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적 욕망따라 선택한 롯의 땅. 소돔과 고모라
(창 14:1-12)
나는 이 복음의 여정 속에 세계를 정복하는 비밀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24시 기도의 스케쥴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들이 나와 같이 기도의 스케쥴을 갖게 되면 전도의 스케쥴을 늘 갖게 된다. 그러면 모든 응답이 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만남의 시간, 장소 모든 것이 전도 스케쥴로 보인다. 그리고 늘 현장 전도를 마음에 새겨놓고 다락방을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지, 이런 전도의 계획을 생각하게 된다. 대만에서 온 청년이 눈에 보여서 우리 교역자와 현장을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팀사역 제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기도했다. 그러면 미션홈이 회복되고, 한 생명을 통해 지교회가 탄생되는 것이다. 이렇게 현장에서 일꾼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것을 보지 않고 인생을 그냥 살면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 행16:11~15 바울은 루디아를 만났다. 루디아를 통해 유럽을 정복하는 시스템을 세웠다.
*우리가 사는 인생 여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의 일꾼을 세우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말씀이 롬16:17~20이다. 창3:15을 가지고 있으면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는 자가 되지 않고 사람을 살필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롬16: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육신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창3장의 원죄를 모른다. 그래서 창3:15 그리스도를 전혀 적용하지 않는다.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종노릇 하는 것이다.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기도의 스케쥴을 갖지 못하면 전도, 선교의 일꾼이 될 수 없다. 롬16: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자신과 세상과 사탄과 영적 전쟁을 하면, 말씀을 따라 순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그 자세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생명의 빛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살리는 일에 언제나 지혜가 있어야 한다. 어떤 일에도 사람을 미혹하거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런 악한 일에는 미련한 자가 되어야 한다. 롬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이 말씀이 내 몸에 1인칭이 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는 영원한 존재가 된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사람이 끝까지 남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따라가고 적용하고 살면 응답을 달라고 하지 않고 와 있는 응답을 보는 자가 된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이 비밀을 몰라서 교회와서 응답을 달라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자 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보이고 모든 것을 알게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과 세상과 사탄과 영적 전쟁을 선택하면 인생 여정에 올바른 길을 가게 된다. 창3;15은 요14:6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길, 진리, 생명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아버지 나라까지 길을 가게 된다.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을 믿고 고백하면 된다. ‘왜 나에게 이런 문제가 와 있을까? 왜 이런 고통이 찾아왔을까?’ 하는 여러 질문 앞에 ‘마귀 있다!’ 한 마디를 던지면 된다. 마16:23 예수님이 ‘마귀 있다’는 것을 베드로에게 확인시켜 주셨다. 신앙고백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고 모든 축복의 언약을 다 받은 베드로였지만, 마귀 있다는 것을 모르면 결국 넘어지고 깨지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이 땅을 사는 인생 여정에 사람의 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절대 매력적이지도 못하고 인간관계에 성공할 수도 없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려면 ‘마귀야 가라!’ 해야 한다. 이 비밀을 갖지 못하고 선포하지 못하면 사는만큼 창3장의 나쁜 버르장머리로 살 뿐이다. 그래서 인생 여정에 기도 스케쥴을 갖지 못한다. 그러면 전도는 꿈 꿀 수도 없고, 현장 정복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무기력과 무능, 실패 속에서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로 전락한다.
마12:28~29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더러운 것을 내어쫓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상한 것에 스트레스를 풀지 말고 마귀 있다고 인정하고 강한 자를 결박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도 지긋지긋한 세상 앞에 세상을 알게 되고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볼 수 있다.
창3:15을 마16:16 되게 해야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창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마귀를 인정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큰 복을 주셨다. 자신과 자녀들이 속지 않는 길을 알려주셨다. 창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벨 대신 셋을 주셨는데, 셋은 다른 씨라고 말씀했다. 창3:15 언약의 씨로 셋이 태어나 드디어 그의 아들 에노스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했다. 우리는 복음의 씨로 이제부터 천하 만민이 우리를 통해 복을 받게 해야 한다. 창3:15의 씨를 가져야 하나님의 말씀에 준행하는 자가 된다.
