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 바울이 받은 사명, 지역을 뛰어넘는 237디아스포라 미션"
(행 23:1-1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점은 구원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다. 자신의 환경을 뛰어넘는 구원의 축복을 우선순위로 누리는 사람이 되면 만나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줄 만큼 하나님이 많은 증거를 주신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다.
행22장부터 23장까지 종교의 실체가 계속 나타난다. 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결정할 수 있는 믿음 자체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창세기3장, 죄성이다. 창세기 3장의 죄성은 끊임없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사람을 끌고 가려고 한다.
창3:15은 복음이다. 창3:15은 사람을 노예 삼으려고 하는 죄성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리고 함께 가는 것이다. 그래서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끊임없이 자신과 세상, 사단을 이기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 시대 챔피언, 성공자, 위너의 축복을 받게 된다.
*창3:15 그리스도 이름에 결론을 내리는 자가 되라.
“모든 문제 끝” 말로만 하지 말고 우리 삶에서 끝내는 것이다. 말로만 고백하고 자신은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창3장이다. 그러나 창3:15 그리스도를 가진 자는 행동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는 것이다. 창3:15을 자꾸 배우면 배우는 만큼, 기억하는 만큼, 행동하는 만큼 신앙은 성장한다. 그리고 시간의 공간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비밀을 누리게 된다. 우리 영혼 속에 창3:15이 습관화, 체질화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몸과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반쪽짜리 사랑이 아닌 온전한 사랑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반쪽짜리 사랑에 늘 시달리던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비밀을 담는 자로 살게 된다. 그래서 창3장을 통과시킨 사람은 챔피언, 성공자라고 하는 것이다.
성공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바보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천재도 반복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무능한 자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바보라고 할지라도 창3:15의 훈련 속에 들어가면 세상을 정복하는 자가 된다. 창3:15과 함께 했던 바울의 곁에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창3:15과 함께 하는 사람과 늘 함께 하신다.
창3:15 언약을 갖는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합산된다. 얼만큼 적용했는가에 따른 결산, 그 열매가 나온다. 히4:12~13, 얼마만큼 12절을 적용했느냐에 따라 13절의 결산이 나타난다.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말로만 믿는 자, 그리스도를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드러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미소를 짓고 친절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무시무시한 거짓의 영이 가득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속이고 가정을 속이고 이웃을 속이는 것이다.
교회를 그냥 다니지 말고, 종교인의 체질에서 벗어나 반드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런 종교 체질을 바리새인, 사두개인이라고 한다.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화 있을진저” 라고 가장 많이 말씀하신 자들이 바로 종교인들이었다. 그들의 누룩을 경계하고 주의하고 그들의 교훈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극한 상황이 일어나면 입을 내리치라고 하고 찢어 죽이라고 하는 무서운 것이 우리 내면에도 가득하다. 욥의 부인이 욥을 떠날 때 하나님을 저주했다. 종교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개인의 숨은 문제가 드러나기 전에 빨리 해결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믿어지지 않는 개인의 숨은 문제는 자신만이 알고 있다. 그리스도는 옛 틀을 깨뜨리는 이름이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라는 것이다. 육으로 살지 말고 영적인 존재로 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고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여 사람을 속이고 미혹하고 사람의 것을 빼앗아 먹으려는 더러운 것이 우리 안에 가득하다.
