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을 변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소리"
(행 21:37-22:11)
본문을 통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면서 자신은 하나님께 칭찬받는 일을 하고 있다고 굉장히 착각하는 교회들이 많다. 믿음의 뒷편에서 돈을 외치는 자들이다. 교회는 돈이 아니다. 교회는 창3:15이라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종교는 자기 유익을 위해 기도한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 사람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돈을 사랑하며 자기를 사랑하게 하는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라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회복하는 기도다. 창3:15이 우리 몸에 연결될 때 하나님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진리의 영, 성령이 그 사람에게 스며들었다’ 고 말씀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거짓말이 사라지고, 돈을 사랑하는 욕심쟁이가 몸에서 사라지면서,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재우시고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주시는 것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창3:15로 인생을 살면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갈2:20 모든 전도자는 이렇게 이 세상과 다르게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심으로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 속에 무한한 하나님의 축복을 응답으로 누리며 사는 것이다. 끊임없는 세상의 공격, 곧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게 만드는 사단의 머리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박살내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복음화의 여정을 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창3:15이 없는 신앙은 엉뚱한 희망을 낳게 하고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착각 속에 살게 한다.
그래서 창3:15이 없는 종교인들은 무시무시하고 잔혹한 핍박자다. 바울을 사용했던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이 얼마나 잔혹한 자인지 본문을 통해 볼 수 있다. 창3:15이 없는 신앙은 살인의 광기, 살인의 칼춤을 출 뿐이다. 자신의 유익, 돈 문제 때문에 순식간에 발작 증세를 일으켜 진짜 무서운 살인자가 된다.
성경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 다. 그는 969세까지 살았지만 히11장에 믿음의 영웅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이 있어야 영웅이다. 시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의 날을 명확히 계수하며 내가 무슨 일을 하다가 가야 하는지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옛사람의 틀을 깨뜨리면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일에 동참하는 믿음의 영웅이 된다.
회개와 회심은 창3:15로부터 시작된다. 창3:15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향해 핍박자가 되고 잔혹한 사람으로 돌변해가는 것이다. 창3:15을 소유한 자를 막3:14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라고 말씀했다. 창3:15을 가진 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 현장을 정복하고 회복하는 전도도가 일어나고, 잔혹한 핍박자로 살게 만드는 사단의 대가리를 깨뜨리기 때문에 귀신을 내어쫓는 권능을 사용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순간 순간 이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르기 때문에, 순간 다운될 때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외쳐야 한다.
창3:15은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회복시키는 자가 누구인가?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자다. 그래서 개인의 영적싸움이 없는 신앙은 오히려 더 완악하고 잔혹한 핍박자가 될 뿐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회복하지 못했을 때 부끄러움을 당하는 인생이었지만, 창3:15을 회복하는 자가 되어야겠다고 결단했을 때, 창13:18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종교인들이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진짜 기도가 아니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진짜 기도가 시작될 때 막혔던 모든 문이 열리게 된다. 창3:15 그리스도의 복음을 언약적으로 회복하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기도의 단을 쌓을 때 우리는 지구상에 복음을 가장 멋있게 누리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의 축복을 갖는 것이다. 사단의 머리를 밟는 기도를 회복하고, 언약의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진짜 복음을 누릴 수밖에 없고, 그 누림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복음이 이뤄지는 과정을 ‘복음의 여정’ 이라고 한다. 이 복음이 이뤄지는 여정 속에 있기 때문에 문제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영적싸움의 군사가 되어야 한다. 복음을 이루는 여정 속에 있는 우리는 사는 것이 응답이기 때문에 사는 것에 시달리며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는 복음을 이루는 여정 속에 있기 때문에 응답의 사람이 되었다. 너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영원한 생명이 네게 보존되었다!’ 