*창3장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다.
창3장 사건을 모르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교회를 다닐 뿐이다. 원래 인간에게 스트레스라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씨를 가진 자는 “모든 문제 끝!” 간단하다. 더 이상 창3장을 무시하지 말고, 내 몸에 와 있는 창3장을 인정해서 창3;15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받아들여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마음껏 사용하고 복음을 복음되게 하는 증인이 되기를 축복한다.
창3장을 모르면 죽는 날까지 육신적 욕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훗날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불살라 없앨 계획이었기 때문에 롯에게 하나님이 산으로 피하라고 했는데도 죽어도 소알로 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롯은 모든 것을 다 잃고 부끄러운 구원만 받았다. 창3:15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순종하고 복종할 때 끝까지 살아남는다. 창3장 사건으로 시작된 사악함, 완악함, 음란함을 창3:15로 깨뜨려야 하나님의 말씀을 내 영혼에 담을 수 있다.
사람 몸에는 창3장, 이 원죄의 DNA가 온몸에 퍼져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싫어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해도 믿지 않는다. ‘싫어요. 난 멀었어요. 왜 함께하세요?!’ 하나님을 거부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늘 스트레스만 풀기 위해 떠들어댈 뿐이다. 나는 늘 기도의 스케쥴을 가지고 산다. 그 기도의 스케쥴이 전도로, 현장으로, 일꾼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의 기도의 스케쥴은 욕망으로, 욕심으로, 응답으로만 흘러간다. 자기 몸에 창3장에 와 있는데도 모르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늘 사탄의 전략에 자신이 넘어지고 취해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본문의 아홉 명의 왕들의 상태가 전부 이상했다. 이들이 오늘날 중동, 애굽,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터키, 이런 나라들로 지금까지 우상 숭배하는 나라로 있다. 하나님은 우리 온몸에 네피림이 퍼져있어 욕망으로부터 계속 길들여져 간다고 말씀했다. 그래서 바벨탑 운동 속에 자기들의 왕을 세워놓고 잘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아담이 안식일에 사탄에 대해 메세지를 많이 들었다. 그 증거가 창2:19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할 일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하나하나 자세히 관찰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분명 뱀을 봤다. 뱀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이 뱀은 정말 교묘한 놈이구나. 집중력이 대단하구나. 혀는 두 갈래네’ 그런데 뱀을 관찰할 때마다 그 뱀이 굉장히 정답게 느껴졌을 것이다. 뱀이 저주를 받아서 땅으로 기어 다녔던 것이지, 저주를 받기 전에는 뱀의 모습을 보고 굉장히 흥분되었을 것이다. 그 증거가 창3:1이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사람이 창3장으로 인해 가장 간교한 자가 되었다. 사람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간교하다. 간교한 뱀이 드디어 여자에게 물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복음 아닌 것을 말하는 간교함이 우리 몸속에 어마어마하게 많다. 복음을 받아들이면 되는데, 진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간교함이 우리 몸속에 확 퍼져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기 보다는 수많은 기준과 경험, 이런 것들이 합쳐져 사람들을 간교하게 만들었다. 성경을 가지고 주석을 써놓은 수많은 책들을 보면 육신적 욕망으로 복음만 붙잡지 못하도록, 복음에서 이탈되도록 간교한 말들로 교활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고후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사탄이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 할 만큼 집요한 전략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탄의 목적은, 그리스도 이름에 ‘오직’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성경을 신뢰하지 않도록 우리를 미혹하게 만드는 간교한 놈이다.
