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으면 양보하는 힘이 온다
창13:1-13
예수사랑교회는 하나님의 힘을 공급 받는 교회다. 이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을 허락해 주실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는 ‘하나님이 없다’ 할 만큼 심각한 상태에 있지만, 예수사랑교회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심을 믿기에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시고 응답해주신다.
*평상시 표시 없는 영적전쟁을 통해 하나님과 1인칭 관계를 회복하면 많은 응답을 누리게 된다.
우리는 생각을 키우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과 내가 1인칭이 될 때 많은 응답과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과거에 나는, 창세기 1,2,3장을 모르고 하나님을 어마어마하게 큰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다.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도 많이 체험했고, 내 몸에 기적과 같은 일들도 여러 번 일어났었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하나님은 알겠는데, 그 하나님은 나와 1인칭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체험한 하나님에 대해서 집회를 다니며 간증도 많이 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알릴 수도 없고 구원을 주는 비밀도 몰랐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군사역 집회를 다니면서 많은 군인들이 울고 웃는 현장을 많이 봤지만, 정작 나는 굉장히 공허했다. 군대라는 특성상 많은 군인들이 모이긴 했지만, 그들에게 인생에 사실적인 답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늘 미완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전도 사역도 했었다. 카이스트 출신들을 데리고 일 년에 두 번씩 거지 전도도 다녔다. 그러나 나에게는 답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을 다 모아서 집회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내 영혼은 점점 혼동과 공허, 흑암으로 덮이는 것을 느꼈다. 끊임없이 내 영혼을 집요하게 파고든 불신앙이 인본주의로 나타났다. 내 자아는 끊임없이 하나님이 없다고 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반항적인 이상한 고집이 나타난다. 그래서 내 기준에 의탁해서 신앙생활을 했다. 교회 가고 싶으면 가고, 안가고 싶으면 안 갔다. 교회 광고가 나하고 맞지 않으면 아무런 감각 없이 살았다. 이런 것이 내 몸에 왜 이렇게 집요하게 파고 들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훗날 복음을 발견한 이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평상시 영적 전쟁을 놓치지 않는다. 창1:1 하나님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했다.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영원한 생명의 빛을 보내주셨다. 그 생명의 빛을 선언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인간은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 영적인 존재인 우리에게 하나님이 호흡을 넣어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심장이 뛸 때마다 그분을 느낄 수 있는 힘을 평상시에 가져야 한다. 이것을 가지고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힘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엄청난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딱 하나, 인간의 자유의지 속에 하나만 선택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나와의 질서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있으니 모든 것을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은 계약, 선악과는 먹지 말라 하시고,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다. 그런데 이것을 집요하게 먹게 만든 사탄이 있었다. 우리 영혼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이제는 하나님이 없다고 우리 뇌에서 소리친다. 이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평상시 싸울 수 있는 힘이 바로 ‘성령충만’ 이다.
어떤 문제 앞에서도, 엡2:2 공중권세 잡은 자와 평상시 싸우는 힘을 가지면 우리의 반항적 고집이 사라진다. 불순종의 영이 집요하게 우리 영혼을 파고들어 우리 뇌까지 완전 장악하여 마음을 공허하게 만든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래서 사람이 점점 병들어가면서 쌓아은 물질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써보지도 못하고 사기꾼들한테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교회가 싫어’ 이런 마음이 온다. 과거에, 나는 기독교인들이 제일 싫었다. 불신자 때 나에게 가장 상처를 많이 준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 경찰서 정보과에 가서 조사를 받는데, 자신이 기독교인 이라고 하면서 자기 말대로 조사를 받으면 당신은 괜찮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말했는데 나에게 엄청난 사건이 찾아온 적이 있다. 불신자 때 정말 교회를 가고 싶었지만 교회를 가면 큰 구덩이가 있어서 그 구덩이에 빠질 것 같았다. 교회가 나에게는 두려운 곳이었다. 교회를 가면 문을 여는 순간 심판이 내릴 것 같은 두려움이 항상 있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인들에게 늘 상처 받는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싫고 교회가 싫다고 선언했다. 고전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 세상의 영을 받아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의 영,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영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평상시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는 영적 전쟁하는 그 영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된다. ‘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그 영을 바꿔주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를 다녀도 지저분하구나’ 알게된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사람 속에 없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 가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교회 가는 것이 좋고, 교회 일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 우리 안에 반항적 고집과 알 수 없는 불신앙이 집요하게 움직인다면 평상시 “예수는 그리스도”를 표시 없이 부르고, 표시 없는 영적싸움을 하기를 축복한다.
