이다. 창3장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담이 쌓여 만날 길이 없었는데 창3:15 그 하나님이 날 위해 나와 함께 하셔서 하나님 만나는 그 담이 무너뜨리신, 선지자 그리스도에게 드리겠다는 것이다. 요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그래서 이제는 아브라함이 내 품에, 하나님 나라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이 누구를 믿었는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갱신이 되고 변화가 온다. 그런데 샤머니즘, 귀신의 하나님, 틀린 하나님을 믿고 틀린 복음을 믿기 때문에 변화가 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 하나님은 근본을 바꿔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살면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 밖에 살기 때문에 상처와 원수 맺는 일, 미움과 분노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살면 하나님의 것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영적 사실로 판단하는 것이다. ‘아, 내가 살인자, 사탄이라는 이 악마에게 속아 사랑할 수 없게 되었구나’ 그런데 하나님의 것을 갖지 못하면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지고 매일 정죄하고 욕하고 죽이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십의 일을 드리면 굉장히 잔인해진다. 사탄의 영을 받으면 무섭고 무자비한 기도를 하는 것이다. ‘저 인간 죽이시옵소서’ 오늘날 기독교가 이렇게 전락했다. 사건을 영적인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미치는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길을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마12:28~29 네 속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집안에 강한 자를 결박하면 집안에 참된 평안이 시작된다. 강한자를 결박하지 않고 내쫓지 않으면 악한 귀신 일곱이 집안을 쑥대밭 만들기 때문에 발악하는 것이다. 마12:43~45, 인생이 왜 점점 안되고, 전보다 더욱 이상한 상태가 되는가? 악한 세대에 살고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근신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문제다.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나를 씹어먹으려고 하는 놈이 계속 찾아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악한 세대를 보지 못하면 우리가 잡힌다.
인간 때문에 찾아오는 이 고통의 문제를 넘어서는 사람이 거듭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을 못하면 내 몸 하나 사랑하다가 결국 지옥가는 인생이 된다. 내 몸 하나 사랑하면 다른 사람에게 이해, 양보가 불가능하다. 어떤 문제가 찾아와도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한다. 육신이 겪은 대로 인생을 살면 우리 감정이 어떻게 되는지 경험했을 것이다. 나팔꽃처럼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러운 육신의 감정이 찾아오면 얼굴이 여러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놈이다. 그래서 이제 그놈을 버리고 하나님의 근본, 본체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내 몸에 그리스도로 모시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이 땅에 창3장 사건을 통해 마귀의 노예로 살았던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움직이고 계신다.
마귀 노예, 포로로 사로잡혀간 조카 롯을 살리는 일에 동참했더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무한한 축복을 허락하셨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무정하고 무자비한 사람, 배은망덕한 자였다. 친아버지가 죽고 핏덩어리를 데려다가 두 살 때부터 자식처럼 키우며 조카 롯을 의지했는데 배은망덕하게 떠나버렸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런 롯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왜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축복했는가?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하나님의 힘, 창3:15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품에 하나님 나라를 선물받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감정이 상해도 상대방 때문에 자리를 옮기고 자리 다툼하며 서로 욕을 한다. 부부 간에도 작은 감정 하나만 상하면 주방에서 온갖 도구가 다 나온다.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진단해주신 말씀이, 창3장 사건을 통해 원죄, 아담의 씨로 태어나 죄의 권세가 일평생 우리 영혼을 일평생 사로잡아 사탄에 의해 길들여져서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살인자, 비진리로 다른 하나님, 다른 예수, 다른 복음으로 자꾸 사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더럽고 추악한 그의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창3;15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갔다.
창3:15이 마1:21이다. 우리에게 만남을 주셨다면 그것이 영원한 동반자, 동맹을 맺어야 할 관계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와 만남 속에 전부 동맹을 맺었다. 어떻게 동맹을 맺었는가? 자기 욕심만 챙긴 소돔왕과는 관계를 맺지 않고, 자기 백성들을 다 구출해낸 아브라함은 소돔왕의 것을 실오라기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창3:15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질 필요도 없고 섭섭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 창3:15을 지니고 있으면 사람에게 무엇이 있는지 보인다. 그래서 소돔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조카는 이런 왕을 따라간다. 우리 같으면 그런 조카를 잡아서 다리를 부러뜨릴텐데, 아브라함은 그냥 내버려둔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속에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힘을 가지면 된다. 언제나 창3:15 하나님은 아브라함 곁에서 축복하셨다.