자신을 향해 선포해라. 창3:15의 능력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능력과 다르다. 창3:15의 능력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능력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회복시키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개인이 답답하고, 우리를 만나는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왜 창3:15을 받았는가? 우리 몸은 선천적 원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빠져나오는 길은 창3:15밖에 없다. 히4:12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다는 것은 창3:15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창3:15에는 운동력이 있어 밟고 깨뜨리면 힘의 원천이 시작되며, 우리가 싸움을 하는지 안하는지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뜻을 감찰, 감독하신다고 했다. “살았다, 운동력이 있다, 감찰한다” 이렇게 창3:15에는 세 가지가 들어있다. 창3:15을 적용하면 얼굴빛도 다르고 우리 몸에 솟아나는 에너지도 다르다. 35년 전에 초도에서 만난 철이 형제와 통화를 했다. 굉장히 반가워하면서 한 번 찾아뵙겠다고 했다. 복음을 전했던 초도 마을에 이제 교회가 세 개나 생기고 유일하게 무속인이 없는 마을이 되었다고 했다. 그 마을 회장의 부인이 원래 무속이었다. 자녀들은 귀신이 들려 돌보지도 못할만큼 어려움이 있었다. 그 부인이 복음 메세지를 조금 듣고 남편이 서울에 올라와서 저에게 여러 도움을 받으며 살았던 적이 있었다. 신학을 하겠다고 해서 좋은 신학교를 보내주려고 검정고시 과정부터 하라고 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고 신비주의를 하는 이상한 학교를 가고 기도원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 온갖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녔다. 안타까웠지만 붙잡아 줄 수가 없었다. 엉뚱한 희망을 가지고 잘못된 열심으로 살았던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병이 들어 오랫동안 아픈 상태로 앓다가 죽었다고 했다. 나보다 신체적으로도 뛰어나고 건강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창3:15 여자의 후손 예수그리스도의 결을 따라 살았고, 그분은 자기가 만든 하나님을 믿고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다가 멸망상태로 간 것이다. 복음의 결과는 처음과 끝이 이렇게 뚜렷하다. 한국교회는 복음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끝이 달라서 ‘이단’ 이라고 하는 것인데, 종교로부터 누명을 쓰는 것을 ‘이단’ 이라고 만들어버렸다. 종교가 원래 이단이다. 하나님이 왜 창3:15을 주셨는지 교회가 모르면 결국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는 선천적 원죄를 버리라고 하신다. 옛 체질을 완전 바꿔야 한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창3:15이 전달되어 그 이름을 믿는 자,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그 이름을 믿는 자, 오래전에 약속하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을 말씀한다. 이런 자가 되어야 가문을 살리고 가정을 살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후천적 영적 문제가 나타난다. 사람이 비열해지고, 나쁜 쪽으로 변질되어 정신문제가 오는 것이다. 사람은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로 놓여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없이 멍 때리면서 그냥 인생을 산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저 사람은 영혼이 없는 것 같다’ 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세상 풍습 속에 공중권세 잡은 자가 흑암으로 덮어버린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하라고 말씀하신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내어쫓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게 된다. 이 오직에서 유일성의 축복을 누리는 것은 강한 자를 결박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재창조의 역사가 우리 몸에서 시작된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나의 그리스도만이 나의 사랑의 절대 대상이다. 그분이 내 몸에 있다면 생명을 품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몸에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성령의 역사’ 라고 한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내어 쫓아야 한다. 오직 그분을 사랑해야 하고, 오직 그분의 명령을 따라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나의 주가 되고, 나의 그리스도가 되고, 나의 영원한 생명이고, 나의 길이 되시기 때문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이름 하나로 우리의 모든 단점은 전부 발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많고 많은 단점들이 전부다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의 발판이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지난날 얻어맞고 당하고 넘어지고 쓰려졌던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없었다면 창3:15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이 우리 몸에 너무 많기 때문에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좋은 장점을 가지고는 세계복음화 하는 것이다. 나는 아프리카 사람을 만나도 좋고, 남미 사람, 아시아 사람을 만나도 좋다.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하는데 나는 어느 나라에 가도 불편하지도 않고 미운 나라, 미운 사람도 없다. 그 장점으로 세계복음화의 길을 가는 것이다.
