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시면류관은 그리스도의 승리의 면류관
(마 27:27-31)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마태복음 27장 27-31절
본문의 사건이 벌어진 이유를 알면 언약을 붙잡고 새로운 여정을 걷게 된다.
본문과 같은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사건이 우리 삶과 역사 속에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그리스도를 알고 있고, 유일성을 강조함에도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모른다. 핍박, 환란, 죽음 앞에서도 오직 그리스도만 했던 초대교회였지만 2천 년이 흐른 지금 그 땅에는 그리스도가 사라지고 그리스도 하나만 모르게 만든 가톨릭과 모슬렘이 장악하고 말았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거의 그리스도를 모른다.
*나는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알면 눈에 보이지 않는 흑암 세력이 결박된다.
그리스도를 알면 요한복음 6장 35절, 새로운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곱씹는다. 즉 그리스도, 그 이름을 읊조린다. 또한 그리스도를 생의 목자로 영접한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그 이름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죽은 몸을 소생시키는 재창조의 능력을 소유한 자다.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어둠에 다니지 않고 빛으로 나아간다.요한복음 8장 12절 그리스도는 흑암의 세력을 몰아내는 생명의 빛이다. 따라서 우리 몸에 와 있는 흑암 세력이 생명의 빛 그리스도로 무너진다.
또한 그리스도는 인생의 출입문이다.요한복음 10장 7절 그리스도의 문으로 출입하지 않으면 재앙 시스템 속에, 올무의 덫에, 함정에 걸린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알면 함정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그리스도를 알면 세상에는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인해 올무, 덫의 시스템, 지뢰밭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세상 시스템의 틀 속에 우리를 가둬놓고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음을 알고 오직 선한 목자가 필요함을 인지한다. 요한복음 10장 10절, 예수님보다 먼저 온 놈을 버리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영접하여 창세기 3장 사건을 통하여 원죄로 형성된 옛 사람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뱀의 간교로 인해 스스로 무너진다. 세상적, 육신적, 정욕적인 욕망을 따라 실패의 길로 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몰린다.
→요한복음 1장 12절, 선한 목자를 우리 영혼에 영접해야 한다. 영접의 비밀을 알고 그리스도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자신을 이기는 영적인 힘, 위에서부터 오는 그 힘을 계속 공급받고, 세상 풍습을 좇지 않고 욕망에 따라 저주의 길로 가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성령의 힘을 공급받는다. 그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의 세력을, 하늘의 악한 영들을, 사람을 지배하여 해치려고 하는 흑암을 꺾을 수 있는 권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작된다.
이런 사람은 요한복음 11장 25절, 죽지 않는다. 멸망의 길을 간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부활한다.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에게 시달리고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생명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믿는다고 하면서 마리아는 울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나이다.”요한복음 11장27절 이 고백을 했던 마리아는 그 당시에는 안 믿었다. 그러다가 죽어 썩어 냄새 나는 동생 나사로를 예수께서 살려서 마리아에게 보여주셨을 때 마리아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시작된 것이다. ‘당신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창조주 하나님이 보내신 기름 부음을 받은 참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당신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부활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귀한 옥합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었다. ‘그리스도는 사탄의 권세를 이기신 참 왕이시오, 그리스도는 인간의 저주와 재앙을 멸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시오, 받아야 될 저주, 사망 권세, 지옥 권세를 깨뜨리신 참 제사장 그리스도이시오, 끝까지 살아남도록 우리에게 길과 진리, 생명이신 선지자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을 위하여 전 재산 옥합을 깨뜨려도 당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길을 따르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마리아는 예수님 부활의 첫 날 예수님을 뵙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 그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 마가 다락방 오순절의 역사를 체험하고 15 나라의 사람들과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시키는 구원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마리아의 가슴 속에는 요한복음 14장 6절이 살아 움직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끝까지 살아남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기도의 스케줄, 전도 스케줄을 갖는 사람만이 현장을 정복하고 일꾼을 세워가며 전 세계 전도 캠프의 현장을 열어간다. 