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절박한 기도에 응답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마 15:21-28)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 15:21~28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개혁, 종교개혁, 문화개혁을 이루는 삶을 걸어가길 축복한다.
가나안 이방인 여자는 귀신들린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하지 않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했다. 왜냐면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 부모가 되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된 것이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를 도와주셔야 됩니다!”
이 고백이 개인의 고백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한다.
“제 몸에 흐르는 원죄의 저주가 해결되어야 제 딸이 낫겠나이다. 가문의 저주가 흐르는 저주의 몸으로 딸을 낳았으니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자범죄 속에서 시달리는 정신의 문제로 인해 결혼해서 딸을 낳았으니 그런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 여인은 명확한 원인 분석을 한 것이다. 우리의 영혼에서부터 자신을 불쌍해 여겨달라는 절대 고백, 절대 회개가 일어나길 축복한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부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발견한 사람이 본문에 등장하는 가나안 이방여자였다. 수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해 응답의 줄이 끊어지는 것이다.
동방의 의인이라 불리던 욥은 살면서 여러 가지 체험은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는 연결 되어 있지 않았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1~4 그는 인생 말년에 인생의 덧없음을 읊는 시인이 되었다. 답도 없는 시인. 금방 사라지는 인생의 덧없음은 알았지만 그 이후를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부활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욥은 찾고 있었던 것이다.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통하여 승리의 길을 걷기를 축복한다.
욥은 원시복음인 창3:15의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다. 이것을 모른 채 신앙생활 하면 사람이 복잡해진다.
욥은 인생의 고통을 겪으면서 인생이 무엇인지를 발견해가는 과정에 대해 메시지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분의 축복을 체험한 욥은, 하나님을 알고만 있지, 자신이 하나님과 연결된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욥은 자아를 놓고 실험해 본 사람으로서 인생의 깊이를 논한 것이다.
욥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욥1:1~3, 먼 땅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세상에서는 완전한 자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난지라.’ 열 명의 자녀를 둔 모델적인 가정을 일군 사람이었다.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즉 거부였다. 그 당시 재벌 중 재벌이었던 것이다.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더라’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행복하고 넉넉한 사람, 도덕적으로도 흠 없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동방의 큰 자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내적인 문제는 의지력으로도 지킬 수 있으나, 외부로부터의 문제는 지킬 수 없다. 외적인 공격을 받아 그 많던 가축 떼가 다 죽고, 강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면서 열 명의 자녀들이 다 죽고 말았다.
게다가 욥 자신은 알 수 없는 피부병에 걸려 너무나 간지럽고 고통스러워 잠을 잘 수가 없고 잿더미 위에 앉아 질그릇 조각으로 온 몸을 긁고 또 긁었다.욥 2:8
그런 욥을 바라보는 그의 부인은 발악을 했다. ‘지긋 지긋하다 이제 하나님이고 나발이고 없다. 당신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욕이나 하고 믿지 말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욥은 고통 중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찾다가 고백한다.욥 14:1~6
“도대체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은 나를 부르시는 건가. 도대체 누구를 부르시고 누구를 깨끗하게 하시는 건가? 하나님은 지금 내게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내가 부르짖는 하나님은 응답하실까?”
인생은 굉장히 짧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욥14:1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하나님 나라가 없다면 인생은 너무나 허무한 것이다.
인생살이 자체가 괴로움이다. 우리 몸에는 이미 창세기 3장이 퍼져있기에 늙어 가면서 고통 속에 찾고 찾지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창세기 6장의 네피림, 즉 종교에 길들여져 인생 개혁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고 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 것에 길들여졌기에 바벨탑이라는 욕망에 눈이 멀어 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허공 속에서 몸부림친다. 허공은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아 혼돈, 흑암으로 몰아가는 잿빛이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아담아 네가 여기에 걸려들었구나,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평생에 수고하여야 이마에 땀이 흘러야 겨우 먹을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피해보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학생이 시험 보는 날을 피해간다고 해결되는가. 낙제생이 된다.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피하면 안 된다. 창3:17을 피하다가 개망신 당한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창3:15을 주셨다.
인생의 영화는 잠시뿐이다.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욥 14:2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사 40:6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 40:8
따라서 현직에 있을 때 돈이라도 있을 때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 지금 이 말씀을 받아야 한다. 현직에서 물러나서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은 의미 없는 헛소리다. 사업을 할 때 하나님의 일을 하길 바란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동방의 큰 자가 현직에 있을 때 이 비밀을 몰라 망한 것이다.