멜기세덱 하나님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그는 깨닫게 되고 십의 일을 살아계신 하나님,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드렸다.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위해 싸우시고 나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내게 항상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리품을 하나님 앞에 드렸다. 십일조는 돈을 내라는 뜻이 아니다. 원죄로 인해, 가문의 저주, 조상의 저주, 자범죄, 죄의 권세, 이 사망의 권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살아계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의지하고 의식하면서 살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봐라. 종과 횡으로 나누어지리라” 아브라함이 하는 일에 어디든 개입하셨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의 그릇이 커졌다. 아브라함의 자세가 얼마나 높고 넓고 멋있었는지, 아브라함을 만나면 동맹을 맺고 싶어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나눠주기만 해도 구원받을 사람들이 오게 된다. 사람을 만나서 종노릇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 자유와 해방을 줘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서 종노릇하게 한다면, 다른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 몸을 사랑하게 하는 그 놈, 거짓의 영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이다. 그래서 우리는 양보할 수 있고 변화 받을 수 있다. 악령은 갱신이 안되고 변화가 안되는 것이다. 성령으로만 변화될 수 있다.
롯이 가진 무서워하는 영은 요단 들판을 바라본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롯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요일2:16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뀌지 않은 것이다. 육신의 정욕은 사탄의 것이다. 원죄로 인해, 가문의 저주로 인해, 여러 상처로 인해 육신의 정욕을 못 박아놓은 것이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을 가지고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오감대로, 육심의 감정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인정해줘, 나를 높여줘, 네가 높여줄 때 나는 좋아! 한다. 악령에 취하면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결국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같이 죽게 만든다. 나를 높여서 결국은 같이 끌려가서 합리화의 옷을 같이 입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이 보여야 된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이 바로 창3:15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것이다. “육신의 자아를 깨뜨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오너라.” 인생의 고통은 사망으로 흘러가는 욕망 뿐이다. 그래서 육신의 소욕을 위해 인생을 사는 인생이라는 것을 전5:10 이미 말씀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저것도 헛되도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보지 못하면 인간관계도 헛되고 돈도 헛되고 풍요도 헛되고 다 공허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을 바라봐야 한다. 그때 모든 것이 다 회복되는 축복이 시작된다. 창조주 말씀보다 더 좋게 보이는 상태는 하나님이 없다는 불신 세계로 들어가는 것뿐이다. 이 세상이 좋아 보이고 돈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네피림, 귀신 들림에 접속된 것과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창3:4~5이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마귀가 먹어도 된다고 했을 때, ‘이 더러운 마귀야, 그리스도 이름으로 네 머리는 산산이 깨질지어다!’ 해야 되는데 잊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사는 이유는 세상의 것이 더 좋아보이고, 내 몸이 너무 좋아보여서 늙기 전에 빨리 뭔가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늙는 것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빛나는 몸이 있다. 그리스도로 날로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속사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무서운 악마의 냄새가 나는 것 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을 보면 썩는 냄새만 난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 외에는 아무 관심을 두지 않기로 작정했다. 권력, 재물, 학벌, 외모, 재능 모두 버리고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과거에 바울이 얼마나 권력을 좋아했으면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겠는가. 권력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어서 예루살렘에 들어갔겠는가. 얼마나 권력에 꿈을 꿨으면, 유학을 갔다오고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이런 것이 필요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렘 왕 멜기세덱, 그리스도가 항상 살아서 나와 함께 하시면 문제 될 일이 없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중보자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주신 참 선지자, 인생 여정에 모든 저주와 재앙을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다 끝내신 참 제사장, 하나님의 아들이 계시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일평생 사는 날 동안 사탄에게 매료당해 지긋지긋하게 인생을 허비하게 만들었던 그놈을 이제 능히 짓밟고 일어날 수 있는 만왕의 왕,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면 더이상 필요할 것이 없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 사랑의 하나님 그리스도를 잊지 않고 살기로 작정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아브라함도 떡과 포도주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셔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더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겸손과 순복이었고, 창3:15로 무장하고 전신갑주를 입은 신앙생활이었다. 그래서 기득권자 소돔왕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고 멋있었다. 깔끔하게 줄 것은 주고, 자신은 실오라기 하나 챙기지 않았다. 상천하지(上天下地) 하나님,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 지금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공 뒤에 오는 돈, 명예, 권력, 정직하지 않게 만드는 모든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동맹을 맺은 자들에게 잊지 않고 분깃을 나눠주는 참 멋있는 사람이었다. 