세계를 정복한 바울은 찾아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장 1~4절, 전도 캠프 팀을 만들고 사도행전 16장 6~10절, 세계를 정복하는 팀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예수사랑교회 미래에 와 있는 응답들이다. 요한복음 15장 1절,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참 포도나무라는 것이다. 단순한 포도나무가 아니라 근본이라는 말이다. 거기에 붙어 있으면 창조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요한복음 15장 16절, 기도의 스케줄 속에서 붙어 있으면 절로 과실을 맺는다. 와 있는 하나님의 응답을 누리는 사람은 절로 과실을 맺는다. 응답을 달라고 떼쓰지 않고 와 있는 응답을 본다는 말이다. 전 세계 교회들은, 응답하라고 떼쓰며 스트레스 받고 있다. 스트레스는 마귀한테 풀기 바란다. 에베소서 6장 11~12절,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전신 갑주를 입었다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자신과 세상과 사탄과 영적 전쟁을 하는 사람은 에베소서 4장 27절,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마귀에게 틈을 주기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스트레스 해소하기 위하여 교회를 다닌다면 안 된다. 마귀에게 틈을 안 주면 마귀가 스트레스를 받아 어디론가 떠난다. 마귀에게 틈을 주기에 스트레스를 받아 흑암으로 덮혀 사람을 간교하게 대한다. 낳은 자식들에게 뱀 대가리 깨뜨리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 여자분들이 마귀에게 틈을 주면 집안 전체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지어 입혀주셨다. 아담은 마귀에게 영향을 잘 받는 여자에 대해 하나님께 말했다. ‘하나님이 함께하라고 한 이 여자가 난 이럴 줄 몰랐습니다.’ 남자들이 아내 얼굴 바라보고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치겠다.’고 한다. 간교함으로 남편을 대하지 말고 진실함과 깨끗함으로 대하길 바란다. 그러면 집안에 와 있는 하나님의 응답을 보게 된다.
*사탄의 권세가 깨지는 승리의 길
그리스도를 알면 문제와 시험과 고통들이 왜 찾아왔는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 답과 축복이 들어있고 갱신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본문을 보면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골고다의 길을 걷는 예수를 보면서 이제 끝났다며 비웃고 있다. 갈대 잎을 묶어서 예수를 아래위로 내리치고, 옷을 벗기고 이상한 행동들을 하면서 포악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들여다보고 있다. 희롱했다고 돼 있다. 남자의 씨로 잉태된 사람들이 다 이상해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속에서 승리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스도를 안다면 미래를 알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 길은 사탄의 권세를 짓밟고 완전 사망 권세, 지옥 권세, 저주의 권세가 깨지는 시간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알면 우리의 문제, 시험이 왜 왔는가를 알고 강한 자가 결박되고 쫓겨 가는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된다.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에게 찾아오는 문제나 시험, 고통들은 다 하나같이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이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모르면 창세기 3장 사건에 갇히게 된다. 창세기 3장 1절, 간교한 놈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간교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게 만들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상실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켜 영적인 존재인 인간을 육신의 욕망덩어리가 되게 한다.
마귀는 교활한 놈이다. 순간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살인의 영이 솟구치고 있으면서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 자꾸 이렇게 살면 나중에 이상한 상태가 된다. 희롱하는 자, 무정한 자, 배은망덕한 자가 된다. 이런 사람이 언약의 여정 속에서 전도의 길을 갈 수 있겠는가? 전도는 배은망덕하고 무정한 것들이 몸에서 사라지고 생명의 빛이 있을 때 되어진다.