세계를 정복하는 영적인 눈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주를 만나길 바란다.
→ 욥은 창3:15의 하나님을 모르고 전능한 하나님만 알았을 뿐이다.
그래서 욥기 전체에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분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욥 5:19~20
욥은 고통을 이겨나가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을 뿐이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답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들이 당하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감찰하고 연단하는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욥은 인간을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고 고통에 고통을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며 계속 절규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욥 5:18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여 고쳐주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다. 마귀는 우리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한다. 이것을 알고 정신 차리고 복음을 가져야 한다.
→ 고백하고 믿음으로 지탱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온갖 체험도 했지만 실제 욥 자신은 하나님과 연결 되어 있지 않았다.
“영접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우리가 이런 상태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교회는 욥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래서 온갖 재앙과 저주를 당하고 불신자로부터 하나님을 욕하고 떠나라는 말을 듣는 교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욥 17:1 여기에 빠져 있는 교회를 건져내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신 것이다. 욥의 고통은 42장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6 클라이맥스다. 마누라도 떠나고 자식들도 다 잃어버리고 가축들도 다 없어져 버리자, 욥을 경건의 사람, 하나님의 큰 자라고 칭송 하던 주위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도록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 전환점이 시작된다.
욥 1장에서 부터 욥42:6까지 오면서 처음으로 한 단어가 나온다.
하나님 앞에 울기도 하고. 하나님이 언제 나에게 가까이 오실 것인지, 하나님이 나를 언제 낫게 하실 것인지 호소하고 고백하고 찬양은 하는데 결국은 죽을 만큼 진액이 거의 다 빠질 지경에 까지 이른 것이다. 그래서 결론으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고백했다.
창3:15로 돌아가라! 이것으로 시작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재앙이다. 그리고 모든 에너지가 쇠약해진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것을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이다. 창3:15로 돌아가야 될 인간들이 여기에 연결되어 있지 않기에 하나님의 독생자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내가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그 때 전도가 시작된다.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전환점이 있어야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된다. 창3:15 원시 복음이 몸에 들어와 있어야 하나님과 연결되어 우리의 필요에 따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다. 잃어버렸던 것을 회복하는 날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 창3:15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 중의 언약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언약이요 본체의 언약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는 언약이요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 받는 언약이요 마귀의 일에서 벗어나는 언약이다. 그래서 살아남는 하나님의 방법인 언약을 주신 것이다. 그것은 즉각 응답이 오고 모든 것들이 회복되는 축복의 언약이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을 한 베드로는 자손대대로 남을 축복이요 작품이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성취한 자가 된 것이다. ‘주’, 즉 창3:15의 주인공이다. ‘퀴리오스’ ‘메시아’ 당신이 창3:15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분이 지금 그리스도 당신이십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저주를 담당하시고 지옥 권세와 사탄의 일을 멸하시려고 오신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허락한 사람에게만 고백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것이다. 이 비밀을 모르는 자들이 안식교, 천주교, 정교 등을 만들어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창3:15의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믿어지지 않는 것은 본인의 재앙이다. 믿어지지 않거든 회개해야 한다. 창3:15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엡 1:17~18 우리 주 창3:15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그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연결해 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너희 마음의 눈을 확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즉 창3:15로 구별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이방인의 절박한 기도에 응답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발견한 사람이 이방여자였다.
그 여인이 창3:15의 주를 안 것이다. 출3:18 희생제사, 어린양의 그리스도를 알아 버린 것이다. 바로 사7:14 임마누엘의 주 메시아를 알아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인간의 영적문제가 무엇이며 무엇으로 해결되는가를 알아낸 것이다. “당신은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들을 제어할 능력을 소유한 주 그리스도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그 분이 누구인가를 알고 불렀다. 그 여인이 가진 믿음이 분명하게 나와 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 15:26~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즉 퀴리오스. 창3:15 오시겠다고 하신 주여,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한 언약의 하나님 주여 옳소이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저는 주를 나의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개 같은 사람으로 취급을 당해도 시험 들지 않고 모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다. “주, 당신은 나의 주인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습니다. 저는 자격은 없지만 주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주의 은혜를 덧입길 원하오니, 당신과 연결되어지기를 원하오니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예수사랑교회는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기를 축복한다.
