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의 전통과 종교사상을 개혁하는 그리스도의 빛과 소리"
(행 22:11-21)
기독교는 하나님의 주신 방법, 창3:15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유대교는 야훼, 창조주 하나님의 유일성, 유일신으로만 출발했기 때문에 개혁과 회개가 없는 종교생활일 뿐이다. 이슬람 사람들 또한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 의지, 감정, 사상, 이념, 종교로 온몸을 불사르고 테러까지 일삼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창3:15에는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 말씀을 성취시키는 하나님, 그 말씀에 감동을 일으키시는 그 하나님을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Trinity트리니티)라고 한다. 창3:15의 출발이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 나사렛에서 출발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성령의 권능이 있어 귀신에게 눌리고 사단에게 묶인 것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행10:38 나사렛 예수에 관하여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고치셨다” 고 메세지를 했다. 그 나사렛에 출발한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행1:8에 나사렛에 출발하여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본 사람들이 마가다락방에서 교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창3:15, 요1:14, 요19:30의 하나님, 마28:18~20 부활의 주, 그리스도를 오로지 가슴에 새기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더니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성령의 역사로 행11:19 안디옥 교회가 탄생되었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세워지는 곳이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영적싸움을 시작하면 개인이 성령의 역사와 영광을 체험하고 확인하게 되고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누구나 변화를 받을 수 있고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전도를 하셨으며, 전도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기도 속에 있으면 누구나 변화를 받고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영웅, 성경의 역사를 이룬 사람들은 성삼위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셨다. 유대인들처럼 창조주 하나님 야훼만 믿으면 거듭남이 없다. 유대 전통과 종교 사상은 살아계신 성삼위 하나님,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 비밀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예수를 죽인 자가 되었다. 그들은 기독교가 주장하는 성삼위 하나님의 유일성과 유대교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이 비슷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유대교를 굉장히 떠받드는 목사들이 있다. 유대교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적그리스도의 종교 사상일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유일성으로 믿는 것 같지만 창조주 하나님만 믿기 때문에 그들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이 사람 몸속에 없으면 살인의 광기만 점점 커진다. 본문에 바울은 그런 과거의 자신의 모습과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의 모습을 보면서 유대인 앞에서 간증하는 것이다. 자신이 왜 이렇게 살인의 광기를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진리를 전하는 사람을 죽였는지에 대한 메세지를 간증하고 있다.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이 사람 몸속에 없으면 살인의 광기만 점점 커진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25:41, 그런 자들은 영원한 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했다. 원래 사단 때문에 지옥을 만들어놓았는데 사단과 똑 같을 만큼 사람 속에 그 분량이 차있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람이 종교 속에 있으면 점점 완악해지고 마음이 굳어지고 딱딱하고 고집만 센, 이상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창3;15로 돌아가는 회개가 없고, 롬8:6 사망상태로, 롬8:7 하나님과 원수가 된 자로 살아간다. 육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가 이렇게 이상한 상태로 무너져 가는 것이다. 교회들의 문제가 우상숭배하는 곳으로 바뀔 만큼 심각해져버렸다. 요일2:16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완전 우상숭배하는 곳에 되어버렸다. 골3:5 더러운 음욕으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않는다. 음란과 부정, 사욕과 악한 정욕, 탐심으로 우상숭배만 할 뿐이다. 이런 자들이 유일성을 주장하니까 일반 종교인들이 오히려 교회 다니는 사람을 정신병차처럼 보는 것이다. 우상 종교는 떠들기만 하는 귀신 종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개인의 변화도 없고 거듭남도 없이 그냥 떠들어대기만 한다. 운명을 바꾸지 않고 삶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 자체가 없다. 그래서 오늘날 귀신 종교가 난무하다. 부흥을 목적으로 모여서 떠들고만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과 세상에 확인되지 못함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강조하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기 위해 옛 사람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 이름을 왜 강조하는가? 