전쟁을 할 때 자기를 잘 도와주지 않았다고 해서 분깃을 안나눠 준 것이 아니라 동맹 자체가 분깃이었다. 식주인 가이오도 그리스도안에서 동맹을 맺은 전도자, 목사님의 식주인이 되겠다고 했다. 창3:15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몸에 고전3:16을 새겨놓았다. 하나님이 내 몸에 성전 삼으시고, 성령으로 함께 히시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대제사장 되신 중보자가 나와 함께 나를 위해 헌신하시고 싸우신다. 그래서 내 몸에 하나님의 성전 삼으시고 성령으로 함께하면 미래가 보이고 미래의 응답을 가진 자다. 미래를 보고 오늘을 누려야 한다. 미래에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미래 정복자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나를 통해 성취하실 하나님의 일을 봐야 한다. 그 때 찌질하거나 쟁쟁거리거나 쪼잔하지 않게 된다. 찌질하고 쪼잔한 더러운 마귀가 주는 것을 내어버려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일어났던 축복, 이벤트를 지금 자세하게 기록해놓았다. 축복의 이벤트가 무엇이었는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네명의 왕들이 연합하여 온 세상을 살육으로 일삼고 악마의 춤을 추는 자들을 아브라함이 물리쳐버리고 꺾어버려서 항복시켰다. 그리고 조카 롯이 그렇게 사랑한 소돔 땅의 소돔 왕도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데 그 앞에서 아브라함은 너무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살렘왕, 평화의 왕, 대제사장이신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다. 그랬더니 이미 318명을 거느리며 엄청난 재산을 가진 아브라함이 그 앞에 십의 일을 내놓는 멋잇는 모습을 나타냈다. 창3:15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이런 축복의 이벤트가 시작된다. 창3:15, 싸우시는 하나님을 알면, 물질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 몸에 창3:15을 가지면 물질도 그분을 향해 드리는 것이다. 마6;21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느니라” 십일조에 대해서 잘못 배워 십일조를 오해해서 그렇지, 창3:15 하나님의 근본 본체이신 그분이 나를 위해 싸우시고 도우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알면 보물까지 전달된다. 그래서 감사가 없는 소돔왕이 준 것으로 거부가 되었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실오라기 하나 취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아브라함과 동맹을 맺은 이들은 소돔왕을 따라가지 않았다. 자기 집에서 길리운 318명은 소돔왕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따라가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이 소돔왕에게 걸려들었다면 힘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창3:15이 심겨진 사람은 분별력과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 능력을 소유해야 걸려들지 않는다.
영적전쟁을 지속하면 하나님이 개입하고, 움직이신다. 창14:18~20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영적전쟁을 지속하면 하나님이 개입하고, 움직이신다. 사람 살리는 일에 영적전쟁을 시작하면 하나님이 무한한 응답을 주신다. “너희 대적”은 창3장 대적, 원죄의 대적,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대적, 죄의 권세로 너를 사로잡고 있는 대적을 아브라함 손아귀에 잡히게 해서 아브라함이 죄의 권세, 지옥 권세,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쪼개버린 것이다. 이런 믿음만 가지면 다 끝난다. 아브라함 손아귀에 하나님이 밀어넣었더니 완전 부숴져버렸다. 우리는 그놈을 진짜 싫어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자신을 놓고 이유있는 전쟁을 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전쟁을 해야 한다. 절대 불가능을 절대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래서 승리의 지속을 위해 아브라함은 절제했다.
창14:20, 아브라함은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흥분하지도 않고 감동하지도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절제시키며 십의 일을 드리면서 계속 언약의 여정 속에 가기를 원했다. 이런 응답의 사람이 되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멜기세덱에 드린 전리품 십의 일은 승리의 지속을 위한 절제로 우리를 볼 수 있도록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창세기 3장 15절 하나님의 근본 본체신 그리스도를 높이면 승리는 지속된다고 우리에게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에 여러가지 물품을 우리가 취해도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갖지 않고 서로의 분깃을 나누어주며 함께 동맹을 맺은 자들과 세계 복음화 할 수 있도록 237 세계 복음화 그 미션을 우리들에게 허락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놓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감격도 없는 완악함의 저주의 영들을 날마다 꺾어주시옵시고,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영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은 생명 살리는 하나님인 줄 우리가 이제 알았사오니, 생명 살리는 하나님 나라의 뉴스가 전달되어질 수 있도록 우리의 입을 열어주옵소서.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나는 전도를 위하여 참으로 하나님의 일이 있음을 인정하고 세상 것에 눈이 멀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옵소서. 이제는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가슴에 새겨놓았사오니, 사람 때문에 실족당하거나 시험 들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도록 미래를 보는 영안을 열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내 몸 하나를 사랑해서 육체 우상 속에 사망으로 가는 고통에서 빠져나와 말씀을 통해 창세기 3장 15절을 믿고 영적 사실을 깨닫는 영적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나를 사랑하는 옛사람을 깨뜨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서로 사랑하고 영적 사실로 사람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져 인간관계 속에 모든 것을 뛰어넘게 하옵소서. 한 주간, 내게 찾아오는 고통의 문제는 거듭남과 갱신의 기회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내 삶에 기쁨이 없다면 내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 나라의 뉴스가 있는지를 점검하여, 아브라함과 같이 창세기 3장 15절로 무장하고 겸손과 순복 속에 사람을 살리고 후대를 살리기 위한 영적전쟁으로 어디든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여, 미래를 보고 오늘을 누리는 가운데 승리의 지속을 위해 절제하여 드리는 십일조가 내게 회복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