→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는 믿음을 소유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마 15:22
창3:15의 언약을 발견하고 자기에게 연결시킨 것이다. “주께 제가 연결되었으니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라는 호칭은 창3:15 하나님을 부르는 대명사인 것이다. “제 인생의 해결자는 당신 주, 퀴리오스 저의 주인뿐입니다!”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예수께 접근한 것이다. “다윗의 자손으로서 그 혈통을 타고 오신 분이잖아요, 저의 주인으로 연결해 주셨잖아요.” “하나님의 아들 당신으로 인하여 사탄에게 매였던 것이 풀어지고,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면 출애굽 시켜 주시는 분이 나의 주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만왕의 왕이시오 참 제사장이시요 참 선지자 되신 주는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가나안 여인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알았던 것이다. “참 왕권으로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주는 나의 주인이십니다.”
제대로 발견하고 신앙을 고백해야 살게 된다. 그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했다. 귀신들린 딸이 아닌, 먼저 자신이 주께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으면 딸의 문제는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후 1:2 창3:15의 하나님을 알면 은혜와 평강이 많아진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알아야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야 한다. 그냥 교회를 섬기는 차원으로 살아가면 안 된다. 예루살렘 교회는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져 버렸다. 미국의 로버트 쉴러 목사님이 세우 초대형 교회가 팔리고 말았다. 세계적인 지휘자가 그 교회를 섬겼는데 그는 자살하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교회를 알게 된다. 교회는 종교, 율법에 길들여져선 안 된다.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 요6:35, 예수께서 당신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을 곱씹어 먹고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진짜 알아야 한다. 성만찬을 하면서 교회의 필요성을 진짜 알면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서 삶을 산다.
그것이 온전한 회개인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셨지 교회당을 따라가라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 옛사람의 자아를 부인하고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가면,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마음에 예수께서 살게 해야 한다. 교회당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매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
동방의 의인 욥의 교회는 망했다. 망할 교회 하지 말고 영원히 존재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한다.
교회가 무엇인가? 모든 문제를 풀어주는 것이다. 사탄에 묶인 자를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창3:15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욥은 하나님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으로만 알고 그 분을 찾기만 했지 전혀 그 분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하나님 만나는 길, 창3:15의 영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나님을 만난다.
왜 인간에게 고통이 찾아오는가? 창3:15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지면 고통을 주는 사탄의 머리를 깨트린다. 예수께서 교회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셨다.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눅 13:16 교회를 다니는 아브라함의 딸이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여 온 몸이 오그라들었는데 교회는 풀어주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래서 창3:15의 하나님, 교회의 주인이신 그 분이 풀어주신 것이다. 더러운 것들에게 길들여지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길들여지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결국 욥은 창3:15로 돌아갔다. 그것을 회개라고 한다. 얻어맞고 “주여 내가 뭘 잘못했나이까 회개하나이다 아버지여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은 회개가 아니다. 반복될 뿐이다. 원망, 불평, 종교적 배경에 길들여진 반복된 삶을 회개라고 말할 수 있는가! 회개는 원시복음으로 돌아가 시작하는 것이다. 욥이 그 전환점을 발견한 것이다.
행10:38, 의로운 고넬료와 그 집안사람들이 사탄에게서 풀리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다. 성령에 힘입어 묶인 것을 풀어내라. 뱀의 대가리를 깨트려라. 내어 쫓아라. 결박해라. 무너트려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예수님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인격으로는 구원 못 받는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인간의 인격은 위선적인 인격이다. 속이는 인격이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진짜 믿어야 할 대상은 창3:15의 주인공이다. 이 분과 연결되어야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그러면 골1:13,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점프한다.
그러면 문제 해결자 앞에서 간구한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셨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분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연결되었으면 그 분에게 내려놓아야 한다. 욥은 연결되지 않았기에 스스로 몸부림 쳤던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왜 이렇게 세월이 짧고 내가 지금 저 무저갱으로 지금 내려가나이다” 이런 시적인 고백은 했지만 인생의 답을 몰랐던 것이다.