이 땅에 아담과 하와에게 죄가 들어오기 전에 이들을 넘어뜨리는 사탄의 전략이 있었다. 뱀이라고 이름을 지은 아담, 하와에게 접근했다. 얼마나 간교하고 교활한지 뱀이 가장 놀기 좋게 느껴졌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내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화를 내지 않으면서 나에게 누군가 스트레스를 조금만 주면 화내고 삐지고 열등감과 분노 속에 좋은 과거를 다 잊어버리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 간교한 놈이 나를 가장해서 살고 있으면서 주도면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깊은 전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엡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말씀했다. 창3:15의 갑주, 창3:21의 가죽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내 인생 모든 문제 끝났음을 인정하는 사람은 이 놈에게 속지 않는다. 요19:30 십자가 죽음을 통해 흑암권세, 사탄의 권세가 깨져버리고 내 인생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기 때문에 엡4:27 이제 마귀로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 마귀로 조금만 틈을 주면 마귀의 그 간교함이 자존심, 교만으로 눈을 돌려 갑자기 열이 오르고 이상한 상태로 돌변한다. 결국 마귀로 틈을 주면 욕심쟁이, 살인 이것뿐이다.
용서가 없는 사람은 간교한 사단에게 당한다. 고후2: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용서하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람이다. 용서가 없는 사람은 사탄이 간교하게 물어버린다. 실제로 뱀은 1m에서 꼬리를 치면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 나는 어려서부터 뱀이 꼬리치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면 잠자리, 개구리, 쥐까지 다 나와서 먹을 것이 있는가 살피다가 잡아먹힌다. 뱀의 입이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입을 벌리는 순간 순식간에 완전히 잡아 먹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고 언제나 용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사람을 향해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되지 말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 용서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날 위해 십자가상에서 모든 문제를 이루신 그리스도가 나의 참 왕이 되셨기에, 내가 잘했든 잘못했든 용서를 빌어줄 때, 내가 상대방을 섬길 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신다.’ 이것이 전도의 스케쥴이다. 이런 사람이 일꾼을 세우는 것이고 지교회까지 세울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후2: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사탄은 무엇이든지 이해하지 않게 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양보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간교한 생각만 갖게 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게 해서 서로 원수 맺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빠져나와야 한다.
고후2: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전도의 문은 사탄의 계략에 빠지지 않을 때 열리는 것이다. 사탄에 속는 사람은 절대 전도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늘 육신적 욕망에 따라 선택하기 때문이다. 육신적 욕망에서 빠져나와 그리스도의 영적인 군사가 되기를 축복한다.
계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이 말씀대로 사탄을 잡아야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왕 노릇 하고 싶으면 이 놈을 결박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생이 정말 뷰티풀, 원더풀이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와 있는 응답인데 이 응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용, 마귀를 결박해야 한다.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내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이 있는지 없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이 무엇인가? “마귀 있다!” 폭로하고 마귀에게 속지 않는 것이다. 마귀에게 속지 않으면 절대 불신앙하지 않는다. 요일3:8 불신앙하는 자는 마귀에게 순간 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1초만에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만나서 스트레스만 푸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사탄의 권세를 결박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강한 자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어 쫓아야 한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고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 되고 빛을 선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가 된다.
창3장의 사건을 보지 못하면 불신앙의 결과를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그런데 자신이 처한 환경으로 인해 자신과 세상과 사탄을 보는 눈이 없고, 창3장 사건을 보는 눈이 없어 순식간에 불신앙의 결과를 맞이했다. 갈 바를 알지 못해도 순식간에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결단력이 있었던 아브라함이 마누라까지 팔아먹는 연약함을 보이는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불신앙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건져내셨다. 그 때 아브라함은 예배를 회복하면서 자신과 세상과 사탄을 보는 눈이 열렸다. 그래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문제와 고통은 자신과 세상, 사탄을 보는 창3장인 것을 절대 잊지 않아야 한다.
창3장 사건은 나를 속이는 교활함, 간교함이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육신적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은 사탄의 간계에 빠지는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일들이 소돔과 고모라, 불바다 되는 곳으로 들어가는 일 뿐이다. 그래서 육신적 욕망을 따라 살면 마25:46 형벌 밖에 없다. 불신앙하는 자들은 형벌에, 창3:15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다. 계21:8, 육신적 욕망은 두려움밖에 없다. 간교함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두려워하면서도 사건을 저지른다. 그래서 하나님의 믿지 않는 자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형벌이다.