창3:15은 표시가 없어야 한다. 엡6:12, 세상에는 통치자, 권세자, 어둠의 주관자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표시 없는 영적 전쟁을 진행해야 한다. 통치자, 권세자들, 어둠의 주관자들은 어마어마 하게 강한 자로 세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소리치고 “권세있는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면 감옥가고 우리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간다. 하늘에 악의 영을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런 자들을 육으로 대하려고 하지 말고 표시 없는 조용한 영적전쟁으로 그들을 결박하고 흑암을 꺾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사람과 관계 속에 모든 것을 양보할 수 있는 힘이 왔다.
아브라함에게 집요하게 파고든 이 불신앙은 결국 자기 부인을 팔아먹고 왕의 궁정에 들어가게 만드는 쓰라림을 맛보게 되었다. 그 때 찾아온 불신앙으로 인해 아브라함이 얼마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겠는가. ‘여보, 자기야’ 이름을 불러도 안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불러야 해결된다. 아브라함이 이것을 깨달았다. 영적전쟁만 했는데 자신의 인격과 상관없이 재벌의 축복을 갖게 되었다. 신앙생활이 재미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팔아버린 사건은 교회마다 해석을 못해 의구심만 갖는 본문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둠의 주관자, 통치자, 권세자들을 한 방에 꺾어버리는 이름을 이제 체험하게 되었다. 나도 이것을 모르고 신앙생활 할 때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리스도가 내 몸에 1인칭이 안되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결국 자살 밖에 없다.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실수를 넘어설 힘이 없어서 자살을 선택한다. 권세자들, 어둠의 주관자, 하늘의 악한 영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꺾으면 된다.
*우리 인생에 혹시 실수를 하는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더 당당해야 한다.
하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에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는 그리스도” 하나님이 주신 이 엄청난 복음을 내 몸에 받으면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성경은 분명, 우리 인생 모든 여정에 마귀가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있다고 했다. 우리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놈이라고 했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싸우고 다투기 보다는 혼자 외로움 속에 그리스도 이름을 읊조리는 것이 낫다고 말씀했다. 잠2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집을 나가는 것이 아니다. 광야에서 느끼는 고요함처럼, 살아계신 그 하나님의 이름을 고요하게, 표시 없이 불러보라는 것이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셨고 반석에서 샘물을 내주시고 나의 구원자, 나와 영원히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여호와 그리스도시여, 지금 이 시간 흑암 권세가 꺾이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신앙에 광야와 같은 절박함이 있다면 하나님은 은혜를 주신다. 몰입하고 집중하면 된다. 잠25:24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움막에 혼자 지내는 것처럼 조용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내가 목사가 되고도 방황을 하며 성질대로 살 때 사모님이 잘 한 것이 있다. 바로 정시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그 때 ‘기도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하시는데...’ 하며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반항적으로, 내 고집대로 하나님을 대하고 살았다. 나는 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이 기도를 시작하니까 ‘어, 기도는 응답되는데? 나를 바꾸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죽이겠구나.’ 그래서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내 노력으로 바꾼 것이 아니다. 창3:15에 정말 올인했다. 마12:28은 나의 천명이다. 그래서 나는 늘 여기에 몰입한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명령한다. 내 속에 완악하고 딱딱하게 굳어져버리고 반항적 고집으로, 불신앙으로 집요하게 찾아와 인본주의로 살게 하는 모든 질병의 저주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깨질지어다!’ 표시 없이 여기에 집중했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그 때부터 나는 권세자들이나 어둠의 주관자, 통치자들에 대해 인본주의를 쓸 이유가 없었다. 세상 풍습 속에 길들여지기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신앙으로 조금씩 내 영혼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 때부터 나는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 복음화” 늘 내 영혼에서 노래했다. 나는 작은 것 하나를 참지 못하는 이상한 영적문제가 있었다. 돌출행위, 업다운이 정말 심했다. 그때마다 나는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이 고백의 리듬을 탄다. 예를 들어 5km를 걷게 되면 그 동안 이 고백을 집중하면서 걷는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다. 그래서 나는 다툼의 현장에서 빠져나와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다툼의 원천은 교만이다. 잘난 척하고, 내가 더 똑똑하다고 하기 때문에 다투는 것이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하기 때문에 다투는 것이다. 교만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사탄, 마귀, 악령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탄에게 종노릇, 심부름 하는 자다. 