성령께서 내 몸에 역사하시도록 그 이름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그 이름을 불러야 하는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내 몸에 저주와 재앙을 없애려고, 하나님 나라와 접속하려고 그 이름을 부르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을 부르기는커녕 밥 먹을 때만 부르면서 그냥 떠들어대기만 하는 귀신 종교에 미쳐있다. 복음과 종교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사람들이 이상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행4:12 유일성이 없는 것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우리는 구원을 받으려고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른다. 그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권능으로 역사하신다. 요14:6 예수는 길과 진리, 생명되시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나를 바꾸고, 나의 길을 바꾸고, 나의 생명을 바꾸는 것이다. 길이요, 진리, 생명되신 그리스도로 내가 주장하던 나의 이념, 사상, 육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자기가 가졌던 유대사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길을 바꾸지 않아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유대 사상이 이렇게 나쁜 것이다. 그 이름이 우리 가슴에 부딪쳐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그리스도 이름을 부딪치면 이렇게 고백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세계복음화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런데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이 없으면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이 부딪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 이름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래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밖에 없다’ 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탈무드 같은 지혜서에 초점을 맞추고 산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바울이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하나님을 믿을 때 성령의 감화, 감동, 계시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유대인을 향해 권면하고 간증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창3:15의 사실을 말하면서 설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내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켰더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 자신의 신앙고백이 담겨있는 설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이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허망한 설교를 메아리치듯 하니까 성도들은 변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도와 선교를 위해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셨다.
행22: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성삼위 하나님이 택하셔서 자기의 뜻을 알게 하시고, 성삼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그 십자가에 달린 성자, 그 의인을 보게 되었고, 그의 영감을 가졌더니 그 음성을 듣는 자가 되었다. 우리도 이 말씀에 답을 내야 한다. “나를 택하여”, “자기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죽음을 의인으로 보시고”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내게 주신 예수님을 죄인으로 보지 않고 의인으로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나에게 의를 이루어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살게 되었다. 여기에 대한 엄청난 은혜와 축복과 감동과 감격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 구속의 사랑이 내 가슴에 부딪치는 그 영감이 있어야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되는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음성이 들려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 하나님이 그리스도, 주가 되셔서 나를 이 예배의 자리에 앉혀놓으시고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이구나’ 예수님이 바울을 부르셨을 때,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면서 길을 막고, 장님으로 만든 상태로 아나니아를 만나 눈을 뜨도록 역사하셨듯이, 우리 인생 여정에 사람을 다 꺾어놓으시고 우리의 음성을 듣고 따라갈 때 그 사람이 응답을 받도록 하나님이 시스템을 만들어놓으셨다. 그래서 전도자의 훈련을 받으면 무한한 축복이 계속 연결되는 것이다. 밥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훈련을 중단하면 안된다. 교회 훈련을 지속할 때 가이오는 현장을 장악하는 온 교회 식주인이 되었다. 전 세계 재벌가에게 그 역사가 아직도 펼쳐져 가고 있다. 예수사랑교회 성도들이 여기에 눈을 떠야 한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네가 다메섹 도상에서 아나니아 집에 들어가면 네게 와서 이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해라” 말씀하시고, 아나니아가 “너는 눈을 떠라,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을 불러라” 하니까 엄청난 살인의 광기를 가졌던 바울, 학자 중 학자였던 바울이 아나니아라는 전도자 앞에 무릎을 꿇고 메세지를 들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바울을 훈련시키셨다. 