*아브라함은 예배를 통해서 모든 것을 회복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무상으로 주시고, 전 세계를 주시고, 동서남북을 주셨다. 예배 때마다 받는 축복이 달라졌다. 양보하면 양보하는 만큼 세계가 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교회 안수집사님은 헌금하는 것이 제일 기쁘다고 하셨다. 헌금을 할수록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주셨다는 것에 맛을 봤기 때문이다. 이제 그 가문은 돈이 마르지 않는 가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양보하면 양보하는 만큼 일꾼이 세워지고 현장을 정복하는 축복이 온다. 예수사랑교회를 넘어 세계복음화를 위해 결단하고 그 언약 속으로, 여정 속으로 들어갔더니 하나님이 예수사랑교회를 향해 세계의 응답을 주시고 있다. 안수집사님이나 우리교회 제자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이 보내지 않으시면 만날 수 없었다. 해외 있는 선교사님들이 예수사랑교회 성도들을 보고 너무 다르다고 했다. 빛이 나고 힘이 있어보인다고 했다. 자유와 해방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나는 세계복음화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도캠프의 스케쥴 속에 항상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 전도캠프 속에 집중하고 돈도 여기에 써야 한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전 세계를 무상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주인공으로 세우시고 구원 사역의 무대를 펼쳐 가셨다. 하나님이 예수사랑 모든 백성들을 세워놓고 구원 사역의 무대를 펼쳐 가시는 것이다. 창14:13 “히브리 사람” 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구원의 사역을 펼쳐가시는, 하늘과 땅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세계무대를 보라는 것이다. 전쟁을 참가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아브라함이 받은 것이다. 예수사랑교회가 바로 히브리 사람, 그리스도인이다. 창3:15을 가진 히브리 사람, 마16:16을 성취시킬 하나니님의 사람들이 바로 예수사랑교회 성도들이다. 창3장 사건을 모르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구원 받지 못하고 시달리고 있다. 창3장 사건을 알고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불러야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 축복이 있고, 와 있는 응답도 보게 된다. 창3장 사건을 몰랐던 바리새인, 유대인들이 얼마나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많이 불렀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요8:44 출신이라고 진단하셨다. 구원이 없는 자들, 스트레스만 풀기 위해 사람을 잡아 죽이는 자들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다. 창3장 사건을 모르고 교회를 다니면 교회와도 잠만 온다. 창3:15 뱀 머리를 정말 밟고 싸울 때 영적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이 비밀을 알고 나서부터는 자신과 세상과 사탄과 영적전쟁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본문에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전쟁에서 승리하는 현장을 볼 수 있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을 전 세계 알리기 위해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심부름도 시키신다. 사탄은 멍청해서 전쟁을 좋아한다. 결국 아브라함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너의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는 말씀이 드디어 성취된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한 자들이기 때문에 이미 우리의 이름이 창대케 되어졌을 뿐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으로서 이 땅에 와 있는 응답을 가지고 사는 자가 되었다. 어떤 분이 나에게 와 있는 응답이 뭐냐고 물었다. 와 있는 응답을 가지고 기도의 스케쥴 속에서 마가다락방에서처럼 10일만 오로지 기도 속에 있으면 오순절 날, 그리스도의 날이 몸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응답을 받으려다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것은 온전한 신앙이 아니라 틀린 신앙이다. 이 분이 정말 실천했는데 정말 고마움을 느끼고 우리교회 메세지를 지속해서 듣고 있다.
아브라함은 싸우지 않고 양보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용서했다. 우리의 선택의 결과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선택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간교한 옛 뱀, 마귀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놈한테 속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놈을 속이는 자가 되어야겠다’ 그래서 사람 살리는 헌신 속에 하나님의 무한한 응답이 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 배은망덕하고 무정한 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품고 양보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힘을 가진 자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한 반만 살아보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한 번 양보해봐라.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의 문제를 한 번 생각해봐라. 그러면 오직 속에 유일성의 응답과 재창조의 응답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육신적 욕망을 따라 인생을 선택하면 그 사람은 미래가 보이지 않고 미래 자체가 없다. 창3:15을 위해 생각하면 미래가 보장되고 미래를 볼 수 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내 곁에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 말고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다. 나에게 여러 가지로 피해를 준다고 착각하지 말고 그 사람을 통해 생각을 갱신하면 그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창3:15을 믿는 그 믿음은 미래에도 있고 응답도 있고 모든 것이 있다. 창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3장의 오늘을 보고, 자신과 세상, 사탄을 봐야 한다. 그리고 “예수는 그리스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면 소유가 많아지는 부자의 축복이 시작된다. 창13: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유럽이 초창기에 예수는 그리스도를 찬미했을 때 전 세계 모든 것을 빼앗을 만큼 강대국이 되었다. 그런데 강대국이 되니까 창3장의 병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먹고 마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면 그것이 진짜 부자다.