*종교인으로, 오직 자기를 위해 살았던 바울이 자기를 바꾸는 기도를 시작했을 때 역사가 일어났다.
행13:1~3 그는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고, 행16:6~10 언제나 기도로 시작했다. 행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을 바울은 느낄만큼 기도의 사람이었다.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주,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자로 바뀌었다.
온라인 시대를 맞아 나를 넘어 세계복음화를 구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서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바꿔가야 한다. 복음이 전달되는 곳은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신다. 그래서 앞으로 아프리카, 중국, 남미, 전 세계에 복음의 메세지를 전달해야 한다. 우리가 전하는 메세지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로서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메세지를 하면 전부 데이터가 쌓이는 것이다.
자기를 바꾸는 기도, 성령의 인도를 받고 싶어하는 기도가 시작되어야 한다. 마16:16 이 믿음의 고백을 하고도 불신앙 속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이 우리 몸에 진짜 살아서 역사하시고 운동력이 있고 감찰하시는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시험에 속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도 좌절하거나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나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원죄는 멸망이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 언약을 묵상해야 한다. 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이제는 영원히 함께 하신다. 진리의 영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분이다. 그래서 진리의 영이 우리 몸에 오면 거짓말이 사라져야 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그 길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 거짓말쟁이는 창3:15를 못하게 해서 복음을 이루는 여정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가다락방 교회는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연약한 나라를 가보면 대한민국 목사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자칭 선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이상한 단체를 만들어서 기득권이 되어 마가다락방 교회를 이단이라고 규정해버렸다. 지구상에 가장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다. 마가다락방 교회는 이단이 아니라 성경적 교회의 모델이다. 전도와 선교를 하기 위해 기득권 세력앞에 개혁주자들로 일어난 자들이다. 그런데 기득권 교권들이 개혁하겠다고 하는 젊은 목사들 850명을 파면시켰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에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이단이라고 덮어 씌워놓고 한국교회를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다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당하시는 분이 아니다. 성경의 말씀은 그대로 성취된다. 그런데 연약한 나라에 가서 기득권을 만들고 이단이라는 말을 하는 자들 때문에 그 나라 성도들은 무너지고 그들의 말에 불안해하고 떨고 있다. 진짜 사이비들에게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문을 잠그고 ‘출입금지’ 라고 써놓는다. 누가 우리를 향해 힘 빠지는 일을 하면 한 대 때려서라도 정신을 차리라고 소리쳐야 한다. 예수사랑교회는 하나님과 한국교회, 세계교회, 교회사 앞에 당당하게 “예수는 그리스도” 이 도에 생명을 건 교회다. 복음은 유일성이지, 다양성이 아니다.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다. 이 비밀으로만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 이것을 가져야 재앙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이름으로만 멸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지옥에서 해방받는다. 엡1:5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리 속에 있는 사람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마가다락방 교회에 있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 된 일곱 가지 신분권세로 개인들이 일어나 걷게 되었다. 이 신분 권세가 없으면 목사를 찾아 돌아다녀야 하고, 안수 받고 심방 받는 것에 돈을 허비하는, 피곤한 인생이 된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이다. 엡2:6 하나님 나라에 앉은 자들이다. 그래서 사람 말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엡1:17~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오늘날 종교로 전락한 수 많은 교회들은 기독교라고는 하지만 자기 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전능하신 하나님’ 만 부르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는 영광의 아버지, 그 하나님을 믿고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하나님을 막연히 믿으면서 이상한 말을 지껄이면서 방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가 모욕을 당하는 것이다. 복음은 굉장히 정상적인 것, 사실적이고 뚜렷한 것이다. 역사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복음을 귀신들린 자들에게 빼앗겨버렸다. 이것을 되찾기 위해 개혁주의 목사들이 일어난 것이다.
