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 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창세기 1장 1-13절-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을 조금씩 느끼고 고백할수록 우리의 육신 상태는 점점 달라지게된다. 창세기 강해를 시작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질문을 했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질문만 했는데 하나님은 하늘과 땅, 물결,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느끼게 하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하나를 믿는 것이 모든 것이 시작이다. 창1:1이 정말 믿어지면, 백만 가지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분의 선언 앞에 더 이상 질문이 없어진다. ‘창조주가 선언한 말씀에 내가 무엇을 묻겠습니까? 침묵 속에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창조의 세계를 느끼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예수사랑교회를 많이 사랑하시고 주의 모든 백성들 을 당신의 숨안에서 친히 감싸서 적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당하지 않도록 굴리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다.
*창1:1을 꼭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의 아빠가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다 믿을 수 있다. 요17:16~17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곧 “창1:1, 창1:2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고, 창1:3 빛이 있으라고 하신 그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말씀하셨다.
진리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영혼에 담고 믿으면 모든 것에 자유할 수 있다. 요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요4:16~17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우물가 여인에게 예수님이 네가 왜 시달리며 살았느냐, 왜 목마른 여인으로 살아야만 했느냐, 왜 탄식의 소리 속에 고독으로, 불안으로 사느냐 물으셨다. 이 우물가 여인은 굉장히 솔직했다. 이 여자는 정말 자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대답했다. 우리가 사는 인생에 해답이 없고, 우리 몸에 진리되신 말씀이 인생의 모든 문제 해답으로 와 있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하고 훌륭한 남편과 살아도 내 남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남편을 하나님의 아들로 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영원한 신랑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진리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나의 대속주가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이 땅에 낮고 천한 몸으로 오시고, 나의 진리가 되어주셨습니다. 나는 당신의 거룩 속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그 진리 앞에 언제나 불신앙 속에 살지 않고 마귀의 일을 멸하는 가장 매력적인 당신의 신부가 되기를 원하고 당신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옳도다” 말씀하셨다. 요4: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인생 여정에 가슴에 품었던 응어리가 다 해결되는 축복을 받았다.
창1:1이 믿어지면 마1:21은 저절로 믿어진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신 하나님에게는 처녀가 잉태하여 사람을 낳게 하실 수 있다. 의심할 문제가 없는 것이다. 창1:1이 믿어질 때,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 믿어진다. 그래야 우리가 잃어버렸던 참 안식을 회복 받을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왜 안정감이 없는가? 창1:1을 믿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왜 오늘날 사람들이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창1:1을 믿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창1:1을 믿으면 나를 바꾸는 힘이 생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해내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잠잠히 있으면 된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히브리어 원어로는 “뻬레쉬트, 바라, 엘로힘”으로, “바라”는 모든 것을 창조해내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서 당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향해 알을 품고 대적자들로부터 알이 파괴되지 않게 하기 위해 창조해내신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이제부터 나의 아빠, 나의 영원한 신부,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면 새로워진다.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는 어느 날 갑자기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악기를 믿고 연습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을 매일 느끼는 자가 되면 빼앗겼던 모든 것을 되찾고 정복하는 일이 시작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 안식을 잃어버린 인생을 향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가져오라.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쉬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사람들이 왜 고통 속에, 사단의 올무에 묶여 허우적대는가?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히11:6 그분을 믿을 때 증거가 온다고 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 분을 늘 느끼는 자를 찾는다고 하셨다.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느낌만 와도 “아빠 알랴뷰!” 해봐라. 창조주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마11:29~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믿는 것처럼 쉬운 것이 어디 있는가?
*창1:1을 믿어야 요1장, 빛으로 오신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다.
요1:1~2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창세기 1:1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 복수 곧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님을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창조주 아빠를 나타내셨다. 예수님 당신을 낮추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높였다.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 당신을 높이셨다. 하나님 자신 외에 다른 신, 창조주가 없기 때문이다. 만물을 다스리고 움직이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분 앞에 읊조려 떨리게 될 것이다.
“빛이 있으라” 하신 그분이 이제는 빛으로 오셨기 때문에 내 마음에 영접해야 한다. 그분이 우리에게 신분을 보장하시고 권세를 주시고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이 하나를 누리지 못하고 인생을 살기 때문에 찌질하고 쟁쟁거리고 쫀쫀해지는 것이다. 쟁쟁, 쫀쫀, 징징, 이런 것은 전부 어두움으로 영혼이 휩쓸려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 이유가 없는 신분이다.