사실은 열등감이라는 것 때문에 미움으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몸에서 사라지고 우리 영혼이 춤을 추는 참된 평안이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었을 때, 그는 양보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을 하나의 우상과 같은 신으로 생각했다. 그 당시 우상을 만들어 장사를 했던 집안이었기 때문에 자기를 부른 신도 그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당시 애굽은 엄청난 강대국이었다. 그런데 그 애굽의 우상들이 아무런 능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이 자신을 움직이는 것을 느낀 것이다. 갈대아 우르에서 나를 부르시고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셨다가 점점 불신앙 속에서 남방으로 내려가 애굽땅에 들어갔지만 자신을 부른 그 하나님은 애굽의 왕을 움직이는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실수와 자기들의 잘못된 삶 앞에 각종 우상에게 비는데, 자신을 부른 그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삶에 잘못된 것을 고치는 하나님이 아니라, ‘절대’ 가 무엇인지 깨달음을 주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이끌어내신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녀들에게는 어떤 상황에도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 구원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우상을 타파하는 하나님의 힘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능력을 나타내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가 되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었을 때, 그는 양보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
사도바울도 창3:15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말씀의 하나님을 1인칭으로 바꾸었다. 롬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창3:15을 신약으로 끌어다가 예수님의 사복음서 사건을 다 확인하고 드디어 “나의 복음” 이라고 했다. 내 인생 살아가는 여정에 굿뉴스가 복음이라고 한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그 이름을 고백할 때마다 영세 전에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을, 지금 그 이름을 부르는 나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의 왕을 꺾어 재물을 주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는 모든 문제는 축복이고, 갈등은 갱신의 기회, 수많은 위기는 하나님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엄청난 축복이 담겨있다. 실패했다고 주저앉아있지 말고, 망했다고 인생을 끝내려고 하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1인칭 하면 된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깨달은 비밀이었다. ‘하나님은 어디서든 함께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도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면 반응이 나타난다. 그래서 계속 그리스도만 고백하면 된다. 우리가 평생 하는 일이 험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거기에서 은혜를 주시고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사랑교회는 이 시대 언약을 깨달은 교회다. 237나라, 디아스포라 미션을 가진 시대의 언약을 깨달은 교회, 행1:8을 성취시켜 나가는 교회다. 우리는 시대의 언약 속에 있기 때문에 겁날 것이 없다. 당당한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여러분 앞에 있는 목사는 인생을 지저분하게 살지 않았다. 누군가 부탁을 하면 한 번도 그 부탁을 포기한 적도 없다. 나에게 먹을 것이 없어도 주는 사람이다.
예수사랑교회는 이 시대 언약을 깨닫고, 디아스포라 5천 미종족을 향해 가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곳에 모든 것을 부어주실 것이다. 나는 우리교회 장로님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고, 어떻게 하나님은 저런 멋진 분들을 예수사랑교회에 붙여주셨을까 생각한다. 우리교회 장로님들은 시대적 언약을 갖고 있는 분들이다. 하나님이 주신 시대적 언약을 붙잡는 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 시대적 언약을 깨닫고 후대를 살리는 교회로서 어린이 세상을 세워주셨다. 다음 세대를 위해, 세계복음화의 제2의 제자를 탄생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곳에 임했다. 예수사랑교회 그루터기들을 보면 내 눈에는 이상한 아이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어떻게 해서라도 ‘너는 축복받아야 된다’ 하고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이다. 이 복음은 능치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탄도 이 복음을 이길 수 없고, 그 누구도 이 복음을 이길 자가 없다. 사탄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복음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면 흑암이 꺾인다. 그 이름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고 불러야 한다. 우리 건축위원장 장로님도 ‘우리 예수사랑교회가 시대적 언약을 가진 교회가 맞구나’ 확인하고 예수사랑교회 건축을 시대적 언약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붙잡았다. 장로님이 몸이 아프실 때, 힘드시면 절대 하시지 말라고 했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붙잡고 그 힘으로 진행했는데, 완치 받았다고 고백했다. 완치될 확률이 20만분의 1인데, 깨끗이 나았다는 것은 기적 중 기적이다. 하나님이 예수사랑교회에 또 무엇을 만들어주셨는가? 이방인의 뜰을 만들어주셨다. 우리 장로님들 회비가 한 달에 10만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회비를 걷어서 미션홈비를 내고 있다. 원래 다른 교회 같으면 그런 돈으로 회식하는데 우리교회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내 마음에 기도제목이 있다면, 우리는 디아스포라 미션이라는 시대의 언약을 잡은 자들이기 때문에 다민족들이 와서 살 수 있는 공간을 빨리 만들어주고 싶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센터를 하고 있는지를 보고 있다.