막1:15 예수님이 제일 먼저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신 말씀이, 인생에 때가 찼으니,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말을 못알아 듣는다. 사람은 영원한 존재다. 그래서 요3:5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그냥 교회만 다니면 큰일 난다. 오늘날 교회는 이미 답을 잃어버렸다. 바울을 핍박하려고 모인 산헤드린 공회당이 바로 교회다. 예수님을 심문하고 심판했던 곳, 거짓 증인을 불러다가 예수님에게 핍박을 씌운 곳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하는 모습과 똑같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말씀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 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 애통함을 말씀하셨다. “나의 구주,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우리 몸에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판단, 정죄하고 시험들고 쟁쟁거리는 것에서 자유함을 받는다. 사람의 몸에 죄성이 사라지지 않으면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어 복음을 저주하는 자가 되고 복음이 아닌 곳에 가서 숨는다. 이런 체질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백성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나의 자아를 깨뜨려 죄성을 끊어야 한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요19:30, 그 분이 다 이루었다. 그래서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창3:15, 그리스도의 의가 바리새인들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판단과 정죄, 시험, 사람을 속이려는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것, 이것에서 완전 자유할 수 있는 길은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시험들고 절망하고 도망가고 숨고 핑계대고 책임전가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귀신들린 종교다. 이것을 무너뜨려야 한다. 말로만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하면서 늘 마귀에게 무릎 꿇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가. 창4:7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의 근성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죄를 다스려야 하는데 창4:8 아벨에게 말만하고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3중직에 대해서 말만 하고 3저주는 자기가 받는다. 이것이 무서운 종교의 재앙이다. 가인은 아벨에게 말만하고 결국 아벨을 쳐 죽였다.
본문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람을 찢어 죽이려고 하니까 이방인인 천부장이 오히려 바울을 보호했다. 종교인들이 이방 사람, 군인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이 본문에 나타난다. 멀리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것이 사람 속에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의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것이다. 다시는 오지 않는 오늘을 위해 “예수는 그리스도” 나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창3장의 질병에서 치유를 받는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끊임없는 죄성이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다니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교회를 다니면서 진노가 찾아오는 것이다. 엡2:1~3 하나님의 아들로 앉혀놓았고, 죄와 허물로 죽은 너희를 살리셨는데, 하나님 나라에 앉혀놓았는데 왜 세상풍습을 좇냐는 것이다. 엡2:6 하나님의 아들로 너를 앉혀놓았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함께함으로 하늘에 앉힌 자가 되었기에 어떤 일에도 세상 풍습을 좇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살려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통제하고 결정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케 하신다. “목사님, 직장에서 나를 너무 괴롭히는 사람 때문에 미치겠어요.” 하길래 “그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올려드려라. 너는 구원을 받고 그 악질은 구원을 받지 못하게 만들겠냐, 과거에 너는 그 사람보다 더 악질이지 않았냐” 했다. 자기는 사람을 절대 괴롭히지 않는다고 하길래, 원래 우리의 본질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 올려놓고 기도해봐라. 내가 변하든지 사람이 변하든지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나만 구원 받고 상대방은 저주를 받으면 되겠는가? 우리는 갱신의 즐거움을 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든지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행동하는 믿음을 통해 복음의 증거가 나타났다.
인생에 찾아오는 많은 문제 앞에서 인내와 눈물로 기도하고 구원의 감격 속에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면 모든 것이 진보되는 축복을 받는다. 롬1:16~17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직 의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게 된다. 기도가 되고 신앙고백이 되면 모든 일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눈물과 인내, 용기가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는 하나님께서 이유를 가지고 계신다. 빌1:12 “나의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되려 함이라” 우리가 여러 가지로 시험과 어려움, 모욕감과 배신을 당할지라도 여기에서 인내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구원의 감격 속에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면 모든 것이 진보되는 축복을 받는다. 그런데 늘 “예수는 그리스도” 이렇게 말을 해놓고 지극히 작은 문제 하나도 못 뛰어넘는다. 자기 이익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중심과 이상한 기준으로 자신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실패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창3:15을 절대 포기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 창3:15을 포기하지 않으면 빛나는 일이 온다. 살아가는 날 동안 죄성이 우리를 끌고 가는데 그것을 하지 않고 중간 중간 쉬는 사람은 히6:5~6 이상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무서운 결산이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핏값을 지불해서 우리를 인쳐놓으셨는데 그 구원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도 쟁쟁거린다면 정말 미련한 사람이다.