→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의 침묵으로 인한 시험을 이기는 것이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마 15:23 가나안 여자는 주와 연결되고 그리스도가 주인이기에 자신의 간구에 예수님이 침묵하셔도 개의치 않았다. 주, 퀴리오스의 하나님과 말씀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분이 나의 주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간구할 때 그 분이 침묵한다 해도, 침묵하시는 동안 뱀 대가리를 깨트리면서 기다리면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밟고, 밟고, 밟는 자에게 이 말씀이 성취된다. 가나안 여인은 자신과, 환경과의 영적싸움에서 이기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돌출행위를 하게하고 욕망으로 인해 성질대로 대들게 하는 사탄과의 영적싸움에서 승리한 여인이었다. 우리였다면 어떠했을까? 한번 간청했는데 아무 반응을 보이시지 않아 두 번, 세 번 큰 소리로 간청하자 제자들이 미친 사람 아니냐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 “여기만 응답 있냐!”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 간청하고, 간청하고 또 간청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 중에서도 제일 성질이 급한 베드로가 아마도 약간 정신이 나간 여자로 봤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여자는 얼마나 쪽팔리겠는가. 하지만 그는 환경에 속지 않았다. 왜 그런가? 퀴리오스, 그 분이 자신의 주인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주인은 나를 살리시고 내 자녀를 축복하시며 온 인류를 구원케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만왕의 왕 창조주이시다!” 이런 믿음을 가졌다면 환경에 시달리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방해를 초월하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오히려 그 여자의 행위에 견디다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운다.
“예수님 이 여자들이 자꾸 우리 뒤에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말하니 어떻게 한 말씀이라도 해보시지요.”
여인은 인생에 찾아오는 방해물, 장애물을 어떻게 통과했는가?
응답 전에는 항상 방해물, 장애물이 찾아온다. 그래서 어느 때는 하나님과 연결된 줄을 끊고 어디론가 가고 싶기도 하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7~8 사탄을 우는 사자라고 표현했다. 연결된 것을 끊어버리게 만드는 우는 사자. 여기에 걸려들지 말라고 베드로는 경고한다. 그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란 고백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었지만 환경 앞에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해물,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베드로는 알았던 것이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0~11 선한 목자와 연결되었다면 선한 목자는 우리의 목숨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절대 연결된 상태가 흔들려선 안 된다.
→ 예수님으로 부터 무시 받고 격멸당하는 시험을 그 여인은 통과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주여, 퀴리오스여 저를 도우소서/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 15:24~27
“당신은 나의 주인이지 않습니까, 개 주인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당신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개에게 던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존재이지 않습니까. 당신이 퀴리오스요, 나의 주인이요, 나의 구원자인데 당신 입에서 떨어지는 것, 당신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먹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자신을 겸허하게 낮추는,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이 여인은 정확히 퀴리오스가 그의 몸에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죽이는 훈련이 된 여인이었던 것이다.
겸손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된다. 자신을 깨트리는 힘은 하나님의 절대 은혜인 것이다. 자신을 깨트리는 믿음을 가지며 하나님은 역사 하신다.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세 가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당부했다. 딤후2:1~6, 가장 영적싸움을 잘하는 군사가 되라. 자신과 세상 환경과 사탄과의 영적싸움 하는 진짜 군사가 되면 하나님의 은혜에 강한 자가 된다. 또한 페어플레이 하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라. 그러면 믿음이 점점 자라나 언제나 씨를 심는다. 장마철에 심은 고구마가 잘 자라는지 어떻지 알아보려고 매일 가서 뽑아보면 안 된다. 심었으면 믿어야 한다. 창3:15이 나의 주,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이요, 그 분을 영접하고 연결되었다면 된 것이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 너희의 모든 문제 다 이루었으니 구원의 주 그리스도를 찬양할지어다.
→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어디에 있었는가? 자녀에 대한 깊은 사랑에 있었다. 아이에게 젖 빨리면서 간직한 믿음이 있었다. 퀴리오스 창3:15이 나의 주, 나의 주인으로 연결되면 자녀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믿음을 보여주지 못한 그 아픔 때문에 울라는 것이다. 만약 울고 싶지 않거든 창3:15로 돌아가기 바란다. 이것을 회개라고 한다. 이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인생의 절박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발견하고 알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이제는 자녀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대신하여 십자가 지시고 고통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답을 찾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는 동방의 의인 욥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언약으로 주신 창3:15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믿음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요1:12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로 마음껏 이 세상에서 누리며 정복하며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가나안 여인이 가진 믿음을 우리들에게도 회복시켜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지만 만나지 못한 채 답 없이 몸부림치다 어느 날 외부의 공격을 받고 망하는 욥의 교회가 아닌, 사단에게 묶인 것을 풀어주는 예수사랑교회와의 만남을 주셔서, 창3:15의 하나님,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여 연결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분석하여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절대 고백 속에 나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창3:15로 돌아가, 자신과 환경과 사단과 영적싸움하여 승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현직에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