시대의 언약을 깨달은 사람은 모든 삶에 하나님이 영향력을 끼치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한 사람 때문에 대 제국 애굽을 움직이셨다. 하나님이 영향력을 끼치실 때 대제국의 우상들은 꼼짝도 못하고 완전 고요해졌다. 애굽 땅, 바로 궁궐의 분위기를 완전 장악해버렸다. 그래서 바로 왕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아브라함아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냐. 내가 너에게 잘못한 것이 없고 네 누이라고 말해서 나는 선택한 것뿐이다” 말하며, 애굽의 모든 좋은 것과 엄청난 재산을 그에게 실어서 보냈다. 시대의 언약을 깨달은 자에게는 이런 축복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주신 창3:15만 사용하면 하나님은 개입하신다.
불신앙의 위기를 축복으로 바꿔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브라함이 맛보았다. 자신의 무능력으로 인해 사라가 궁으로, 흑암으로 빨려 들어갈 때 “여보, 미안해, 미안해” 하다가 ‘그렇지,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라가 마지막에 아브라함과 헤어지고 궁에 들어가서 아브라함을 바라볼 때 어떤 기분이었겠는가? 나는 장애인을 11년 동안 데리고 살았지만 나에게 욕을 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사람과 사람이 헤어질 때 그 느낌은 굉장히 쓰린 것이다. 아내가 자기의 잘못된 불신앙으로 인해 끌려들어갈 때 아브라함의 가슴은 미어졌을 것이다. 아마 자살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이런 애절함 속에 아브라함의 깊은 내면에는 ‘나를 부르신 하나님,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신 하나님’ 얼마나 그 이름을 많이 불렀겠는가.
하나님이 주신 창3:15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면 세 가지 흑암이 무너진다. 운명으로, 저주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의 굴레에서 해방 받는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 이름을 부름으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원래 아브라함의 운명 사주 팔자는 마누라를 팔아먹고 새 장가를 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불러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저주의 세력을 꺾어버렸다.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흑암을 꺾어버렸다. 두 번째,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 생명의 빛이 자신을 향해 비춰오게 된다.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세 번째, 일평생 우리를 지옥까지 끌고 가려고 하는 사탄의 권세, 흑암 저주, 모든 어둠을 꺾는 힘을 주셨다. 이 힘을 갖지 않으면 평생에 귀신한테 비는데 인생을 다 소진한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꾸 빌라고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는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정복자,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신분을 주셨다. 그래서 자신이 무기력과 무능에 잡혀 있다면 ‘너는 정신을 차려라. 은과 금은 내가 필요없다. 나사렛 에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해야 한다. 일어나 걷는 자에게 은과 금을 주시지, 주저 앉아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은과 금을 줄 수 있겠는가. 빛을 발하기 위해 일어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재물도 주신다. 하나님은 진짜인데 내가 가짜이기 때문에 인생이 안풀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데, 내가 그 하나님과 평상시에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 있든지 믿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요19:30 “다 이루었다” 하는 것이다. 십자가상에서 우리 인생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가 다 이루셨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시대적 언약을 갖게 된다. 살전5:16 믿음의 눈으로 보면 기뻐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그리스도의 영이 어디서든지 항상 함께 하신다면 평상시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 평상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게 하는 평상시 기도, 나는 언제나 이것을 가지고 산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가 주어졌고, 구원을 받은 자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되어 땅 끝까지 이르러 전도할 사람으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음에도 불구하고 찌질하게 살게 하는 더러운 영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너는 이제 모든 것을 수용하고 양보할지어다!’ 그래서 평상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감사밖에 없다. 범사에 감사가 온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시대의 언약을 가지고 세계를 살릴 주인공, 세상을 살릴 승부사들이기 때문에 그 무엇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다.