전도캠프에 눈만 뜨면 지구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아브라함에게 선택의 시간이 왔을 때 아브라함은 양보했다. 그리고 창13:18 또 예배를 드렸다.
아브라함이 한 일은 예배를 드리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소, 양, 돼지를 끌고 이 동네, 저 동네로 전도캠프 다니면서 곳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동서남북을 무상으로 주시는 은혜를 주셨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축복이다. 그런데 예배가 없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는 무서운 생각이 부딪쳐왔다. 무서운 생각이 부딪쳐 올 때마다 창14:11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기고 도망가고 포로가 되는 결과가 왔다. 다른 사람은 재수가 좋아 도망이라도 갔는데 롯은 오히려 포로가 되었다. 육신적 욕망을 선택한 결과다. 아브라함은 단을 쌓고 예배하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사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렇게 노래 부르면서 누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지 않고 자신과 세상과 사탄을 이기는 비밀을 누리고 있었다.
‘하나님, 오늘 속에 불신앙했던 그 땅을 자꾸 보여주시는 이 환상이 무엇입니까? 다시는 애굽 땅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나의 심령을 붙잡아주시고 나에게 하나님의 힘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이 하나만 했는데 아브라함은 거부가 되고 동서남북을 무상으로 다 받았다. 세상의 종, 물질의 종, 세상 풍습을 따라가는 모든 것은 진노, 저주, 재앙, 전쟁이다.
창14: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왕이 되었는데도 이들이 끊임없이 싸웠다. 이렇게 욕망은 끝이 없다. 가게를 차려서 장사가 잘되면 2호점을 또 낸다. 사람들이 퇴직을 하고 쉬고 싶어서 지방으로 가지만 끊임없이 무엇을 하려고 한다. 사람 몸에 구원의 길이 없고, 이 메세지가 살아움직이지 않으면 굉장히 고독한 것이다. 어느 지방의 짬뽕집을 들어갔더니 내 나이 정도 되는 분이 온 가족을 데리고 가게를 운영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무서운 가스불 앞에서 계속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이 저기서 3년을 더하고 폐암에 걸리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집을 놓고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기도 속에 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구원을 주세요’ 하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기도 속에 있다가 다시 한 번 찾아가려고 한다. 그런 분은 나름대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문 닫을 때 쯤, 아무도 없을 시간에 들어가야 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일꾼은 이런 것을 잘 찾아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이름을 놓고 기도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쉬러 간다고 하면서 도시를 떠나지만 전부 욕망의 종노릇만 할 뿐이다. 쉬는게 아니다. 진짜 쉼은 빛의 전도캠프다. 창3:15 언약이 없는 삶은 욕망적 싸움 밖에 없다. 그래서 물질의 풍요로움이 있어도 끊임없는 살인, 전쟁, 재앙이다. 우리가 가진 풍요로운 물질 속에 누리지 못하고 싸우고 있다. 세상의 욕망은 흑암으로 빨려가는 블랙홀이다. 어느 종교인은 자기가 무간 지옥에 떨어져 한이 만 갈래나 된다고 고백하고 죽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경고했다. “세상 중심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사탄의 간교로 인해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라다니는 것은 진노밖에 남는게 없다.” 이것을 깨닫게 하셨다.
요일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을 아는 자가 이기는 자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사탄의 간교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았다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전도캠프를 위해서 이 세상에 사는 자들이다. 요일2:16~17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을 가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무상으로 주신 것을 누리면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비행기를 무상으로 주셨기 세계복음화를 위해 팁을 주고 탄다고 생각하고 캠프 속에 들어가면 된다.