그래서 우리는 훈련을 통해 그분의 역사 속에 끌려가야 한다. 강단 메세지에 계속 끌려가도록 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기적을 체험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는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 하나님의 귀한 일을 본다’ 고백하게 된다. 우리의 손은 땅에 내려있지만 생각은 언제나 하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 늘 육신적이면 무슨 끌림이 있고 순종이 있고 충성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개별적으로 선택했다는 말씀에 내 몸이 접속되어야 한다. 갈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나를 부르신 이가 바로 트리니티,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를 부르신 분이다. 엡1:4~5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택함을 받은 엄청난 사람들이다. 인격이 좋아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역사 속에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구별하시고 택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많은 고난이 찾아오고, 불신자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핍박을 받는다. 불신자 남편에게 바보로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선택,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성이 없고 불신자가 시키는대로 하니까 불신자가 이상하게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충성도 없으면서 ‘나는 하나님께 선택받았다’ 고 떠들고 다니면 이상한 사람 취급당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을 받았다면 이제는 내 생명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엡1:5 “그 기쁘신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음이니라” 이미 다 끝났다. 그런데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불신앙적 교만에 묶인 것이다. 롬16:25~26 그리스도를 1인칭 하면 영세전에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이 있는 자리에서 나타나, 성삼위 하나님, 그 신비의 계시를 받은 유일한 자가 된다. 그래서 보좌의 능력이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했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격을 묻지 않고 우리를 선택하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고, 죄의 삯은 사망인데, 사망의 몸에 묶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될 자격이 있는가? 부정하고 무정하고 무지한 자,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격이 안되는 우리를 선택하신 이것을 은혜라고 한다. 창6:8~9 노아는 이것을 깨닫고 은혜 입은 자로 살았다. 여기에 충실하고 충성했더니 창6:9 “당대 의인, 하나님의 자녀”라는 응답이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의를 이루셨기 때문에 자신이 의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당대에 “모든 문제 끝!” 하며 하나님과 동행했더니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키는 동참자가 되었다. ‘자격을 갖추지 않아도 방주 안에 들어가면 산다!’ 하고 끝낸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오늘날 귀신 종교는 떠들기만 하고 종교와 복음을 구분할 줄 모른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과 판단력이 없어, 귀신들린 자를 리더로 세워 대한민국은 지금 제2의 IMF가 오는 상태가 되고 있다. 글로벌 시대 속에 지도자 한 사람이 잘못 선택되고, 귀신들린 종교를 섬기는 국가가 되면 무시무시한 재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복음도 막히는 것이다.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을 가졌던 다윗왕은 태평성대를 누렸다. 우리 예수사랑교회 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다. 바로 전도와 선교를 위해 태어난 것이다. 지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극비리에 데려왔다. 그 나라에서 처형을 당할까봐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미라클 작전을 통해 한국에 데려왔다. 그러면 이제 그들의 자녀들이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을 전 정부에서 했다는 이유만으로 현 정부에서 모든 예산을 깎아버렸다. 이런 자들이 바로 살인의 광기를 가진 자들, 귀신들렸다고 하는 것이다. 지도자 한 사람을 잘못 만나면 이렇게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는 그리스도의 빛과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생명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을 주실 것이다. 우리가 이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미라클 오케이 어학당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바로 전도와 선교다.
그래서 하나님의 ‘예정’ 은 구원이지만 하나님의 ‘선택’ 은 사명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자’ 라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받은 자,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존재다.