욥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창3:15이신 그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했다. 그 사람을 위너, 챔피언이라고 한다. 포기할 줄 모르는 바보가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지구상에 예수사랑교회처럼 창3:15을 많이 외치는 교회는 없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의 결을 따라 지금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이 축복 속에 우리가 있다. 교회는 다양한 전국과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중환자도 있고, 다친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로 얻어맞고 온 사람도 있다. 그래서 서로 감싸주고 보호해주고 치료하면서 함께 해야 하지 않은가? 창3:15의 결을 따라 임마누엘로 여기까지 왔다면 정말 겸손해야 한다. 죄성에 의한 교만의 영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뜨려라. 욥23: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욥은 포기하지 않고 창3:15 그의 길을 지켜 치유치지 않고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다고 했다. 욥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뱀의 머리를 밟으라는 것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욥23: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그는 지금도 요일3:8 똑같으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나타내시는 그 능력은 마귀의 일을 멸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본문, 행23:11 “담대하라” 하셨다. 우리가 말하는 복음이 사실이기 때문에 담대하라는 것이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에만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
*잔인한 종교의 현장을 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바울에게 하나님은 지역을 뛰어넘는 237 디아스포라 미션을 사명으로 주셨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얼마나 법정에서 잔인한 자들인지를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보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자 거짓 증인을 세우고 가룟유다에게 은30냥을 주면서 예수를 팔게 한 더러운 곳이다. 불의한 재판장, 산헤드린 공회원이 있는 그 현장에서 바울이 종말론적 메세지를 선포하게 되었다. 창3:15의 의도 없고, 정의도 없고, 진리와 공의도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곧 그 현장에는 신앙 자체가 없는 곳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행23:1을 선포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자신의 과거 양심은 타락한 양심뿐이었다. 이 비밀을 가진 자는 왜 예수그리스도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창3장 원죄로 인해 우리에게는 무서운 죄성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발작증세를 일으킨다. 이 죄성을 가지고 종교 생활을 하면 더 악한 자가 된다는 것을 지금 사도바울이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나에게는 구원이 필요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간의 힘으로는 죄성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창3장 원죄가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양심은 이랬다, 저랬다 늘 변질된다. 의리도 없고 신뢰가 없는 빗나간 양심으로 사는 것이 창3장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하나님을 알고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에게 천명을 선포했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게 되었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다. 그래서 양삼을 따라 하나님을 계속 섬기니까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계시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시하셔서 자신에게 메세지를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행23:2 종교인,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저 놈의 입을 쳐라!” 했다.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내게 계시하고 있다는 확신있는 언어를 사용하니까 사람들이 막 돌아버렸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자들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시험이 들어도 금방 돌아설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자들이 시험이 1년이 가고 원수 맺는 일이 10년이 가면 되겠는가? 원한을 풀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이상한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그 사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면 된다. ‘저 영혼을 잡아 돌봐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면 되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미움은 미움대로 점점 원수맺는 자가 된다. 우리는 원한이 없는 원수들이 있어야 한다. 불평, 불만이 없는 원수가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을 전부다 기도로 올려드리면 된다. ‘하나님, 이 사람을 받으시옵소서’ 하면 하나님이 ‘너를 나에게 좀 바쳐봐라’ 이런 계시가 올 것이다. 그러면 갈2:20 속에 그분이 계시하신다. “옛사람을 없애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라” 그러면 우리가 챔피언이 되고 하나님 앞에 정금같이 나아가게 된다. 이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한다. 죽어있는 말로만 신앙생활 하지 말고 살아있는 신앙생활이 시작되어야 한다.