고전3:16 창조주 하나님이 내 몸에 전으로 있게 하라는 것은 그 분을 제발 느끼라는 것이다. 느끼면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알게 하신다.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24시 그분이 함께하실 때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면 롬10:9, 입으로 시인하게 되고,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위대한 시작을 약속하셨다.
“너를 위해 시작한다” 이것이 창세기 강해다. “네가 만일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주로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영혼에 믿으면, 갈보리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사실을 믿으면, 사망의 문제에 걸려있는 우리가 이제 영원한 영생을 얻게 된다. 진리는 이렇게 쉬운데 세상의 말과 지혜를 우리의 머리와 가슴 속에 담아놔서 창1:1 하나가 믿어지지 않는것이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우리 영혼에 언제나 임마누엘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자꾸 의에 이르고 하나님이 이루신 그 의에 동참하는 자가 된다. 그분의 살아계심을 선언하면 구원 속에 흐르는 모든 축복을 갖게 된다.
롬10:11 “성경에 이르되 창1:1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얼마나 멋있는가? 나의 아빠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영혼으로 느끼면 새소리에서도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우라 아빠가 너를 지었다. 그래서 너 지금 나한테 행복자라고 부르는거지?’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분의 절대 섭리가 만물 속에 있다. 간밤에 뻥튀기를 뿌려놨더니 새벽부터 새들이 모여 지저귀는 소리에 깨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을 다른 것을 뿌렸더니 오지 않았다. 새들도 뭔가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의 종을 사랑하고 섬기는 중직자들을 보면서 내가 죽는 날까지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장로님들을 섬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날마다 그 이름을 읊조리기만 했는데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그 영광을 나에게까지 허락하셨다. 내게 육신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연약하지만 우리 성도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목사님이 과거에는 강단에서 욕도 좀 하셨는데 요즘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한 장로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과거에 우리 어머니에 대해 얘기해드렸다. 우리 어머니는 늘 욕을 입에 달고 사셨던 분이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자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이 땅에서 욕지거리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창1:1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희 어머니도 예수님을 믿은 휘에는 너무도 많은 육신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시면서 전도상까지 받으셨다. 누구든지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기만 해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육신 변화가 오면 영적인 변화는 날마다 일어나게 된다. 고후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나에게 빛을 비추셨기 때문에 우리는 어둠을 밀어내는 것이 바로 영적변화다. 우리 속에 순간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도록 틈타고 들어온 것이 바로 영적문제다. 이것을 마12:28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내어쫓아야 한다. 모든 만물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도록 순간 틈타고 들어와 우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놈이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그놈을 악령, 더러운 귀신으로 직접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놈을 쫓아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계17: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창세기에, 하나님이 물과 물을 나누셨다. 하늘의 물과 땅 아래 물이 있는 것이다. 창1:1을 믿는 자는 하늘 위의 물에 있지만, 믿지 않으면 땅의 물에 있는 것이다. 어설픈 방언을 끊고 창1:1의 방언을 시작해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나의 아빠가 창조하셨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느껴야 한다. 계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땅의 물로 세워진 것보다 이제는 더 나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세워진다고 약속하셨다. 처음 하늘과 땅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땅에 건물을 사고 집을 짓고 땅을 사고, 창고 짓다가 어느 날 땅의 물이 되어 무저갱으로 들어간다. 바다도 사라지고 땅은 무저갱, 스올로 빨려 들어간다고 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삶은 너무나 지긋지긋한 고통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도 임종 직전에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이렇게 멋있는 하나님 나라를 알게 해주어 고맙네 목사님” 하고 돌아가셨다. 이것이 영적 변화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육신 변화, 영적 변화가 오면 영적 축복은 저절로 오게 된다.