창세기 3장 마귀의 생각에 사로잡히면 일평생 사탄의 심부름을 하게 된다.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몸은 언제나 사탄에게 미혹을 당한다. 고린도후서 4장 4절, 세상 신이 인생 전체를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갖지 못하게 한다. 그리스도를 모르게 한다는 말이다. 영적인 상태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음에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함으로 영적인 상태가 이상해져 있다는 말이다. 골로새서 3장 5절, 스스로를 우상숭배하기에 지체를 죽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몸 자체가 음란, 부정이다. 무엇이든지 부정하는 악의 영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가지고 자신 몸을 우상숭배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양보도 못하고 용서도 못하고 배려도 못하고 자기 기준으로 인생을 산다.
이런 사람들은 점쟁이들을 좋아한다. 무당들 말을 듣고 히죽히죽 웃는다. 콧구멍이 복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매일 콧구멍을 만지기도 하고 ‘숙자’라는 이름이 안 좋으니 ‘자’를 ‘희’로 바꾸라면 바꾸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점 사람의 말에 길들여져 간다.
귀신들린 상태, 즉 네피림 속에 있기에 그리스도에 몰입, 집중할 수 없다. 창세기 6장 5절, 자신의 몸이 항상 악할 뿐이다. 그의 마음과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항상 악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6절, 땅 위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셨다. 마음에 근심하셨다. 사람들이 멸망 상태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창세기 3장 15절 언약을 주셨음에도 네피림, 멸망 상태의 길을 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분이 노예, 귀신 들린 것이다. 그래서 얻어먹는 거지근성으로 살기에 실제로 써보지 못한다. 원죄에 빠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고 무자비한 인생이 되어 포악해진다. 사람의 말은 무시할 수 없지만 사람의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왜 그래?”라는 한 마디에도 사람이 이상해진다. “내가 너에게 얼마나 잘했는데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 세게 말하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진다.
그리고 세상 일만 하다가 점점 늙어가는 자기의 모습을 보고 더욱더 공허해지고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으로 끌려간다.
세상 일 하지 말고 창세기 3장 15절로 자신과 세상과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세계 복음화!” 와 있는 응답을 심중에 담고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길 바란다. 응답을 받으려고 떼쓰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와 있는 권세를 사용하길 바란다. 하늘과 땅의 권세, 보좌의 능력을 가지고 현장을 정복하는 와 계신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오늘부터 하나님이 주신 자녀된 신분과 권세 7가지로 기도하면 사람의 말에 절대 속지 않는다.
→시대를 살리는 하나님이 주신 증거를 가지고 승리하자. 하나님이 주신 시대 살리는 증거를 가지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들의 눈은 보는 것처럼 흉내 내고 있지만 실상은 맹인이라고 우리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왜냐면 세상 사람들은 세상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성공을 향한 들뜬 눈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성공을 향하여 다 들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 와 있는 응답을 누리면 모든 족속으로 가서 네 제자를 삼게 된다. 공허한 사람들, 질병으로 시달리는 사람들, 가문에 흐르는 저주의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 사망 권세에 묶여서 일평생 종노릇하며 무서움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을 제자 삼는 것이다. 이것만 시작하면 모든 응답들은 하나님이 알아서 주신다. 그래서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예배만 드리지 않고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영적인 눈을 뜨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무상으로 제공받는다.
예수사랑교회 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꿈쟁이가 돼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꿈을 꾸는 자들. 살아계신 하나님의 언약을 나의 꿈으로 나의 비전으로 삼아 이미지화 하며 실현하겠다고 결단하면 하나님은 알아서 응답을 주신다.
세상 성공으로 인해 들떠 있는 사람들을 치유시키고 구원을 알리며 새로운 생명과 영원한 시간표를 소유할 수 있도록 전달자가 된다면 모든 축복은 하나님이 알아서 주신다. 마태복음 26장 68절,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한 번 해봐 너를 순간 때린 자가 누구냐 하더라. “그리스도, 알아맞혀봐. 누가 때렸어?” 그리스도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기며 시험을 한다. 이게 우리들의 심령 상태인 것이다. 창세기 3장, 원죄로 인하여 길들여진 간교한 사탄의 전략 속에 모든 인간들이 빠져 있다.