창3:15의 양심은 한 마디로, 행복감이 너무 커서 벅찬 기쁨이 오는 것이다. 창3:15의 하나님을 섬기면 자꾸 문제를 우리 앞에 갖다 주신다. 마귀의 일을 멸하고, 깨뜨려보라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생각이 커지고 마음도 넓어진다. 뱀 대가리를 깨뜨리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앞에 조그마한 문제 하나를 갖다 놓고 나를 바꾸는지 안 바꾸는지 보고 계신다. 그런데 이 하나를 깨뜨리지 못해서 못 넘어간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뱀의 후손이 되지 말고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를 좋아하고 따라가려고 한다. 세련되고 좋은 것,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 이런 것을 따라간다. 이런 사람은 군중, 무리다. 하지만 제자는 다르다. 예수사랑 가족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 시대 복음 전하는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창3:15 하나님을 섬기면 우리의 양심이 굉장히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조금 발악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여 받으시옵소서. 이놈 때문에 내 자아가 깨지는 줄 믿습니다’ 하면 된다. 이런 일들이 우리 삶에 있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갈수록 즐겁고 행복하고 겸손하고 용기있고 눈물과 의리가 있게 된다.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더니 대제사장 아나니아에게 굉장한 분노가 찾아왔다. 우리 몸에 분노는 종교다. 뱀의 후손, 죄의 근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을 뽑아내야 한다. 왜 바울의 입을 치라고 하는가? 자신의 잘못된 신앙이 들통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망가든지 아니면 더 발악을 하는 악질이 된다. 사도바울의 담대함에 대해 그는 마음에 찔림을 받고 있었다. 말씀을 들으면 우리 마음에도 굉장히 찔림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분노가 치밀고 여러 가지 해결해보고 싶은 인본주의적 생각도 많이 들 것이다. 그럴 때마다 솟구치는 분노들 속에 내면의 세계를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버려라. 강단에서 내면의 것을 끄집어내고 선포기도를 해주면 정말 자신에게 힘이 되고 놀라운 이이 일어난다는 간증을 많이 들었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저주야, 욕지거리하는 어둠의 세력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내 몸에서 떠나갈지어다. 나는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 마12:28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 더러운 것을 내어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안에 임하게 된다”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면 이것을 해야 한다. ‘죄의 권세로 분노케하고 좌절케하며, 나를 낙담케 하고 사람의 영혼을 죽이려고 하는 악한 살인의 칼춤들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몸에서 결박을 받고 떠나갈지어다!’ 우리 안에서 ‘ 저 놈의 입을 쳐라!’ 하는 내면의 종교성을 무너뜨려야 한다.
행23:3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바울이 굉장한 말을 선포했다. 너에게 이제 재앙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 네 속에는 썩어들어가는 송장과 같으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는 제사장에게 회칠함 담이라고 한 것은 많은 사람 앞에 엄청나게 모욕을 당하는 사건이다.
요14:6이 내 것이 되지 않으면 무너지고 막10:45 대속주 이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섬겨야 그분으로부터 능력을 공급받아서 사단의 일을 멸할 수 있다. 그래야 롬8:1~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가 해방을 받는 것이다. 행10:38 사람이 마귀에게 묶이고 눌려 회칠한 담과 같이 재앙과 진노가 찾아오게 되었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겉으로는 제사장이고 하나님의 성호를 가진 자이지만, ‘만군의 여호와시여’ 하며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속에서는 어리석은 짓을 하며 악이 가득한 회칠한 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를 치신다 했더니 행23: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했다. 그 때 바울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잽싸게 출22:28을 인용해서 대답했다.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나는 그가 재판장인지 몰랐고 우리의 지도자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꼭 살게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없이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을 가짜라고 한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 진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된다. 자기 말만 늘어놓는 사람은 종교인이다. “나는 기름부은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성호의 이름을 가진 자들에게 저주하지 않는다” 출22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름 부은 자들을 지도자들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건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에게는 “화있을진저” 했지만 제사장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다. 바울이 기름 부은 자인지 몰랐다고 변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다.
그러면서 바울이 사두개인 사람들의 눈빛에 살인의 광기를 보았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교리와 신앙이 달랐다. 사두개인은 인본주의 사상, 인간의 의지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자들이었고,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예정과 뜻, 섭리를 굉장히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영적인 것을 알아서 천사의 영도 믿고 악령도 믿었다. 딱 하나, 창3:15만 믿지 않았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교훈은 많았지만 그들은 언약에서 이탈되어있었다. 그래서 결정적 순간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잘 싸운다는 것을 바울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이 행23:6 “나는 바리새인, 내 아버지도 바리새인,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바리새인이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두 파에 싸움을 붙였다.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천사나 악마를 믿지 않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볼 때는 만일 천사의 명을 받아서 바울이 이런 메세지를 하고 있다면 자신들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행23:9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이제는 자기들끼리 붙어서 떠들기 시작한다.