창3:15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보면 롬8:27의 응답이 온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살피셨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신다. “평안을 가져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한다. 내가 너를 의로운 손으로 붙들리라” 하시고, “아브라함아, 갈대아 우르에서 네가 나올 때 가나안까지 도착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더냐. 그 때까지는 제가 내 이름을 잘 부르더니 네가 잠시 내 이름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이름을 불러봐라.” 그랬더니 롬8:28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사건이 일어났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맛을 본 사람은 ‘그리스도가 너무 좋아~’ 고백이 나온다. 다시 오지 않는 오늘을 왜 멍청하게 넋을 놓고 흘러 보내는가? 평상시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전쟁만 해도 엄청나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상실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가르쳐주신다. 히11:1 하나님을 상실한 이 시대, 자신과 미래를 상실한 이 시대 속에 하나님은 이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라고 하셨다. 히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아브라함도 다윗과 요셉, 모세도 “예수는 그리스도”를 가지고 증거를 얻었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딱 하나, 믿음이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확신을 가져라.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택하시고 내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니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는 일어나 걸을 수 있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에게 상을 주신다.
딤후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우리는 어떤 고난을 받아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고난을 받을 시간표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셨기에 우리는 그 이름만 부르고 있으면 된다. 내가 믿는 분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고난을 받아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 고난이 축복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어려움도 있어야 작품도 나온다. 어려움이 없는 사람에게 무슨 작품이 나올 수 있겠는가? 지구상에 모든 영웅들은 하나같이 고난과 위기, 실패, 낙심과 절망 속에서 의지력 하나만 가지고도 일어날 수 있었다.
문제 앞에 더 이상 머무르지 말고, 무기력에 빠지지도 말고, 주저 앉아있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이것이 복음이다. 렘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은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간증자로 삼으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임마누엘, 그리스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사실 하나만 믿었던 요셉에게 창45:5 고백이 나왔다. “내 인생 살아온 지난날의 모든 여정은 살아계신 하나님, 축복의 발판이었습니다. 이런 역경과 어려움이 발판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런 스토리를 하나님이 주시려고 은혜를 주셨다. 마귀가 개입을 했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신다.
이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심장으로 일어나 걸어야 한다. 빌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 빌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내 심장으로 뛰기 때문에 무기력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심장이 뛰게 해야 한다. 그래야 죽지 않는다. 바울은 평상시 그리스도의 심장이 뛰게 했고, 하나님이 내 증인이라고 고백했다. 빌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창3장의 사탄, 마귀, 악령, 불신앙하게 만드는 이 놈을 보고 우리는 롬3:10 깨달아야 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아담 이후 남자의 씨로 잉태된 모든 인간은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끊어진 존재” 다.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아브라함도 체험한 것이다.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죄와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저주와 재앙, 실패와 좌절, 고통을 다 짊어지셨다. 이것이 속량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거울을 보고 말을 해야 한다. ‘개소리 하지 말고 헛소리 하지 마라. 좌절 낙심하지 마라! 내 입에서 이제는 좌절하는 말이든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는 언어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망했다. 거지다, 나는 쓰러질 것이다. 죽을 것이다.’ 이런 단어도 쓰지 말아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움직여 가시는지 나는 볼것이다!’ 하고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를 부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다시 회복했다. 평상시 부인만 바라보는 것만 뇌에 기억하고 있다가 부인이 바로왕의 궁으로 들어가는 순간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신 그 분의 말씀이 생각났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 생각나서 여호와여, 여호와여 한 것이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이 이 말씀 하나 가지고 갔다. 그래서 ‘내가 복의 근원인데 왜 내 부인을 팔았지?’ 하고 정신이 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때 말씀만 받아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 훗날 창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3:15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또한 이렇게 믿는 자가 되었기에 어떤 일에도 겁낼 필요가 없다. 시대의 언약을 깨닫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응답을 퍼 부어 주신다.
창3:15그리스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기다림이다. 우리는 영적 전쟁만 하고 있으면 되고, 뱀의 머리만 깨뜨리고 있으면 된다. 롬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하나님이 주신 창3:15,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믿음, 이것을 의로 여긴 그 축복을 예수사랑교회가 유일하게 받게 되었다. 초창기에 중국 사역을 함께 시작했던 집사님이 교회를 방문했다. 그리스도 이름 하나를 불렀는데 수많은 역경과 환란을 넘어서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교회를 안나오는 동안 친척들이 다른 대형 교회를 가자고 했지만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갔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어서 가지 않았다고 했다.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만 불렀는데 자신에게 재벌의 축복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우리 인생 여정에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있음에도 거리낌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신을 모신 것이 있다면 다 버리고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신, 그리스도 하나만 영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내 인생에 엄청난 시련과 어려움을 겪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나 같은 사람도 되는데 당신이 왜 안됩니까? 괜찮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면 나보다 더 잘 될 수 있습니다” 말한다. 나는 이상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나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을 소유했다. 그 이름 하나를 가졌는데 하나님은 내게 은혜를 주셨다. 자신이 의롭다하는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고백하고 선포해라. 아브라함은 구원의 믿음, 언약의 능력, 언약의 하나님을 알았고, 믿었다.