롬1:18~21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보이셨는데도 믿지 않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빨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라고 하신다.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인정하지 않으면 진노의 불화살이 무서운 삶의 고통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영화롭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지극히 높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감사가 시작된다. ‘오늘’이라는 삶 속에 감사가 계속 흘러나오는 사람은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언약의 여정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신다. 이것을 몰랐던 창6:5~6의 노아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지극히 높이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생각과 모든 계획은 악할 뿐이다. 그래서 창6:6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셨고, 창6:7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창조한 사람 뿐 아니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희생을 당해야 했다. 이렇게 사람 하나가 무너지면 모든 만물의 자연들이 탄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을 지극히 높이면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 가지에서도 메세지를 듣게 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찬양하는 그대여, 그대는 내 에너지를 먹을지어다’
창세기 강해를 통해 개인의 질병, 경제문제, 자녀문제, 가정문제, 산업문제, 모든 현장의 문제 앞에서 “빛이 있으라”는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되기를 축복한다. 모든 것을 다스리고 충만한 축복이 우리 영혼 속에서 일어나야 할 것이다.
창1:1을 고전이나 신화로 믿지 않고 사실로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을 받게 된다. 성경은 세상을 만든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이 성경을 고전적으로나 신화적으로 보는 사람은 정말 미련한 사람이다. 딤후3:16~1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분의 선언과 선포다. 그래서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보는 자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주신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시고 계시하셨다. 천지를 창조하신 우리 아빠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그 능력이 한이 없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없이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창1:1을 믿으면 고전12:3의 응답이 오는 것이다. 창1:1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굴리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구원자,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했다는 것이다.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갈보리 산에서 보았다. 행17:31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바울도 전도 현장에서 보았고,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절대 의지하라고 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응답이 온다. 이것이 예수사랑교회에 와 있는 축복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고 성령이 충만해진다. 행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게 되더라”
*태초에 엘로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 인간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이 엘로힘 하나님이다.
창1:1은 곧 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나를 위해 이렇게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다. 빌2:9~10 나를 위해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누구든지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창조의 축복을 새롭게 시작하신다. 고후5:17 썩어지고 무저갱으로 들어가야 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해주셨다. “엘로힘 바라” 이 표현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백만 가지 문제에도 해답은 그리스도” 다. 창조주 하나님이 한 그루의 나무에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낙엽이 흔들릴 때마다 하나님을 느끼라고 하셨다. 성경 파피루스가 종이로 만들어진 것은 나무를 그냥 보지 말고, 그 나무를 통해 성경이 탄생되었고, 나무의 잎이 흔들릴 때마다 하나님을 느끼라고,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안믿어 진다면 사실적으로 안믿어진다고 해야 한다. “나는 지금 내 남편이 없습니다.” “나는 지금 안 믿어집니다”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안 믿어지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기에 그 이름을 부릅니다”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창1:1을 영혼에 담으면 우리 안에 엄청난 증거들이 일어난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숨결, 루아흐가 계속 흐르는 것이다. 우리 몸에 있는 암세포는 산소가 들어오면 정신을 못 차리고 도망간다고 한다. 그래서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게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충만 허락해 주셔서 세계복음화, 하나님의 소원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하고 잠시 호흡을 멈추고 천천히 내뱉는 것이다. 그러면 분별력, 판단력, 결단력이 오고 살도 빠진다. 배에 산소가 들어가면 그때부터 편안하게 조금씩 읊조릴 수 있다.
마귀는 창1:1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모르게 한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못 믿게 한다. 그래서 창1:1을 우리 영혼에 받지 못하도록 진을 치고 있다.
요8:43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창1:1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에게 영혼이 완전 장악되었기 때문이다. 요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모든 관계가 다 깨져있는 상태가 되었다.
창1:3 “빛이 있으라” 하신 그 빛을 놓치고 살기 때문에 어둠, 흑암이 덮어버린 것이다. 이 흑암을 이기는 길은 생명의 빛되신 그리스도의 빛뿐이다. “빛이 있으라” 하신 그 복음을 놓쳤기 때문에 어둠과 캄캄함이 지금 만민을 가리웠다. 요1:4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빛이 와도 알지 못하는 엄청난 흑암이 사람을 덮어버리는 무서운 결과가 오게 되었다. 창1:1은 언제나 세상에 계셨다. 창1:1로 세상이 지은 바 되었으나 창1:1을 알지 못하고, 요1:11~12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예수사랑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사랑교회에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예수사랑교회 외에는 진짜 복음이 없다고 나는 확신다. 그래서 오직 복음으로만 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자기 유익에 따라 살지만 나는 오직 복음만 말한다. 영생주기로 작정 된 자는 예수사랑교회로 온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말의 지혜로 사람을 꼬시는 사람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
“영접하는 자 곧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을 주셨으니” 이 신분과 권세를 가지고 마음껏 아버지가 만든 세상을 누리는 것이다. 창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몸에 거하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진다. 성육신, 잉카네이션 이것은 엄청난 말이다. 요1:18 아버지 품속이 있는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문제에 해답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찾지 못하면 길도 없고 약도 없다.