69절,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절, 부인하여. 원죄로 인하여 창세기 3장의 원죄는 오직 그리스도만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희롱하고 간교하게 교만 속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는 게 우리의 영혼들이다. 그래서 우리 몸에 와 있는 더러운 것, 흑암덩어리를 깨뜨려버리도록 우리의 메시야,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이런 것들이 내 속에서 솟구치고 내 속에서 생각과 마음을 타고 뇌를 통하여 우리의 정신과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들을 결박하여 내어버리자.
우리가 받아야 할 사탄의 모든 공격을 그리스도로 완전 박살내기 위하여 예수께서 이렇게 당했어야만 했다. 그래서 죄를 자꾸 지으면서 마귀에게 속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인정하길 축복한다. 누가복음 10장 19절, 마귀의 일을 멸하면 그 누구도 해칠 수도 없고 건드릴 수도 없고 실패할 수도 없고 승리의 길을 걷는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게 내 영혼을 장악하고 간교함으로 끊임없이 그리스도 이름을 희롱하게 만드는 더러운 저주의 영아, 너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몸에서 떠나가고 그리스도를 나의 참 왕으로, 주인으로 섬길 것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자기 몸에서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인한 원죄로 그리스도를 희롱하고 부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가 이 땅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 “마귀 있다!”를 인정하고 “마귀야 가라!”고 명령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한 번 부인할 때 “마귀야 가라!”고 했으면 되는데 이걸 못한 게 철천지한이 됐던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후에 베드로전서 5장 8절, 마귀를 고발했다. 근신하고 깨어 있어라. 기도의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사탄의 대가리, 권세를 깨뜨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라.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알면서도 희롱하게 만들고 그리스도를 알면서도 부인하게 만드는 이 놈의 우는 사자를, 삼킬 자를 사로잡아 완전 무너뜨려라!”
야고보서 4장 7절, 하나님 말씀에 순복한다면 마귀를 대적하는 자가 된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그리스도를 알면서도 희롱하고 부인하게 만들어 내 인생 전체를 흑암덩어리로, 사탄의 권세로, 마귀의 종노릇으로 끌고 들어갔던 저주 영들은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너는 빛의 자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로 살지어다!”
요한복음 16장 33절, 어떤 문제, 환난, 시험 이런 문제가 와도 너는 담대하라 세상을 이긴 자는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내 인생의 참 왕이시오 참 제사장이시오 참 선지자이시다.
“오늘도 사탄의 전략에 의하여 내 영혼을 삼키려고 그리스도를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희롱하게 만드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산이 깨어질지어다.”
“예수님이 골고다의 길은 나에게 새로운 승리의 길을 알려주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다.”
“이제부터 내 몸에 와 있는 무능, 가난, 질병, 사망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산이 깨어질지어다!”
“이제는 내가 은과 금이 없어가지고 끊임없이 응답 달라고 쟁쟁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내게 이미 준 자녀된 신분과 그 권세를 가지고 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것이다.”
“사탄의 권세를 완전 내가 꺾을 수 있는 승리의 길,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내게 주신 것이다.”
본문의 사건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역전시키지 못했던 제자들은 엠마오로 내려갔다. 골고다의 길을 걷는 예수를, 힘없는 예수를 보고 도망간 것이다. 도망간 그들에게 사흘 만에 나타나셔서 힘을 주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려 보내셨다. 그리스도의 승리의 면류관을 전신갑주로 입자. 그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해칠 수 없고 영혼을 빼앗을 수 없으니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자. 예수님이 걸으신 골고다의 길은 완전한 길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놓으실 완전한 길이라는 말이다. 살아계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 박수로 영광을 돌리자.
*재창조할 수 있는 완성의 길
우리는 완성의 길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골고다의 길, 십자가를 향하여 가는 길은 바로 대속의 길이다.