*사탄은 그 조카를 통해 집요하게 불신앙을 집어넣었다.
그리스도로 답이 없으면, 사탄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때 불평, 불만, 분열을 집어넣는다. 그래서 밥 먹는 문제마저도 하나님이 중단시킨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통과했는데 조카는 그렇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그 넓은 땅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아브라함의 곁에서 빨리 떠나고 싶어 했다. 이것이 조카 롯의 불신앙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은 조카에서 양보했다. 인본주의를 이기는 힘은 양보다.
불신앙은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가진 자는 미래를 볼 수 있다. 조카 롯은 창13:13을 못 봤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무너질 성을 보지 못했다. 벧후2: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믿는 사람 곁에 붙어있기만 해도 구원은 받는다. 아브라함이 끝까지 달려가서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불러라, 꼭 불러야 한다” 그래서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았다. 하지만 롯은 구원만 받았을 뿐 하나님의 역사는 없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역사 속에 진입한 자들이 되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못 본 자들은 이를 갈며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교회 생활이 얼마나 위대하고 좋은지 알아야 한다. 믿음의 반열에 쓰임 받지 못한 조카 롯이 본문에 나타난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겪은 시련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창13:14 다투기보다는 양보하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에서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불렀다. 어린 양 예수를 제단에 올려놓고 그것을 불태워 그 향기가 계속 온 산에 진동할 때 ‘예수는 그리스도,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 당신은 나의 영원한 생명, 영원한 구원자, 나의 주인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백했다.
그리스도 한 분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승리할 수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서 선택권을 준 것이다. 창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미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보지만, 아브라함은 땅 끝을 보았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여러 가지 환란, 기근이 오지만,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창3:15은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그분에게 문제 앞에 질문해야 한다.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런 문제가 왔습니까? 이 속에 어떤 하나님이 계십니까?’ 그리고 평상시 영적전쟁 해라. 불신앙하게 만들고 인본주의로 가게 만들어 육신의 생각으로 틈타고 오는 모드 것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켜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후퇴하고 실패하고 더 깊은 좌절 속에 들어가게 된다. 수많은 분쟁과 갈등, 인본주의가 찾아와도 양보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려라. 이것을 하지 못하면 ‘돈 벌어서 당신을 찾으러 올께’ 하지만, 사실 우리는 돈도 잘 벌 수 없다. 돈을 버는 사람들은 정말 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을 벌어도 하나님의 힘으로 벌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아야 한다. 창13:1~3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본격적으로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만 부르면 된다.
창3:15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실패 속에 창3:15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그 이름을 신뢰하고 영적 전쟁으로 승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면 회복되는 응답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하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으면 양보하는 하나님의 힘이 온다라는 이 절대 진리를 우리 속에 가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집요하게 파고드는 불신앙을 끊을 수 있도록 평상시 영적 전쟁을 잃어버리지 않고 언제나 영적 전쟁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끊임없이 내 영혼 속에 반란을 일으켜 하나님의 일에 반대하게 만들고 반항적 고집으로 자아가 형성되어질 때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로잡아 내어 쫓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로 충만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 충만을 허락해 주옵소서. 불신앙의 위기를 창세기 3장 15절을 집중시켜 뿌리내리게 만드셨던 하나님의 그 역사가 오늘 우리들에게도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내 삶에 1인칭 되지 않아 구원의 비밀을 전하지 못하고 공허와 혼돈, 흑암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에서 빠져나와 이제는 불신앙의 위기를 축복으로 바꿔주시는 창세기 3장 15절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아와 하나님의 일에 대해 끊임없이 반항적 고집으로 내 영혼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불신앙과 인본주의 앞에 표시 없는 영적싸움을 지속하여, 미움으로 다투게 하는 열등감을 버리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어 양보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모든 것을 상실한 이 시대 속에, 하나님은 시대의 언약을 깨달은 자의 삶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끼치신다는 것을 알고, 어떤 고난 앞에서도 부끄러워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언제나 그리스도의 심장이 뛰게 하고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보며 창세기 3장 15절을 끝까지 놓지 않는 영적 전쟁에 승리하여 세계 살릴 주인공, 세계 살릴 승부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