창14:4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12년 동안 조공을 바치고 섬겼는데 이제는 자신들도 세력이 강해졌다고 생각하고 힘을 합쳐 연합 군대를 만들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의 생각 수준이다. 인간적으로 뭔가 독립해보려고 몸부림치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던 연합은 더 큰 재앙을 갖다 줄 뿐이었다.
창14:5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결국은 배반한 자들에게 분을 품고 길목에 있는 모든 연합군들을 죽여 버린다.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이다. 스트레스를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풀어버린다. 정말 무서운 것이다. 창3장에 각인된 저주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해결해야 한다. 다섯 나라 왕하고 대결하기 위해서 마구잡이로 약탈하고 빼앗고 죽였다.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에게까지 순식간에 재앙이 찾아왔다. 창3:15이 없는 인간성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함을 모르는 욕심쟁이일 뿐이다. 이들이 함의 자손이다. 가나안 땅에서 이들이 완전 부패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호수아가 다 쓸어버렸다.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리셨는지 생명있는 자들을 다 죽이라고 했다. 그런데 죽이지 않고 놔 둔 결과가 오늘날 하마스 족속이다.
창14: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창3:15의 언약을 의지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허무하게 다 잃고 빼앗기고 비참해진다. 다른 사람은 산으로 도망가서 살았는데 롯은 도망가다 잡혀서 포로가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끝까지 사랑하신다. 아브라함이 예배를 드릴 때 롯이 옆에서 본 것이 있었다. 그래서 무정하고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다. 롯에게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절대 은혜를 체험하는 은혜를 주셨다. “예수는 그리스도” 를 붙잡으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창3장 사건을 눅10:19로 적용하는 것이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를 사로잡아 그리스도로 밟아버려라. 내 몸속에 있는 간교한 영, 더러운 헛소리와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켜야 한다. ‘도무지 용서하지 못하게 만들고 창3장 사건을 알면서도 창3:15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장악하고, 원수를 제어하지 못한 채 더럽게 살게 하는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몸에서 떠나갈지어다!’ 이렇게 선포하면 우리를 해칠 자가 없다.
싸움은 사탄이 교만을 심기 때문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교만이 일어나는 것이 사탄의 간교함,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투쟁하게 하고, 부부간에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창3:15을 가진 자는 섬기는 자가 된다. 우리의 대속자가 내 몸에 계시니 나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너를 섬길 것이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무궁무진하다. 행1:8을 나의 것을 받는 자는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무상으로 제공받는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전무후무한 응답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육신적 욕망을 따라 선택한 롯의 땅 이 소돔과 고모라의 현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창세기 3장의 이 사건, 저주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몸에서 무너지게 하옵시고, 창3장 사건으로 인하여 세상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탄의 이 간교함에 교활함에 내가 걸려들지 않고 미혹당하지 않도록 성령 충만으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의 주인공으로 세워놓고, 전도 스케쥴 속에서 이제는 현장 전도, 현장의 일꾼들을 세워나가기 위하여 우리들을 하나님이 불러주셨사오니,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그 계획을 볼 수 있을 만큼 우리들에게 영안을 열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온 몸에 퍼진 원죄로 인하여 욕망의 종노릇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빠져나오도록, 창세기 3장의 사건에 눈을 뜨게 하셔서 내 인생에 예수그리스도의 능력과 축복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육신적 욕망에 따라 선택하는 것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불바다가 될 소돔과 고모라로 빠져들게 하는 교활한 사탄의 전략인 것을 알고, 교만과 다툼 속에 창세기 3장 15절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 자신과 세상, 사탄과의 영적 전쟁의 여정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순종하여 동서남북을 무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한 주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어도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되지 않고, 하나님은 무정하고 배은망덕한 자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어떤 사람도 품고 양보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을 받아 사람을 살리는 헌신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한 응답을 누리며, 일꾼을 세우고 지교회를 세워나가는 전도캠프 속에 들어가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