교회를 50여 년 다닌 장로님이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설명이 안된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전도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와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의 메세지를 해주었더니 이분이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기 교회에 바로 초청하겠다며, 집회를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제가 그 교회를 가면 마귀, 악령, 귀신 이런 말을 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다 떠납니다” 했더니 그분이 “그건 안되죠” 했다. 인간의 근본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교회에 앉아 있지만 원죄로 인하여 우리는 마귀의 자식이다!” 이 말을 교회는 반드시 해야 한다. 결국 그 장로님은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한국교회가 얼마나 자신을 가장하여 광명한 천사로 사는지 나는 알고 있다. 나도 과거에는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장애인들을 11년 동안 데리고 살면서 천사의 얼굴로 미소를 짓는 목사였다. 그런데 내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갔고, 내 정신 상태는 거의 정신분열이었다. 장애인들을 불태워서 같이 죽는 것이 애국이고, 그들의 가정과 가문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잔혹한 자였다. 이런 우리의 내면을 바꾸라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로 오셨다. 나 자신을 바꾸라는 것이다.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을 우리 몸에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마귀의 일을 멸하면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 내용이 없다.
예수님이 마25장에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은 자를 향해 “악하고 게으름 놈아 너는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말씀했다. 신랑을 사랑해서 기다린다고 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신랑은 오직 예수라고 하면서도 기름 준비 없이 막연히 기다리는 더러운 여자들은 내게서 떠나라고 했다. 이런 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내가 갇혀서 먹을 것이 없어도 너희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마귀 새끼, 욕심쟁이라 내게 주지 않았다. 이런 자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셨다. 원래는 염소인데 양인척 하며 숨어살다가 드디어 어느 날 염소의 색깔이 나타난다. 전부 지옥 갈 자들을 지적하셨다. 영원히 무저갱에 들어갈 자들을 예수님이 경고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이런 자들을 생산해내고 있고, 이런 것을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를 다니면 다닐수록 다른 종교, 이단, 사이비 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자들이 된다. 거짓말쟁이, 이단, 사이비들은 평화를 가장해서 신문에도 광고를 내지만, 오늘날 기독교는 근본문제 하나를 해결해주지 못한 채 더욱 잔혹한 살인의 칼춤을 추는 이상한 상태로 가고 있다. 교회들이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결국은 돈이었다고 매스컴에서 오히려 터뜨리고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체험적 증거가 우리 삶에 있어야 한다.
바울이 핍박을 받은 이유는 반 유대적 사상 때문이었다. 그가 반율법적인 사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전을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바울을 고발했다. 바울을 죽이려는 근본 원인이 그들 내면에 있는 창3장 원죄이지만, 그들은 다른 핑계를 대며 바울을 죽이겠는 것이다. 종교를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살인의 광기를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창3장으로 인해 솟아나는 시기, 질투 속에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들만이 가졌던 그 종교적 습성과 체질, 정치적 특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자기 것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발악이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22: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분명히 바울을 아는 자들이었다. 그런데도 바울을 죽이려고 했다. 사람 속에 시기, 질투심이 일어나면 이렇게 무서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창3장으로 일어나는 시기 질투심을 하나님이 주신 창3:15로 깨뜨려야 한다. 얼마 전까지 같이 계략을 짜고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하는 자들을 잡아 죽이기에 다급했던 자들,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자고 전략을 짰던 동료들이 지금 나를 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장로들이 안면몰수하고 군중을 움직여 바울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기득권 종교 목사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는 낙오자 없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응답의 증인, 빛의 소리를 듣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시달리는 자는 절대 희망이 없다.