나를 능하게 하신 예수그리스도, 살아계신 그리스도에게 언제나 충성이 있어야 한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방향으로만 돌려도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나는 남은 생애 전도와 선교에 충성된 종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기름 부어 직분을 맡기셨다. 그래서 내가 교회 장로가 되었고, 직분자가 되었고, 교역자가 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자격과 능력을 주신다. 벧전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전도와 선교를 발견한 자에게 영력과 지력, 체력과 경제력, 만남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크게 잘되면 교회를 떠날까봐 밥 먹는 수준만 해놓으시고 지금 교회 붙어서 훈련 받게 하신다. 하나님은 모세를 선택하시고 40년 동안 왕궁에 붙들어놓으셨다. 모세가 왕궁에 들어가지 않고 친부모 밑에 있었으면 40년 전에 돌아다니다가 죽었을 것이다. 혁명을 하겠다고 돌아다니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왕궁에 40년을 집어넣고 훈련만 시키셨다. 하나님이 현장을 좀 보라고 했더니 바로 사람을 쳐서 죽여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광야에 또 40년을 집어넣고 훈련시키신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먹어 80세에 완전 힘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 때 하나님이 “네 백성에게 가라” 하셨다. 내가 할 수 없다고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신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할 수 있습니다’ 할 때 하나님이 하신다. 그런데 네 백성에게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또 “나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우둔한 자입니다” 한다. 아직도 자기 틀에 갇혀있는 것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모세야, 네 입을 지은 자가 누구냐?” 하시면서,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냐?” 하시며 아론까지 모세에게 붙여주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우리를 부르셨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 알고 우리를 선택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도 있고 다른 백성들도 있는데 왜 꼭 모세를 통해서만 메세지를 들어야 하냐고 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들을 때 너희에게 응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나니아를 선택하여 하나님이 사울을 꺾으시고 아나니아의 말을 듣고 눈을 뜨게 만드시는 모습을 봐야 한다. 불평과 완악함으로 사로잡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깨뜨릴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행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행9:15 예수님이 처음에 바울에게 나타났을 때 분명히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곧 흩어진 자들을 위해 탁한 나의 그릇”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에 세 번이나 들어와서 세 번 다 죽을 뻔했다. 오늘날 교회가 왜 우상종교가 되었는가? 그들이 가진 지식으로 사람을 멸망시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멀리 이방인에게 보내신다고 했다.
하나님의 선택 속에는 확실한 사명이 있고, 선교지가 있고 목적지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야 한다. 바울이 이방인에게 전도했으면 여러 가지 핍박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유대인을 자기 동족으로 여기면서,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렇게까지 고백을 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아 죽인 저주의 자식, 앞으로 2천년의 재앙을 맞을 자기 동족을 보면서 틀리게 하나님을 믿었던 자신에 대한 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열정까지도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자신의 의지, 감정, 생각까지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그 전도와 선교는 지금 우리 몸에 와 있는 성령이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아, 내가 살면 안되는구나.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야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구나’ 갈2:20이 그의 신앙고백이었다. 그리고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은 24시, 25시, 영원토록 내 안에 함께 하시기 때문에 빌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만 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두를 것도 없고 몸부림 칠 것도 없다. 복음을 누리는 누림의 기도 속에 있기만 하면 무한한 응답은 시작된다.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는데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갔기 때문에 필요 없는 많은 핍박을 받게 된 것이다.
선택의 구체성을 본문을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행22:14 “자기 뜻을 알게 하셨다” 선택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먼저 내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려라. 세상으로부터 틈을 타고 들어오는 이념과 사상, 종교 사상을 사로잡아 내버려라.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옛 사람으로 먼저 들어와 있는 것을 내어 쫓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임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계시다. 그래서 롬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복음 속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노니 오직 의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구원의 교리, 롬8: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있는 나를 그리스도께서 해방케 하셨음이니라.” 법적 관계에서 해방 받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의가 충족되는 그 십자가 사건의 계시가 우리의 삶에 감격으로 와야 한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날 위해 의인이 되시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려고 내 대신 십자가를 친히 담당하셨다. 죄인인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내 몸에 지닌 죄의 권세, 지옥권세, 사단의 권세를 멸하시려고 친히 십자가를 담당하셨다.’
*이 계시의 영감을 가질 때, 부활의 주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다.
그래서 공생애 때 우리에게 전도한 예수님의 메세지가 내게 주시는 예수님의 음성으로 들려야 한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어린 양을 먹이고 내 어린양을 쳐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너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해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여러가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나타나니 교만도 하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성령의 사람이 된 후 돌아다녀라.” 이런 음성을 매일 들어야 한다. 이런 사람을 ‘부활의 주를 만난 자’ 라고 한다.