유럽과 미국이 과거에 찬란한 역사를 만들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이들이 태어나면 하나님의 말씀부터 가르쳤다. 그런데 이제 창1:1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우리끼리 살자 바벨탑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 초창기에는 수업에 성경공부가 있었다. 그런데 카톨릭 신자였던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학교에 성경공부를 없애버렸다. 미국은 그때부터 인성이 파괴되어버렸다. 완전 도둑놈, 좀비, 기생충, 쓰레기가 되어버려서 바보같은 사람을 세워놓고 박수나 쳐주는 비열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우방국이 아니라 무기를 팔아먹는 자들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나라는 늑대와 같다. 하나님이 없는 백성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성령의 역사가 아닌 악령의 역사는 훔치고 빼앗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역사관과 국민관이 있어야 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정리되지 않으면 자꾸 어그러진 길을 가게 된다.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진리를 갖는 것이다. 창1:1을 믿지 않으면 다음 것이 안된다. 창1:1이 안되기 때문에 창1:2 혼돈, 공허, 흑암이 안 믿어진다. “빛이 있으라” 하신 그 하나님이 안 믿어지고, “너희를 위하여 만드시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신데, 창1:1을 포기해버리니까 모든 것이 안되고 실패 가운데 빠지는 것이다.
창세기를 모르는 것은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마귀는 창세기만 모르게 한다. 창세기 사건을 모르면 모든 사람은 일평생 사단의 가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사단의 가면을 쓰고 우리를 노략질하기 위해 일어나 박수치는 것이다. 우리는 굉장히 위험한 시기에 놓쳐있다. 주변 나라들과 어떻게 가야 하는지 오직 기도 속에 풀어가야 할 것이다. 사람이 창세기를 모르면 더 나은 지식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파괴시킨다. 많은 지식은 우리를 어렵게 만들 뿐이다. 고전1:17 바울은 이제 말과 지혜로 살지 않겠다고 고백했다. 오직 그리스도 십자가 구속의 사랑,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 외에는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과 지혜를 빼고 이제는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했다. 고전1:21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곳에 하나님의 지혜를 감춰놨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영혼에 전도하면 된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하고 계시기에 갈보리 십자가 사랑과 감람산의 그 영원한 언약을 마음에 새겨놓으라고 하신다. 우리는 행1:8을 영혼 속에 새겨놔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이 내게 마지막 남긴 사명이오니,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거있는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게 성령충만 주옵소서.’
창세기를 모르는 사람은 영적으로 억압되고, 영적으로 혼란이 와서 눅13:16 사단에 매이는 자가 된다. 유대인들이 창1:1을 모르니까 결국 이런 자가 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악한 영들과 정사, 권세자들, 우상 신들이 그들을 매어버렸다.
창세기에 인간의 모든 문제와 해답이 있다. 인간의 문제가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창세기에서 출발했다. 죄의 기원이 창세기에서 시작되었고, 인간의 문제를 해결 받는 길도 원시복음, 창세기에 기록되었다. 가정이 왜 무너졌는지도 창세기에 기록되었고, 형제들에게 살인이 왜 일어났는지, 왜 예배에 실패했는지 창세기에 기록되었다. 그래서 복음을 모르면 사단의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이다. 정복하고 충만하고 이 땅을 다스려야 하는 인간이 왜 실패 속에 왜 허덕이고 각종 질병과 모든 저주를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가 창세기가 나와있다. 예배를 잘못 드리면 살인자로 둔갑해서 뒤통수 맞는 인생이 된다는 것도 창세기에 말씀했다. 사람을 죽이고도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고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하는 자가 된다. 이렇게 무서운 저주와 재앙이 이 땅에서 움직여지고 있다. 창1:1을 알아야 가정과 산업에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오늘날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수많은 신학교에서 가르친다. 그것을 배운 신학생들이 목사가 되어 설교를 한다. 나도 과거에는 너무 많은 세상의 신학적 지식 때문에 내 머릿속에 있는 신학사상을 뽑아달라고 이불을 깔고 머리를 비비며 얼마나 울면서 소리쳤는지 모른다. 전 세계는 사단의 이론으로 완전 장악되어버렸다. 학교에서는 분명 모세 오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배우면서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설교하는 목사들이 90%가 넘는다. 설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나님은 살아계신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들도 믿지 않는 말들을 던질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메세지가 성도들에게 전달되겠는가?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이중성이다. 