행22:3~4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자신은 전통 유대 히브리인, 바리새인이지 반유대인, 반율법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전에서 자라난 자신은 성전을 더럽힌 자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자신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은 자였고, 하나님에 대해 엄청난 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남녀를 결박하고 옥에 넘긴 사람이었다. 이 일을 대제사장들과 모든 장로들, 바리새인과 힘을 합쳐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바울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믿는 자들을 무시무시하게 죽이면서까지 핍박하며 모든 생명들에게 위협을 가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나는 이제 다르다” 고백한다. 행22:4 자신이 박해했던 이 도, “예수는 그리스도” 를 이제는 내가 믿는 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행9:3~4에 이 도를 믿는 동기가 나타난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종교는 이렇게 엎어지는 일 뿐이다. 잔혹한 심령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나는 이제 다르다” 는 고백이 우리에게 시작되어야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비밀 속에 나는 이제 다르다.” 나 자신만이라도 이 국가에서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민족이 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사는 나라에 희망이 있다.
“유대인 당신들과 내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설교와 전도의 메세지다. “나는 이제 종교생활에서 해방 받는 길을 찾았다. 나는 드디어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운동력이 있고, 우리를 믿는지 감찰하시며 감독하시고 지키시고 가르쳐주신다. 그래서 나는 다르다. 내가 막연히 알던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제는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하나님을 알고 나는 이제 달라졌다. 예수그리스도, 그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덧입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 다르다” 동방의 의인 욥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그렇게 알아도 자신의 몸에는 능력이 없었고, 은혜도 없었고, 계획, 경륜, 아무것도 없이 그냥 늙어가는 시인에 불과했다. 결국 창3:15로 인생의 답을 얻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바울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강력한 역사와 능력과 경륜, 은혜가 시작된 것이다. 빌3:8 예수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제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며, 빌3:14 그 이름으로 인하여 명확하게 푯대를 향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간다고 고백했다. 이제 영원한 믿음의 영웅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믿음의 영웅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노아 시대 심판으로 인해 홍수가 났기 때문에 므두셀라가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홍수가 없었다면 므두셀라는 죽지 않는 저주를 받고 살았을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일이 있어야 멋있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하나만 간직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영원한 아버지 나라에 갈 수 있는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이론, 사상, 고집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래서 자신은 이제 다르다고 고백했다. 이 세상에 좋아 보이는 모든 것은 언제든지 쓰레기통에 버리고 미련한 것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게 취급하는 것을 붙잡았다. 고전1:21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푯대를 정해놓고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본 사람만이 전도 속에 있는 것이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나를 붙들어주심으로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고 바울은 고백한다.
본래 저 유대인들, 장로들,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으나 이제 그리스도께 붙들려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가 없고 내 한 몸 해방시키는 것이 자신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부활의 주 예수그리스도를 이렇게 체험하는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예수가 그리스도” 아니면 절대로 영적인 눈을 뜰 수 없다. 행26:18~19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로 영적인 눈을 떴더니 빛으로 나가게 되었다. “예수가 그리스도” 아니면 어둠에서 빛으로 움직여지지 않고, 사단의 권세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고, 하나님 만날 길이 없으며, 그 누구도 죄사함을 받을 수 없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며, 구별된 자로서 살게 되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준비된 복음의 경제를 갖게 된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서 “나는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않는다” 고백했다. 위에서 보이신 것을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보게 되고 듣게 되고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 생명의 빛, 나의 출입하는 문, 나의 목자, 나의 영원한 부활이요 생명, 내 인생의 포도나무, 나의 길과 진리, 생명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그 이름을 믿어 “이제 나는 다르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달라져야 가정에 흑암의 저주가 무너지고, 직장에 빛의 경제가 시작되고, 교회의 개혁은 시작된다. 우리가 달라지지 않으면 귀신들린 가족을 구출해 낼 수 없다. 