행23: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이제는 엄청난 분쟁이 생기니까 사두개인 눈에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살인의 광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울을 찢어죽일까해서 군인을 명해서 그를 뒷문으로 나가게 한 것이다.
바울의 기도 속에 하나님은 행23:11의 응답을 주셨다. 이런 사건들을 다 당한 후에 바울의 가슴이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럽고 슬펐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민족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가슴이 온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하나님께 올려놓고 기도하는 중에 ‘도대체 이스라엘,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민족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통곡하며 외로움과 고독 속에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바울은 언제나 시간의 공간 속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 곧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기도 속에 있었더니 행23:11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났다. 그날 밤,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바울아, 네가 왜 쓸데없는 짓을 했냐, 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전하라고 나의 택한 그릇이라고 세웠는데 왜 이렇게 고집을 세우냐’ 하시지 않았다. 바울이 자신의 동족인 유대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보려고 머리를 깎고 금식도 해보고 야고보가 시킨대로 인본주의를 써보기도 했다. 21장부터 이 본문까지 계속되는 내용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복음을 전해보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찾아오셔서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하셔도 마땅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1초 전의 지난날도 기억하지 않으신다.
행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포기하지 않는 바보가 챔피언이다. 그래서 바울은 세계를 정복하는 챔피언, 성공자가 되었다.
오직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를 포기 하지 않는 바보, 바울은 결국 세계를 정복하게 되었다. 그래서 2년간 천부장 영내에서 로마군인을 위한 복음 시스템을 잘 만들어놓고 포승줄에 묶여 로마에 가는 배를 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2년 뒤 로마를 가게 된다. 괴로운 그 밤, 슬픔의 밤, 자기를 돌아보는 그 밤에 하나님의 계시가 임한 것이다.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다. 절대 보기할 줄 모르는 바보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신다.
“담대하라 용기내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성경에 356번이나 주셨다. 두려울 때마다 언제나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비밀이,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하기 싫어도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로마서에서 복음을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이렇게 신앙이 확장되어야 한다.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너는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에게 임하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들에게 사명을 주셔서 지역과 민족을 뛰어넘는 237 디아스포라 미션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창3:15을 우리에게 언약으로 주셨고 그리스도의 결을 따라 오늘도 우리들에게 승리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셨사오니 절대로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야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이 일에 포기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그 바보들에게 어떤 응답들을 주시는가를 볼 수 있을 만큼 증거 있는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사오니, 그 응답을 따라 237 디아스포라 미션을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이제부터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 말씀으로 나를 통제할 수 있도록 날마다 성령 충만을 더하여 주옵시고,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습관을 가지고 이기는 그 승리의 축복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처럼 이제는 로마에 가서도 증언하리라는 그 말씀이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에게도 성취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하나님을 마음껏 선포하는 여정 속에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보는 증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사실적인 복음만을 선포하는 예수사랑교회에 붙어 있어 창세기3장15절로 결론을 내리게 하셔서, 창세기 3장의 원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양심이 변질되고 무서운 재앙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은 종교생활에서 빠져나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살아가는 날 동안 끊임없이 죄성이 나를 끌고 가기에, 창세기3장 15절을 포기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 언제든지 문제 앞에 말로만 하는 죽어있는 종교체질을 버리고 창세기 3장 15절 예수그리스도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마귀의 일을 멸하는 습관으로 죄의 근성에서 빠져나오게 하옵소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에 한 주간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나를 통제하여 창세기3장 15절을 따라 신앙생활 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벅찬 행복을 누리며,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예루살렘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는 전도자 바울이 받은 사명을 나의 것으로 붙잡아 지역을 뛰어넘는 237디아스포라 미션을 성취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