우리는 선과 악, 성령과 악령, 빛과 어둠, 뚜렷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창1:1이 우리의 아빠, 구원자, 우리의 생명, 그분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할 말이 없어도, 실수를 해도, 뒤로 넘어져도, 병들어도 “예수는 그리스도” 이 고백으로 시작하면 된다.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빠다. 하나님은 창조의 능력을 가진 여호와이기 때문에 흑암, 공허, 혼돈, 모든 저주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예배 때마다 말씀만 받으면 모든 면에서 역사가 일어난다. 창세기를 강해하는 1년 동안만 말씀을 집중해서 받고, 예배 20분 전에 와서 영혼을 깨우고 조금씩만 기도하면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 이 본문의 말씀을 오늘 내게 주셨고, 지난번 말씀은 이렇게 주셨사오니 내게 성령으로 역사하옵소서. 대적자를 이기는 하나님의 지헤를 허락해주셔서 한 주간 나에게 평안함을 가지고 안전하게 살도록 은혜를 주셨사오니, 한 주간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에 새겨지게 하옵소서.’ 그리고 예배 일찍 왔다면 자리 잡지 말고 안쪽부터 앉는 것이다. 예수사랑교회에 복음의 부흥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먼저 와 있는 우리가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세계복음화 하도록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빨리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러면 많은 응답이 시작될 것이고, 가는 현장마다 말씀 운동이 펼쳐질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창1:1로 말씀하셨고, 그 말씀의 능력을 선언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전 세계는 귀신들린 사람들의 집합소가 되어버렸다. 귀신들린 사람을 찾아가서 인생의 답을 찾으려고 길을 찾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른 길로 올 수 있도록 예수사랑교회가 문을 활짝 열어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창1:1을 받으면 혼돈과 공허, 흑암이 물러간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안정감이 없이 혼돈, 공허, 흑암이 들어오는 것이다. 말씀을 받으면 마귀가 떠나가고 안정감이 생기지만, 말씀을 받지 않으면 안정감이 없어서 업다운이 심하고 정신문제가 일어난다. 창1:3 “빛이 있으라” 이 빛을 못 받았던 요8장, 간음한 여자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재수 없게 걸려든 여자였다. 수많은 여자들도 다 간음하고 이상하게 사는데 이 여자만 잡힌 것이다. 생명의 빛이 없으면 이렇게 재수 없는 일만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요8:12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창1:1을 따라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되는데, 창1:1을 따르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에 이 땅에서 당하게 된 것이다.
창조의 원리, 영적인 원리 속에 생명의 근원의 영향이 우리 몸에 찾아오기를 축복한다. 창1:1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하신다는 이 말씀을 믿는 자 되길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시작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이 엄청난 선언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사오니, 하나님이 선언해놓으신 말씀이 그대로 우리 삶에 성취되어질 수 있도록 날마다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성령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노는 자가 되게 하옵시고, 성령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하는 일들이 증거로 일어나게 하옵시고, 성령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시작을 보게 하옵소서. 참된 안식이 오늘 시작되게 하옵소서. 현장과 교회와 가정과 개인이 치유의 충만이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영세 전에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저들 입술을 통하여 고백되어지고 선포되어질 때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물러가고 현장에 문이 열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 늘 불안하고, 나를 바꾸는 힘이 없어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며, 사탄의 올무에 묶여 고통과 어둠 속에 허우적거리는 자들이 가득한 이 시대에,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지금도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그 하나님을 믿어 백만 가지 문제 앞에서도 모든 해답을 가진 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나와 함께 하시기에, 말씀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을 말씀 그대로 믿고 예배 때마다 받은 말씀에 집중하여, 사탄의 가면을 쓰고 노략질 하는 인생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을 높이는 오늘의 감사 속에 미래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언약의 여정을 누리게 하옵소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나의 영혼을 장악한 사단이 있기에, 날마다 예수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선포하여, 모든 자연 속에서 나에게 숨결을 불어넣어주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빛이 있으라”는 하나님의 능력이 개인과 가정, 산업에 성취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