‘내가 담당해야 되는 모든 저주와 재앙과 지옥권세를 저 분이 대신 담당하러 가시는 길이구나. 그래서 더 이상 교만하게 살지 않고 섬기는 자가 될 것이다. 누가복음 9장 23절, 자아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제나 사람을 섬기고 그들을 사랑해 주고 그들을 끊임없이 용서해 주는 제자의 길을 나는 갈 것이다. 내가 이 땅에 무시를 당해도 내가 이 땅에 사람들로부터 바보,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나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갈 것이다.’ 그게 부활의 길이다. 우리는 부활의 길을 걷고 있지 사망의 길을 걷지 않는다.
→대답이 없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셨다. 원죄를 모르고 인생을 살면 어느 날 갑자기 황당무계한 일들을 당하게 된다. 히브리서 12장 2절, 우리가 빨리 해야 되는 일이 하나 있다. 믿음의 주 그리스도 그 분뿐이다. 오직 믿음의 주가 누구인가? “예수는 그리스도!” 온전케 하는 그 주가 누구인가? “예수는 그리스도!” 그 분만 바라봐야 한다. 그리스도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이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우리를 통치하시고 알아서 응답을 주신다.
→이제는 믿음의 주, 나를 온전케 하는 그리스도만 바라보자. 그리스도, 믿음의 주가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
성경 66권의 주제가, 창세기 3장 15절 그리스도가 누구냐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이상한 삶을 산다. 그리스도를 모르면 뭐든지 안 되는 현실이라는 사실에 부딪힌다.
마태복음 16장 13절,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때 이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뭐든지 안 되는 현실이라는 사실 속에 지금 속국되어 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오직 유일성 속에 믿음의 주,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할 사람들이 14절, 틀린 걸 붙잡고 있었다. 세상의 정의를 갖고 살았다. 세상의 기준은 우리를 미혹한다. 정의라는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인다. 정의를 앞세우면 원죄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정의를 강조하면 창세기 3장 사건을 발표하지 못하게 한다. 정의를 외치면 마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알면 신비주의 할 이유가 없다.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신비주의 속에 빠져버린다. 신비는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있다. 얼마나 그리스도 속에 신비가 있었으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지식을 얻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선언했다. 그리스도는 신비 중의 신비이기에 신비주의가 되지 않기를 축복한다. 신비주의가 되면 마귀를 폭로할 수 없다. 이미 거짓말쟁이가 돼버린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하나님 만난 것처럼 신비주의에 빠져 있다. 또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선행에 빠진다.
선행 자체가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는 것이다. 사람이 선행으로 길들여지고 사람들로부터 자꾸 칭찬을 받으면 자신 몸에 있는 원죄 문제는 해결 받을 길이 없다. 선행, 구제 속에 빠지면 하나님의 성령을 훼방하고 자신의 의를 가지고 인생을 망친다. 아무리 성경 공부 많이 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뭐 하는가? 자신이 마귀의 자식임을 확인하지 못한다. 요한복음 8장 44절,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의 자식들이 왜 그렇게 성경을 연구하는가? 그래서 틀린 주석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여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현실과 맞지 않는 잘못된 이념과 사상들을 가지고 시달린다.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이 내 몸에 딱 좋아!” 이러면 끝난다.
“창세기 3장 15절이 내 몸에 딱 좋아!” 이게 안 되면 미안하지만 틀리게 알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길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창세기 3장 15절이 딱 좋아지시기를 축복한다. 이 사람은 죽음의 길로 가지 않고 부활의 길을 걷는다.
*온 천하에 구원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부활의 길
→‘그리스도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을 가져야 한다 부활의 길을 가면서 언제나 대속의 길을 걸으며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 완성의 길을 걸으며 제자를 남긴다.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은 똑똑하지만 그리스도를 몰랐다. 마태복음 27장 28절,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으로 불렀다. 그래서 예수님을 죄인으로 인 쳐 특수 죄인이다 해서 홍포를 입힌 것이다.