우리만이라도 복음을 사수하고 오직 단을 쌓고 기도 속에 흑암을 꺾고 무너뜨려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이단 누명을 쓰더라도, 우리를 틀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늘에서 보여주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들은 것, 본 것이 있기 때문에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해야 한다.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않는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마귀의 일을 멸하신 하나님 그리스도, 모든 저주와 재앙을 십자가상에서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해방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알게 되었다. 행22: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자신이 비몽사몽 간에 꿈으로 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낮에 맑은 정신에서 보았다. 생명의 빛, 생명의 떡, 내 인생을 출입하는 그 문, 그리스도를 밝은 대낮에 보았다. 그래서 자신은 확신 속에 사실을 말한다고 고백한다. 행22: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어마나 확실히 보았는지, 당신이 누구시냐고 내 입으로 물어보기 까지 했다. 그 분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구원자 이심을 알게 되었고, 그 분이 내 말을 들으시는 줄도 알게 되었다고 바울이 말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기도의 단을 쌓고 언제나 나의 말을 들으시는, 그 보좌의 살아계신 분을 확신했기 때문에 기도로 모든 것을 통과해버리기로 작정했다고 말한다. 박해하는 자신에게까지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신데, 당신들이 지금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만 불러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것인데, 그 진리를 부르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고 바울이 설교를 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도를 소유하고, 교회 안에서 오직, 유일성을 소유하는 자들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신다. “왜 나를 박해하느냐?” 자기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교회를 박해하고, 이것을 외친 교인들을 박해했는데 예수를 박해한 것으로 예수님과 1인칭을 하고 계셨다.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것을 1인칭하면 예수님이 알고 꺾어버리신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 믿는 교인과 교회를 박해함으로 이 땅에서 엎드려져 눈까지 멀고 생명까지 위험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이제 이 도에 대해 증거하는 증인으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예수그리스도는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 지금도 살아서 운동력이 있으며, 감독자로서 우리를 지켜보신다. 오늘 그리스도의 빛의 소리가 살아계신 주로 한 주간 우리 심령에 끊임없이 소리로 들리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바울을 변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소리가 오늘 우리들 영혼 속에 들리게 하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제는 창세기 3장 15절 없이 종교 생활은 참으로 우리를 엉뚱한 희망을 갖게 만들고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잔혹한 핍박자로 살게 했었던 나를 이제는 다르게 살게 하시니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미를 올립니다. 이제는 교회 안에 해를 끼치는 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이제는 전도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참으로 우리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기도 속에 있다면, 체험적 증거가 우리에게 온다고 말씀해 주셨사오니, 확신과 사실 속에 나는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성령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이젠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이 땅에 볼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 주셨사오니, 계시적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에 거스르지 아니하는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시고, 언제나 불신앙을 깨뜨리고 마귀의 일을 멸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참 자유를 가지고 언제나 예수의 은혜 속에 있게 하시고, 예수의 능력과 예수의 생명과 예수의 진리를 가지고 복음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빛의 소리가 우리 영혼 속에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진리 속에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도의 문을 열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창세기 3장 15절, 복음으로 시작하지 않아 근본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엉뚱한 희망과 잘못된 열심으로 오직 자기의 욕망을 위해 기도하며, 잔혹한 핍박자로 살면서 뚜렷한 응답도 없는 인생에서 빠져나와, 위에서 보이신 것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보고 듣는 은혜 속에 다른 인생을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선천적 원죄를 버리고 가문과 가정을 살리며, 후천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서 해방받는 길, 창세기3장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아 예수그리스도가 오직 나의 주와 영원한 생명 되시기에, 내 모든 삶은 복음을 이뤄가는 여정 속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음을 알고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과 좌절, 불신앙을 버리고 뱀의 머리를 밟는 기도의 단을 쌓게 하옵소서.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나를 감찰하시는 그리스도로 언제나 나를 바꾸고, 성령의 인도를 받겠다는 영적싸움의 기도를 통해 가정에 흑암이 무너지고 교회가 개혁되며 산업에 빛의 경제가 임하는 승리를 맛보게 하시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날을 명확하게 계수하는 지혜 속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믿음의 영웅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