성경의 맥락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창3:15의 말씀을 창15:6로 맥락을 이어갔다. “아브라함이 창3:15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그를 의로 여기시고” 성경의 결을 따라 맥락을 잡아주셨다. 창3:15을 믿음으로 사람은 사는 것이다. 행22:14 “저는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 의인을 보게 하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봤다.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로 봐야 한다. 나를 의롭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죄인으로 본다. 그래서 항상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이 죄인, 이 죄인’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내 것을 담당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에게 충성해야 한다. 그런데 매일 죄인으로 주저앉아있기 때문에 충성은 커녕 떠들어대는 귀신들린 종교만 만들어낼 뿐이다. 행동 없는 그리스도인은 절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것은 귀신들린 자들이다. 그래서 오늘날 교 회가 욕을 먹고 개독교라는 소리까지 듣는 것이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만이라도 그들의 소리를 멈출 수 있도록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행3:13 의인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베드로도 성경의 결을 따라 맥을 찾아서 메세지를 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이 전부 창3:15의 맥락을 따라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로 의인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엄청난 미래의 계시를 보고 감동을 받아 살아계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다.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음성을 듣는 자는 뱀의 머리를 깨뜨린다. 충성을 하기 위해서 뱀 머리를 깨뜨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 안에 쪼잔하고 쟁쟁거리는 것, 찌질하고 옹졸한 것, 시기와 질투, 죄의식과 죄책감, 열등의식, 형제와 서로 화목하지 못하는 완악함, 가정을 원수덩어리로 만드는 불편한 이념 사상 철학 종교 신념 의지, 이런 것부터 사로잡아 깨뜨려라.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려고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다 죽였으면 이제는 자살로 자기까지 죽이는 것이다. 바울은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고 생각이 늘 하늘에 있었다.
그의 음성을 듣고 손으로 글을 쓴 것이 바울 서신이다. 내가 매일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 가슴에 닿을 수 있도록 sns로 목회 서신을 보내고 있지만 여기에 눈 한 번 놀리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가슴에 부딪칠 때까지 읽어야 한다. 너무 쉽게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은 참 행복자이기도 하다. 나는 신앙생활 속에 참 서럽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많이 보냈다. 장애인 공동체를 할 때, 24인승 버스에 장애인들을 태우고 강원도를 넘어간 적이 있다. 눈이 내려서 2차선 도로에 차선도 보이지 않고 앞 유리가 얼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에게 그 유리가 얼지 않도록 계속 닦아달라고 했다. 화장실에 가려고 잠시 차를 세웠을 때 어머니가 24인승 차 앞바퀴에 드러누워 날 죽이라고 하시면서 통곡하고 우셨다. 도대체 착하고 충실한 내 아들이 무슨 죄가 많아서 이렇게 살아야 하냐며 장애인들을 데리고 평생을 그렇게 산다는 것이 우리 어머니 가슴에는 대못이 박힌 것처럼 아팠던 것이다. 어머니가 통곡을 하시며 슬피 우시니까 ‘내가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처음으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종교는 이렇게 잔인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대형교회 목사님이 정신 지체 장애인 자기 딸을 공동체에 집어넣고는 너하고 나하고 무덤까지 가져가자 하면서 내 목회의 길을 키워준다고 약속해놓고는 자기 딸만 맡기고 연락을 아예 끊어버렸다. 또 어떤 교회 여전도회에서는 라면 몇 박스 사와서 사진 찍고 돈 봉투 주면서 500만원짜리 영수증 써달라고 하고서는 나중에 확인해보면 5만원 들어있었다. 나는 종교인들의 너무도 잔인한 모습을 많이 겪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선택의 구체성이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부활의 주, 그리스도 예수의 음성을 듣는 생명이 되어야 한다. 예수사랑교회는 언제든지 2부 예배 때마다, 예수님이 공생애 때 하신 메세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전도와 선교를 놓고 전도하신 그 예수님의 메세지를 여러분에게 선포하고 나눠주고 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선택하셨는가? “내가 너에게 말하고 너는 선택된 사람을 통하여 들어라” 이것이 전도와 선교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울에게 훈련이 되어진 아나니아에게 찾아가라고 하셨다. “그가 말하는대로 너는 들어라” 그래서 아나니아가 눈을 뜨라고 했을 때 사울이 눈을 떴다.