우리에게 부활의 길, 완성의 길, 승리의 길을 주시려고 우리 예수님이 이 길을 선택한 것이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부르자. 모든 부끄러움은 이미 예수님이 다 당하셨다. 그의 옷을 벗기고 우리가 당해야 될 부끄러움, 수치심, 과거의 괴로움, 숨은 문제도 다 그 분이 해결하셨다.
29절, 가시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죄수복을 입히고. 유대인의 왕에게 가시관을 씌웠다는 것이다. 예수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그런 모습으로 골고다의 길을 걷으셨다. 피가 흐르는 얼굴을 향하여 침을 뱉고 조롱하고 또 다시 희롱하고 무자비한 욕지거리를 해가면서 홍포의 옷을 벗기고 입고 오셨던 옷을 또 다시 입혔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끌고 나갔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이런 엄청난 수치심을 느끼게 한 것이다. 예언된 말씀, 이사야 53장 1~ 6절의 말씀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800년 후에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이사야가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천하에 가장 바보 중 바보요, 비천한 자일 수밖에 없다.
과연 하나님 계시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에게 있어 누구신가? 한 번 물어보길 바란다. 하나님이 계시기 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렇게 당한 것이다.
→우리 몸에는 그리스도가 딱 맞아야 한다. 만약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으면 본문과 같이 조롱하고 희롱하고 침 뱉고 갈대를 엮어서 사람을 내리치고 정의로운 것처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거짓말쟁이로 살인자로 살았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 와 내게도 보이셨음이니라. 그리스도 이름을 믿는 게 보여준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본 자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믿는 자가 온전해진다.
오늘 승리의 길, 완성의 길, 대속의 길, 부활의 길을 걷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를 본 자로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그 이름을 많이 불러서 사람을 살리는 자가 되고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양보하면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는 최고의 전도 제자들이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님의 면류관은 그리스도의 승리의 면류관이라고 말씀하셨사옵니다. 예수님이 걸어갔던 골고다의 길은 우리에게 승리의 길을 열었고, 사탄의 권세를 완전히 꺾는 승리의 길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 골고다의 길은 우리에게 재창조할 수 있는 완성의 길을 허락해 주셨사오니 우리가 예수를 죽인 것을 내 마음에 새겨놓고 예수를 바라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언제나 대속의 길을 걷는 우리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 교만하지 않고 섬기는 자가 되고, 그들에게 전도, 구원의 사랑을 온 천하에 증거 할 수 있도록 부활의 길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 속에 답을 가질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 주셨사오니 정상의 길에서 세상을 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답이 되지 않으면 조롱할 수밖에 없고, 희롱할 수밖에 없고, 침 뱉을 수밖에 없고, 가시관을 씌울 수밖에 없고, 옷을 벗기고 또 벗기고 이런 이상한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답이 되었으니 모든 저주의 길에서 멸망의 길에서 해방 받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정신질환자로 살지 않게 하시고 실패의 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사오니 하나님 은혜에 충만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것을 성취시킨 그리스도 하나님을 날마다 찬양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이제는 부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스도를 알면서도 희롱하고 성공을 향해 들뜬 상태로 응답 달라고 쟁쟁거리며 육신적 욕망을 따라 사망의 길을 가는 삶에서 빠져나오도록, 예배를 통해 내 안의 창3장 원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이 그리스도의 승리의 면류관임을 깨달아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부활의 길을 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안 되는 현실 앞에 스트레스 받고 다른 것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참 포도나무 되신 그리스도에 딱 붙어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로 자신과 세상과 사탄과 영적싸움하여, 마귀의 간계와 사람의 말에 속지 않고 이미 와 있는 응답을 누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꿈을 꾸며 전 세계 현장에 나아가 모든 사람을 섬기고 구원의 사랑을 증거하여 일꾼을 세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