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불러라” 했을 때 바울은 하나님의 그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우리의 현재 시간표는 예수사랑교회에서 다양한 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된 우리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전도의 문을 연결해놓으셨다. 콘스탄틴 황제는 관직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일이 잘 돌아가지 않아 너무 힘이 든다는 이간의 소리에 넘어가 예수를 믿는 자들을 모아놓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든지 관직을 버리고 떠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명령한다. 예수 믿는 자들은 주일에는 관직의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당신 로마 황제의 권위는 어마어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자들은 하나같이 관직을 버리고 자기 집에 돌아가 버렸다. 그런데 그날 밤 콘스탄틴 황제에게 견딜 수 없는 번민과 사색, 갈등이 찾아왔다. ‘도대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하나님이 어떤 분 이길래 저 위대한 관직의 권세를 버리고, 내 말도 버리고 떠났을까? 눈에 보이는 하나님도 아니고, 우상을 세워놓고 섬기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들은 저런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몇 날, 몇 달이 지났다. 그런데 국가의 일이 돌아가지 않았다. 믿지 않는 자들을 앉혀놔도 그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날 콘스탄틴 황제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은 내게도 충성할 수 없다” 이 말을 스스로 뱉었다.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관직을 주고 있던 자들을 내쫓았다. 그 때 로마는 세계를 정복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 언제나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변화시키시며 우리를 새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동과 계시를 통해 인도해가신다.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그 사명에 충실하라’ 는 이 메세지가 우리 마음에 부딪쳐야 한다. 그래서 나를 부르신 그 부름에 충성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유대의 전통과 종교 사상을 개혁하는 그리스도의 빛과 소리를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이제는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주셨사오니,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자 되게 하옵시며, 그분 입에서 나오는 모든 음성을 듣는 자가 되어 충성하는 삶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전도와 선교를 가슴에 새겨놓고 행1:8을 성취시키는 사명을 받았사오니 우리가 가야할 길은 오직 전도와 선교라는 것을 가슴에 새겨놓고 기도 속에 무한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모든 생명들을 살리는 구원의 역사가 있게 하옵시고, 그 생명들을 찾아서 제자로 훈련시켜 땅 끝까지 보낼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영권을 더하여 주옵소서. 특히 오늘 응답의 문들이 열려지게 하옵소서. 저들의 경제 문제가 열려지게 하시고 질병이 해결 받는 날이 되게 하시고 고난이 축복의 근원의 시작이 되게 하옵시고 가정의 문제가 행복의 시대를 여는 최고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종교우상에 잡혀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창조주 하나님만을 유일신으로 믿어 고집만 센 상태에서 회개와 변화도 없이 운명대로 살지만, 내게는 성경의 맥락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방법, 나사렛에서 출발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신 예수님, 창세기 3장 15절 속에 있는 성삼위 하나님, 부활의 주 예수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지고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내 몸에 지닌 죄와 지옥권세, 사탄의 권세를 십자가 죽음으로 친히 담당하셔서 그리스도 안에 법적으로 모든 것이 해방된 자가 되었고, 하나님이 큰 경륜 속에 나를 선택하시고 부르셨기에, 모든 열등의식과 옹졸한 생각, 가족 간에 원수 맺게 만드는 내 의지, 사상과 감정, 불평과 불만, 옛 체질의 생각을 버리고 어떤 상황에도 복음의 훈련 속에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나의 모든 말을 모든 사람들이 듣도록 전도의 문을 연결해놓으셨기에, 내가 가야 할 길은 오직 전도와 선교라는 것을 가슴에 새겨 놓고 성령의 감동과 계시의 인도를 따라 부르신 사명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